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ㅎㅎ 저는 중1인 여학생입니다..ㅠ.ㅠ
그런데 제가 음악숙제가 있어서요......ㅠ.ㅠ
오페라와 오페라마술피리 그리고 모짜르트에 대해서 조사해가는 건데요......
표나 그림으로 좀 올려주세여ㅠ.ㅠ
오페라는 역사, 구성, 작곡등 상세하게구요
오페라 마술피리는 줄거리, 등장인물 각 파트별 설명등 이것도 상세하게요..ㅠ.ㅠ
마지막은 모짜르트인데요 이 사람은 시대나 국적등.. 이거도 역시 상세하게 부탁드릴께요......ㅠ.ㅠ
꼭 표나 그림으로 쫌 올려주세요!!ㅎㅎ
제발요......ㅠㅠ
내일 오후 2시 30분까지 부탁드릴께요~~ㅎㅎ
※내공냠냠, 이상하고 짧은글 전부 다 신고합니다※
답변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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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
Mozart, Wolfgang Amadeus (1756.1.27~1791.12.5) 오스트리아
그림은 없어서 죄송해요. 모차르트의 생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Salzburg)에서 슐라텐바흐 대주교의 궁정 음악가인 레오폴트 모차르트(Johann Georg Leopold Mozart)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재능이 발견되어 아버지 레오폴트는 4세 때부터 그에게 클라비어를 가르치고 연주도 시켰다. 6세 때에는 이미 뛰어난 하프시코드 연주자가 되어 있었고, 오르간과 바이올린의 연주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는 공식적인 교육은 받지 않고 아버지에게서 음악교육을 받았다. 1762년에 레오폴트는 아마데우스와 그의 누이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Maria Anna Mozart)를 데리고 뮌헨(Munchen)으로 첫 번째 연주여행을하였다.
이후 10년 동안 연주여행을 계속하는 가운데 아마데우스는 유럽 여러 지역의 많은 작곡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게 된다.
빈에서는 전고전주의의 거장 바겐자일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1763년 파리에서는 쇼베르트(Johann Schobert)의 클라비어 양식을 익힐 수 있었으며 글룩의 오페라도 알게 되었다. 1764년, 런던에서는 J. C. 바흐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의 오페라와 교향곡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밖에도 만하임에서는 교향곡의 창작기법을 공부할 수 있었고, 네덜란드에서는 건반악기 음악을, 이탈리아에서는 오페라의 창작기법을 익힐 기회를 얻었다.
1766년 11월에 잘츠부르크로 돌아와서 최초의 오라토리오(1767)를 작곡하고, 1768년에는 빈으로 가서 또 다른 오라토리오를 위촉받아 작곡하였다. 1769년에 다시 부친을 따라 이탈리아로 연주여행을 하면서 즉흥연주와 암보로써 천재적인 재능을 소개하였다.
1771년에 잘츠부르크를 돌아왔다가 다시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여행을 한 뒤 고향으로 와서 작곡과 연주활동을 하였으나 대우는 충분치 않았다.
모친과 함께 다시 외국에서 활동하기 위하여 독일의 여러 지역과 파리 등지로 갔으나 환영을 받지 못하였고, 모친도 이 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779년에 잘츠부르크로 돌아와서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잠시 일하였고, 1781년에 궁정음악가직을 사임하고 독립된 음악가로서 활동을 시작한다.
귀족과 왕실 가족 앞에서 연주를 하거나 피아노 교습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1782년에는 콘스탄체 베버(Constanze Weber)와 결혼하면서 창작활동은 더욱 활발해졌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가정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1784년 프리메이슨(Freemason)단원이 되어 이 운동을 위한 작품도 썼으며 1786년에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이듬해에는 돈 조반니를 작곡하였고, 실내악 작품과 교향곡의 걸작품들도 이 때에 나왔다.
