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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안철수교수님
taej**** 조회수 17,043 작성일2011.09.06
안철수 교수님은 좌파인가요 우파인가요? 보수인가요 진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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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k****
바람신
경제 기관, 단체 14위, 세계사, 정치인, 공무원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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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교수는 중도입니다. 좌우 이념논쟁을 싫어합니다. 상식파라고도 합니다. 상식과 원칙이 통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같은 세상에 좌우 이념논쟁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합니다.

 

안철수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성인 중 대표적 인물입니다. 서울대 의대 박사 출신인데 의대 시절에 혼자서 세계최고 바이러스인 브레인을 퇴치하기 위해 V3 백신을 개발한 프로그래머이기도 했습니다.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독파했다기 대단하지요. 무려 7년동안 낮에는 의사로 밤에서는 백신 개발을 하여 국민들에게 무료로 보급했습니다.

 

그 후 의대 학과장 시절에 안정된 의대 교수직을 과감히 포기하고 백신 연구소를 설립해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이버 안보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수십조원의 가치가 있는 공익적 일이었습니다. 맨손으로 회사를 창업에 열악한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 환경에서 국내 최고의 소프트웨어 기업을 만들었습니다. 안철수연구소는 투명경영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리고 안철수연구소가 최고의 매출과 이익을 거두던 2005년에 안철수 박사는 CEO 직을 스스로 사임하고 미국 최고의 대학인 와튼스쿨로 유학을 가서 귀국한 후 카이스트 석좌교수에 이어 현재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으로 있습니다. 공부만 27년 했다고 합니다.

 

주요 간단 소개입니다. 

1. 우선 안철수 박사는 도덕성이 높고 인품이 뛰어나고 존경받는 지성인입니다. 걸어다니는 도덕교과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입니다. 우리시대의 진정한 영웅 조사에서도 생존인물 중 1위를 차지했습니다.

2. 또한 안철수 박사는 기업을 창업해 대한민국 최고의 소프트웨어 기업을 성공시켰고 우리나라의 사이버 안보를 지켜준 영웅입니다. 안철수 박사는 군대를 군의관으로 갔는데 대위로 제대했습니다.

3. 지금까지 안철수 박사는 평생 독서와 공부를 해왔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정신을 발휘해 성공해온 분입니다. 의사, 프로그래머, CEO 사장, 카이스트 교수, 서울대 원장 등 모두가 대단합니다. 또한 영혼이 있는 승부 등 베스트셀러 책을 썼는데 10권 이상이나 됩니다.

4. 최근 3년 동안 경쟁사회에 지친 젊은이들을 위해 무료로 강연을 통해 도전정신과 더불어 희망을 심어준 인물입니다. 청춘콘서트는 박경철 원장과 함께 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5. 안철수 박사는 많이 배우고 부와 명예도 많지만, 남과 사회를 먼저 배려하고 존중합니다. 착하고 진정성이 높은 인물이기도 하여 부모들에게는 엄친아 롤모델이고 학생들에게 국민 멘토입니다. 그리고 무료로 백신 보급은 물론 사회적 기업 1호나 다름없는 기업으로 공익을 실천한 것도 큰 역할이었습니다.

 

다음은 안철수 박사에 대한 상세 이야기입니다.

 

안철수 박사는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를 좋아했고 거의 글자를 다 읽는 활자광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도서관의 책은 다 읽을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중학교 때 공부는 그다지 잘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조금씩 성적이 올라가 고등학교 때에는 공부를 잘해 서울대 의대에 갔다니 대단합니다.

 

결국 책읽기가 바탕이 되어 지식이 쌓여 차츰 공부를 잘하게 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독서는 지금도 많이 한다고 하니 독서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다음은 안철수 박사에 대한 주요 내용입니다.

 

안철수(安哲秀, 1962년 2월 26일 ~ , 부산 출생)는 대한민국의 의사, 벤처 사업가이자 대학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의학박사 학위까지 취득하면서 14년간의 의사 생활을 했으며 최연소인 만 27세에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학과장을 역임했다. 의대 재학 중에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되고 1988년 그 취미 덕분에 우연히 컴퓨터 바이러스를 발견하여 대한민국 최초로 백신 프로그램 V1, V2, V3를 만들었다. 이후 7년간 의사 생활을 하면서 백신을 무료로 제작·배포하다가 보안 사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1995년에 의대 학과장을 그만두고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했다.

