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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킹 아더의 시대적 배경좀 .. ㅎ
ghkd**** 조회수 12,070 작성일2005.01.22
방학숙제인데요 ㅎ
킹아더를 보고 시대적 배경 쓰는거요..

킹아더 ..
시대적 배경좀 알려주세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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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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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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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건 ....


15세기로부터 1천년 전의 5세기 암흑시대 가 전부 입니다 .. 밑에에 있는 참고 글 보고 하세요.








<킹 아더>는 왕의 운명을 타고나서 엑스칼리버 검과 목숨을 함께 했던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를 신화나 전설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서 만든 스펙터클 시대극이다. 제작자는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블랙 호크 다운> 등을 만든 제리 브룩하이머, 감독은 <트레이닝 데이>의 안톤 후쿠아다. 수세기 동안 역사가들은 킹 아더가 신화적 인물이지만 그에 관한 전설들은 실존인물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킹 아더는 개인적인 야망과 공공을 위한 사명감 사이에서 고뇌했던 실존인물이다. 제리 브룩하이머는 <엑스칼리버>나 <카멜롯의 전설> 등의 기존 영화들이 즐겨 다루었던 신화나 전설적 내용들을 피하고, 실존인물인 아더가 브리튼의 왕이 되기까지의 역사적 사실에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색슨족의 대군을 상대로 치러야 했던 바돈 힐의 전투_Battle of Badon Hill: 서기 480년_에서 이룩한 혁혁한 공적이 이 작품에서 부각됐다. <킹 아더>의 각본은 <글래디에이터>의 각본으로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지명된 데이비드 프란조니가 담당했다. 촬영은 제리 브룩하이머의 <블랙 호크 다운>과 <블루>의 슬라보미르 이지아크가 담당했다. 미술은 <니키타>와 <레옹>에 참여한 댄 웨일이 맡았고, 음악은 대부분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대작들에 크레디트를 올리는 한스 짐머가 담당했다.


작품에 관하여
15세기로부터 1천년 전의 5세기 '암흑시대'에 '실존했던'
위대한 영웅의 대서사극 액션 드라마!
각본은 <글래디에이터>로 아카데미각본상 후보에 오른 데이비드 프란조니!

<킹 아더>는 색슨족 대군을 무찌르고 브리튼을 이끈 전사이자 원탁의 기사들의 대장이었던 실존영웅의 위대한 스토리를 그린 작품이다. 다음은 제작자인 제리 브룩하이머의 술회다. “이 영화는 원탁의 기사였던 아더가 왕이 되던 과정의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친숙하게 알려져 있는 스토리를 다시 엮는 게 아니라 새로운 역사적 사실과 시각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아더는 대부분의 영화에서 그려진 것보다 무려 1천년 전인 암흑시대_the Dark Ages_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글래디에이터>를 쓴 데이비드 프란조니는 역사적으로 훨씬 더 정확한 스토리를 제시하기 위해 이 영화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사건들을 역사적 근거에서 조명했다.”

“역사에는 명확하게 결론내릴 수 있는 역사적 순간들이 존재한다.” 데이비드 프란조니의 설명이다. “킹 아더의 역사엔 그의 본명과 전투가 기록되어있다. 그의 본명은 루시우스 아토리우스 카스투스_Lucius Artorius Castus_이며, 전투명은 바돈 힐의 전투_Battle of Badon Hill_다. 이 전투는 브리튼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으며, 이 전투의 영웅담은 수세기 동안 이어져오면서 전설과 신화로 재창조됐다. 과거의 역사 속으로 돌아가서 그들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아낸 다음 그들의 스토리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작업에 임했는데, 그건 나에게 대단히 의미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제리 브룩하이머의 설명이 이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도 극장에 가서 시대극 대작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스토리를 사실적인 방식으로 들려줌으로써 관객들이 갖고 있는 견해들을 바꾸어주는 작업을 좋아한다. <킹 아더>는 분명 그런 역할을 할 것이다. 이 영화는 암흑시대에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었는가에 관한 실화를 들려줄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사마시아_Sarmatia_의 기마병들, 혹은 기사들은 로마 특수군의 마지막 군대조직이었으며, 그들의 지휘관은 아토리우스 카스투스였다. 그들에겐 적진에서 반드시 완수해야 될 마지막 임무가 주어진다. 그 무렵 로마제국은 브리튼에서 군대를 철수하려고 하던 시점이었다. 이들 기마병과 기사들은 로마를 위하여 브리튼 사람들을 잔혹하고 무차별적으로 억압했다. 피로써 결속한 그들 기사들이 가는 곳엔 당연히 유혈이 낭자했다.” 실화에 입각한 강인한 느낌의 <킹 아더>를 위해 제리 브룩하이머는 <트레이닝 데이>의 안톤 후쿠아를 감독으로 영입했다. “난 안톤 후쿠아의 팬이었다. 오랫동안 그가 만든 뮤직비디오들과 상업광고를 즐겨 봐왔다. 그는 내가 제작한 <위험한 아이들>의 뮤직 비디오를 만든 감독인데, 기회가 오면 꼭 함께 영화를 해보고 싶었었다.”

피츠버그 출신인 후쿠아는 ‘킹 아더와 원탁의 기사’에 얽힌 신화와 그를 소재로 만든 영화를 보며 성장했다. 다음은 감독의 회상이다. “나는 킹 아더 류의 스케일이 큰 시대극을 즐겨 보면서 성장했다. 지난 수년 동안 나는 신화를 공부했는데 특히 킹 아더의 전설에 관심이 많았다. 어려서부터 나는 기사들의 검술놀이를 즐겼고 영화감독이 된 이후로는 용맹과 신의를 주무기로 했던 기사들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제리 브룩하이머를 통해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난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았다.”



죽는 게 더 나았을 '암흑시대'_the Dark Ages_에 등장한 시대적 희망,
그 이름은 아더였다!
그와 기사들이 겪은 험난한 여정의 어드벤처가 결합된 액션 드라마!

감독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제리 브룩하이머가 나를 적임자로 생각한 것은 이 영화가 남성적이며, 거칠고 강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며 폭력 및 죽음의 맛과 냄새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주인공들이 처한 혹독한 추위와 그들의 절망감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될 것이다. 영화의 분위기는 대단히 묵시록_?示錄_적이다. 누구나 죽는 게 차라리 더 나았다고 믿었을 시대였던 암흑시대_the Dark Ages_같은 때에는 희망이 거의 없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아더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신화와 전설의 주인공인 아더, 그가 실존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킹 아더>는 아더와 그의 기사들이 겪은 처절한 여정의 어드벤처를 결합한 액션 드라마_action drama_이다. 다음은 안톤 후쿠아 감독의 설명이다. “신화와 전설 등 판타지 요소는 최대한 덜어냈다. 그 대신 사실적인 내용을 최대한 담아냈다. 감독인 나를 흥분시킨 이유는 이런 모습의 킹 아더를 처음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여러분이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의 킹 아더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역사적 사실에 토대를 둔 작품이라는 특성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사료를 뒤지고 연구한 결과 우리는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을 발견했다. 신화나 전설의 주인공으로써 우리가 좋아했던 킹 아더가 실존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분명 희열과 전율이 동반된 발견이었다. 실제로 존재했다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평생 아더와 기사들에 관하여 관심을 가져온 안톤 후쿠아 감독도 이 작품의 시나리오 작가인 데이비드 프란조니의 각본을 읽기 전까진 카스투스_Castus_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다음은 감독의 술회다. “나는 아토리우스_Artorius_나 사마시아 기사들_the Sarmatian knights_에 관해 전혀 몰랐었다. 하지만 각본을 읽고 난 다음 제리 브룩하이머와 나도 머리를 싸매고 연구조사를 했다.

우리는 영국으로 날아갔으며, 영화의 무대가 되는 하드리안 성_Hadrian's Wall: 로마제국의 하드리안 황제의 명에 따라 서기 122년에 축성이 시작됐다. 동쪽 해안과 서쪽 해안을 가로지르는 이 성은 로마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브리튼을 픽트족(Picts: 몸에 문신 같은 그림을 그렸다고 하여 붙여진 부족이름. 로마군은 그들의 모욕적으로 부르기 위해 워드족_Woads_이라고 불렀음)과 같은 침략자들로부터 브리튼의 남쪽을 방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우린 그곳을 직접 방문하고, 아울러 존 매튜스 같은 아더 연구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구했다. 나는 기사들이 어떤 군장을 갖추었는지 직접 보기 위해 박물관들을 찾기도 했다. 나는 이런 과정을 통해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거나 정복당한 사람들이었다면 누구나 기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란 개연성을 발견하게 됐다. 그와 동시에 나는 그 시대엔 기사도 정신이나 기사제도_chivalry_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당시의 기사들은 유혈과 용맹의 상징이었지 명예의 상징은 아니었다. 이들 기사들은 매일같이 진흙과 혹한의 추위 속에서 싸워야 했다. 그들은 그 당시 가장 거칠고 강한 전사들이었음에 분명하다.

“나는 <킹 아더>가 사람들에게 전설과 신화에 의해 가려졌던 실존인물의 존재를 잘 보여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어지는 감독의 설명이다. “아더는 진정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자기의 목숨마저 바칠 각오로 백성들을 위해 희생했으며, 결국 왕이라 불릴 자격을 얻었다. <킹 아더>는 본질적으로 악에 대항하는 선을 그렸다. 이건 신화의 기본조건이기도 하다. 신화 속의 영웅은 악마에 맞서야 하고, 용을 처치해야 한다. 신화의 영웅은 위기 상황에서 도망쳐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개인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우리는 현실의 악에 맞서야 한다는 점이다.”

안톤 후쿠아의 마지막 말도 들어보자.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누군가가 홀로 외롭게 선두에 나가서 전투준비를 갖추는 순간 사람들이 모두 다 일치단결하여 그를 따르는 광경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나는 이런 설정에 강렬하게 끌렸다. <트레이닝 데이>의 이단 호크의 캐릭터를 예로 들어보자. 어떤 중대한 시점에서 누군가는 '알론조'_Alonzo_에게 맞서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짓밟힘을 당하고 독재자를 얻게 되니까!”


아더는 '평등과 자유라는 대의'를 위해 목숨 바치고 싸웠던
위대한 지도자였다.

다음은 아더 역을 맡은 클라이브 오웬의 캐릭터 설명이다. “아더는 누구보다 불평등을 반대했던 인물이며, 세상을 동등하고 평등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졌던 인물이다. 그에게 충성을 바쳤던 모든 기사들은 하나의 목표가 정해지면 전투병기_military machine_들처럼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존재들이었다. 그런 점 때문에 아더는 지도자라 불릴 수 있었다. 기사들은 누구나 아더에겐 뭔가 다른 면모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누구나 자발적으로 그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영화에는 아더의 다음과 같은 대사_‘제군들은 모두 제군들의 할 일이 있다. 하지만 어떤 행위보다 고귀한 어떤 목적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You have your deeds, but deeds are meaningless unless they serve some higher purpose.’_가 나온다. 아더를 가장 잘 말해주는 대사이다. 즉,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은 평등과 자유처럼 보다 위대한 목적과 대의와 선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기에!


스토리에 관하여

<킹 아더>의 각본은 <글래디에이터>의 데이비드 프란조니가
'루시우스 아토리우스 카스투스'라는 이름을 발견하는
충격으로부터 시작됐다!

