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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조선의용대 조선의용군 조선독립동맹
비공개 조회수 1,261 작성일2018.06.23
조선의용대는
화북지대로 , 한국광복군으로 나눠지죠 ...!

그리고
한국광복군은 1940년에
조선독립동맹은 1942년에 만들어지는데

Q1 조선독립동맹이 화북지역으로 온 사회주의자들이
만든거라는데 그럼 이때 이 사회주의자들이
화북지역으로 간 조선의용대의 일부인가요?

Q2 조선의용군은 화북지역으로 간 조선의용대의 일부라는건 알겠지만.. 조선독립동맹과 무슨 관련이 있는건가요?
(혹시 조선의용군이 조선독립동맹의 군대같은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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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요약 
1.조선의용대 일부 사회주의자들입니다
2.조선 독립동맹 군사조직이 조선의용군 입니다 (임정 군사조직이  광복군 이듯이)

흐름을 잘 이해 하셔야 합니다  요것들이 북한 건국 핵심세력이되지만   한국전쟁이후 전원 숙청 당합니다
이유는  패전  책임이라는명분과 실제는  김일성의 권력 장악 


조선의용대

조선의용대(1938)

대장 김원봉과 조선민족혁명당의 주도로19381010일중국 한커우(漢口)에서 결성된 독립군이다. 조선민족전위동맹 산하의 단체로 분류 후일에 광복군과 연합 흡수.

 

조선의용군(1938)

19381010일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의 일부가 분리되어 신설된 항일 무장단체로, 중국 화북지대에 조직된 항일 무장투쟁 군사조직을 말한다. 1942년 조선의용군으로 흡수됩니다

 

조선의용대 화북지대(1941)

1941년 김원봉과 의용대내의 라이벌이었던 공산주의자 최창익은 의용대가 화북으로 이동하자

무정, 김두봉, 한빈 등을 내세워 화북지방의 의용대 통제권을 장악 합니다 .

19381010일 호북성무한에서 창설된 조선의용대의 주력 80여 명은 1941년 여름 화북의 팔로군 근거지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이미 항일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조선 청년들과 함께

 

194177일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창설하고 일제 패망 때까지 화북 각지에서 항일전을 수행. 이 사이 19427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는 조선의용군 화북지대로 개칭하게됩니다  

이때부터 조선의용대는. 이들은 북조선의 성립 후에 정치세력인 연안파 라고 합니다.

 

화북조선청년연합회 [華北朝鮮靑年聯合會](1941)

1941년 중국 동북지역의 조선인 공산주의자 및 조선의용대 일부가 결성한 민족해방운동조직.

화북조선독립동맹의 전신입니다

1938년 중국 내 조선민족해방운동조직인 조선민족혁명당 내에서 김원봉(金元鳳)의 노선에 반대하여 탈당한 최창익(崔昌益) 등이 조선청년전위동맹을 결성 같은 해 10월 조선민족전선연맹(朝鮮民族戰線聯盟)의 무장력으로 재편된 조선의용대가 일제의 중국 침략을 피해 남하 이에 반발한 조선의용대의 많은 대원들은 화베이[華北] 지방으로 북상해서 홍군(紅軍)과 함께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합니다 이에 옌안[延安]에 있던 조선민족전선연맹의 최창익 등은 홍군 포병단장이던 무정(武亭)과 만나 항일조중연합조선독립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기로 결의다. 이들은 중국공산당의 항일군정대학 졸업자와 북상한 조선의용대원을 중심으로 1941110일 산시 성[山西省] 타이항 산[太行山]에서 화북조선청년연합회를 조직한것입니다  

 

조선독립동맹 (1940)

한국의 독립운동단체이자 해방정국의 좌파 정당이었다. 1940년 중화민국 화베이에서 결성되어 화북조선독립동맹이라고도 부른다. 당수는 김두봉이었고, 김무정, 최창익, 백남운, 허정숙 등이 당의 주요 간부로 활동하였으며, 당의 군사조직을 갖추고 있었고. 당의 군사조직인 조선의용대는 김무정이 총사령으로 지휘하였다

 

19458월 해방이 되자 귀국하였다. 1946년 한반도 남부에서는 백남운에 의해 남조선신민당으로, 한반도 북부에서는 김두봉, 김무정에 의해 북조선신민당으로 각각 분열되었습니다 .


201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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