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주제분류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요약 〈차이나타운〉은 로만 폴란스키의 1974년작으로 1930년대 LA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불륜을 전문으로 조사하는 사립탐정 제이크 기티스가 비밀에 싸인 에블린이라는 한 여인의 사건을 의뢰받는다. 제이크는 에블린과 관련된 조사를 하던 중 그녀의 복잡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비리와 음모로 가득한 미국 사회의 모순과 부패상을 마주하게 된다는 내용의 필름 누아르 영화이다. 시나리오 작법의 교과서라 불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차이나타운 대표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원본보기

시놉시스

불륜을 전문으로 하는 조사하는 사립탐정 제이크는 남편을 감시해달라는 한 부인의 의뢰를 받고, 수력발전 책임자인 멀레이의 뒤를 밟기 시작한다. 그런데 멀레이의 진짜 부인인 에블린이 나타나고, 멀레이는 익사한 시체로 발견된다.

제이크는 멀레이의 죽음에 의문을 느끼고 계속 조사를 진행하고, 멀레이가 익사가 아닌 살인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또한 제이크는 이 살인 사건의 배후에는 도시의 댐 건설을 둘러싼 엄청난 음모가 있음을 눈치 챈다. 제이크는 온갖 위협을 마주하며 이 음모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간다. 그리고 에블린과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

그러던 중 사건의 중심에 에블린의 아버지이자 멀레이의 옛 동료인 노아 크로스가 있음을 밝혀낸다. 노아는 쓸모없는 땅을 헐값에 사들인 뒤, 저수지 물을 그쪽으로 빼돌려 비싼 값으로 땅을 팔아치우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멀레이가 그 사실을 알게 되자 그를 제거한 것이다.

하지만 노아의 추악하고 탐욕스러운 이면은 그것이 끝이 아니다. 노아는 자신의 양녀였던 에블린과 근친상간을 했고, 심지어는 그녀가 낳은 딸까지 자신의 딸로 삼으려 한다. 제이크는 에블린을 노아에게서 벗어나게 하려 하지만, 결국 에블린마저 목숨을 잃는다. 제이크는 추악한 진실 앞에서 무기력하게 절망한다.

작품해설

1. 장르적 성격

〈차이나타운〉은 1940, 1950년대 필름 누아르 장르를 되살려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필름 누아르는 1941년 대시엘 해밋의 동명 작품을 각색한 존 휴스턴의 〈말타의 매〉가 그 효시였다. 검은, 어두운 등을 뜻하는 프랑스어 ‘누아르’(noir)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필름 누아르는 말 그대로 어두운 성향의 영화를 가리킨다.

필름 누아르는 주로 도시의 밤을 배경으로 하며,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아 전체적으로 어두운 로키의 조명을 사용한다. 또한 복합적이고 때로는 냉소적이며 반영웅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특징을 갖는다. 즉, 필름 누아르는 전체적으로 밝은 하이키의 낙관주의 같은 표준적인 할리우드영화와 확연히 구별되는 비관적이고 숙명적인 분위기를 표출한다.

사회로부터 소외된 한 탐정이 팜파탈을 계기로 의혹에 찬 사건에 조사하게 되는 〈차이나타운〉의 서사에도 잘 드러나듯, 필름 누아르는 ‘하드보일드 탐정소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대시엘 해밋, 레이먼드 챈들러, 제임스 M. 케인, 코넬 울리치 등의 탐정소설은 지속적으로 영화화되면서 필름 누아르 장르가 형성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의 주인공처럼, 필름 누아르의 주인공 역시 대체로 범죄를 조사하던 중 이내 범죄에 휘말리는 수동적 인물로 제시되며 곧잘 좌절과 실패를 맛보곤 하는 특징을 갖는다.

〈차이나타운〉은 이러한 주인공의 성격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는데, 제이크는 세상 물정에 밝은 척하면서도 반복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면서 능력의 한계를 노출한다. 로만 폴란스키가 직접 연기한 몸집이 작은 미치광이에게 코를 베여 영화의 상당 부분을 커다란 붕대를 감고 다니는 설정은 제이크의 허약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필름 누아르 남성주인공들의 수동성은 주로 팜파탈로 불리는 여성인물과의 관계에서 잘 나타난다. 필름 누아르의 여성인물은 자신의 성적 매력을 무기로 남자주인공을 조종하거나 길들이는 주도적 역할을 한다. 〈차이나타운〉의 제이크가 에블린의 매력에 빠져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것처럼, 필름 누아르의 남성들은 팜파탈이 놓은 덫에 걸려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

1940년대 로렌 바콜, 리타 헤이워드, 바버라 스탠윅, 에바 가드너 등 많은 할리우드 여배우들은 선과 악의 두 얼굴을 가진 요부나 남성을 덫에 걸리게 하는 거미 같은 여인 등을 연기함으로써 스타 자리에 올랐다.

