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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붓다의 가르침『빠알리 경전』번역한 일아스님?
비공개 조회수 3,077 작성일2008.12.03

 

한겨레신문하고 중앙일보에 난 책 서평인데요.

혹시 이책 읽어보신 분 있으면 책 내용 좀 알려주세요.

 

 

 

 

 

 

[이사람] 남자는 돌처럼, 부처는 님처럼

초기불교 책 펴낸 ‘수녀 출신’ 일아 스님
조현 기자
» 일아(62·사진)
가톨릭 안맞아 개종 “관용·자유 찾아”
미국서 17년간 공부 열매…“이제 시작”
 

가톨릭 수녀 출신으로 불교 조계종에 출가한 일아(62·사진) 스님이 미국에서 17년 동안 공부한 초기 불교의 가르침을 책으로 담아왔다.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민족사 펴냄)은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삶이 생생히 담겨 있는 초기경전에서 가르침과 계율, 자비 실천, 수행 등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간추려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그의 처녀작이다.

 

60대라곤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해맑은 모습에 거침 없는 말투의 일아 스님은 서울여대를 졸업하고 여고 교사를 하다가 서울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에 입회해 6년간 수련생활을 하면서 계성여중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가톨릭 수녀였다. 그는 1982년 수녀원을 탈퇴한 뒤 이듬해 순천 송광사에서 만난 법정 스님의 소개로 ‘조계종 비구니특별선원’인 석남사에서 법희 스님(현 석남사 선원장)을 은사로 출가했다.

 

스님은 “어떻게 해서 개종하게 됐느냐”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나는 가톨릭을 좋아한다”면서 “다만 나에겐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가톨릭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비방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면서 “나로서는, 내 종교가 아니면 안된다는 배타성과 독선적 교리를 넘어선 관용과 자유를 찾았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러면 애초 왜 수녀가 됐을까. “미션스쿨인 서울여대에서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독신 수도 생활을 동경했고, 그 때는 종교적 차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스님은 머리를 빡빡 깍고 있는데 이상해 보였고, 수녀들은 멋있게 보여서 수녀회에 입회했죠.”

 

승복으로 갈아 입은 뒤 일아 스님은 운문승가대학을 졸업했다. 개신교학교인 서울여대와 가톨릭신학원에 이어 승가대까지 마침으로써 주요 종교의 대학과정을 모두 마친 셈이다.

 

40대 중반인 91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저명한 한인 불교학자인 박성배 교수가 재직 중인 뉴욕스토니브룩주립대 종교학과 학사 과정을 거쳐 웨스트대 비교종교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거쳤다. 처음엔 영어가 잘 들리지 않아 강의를 녹음한 뒤 한 자도 빼놓지 않고 노트에 적어 모두 외울 만큼 열성적으로 공부했다는 그는 지금도 온종일 책과 컴퓨터를 들여다 봐도 눈이 아프지 않다는 ‘타고 난 공부벌레’다.


초기 불교를 공부한 이유는 “과연 부처님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가르쳤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한국에서는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초기 경전을 푸대접하지만 서구에선 초기 경전 연구 열기가 뜨겁고, 언제든지 루이스 랭카스터나 아난다 구르거 같은 대학자들에게 모르는 것을 물을 수 있어서 여전히 미국에서 연구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처녀 때부터 남자엔 아무런 관심이 없이 오직 수도생활만 동경해왔다는 일아 스님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앞으로 초기 불교를 소개할 의욕에 소녀처럼 들떠 있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수녀 그만두고 무작정 법정 스님 찾았죠` [중앙일보]

붓다의 가르침 『빠알리 경전』 번역한 일아 스님

 

“한국 불교는 해도 해도 너무하죠. 팔리어 경전을 푸대접하는 게 말입니다.”