<킹 아더>의 스토리는 이미 수년전에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그 수년전이란 바로 시나리오 작가인 데이비드 프란조니가 로마의 지휘관인 루시우스 아토리우스 카스투스_Lucius Artorius Castus_의 이름을 맨 처음 들었던 때였다. “그 무렵 난 프로페셔널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전이었다. 당시 난 시간만 나면 도서관에 가서 아더의 탄생에 관련된 논문을 뒤지곤 했다. 그의 본명을 발견한 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카스투스는 로마의 지도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Marcus Aurelius_가 브리튼에 파견했던 인물이다.” 프란조니의 흥미진진한 설명을 마저 들어보자. “위대한 신화에는 틀림없이 그 신화의 출처가 존재한다.”

보통의 작가들과는 달리 데이비드 프란조니는 영화 제작기간 중 매일같이 촬영 현장에 상주하면서 각 연기자들이 맡은 캐릭터에 관해 그들이 물어보거나, 디자이너들이 고증을 부탁하면 서슴지 않고 달려가서 설명해 주곤 했다. 다음은 그에 대한 제리 브룩하이머의 평이다. “시나리오 작가들은 훌륭한 각본만 넘기면 대체로 그 역할이 끝난다. 그러나 데이비드 프란조니는 그 정도의 참여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참호에도 들어가고 세트에도 나타났다. 그는 이 영화에 개인적인 애정과 관심도 투자한 것이다. 그의 그런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협력정신은 여타의 제작진과 연기자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다.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제작진과 출연진의 의지에 열정적인 불을 지폈다고나 할까!”

프란조니에 대한 안톤 후쿠아 감독의 평가와 칭찬은 더더욱 각별하다. “킹 아더의 전설에 대한 프란조니의 역사적 재해석은 내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작품에 대한 그의 헌신에도 나는 크게 감동받았다. 나는 작가도 제작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겅호_gung-ho: 중국어로써 멸사봉공_滅私奉公_의 단체정신 또는 협력정신_는 정말 남달랐으며, 그의 그런 참여는 결국 더 훌륭한 영화가 탄생되도록 하는데 기여했다.”

다음은 제작총지휘를 담당한 마이크 스탠슨이 데이비드 프란조니에 대해 했던 평이다. “데이비드 프란조니는 천재적인 작가인 동시에 역사학자다. 우리는 1년 가까이 다양한 아이디어에 관해 이야기를 해왔었는데, 한번은 그가 불쑥 나타나더니 킹 아더 신화에 가려진 실화에 흥미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 순간 우린 눈이 번쩍 뜨였었다.”

차드 오만도 제작총지휘자로 참여했는데, 프란조니에 대한 그의 평도 들어보자. “데이비드 프란조니와 일하는 것은 마치 ‘꿈의 실현’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연구가이며, 뛰어난 재능의 작가인 동시에 자기의 귀한 시간들을 아낌없이 나눠주었으며, 어떤 질문이나 의견에 대해서도 자상하고 상세하게 대답해주었다. 그의 놀라운 각본 덕분에 제작이 굉장히 순조로웠다.”



로마군에 흡수된 최강의 군인-사마시아 전사!
그들의 사령관인 로마와 브리튼 혈통의 장교-아더!
적이었다가 그들과 동맹관계를 맺는 브리튼의 토착민 전사-워드족!
로마와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 북방의 야만적 침략세력-색슨족!
이제, 가장 잔혹하고 격렬했던 전투의 기록이 스크린에 부활한다!

프란조니는 다음과 같이 스토리의 아웃라인을 잡았다. 즉, 지금의 러시아에 해당하는 동유럽에는 로마제국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사마시아 전사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서기 175년, 현재의 비엔나 지역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치명적인 패배를 당하던 시기까지 로마제국의 변방에서 살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사마시아 전사들 중 생존자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즉, 로마를 위해 싸우든가 처형당하든가 택일하라는 것이었다. 사마시아 전사들은 로마에 충성을 맹세했으며, 로마는 그들을 로마의 군대에 편입시켰다. 그 후 한 군대는 이집트에, 또 한 군대는 브리튼에 배치됐다.

이들 노련한 기마병 전사들은 수년 동안 로마의 전진기지를 순찰하며 지켰다. 그들의 자손들은 평화를 보장받는 대신 대대손손 대를 이어서 로마를 위해 군복무를 했다. 5세기 경 로마제국의 영광은 급격하게 시들기 시작했으며 야만족들이 제국의 변방을 호시탐탐 노리기 시작했다. 그 무렵 색슨족들은 동쪽과 북쪽에서 침략을 준비했다. 사마시아 기마병들의 사령관은 로마와 브리튼의 혈통을 반반씩 물려받은 루시우스 아토리우스 카스투스였다. 그는 하드리안 성을 함락할 목적으로 남하하는 색슨족에 맞서서 브리튼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로마 교황으로부터 부여받았다.

카스투스의 부하들인 랜슬럿, 가웨인, 갈라하드, 보르스, 트리스탄, 그리고 다고넷은 거칠고 무자비했는데, 브리튼의 원주민이면서 신비로운 주술사이자 게릴라 전투의 지도자였던 멀린이 이끄는 워드_Woads_부족들한테 커다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데이비드 프란조니는 혼란기의 상황에 처한 아더와 전투로 단련된 사마시아의 기마병 전사들에게 마지막 임무를 부여한다는 설정을 결합하였다. 색슨족의 침략이 백척간두에 닥친 브리튼 북쪽으로 달려가서 로마의 고관_마리우스_가족을 구해오라는 그 마지막 임무는 그들이 15년 동안의 임무를 마치고 로마를 비롯한 각자의 고향에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 바로 그 날에 하달된다. 아더는 군대를 이끌고 워드의 영토를 가로질러서 적진 깊숙이 들어간다. 로마의 고관 귀족인 마리우스와 로마교황의 후계자로도 주목받고 있는 알렉토_Alecto_를 구출한 아더는 하드리안 성이 있는 남쪽으로 탈출한다. 사악한 야심가인 마리우스의 지하에서 구출된 워드족의 여인인 기네비어와 마리우스가 부려먹던 농노들은 아더의 지휘와 인솔을 받으며 남하한다. 하드리안 성에 도착한 일행들은 색슨족의 침략이 턱 앞까지 다가왔음을 감지한다. 아더와 기사들은 자유의 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학살직전의 위기에 처한 백성들을 구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되는 기로에 놓인다.

결국 아더, 원탁의 기사들, 워드족의 지도자인 멀린이 이끄는 워드 족은 일치단결하여 브리튼의 역사를 바꾸고 미래를 결정지을 중대한 전투에 돌입한다. 이 전투에서 아더는 자신의 진정한 운명을 깨닫게 되며, 이 전투의 영웅담은 수많은 전설이 되어 후세의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아더와 기네비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세계적 캐릭터들을 캐스팅하기 위해
제작진은 세계를 무대로 연기파 배우들의 발굴 작업에 착수했다!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와 안톤 후쿠아 감독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역사적 배경에 부합하는 출연진을 캐스팅하기 위해 세계를 무대로 발굴 작업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영화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위해 최대한 사실적인 느낌을 담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제리 브룩하이머의 설명이다. “아일랜드, 영국,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가장 출중한 연기자들을 발굴하기 위해 제리 브룩하이머와 안톤 후쿠아는 베테랑 캐스팅 디렉터인 론나 크레스_<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리멤버 타이탄>의 캐스팅 담당_를 영입했다.”

다음은 감독의 설명이다. “나는 스크린에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담고 싶었다. 나의 그런 의지는 연기자들의 이미지에도 적용됐다. 나는 이 영화의 주제나 소재에 관해 지식적으로 충분히 무장된 유럽 배우를 선발하고 싶었다. <킹 아더>는 그들의 스토리이자 브리튼과 로마의 혈통이 반반씩 섞인 영웅의 스토리다. ‘진짜의 이미지’를 담아낼 수 있는 연기파 배우들을 밀쳐두고 유명세만 높은 스타배우들이 킹 아더의 연기를 하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속상한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후쿠아 감독의 설명을 계속 들어보자. “만약에 스타배우가 아더 역을 맡는다면 관객들은 아더의 캐릭터에서 그 배우의 고정화된 이미지만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덜 알려진 배우한테서 관객들은 그들이 어떤 이미지의 연기를 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극중 캐릭터의 모습에만 몰입할 수 있다. 난 그걸 노렸다. 그들에게선 훨씬 더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사마시아 전사들의 대장인 아더의 배역에는 영국출신 연기자인 클라이브 오웬이 발탁됐다. “나는 수년 전 _노름판 진행자_에서 클라이브 오웬을 발견하고는 그가 뛰어난 재능의 연기자라고 생각했다.” 제리 브룩하이머의 회상이다. “난 언제나 그에게 어울릴 역할로 함께 일하게 되기를 원했는데, 너무나 운이 좋게도 이번 프로젝트가 적임자를 만난 것이다. 그는 킹 아더에 부합하는 카리스마와 위엄, 권위, 외모, 그리고 인간미를 갖추고 있다. ”

영국출신 클라이브 오웬은 강격한 카리스마, 위엄, 인간미, 내적고뇌, 그리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진 연기파 배우!

후쿠아 감독의 평가도 들어보자. “클라이브 오웬에게서는 강렬함, 내적고뇌, 그리고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느껴진다. 이 모든 건 아더 역에 필수적인 것들이다. 나는 주인공 연기자에게서 외적 이미지와 파워, 기품, 그리고 능력을 기대했는데 클라이브 오웬을 처음 만난 이후로 그는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 작품은 거대한 시대극 스케일과 드라마가 강한 스토리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클라이브 오웬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지만 모호한 성격을 가진 아더의 캐릭터에 그는 더 매력을 느꼈다. “이 영화는 아더가 어떻게 변화해 가며, 그가 자신들의 백성에게 어떻게 지도자로 추앙받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험난한 여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오웬의 설명이다. “바꿔 말하자면 그 여정을 통해 아더 스스로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된다. 나는 이 영화의 끝은 곧 신화와 전설이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거대한 전투가 벌어지는데, 이 전투는 아더가 일국의 지도자로 거듭나는 시점인 동시에 왕이 된 후 그에 얽힌 스토리의 시작을 알리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아더의 캐릭터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서 고뇌하는 인물인 동시에 백성들의 지도자로 거듭나는 인물이다.”

“나는 아더가 두 가지 혈통을 갖고 있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의 피를 받은 로마인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하지만 로마가 브리튼에서 제국의 역할을 포기하고 빠져나가려고 결정한 순간부터는 자신이 어머니의 혈통인 브리튼에 더 끌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의 믿음과 신념이 도전을 받는 동시에 그 자신도 변하게 되는 시점이다.”



브리튼을 되찾기 위해 워드족을 이끌고 검과 활로 무장한 여성전사:
<캐리비안의 해적>의 키라 나이틀리가 시대가 낳은 필연적 인물을 연기하다

영국출신 연기자인 키라 나이틀리는_<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슈팅 라이크 베컴>에 출연_기네비어 역에 발탁됐다. 사납고, 완강한 브리튼의 혈통을 상징하는 기네비어는 당시의 시대가 낳을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인물이다. 제리 브룩하이머는 주저하지 않고 그녀에게 여전사의 배역을 제의했다.

다음은 제작자의 설명이다. “키라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신선한 이미지를 보여준 빼어난 미모의 연기자다. 그 작품에서 키라는 정말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다. <캐리비안의 해적>은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안겨줬으며, 그녀를 다시 캐스팅하고 싶게 만들었다." 기네비어는 미모와 책략을 겸비한 캐릭터로서 자신의 백성들이 자유를 쟁취할 수만 있다면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진 캐릭터인데, 제리 브룩하이머의 시각에서 볼 때 키라 나이틀리는 완벽한 캐스팅이었다.

