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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30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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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 모란은 꽃이 화려하고 풍염(豊艶)하여 위엄과 품위를 갖추고 있는 꽃이다. 그래서 부귀화(富貴花)라고 하기도 하고, 또 화중왕(花中王)이라고 하기도 한다. 모란은 장미와 함께 인간이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 낸 최고의 예술품이다. 그것도 살아 있는 예술품인 것이다. 호화현란(豪華絢爛)한 아름다움과 기품에 있어서는 서로 비견되지만 풍려(豊麗)함으로는 모란이 단연 돋보인다. 모란은 장미에 비해 그 꽃모양이 장려(壯麗)하고 소담스러우면서 여유와 품위를 지니고 있다. 모란은 백화의 왕이라고 할 만큼 그 아름다움을 진중(珍重)하고 있는 나머지 이명(異名)도 대단히 많다. 목작약(木芍藥)을 비롯해서 화왕(花王)·백화왕(百花王)·부귀화(富貴花)·부귀초(富貴草)·천향국색(天香國色)·낙양화(洛陽花)·상객(賞客)·귀객(貴客)·화신(花神)·화사(花師)·화사부(花師傅) 등 극히 귀한 이름들이 눈에 띈다. 또 모란의 품종 이름이면서 모란의 이명처럼 알려져 있는 것으로 요황(姚黃)·위자(魏紫)·일녑홍

  • 우리나라 남쪽에는 동백나무가 있어 겨울에도 능히 아름다운 꽃이 피어 꽃이 없는 시절에 홀로 봄빛을 자랑한다. 동백꽃은 향기가 없는 대신 그 빛으로 동박새를 불러 꿀을 제공해 주며 새를 유인하는 조매화(鳥媒花)의 하나이다. 동백꽃은 대개 붉은빛이나 홍도와 거문도에는 흰 동백꽃이 있어 서상(瑞祥)이라 하여 소중히 보호하고 있으며 거문도와 울릉도에는 분홍 동백꽃이 있다. 동백나무는 주로 섬에서 자라는데 동쪽으로는 울릉도, 서쪽으로는 대청도까지 올라간다. 육지에서는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마량리의 것이 가장 북쪽이고 내륙에서는 지리산 산록에 위치한 화엄사 경내에서 자라는 것과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의 선운사 경내에서 자라는 것들이 가장 북쪽에 위치한 것이다. 동백은 '冬柏' 또는 '棟柏'을 표음한 것이다. 동백은 한자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말이다. 이 꽃은 겨울에 꽃이 핀다 하여 동백(冬柏)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그 가운데는 봄에 피는 것도 있어...

  • 중국에 죽림칠현의 고사가 있다. 위(魏)나라에서 진(晋)나라로 왕조가 바뀌자(266년경) 그 혼란을 피하여 죽림으로 들어가 세속과 교제를 끊고 술잔을 나누며 청담(淸談)에 열중했다고 하는 완적(阮籍)·산도(山濤)·혜강(嵇康)·향수(向秀)·유령(劉伶)·원함(院咸)·왕융(王戎) 등 7명의 선비가 있었는데 이를 죽림칠현 또는 강좌칠현(江左七賢)이라고 불렀다. 죽림은 탁한 속계와는 멀리 떨어진 장소로서 당시 유행하던 철학적 담론, 이른바 청담(淸談)을 논의하는 데는 가장 적절한 장소라고 인식되어 있었다. 이후 죽림은 속진(俗塵)을 싫어하는 고결한 선비가 애호하는 것으로 되었다. 고려에서는 이 죽림칠현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죽고칠현(竹高七賢, 海東七賢)이 있었다. 죽고칠현이란 이인로(李仁老)·오세재(吳世才)·임춘(林椿)·조통(趙通)·황보항(黃甫沆)·함순(咸淳)·이담지(李湛之)를 말하며 이들은 죽림칠현의 풍류운사(風流韻事)를 사모하여 화조월석(花鳥月夕)에 시주(詩酒)를 벗삼아 진외(

