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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월한 보편적 가치]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는 세계 최초의 농업 공동체가 등장했던 메소포타미아 상부 지역에 있다. 선토기 신석기 시대(Pre-Pottery Neolithic age, 기원전 1만~9천 년)에 수렵-채집인들은 기념비적 공동 건축물인 인클로저(enclosure, 담장을 두른 구역)로 해석되는 기념비적 구조물을 세웠다. 구조물 중에는 높이가 5.5m에 이르는 독특한 석회암의 T자형 기둥이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사회적 행사나 의식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의 형태를 추상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 일부 기둥에는 허리띠나 짧은 하의와 같은 복장이 얕은 부조로 새겨져 있고, 높고 낮은 부조의 여러 야생 동물들도 표현되어 있다. [완전성] 괴베클리 테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표현하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고, 그 중요성을 전달하는 기능과 과정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적절한 규모이다. 유산의 유형적 구조는 상태가 양호하며 열화(de

  • 평원 위로 솟은 높이 약 200m 절벽의 샘들에서 나오는 칼슘을 함유한 물로 인해 파묵칼레(Pamukkale, ‘목화의 성’이라는 뜻)에는 광물의 숲, 석화 폭포, 계단 형태의 분지들 등으로 구성된 환상적인 공간이 만들어졌다. 기원전 2세기 말에 페르가몬(Pergamon)을 다스리던 아탈리드(Attalid) 왕조의 왕들이 이곳에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의 온천을 만들었으며, 그 당시의 목욕탕, 사원, 기타 그리스 기념물들의 잔해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Hierapolis-Pamukkale)는 자연 현상을 통해 멋진 경관이 형성된 유적이다. 샘들에서 광물화된 온천수가 넘쳐흘러 형성된 못과 계단 형태 지형의 멋진 자연 경관 속에 훌륭한 그리스-로마식 온천 시설을 갖춘 히에라폴리스가 조성되어 있다. 히에라폴리스의 기독교 기념물들은 초기 기독교 건축물 단지의 우수한 사례이다. ‘목화의 성’을 의미하는 파묵칼레는 단층을 뚫고 나오는 온천수의 칼슘 퇴적물이 형성한 독특한...

  • 차탈회위크(Çatalhöyük) 유적은 남부 아나톨리아 고원(Anatolian Plateau)에 37㏊에 이르는 두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 언덕 중 더 높은 동쪽 언덕에는 기원전 7400년에서 기원전 6200년 사이의 신석기 시대 거주지가 18개의 층을 이루며 남아 있다. 이 거주지에는 벽화와 부조, 조각품, 그밖에 상징적이고 예술적인 특징들이 남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이 정착생활에 적응하면서 나타난 사회 조직 및 문화 풍습의 발달 양상을 증언하는 것이다. 서쪽에 있는 언덕은 기원전 6200년에서 기원전 5200년 사이의 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금석병용시대 문화 풍습의 발달을 보여 준다. 차탈회위크는 정착촌 형태에서 도시 집적 형태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도기를 표현하는 증거는 한 지역에서 2,000여 년 이상이나 지속되었다. 길이 없이 주택은 다른 주택들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형태이며, 지붕을 통해 주택...

  • ‘튀르키예식 커피 문화와 전통(Türk Kahvesi Kültürü ve Geleneği)’은 이스탄불의 커피하우스에서 처음으로 커피 판매가 시작되었던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튀르키예식 커피(Turkish Coffee)의 전통은 고유한 커피 맛의 추출과 튀르키예식 커피 문화가 지닌 사회적 기능이라는 두 가지 매우 특징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음료의 하나로서 튀르키예식 커피는 특별한 조리 및 추출법에 따라 만들어지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은 가장 역사가 오래된 커피 제조법 중의 하나이다.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 커피를 조리한 결과 제즈베(Cezve, 커피 끓이는 포트), 핀잔(fincan, 커피잔), 절구 공이 등과 같은 특수한 도구와 은식기 등 조리 도구 자체만으로도 예술적인 가치를 지닌 것들이 발달하였다. 튀르키예식 커피는 커피를 만드는 시간, 그리고 신선함이 요구되는 조리법 덕분에 입안에 강하고 오래 지속되는 맛을 남긴다. 튀르키예식 커피는 다른 커피에