“키라는 놀라운 연기자다.” 안톤 후쿠아 감독의 평이다. “그녀는 스크린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제리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그녀와 일해 봤기 때문에 나에게 그녀를 자신있게 추천했다. 실제로 그녀를 만나봤을 때 키라는 자신만만했고 재미있는 인물이었다. 정말 멋진 여성이다. 일단 연기를 시작하면 젊고 씩씩하고 활기 넘치는 키라가 놀라운 여성으로 변신한 것을 보고 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게다가 그녀는 강하고 다부졌고, 스턴트 연기의 대부분을 직접 해냈다. 매일같이 몸만들기를 했으며, 삐거나 멍이 드는 등 부상을 입을 때에도 불평하지 않았다. 실은 그녀보다 내가 더 걱정이 됐고 그럴 때마다 의사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물으면 그녀는 ‘괜찮아요, 이 정도로 뭘요!’라고 말하곤 촬영세트 속으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다. 그럴 때마다 난 ‘와-우!’ 소리를 연발했다.”

키라 나이틀리는 기네비어가 아더를 능수능란하게 조종하고 다루는 기술만큼이나 활, 목을 졸라서 교살시키는 용도로 만든 밧줄 등을 잘 다룬다. 다음은 키라의 설명이다. “기네비어는 요조숙녀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기네비어는 여러 남자들한테 옮겨 다니는, 우리가 점잖은 화제에 별로 올릴만한 게 없는 그런 여성이었다. 우리 영화의 기네비어는 훨씬 더 강하다. 그녀는 같은 부족의 남자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싸울 만큼 도전적이고 전투적인 전사이며, 싸워야할 분명한 목적을 가진 여성이다. 그녀의 그런 면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다. 모계질서를 따른 당시의 여자들은 남자와 똑같은 위치에서 전투에 참여했다. 그런 면을 다룬 영화는 우리 영화 이전에 없었다.”

“그녀는 연기자인 나 자신마저도 두렵게 만드는 캐릭터다. 사실 난 기네비어가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길 바란다. 우리는 그녀의 부드러운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극중 기네비어는 싸워야할 대의명분을 스스로 인식하면 자신의 부드러운 면을 과감하게 누르고 무서운 전사가 된다.” 키라 나이틀리는 클라이브 오웬을 비롯한 일곱 기사들에 대한 소감도 다음과 같이 솔직히 털어놓았다. “갑옷과 투구를 갖춰 입은 일곱 명의 멋쟁이들이 내 곁에 포진해있는데, 어떤 소녀가 딴 데 한눈을 팔겠어요?”


아더의 오른팔 기사들


랜슬럿, 트리스탄, 보르스, 가웨인, 다고넷, 갈라하드!
아더의 오른팔들이 제리 브룩하이머의 <킹 아더>로 새롭게 부활하다!

웨일즈 출신의 연기자인 이오안 그루푸드는 아더의 오른팔이자 무서운 킬러인 랜슬럿 역할을 맡았다. “랜슬럿은 킬러로 훈련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루퍼드의 설명이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충성심이 투철하며, 열정적이면서 도도하고 자만심이 강하다. 게다가 그는 쌍검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하지만 난 그렇게 용감무쌍하고 자신만만한 랜슬럿도 솔직할 때가 있고, 두려움을 보이기도 하며, 마지막 임무를 완수한 뒤 색슨족들이 몰려올 시기에 자유롭게 고향에 돌아가는 길과 충성을 다 바쳐 아더와 싸우는 길 사이에서 심각하게 갈등하는 인간적인 면도 갖고 있다고 믿는다. 결국 랜슬럿은 아더에 대한 사랑 때문에 아더가 혼자만이라도 남아서 브리튼의 백성들을 지켜주겠다고 결심했을 때 아더와 손을 잡지 않는가!”

“랜슬럿은 아더의 기사들 중에서 최고의 기사다.” 오웬의 설명이다. “랜슬럿은 다른 어떤 기사보다 아더와 더 가깝다. 아더가 세상이 나아가야 할 이상향을 꿈꾸며 더 큰 대의를 생각하곤 할 때도 랜슬럿은 항상 아더에게 의문을 던지면서 현실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기사들한테 마지막 임무가 주어졌을 때도 랜슬럿은 아더에게 그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는 게 과연 옳은지를 따지듯이 묻는다. 그러나 결국엔 아더를 따른다.”

레이 윈스턴은 체격이 큰 격투기 선수를 연상하게 하는 보르스 역을 맡았다. 강인한 싸움꾼이기도 하지만 기사들 중 가장 연장자이기 때문에 짐을 꾸려서 떠나는 일에도 누구보다 날렵한 명수다. “그의 주특기는 육탄전이다.” 윈스턴의 설명이다. “그는 도끼와 맨주먹으로 싸운다. 어떤 싸움이든 먼저 나서서 싸우지만 나이 때문에 힘에 부친다는 것도 스스로 깨닫는다. 그도 나처럼 으스대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만큼 마음을 다치게 되는 경험도 더 많이 하게 된다. 자식을 많이 둔 보르스는 자기가 세운 마을의 군주가 되는 게 꿈이다.”

제작진은 갈라하드 배역에 휴 댄시, 가웨인 배역에 <네드 켈리>의 조엘 에드거튼, 트리스탄 배역에 매즈 미켈슨, 다고넷 배역에 레이 스티븐슨을 각각 캐스팅했다. 안톤 후쿠아는 그들이 모두 훌륭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라고 평가했다. 제리 브룩하이머와 안톤 후쿠아는 이들 기사들이 스토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그들은 아더는 물론 동지들을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아깝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의 전문적인 살인병기다. 각각의 기사들은 각자의 스토리를 갖고 있지만 그들이 뭉쳤다하면 누구도 그들을 막지 못한다. “5세기 당시 기사들은 경찰병력에 가장 가까웠다.” 안톤 후쿠아의 설명이다. “이들 기사는 거친 사나이들이었으며, 그들이 어떻게 돌변할지 예측이 불가능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변에서 언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었으므로 항상 무장한 상태로 돌아다녔다.”

뉴캐슬 태생인 레이 스티븐슨은 상대로 하여금 감히 함부로 덤빌 엄두를 못 내게 할만큼 부리부리한 이미지를 가진 다고넷의 배역에 캐스팅됐다. 그는 명예를 존중하는 전통적인 기사다. 다음은 레이 스티븐슨의 설명이다. “다고넷은 아더가 그들의 미래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도자로서의 아더가 없으면 자신들은 한낱 용병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다고넷은 매사를 조용하게 관찰하는 캐릭터다. 그는 장소와 시간 감각이 뛰어나다. 그는 자신들이 역사의 중요한 주춧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인 다고넷은 무기를 잘 다루지만 여차하면 벗은 재킷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덴마크 출신의 매즈 미켈슨은 신비로우면서도 무시무시한 트리스탄의 배역을 맡았다. “트리스탄은 외로운 늑대와 같다.” 미켈슨의 설명이다. “그는 정찰이 전문이다. 그래서 그는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낼 줄 안다. 정찰용 매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활약한다. 그는 어떤 신도 믿지 않는다. 재미삼아 죽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부 동료들은 그를 불편하게 느끼기도 한다. 정신적으로도 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여러분이 20여 년 동안 전투하며 사람을 죽여 봤다면 여러분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하여간 그는 동지를 챙기는 일과 싸움을 택하는 일을 놓고 선택하라면 후자를 먼저 택하는 캐릭터다.”

갈라하드는 나이가 가장 어리며 그러다보니 고향에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기사다. 그가 이 집단에 대해 갖고 있는 가족애 같은 감정은 다른 이들과 달랐고, 동지들 사이의 소속감도 약한 편이다. 보르스는 브리튼에서 가족까지 거느리면서 전투를 하러 다니지만, 갈라하드는 타지에서 가족을 갖는다는 것은 곧 고향에 돌아갈 수 있는 꿈을 배신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캐릭터다. 가웨인은 애초에 고향에 돌아가는 꿈 따윈 갖고 있지 않다. 조엘 에드거스턴이 파악하고 있듯이 가웨인의 고향은 곧 전장이다. 그는 전장에 나가면 적을 몇 명 죽이는가에만 관심을 가진다. 최대한 많이 죽이려고 노력하며 설사 싸우다가 자신이 죽는다 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캐릭터다. 다음은 에드거스톤의 설명이다. “내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가웨인에겐 두 명의 형제가 있었고 그 둘은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러므로 가웨인이 죽이는 적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형제들에 대한 보상의 뜻을 가지며, 자신이 전장에서 죽으면 먼저 간 형제들에게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가웨인은 항상 죽음의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산다.”



악역 캐릭터들

마키아벨리가 태어난 해로부터 1천년 전의 시대!
야만과 잔혹함이 세상을 뒤덮으려 할 때 그 중심에 색슨족이 존재했다!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연기자인 스텔란 스카스고드가_<인썸니아>,<굿 윌 헌팅>에 출연_잔혹한 세드릭의 배역을 맡았다. 세드릭은 침략자인 색슨족들의 우두머리다. “안톤 후쿠아는 영상적으로는 물론 연기자들과 함께 캐릭터를 계발하는 측면에서도 대단한 실력을 가진 감독이다.” 스카스고드의 감독에 대한 평이다. 세드릭은 결과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불사하는 악당이다. 필요하다면 자기의 아들도 죽여 버리겠다고 벼를 만큼! “세드릭은 두뇌가 비상한 인물이다. 동시에 그는 독단적이고 사악하다.” 스카스고드의 캐릭터 설명이다. “하지만 암흑시대에 만약 누군가가 파워를 갖고 있고 생존을 하려면 잔혹할 수밖에 없었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가 태어난 해로부터 1천년 전의 시대였으니까! 한 마디로 무척 험악한 세상이었다.”

<디 아워스>에 출연했던 스티븐 딜란은 멀린의 배역에 캐스팅됐다. 워드족_Woads_을 이끄는 신비로운 인물이며 결정적인 순간에 아더와 그의 기사들과 합류하여 공동의 적에 맞서 싸운다. 극중에서 멀린은 게릴라전술의 대가이다. 부하들이 어떤 대상이든 적을 상대로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하고 나면 안개처럼 고요하게 숲속으로 숨어버리도록 훈련시킨다.


미술 디자인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5세기 암흑시대의 살벌한 분위기를
고증에 따라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해내는 것!

킹 아더의 스토리를 만들면서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 안톤 후쿠아 감독,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인 데이비드 프란조니에게 필수적인 과업은 시대와 장소 및 의상 등 모든 요소들이 사실에 입각해야 된다는 점이었다. 그 점에 역점을 두고 로케이션 선정 작업이 착수됐는데, 제작진은 아일랜드의 킬다레와 위클로우 지방이 5세기의 브리튼에 가장 가깝다는 판정을 내렸다. 역사적 장소를 재현하기 위해 약간의 CGI 작업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의상 또한 그 시대에 맞도록 고증작업을 마쳤다.

“우리는 항상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도록 최대한으로 노력했다.” 제리 브룩하이머의 설명이다. “바돈 힐 전투를 재현하는 작업은 우리가 아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똑같이 묘사할 필요가 있었다. 시대 배경이 암흑시대이기 때문에 남아있는 기록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소장하고 있는 자료와 세트 디자이너, 촬영감독, 스턴트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아서 실제 일어난 사건의 느낌이 전달될 수 있도록 촬영했다.”

각본에 묘사된 <킹 아더>의 사실적 내용들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한 미술디자인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사실주의적 표현이었다. 즉, 사실주의 기법에 입각해서 5세기 브리튼의 거친 공간적 배경이 세트에 옮겨졌다. 가장 중요한 미술 디자인 작업은 하드리안 성을 축성하는 것이었다. 이 성은 동서로 73마일이나 뻗어있는데, 당시엔 북쪽의 야만인 침략세력들과 로마가 지배하는 남쪽의 브리튼 영토가 이 성으로 나뉘어 있었다.