그러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여 1791년 마지막 오페라 <마적>을 작곡할 무렵에는 극도로 쇠약하여졌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레퀴엠작곡을 의뢰받고 작업을 하던 도중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1791년 12월 6일에 행하여졌다.
하이든과 함께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모차르트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이미 6세 때에 미뉴에트를 작곡했고, 9세에 교향곡을, 11세에는 오라토리오, 그리고 12세에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음악 장르도 다양해서 교향곡이나 오페라와 같은 대규모의 기악곡과 성악곡에서부터 가벼운 소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작곡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에게서 받은 음악교육과 많은 연주여행을 통해 얻은 자연적인 체험으로부터 탄생한 것이다.
600여곡이 넘는 작품들에는 작품번호가 붙어 있지 않았는데 편집자 쾨헬(Ludwig von Köchel, 1800~1877)이 이 주제별로 분류하여 K.(Köchel)번호를 붙였다. 그에 따르면 모차르트의 작품은 모두 626곡으로 알려져 있다.
짧은 생애에 비추어 많은 작품을 남긴 모차르트는 그의 생애에서 볼 수 있듯이 오스트리아라는 한 지역에서만 정착하지 않고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활동한 국제적인 작곡가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음악이 하이든이나 베토벤의 음악보다 더욱 다양한 소재를 선택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입증이 된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어느 한 국가나 민족의 음악만을 반영하지 않고 세계적인 음악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주의 음악의 사상과도 일치하며 '절대음악(absolute music')의 모델이 되었다고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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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막
- 도입-살려 줘! 살려 줘!(타미노, 3명의 시녀)
- 아리아-아,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여기서(파파게노)
- 아리아-우아한 자태여(타미노)
- 아리아-두려워 마라! 젊은이여!(밤의 여왕)
- 5중창-음 음 음(타미노, 파파게노, 3명의 시녀)
- 3중창-작은 새여 어서 오라!(파미나, 모노스타토스, 파파게노)
- 2중창-사랑을 아는 남자는(파미나, 파파게노)
- 피날레-이 길을 따라서(파미나, 파파게노, 변사, 모노스타토스, 자라스트로, 합창)
제 2막
- 승려의 행진
- 합창과 아리아-들어주오 이지스, 오지리스 신이여(자라스트로, 남성 합창)
- 2중창-조심하시오, 여자들을!(제2의 변사, 승려)
- 5중창-어째서? 이런 곳에 있느냐?(타미노, 파파게노, 3명의 시녀)
- 아리아-누구라도 즐겁게(모노스타토스)
- 아리아-나의 가슴 분노로 불타올라(밤의 여왕)
- 아리아-이 성스러운 궁전은(자라스트로)
- 3중창-지금 또 다시 당신들을(3명의 소년)
- 아리아-아, 나의 모든 행복은(파미나)
- 승려의 합창-오! 이지스, 오! 오지리스(남성 합창)
- 3중창-이제 모두 끝인가요?(파미나, 타미노, 자라스트로)
- 아리아-애인이나 마누라가 이 파파게노에게(파파게노)
- 피날레-머지않아 날이 밝으면(3명의 소년, 파미나, 2명의 갑옷을 입은 사내, 타미노, 파파게노, 파파게나, 모노스타토스, 밤의 여왕, 3명의 시녀, 자라스트로, 합창)
가극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오페라는 단순히 음악극이라는 뜻은 아니다. 음악을 주로 한 극이라면 오페레타나 뮤지컬도 있지만, 그것들을 오페라라고 하지는 않는다. 즉 오페라는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을 구비해야만 한다.
첫째, 16세기 말에 이탈리아(피렌체)에서 일어난 음악극의 흐름을 따른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이전에 유럽에 있었던 종교적인 음악극은 오페라가 아니며 또 이 흐름에 속하지 않는 음악극, 예컨대 창극 같은 것도 오페라가 아니다.