  • 한때는 카이스트로스 강(River Kaystros) 하구였던 구역 안에 있는 ‘에페수스(Ephesus)’에는 해안선이 서쪽으로 물러나며 조금씩 이동하면서 연달아 세워졌던 헬레니즘, 로마 시대의 마을이 있다. 발굴 조사를 하면서 이곳에서는 켈수스 도서관(Library of Celsus)과 대극장을 포함하여 로마 황제 시대가 낳은 기념비적 건축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손꼽힐 정도로 유명한 ‘아르테미스 신전(Temple of Artemis)’ 유적에는 지중해 전역에서 많은 순례자가 찾아오고 있다. 또 에페수스로부터 7km 떨어진 곳에 있는 돔 형태의 십자형 예배당인 ‘성모마리아의 집(House of the Virgin Mary)’은 5세기 이래로 기독교 신자들에게 중요한 순례지가 되어왔다. 고대 도시 에페수스는 바다와 연결되는 도로와 항구 유역을 갖춘 로마 시대의 항구 도시로서 대표적인 사례이다.

  • 탁 트인 시골 풍경에 자리한 '고르디온(Gordion) 고고학 유적지'는 철기시대 독립 왕국인 프리기아(Phrygia)의 고대 수도 유적들을 포괄하는 '다층적 고대 정주지(multi-layered ancient settlement)'이다. 이 고고학 유적지의 핵심 요소들은 성채 언덕, 로어타운(Lower Town, 성의 아랫마을), 아우터 타운(Outer Town, 성의 외곽 마을) 및 요새, 주변 경관을 배경으로 한 여러 개의 무덤 및 고분 등이다. 고고학적 발굴과 조사를 통해, 숨겨졌던 프리기아 문화와 경제에 대해 밝히는 건축 기술, 공간 배치, 방어 구축물들, 고대 매장 풍습 등 풍부한 유물이 드러났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 '고르디온 고고학 유적지'는 고대 근동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중심지의 하나로 평가된다. 고르디온은 튀르키예 중심부의 앙카라에서 남서쪽으로 대략 90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동쪽(아시리아인, 바빌로니아인, 히타이트인)과 서쪽(그리스인, 로마인

  • [탁월한 보편적 가치] 페르가몬(Pergamon)은 기원전 3세기 아탈로스(Attalos) 왕조의 수도로 건립되었다. 유럽과 중동 아시아가 교차하는 고대 세계의 심장부였던 에게 해(Aegean Region)에 있는 페르가몬은 곧이어 유력한 문화 · 학문 · 정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칼레(Kale) 언덕의 정상부에 건설된 수도로서 페르가몬을 위해 특정한 위치에 건설되었다. 경사지와 바키르차이 평원(Bakirçay Plain)은 도시 계획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었다. 경사가 매우 가파른 극장, 길게 이어지는 스토아(stoa, 주랑(柱廊)), 3면이 테라스인 체육관(Gymnasium), 페르가몬 대제단(Great Altar of Pergamon), 분묘, 유압 수도관, 도시 성곽, 칼레 언덕과 완벽하게 나란히 놓인 키벨레 성역(Kybele Sanctuary) 등 뛰어난 기념물들이 이 유산 안에 포함되어 있다. 아탈로스 왕조의 수도로서 페르가몬은 헬레니즘 시대 모든 도시들의 수호

  •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 흑해와 지중해 사이의 보스포루스(Bosphorus) 반도의 전략적 위치에 있는 이스탄불은 2,000년 넘게 정치·종교·예술 사건의 중심지였다. 이 도시 안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고대 전차 경기장, 6세기에 건축된 성 소피아 성당(Hagia Sophia), 16세기에 건축된 쉴레이마니예(Süleymaniye) 모스크가 있다. 이런 유적들 전부가 과도한 인구 집중, 산업공해, 통제되지 않는 도시화로 인해 위험에 처해 있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 이스탄불은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 흑해와 지중해 사이에 있는 보스포루스 반도에서 전략적 위치에 있다. 동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수도였으며, 2,000년 넘게 정치·종교·예술·역사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여러 사건과 관련이 있었다. 이 도시는 북쪽으로는 자연 항구인 골든 혼(Golden Horn/Haliç), 동쪽으로는 보스포루스 해협, 남쪽으로는 마르마라(Marmara) 해에 둘러싸인 반도에 있다. 이전에는 비잔티움과...