지금까지 아일랜드에서 만들어진 세트 가운데서 가장 대규모인 이 성의 축성을 준비하기 위해 안톤 후쿠아 감독과 미술 디자이너인 댄 웨일은 실존하는 하드리안 성을 답사하기 위해 영국으로 날아갔다. 단, 두 사람은 이 성을 위해 CGI의 도움은 최소한으로 받기로 했다. <킹 아더>에서 무려 50%가 넘게 등장하는 이 성은 진짜 같아야만 했다.

감독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젠 누구나가 CGI의 도움에 기댄다. 우리는 연기자들이 세트 안에 들어왔을 때 현실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성의 재현을 위해 최선을 다 했다. 나는 사람들이 성 위에 올라갈 수 있어야 하며, 성 위에서 카메라를 돌릴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드리안 성은 카운티 킬다레의 밸리모어 유스테이스에 재현됐다. 실물 사이즈로 쌓은 하드리안 성 세트는 길이가 약 1km_950m_에 이르고, 성의 가장 높은 부분은 약 10m_35피트_에 달했다. 이 성은 이중으로 된 구조물이며 성의 맨 윗부분의 폭은 병사들이 순찰을 돌 수 있도록 3m의 폭으로 되어있다. 이 성의 곳곳엔 성탑이 갖추어져 있으며, 거대한 군사용 요새도 갖추어져 있다. 성의 안에선 로마의 군인들과 농노 등 브리튼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거대한 성문은 폭이 6m였고, 높이는 4.8m에 달했다.

축성 공사가 한창이었을 때 참여한 기술자들의 최대인원은 자그마치 300명이었다. 2003년 7월 중순에 이르러서야 성과 요새가 완성됐고 촬영도 시작됐다. 다양한 디자인의 종합본인 요새의 1차적인 기능은 군사적 병영이지만 기간시설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미술 디자인팀은 요새 내부에 상점, 숙박업소, 시장판의 가게, 그리고 숙소도 재현해야 했다.

세트 디자인의 모든 방면에 주도면밀한 관심이 기울여졌다. 하드리안 성의 세트 디자인과 더불어 두 개의 원주민 마을이 글렌말루어, 카운티 위클로우에 세워졌다. 하나는 산꼭대기에, 마리우스가 사는 곳인 나머지 마을은 계곡에 만들었다. 마을의 가옥을 재현하기 위해 진짜 억새가 사용됐으며, 농부들이 사는 주거지는 돌을 쌓아서 만들었다. 미술 감독인 댄 웨일에 따르면 그 시대에 사용됐던 재료들과 똑같은 재료가 사용됐다고 한다.

기사들의 회의실 중앙부에는 원탁이 있다. 동등과 평등의 상징인 이 원탁은 직경이 약 8.5m이며 중앙에는 화로가 놓일 공간이 마련됐다. 원탁의 둘레에는 40개의 좌석이 놓이는데, 의자의 표면은 동판으로 덮여있으며 정교한 무늬도 새겨져있다.


의상 디자인

의상 디자이너인 페니 로즈_<캐리비안의 해적>에 참여_가 <킹 아더>를 위해 직면한 도전은 의상을 통한 암흑시대의 재현이었다. 5세기 브리튼의 의상에 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료가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시각적인 도움을 줄 자료가 희박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의상 디자이너의 설명이다. “우리는 유명한 덴마크의 책_PV Glob가 쓴 The Bog People_을 참고했는데 서기 4백년으로 거슬러가는 덴마크의 의상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우리가 브리튼의 의상을 창작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로즈는 세 명의 연구원을 영입했다. 그들은 6주일 동안 브리튼 박물관과 요크셔에 있는 박물관인 서튼 하우스를 방문해서 필요한 모든 자료를 뒤졌다. 로즈는 안톤 후쿠아 감독과 작가 데이비드 프란조니와도 긴밀하게 작업했다. 작가는 로즈에게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있는 한 교수를 만나보라고 권했다. 그 교수는 5세기 이전의 부족에 관한 전문가다. 이와 같은 사전작업의 도움을 받고서 자신감이 생긴 로즈와 의상 디자인 팀은 작업에 착수했다. 그들은 또한 다양한 의상과 모피를 구하기 위해 이탈리아와 스페인에도 갔다.

로즈는 의상을 4가지로 나누었다. 사마시아 사람들의 의상, 로마인의 의상, 색슨족의 의상, 그리고 워드족의 의상이 그것이다. “나는 그들의 의상이 확연하게 구분될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세운 다음 작업에 착수했다.” 로즈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서 모피를 구입할 때는 어떤 그룹이 어떤 모피를 입을 것인가를 미리 결정했으며, 다른 그룹의 사람은 그 모피를 입지 못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곰의 모피, 수퇘지의 모피, 그리고 늑대의 모피는 색슨 족에게 입혔으며, 워드 족에게는 훨씬 작고 눈에 덜 띄는 모피를 입혔다.”

이 영화를 위해 핵심적인 그룹은 사마시아 사람들과 아더, 그리고 그의 기사들이다. 로즈의 표현을 빌면 그들은 그녀에게 5세기의 록 스타처럼 비친다. 기사들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의상을 갖춘다. 일상생활의 의상과 전투의상이 그것이다. 어떤 의상을 갖추든 그들에게선 로마인과 동유럽에 고향을 둔 사람들의 복합적인 이미지가 나타나야만 했다. 일곱 명의 기사들의 이미지는 지금의 록 스타와 같아서 섹시하고 강하며 다이내믹해야만 했다. 각각의 기사들의 연기와 외모에서는 고유한 개성이 표출돼야 했다.

킹 아더의 의상 디자인은 특히 난제였다. 다음은 로즈의 술회다. “아더와 기네비어의 의상은 항상 중세분위기로 묘사돼왔었다. 나는 아더와 기네비어의 의상에서 중세의 시각을 벗겨내야만 했다. 의상과 관련해서 역사적 고증이 가장 잘 된 작품은 <브레이브하트>다. 하지만 나는 그 영화의 의상조차 충분히 지저분했는지는 의문이다. 그 시대에는 왕이 됐든 거지가 됐든 의상이 다양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여섯 벌의 의상으로 수년 동안 돌려가면서 입었다.”

로즈는 연기자들과 밀접하게 작업하면서 어떤 점들이 불편한지를 꼼꼼하게 챙겼다. 아더 역의 클라이브 오웬은 딱 한 가지 요청을 했다. 즉, 아더가 검정색 가죽바지를 입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로즈는 그렇게 했다. 아더의 의상은 역사적 배경에 비추어서 결정됐다. 다음은 로즈의 추론이다. “아더는 로마인 출신의 아버지가 입었던 의상에 대한 기억이 강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더의 분위기에는 로마인의 분위기를 접목했다. 그의 갑옷과 투구는 가죽과 철 장식을 써서 만들었다. 그의 망토는 적포도주 색깔로 만들었는데 그에겐 상징적인 소품이 됐다. 그의 전투용 갑옷과 투구에서는 로마인의 분위기가 대단히 강렬하다.”

랜슬럿과 갈라하드의 의상은 아더의 로마 의상과 일치한다. 반면 보르스와 다고넷은 머리카락이 없을뿐더러 기골이 장대하다. 그래서 로즈는 두 기사들의 의상에는 금속과 같은 거친 장식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남은 두 명의 기사는 트리스탄과 가웨인이다. 둘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다음은 로즈의 설명이다. “트리스탄과 가웨인은 장발이다. 망토도 길며 히피 스타일이다. 두 배역을 맡은 연기자들에게는 5세기의 무시무시한 장발머리 킬러의 이미지를 입혔다. 로즈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키라 나이틀리와 일해 본 경험이 있다. 로즈의 표현을 빌면 그녀는 정말 함께 일하기 편한 연기자다. 둘은 기네비어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 다양한 의상을 준비하기 위해 밀접하게 일했다. 다음은 로즈의 설명이다. “우리는 영화에서 지하 감옥에 갇힌 기네비어를 제일 먼저 만나게 된다. 마리우스의 봉토에서 죄인의 신분으로 갇힌 상태기 때문에 누더기 차림일 수 밖에 없다.

기네비어는 탈출 과정에서는 마리우스의 아내의 의상을 빌려 입게 되며, 그 이후로는 전투의상을 갖춘 기네비어를 만나게 된다. 그것도 전사와 공주의 이미지를 가진! 그녀는 바지를 착용하고 워드족 방식의 갑옷차림을 갖추게 되며, 팔에는 붕대를 치렁치렁 감고 있다. 그녀는 활과 교살용 밧줄을 갖추고 있다. 전투의상임에도 갑옷이나 가슴받이 따위는 갖추고 있지 않다.

로마 군인의 복장에 관해서는 로즈도 고민을 하지 않았다. 사료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역시 로즈의 설명이다. “영화에는 다양한 역할의 로마인이 등장한다. 첫째, 요새를 지키는 군인! 아더가 사는 곳은 추위가 혹독하기 때문에 바지를 입히고 목 보호대를 갖추도록 했다. 둘째, 마리우스의 봉토에 사는 용병! 그들은 용병이고, 로마의 군인이라기 보다는 사병에 가깝기 때문에 로마 군인보다는 요란하게 입히지 않았다. 셋째, 전형적인 로마인! 주교를 수행하는 로마인이 그들인데 전통적인 로마 군인의 의상을 입히면 됐다.

색슨의 분위기는 훨씬 야만스럽고 꾀죄죄했다. 색슨은 덩치가 매우 컸으며, 야수의 얼굴을 닮아있다. 의상 디자인 팀은 그들에게 강한 가죽을 입히고 겹겹으로 엮은 모피를 두르게 했다. 우린 그런 의상을 100벌이나 제작했으며 필요할 때마다 배우들끼리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돌려가며 입게 했다.

색슨과 강한 대조를 보이는 의상은 워드 족의 의상이다. 기습 게릴라 전술에 능하고 순식간에 숲 속으로 숨어버리는 워드 족이기 때문에 그들은 위장술에 능하고 기동성이 뛰어나야만 했다. 그들의 그런 캐릭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로즈는 그들의 몸에 푸른색 보디페인팅을 했으며 매우 단순하면서도 거친 느낌이 드는 의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동굴에 주거하는 부족이나 야만인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차이가 느껴지도록 의상에 신경을 썼다. 숲속에 사는 종족이기 때문에 나무가 주는 이미지도 의상에 반영했다. 그렇지만 결국 주로 가죽을 사용하기로 했다. 우리는 그것을 ‘먹고 입는 방식’, 즉 동물을 죽이고, 잡아 먹은 후 옷까지 해입는 방식이라 불렀다.



5세기의 전투용 무기

전직 해군 SEAL출신이자 국제안보 및 전략관련 조직의
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해리 험프리가 전투무기 고문으로 영입되다!