  •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석평 마을 앞에는 오래된 반송이 한 그루 서 있다. 수령이 약 6백여 년이며 높이 10m, 둘레 4.2m, 동서의 길이는 32m이고 그늘 면적이 324평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좀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 소나무가 하나의 인격체로 취급받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 나무의 성은 석(石)이요, 이름은 송령(松靈)이며, 이 나무 명의로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데 예천군 토지대장에 등재된 등록번호는 3750-00248이라고 한다. 이 대장에 근거하여 종합토지세가 부과되고 또 납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나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옛날 어느 여름에 홍수가 져서 풍기골에서 마을 앞 개천으로 떠내려 오던 어린 소나무를 길가던 나그네가 건져 개천가에 심었는데 그 나무가 점점 자라서 크고 우람한 고목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마을사람들이 복을 비는 동신목이 되었다. 1920년대 말 이 마을에

  • 음력 4월 초파일에는 절을 찾아가 재(齋)를 올리고 연등을 다는 풍속이 있다. 《열양세시기(列陽歲時記)》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이때 세우는 등간(燈竿)은 자녀의 수대로 하였다. 남보다 크고 높은 것을 자랑으로 알았다. 등간 위에는 꿩의 꼬리털을 꽂아 물들인 비단으로 기를 만들어 줄을 매고 그 줄에 등을 매달았다. 등의 모양은 형형색색으로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그 중에서 연꽃 모양의 등을 가장 많이 달았다. 연꽃등은 불타의 진리를 밝히고 그 진리가 사방에 퍼지는 것을 상징한다. 사월 초파일의 연등 서울 조계사

  •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선덕여왕의 공주시절 일화가 전한다. 당나라에서 보내온 모란꽃 그림을 보고 선덕여왕이 "꽃은 비록 고우나 그림에 나비가 없으니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씨앗을 심어 본즉 과연 향기가 없었다. 이에 선덕여왕의 영민함을 모두가 탄복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은 선덕여왕이 배우자가 없음을 당 태종이 조롱한 것이라 하여 예민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모란 그림에 벌·나비가 없는 것은 모란꽃이 향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시에 있어서도 간혹 모란에는 향기가 없음을 읊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것은 모두 선덕여왕의 〈모란도〉에 관한 일화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란꽃에는 분명히 향기가 있고 벌·나비도 날아든다. 당나라 위장(韋莊)은 백모란을 읊은 시에서 "뜰에 들어서자 그윽한 향기 풍겨오네(入門唯覺一庭香)"라고 하여 모란의 향기를 상찬하고 있다. 또 고려시대 이인로...

  • 진달래를 소재로 한 시가 읊어진 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널리 인구에 회자된 시는 아마 소월의 〈진달래 꽃〉일 것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진달래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김소월, 〈진달래꽃〉 이 작품은 한국의 현대시가 도달한 최고의 이별미학으로 흔히 평가되어 왔다. 이 시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의 슬픔을 체념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산화공덕(散花功德)과 애이불비(愛而不悲)를 나타냄으로써 유교적 휴머니즘이 짙게 깔려 있다고도 한다. 이 시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는 데 대한 사무친 정과 한, 동양적인 체념과 운명관으로 빚어내는 아름답고 처절한 사랑의 자기희생적이고...

  • 봄이 되면 북으로는 백두산에서부터 남으로는 제주도의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잎보다 앞서 꽃을 피워 산을 온통 진분홍으로 물들이는 꽃 진달래는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 겨레와 애환을 함께 하며 살아온 한국의 꽃이다. 진달래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다. 고려가요 〈동동〉에 나오는 ' 욋곶'이 진달래꽃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그것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어형으로는 가장 오래된 형태인 것 같다. 조선 중종 때 편찬된 《훈몽자회》에는 '진 위'로 되어 있다. 진달래는 두견화(杜鵑花)라고도 하고 참꽃이라고도 한다. 두견화라는 것은 중국 이름으로서 두견새가 울 때에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진달래와 구별해야 할 꽃으로 산철쭉이 있다. 봄소식을 안고 뒷동산을 붉게 장식했던 진달래가 이울 즈음이면 연분홍빛의 철쭉이 고개를 내민다. 철쭉은 진달래와 비슷하여 얼른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주의깊게 살펴보면 철쭉은 꽃잎에 주름이 잡혀 있으며 엷은 자줏빛에 검은 점이 박혀...