필름 누아르는 1950년대 후반 할리우드에서 사라졌지만, 〈차이나타운〉의 성공은 잊혀졌던 장르를 다시 할리우드에 복귀시키는 역할을 했다. 실제로 폴란스키는 〈차이나타운〉을 연출하면서 영화 곳곳에 고전 시기의 필름 누아르에 대해 오마주를 바친다.

특히 〈말타의 매〉(1941)에 대한 그의 애정은 대단하다. 〈말타의 매〉를 연상시키는 도입 장면뿐만 아니라, 영화사에서 최고의 악한이라 불려도 부족하지 않을 노아 역에 〈말타의 매〉의 감독이었던 존 휴스턴을 캐스팅한 것은 이러한 애정의 결과다.

〈차이나타운〉이 소생시킨 1970년대 이후의 필름 누아르를 네오 누아르라 부르기도 한다. 필름 누아르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불안, 남성 정체성의 위기, 그리고 여성의 성장이라는 미국 사회의 반영이었다면, 네오 누아르는 이러한 사회적 맥락을 제거한 채로 필름 누아르가 가졌던 시각적, 서사적 형식을 모방하는 특징을 갖는다.

〈보디 히트〉(1981),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1981), 〈라스트 시덕션〉(1994) 등의 작품이 이러한 경향을 대변한다. 또한 네오 누아르는 필름 누아르의 스타일을 다른 장르와 결합하는 성향이 강한데, 〈블레이드 러너〉(1982)와 〈매트릭스〉(1998)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영화사가인 존 벨튼은 이러한 네오 누아르를 가리켜 다음처럼 말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누아르영화들은 누아르가 아니다. 그것은 가짜 누아르이다.”

2. 제작 과정

차이나타운 본문 이미지 1

〈차이나타운〉은 로버트 타운의 시나리오를 로만 폴란스키가 연출한 작품이다. 로버트 타운은 〈마지막 지령〉(1973), 〈차이나타운〉(1974), 〈샴푸〉(1975)로 3년 연속 아카데미 후보로 지명될 만큼 할리우드 최고의 시나리오작가로 평가받는다. 폴란스키는 폴란드에서 활동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뒤 〈악마의 씨〉(1968)로 할리우드에 데뷔했고, 이 작품은 상업적, 비평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폴란스키는 찰스 맨슨의 광신도 집단에 배우이자 아내였던 샤론 테이트를 잃는 아픔을 겪는다.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맥베드〉(1971)를 연출한다. 〈맥베드〉는 미국에 대한 저주이기도 했는데, 미국에 대한 그의 냉소적 태도가 로버트 타운의 시나리오와 만나면서 1970년대 할리우드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차이나타운〉을 낳은 것이다.

로버트 타운은 〈드라이브, 히 세이드〉(1971)에서 영감을 얻어 잭 니콜슨과 제인 폰다를 상정하고 〈차이나타운〉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차이나타운〉이라는 제목은 타운의 경관 친구가 “일이 제대로 풀리는 법이 없는 곳이 바로 차이나타운이다. 그들은 독자적인 문화에 집착한다”고 말했던 것에서 차용했다. 타운의 시나리오를 폴란스키에게 맡기기로 결정한 것은 이 영화의 제작자였던 로버트 에반스였다. 폴란스키는 샤론 테이트가 죽은 뒤 오직 끔찍한 기억밖에 없는 미국에 돌아갈 생각이 없었지만, 에반스는 잭 니콜슨과 프로덕션 디자이너 딕 실버트의 도움을 받아 폴란스키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차이나타운〉은 가장 뛰어난 시나리오 중 한편이자, 시나리오 작법의 교과서로 언급된다. 로버트 타운은 이 작품을 통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시나리오의 최종 버전은 타운과 폴란스키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빚어졌다. 폴란스키는 타운의 시나리오가 그다지 흡족하지 않았지만, 타운은 자신의 시나리오가 별로 고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두 사람은 대립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촬영 내내 계속되었는데, 결국 최종 시나리오는 폴란스키의 의도에 따라 수정되었다.