“<킹 아더>에서 무기를 지니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무기 전문가인 토미 듄의 술회다. “모든 사람이 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기네비어도 온몸에 무기를 갖추었다. <킹 아더>에는 4백명의 색슨족과 150명의 로마 군인, 175명의 워드족이 등장한다. 마을 사람들조차 농기구를 무기로 사용하며 전투에 뛰어든다. 각각의 조직들은 각종 다양한 무기를 써서 그들만의 스타일로 전투를 벌인다. 해리 험프리스는 국제안보와 전략관련 조직의 훈련을 담당하는 전문가다. 그가 <킹 아더>의 특별 군사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전직 해군 SEAL 요원 출신인 그는 제리 브룩하이머의 <블랙 호크 다운>과 안톤 후쿠아 감독의 <태양의 눈물>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전투 병기는 세월을 거쳐 오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현대의 전투병기들의 컨셉은 5세기 브리튼의 그것들과 똑같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기의 모양뿐, 전투의 전술은 기본적으로 똑같다. 험프리스는 <킹 아더>에서 각 조직의 전투기술을 연구하는 리서치 팀에도 참여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색슨은 대단히 잘 훈련받은 종족이다. 전투방식 또한 대단히 게르만적이다. 그들은 상당히 잘 짜여진 대형으로 행군했으나 로마 군대보다 정교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슨은 전술이 뛰어났다. 그들은 종종 방패로 가린 채 방어벽을 쌓은 다음 그 뒤에서 싸웠으며, 적이 자신들에게 접근해오도록 유인했다. 그와 같은 방어벽 뒤에서 전투를 할 수 있는 한 색슨은 공격해오는 적을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 소모전의 전술인 것이다.

사마시아 전사들은 일종의 군사적 변종 야수들이다. 로마의 군대에 흡수된 사마시아 전사들은 기존의 동유럽방식 전술에 로마군대의 전술을 취합했다. 로마의 군인은 게릴라 군이 아니었다. 브리튼에 주둔한 사마시아 출신의 기사들은 로마의 장교들에게 지휘를 받았는데, 로마식 전술을 요구받았지만 자신들만의 전투기술을 보존하면서 병행하기도 했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특수군대로서 기능했다. 다음은 험프리스의 설명이다. “안톤 후쿠아 감독의 해석에 따르면 그들은 SEAL 조직과 같았다. 우리는 그들의 정신과 투혼을 담아내는 게 필수라고 믿었다.” 험프리스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전사로서의 정신은 시대가 달라도 매한가지이다.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이 바로 진정한 전사일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옳지 않다고 여기는 것에 대항해 싸우는 것이다.” 네 개의 조직 즉, 사마시아 전사와 로마인, 색슨족, 그리고 워드족 토착민들에게 각각의 캐릭터를 반영하여 옷을 입혀야만 했다. 무기 배정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소속된 군사 조직의 특성에 맞추어 무기를 제작했는데, 사마시아 기사들의 무기는 개개인에 따라 디자인이 각기 달랐기 때문에 신경을 더 써야만 했다. 다음은 토미 듄의 설명이다. “사마시아 기사들은 특수군대 조직과 같다. 나머지는 표준적인 군대 조직과 같다.”

로마 군인들의 무기는 사료가 방대하기 때문에 가이드라인만 따르면 됐다. 그의 설명이다. “우리는 로마 군대의 방패와 창, 검, 그리고 투구들의 복장에 대해서는 이미 친숙하다. 전통적인 전투 병력의 장비들과 매우 흡사하다. 한편 사마시아 기사들은 각자의 무기들을 따로 운반하고 다녔는데 무기가 무려 60점에 달하기도 했다.” 토미의 설명을 계속 들어보자. “우리는 각각의 기사들한테 어울리는 무기를 제작하고 배정했다. 긴 검, 단검, 도끼, 대형 도끼, 방패, 창 등이 그것이다. 기사들의 특수한 무기들은 그들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다. 즉, 로마의 영향, 동유럽의 특성, 켈트족의 특성 등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영화에서 각 기사들은 각자마다 여러 종류의 무기를 소지하고 있다. 여분의 무기는 마차나 말에 싣고 다니기도 한다.“

기사들의 무기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것은 엑스칼리버 검이다. 이 검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검이기도 하다. 토미와 무기 제작자들은 안톤 후쿠아 감독 및 아더 전문가인 존 매튜스의 도움을 받아서 엑스칼리버 검의 디자인과 장식을 위해 수 주일간 연구했다. 아더의 검인 엑스칼리버는 켈트로부터 받은 영향에 기초하여 제작된 그림을 참고해서 디자인했다. 검의 날에는 문양이 새겨져있으며, 고대의 켈트 글자인 오검문자_Ogham_가 새겨져있는데 그 의미는 ‘대지의 수호자’이다. 그것은 곧 ‘절대 검’인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 ‘절대 검’에 신화나 전설의 설정과는 달리 특수한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더 역의 클라이브 오웬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더에게 이 검은 마법의 검이 아니다. 비록 아더가 타고난 전사이긴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아더가 엑스칼리버 검을 사용하는 그만의 전술적 방식이다. 이 영화는 전설이나 신화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엑스칼리버 검은 그가 선택하고 신뢰한 검으로써 아더 자신이 검에 쏟는 신뢰와 의지가 곧 검의 파워로 승화된 것이다.”

아더의 오른팔인 랜슬럿은 등에 두 개의 검을 꽂고 다니다가 전투가 필요한 경우에는 어깨 너머로 손을 뻗어서 뽑은 다음 전투에 임한다. 랜슬럿은 양손으로 두 개의 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무사다. 기사들 가운데서 가장 특이한 방법으로 싸우는 자는 트리스탄이다. 트리스탄은 한 가지 측면에서 아주 독창적이다. 그는 동양 검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데, 동양의 검처럼 날이 휜 검을 사용한다. 가슴에 꽂고 다니는 단검은 투척용 검이다. 보르스의 전투 스타일은 보르스 역을 맡은 배우의 독창적 아이디어에서 탄생됐다. 다음은 토미의 설명이다. “우리는 보르스 역의 레이 윈스턴이 복싱 선수 출신이라는 점을 중시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뭔가 특별한 무기를 배정하기로 했다. 인도의 구르카_Gurkha_족이 사용한 날이 넓은 단검인 쿠크리_kukri_와 손가락 마디에 끼우는 쇳조각이 박힌 장갑이 그의 무기다. 보르스는 이들 무기로 다른 여러 명의 기사들이 발휘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위협적인 전투실력을 발휘한다. 갈라하드의 주무기는 도끼와 공격용 무기처럼 사용할 수 있는 방패이다. 일반 방패보다는 훨씬 작지만 가장자리에 예리한 칼날이 장착되어있어 상대의 얼굴이나 가슴을 그어버릴 때 최상의 무기다. 가웨인은 작지만 무서운 위력의 도끼를 사용한다. 하지만 그의 무기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철퇴이다. 덩치가 우람한 다고넷의 무기는 날이 넓고 큰 검으로 전투를 할 때 양손으로 잡고 휘두른다. 기네비어와 워드족의 신비로운 지도자인 멀린의 캐릭터는 푸른색 보디페인팅 분장으로 잘 묘사되어있다. 기네비어는 궁술이 뛰어난데 작은 활에서 긴 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의 다양한 활을 다룰 줄 안다. 그녀의 무기는 워드족의 무기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녀는 또한 검과 단검, 그리고 목을 조르는 용도인 교살용 밧줄도 잘 다룬다. 마치 마법이라도 부릴 것 같은 멀린은 다소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전사이며 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즉, 그는 멋진 디자인의 전통적인 검을 사용한다. 제작진은 그가 자신의 특수한 칼집에 넣어서 갖고 다닐 수 있는 검을 제작해줬다. 검에는 켈트의 분위기를 반영한 격자세공을 입혔다. 워드족은 게릴라 전술에 능했는데, 치고 빠지는 전술의 대가들이었다. 그러다보니 복장도 날렵하고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전투용 작은 도끼와 단검, 그리고 길이가 비교적 짧은 검을 사용했다. 물론 궁술에도 뛰어났다.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서 엮은 듯한 복장을 하고 다녔으며 벨트 디자인도 마찬가지였다. 색슨족은 타고난 전투 병기였다. 로마 군인들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색슨의 복장과 무기에 관한 사료는 풍부하다. 그들은 특별한 크기와 형태의 방패를 사용했으며, 8자 모양으로 커다란 도끼를 휘둘렀다. 그들은 무섭도록 잘 단련된 전사들이었다.



기사들의 전투기술 트레이닝

촬영에 들어가기 전, 연기자들은 영국에서 승마기술과 전투기술 및 다양한 무기의 사용법을 익혔다. 두 주 뒤에는 아일랜드의 신병훈련소에 입소해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그런 다음 2003년 6월부터 기본촬영이 시작됐다. 스턴트 코디네이터인 스티브 덴트_<콜드 마운틴>에 참여_는 자신의 훈련소가 있는 런던 외곽의 릭만스워스에서 연기자들의 훈련을 지켜봤다. 그의 평가를 들어보자. “연기자들이 능숙하게 훈련받는 것을 보고 놀랐다. 교육에 대한 습득도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클라이브 오웬은 승마에 초보자였기 때문에 집중 훈련이 요구됐다. 다음은 클라이브 오웬의 회상이다. “난 말을 잠깐씩만 타는 영화는 찍어봤지만 이 영화만큼 집중적으로 말을 타야 하는 작품은 처음이었다. 그는 7주일 동안 매주 5일씩 승마 훈련을 받았다. 아더는 말을 잘 탔던 인물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가 말안장에 올라타고 있을 때나 말을 타고 달릴 때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쉽게 머리 속에 그려볼 것이므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연기자들은 말을 타고 잘 달리기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니었다. 완전군장을 갖춘 상태로 말을 타고 달리면서 전투를 할 수 있는 실력도 갖추어야 했다. 기사들은 언제나 비상출동 상태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든 싸울 태세가 되어있어야만 했다. 안톤 후쿠아 감독은 항상 말이 움직이거나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전투를 벌이는 역동적인 장면을 원했으므로 연기자들은 늘 위험상황에 노출되어있었다. 그러나 리듬감 넘치는 역동적인 액션을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다. 말을 통제하면서 대사를 전달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키라 나이틀리도 릭만스워스에서 승마를 익혔으며 신병훈련소에서도 전투기술을 교육받았다. 다음은 키라 나이틀리의 회상이다. “궁술은 물론이거니와 검술과 복싱 기술도 익혔다. 복싱은 무게중심을 잡는 법을 터득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굉장히 유익했다. 거구의 연기자들이 사방에서 검과 창을 휘두르는 상황에서 무게중심을 잘 잡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복싱 기술에서 익힌 자세와 동작으로 나는 다양한 전투를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우아한 발레 댄서가 아니라 강인한 전사처럼 보여야 했으므로! 키라 나이틀리의 회상이 이어진다. “나는 내 전투 액션연기를 모두 직접 연기했다. 액션 장면에서 남들이 나 대신 연기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자면 얼마나 무료하고 따분하겠는가! 물론 일부 필요한 장면에서는 스턴트맨의 도움을 받았지만 최대한 많은 액션 장면을 직접 하고 싶었고 또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시대극 어드벤처 드라마인 에서 동명의 타이틀 롤을 맡아서 연기했던 적을 제외하면 이오안 그루푸드는 <킹 아더>처럼 강렬한 스케일의 큰 시대극 액션에 출연해본 경험이 없다. 그는 강도 높은 훈련을 좋아했으며, 신병훈련소에서의 트레이닝도 적극적으로 잘 받았다. 그의 회상을 들어보자. “매일 아침 우리는 두 세 시간씩 승마 훈련을 받았고, 점심을 대충 먹고 나면 궁술 훈련과 검술, 그리고 체력단련 훈련을 받았다.”

