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25일

8월 20~25일

[ 가정예배 ]

2018년 08월 20일(월) 11:13
월-회개와 역사
본문: 삼상 7:3~10
찬송가: 187장

우리 교회는 경산 계양동에 위치하고 있다. 이전에 교회가 있던 곳은 주인이 월세를 갑작스럽게 많이 올려 요구했기 때문에 급히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전하고 보니 교회 윗층에 가정집이 있었고, 노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꽤 험하게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이 가정과 교회가 수도계량기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어 수도세를 분배하는 일부터 걱정이 됐다. 그러나 기도하는 가운데 마음 속에 있는 인간적인 연약함과 불신앙을 발견하고, 회개하고, 기도하면서 마음에 은혜가 가득해졌고, 지혜를 얻게 됐다. 수도세금을 교회가 다 지불하겠다는 마음을 노 부부에게 전했다. 교회, 카페가 가정집에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많을 듯해 기쁨으로 교회가 수도세를 지불하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때 어르신 부부는 내심 감동을 받은 듯 하다. 이후 노 부부는 동네 모임에서 우리 교회 이야기를 하면서 착한 사람들, 착한 교회라고 소문을 냈다. 부인이 먼저 교회에 등록했다. 남편은 종종 필자를 찾아 상담을 요청하며 헌금을 드리곤 했다.
 
보통 죄악 가운데 두 가지 문제가 생기는데 하나는 그 죄악 자체로 인한 크고 작은 저주와 심판이 따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막히고 능력이 방해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죄악을 회개할 때도 두 가지 역사가 나타나는데 죄로 인한 문제가 사라지게 되고, 막혀 있는 하나님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을 중심으로 단지 진정으로, 금식하며 철저히 회개하며 기도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친히 우레를 발하시어 대적들을 물리쳐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블레셋으로 인한 많은 괴로움과 두려움이 순식간에 해결된 것이다. 회개 가운데 함께 하신 전적인 은혜요, 가장 실제적인 역사인 것이다. 히스기야왕 때도 마찬가지다. 그 아버지 아하스왕의 지독한 우상숭배로 인해 온 땅 피폐해졌고, 망할 지경까지 되었지만 히스기야가 왕이 되어 단지 자복하고 돌이키기만 했을 뿐인데 온 나라가 점점 회복되어 갔고, 큰 기쁨이 있었으며, 갈수록 강해지게 된 것이다. 회개 가운데 하나님께서 친히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하늘의 은혜로 생생히 역사하신 것이다. 이러한 영적인 원리는 오늘날도 조금도 다르지 않다. 죄악된 것을 각성하고, 회개하고, 버리고, 돌이키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문제들이 해결되고,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다른 무엇보다 지금 내 안에 있는 죄악부터 발견하며 자복하고 돌이키며 결단하는 것이 오늘 내 문제의 해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영적각성과 부흥이 늘 함께인 이유이다.
 
오늘의 기도
아직도 회개하지 못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죄악들에 민감하게 하시고,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양범주 목사/행복카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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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신령한 복
본문: 엡 1:3~6
찬송가: 393장

본문의 '신령한'이라는 수식어는 영적인 복으로, 절대 지혜의 복, 절대적인 복을 의미한다. 이 신령한 복은 구체적으로 어떤 복인가?

