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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원(鄭斗源)과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돌아올 때 화포·천리경(千里鏡)·과학서적·천주교서적 등을 가지고 왔으며, 특히 소현세자는 샬(Shall,A., 湯若望)과 사귀기도 하였다.
서양의 역법(曆法)인 시헌력(時憲曆)을 송인룡(宋仁龍)·김상범(金尙範) 등이 청나라에서 수입하여, 그뒤 1653년(효종 4)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1634년 양전(量田:토지조사)을 실시하여 토지제도를 시정하였으며, 연등9분(年等九分)의 법을 정비하여 세제(稅制)를 합리화하였다. 또한, 1641년에는 군량조달을 위하여 납속사목(納粟事目)을 발표하고, 납속자에 대한 서얼허통(庶#얼02許通) 및 속죄(贖罪)를 실시하였다.
1645년 볼모생활에서 들아온 소현세자가 죽자 조정은 세자 책봉 문제로 시끄러웠으며,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한 뒤 소현세자빈 강씨(姜氏)를 사사(賜死)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난국 속에서도 군제(軍制)를 정비하여 총융청(摠戎廳) ·수어청(守禦廳) 등을 신설하였으며, 북변(北邊) 방위와 연해 방위를 위하여 여러 곳에 진(鎭)을 신설하였다.
201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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