  • 튀르키예의 마니사(Manisa)에서 열리는 메시르 마주누 축제(Mesir Macunu Festivali)는 위대한 술탄 쉴레이만(Süleyman, 1494~1566)의 어머니인 아이셰 하프사 술탄(Ayşe Hafsa Sultan, 1479~1534)이 ‘메시르 마주누’라는 페이스트(paste)를 먹고 병에서 완치된 것을 기념하는 행사이다. 여왕은 병이 완치된 후 메시르 마주누를 일반 대중에게 나눠주라고 명령했다. 매년 3월 21일~3월 24일 1명의 요리사와 견습생들이 41가지의 신선한 향신료와 허브를 사용하여 전통적인 방식으로 메시르 마주누를 준비한다. 14명의 여성이 메시르 마주누를 작은 종이에 포장하면, 28명의 이맘(imam, 예배를 인도하는 성직자)과 도제들은 포장된 메시르 마주누에 감사를 표한 후 사원의 탑과 술탄 모스크의 돔에서 뿌린다. 튀르키예의 여러 지방에서 온 수천 명의 사람들은 하늘에서 뿌려지는 메시르 마주누를 잡으려고 한다. 이렇게 떨어지는 메시르 마

  •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국이 무너진 후 유프라테스 유역과 시리아 북쪽에 건설된 콤마게네(Commagene) 왕국을 다스린 안티오쿠스 1세(Antiochus I, BC 69~34)의 능묘 유적이다. 이 능묘는 헬레니즘 문명기의 가장 야심찬 건축물 중 하나이다. 부조에 새겨진 왕들의 계보는 그리스 신화와 페르시아 전설이라는 2개의 갈래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이 왕국의 문화가 이중적 기원을 가진 문화의 융합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넴루트산(Nemrut Dağ)의 능묘 또는 히에로테세이온(Hierotheseion, 신성한 좌석)은 콤마게네 왕국 문명에 대한 독특한 증거를 담고 있다. 이 기념물에서 안티오쿠스 1세는 아버지 미트리다테스(Mithridates)를 다리우스의 후예, 어머니 라오디케(Laodice)를 알렉산드로스의 후예로 묘사하였다. 이 반(半)전설적인 가계는 동양과 서양 양쪽으로부터 권력의 독립을 유지하려 했던 왕조의 야망을 보여 주는 계보로 해석된다. 넴루트산의 고분은 시원에...

  •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장관을 자랑하는 궤레메(Göreme) 계곡과 주변 지역에 있는 바위를 깎아 만든 성소들은 성상파괴운동 이후 시대(post-Iconoclastic period) 비잔틴 미술의 독특한 흔적을 보여 준다. 아울러 4세기에 만들어진 전통 거주지의 흔적인 가옥과 혈거 마을, 지하 도시 등을 볼 수 있다.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암각(巖刻) 성소들은 멋진 자연 지형들로 이루어진 지역 안에서 독특한 예술적 성과를 이루며, 성상 파괴 운동 이후 시대 비잔틴 미술의 전무후무한 흔적을 보여 주고 있다. 거주지와 마을 수도원, 교회 등은 비잔틴 제국에 속했던 이 지방의 옛 모습을 당시(4세기~튀르키예 침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궤레메 계곡의 침식(浸蝕) 고원에는 화산성 응회암 퇴적물이 바람과 물에 의해 각 부분별로 다르게 침식되어 형성된 장관이 펼쳐져 있다. 이곳의 특징적인 구조물로는 40m 높이의 기념비와 기둥, 탑, 오벨리스크(obelisk), 첩탑 모양 건물 등이 있다....

