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숲서 자라는 '독야청청' 양치류 삼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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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권의 야생화 이야기
지리산 숲서 자라는 '독야청청' 양치류 삼총사
정연권의 야생화 사랑 쇠고비ㆍ족제비고사리ㆍ비늘고사리
쇠고비 소 뿔처럼 굽은 모습 나물로 먹을순 없어
족제비고사리 족제비 꼬리모양 갖춰
비늘고사리 잎자루 비늘조각 형태
  • 입력 : 2018. 01.13(토) 15:30
왼쪽부터 쇠고비, 족제비고사리, 비늘고사리고사엽과 상록엽.
겨울의 정점 소한이 지난 뒤 지리산을 찾았다. 차가운 기운이 차고 넘쳐서 찬바람이 울어대는 숲은 황량하다. 퇴색된 낙엽 은 바람에 뒹굴고 서성이다가 이윽고 다소곳이 옹기종기 모여 옹알 거린다. 절을 감싸면서 흐르는 물소리가 애잔하게 들린다. 여름의 소리와 다른 계곡 물소리를 품어본다. 간간이 보이는 소나무 곡선이 사랑스럽다. 잎이 없는 나무는 하늘 끝에 매달린 가지마다 섬세한 곡선이 실핏줄처럼 퍼져 있다. 작은 바람에도 소란하던 나무들은 고요하고 침묵으로 추위를 감내하고 있었다. 차가운 아늑함이라고 할까. 치렁치렁한 잎이 없으니 퇴색돼 힘없는 햇빛이지만 숲 깊숙이 내려와 있다. 구석구석 비춰 조그만 온기를 내려주고 있다. 그래. 그렇구나. 잎에 막혔던 햇살이 저렇게 내려 왔구나. 햇빛이 예쁘고 부드럽고 살갑다. 햇빛이 지난 자리에는 갈색 낙엽과 흰눈 사이로 싱그런 초록빛이 반짝였다. 무언가 살아 숨쉬는 생명체가 하나 둘 무리지어 물결 친다. 엄동설한에 굴하지 않는 저 절개는 무엇일까. 봄에는 꽃을 보느라 바빠서 안보였고 여름에는 녹음방초에 가려서 볼 수 없었다. 가을에는 오색단풍에 취해 하늘만 보다가 놓쳤다. 초록이 사라지고 초라한 겨울이 돼서야 발아래 살고 있는 존재가치를 발견했다. 잘나고 영웅호걸ㆍ절세가인이 자나가고 나서야 소박한 민초들이 보이는 것처럼 초록색깔을 가졌으나 꽃이 없는 야생화가 눈에 들어와 가슴에 피어나고 있었다.

꽃이없는 야생화는 당연히 꽃이 없다. 꽃이 없기에 욕심이 없다. 꽃이 언제필까 가다리지 않아도 된다. 꽃이 진다고 서글퍼 할 필요도 없다. 꽃이 화려하다고 교만을 부르지도 않고 초라하다고 기 죽을 이유도 없다. 꽃이 없다고 쳐다보지 않는다. 꽃이 없기에 열매도 없고 열매가 없으니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 먹을 것이 없다고 타박한다. 그러나 아시는가. 저 청초함과 강건함을. 꽃보다도 아름답고 꽃보다 친근하고 우아하고 고결하다는 것을.

지리산 남쪽관문 화엄사에서 연기암으로 가는 오솔길 주변에는 겨울을 잊고 살아가는 꽃보다도 아름다운 야생화가 있다. 이름하여 '쇠고비' '족제비고사리' '비늘고사리' 삼총사다. 독야청청이다. 굳은 절개를 갖춘 이들은 누구인가. 세 가지 의미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천지인(天地人)일까. 진선미(眞善美)일까. 아니다. 아닐 것이다. 화엄사가 있기에 탐(貪), 진(瞋), 치(痴) 삼독(三毒)을 경계하라는 의미다. 탐내지 말고 화내지 말고 어리석지 말라는 교훈을 알고도 실행하지 못했다. 욕심과 욕망이 머릿속에 가득해 무겁고 혼란스럽다. 과욕으로 눈을 부릅뜨고 싸웠다. 모두가 어리석음 아닌가. 내 영혼은 왜 그리도 가벼워 작은 일에도 크게 흔들렸던가. 말로 상처 받고 말로 상처를 줬다. 말에 감정을 섞어 보내니 서로가 괴로움이요 고통이 아니었던가.