 

2005년 초까지 10년간 CEO로 활동하다가 경영을 그만두고 학생으로 돌아가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에서 MBA로 들어가 경영을 배운 후 KAIST 석좌교수로 임용되면서 공대 학생들에게 경영을 가르치다가 2011년 현재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 및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학창 시절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부산동성초등학교, 부산중앙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학창 시절에 60명 중 30등을 할 정도로 평범했으며 운동 등 특별히 잘하는게 있는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독서를 매우 좋아했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의 책을 매일 몇권씩 읽어 결국 도서관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게 됐다. 도서관 사서는 매일 몇권씩 대출과 반납을 하는 안철수가 장난치는걸로 의심해 대출을 거부할 정도였다. 안철수는 “당시 책의 페이지수, 발행 년월일, 저자까지 모두 다 읽고, 바닥에 종이가 떨어져 있으면 그것마저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활자 중독증이었 것 같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교과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과학책과 소설책을 좋아해 주로 읽었다. 그는 책을 너무 좋아해서 사춘기도 없었다고 말했다. 중간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다가 고등학교 3학년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해 1등을 차지하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경쟁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의사 생활과 백신 개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에 기초 의학을 전공하면서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생리학 교실에서 1988년 《동방 결절 내에서의 흥분 전도에 미치는 Adrenaline, Acetylcholine, Ca++ 및 K+의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1991년 《토끼 단일 심방근 세포에서 Bay K 8644와 Acetylcholine에 의한 Ca2+ 전류의 조절기전》이라는 논문으로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의대 대학원에서 심장 부정맥을 연구하는 ‘심장 전기 생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 처음으로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그가 컴퓨터를 공부한 이유는 의사로써 전공 실험을 더 잘하고 특기를 쌓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컴퓨터 잡지에서 컴퓨터 바이러스가 한국에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 자신의 컴퓨터와 50장 가량의 디스켓을 검사해보니 3장의 디스켓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었다. 프로그램의 세부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해보니 프로그램에 누군가 (c)Brain이라고 써놓은 것이었다. 그 바이러스는 최초로 파키스탄에서 나온 것이었다.

 

어떤 형제 둘이 컴퓨터 가게를 차려 자기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팔아 가게를 운영하려 했는데 하나만 팔아도 불법 복제가 되어 가게가 망하자 이 형제들이 화가 나서 푼돈을 모아 복사 가게를 차렸고 다른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바이러스를 만든 것이었다. 이것이 바이러스의 시작이었다. 이 바이러스에는 만든사람의 이름, 주소, 집전화까지 모두 표시되어 있었다. 이 바이러스는 한국까지 오는데 3년이 걸렸다.

 

그 당시엔 인터넷도 없었기 때문에 손에서 손으로 파키스탄에서 미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바이러스 때문에 디스켓이 파괴되는 일이 많았으나 당시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원인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전철을 타면 디스켓이 깨진다”,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긴다”는 등의 괴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안철수는 전공실험을 위해 열심히 배워두었던 컴퓨터 언어 공부를 막 끝낸 참이어서 절묘한 시기에 바이러스를 만난 것이었다.

 

그러던 중 후배가 안철수에게 찾아와 바이러스를 치료할 방법을 묻자 안철수는 바이러스를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밤을 세워 분석한 끝에 1988년 6월 10일 바이러스가 감염된 과정을 반대로 하면 치료할 수 있겠다 생각하여 ‘백신’(Vaccine)이란 이름의 앤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을 만들어 치료에 성공했다. 이것이 V3 최초 버전인 V1이다.

 

처음으로 문서화된 컴퓨터 바이러스 제거 프로그램은 1987년에 발표된 번트 픽스(Bernd Fix)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안철수는 “세계 최초 컴퓨터 바이러스인 브레인을 퇴치하기 위해 백신을 만들게 되었다”고 밝혔다. 바이러스 치료가 된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안철수에게 도움을 요청을 해오기도 했다. 그 뒤로 바이러스가 나올 때마다 혼자서 만든 백신을 무료로 배포했다. 이후 당시 악명을 떨친 LBC, 예루살렘 바이러스 등을 치료하는 기능이 추가된 ‘V2’, ‘V2Plus’ 등을 차례로 발표하면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하였다.

 

그렇게 낮에는 의사, 밤에는 백신 제작자로 7년간 이중 생활을 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받은 만큼 나도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의사 생활과 백신제작을 모두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6시까지 백신 제작을 하고, 의대에 가서는 박사 과정으로 생활했다.

 

당시에 한국에는 안철수 말고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 돈벌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안철수가 군대에 가게될 즈음 미켈란젤로 바이러스가 유행했다. 미켈란젤로의 탄생일인 3월 6일에 활성화되는 바이러스로 컴퓨터의 기억 자료를 파괴시킨다. 안철수는 자신이 장교 훈련을 받는 3개월 동안 백신을 만들지 않으면 피해가 확산될 것을 우려하여 1991년 2월 6일 혼자서 밤새 백신을 만들어 PC통신을 통해 배포했으며 이것이 V3이다.