  • ‘아니 고고학 유적지(Archaeological Site of Ani)’는 아르메니아와의 사이에 천연의 국경선 역할을 하는 좁은 골짜기를 굽어보고 있는 튀르키예 북동쪽의 한 외딴 고원에 있다. 이 중세 도시에는 수세기에 걸쳐 처음에는 기독교, 다음에는 무슬림 왕조가 완성한 구조물로서 중세 도시계획의 특징이 드러나는 주거용, 종교용, 군사용 구조물이 있다. 아니(Ani)는 서기 10세기와 11세기 중세 아르메니아 왕국 바그라투니(Bagratuni) 왕조가 수도로 정하면서 번영을 이루었고, 비단길의 한 갈래를 통제함으로써 이익을 확보했다. 훗날 비잔틴, 셀주크, 조지아 등으로 그 주권국이 바뀌는 동안에도 아니는 계속해서 카라반 상인들을 위한 교차점의 도시로서 중요한 지위를 유지했다. 몽골의 침입과 모든 것을 파괴한 1319년의 대지진은 아니의 쇠퇴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유산은 서기 7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이룩한 여러 상이한 건축적 쇄신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중세

  • 4,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트로이(Troy)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 유적지 가운데 하나이다. 유적지의 최초 발굴은 1870년 유명한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에 의해 이루어졌다. 과학적 측면에서, 이 광대한 유적은 아나톨리아(Anatolia)가 지중해 국가들과 최초로 접촉한 가장 중요한 사례들을 보여 주고 있다. 더욱이 호메로스(Homer)의 『일리아드(iliad)』에 기록된 기원전 13세기 또는 기원전 12세기에 그리스에서 온 스파르타·아테네 전사들의 트로이 포위작전은, 이후 세계 예술가들에게 상당한 창의적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트로이의 고고 유적지는 초기 유럽 문명 발달사 중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단계이다. 이 유적은 유럽 문명 발달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더욱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2,000년 이상 예술 창작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 때문에 이곳은 이례적인 문화적 중요성이 있다. 트로이는 에게 해의 아나톨리아와...

  • ‘전통적인 튀르키예의 활쏘기(Traditional Turkish archery)’는 수백 년 동안 발전된 의식과 사회적 관습, 전통적 장비 공예, 활쏘기 훈련법 및 활쏘기 기술 등을 포괄한다. ‘전통적인 튀르키예의 활쏘기’는 훈련 유형에 따라 기립 또는 기마 자세에서 연행된다. 보유자와 연행자들은 개인적으로 활쏘기 연습을 하거나 경연대회나 축제에 참여하는 등 개별적 또는 집단적으로 활쏘기 기술을 연마한다. 전통적 활쏘기 장비 공예도 이 유산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활쏘기 장비는 높은 고도의 특정한 기후 조건에서 성장하는 나무와 유기 접착제, 뿔, 힘줄, 비단, 가죽 등과 같은 원재료를 이용하여 만든다. 따라서 공예인들은 식물이나 동물, 기후 등을 포함하여 자연에 대한 높은 수준의 지식이 있어야 한다. 활쏘기 장비는 일반적으로 서예, 장식품 장식, 쪽매붙임 세공 등으로 꾸민다. 공예인들은 전통 활쏘기 장비의 장인정신에 관여하며, 명인이 견습생에게 기술을 전수하거나 공예인이 개

  • [탁월한 보편적 가치] 아프로디시아스(Aphrodisias)는 튀르키예 남서부 지역 고대 카리아(Caria)의 모르시너스(Morsynus) 강이 만들어낸 비옥한 골짜기 안에 있다. 아프로디시아스 유적지의 역사는 후기금석병용 시대(Late Chalcolithic Period)부터 시작된다. 아프로디시아스라는 도시가 형성된 때는 미앤더(Meander) 골짜기에서 도시화가 집중적으로 일어났던 기원전 2세기경이다. 도시는 이후 아프로디테 여신의 신전을 중심으로 격자 구조로 발전하였다. 술라(Sulla)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는 물론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 역시 아프로디테 여신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으므로, 아프로디시아스는 로마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고대 로마의 원로원으로부터 ‘면세’의 정치적 특권을 누린 아프로디시아스는 예술과 조각술에서 큰 명성을 쌓으며 발전을 거듭하였다. 로마 제국시대 이후 아프로디시아스는 고대 후기와 중세기 동안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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