●꽃보다 아름다운 양치류

이끼나 버섯처럼 꽃이 피지 않는 식물을 은화(隱花)식물, 꽃피는 식물을 현화(現花)식물 이라 한다. 은화식물 중 유관속을 가진 고등식물이 양치식물이다. 양치(羊齒)식물이란 잘게 갈라진 잎 가장자리가 양의 이빨이 있는 톱니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졌다. 지구상에 30과 1만2000종이 서식하고 있다. 국내에는 272종이 자생하고 있으며 특산종은 19종이다. 공룡이 살던 시절에 우람한 양치류가 지금의 석탄이 됐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겠다. 양치류는 공기정화식물로 각광을 받는데 그 중 음이온 발생량이 많아 주목받는다. 농촌진흥청 홍대기ㆍ노희선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공기의 비타민이라는 음이온 발생량이 도깨비고비는 ㎤당 570개, 주저리고사리ㆍ고비고사리 680개, 골고사리 690개, 봉의꼬리 707개, 세뿔석위 797개 등 이다.

겨울을 이겨내고 푸른빛을 갖는 비결은 무엇일까. 어떠한 비밀과 전략이 있는지 살펴보면 생명체의 신비로움에 놀란다. 잎이 두꺼워 지고 색채가 진해지면서 땅에 바짝 엎드려 찬바람을 피한다. 둘째, 세포내 수분량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지방산, 당, 특정효소 등 물질을 비축해 놓아 세포가 얼지 않는다. 셋째, 뿌리에서 잎이 바로 나온다. 뿌리와 잎 사이에 물이나 영양분의 움직이는 거리가 짧아 유리하다. 잔털과 비늘조각으로 촘촘히 감싸여 있어 따스함을 유지한다.



●비굴하지 않는 자태 쇠고비

초록물결도 숨죽여 잠든 오솔길에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석축사이 늘어져 찬란히 빛나는 '쇠고비'다. 고상한 자태에 비굴하지 않는 모습이다. '쇠'는 우편(羽片)의 모양이 소(牛)의 뿔처럼 굽은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우편이란 새의 깃 모양으로 갈라진 각 조각을 말하는 식물분류의 전문용어다. 쇠는 철(鐵)을 말하기도 하고 단단하면서 강인한 의미를 뜻하기도 한다. 서리와 매서운 찬바람도 끄떡없이 푸르름을 간직한 채 독야청청 하기에 이런 의미를 붙여도 된다.

소의 고기를 '쇠괴기'라 했다. 한우는 살아서 쟁기질과 우마차를 끌고, 마지막 고기까지 사람들에게 주는 친근한 가축이다. 우공(牛公) 이라 칭송하며 가족같이 길렀고 큰 재산 이었다. 산업화가 시작되는 60~70년대 소 팔아서 아들 대학공부를 시켜 상아탑이 아니라 우골탑이라고 했다. 3.8일은 구례장날이다.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 겨울철이면 어머니는 양은 주전자를 들고 15리 길을 걸어 구례장에 갔다. 올 때 주전자에는 선지가 들어 있었고 신문지에는 천엽과 소 내장이 쌓여 있었다. 무쇠 솥에 무를 송송 썰어넣고 천엽과 선지를 넣어 쇠고기국을 끓었다. 누런 기름이 둥둥 뜬 쇠고기국 이었지만 살코기는 한 점도 없었다. 그러나 맛은 기가 막혔다. 무김치 국물을 풀어 보리밥을 말면 천하 일미였다. 쇠고기가 비싸 선지와 내장으로 끓였지만 기름이 둥둥 뜨고 쇠고기를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지난해 지리산국립공원 지정50주년 이었다. 지리산이 국립공원1호로 지정 된 것은 구례군민들의 쇠고집이 한몫했다. 전쟁과 혼란기 속에서 지리산 원시림은 탐욕의 대상 이었다. 산이 황폐화 돼는 현실에 가슴 아파하던 구례군민들은 1963년 가구당10원씩 10만원을 모금해 중앙정부에 국립공원을 지정해 달라는 청원 경비로 썼다. 그 당시 10원은 라면1봉 가격으로 현재 라면값으로 환산하면 700만원 이지만 당시 구례읍내 기와집 한 채 값이었다. 쌀이 ㎏당 30원으로 10원이면 부부 한 끼 밥을 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당시 구례군민 1만200가구 중 1만가구가 참여했으니 그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라면 1봉과 한끼 밥값을 내놓았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왜 그랬을까. 지리산은 어머니의 산이었기에 지켜야 한다는 다같은 마음이었다. 민초들의 먹거리, 땔감을 얻은 보금자리이기에 돌봐야 했다. 지리산이 황폐화 되면 홍수ㆍ가뭄ㆍ굶주림은 민초들의 몫이었기에 생명줄의 영산이었다. 무법천지에 민초들은 막을 힘이 없었고 정성을 모아 국가에 호소했다. 1967년 20원씩 거둬 줄기차게 국립공원 지정을 건의했고 마침내 1967년 12월29일 제1호로 지정 받았다. 수 년간 투쟁은 쇠고집 때문이다. 쇠같이 단단히 뭉친 민초들의 승리요 숭고한 결과물로 오늘의 지리산이 자리하고 있다.