첫째,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복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이 보혈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흠이 없게 깨끗하게 씻어주신 이 놀라운 복이 우리에게 가장 신령한 복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흠이나 죄를 갖고 설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그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를 흠 없게 하시고 담대히 하나님 앞 지성소 안에 들어가게 허락해 주신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복중에 복이요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안에서 생활해야 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만이 은혜의 증거요 사랑의 결정체이다. 그렇기에 만세전에 계획하신 이 신령한 복들을 느끼고 생각하며 나아가야 한다. 우리에게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마지막 때 천국 갈 때에도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심판자요 변론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둘째,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복이다. 그 기쁘신 뜻대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는데 바로 그것은 성령 하나님을 주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요 구원 받은 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증표가 있다면 성령의 도장이 우리에게 찍혀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몸이 아니라 성령의 전이다. 성령이 우리 속에 거하고 감독자가 되시고 생각을 주관하시고 인격적으로 우리 안에 역사하시고 성령이 바로 보증되어 주시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증명해 주시며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를 그 앞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셋째,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신 복이다.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주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영광이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수 있도록 이 신령한 복들이 내 안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가진 아들들로 세우셔서 우리가 그 기업이 되고 잃어버린 모든 영역을 되찾아 그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과 능력을 찬송하게 하셨다.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 신성의 충만하심과 신령한 복이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를 통해 만물에게까지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이기에 신령한 복을 받은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신령한 복을 이방인과 만물에게까지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경숙 목사/보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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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음을 지켜야 산다
본문: 잠 4:20~27
찬송가: 342장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터는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 마음은 수없이 많은 공격을 받는다. 본문은 우리 마음을 적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성(城)에 비유한다. 왜 성을 집요하게 공격할까? 엄청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성 안에 보화가 있다. 마음은 생명력이 가득하고, 잠재력이 가득한 곳이다. 그래서 모두가 탐낸다. 사람들이 방황하는 이유는 자기 마음을 어디다 둘지 모르기 때문이다. 성경은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고 말한다. 우리의 마음을 둘 곳은 하나님이다.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작업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려는 수많은 것들을 계속 내보내고, 하나님을 우리 마음의 한가운데, 중심에 모시는 작업이다. 이것이 지혜이며, 능력이며,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 비결이다. 본문은 마음을 지키라고 권면한다. 지킨다는 것은 이미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마음의 한가운데, 중심에 하나님을 두는 것, 이것이 정상적인 마음 상태이다. 마음을 지키는 3가지 영적 원리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생각과 마음을 구분하는 것이다. 사탄은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 알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래서 여러가지 생각을 던지고 반응을 살핀다. 계속 자극을 주면서 우리가 어떤 부분에 취약한지 파악한다. 일단 약점이 발견되면 그 부분을 집중 공격한다. 즉, 사탄이 가장 먼저 확보하길 원하는 장소가 바로 우리의 생각이다. 생각은 아직도 내 바깥에 있기 때문에 거부하기가 쉽다. 그러나 내가 생각을 받아들이고 동의하면 내 마음으로 들어온다. 이렇게 되면 빼내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잘못된 생각을 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생각 단계에서 거부해야 한다.
 
두 번째 방법은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이 마음으로 들어갔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일단 입으로 발설된 말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나쁜 생각이 들어갔을지라도 말하지 않고 내 속에서 그 생각을 사라지게 해야 한다.
 
세 번째 방법은 마음을 빛 가운데 노출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주님, 이런 생각이 자꾸 제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께 문제를 가져 가자. 어두운 마음을 빛 가운데 노출시키면 어둠은 물러간다. 세상에 살면서 지킬 것이 많다. 그러나 아무리 보안장치를 잘해도 내 마음이 엉망이 되면 소용없다. 내 마음이 변하면 낭비하게 되고, 헛된 것에 투자하게 되고, 잘못 판단하면 엉망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마음을 지켜야 한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했다.
 
오늘의 기도
마음을 잘 지키게 하시고, 나쁜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나쁜 말을 발설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명환 목사/수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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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본문: 행 8:1~13
찬송가: 501장

흩어져서 힘이 분산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이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루살렘 교회는 이와 정반대이다. 예루살렘 교회가 큰 박해를 당했을 때 사도들만 남겨두고 모든 성도들이 천지사방으로 흩어졌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데 그들은 왜 흩어졌을까?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위기상황에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흩어지게 하셨을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흩어지게 하셨다. 그리스도인은 흩어지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똘똘 뭉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남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흩어지는 사람들이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초대교회인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믿음의 동기들이다.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성령 충만 동기들이고 예루살렘 교회를 함께 설립한 동기들이다. 그러니 흩어지기 싫었을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믿음의 좋은 친구들이다. 그들은 함께 성경을 공부했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고, 기도제목을 함께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는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한 식구다. 날마다 함께 모여 물건을 서로 나눠 쓰고 함께 밥을 먹었다. 그들은 떨어져 사는 가족보다 더 친밀한 식구들이다. 그러니 흩어지기 싫다. 흩어지기 싫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단단히 뭉쳐 자기들끼리만 행복해 하는 집단으로 굳어갔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사람들이 아니라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은 흩어져서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큰 박해를 당하게 하셨고 한데 뭉쳐있던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으로 흩어지게 하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 예수님을 믿으면 행복할 것을 기대한다. 예수님을 믿으면 분명 행복해진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행복해 지는 것에서 멈추면 안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행전 속의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나만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임을 가르쳐주신다. 내가 행복한 곳에 안주하거나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들 곁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흩어져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지혜를 주셔서 나만을 위해 굳어지지 않고 흩어져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현준 목사/청파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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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예수님을 바라보고 경주하자
본문: 히 12:1~3
찬송가: 407장

육상선수는 자기 앞에 있는 금메달을 바라보며 결승점을 향해 경주한다. 사람들은 관심이 있는 곳에 시선을 집중하고 마음을 모으게 된다. 또 마음이 있는 곳에는 시선과 함께 행동이 그곳으로 향한다. 세상을 살면서 바라봐야 할 대상들이 많지만, 영원토록 변함없이 바라봐야 될 대상은 바울이 말한 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다. 세상을 보며 사람을 볼 때에 좌절과 실망이 있지만 예수님을 바라보고 따르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실망한 사람이 없다. 그러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왜 예수를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다.
 