둘째, 대체로 그 작품전체가 작곡되어 있어야 한다. 즉 모든 대사가 노래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페레타나 뮤지컬은 이런 점에서 오페라가 아니다.
야코포 페리, 야코포 코르시, 프란체스코 카발리,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와 같은 초기 작곡가들은 다프네·율리시스·오르페우스 등 옛 신화에서 소재를 찾았으나,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포페아의 대관식 L'incoronazione di Poppea"은 로마의 실제 인물 네로와 포페아를 다루었다.
파리의 루이 14세 궁정에서는 장 바티스트 륄리의 호화로운 작품이 오페라의 발달을 촉진시켰고, 빈의 궁정에서는 피에트로 안토니오 체스티의 이탈리아 오페라가 공연되었다. 영국에서는 별로 발전하지 못했지만, 헨리 퍼셀이 여학교에서 공연하려고 작곡한 걸작 "디도와 아이네아스 Dido and Aeneas"가 나왔다.
18세기 중엽 런던에서 대중화된 오페라는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형식을 독일 태생의 작곡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 우아하게 다듬은 것이었고, 헨델은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로 형식화한 알렉산드로 스카를라티의 오페라 양식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아리아에서는 행동은 정지되지만 등장인물은 노래로 그 순간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했다. 따라서 주연 가수의 역할이 한층 중요해졌고 특히 여자역 대부분을 맡았던 카스트라토(castrato : 거세한 남성 소프라노)에게 특별한 관심이 모아졌다.
같은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장 필리프 라모가 극적 효과를 위해 대사를 강조하고 형식을 더 유연하게 하고 대규모 발레 막간극을 늘리는 등 오페라를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201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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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
Mozart, Wolfgang Amadeus (1756.1.27~1791.12.5) 오스트리아
그림은 없어서 죄송해요. 모차르트의 생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Salzburg)에서 슐라텐바흐 대주교의 궁정 음악가인 레오폴트 모차르트(Johann Georg Leopold Mozart)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재능이 발견되어 아버지 레오폴트는 4세 때부터 그에게 클라비어를 가르치고 연주도 시켰다. 6세 때에는 이미 뛰어난 하프시코드 연주자가 되어 있었고, 오르간과 바이올린의 연주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는 공식적인 교육은 받지 않고 아버지에게서 음악교육을 받았다. 1762년에 레오폴트는 아마데우스와 그의 누이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Maria Anna Mozart)를 데리고 뮌헨(Munchen)으로 첫 번째 연주여행을하였다.
이후 10년 동안 연주여행을 계속하는 가운데 아마데우스는 유럽 여러 지역의 많은 작곡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게 된다.
빈에서는 전고전주의의 거장 바겐자일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1763년 파리에서는 쇼베르트(Johann Schobert)의 클라비어 양식을 익힐 수 있었으며 글룩의 오페라도 알게 되었다. 1764년, 런던에서는 J. C. 바흐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의 오페라와 교향곡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밖에도 만하임에서는 교향곡의 창작기법을 공부할 수 있었고, 네덜란드에서는 건반악기 음악을, 이탈리아에서는 오페라의 창작기법을 익힐 기회를 얻었다.
1766년 11월에 잘츠부르크로 돌아와서 최초의 오라토리오(1767)를 작곡하고, 1768년에는 빈으로 가서 또 다른 오라토리오를 위촉받아 작곡하였다. 1769년에 다시 부친을 따라 이탈리아로 연주여행을 하면서 즉흥연주와 암보로써 천재적인 재능을 소개하였다.
1771년에 잘츠부르크를 돌아왔다가 다시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여행을 한 뒤 고향으로 와서 작곡과 연주활동을 하였으나 대우는 충분치 않았다.
모친과 함께 다시 외국에서 활동하기 위하여 독일의 여러 지역과 파리 등지로 갔으나 환영을 받지 못하였고, 모친도 이 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779년에 잘츠부르크로 돌아와서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잠시 일하였고, 1781년에 궁정음악가직을 사임하고 독립된 음악가로서 활동을 시작한다.