1일 서울 인사동에서 일아(一雅·62) 스님을 만났다. 그는 옆구리에 책을 한 권 끼고 있었다.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민족사, 752쪽, 2만8000원)이었다. 불교의 방대한 팔리어 경전에서 ‘알맹이’만 추리고 추려 번역한 책이다. 그는 “이 책의 번역을 위해 대학 강의도 그만 뒀다. 2년간 사람도 안 만나고, 전화도 안 받았다. 두문불출하며 쓴 책이다”고 말했다. 방대한 작업, 2년 만에 그걸 마친 데는 배경이 있었다.

일아 스님은 처음에 수녀였다. 지금처럼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아니었다. “서울여대에 다닐 때부터 목이 말랐어요. 영화에도 미쳤었고, 음악에도 미쳤었죠. 한때는 모든 팝송을 다 외울 정도였죠.” 그렇게 문학과 여행에도 미쳤었다. “그런데도 목이 말랐죠. 그걸 통해선 ‘완전한 인간’에 대한 갈망이 채워지질 않더군요.”

그는 고민했다. ‘시집을 갈 거냐, 수도자가 될 거냐.’ 결국 수도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비구니 스님은 머리를 빡빡 깎잖아요. 그게 너무 낯설었죠. 그래서 수녀가 되기로 했어요.” 집에선 난리가 났다. 어머니는 몸져눕고, 오빠는 “이게 부모님께 대한 보답이냐?”며 그의 뺨을 때렸다. 유명 정치인이었던 아버지는 “왜 자연을 거스르며 살려고 하느냐”며 호통을 쳤다. 그 앞에서 그는 “아버지, 저를 붙들어 매시겠습니까?”하고 되물었다.

결국 그는 서울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에 입회했다. 그리고 가톨릭 신학원을 졸업한 뒤 수녀가 됐다. 그렇게 6∼7년가량 수녀로 살았다. 그러나 종신서원을 하진 못했다. “가톨릭은 너무나 매력적인 종교입니다. 엄숙하고, 자아에 대한 절제도 강하죠. 그리고 점잖죠. 2000년간 이어온 가톨릭의 전통에는 분명 힘이 있어요. 다만 저와 적성이 맞질 않았을 뿐이죠.”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을까?’ 그리고 ‘아니오’란 답을 얻었다.

그 길로 그는 수녀복을 벗었다. “막막하더군요. 딱히 갈 데도 없었죠.” 그때 ‘법정 스님’이 생각났다. 사실 법정 스님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수도회 수련원에서 도서관 소임을 맡은 적이 있었죠. 그때 법정 스님 책을 많이 읽었어요. 당시 수녀님들 사이에서 법정 스님의 인기가 ‘짱’이었죠.”

그는 무작정 송광사 불일암으로 갔다. 거기서 법정 스님을 만났다.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물었죠. ‘올바른 수행을 할 수 있는 장소와 그걸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이 있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말이죠.” 법정 스님은 장문의 편지와 함께 그에게 조계종 비구니 특별선원인 석남사를 소개했다. 그는 석남사에서 행자 생활부터 다시 시작했다. “수도 생활은 이미 겪었죠.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힘들 건 없었어요.”

행자 생활을 마치고 그는 운문사 승가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그런데 참 궁금했어요. 기독교에선 예수님의 직설이 담긴 ‘신약성경’이 있잖아요. 저는 그걸 외우다시피 했어요. 그런데 승가대학에선 부처님의 직설이 담긴 팔리어 초기 경전을 배우질 않더군요. 중국 선사들의 얘기만 가르쳤죠.” 그가 궁금한 것은 ‘붓다’였다. 붓다는 어떤 사람이었나.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어땠나. 그걸 보고 싶었다.

결국 그는 미얀마의 마하시명상센터로 떠났다. “거기서 2년간 목숨을 걸고 수행을 했어요. 부처님 당시의 초기불교수행법으로 말이죠. 그때 절감했어요. 불교는 정말 ‘수행의 종교’구나.” 그는 태국의 위백아솜 위파사나 명상수도원에 가서도 수행을 했다.