  •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국화이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 기관에서 국화로 결의하였거나 법령 등으로 공포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권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수 국민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무궁화가 사실상 국화로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이웃 나라에서 우리나라를 무궁화의 나라로 불렀고 우리 스스로 우리나라를 근화향(槿花鄕)·근원(槿原)·근역(槿域)이라 함으로써 국민들의 마음에 무궁화가 나라를 상징하는 꽃이라고 생각했던 시기를 국화로 자리잡은 시기로 본다면 그 시기는 아주 옛날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좀더 본격적으로 무궁화가 국화로 등장하여 거론되기 시작한 시기는 구한말 개화기이다. 갑오경장 이후 신문화가 이땅에 밀려오면서 선각자들은 민족의 자존을 높이고 열강들과 대등한 위치를 유지하고자 국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남궁억(南宮檍)과 윤치호(尹致昊) 등은 서로 협의하여 무궁화를 국화로 하자고...

  • 살구꽃은 복숭아꽃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음력 2~3월 경에 그 우아한 담홍색의 꽃을 피워 이제 본격적으로 봄이 온 것을 알려줌으로써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아 왔다. 살구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라고 한다. 《산해경(山海經)》(서기전 400~250년)에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는 가장 오래된 재배 역사를 가진 과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과수라기보다 복숭아와 더불어 약용식물로서 더 중요시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건너온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때 이미 흔히 볼 수 있었던 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삼국유사》에 신라의 고승 명랑(明朗)이 읊은 시에 "산 속에 있는 복숭아나무와 개울가에 있는 살구나무에 꽃이 피어 울타리를 물들이고 있다(山桃溪杏映籬斜)"는 구절을 볼 수 있고 또 고려의 명신 장일(張鎰, 1206~1275년)의 신라회고시(新羅懷古詩)에 "경주에 살구꽃이 많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 연꽃이라 하면 불교를 생각하게 되고 불교라 하면 연꽃이 떠오를 만큼 연꽃은 불교의 꽃으로 머릿속 깊이 새겨진 꽃이다. 백합이 기독교와 깊은 인연이 있는 꽃인 것처럼 연꽃은 불교와 떨어질 수 없는 꽃이 되어 있다. [ ① 불교를 상징하게 된 연유]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연꽃은 불교의 사상과 일맥 상통하는 의미와 상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연꽃이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연꽃은 늪이나 연못의 진흙 속에서도 맑고 깨끗한 꽃을 피워낸다(處染常淨). 연은 진흙 속에 몸을 담고 있지만 더럽혀지지 않고 자신의 청정함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은 본시 청정하여 비록 나쁜 환경 속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그 자성(自性)은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다는 불교의 기본교리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 석존(釋尊)의 설법에는 물이 연잎에 붙지 않는 것과 같이 인간이 탐욕에 물들어서는 아니됨을 설파하고 있는데 여기에 불교와

  • 죽순은 순(笋)·죽태(竹胎)·죽자(竹子)·탁룡(籜龍)·죽아(竹芽)·죽손(竹孫)·용손(龍孫)·초황(初篁) 등으로 말하기도 했다. 한 달을 초순·중순·하순으로 열흘씩 묶어 순(旬)으로 표시하는데 대나무순을 죽순(竹筍)이라 하는 것은 싹이 나와서 열흘일(순)이면 대나무로 자라기 때문에 빨리 서둘지 않으면 못 먹게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죽순이 하루에 120㎝씩 자라는 놀라운 성장 속도를 표현한 이름이다. 죽순은 여러 영양분과 독특한 섬유질을 가진 고급식품이다. 조선시대 문헌인 《증보산림경제》 《임원경제지》 등에는 죽순밥·죽순정과·죽순나물 등 다양한 죽순 요리법이 수록되어 있다. 맹종죽(孟宗竹)은 주로 죽순을 먹기 위해 재배한다고 한다. 맹종죽은 중국 양자강 남쪽에서 자라므로 강남죽이라고도 하고 먹는 대나무라고 하여 식용죽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1898년에 일본에서 건너왔다고 한다. 맹종죽이 많이 자라는 곳에서는 죽순맛을 한번 보면 상장(喪杖)도...