레이 윈스턴은 <킹 아더>에 출연하기 이전에 이미 <콜드 마운틴>에서 승마를 익힌 적이 있다. 그의 술회를 들어보자. “난 비로소 존 웨인의 걸음걸이가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윈스톤은 다른 연기자들과 달리 신병훈련소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47세의 노령(?!)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술회가 재미있다. “5세기 때 같으면 나 같은 사람은 절대 젊은 사람들처럼 몸을 날렵하게 움직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47세 이전에 죽는 게 다반사였기도 했지만!” 스턴트 코디네이터인 스티브 덴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을 타고 전투를 하는 장면도 촬영할 때 무척 위험했지만 일곱 명의 기사들이 말을 타고 달리면서 들판을 가로지르는 장면은 더더욱 힘들었다. 다섯 대의 카메라가 그들을 따라가면서 일사분란하게 찍어야 했기도 했지만, 말들은 속성상 나란히 달리는 상황이 되면 서로 치열하게 경쟁을 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무척 위험했다. 하지만 놀랍도록 탁월하게 잘 연출됐다.”



전투장면 촬영

최악의 격전이 벌어진 전투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19대의 카메라 동원!
엑스트라 복장을 한 카메라맨들이 전투 장면의 연기자들 속에서
사실감 넘치는 장면들을 찍다!

“어떤 영화보다 큰 도전이 요구되는 작품이다.” 베테랑 촬영감독인 슬라보미르 이지아크_<블랙 호크 다운>에 참여_의 술회다. “<킹 아더>는 액션 영화인 동시에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시대극이며, 의상 또한 중요한 미술적 요소로 작용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액션장면들이 영화의 특성상 매우 중요한데 안톤 후쿠아 감독은 그만의 독창적이면서도 특별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정말 흥미진진한 경험이었다.” 절정부의 전투 장면_바돈 힐 전투: the Battle of Badon Hill_은 감독과 촬영감독의 에너지와 창작적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장면이다. 바돈 힐 전투는 아더가 색슨을 상대로 벌인 12번의 전투 중에서 마지막 전투이자 가장 치열했던 전투다. 색슨은 이 전투에서 맞은 결정적 패배 이후 수년 동안 그 세력이 와해상태에 놓였었다. 유혈이 낭자했던 그 전투의 격렬함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 안톤 후쿠아 감독은 극영화 역사상 가장 잔혹한 장면을 찍기 위해 무려 5주 동안 카메라와 붙어 살았다.

전투장면 촬영 중 어떤 특정 장면의 경우에는 전투장의 온 사방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 장면을 세밀하게 찍기 위해서 19대의 카메라가 동원되기도 했다. 이 모든 다각도의 장면들을 위해 막중한 임무를 담당한 사람은 콘래드 버프인데, 그는 <타이타닉>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경력을 가진 편집자다. 고정된 카메라로도 촬영을 했지만 다수의 카메라 오퍼레이터들이 엑스트라 복장을 한 다음 격렬하고 치열한 전투 때 연기자들에게 근접해서 촬영하기도 했다. 다음은 안톤 후쿠아 감독의 설명이다. “우리는 온 사방 곳곳에 카메라를 배치했다. 카메라가 안보이게 하려고 방패로 위장하기도 하고, 검이나 말 등에도 카메라를 장착했다. 나는 관객들이 실제로 전투장 안에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연출했다. 게다가 시각효과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매우 유기적인 방법으로 치밀하고 심도 깊은 근접 촬영을 원했다. 우리는 틈만 나면 우리만의 독창적인 촬영방법에 관해 의논했다.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린 카메라를 특별 제작하기도 했다. 찍는 동안에는 정말 재미있었지만 혹사당하는 기분에 가까울 정도로 고생스러운 경험이기도 했다.” “액션영화 장르는 두 개의 핵심 어휘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장르다. 즉, 역동적 에너지와 치밀함이 그것이다.” 촬영감독의 설명이다. “<킹 아더>의 경우 보통의 영화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영상에 담아내기 위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카메라를 사용했다. 이들 카메라들은 제각각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으며, 어떤 것들은 대형 스크린에 투사됐을 때 대단히 돋보일 수 있는,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장면들이어서 우린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독창적인 아이디어, 풍부한 느낌, 그리고 영상기법 측면에서도 화려하고 역동적인 장면들이 탄생된 것이다.”



역사적 배경

아더-Arthur_와 그의 시대의 연대기
(* 참고: 모든 연대는 고고학과 기록적 증거에 바탕을 둔 근사치다.)

서기
122 하드리안 성_Hadrian's Wall_축성_築城_개시
175 루시우스 아토리우스 카스투스_Lucius Artorius Castus_가 브리튼에 서 사마시아 군대를 지휘하다.
364 픽트_Picts_와 스코티_Scottie_들이 성을 공격하고
아일랜드 해적들이 서쪽에서 침략해오다.
410 로마군단들_Roman Legions_이 브리튼에서 철군하다.
455 암브로시우스 아울렐리아누스가 브리튼을 이끌다.
470 아더가 색슨을 상대로 브리튼 군대를 지휘하다.
480 마운트 바돈_Mount Badon_전투에서 아더가 색슨족을 궤멸시키다.
518 칼만 전투_Battle of Calman_에서 아더가 죽다.
1170-1191 크레티엔 드 트로이스_Chretien De Troyes_의 "아더의 기사 이야기"_Arthurian Romances_가 등장하다.
1859-1891 알프레드 로드 테니슨이 "왕의 전원시"_The Idylls of the King_를 출판하다.
1938 T.H. 화이트의 "바위 속 검"_The Sword in the Stone_이 출간되다.
1981 존 부어만 감독의 <엑스칼리버>가 개봉되다.
1982 마리온 짐머 브래들리의 "아발론의 안개"_The Mists of Avalon_가 출간되다.
2004 Touchstone Pictures/Jerry Bruckheimer Film의 <킹 아더>가 개 봉되다.


킹 아더와 그의 기사들: 전설_The Legend

대부분의 사람들은 킹 아더와 원탁의 기사들을 떠올리면 로맨틱한 장면들 즉, 중세의 영광스러운 성인 카멜롯을 무대로 번쩍이는 금속 갑옷과 투구로 장식한 남자들과 실크와 견수자로 만든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의 모습을 연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들은 대부분 전설의 소산들이다. 그리고 아더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아울러 그에 관한 모험이야기가 글로 처음 기록된 시대보다 500여 년 전에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당시의 사실적인 현실은 원탁의 기사들의 무용담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킹 아더>는 역사적 기록을 정확하게 기술하기 위해 제작이 착수됐다. 영화는 우릴 5세기의 암흑시대_the Dark Ages_로 안내한다. <킹 아더>는 정교하게 공들여서 지어낸 중세의 마법이야기나 기사이야기들은 과감하게 벗겨냈다. 그 대신에 야만과 전쟁만이 점철됐던 시대, 암흑과 죽음의 운명만이 지배했던 시대, 소수의 영웅들이 로마가 다스리던 브리튼에서 사그라지던 빛을 밝히려고 분투했던 시대, 두 가지 문화 즉, 로마와 브리튼의 후손들이 새로운 왕국을 일으켜 세운 시대에 아더와 그의 부하들이 이룩한 업적에 관해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진짜 이미지만 담아냈다.

새롭게 해석된 이 영화엔 마법 따윈 안나온다. 번쩍이는 갑옷과 투구도 등장하지 않으며 카멜롯도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제리 브룩하이머의 <킹 아더>는 브리튼 섬과는 출신지가 까마득히 먼 곳으로부터 모인 소수의 용맹스러운 전사들이 로마가 지배하던 브리튼의 전투기술에다가 자신들의 고유한 전투기술을 접목시켜서, 새로 등장한 무시무시한 적인 색슨족을 상대로 벌인 사실적인 전투담으로 채워졌다. 그 당시의 색슨족이 누구던가! 바다를 가로질러 넘어와서는 풍요로운 브리튼 땅을 침략해서 로마가 일구어놓은 문화를 짓밟으려고 했던 야만족이 아니던가! 5세기의 암흑시대는 로맨틱한 중세시대의 암흑기와는 매우 다르다. 영화의 무대가 된 그 당시는 유혈의 살육과 전쟁의 시대였으며 사리사욕에 눈먼 지도자들이 서로 왕이 되려고 대적했던 때다. 로마가 브리튼을 점령한지 300년도 더 지난 시점, 로마군단은 호시탐탐 노리는 외부 침략세력들의 위협으로부터 로마제국을 방어하기 위해 철군을 시작하던 때였다. 브리튼엔 대혼란이 닥쳐오고 있었다. 야만스러운 픽트족_Picts_들이 하드리안 성의 북쪽으로부터 공격해왔고, 잔인한 스코트족들은 서쪽에서 바다를 넘어오고 있었고, 색슨족은 남쪽과 동쪽 루트로 브리튼의 본토에 침략을 개시하던 때였다. 로마가 지배하던 브리튼의 백성들에겐 모든 게 캄캄하기만 했던 그 시대였다. 하지만 한 사람, 훗날 킹 아더로 권좌에 오른 영웅이 있었으니 그는 침략자들에게 맞서서 용맹스럽게 일어섰다. 그는 12번의 대전투를 벌였으며, 그가 색슨족에게 입힌 치명타는 그들로 하여금 무려 40년 동안 힘을 못 쓰게 만들었다. 이 때의 전투들은 너무나 격렬하고 치열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잊을 수가 없었다. 영웅과 전투에 관한 이야기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들에는 살이 붙여지고, 되풀이해서 윤색됐는데, 시대마다 세대마다 새로운 버전이 창작되곤 했다. 15세기 경, 실존 아더가 존재했던 시대로부터 1천년이 지나 수백 가지 버전의 이야기가 세상에 돌고 돌았다.

원탁_The Round Table, 엑스칼리버_Excalibur, 멀린의 마법_Merlin's magic, 랜슬럿과 기네비어의 러브스토리, 기사들이 성배_聖杯_를 찾아 떠난 이야기 등은 모두 위대한 시대극들이 만들어지고 순환하면서 탄생된 것들로서 새 버전이 만들어질 때마다 새로운 영웅들이 추가되곤 했다. 킹 아더의 전설은 중세를 거쳐오면서 스토리텔러들한테는 가장 인기있는 주제였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역사연구나 소설, 드라마, 영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다루어지는 주제들 가운데 하나다. 킹 아더의 무용담과 사랑, 인간적 고뇌의 파노라마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끊임없이 우리들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브리튼의 로마인들

로마제국이 브리튼을 지배한 것은 서기 60년부터 410년까지 300년이 넘게 지속됐다. 이 기간 동안 로마군단은 브리튼의 백성들을 정복하고 유화시켰다. 사회의 거의 모든 계층이 동화되고 로마 문화를 받아들여서 개화될 때까지! 그러나 접경지대에서 로마군인들은, 전쟁을 좋아하고 항상 자부심에 차있었던 켈트족을 상대로 끊임없이 게릴라전을 벌여야만 했다. 이들 위험한 적이 북쪽과 서쪽의 언덕과 숲에 잠복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볼 무렵 섬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남쪽에선 로마의 세력이 막강했다. 영화에서 어린 알렉토_Alecto_가 살고 있는 로마의 영지는 곳곳에 자릴 잡고 있었다. 이런 곳엔 땅 밑으로 온수가 흐르고 있었고, 주택엔 유약을 바른 창이 갖추어져 있었으며, 모자이크 바닥으로 되어있었다. 사치스러운 물건들은 토착민들의 탄성을 자아내게도 만들었지만, 그들로 하여금 개화된 정복자들을 경멸하게 만드는 요인도 됐다.

강철 같은 규율과 일사불란한 전투 기술로 유명한 로마군단은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위력을 갖춘 군대였다. 그들의 영향으로 브리튼의 토착민들은 로마군단에 들어가서 정복자들의 막강한 전투기술을 전수받기도 했다. 한편 로마제국의 다른 정복지에 소속됐던 로마군인들 가운데는 지원하여 브리튼에 들어온 자들도 있었으며, 토착민과 결혼하여 로마와 브리튼의 혼혈인종을 만들었다. 특히 사마시아의 부족원들은 브리튼의 생활과 문화에 깊숙이 동화됐다.