시나리오에서 두 사람의 입장 차이가 가장 컸던 부분은 영화의 엔딩이었다. 타운의 시나리오는 에블린이 타락한 부친 노아를 죽임으로써 궁극적으로 죄악이 처벌받는 결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폴란스키에게 미국이라는 세계는 이보다 더욱 어둡고 절망적이었다. 플란스키는 자식을 좌지우지하며 근친상간의 대상으로 삼는 노아는 살아남아야 하고, 죽는 것은 에블린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자신이 경험한 미국이었다. 〈차이나타운〉의 결말은 폴란스키의 것이었다.

결국 타운은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차이나타운〉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 〈불륜의 방랑아〉(1990)의 시나리오를 썼고, 자신의 오랜 친구였던 잭 니콜슨에게 연출과 주연을 맡긴다. 하지만 〈불륜의 방랑아〉는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외면받았다.

3. 영화의 주제와 결말

〈차이나타운〉의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주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이크는 댐 건설에 얽힌 음모를 알아차리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는 양녀를 임신시키고 그녀가 낳은 딸마저 근친상간하는 노아의 추악한 범죄를 알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해결하겠다고 나서면 나설수록 사태는 더욱 악화된다. 제이크는 노아로부터 에블린이 도망가도록 도우려 했지만, 이는 에블린마저 목숨을 잃는 결과를 낳는다.

에블린의 사고를 목격한 제이크는 터벅터벅 거리를 걷는다. 그런 그에게 친구가 이야기한다. “잊어버려 제이크. 여기는 차이나타운이잖아.” 이 대사는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이크의 무기력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또한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는 곳’으로서의 차이나타운을 의미하기도 한다.

진실 앞에서 느끼는 무기력함을 표현하는 대사로서, 가장 강렬한 엔딩 대사로 평가받는다. 이 대사는 미국영화연구소(AFI)가 뽑은 명대사 중 7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주요 등장인물

제이크(잭 니콜슨) : 전직 경찰이었지만, 현재는 불륜을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사립탐정으로 일한다. 에블린과 사랑에 빠지면서 위험한 진실에 가까이 간다.

에블린(페이 더너웨이) : 양부의 아이를 낳은 것도 모자라, 딸이 여동생이 되는 것을 지켜 봐야 하는 파란만장한 인생의 여인.

노아(존 휴스턴) : 영화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로서, 양녀를 임신시키고, 그녀가 낳은 딸마저 소유하려 하는 추악한 탐욕의 대명사.

명장면 명대사

모든 사건에는 여자가 있죠.

- 에블린

필름 누아르 장르의 남성주인공과 팜파탈의 관계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사이다.


잊어버려 제이크. 여기는 차이나타운이잖아.

- 로렌스/ 제이크의 친구

영화 속 제이크가 느꼈을 무력감과 허무한 느낌을 냉소적으로 표현하는 대사다. 폴란스키의 미국에 대한 생각 또한 이 대사를 통해 드러난다.

관련정보

수상

• 1975년 제3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각본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작품상
• 1975년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연관 영화

〈LA 컨피덴셜〉(1997) : 1930년대 LA를 배경으로 하는 필름 누아르 작품으로, 〈차이나타운〉에 필적할 만한 시나리오로 평가받는다.

〈말타의 매〉(1941) : 필름 누아르의 시작을 알린 작품

출처

제공처 정보

  • 집필 안시환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 1974년생. 동국대 영화과에서 「역사영화의 정치적 무의식 연구 : 1987년 이후 한국영화를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3회 영화진흥위원회 우수논문상공모에서 우수상을 수상했고, 제10회 〈씨네21〉 영화평론공모에서 우수상을 받으며 저널리즘 비평을 시작했다. 동국대, 중앙대, 홍익대 등에서 영화미학과 매체철학 등을 강의했고, 중앙대 연구원과 경성대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미쟝센단편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고, 〈씨네21〉, 〈한겨레신문〉, 〈예스24〉 등에 영화평과 문화비평을 연재해왔다. 〈한국영화 섹슈얼리티를 만나다〉, 〈막스 오퓔스〉 등을 공저했다. 자세히보기

  • 감수 한창호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 이탈리아 볼로냐국립대학교 영화학 전공(라우레아 과정 졸업). 저서로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 〈영화, 미술의 언어를 꿈꾸다〉, 〈영화와 오페라〉 등이 있고, 역서로 〈할리우드 장르의 구조〉, 공저로 〈유럽의 영화와 문학〉 등이 있다. 〈씨네21〉 등 여러 대중매체에 영화평을 쓰고 있으며,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대중강의를 진행한다. 자세히보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외부 저작권자가 제공한 콘텐츠는 네이버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