왜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경주해야만 하는가?
 
첫째, 믿음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죄악 된 세상에서 믿음만으로 승리할 수 있다. 여기에서 '믿음의 주'라는 말은 '믿음의 근본이요, 믿음의 대상이며, 믿음의 출발점이 된다'는 깊은 의미가 있다. 우리의 믿음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만일 예수님이 없는 믿음이라면 성립이 이루어질 수 없다. 예수가 없는 신앙은 형식에 불과한 것이다. 신앙의 경주를 하는 자들은 반드시 믿음의 주님을 바라봐야 한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도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온전'이란 말은 '완벽하다'라는 뜻이다. 이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벽하신 분이다. 또'완성'이라는 뜻도 있다. 예수님은 친히 십자가 구속 사역을 담당하심으로써 우리의 구원사업을 완성해주셨다. 또'성숙케 한다'는 의미도 있다. 우리의 믿음은 자라야 된다. 믿음은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 안에서 살 때 성숙된다.
 
셋째, 온 인류의 구원의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바라 보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십자가는 죄인된 우리가 져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지셨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유일한 목적은 죄로 타락한 온 인류가 구원받는 기쁨을 위해서다.
 
넷째,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은 믿는 자에게는 보호자요 구원자이시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주로 임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 바라보며 신앙생활하고 주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면서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죄를 담당해주신 구원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모든 죄를 담당해주신 예수님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 받게 하기 위해서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끝까지 참으셨다. 고난에 직면하여 신앙이 흔들릴 위험을 느낄 때마다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하고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전병윤 목사/신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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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나사로야 나오너라
본문: 요 11:28~44
찬송가: 369장


지난해 첫 주를 보내며, 한 청년(54세) 집사의 안타까운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정신지체 3급 장애로 동네 사람들은 그를 조금은 바보스럽게 바라보았지만 교회에서만은 사찰집사의 역할을 도맡았고 성경책이 다 헤질 정도로 말씀을 읽고, 쓰는 생활로 일관했던 이의 장례식에서 단 한마디의 설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관을 붙잡고 '나사로야 나오너라' 외치면 죽었던 나사로가 베를 동인채로 돌 무덤에서 걸어 나왔던 것처럼 그렇게 관을 열고 "목사님!"하며 나올 것만 같았고, 안타깝기만 한 그의 장례 모든 절차를 눈물로 마쳤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 고령의 권사님이 팔을 움켜쥔 채로 예배에 참석했다. 인사를 나누며 "권사님, 어디가 불편 하십니까?" "예,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삐끗했는데 좀, 불편 하네요. 예배 드리고 병원에 다녀오려구요." 농촌교회에서 청년집사와 노 권사님의 자리가 비는 것은 커다란 사건일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겹치는 것일까? 이쯤에서 은퇴라도 서둘러야 되지 않을까? 내 능력의 한계는 여기까지 인가.' 기도와 탄식으로 한 주일을 보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일날 노 권사님의 자녀 가정 20여 명의 식구들이 자리를 메웠다.
 
'눈물'에는 우리 인생의 참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능력이라는 보석'도 숨겨져 있다. 인간의 희로애락 그 다양함이 눈물로 표현되기도 한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고 기록돼 있다. 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을까?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요한복음 11장 4절에서 "이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라고 말씀 하신 후 이틀이나 지나서야 나사로에게 가신다. 그리고 도착 하셨을 때는 그가 죽은 지 이미 사흘이나 지난 뒤였다.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늦게 도착하셨음에 원망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고 하셨고, 또 예수님께서는 그가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가 판단하고 체념하기도 하고 불가능하다고 규정짓기도 한다. 우리들의 이러한 모습을 예수님은 '비통하고 불쌍하게' 여기시며 우리들을 부르고 계신다. 우리 속에 죽어 있는 '나사로야 나오너라.' 큰소리로 외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 하였느냐" 우리가 예수님의 안타까이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듣고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얼굴은 수건에 싸인채로 믿고 따를 때 비통한 눈물이 기쁨의 눈물로 바뀔 것이다.
 
오늘의 기도
베로 동인채, 수건으로 싸인 그대로 주님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 만남을 통해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날들이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창순 목사/대전신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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