그런 뒤 미국으로 갔다. 법정 스님을 찾아가 인사도 올렸다. 배웅을 하던 법정 스님은 그에게 “뒤돌아 보지 말고, 앞으로 달려라”고 말했다. 일아 스님은 미국의 뉴욕 스토니브룩 주립대에서 종교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LA로메리카 불교대학의 교수가 됐다. LA갈릴리 신학대학원에선 불교학 강의도 했다.

일아 스님은 이번에 책을 내며 “저는 이익을 바라지 않는다. 인세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출판사 측에 “책값을 낮춰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3만5000원 예정이던 책값이 2만8000원으로 떨어졌다. 일아 스님은 “초기 불교에 대한 한국불교의 부정적인 시선이 이 책을 통해 깨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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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 답변
2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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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g****
고수
불교 96위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말은 좋은데 의도가 문제로다.....

 

여기에 답이 있을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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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불교 수행자님

 

비공개

 

2008.11.25 09:26

답변 4| 조회 103

 

저는 소승불교를 좋아하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상좌불교 하시는 분들이 기독교를 배척하는 게 부처님 가르침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천주교 분들은 상좌불교를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많은 분들이 수행을 겸하고 있는 실정이고요.

그런데 여기 게시판을 보면 편협한 생각을 하신 분들이 많은 게 안타깝습니다.

상좌불교의 불과의 가르침이 조직화하지 말자, 강요하지 말자, 관념짖지 말자...

어디에도 소속을 두지 않고 법을 전할 뿐이며 받는 자는 법을 받을 뿐인 줄 알고 있는데

편협한 표현과 말투 잘못되지 않는가 합니다.

현 한국불교와 상좌불교는 많은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라는 이름으로 조계종에 묶인다면 불과의 가르침과는 다른 길입니다.

조계종에서 나오셔서 넓은 시각으로 종교를 구별 짓지 마시고 가르침을 주시는 게 맞다고 봅니다.

 

 

사두 사두 사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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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3

 

h-- 님

 

네이버 불교 카테고리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편협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불교의 가르침은 강요할 필요가 없으며 관념론도 아닙니다. 고의 소멸 방법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열려있는 종교입니다. 08.11.2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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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ghtwhi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좀 괘심( ^^ )하네요. 아니 남의 종교에 와서 상좌부 불교와 대승 조계종불교를 이간하려 합니까? 불교의 수행법을 배워서 좋으면 좋았지, 왜 상좌부 불교를 조계종 불교에서 떼어 내어 불교와 천주교의 중간적 종교로 만들려고 하세요?// 불교가가진 좋은 것은 탐나고, 그것이 불교란 종교에 들어 있다는 것은 싫으세요? 남의 보물이 탐나니 담 밖으로 내어 놓어라고 하고 싶으세요?// 그 좋은 것이 불교 것이라고 인정하기 싫으세요?/// 가만히 생각하니 그런 생각이 드는 군요. 느낌이 그래요... 농담 비슷한 소립니다. 그래도 느낌이 영 그래요...^^ 08.11.26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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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님

 

위빠사나 feel 이나네여~ 위빠사나 배우러갔다가 강의하시는분이 한국불교&기도 수행(염주돌리며염불)을 폄하발언하는 것 듣고 정떨어져 안갔습니다... 불교는 대도무문이라고 합니다...참선을 하든 다라니(진언) 외우든 구분짓지 않습니다..질문하신분 의도(동기) 먼지 모르겠지만,, 느낌이 영~ -.-;; 08.12.02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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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의 탈을 쓴 기독교인...

 

위빠사나 수행하는 기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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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에서 위빠사나 수행자를 다시 볼 수 밖에....

 

 

당신들이 대승불교, 한국불교만 공격하지않는다면,

당신들이 얼마든지 위빠사나 수행하는 것은 시비않습니다.

 

공격만 마세요....

 

 

그리고

불교공격자들 부추기지 마시고,

불교지키려는 사람들 발 걸지만 마시오...

 

더 기대 안합니다.....

 

 

2008.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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