쇠고비는 면마과로 쇠고비 속에 속한다. 전세계 20여종이고 국내 5종이 살고 있다. 잎은 광택이 없으며 옆으로 휘어져 있다. 잎 뒷면에는 포자낭군이 총총히 박혀 있어 7~8월이면 포자가 날아가 새로운 생명체를 만든다. 분화용으로 화분에 심거나 암석정원, 담벼락에 심어도 좋다. 봄에 흑갈색 인편을 뒤집어쓰고 올라오는 연한 새싹은 가히 일품이다. 몽글몽글한 자태에 신성함과 경이로운 찬사가 절로 나온다. 고비와 달리 맛있는 나물은 아니다. 먹을 것이 귀한 겨울에 산토끼나 고라니 같은 산짐승들이 먹지 않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근경을 생약명으로 혼계두(昏鷄頭)라고 한다 독성이 있어 함부로 사용하면 안된다. 감기ㆍ이질ㆍ간염 등에 좋다.



●수려한 족제비고사리

조금 더 올라가니 같은 면마과이지만 관중속 '족제비고사리'가 보인다. 잎이 넓고 크게 퍼지고 부드러워 관상가치가 커서 화분에 심어 실내에 놓아서 기르기 좋다. 잎이 넓은데 끝에는 좁아져서 끝에는 족제비꼬리처럼 부드러운 잎과 자태를 가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족제비란 이름이 좋은 의미는 아니다. 강추위를 약삭빠르게 피해 푸르름을 간직하고 잎이 반질반질하니 좋은 의미의 이름으로 불러주면 좋을텐데.

고사리라는 이름은 잎이 손으로 턱을 괸 모양으로 말려있다는 뜻의 '괴살이'에서 유래됐다. 애기손의 모습이 피어나는 고사리와 같다는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드는 모습은 더 없이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것인데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있을까. 이보다 아름다운 모습은 없을 것 같다. 고사리는 산성토양을 좋아하므로 화분에 심을 때나 정원에 가꿀 때는 산성토양을 만들고 부엽토 등으로 비옥한 흙을 만들어 주어야 잘 자란다. 나무아래 그늘진 곳에 심으면 사철 새로운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아파트 베란다에도 무방하다.



●서글서글한 비늘고사리

서글서글한 '비늘고사리'도 만났다. 면마과로 관중속이며 한국이 원산지다. 가장 북쪽까지 북상하는 내동성 반상록양치류로서 차나무 재배 한계지역임을 알 수 있다. 깃모양 잎(羽片)은 긴 창끝모양으로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양쪽 밑이 귀처럼 생겼다. 잎자루는10~20㎝이고 갈색 비늘조각(鱗片)이 뻗어 나온다. 이런 연유로 비늘고사리라고 한다. 큼지막한 갈색 비늘조각 때문에 '곰고사리'라고도 부른다. 이는 한자명 인모궐(*毛蕨)과 일본명 쿠마와라비(熊蕨)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늘고사리는 포자가 익어 비산하면 작은 깃 모양 잎이 먼저 마르면서 낙엽이 된다. 겨울에 파랗게 남아 있는 잎은 포자가 형성되지 않은 잎이다. 그래서 반상록성 양치류라고 한다.

아무데나 잘 자라서 지피식물로 적합하다. 역시 나무 아래나 담장사이, 관리가 어려운 공원이나 아파트 사이에 좋다.

쇠고비, 족제비고사리, 비늘고사리 모두 꽃말은 없다. 고비는 '몽상'이고 고사리는 '달성'이라고 있는데 겨울을 지키고 삼독을 경계하는 삼총사에게는 없다. 어찌하랴. 없으면 우리가 만들면 되지 않는가. 쇠고비 꽃말은 '비굴' 족제비고사리는 '무욕과 무심' 비늘고사리는 '서글서글한 당신' 이라고 붙이면 어떨까. 혹한에도 끄떡없는 쇠고비를 보면서 '비굴'하지 말고 어려운 고비를 슬기롭게 넘겨보자. 수려한 자태를 보면서 욕심 부리지 말자. 서글서글한 당신이 있기에 화내지 말고 웃어 보자. 삼독을 경계해 멋진 세상을 꿈꾸자.

혼자 꾸는 꿈은 꿈이지만 많은 사람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하지 않던가.



색향미 연구소장ㆍ경남과기대 겸임교수 정연권의 야생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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