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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불일암(佛日庵)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1,712 작성일200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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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11위, 한문 93위, 한문 해석, 문법 72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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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탑전 아래의 편백 숲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보면 다시 평지길이 나타나고 ㅂ이라는 팻말이 있는 갈림길에서 작은 개울을 건너 대숲길을 지나면 불일암이 나타난다. 이 암자는 제7세 자정국사(慈靜一印, 1293~1301)께서 창건하여 얼마 전까지 자정암(慈靜庵)이라 불렀으며 1975년에 법정스님께서 중수하신 다음 불일암이라고 고쳐 불렀다.

1708년 시습(時習)·이징(以澄)스님이 중수한 것을 시작으로, 1765년에 탁명(卓明)스님이 창건한 공루는 1929년 해체되었고, 1866년 승허(乘虛)스님이 창건한 칠성각(七星閣)은 이듬해 의잠(宜岑)스님이 단청했다. 1891년에는 월화(月和)?계암(桂庵)?용선(龍船)스님이 정문을 중수하고, 1917년 설월(雪月龍燮 1868~1938)스님의 중수, 1921년 서월(瑞月奇文)스님의 서익실(西翼室)중건과 설월스님의 뒷방 수선 이후 6·25로 퇴락되었다가 1975년 법정(法頂)스님이 중건하면서 「불일암」편액을 걸었고 1996년 본채 상부를 해체 중수했다. 1986년에 신축한 해우소도 1997년 해체 복원되었다(감원 德祖). 지금의 본채 자리에는 칠성각이 있었고, 옛날 본채는 밭과 요사채 자리에 있었다.

주석했던 스님들의 면모를 보면 1845년부터 1853년까지는 기봉(奇峰藏旿 1776~1853)스님, 1860년대의 연봉(蓮峰鳳麟 1833~1912)스님, 1877년 경해(鏡海官一 1843~1928)스님, 1879년 통허(洞虛致性 1844~1901)스님, 1886년부터 다음 해까지 원해(圓海鳳玉 1850~1888)스님, 1922년부터 1927년까지 경명(景溟泰敏 1858~?)스님, 1925년 계암(桂庵應寬)스님, 1926년 연해(蓮海)스님, 1929년 호붕스님을 찾을 수 있다. 1879년 열었던 만일회(萬日會)는 1882년 큰 절 보제당(普濟堂)으로 옮겼다. 1835년에 본사 선원 구역인 상대의 칠전(七殿)에서 조성하여 봉안했던 후불탱화(금어 益贊)는 부도전에 이안되었다가 1995년 박물관으로 옮겼으며, 1867년에 그린 칠성탱화(금어 龍院奇衍·就善·妙英)3폭은 본사 관음전에 이안된 후 역시 박물관으로 옮겼으며, 1879년의 지장탱화(금어 雲波就善·天禧·敏禹)도 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경내 북동쪽에 자정국사 부도는 그 모양새가 단아하고 기품이 있는 조각품으로 600여년 세월에도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으며 그 부도에서 나온 사리함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송광사 박물관에 보관 전시되어 있다. 암자 앞에는 대숲 너머로 펼쳐지는 조계산의 조망은 가슴을 트이게 하며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산의 얼굴과 사계절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잇게 하고 있다. 옆에는 조용한 너와 지붕으로 만든 서전이 있으며 단아하고 깨끗한 화장실도 누구나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한다. 뒷산 망수봉(望水峰·望需峰·望守峰)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는 맛은 호령봉(號令峰)과 짝하리라

200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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