로마군단이 완전히 철수하면서 브리튼은 내부적 혼란에 빠져들었고, 영역별 수령들이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유혈전투를 벌일 무렵 로마와 브리튼의 피를 물려받은 수많은 사람들은 그곳에 남기를 원했다. 역시 로마와 브리튼의 피를 물려받은 아토리우스 혹은 아더 같은 사람들은 장군이나 군주로 선발됐다. 아더의 시대가 지나고 난 뒤 몇 년 후에 나온 고대의 시는 아더를 “브리튼의 성을 사수하기 위해 싸운, 두 개의 문화를 가진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더는 바로 로마의 문화, 로마의 통치, 로마의 전술을 물려받은 후계자이자 브리튼이 가장 큰 위기에 처했을 때 새로운 적_색슨족_의 침략에 맞서 브리튼을 지킨 영웅이었다.


사마시아 전사들_the Sarmatians

사마시아 사람들은 오늘날 대략 구소련의 조지아 공화국 영토 출신의 전사 부족들이었다. 그들은 알란 부족_Alans, 이지게트 부족_Izygets, 오시테 부족_Ossytes, 그리고 시치안 부족_Scythians_들의 연합 부족에 속한 놀라운 전사들인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말을 잘 타는 부족이었다. 서기 2세기 경 이들 용맹스러운 부족들은 로마제국을 상대로 격렬한 전투를 치렀다. 마침내 그들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 의해 대패했는데, 광대한 변경에 해외군대를 배치하던 관례에 따라 로마군으로 흡수된 약 3,000명의 사마시아 전사들을 브리튼에 배치했다. 대부분의 사마시아 전사들은 지금의 립체스터_Ribchester_에 소재한 랭커셔 타운에 해당하는 요새에 배치됐으며, 일부는 하드리안 성에 배치됐다. 그들에겐 하드리안 성의 북쪽에 친척이 없었기 때문에 성문을 함부로 열어줄 일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캄보글라나_Camboglanna_요새에 사마시아 부대가 주둔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더가 싸운 최후의 전투인 캄란 전투_Battle at Camlan_의 전투지일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이 곧 카멜롯이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사마시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관습, 신, 그리고 전통을 보존하도록 허락받았는데, 바위에 꽂힌 검을 숭배하는 종교적 의식도 포함됐다. 그들은 전투 때는 루시우스 아토리우스 카스투스라는 이름의 로마 장교의 지휘를 받았다. 사마시아 군대는 바람에 휘날리는 용 모양의 배너, 즉 드라코_Draco_라고 불리는 배너를 들고 싸웠다. 그들이 말을 타고 전장을 향해 돌진할 때면 으르릉대는 소리를 냈다고 전해진다. 후대의 원탁의 기사들처럼 그들 사이의 지위는 모두 동등했다고 전해진다. 사납고 자부심이 투철했던 그들은 브리튼의 토착민들에겐 거의 전설적인 존재로서 비춰졌을 게 분명하며 그런 존재로 오랫동안 기억됐을 것이다. 고고학적 증거와 사실에 따르면 그들의 강력한 출현과 신념, 그리고 전통들은 영웅 아더_일명 아토리우스_의 부풀려진 영웅담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 즉, 용 모양의 깃발을 휘날리며 적들과 싸웠다거나, 바위에서 검을 뽑았다는 것 등의 영웅담 말이다. 엑스칼리버 검도 사마시아 자료에서 근거가 있음직한 출처를 찾아볼 수 있다. 엑스칼리버의 어원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고어에 있는 ‘칼리번’_Caliburn_은 ‘하얀 철’을 의미하는데, 칼리번이란 어휘는 철을 의미하는 ‘칼리버스’_chalybus와 하얀색을 뜻하는 ‘이부루누스’_eburnus로부터 만들어졌다. 매우 흥미롭게도 카우카수스_Caucasus_지역 출신인 사마시아의 대장장이 부족은 칼리베스_Kalybes_라고 불렸다. 이 명칭은 아더가 사용한 검이 바다 건너에서 넘어온 전사들의 언어에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의문의 여지가 없는 이런 역사적 사실들에 입각해볼 때 브리튼과 하드리안 성에 존재했던 사마시아 전사들이 후대에 만들어진 아더의 전설들의 태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다. 또한 루시우스 아토리우스 카스투스_Lucius Artorius Castus_와 그의 사마시아 기사들이 오리지널 아더와 원탁의 기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다. 아더가 색슨족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마부대의 기동성과 기선제압 전술의 공이 컸다. 5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로마군단은 자신들이 로마를 위협하는 야만족 무리들을 무찌르려면 기마부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들은 등자_?子_의 사용법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말을 탄 전사들은 이 등자에 버티고 서서 적의 보병을 상대로 창이나 검을 안정적으로 휘두를 수 있게 됐다. 사마시아 전사들이 그런 전투기술을 로마의 지휘관들에게 전수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루시우스 아토리우스 카스투스와 그의 기사:
실존 아더와 원탁의 기사?

<킹 아더>에서 기사들과 그들의 지휘관은 브리튼에 주둔했던 사마시아 전사들의 후예들이다. 사마시아 전사들의 사령관인 아토리우스 카스투스는 로마인과 브리튼 여자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6 벡스트룩스 군단_VI Vecxtrix Legion_의 사령관인 동시에 사마시아 전사들의 사령관이었던 ‘오리지널’ 루시우스 아토리우스 카스투스의 ‘후예’로도 추정된다. 아니라면 아토리우스를 직책처럼 사용했던 지휘관이었을지도 모른다.

<킹 아더>에 등장하는 기사들의 이름은 모두 아더의 전통적인 영웅담에 등장하는 이름에서 이끌어낸 것들이다. 트리스탄은 드루스탄_Drustan_이라는 영웅으로부터 유래됐는데, 5-6세기 경에 실제로 스코틀랜드에 살았던 실존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보르스와 랜슬럿, 다고넷, 그리고 갈라하드는 중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친숙한 이름들이다. 중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랜슬럿은 기사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기사면서 기네비어와의 운명적 애정관계는 아더의 왕국을 위태롭게 하는 사건이 되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랜슬럿은 여전히 아더의 오른팔이며 위대한 전사이자 기네비어를 흠모하는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더 앞선 시대에 등장했던 이름인 안셀_Aancel_이나 안셀롯_Ancelot_은 사마시안들과 사촌관계였던 알란_Alan_부족으로부터 유래됐을 가능성이 있다.

오리지널 이야기에 따르면 보르스는 랜슬럿과 사촌관계이자 위대한 전사였다. 결혼한 기사로 묘사된 몇 안 되는 기사들 가운데 하나이며, 원탁의 기사들 중에서 매우 충직한 멤버다. 다고넷은 보통 책략가 기질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혀의 놀림보다는 무기를 다루는 날렵함이 더 빠른 인물이었다. 갈라하드 캐릭터는 거룩한 전사로 묘사된 전통적인 캐릭터와 랜슬럿의 아들이라는 캐릭터로 구분된다.



픽트족_Picts_와 워드족_Woads

이 영화에 등장하는 픽트족과 워드족은 처음엔 아토리우스와 기사들에게 두려운 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나중에 그들은 공동의 적인 색슨족에 맞서 싸우는 동맹관계가 된다. 아더는 픽트족의 지도자이자 픽트족들의 미래의 지도자가 되는 기네비어와 결혼한다. 픽트_Pict_또는 픽투스_Pictus_라는 이름은 ‘색칠한 사람’_Painted People_이란 뜻이다. 추측컨대 부족을 상징하는 문양을 문신처럼 몸에 새기는 관습 때문에 그렇게 불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푸른색 대청_大靑: woad_에서 추출한 물감으로 문신을 새겼는데 자기들을 더 무시무시하게 보이게 하기 위함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그들이 워드족으로 묘사되는데, 그 이유는 로마인들이 픽트족에게 모욕감을 주려는 의도에서 그들을 비하하여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픽트족은 브리튼에 존재했던 거주자들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존재였다. 역사가들은 그들이 브리튼 토착민의 후손들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들이 어디에서, 그리고 언제 나타났는지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들은 켈트족보다는 먼저 출현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켈트족보다는 가냘펐으며 머리카락 색깔이나 피부색이 훨씬 검었다. 서기 2세기 이전에 픽트족의 문화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2세기 경 로마인들은 그들을 가리켜 ‘몸을 푸른색으로 색칠한 야만인 전사’라고 불렀다. 로마 황제 하드리안이 하드리안 성을 쌓은 1차적인 이유도 그들을 브리튼에서 방어하기 위함이었다.

픽트족은 9세기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들은 신비로운 존재로 역사 속에 나타났던 것처럼 역사의 페이지에서 사라질 때도 그렇게 신비롭게 사라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왕들의 이름을 남겨놓았는데, 그들의 명단으로부터 사라진 픽트족의 언어가 극소수나마 재구성될 수 있었다. 또한 부족의 상징적인 문양이 담긴, 의미를 파악하기가 힘든 몇 가지 조각들도 재구성할 수 있었다. 이것들은 오늘날 스코틀랜드 전역의 바위들에 새겨져있는 형태로 발견되는데, 이를 참고로 이 영화에서는 그 문양을 픽트족의 몸에 새겼다. 그들의 외모가 브리튼의 나머지 원주민들과 다른 이유때문에 그들이 브리튼에 주둔한 사마리아 전사들의 후손이라고 풀이하는 이론도 있다.


멀린과 기네비어

멀린은 고대의 신화에 등장하는 친숙한 이름이다. 오늘날 멀린은 마법사이자 미래를 보는 통찰력을 가진 존재로 알려져 있다. <킹 아더>에서 멀린은 선각자 혹은 예언자로 묘사되어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두려워한다. 그는 같은 부족의 사람들을 죽이고 살리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가 살던 시대에는 하나의 전설이었다. 하드리안 성의 남쪽에 사는 사람들은 그가 마음대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는 마법사라며 두려워한다. 하드리안 성과 성의 북쪽에서 그는 백성들의 지도자로 알려져 있고, 막강한 전사이자, 환상을 쫓는 사람이다. 그는 한때 훗날 죽게되거나 자신에게 적이 된 여인을 사랑하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멀린의 딸로 나오는 기네비어는 픽트족의 미래의 여왕이다. 여자로서 그녀는 모계질서의 법통을 이어받아서 권력을 물려받는다. 그녀는 전사인 동시에 여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는 ‘호수의 마님’_The Lady of the Lake_이며, 픽트족의 진정한 지도자다. 멀린의 딸로서 기네비어는 자신만의 파워와 통찰력을 지닌다. 그녀는 미래까지는 내다보지 못하지만 언젠가 브리튼은 통일국가가 될 것이라는 멀린의 식견을 공유한다. 그녀의 부하들과 추종자들은 목숨걸고 그녀를 따른다. 멀린은 브리튼의 이익을 위해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킹 아더>에서 멀린은 기네비어로 대표되는 브리튼의 고유한 혈통과 아더로 대표되는 로마와 브리튼의 혼합혈통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계기를 모색한다. 픽트족의 지도자로서 그는 색슨족을 무찌른 이후에도 브리튼이 성하려면 그런 민족적 통합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그는 마법사나 주술사로만 묘사되지 않고 자신의 백성들의 자유와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면 신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새로운 왕들의 왕조를 세우려고 싸우는 인간이다.