  • 두견새는 접동새라고도 하는데 한자어로는 두견(杜鵑) 외에도 자규(子規)·두우(杜宇)·두백(杜魄)·망제(望帝)·불여귀(不如歸)·귀촉도(歸蜀道) 등으로 불리어 애상을 상징하는 새로 시문에 많이 인용되고 있다. 국어사전에는 흔히 소쩍새라고도 되어 있으나 소쩍새는 올빼미과(두견새는 두견이과)에 속하는 새로 두견새와는 생김새가 다르다. 진달래와 두견새가 깊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 새와 꽃 사이에 얽혀 있는 전설 때문이다. 두견새는 촉나라 망제(望帝)의 넋이라고 한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한을 품고 밤마다 이산 저산을 옮겨다니며 처절하게 운다는 것이다. 두견새는 밤에 우는 새다. 그것도 깊은 한밤중에 삼라만상이 잠들어 있는 그 시각에 홀로 깨어 우는 것이다. 길게 여운을 그리며 끝없이 되풀이되는 그 처량하고 구슬픈 울음 속에는 자기 가슴을 쥐어 뜯는 서러움이 담겨 있는 듯하다.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어 모든 생명이 휴식하는 그 밤중에 그 어두운 밤을 견디기 위하여 울고...

  • 주왕산은 우리나라 중동부에 위치한 태백산맥의 지맥으로서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에 소재하고 있는데 1976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의 명승지로 꼽히는 주왕산은 주방천의 아름다운 계류와 폭담(瀑潭), 병풍을 두른 듯한 기암괴석과 암봉, 그리고 울창한 송림이 어우러져 있어 경치가 절승을 이룬다. 또 이 주왕산에는 전해오는 전설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5월 초순경에 주왕산을 찾는 나그네는 옥류가 흐르는 주방천(周房川)을 따라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수달래를 볼 수 있다. 수달래의 꽃모양은 진달래와 비슷하나 수달래가 더 진한 편이며, 특이한 것은 꽃이파리 하나에 반드시 20여 개의 검붉은 반점이 있는 것이다. 늦은 봄부터 초여름에 이를 때까지 주방천에서 처절하도록 아름다운 빛깔의 꽃을 피우는 수달래는 주왕의 넋이라고 한다. 오랜 옛날 중국 진(晋)나라의 후예 주도(周鍍)는 후주천왕(後周天王)을 칭하고 당(唐)나라에 반기를 들었으나 당나라 군사에게...

  • 여름이 되어 봉숭아가 곱게 피면 젊은 아낙네나 처녀들은 봉숭아를 따서 손톱 발톱에 물을 들인다. 이러한 풍습에 대한 기록은 여러 문헌에서 볼 수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계집애들과 어린이들이 봉숭아를 따다가 백반에 섞어 짓찧어서 손톱에 물을 들인다"고 하였고 심재(沈 )의 《송천필담(松泉筆談)》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홍석기(洪錫箕, 1606~1680년, 조선 효종 전후의 문신·학자)의 호는 만주(晩洲)인데 일찍이 북저(北渚) 김류(金瑬, 1571~1648년)의 집에 놀러간 일이 있었다. 마침 어린 여비(女婢)가 술상을 들고 들어오는데 얼굴이 아주 예쁘고 손톱에는 봉선화로 물을 들였다. ······ '붉은 손톱(紅瓜)'이란 제목으로 운을 불러 시 한 편을 지었다. 또 조선 말기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에는 물을 들이는 방법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한시에서는 《양곡집(陽谷集)》에 실려 있는 소세양(蘇世讓, 1486~1562년)의 〈봉선(鳳仙)〉이란 시에서 손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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