귀족과 왕실 가족 앞에서 연주를 하거나 피아노 교습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1782년에는 콘스탄체 베버(Constanze Weber)와 결혼하면서 창작활동은 더욱 활발해졌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가정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1784년 프리메이슨(Freemason)단원이 되어 이 운동을 위한 작품도 썼으며 1786년에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이듬해에는 돈 조반니를 작곡하였고, 실내악 작품과 교향곡의 걸작품들도 이 때에 나왔다.
그러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여 1791년 마지막 오페라 <마적>을 작곡할 무렵에는 극도로 쇠약하여졌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레퀴엠작곡을 의뢰받고 작업을 하던 도중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1791년 12월 6일에 행하여졌다.
하이든과 함께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모차르트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이미 6세 때에 미뉴에트를 작곡했고, 9세에 교향곡을, 11세에는 오라토리오, 그리고 12세에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음악 장르도 다양해서 교향곡이나 오페라와 같은 대규모의 기악곡과 성악곡에서부터 가벼운 소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작곡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에게서 받은 음악교육과 많은 연주여행을 통해 얻은 자연적인 체험으로부터 탄생한 것이다.
600여곡이 넘는 작품들에는 작품번호가 붙어 있지 않았는데 편집자 쾨헬(Ludwig von Köchel, 1800~1877)이 이 주제별로 분류하여 K.(Köchel)번호를 붙였다. 그에 따르면 모차르트의 작품은 모두 626곡으로 알려져 있다.
짧은 생애에 비추어 많은 작품을 남긴 모차르트는 그의 생애에서 볼 수 있듯이 오스트리아라는 한 지역에서만 정착하지 않고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활동한 국제적인 작곡가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음악이 하이든이나 베토벤의 음악보다 더욱 다양한 소재를 선택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입증이 된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어느 한 국가나 민족의 음악만을 반영하지 않고 세계적인 음악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주의 음악의 사상과도 일치하며 '절대음악(absolute music')의 모델이 되었다고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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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막
- 도입-살려 줘! 살려 줘!(타미노, 3명의 시녀)
- 아리아-아,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여기서(파파게노)
- 아리아-우아한 자태여(타미노)
- 아리아-두려워 마라! 젊은이여!(밤의 여왕)
- 5중창-음 음 음(타미노, 파파게노, 3명의 시녀)
- 3중창-작은 새여 어서 오라!(파미나, 모노스타토스, 파파게노)
- 2중창-사랑을 아는 남자는(파미나, 파파게노)
- 피날레-이 길을 따라서(파미나, 파파게노, 변사, 모노스타토스, 자라스트로, 합창)
제 2막
- 승려의 행진
- 합창과 아리아-들어주오 이지스, 오지리스 신이여(자라스트로, 남성 합창)
- 2중창-조심하시오, 여자들을!(제2의 변사, 승려)
- 5중창-어째서? 이런 곳에 있느냐?(타미노, 파파게노, 3명의 시녀)
- 아리아-누구라도 즐겁게(모노스타토스)
- 아리아-나의 가슴 분노로 불타올라(밤의 여왕)
- 아리아-이 성스러운 궁전은(자라스트로)
- 3중창-지금 또 다시 당신들을(3명의 소년)
- 아리아-아, 나의 모든 행복은(파미나)
- 승려의 합창-오! 이지스, 오! 오지리스(남성 합창)
- 3중창-이제 모두 끝인가요?(파미나, 타미노, 자라스트로)
- 아리아-애인이나 마누라가 이 파파게노에게(파파게노)
- 피날레-머지않아 날이 밝으면(3명의 소년, 파미나, 2명의 갑옷을 입은 사내, 타미노, 파파게노, 파파게나, 모노스타토스, 밤의 여왕, 3명의 시녀, 자라스트로, 합창)
201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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