색슨족_The Saxons

색슨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덴마크, 독일 북부, 네델란드 북부 등 유럽의 여러 다양한 지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색슨족들은 연속되는 흉작으로 더 나은 땅을 찾아 서쪽으로 항해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러 차례 해안을 공격한 이후로 그들은 5세기 중반까지 브리튼에서 용병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들의 활약을 기록한 자료에 따르면 세드릭_Cerdic_이나 신릭_Cynric_과 같은 지도자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들은 이 영화에서 아더에게 무자비한 적으로 묘사된다. 아더는 12차례에 걸쳐 색슨족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는데, 그 후 색슨족들은 결국 침략자에서 정착민으로 흡수되어 동쪽 해안과 남쪽 해안을 따라 여러 개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결혼하여 브리튼 가정을 이루었으며, 훗날 앵글로 색슨의 토대를 만들기도 했다.


교회_Church_와 펄레이저스_Pelagius

<킹 아더>에서 묘사된 사건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역사 가운데 불확실성과 격변으로 특징지어지는 시대에 일어난 것들이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새 주교들의 모임을 소집하여 신학과 믿음의 문제를 논의했는데 그 목적은 기독교인들이 추구해야 할 삶의 규칙들을 결정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다분히 강요적이었던 이들 규칙들은 훌륭한 철학자나 존경스러운 교육자들을 따랐던 수많은 학파의 추종자들 사이에 불안감을 조장했다. 당시를 대표하는 두 명의 사상가는 히포_Hippo_의 성 아우구스틴_Saint Augustine of Hippo(서기 354-430): 북아프리카의 기독교 지도자이며 철학자이자 저술가_과 펄레이저스_Pelagius_였다. 근본적으로 이들 두 사람은 인간이 기독교적 삶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 관해 대립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아우구스틴은 모든 인간은 신의 뜻에 따라야한다고 가르쳤다. 펄레이저스(서기 360-420)는 브리튼의 수사_修士_이자 신학자인데 로마에서 살았다. 418년 펄레이저스는 가톨릭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낙인찍혔는데, 종교적인 원죄 개념을 부정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고전적인 철학으로부터 전통을 물려받은 펄레이저스는 인간은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선택해야한다고 가르쳤으며, 명예와 선에 관하여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면 어떤 영혼이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가르쳤다. 두 사상가는 각자의 생각을 호소하기 위해 대중이 운집한 공공장소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는데 교회의 평의회는 펄레이저스의 생각들이 이단이므로 로마에서 추방해야 된다고 선언했다.

로마제국의 변방과 로마 교회의 사법적, 종교적 심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던 브리튼은 이교도들의 생각과 사상의 온상지였다. 게다가 펄레이저스는 브리튼 출신이었고, 일정 기간 그곳에 살았기 때문에 브리튼의 기독교가 펄레이저스를 추종하는 이교도들을 숨겨주는 역할을 한다는 의혹을 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은 가울_Gaul_의 옥세레_Auxerre_출신인 정통파 주교 제마누스를 보내서 브리튼의 이단을 뿌리 뽑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어쨌든 펄레이저스의 종교사상은 극도로 탄압받았으며, 펄레이저스가 어떻게 운명을 마감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펄레이저스는 그를 미워했던 세력에 의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아더가 아마도 기독교인이었을 거라고 추측하는 점 외에 그의 믿음에 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다. 영화에서 아더가 펄레이저스의 추종자로 묘사된 것은 전적으로 아더의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국가의 자유만큼이나 개인의 자유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펄레이저스의 사상이 당연한 선택이지 않았을까!


로케이션

아더와 관련되는 로케이션은 남쪽의 콘월_Cornwall_로부터 북쪽으로 스코틀랜드까지, 서쪽의 웨일즈에서 동쪽의 노섬벌랜드_Northumberland_에 이르기까지 브리튼의 전역에 산재해있다. 아더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는 무수한 곳들이 언급되고 있지만 브리튼의 토착민들은 아더가 죽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어 했다. 수세기 동안 학자들은 아더의 주된 유적지들을 놓고 논쟁을 벌여왔다. 예를들어 카멜롯은 소머세트_Somerset_이거나, 에든버러_Edinburgh_ 인근이거나, 웨일즈일 거라는 학설이 있다. 콘월의 많은 유적지는 로맨틱한 분위기가 풍기는 곳들이다. 틴타겔_Tintagel_은 아더의 출생지로 추정하는 곳이다. 도즈메리 풀_Dozemary Pool_은 오랫동안 아더의 전설적인 검인 엑스칼리버가 ‘호수의 마님’_the Lady of the Lake_에게로 되돌아간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가장 논쟁의 중심이 되는 곳은 아더가 전투를 벌였던 곳들이다.

7세기의 수사_修士_인 네니누스는 아더가 색슨족과 픽트족을 상대로 싸웠던 12곳의 지명을 기록했지만 이들 중 어느 곳도 확실하게 설명되거나 입증되는 곳은 없다. 최후의 전투이자 가장 중대한 전투는 바돈 힐_Badon Hill_에서 벌어진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여러 곳의 유적지가 이 전투지와 연관 지어졌는데 소머세트에 있는 바스_Bath_근처의 언덕과 웨일즈의 카엘레온_Caerleon_이 유력한 곳들로 얘기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된 로케이션은 하드리안 성 그 자체다. 서기 1세기에 로마 황제인 하드리안이 축성을 명령한 이 성은 완공 때까지 8년 동안 1만 명이 참여했다. 축성이 끝났을 때 성의 길이는 73마일이었으며, 평균 높이는 15ft였는데, 성 안쪽에는 20ft의 도랑이 만들어져 있다. 서쪽 경계로는 솔웨이 퍼스_Solway Firth_로부터 북쪽 바다로는 스코틀랜드까지 이어졌다. 브리튼 북쪽과 섬의 나머지를 가로지르는 성이다. 성을 쌓은 목적은 로마가 지배하고 있던 브리튼에 수시로 출몰했던 픽트족과 스코트족을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황폐한 고지대로부터 비옥한 평야를 원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현재 버도스왈드_Birdoswald_라고 알려진 캄보글라나_Camboglanna_를 아더의 마지막 전투지로 연결 짓는다. 옛 기록에 따르면 이 마지막 전투지는 캄란_Camlan_에 해당한다. 옛 기록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치명적인 중상을 입은 아더는 아발론에 운반됐는데, 더 큰 사명을 위해 그가 부름을 받을 때까지 아더는 그곳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성에 지어진 요새들 가운데 하나가 아발라나_Avallana_라고 불린다는 점이다. 이것은 캄보글라나로부터 2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데 중상을 입은 사람을 운반하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하드리안 성의 옛터는 오늘날 아직도 해안에서 해안을 따라 뻗어있다.


출처와 텍스트

아더와 관련된 모든 역사적 배경의 출처들은 그가 죽은 것으로 알려진 때로부터 수백 년 뒤에 나온 자료에까지 거슬러간다. 이런 사정 때문에 아더가 언제 살았던 인물인지, 또는 심지어 그가 실제로 존재했었는지 조차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전반적인 상황적 증거들은 아더라고 불렸던_혹은 그 이름을 가졌던 한 사람 이상의 인물들-인물이 5세기와 6세기에 실제로 존재했으며, 브리튼 백성들을 이끌어서 색슨족 침략세력을 무찔렀다는 믿음을 뒷받침해준다. 아더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는 최초의 자료를 소급해 올라가면 7세기의 수사_修士_인 네니누스_Nenninus_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고대의 문헌을 토대로 Historia Brittonum__를 편찬했던 인물이다. 이 저술에서 그는 아더를 왕으로서 보다는 지도자로서 묘사하고 있다. 10세기에 이르러서는 익명의 작품인 Annales Cambriae__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은 바돈 전투_the Battle of Badon_가 516년에 발발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울러 이 작품은 “아더가 우리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 3일 낮, 3일 밤 동안 운반했으며, 브리톤 백성들은 승리감에 불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아더의 방패에 그리스도의 초상이 담겨있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어떤 지역에서는 아더의 방패 안쪽에 성모 마리아의 초상이 새겨져있다는 식으로 아더가 묘사되기도 했다. 이런 기록에 입각해서 제리 브룩하이머의 영화 <킹 아더>는 아더와 기사들의 방패에 무시무시하면서도 호전적인 이미지를 그려넣었다.

웨일스의 초기 시에도 아더에 관해 묘사된 것들이 많다. 이들 시에서 아더는 항상 전사들을 평가하는 기준이나 척도로서 묘사되어있다. 아더와 빗대어서 어떤 특정한 영웅을 묘사한 가장 전형적인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아더만큼은 아니었지만 용맹스럽게 싸웠으며...!” 이런 기록들 덕분에 아더와 그의 기사들에 관한 이야기는 점점 인기가 높아졌다. 12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몬마우스의 지오프리_Geoffrey of Monmouth_라고 불린 성직자가 Historia Regum Brittaniae__를 글로 썼다.

지오프리의 자료는 모호한 점이 많으며, 오늘날에도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더의 전설에 관한 기사문학을 논하면서 이 작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오프리는 12세기 유럽 노르만족 영주의 복장을 한 아더라는 영웅에 관한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기록했다. 그는 아더에게 왕의 칭호를 주어서 방대한 제국을 지배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노르만족 왕들의 역사적 사실을 의식적으로 미화시켰다. 이 작품에서 노르만족 왕들은 자기들이 영국의 왕권을 넘보는 것을 합법화하기 위해 자신들이 아더의 후예라는 것을 입증하려 노력한 설정들이 들어있다. 지오프리의 책은 그 당시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수백 본의 책이 배포됐다. 모든 책을 사람이 손으로 직접 썼던 시대였기에 그 수치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의 책은 아더에 관한 책을 범람시키는 촉매제가 됐는데, 아더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토착 영국민의 신화와 전설에서 빌려온 것들로써 급기야 아더와 원탁의 기사들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탄생되기도 했다. 12세기 후반과 13세기에도 새 이야기와 묵은 이야기들이 보태지고 또 보태졌다. 프랑스에서는 Chretien de Troyes 같은 작가가 랜슬럿과 기네비어, 그리고 트리스탄과 이졸트의 러브스토리를 탄생시켰다. 한편 Robert de Borron 같은 작가는 처럼 위대한 영적 주제를 다룬 작품을 쓰기도 했다. 14세기에 이르러 그동안 떠돌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방대한 한 권의 책으로 탄생됐는데, Vulgate Cycle이라고도 알려진 이 책_토머스 말로리(Thomas Malory)가 쓴 15세기의 서사극인 _은 아더의 전설의 중세 버전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비록 에드문드 스펜서(Edmund Spencer)가 쓴 16세기의 방대한 시(詩)인 이 아더를 등장인물로 묘사하긴 했지만, 아더와 기사들에 관한 관심과 흥미는 한동안 수그러들었다. 아더와 기사들에 관한 흥미가 다시금 고개를 들게 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인데, 알프레드 로드 테니슨(Alfred Lord Tennyson)이 쓴 시인 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테니슨의 작품들은 빅토리아 여왕과 알버트 왕자가 즐겨 읽는 작품이 됐고, 이를 계기로 아더의 작품은 산문이나 운문에 국한되지 않고 미술에서도 인기를 모았다. 당시의 대표적인 예술가들은 William Morris, Edward Burne Jones 등이다. 20세기가 동트면서 아더에 관한 수백편의 새 소설, 희곡, 시들이 해마다 봇물처럼 쏟아졌다.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는 T.H. White의 , Marion Zimmer Bradley의 , Mary Stuart의 등이다. 아더에 관한 영화들도 속속 나오기 시작했는데 매년 수십 편의 작품이 제작됐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영화들은 모두 아더에 관한 중세의 기사문학에 바탕을 둔 것들이다. 그러므로 암흑시대의 실존 영웅인 아더와 그의 기사들의 스토리를 담은 작품은 <킹 아더>가 최초다.

200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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