 

그리고 이날 아침 장교 훈련을 받기 위해 대구로 내려가 입영했다. 그러나 백신 제작에 몰입한 나머지 입대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고 가지 않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미켈란젤로 바이러스는 치료하였으나 그 바이러스를 만든 범인은 끝내 잡지 못했는데 당시엔 자기 이름을 과시하기 위해 장난으로 바이러스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는 취직하기 위해 일부러 바이러스에 허점을 만들어놓아 검거된 후 회사에 스카웃되기도 했다. 이후 해군 장교 군의관(대위)으로 복무하다가 전역했다.

 

대학생때 만난 부인은 1년 후배로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이었다. 처음에는 봉사 진료를 하다가 우연히 만났는데 같이 도서관에서 자리 잡아주는 사이로 지냈고 쉬는시간에 커피도 마시면서 사랑을 키웠다. 안철수는 “당시에는 몰랐으나 나중에 알고보니 의과 대학교에서 굉장히 유명한 커플이 되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함께 대학 생활을 했고 당시 궁핍한 학생이었던 안철수는 아무것도 없이 같이 살자며 프로포즈를 했다. 생각과 가치관도 비슷했고, 같은 공부에 같은 의료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벤처기업 CEO 생활


의사 생활과 백신 개발을 하는 생활을 7년 정도 했는데 둘 중에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매년 2배씩 증가해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의대 교수로 재직하려면 지도 학생을 받아야 하는데 지도 교수가 학생 몰래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학생은 불행한 것이라 생각하여 반년간의 고민 끝에 의사 생활을 포기하고 더 재미있고 잘할 수 있는 백신 제작에 모든 것을 걸게 된다. 그러나 돈벌이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7년 동안 모아놓은 모든 백신 자료들을 가지고 비영리 공익 법인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려고 정부 부처를 다니며 관계자들을 설득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그러던중 소프트웨어 업체 관계자가 찾아와 기업을 만들라는 조언을 해왔고 안철수는 그 의견에 동의하여 1995년 3월 15일 창업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안철수연구소이다.

 

기업을 만들더라도 백신을 개인에겐 무료로 보급하고, 기업들에만 사용료를 받아 기업을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을 굳게 가졌으며 안철수연구소는 현재도 개인에게는 ‘V3 Lite’라는 이름으로 무료 배포하고 있다. 안철수는 사업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 4년 간은 많은 고생을 했다. 당시 안철수연구소의 월급날은 매월 25일이었는데 월초부터 직원들의 월급 걱정을 해야 하는 지경이었고 자신이 월급을 받지 않고 직원들의 월급을 줄 때도 있었다.

 

그렇게 회사가 적자로 힘들던 시절인 1997년, 회사 창립 2년 만에 미국의 거대 백신업체 맥아피에서 1000만 달러에 인수 제의가 들어왔다. 당시 안철수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갔다. 보통 재벌그룹 회장 정도가 되면 직접 발표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당시 인수에 의욕을 가졌던 맥아피 회장은 안철수 앞에서 직접 발표를 하며 인수를 제안했으나 단번에 거절했다. 그러자 회장은 이전에 자신에게 회사를 매각했던 일본인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시켜줬다. 일본 대표는 “당시 회사가 적자나서 힘들었으나 많은 돈을 받고 회사를 팔고난 후 걱정도 없이 잘 지낸다”라며 안철수에게 회사를 팔라고 설득했으나 안철수는 끝내 거절했다.

 

당시 맥아피는 전세계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는데 안철수연구소 때문에 한국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인수한 후 안철수연구소를 폐기하고 미국 백신으로 한국 사업을 독점하기 위해서 이러한 인수를 제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안철수는 회사를 매각한다면 그 후에 직원들이 해고되어 실업자가 된다는 사실을 직시했고 그런 결과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했던 것이었다. 그 결정에 대해서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고 감정을 소비하는 후회는 원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1999년 4월 26일 CIH 바이러스(체르노빌 바이러스) 사건이 일어나면서 적자가 나던 회사는 흑자로 전환됐다. CIH 바이러스로 인해 30만대 가량의 컴퓨터가 파괴되어 기업과 공공기관 등에서 수천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바이러스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변화하게 되어 백신에 대한 관심도가 급증했다. 당시 안철수연구소는 직원이 50명 가량이었는데 하루 종일 전화가 걸려와 업무가 마비될 수준이었고 컴퓨터를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매출은 급증했고 1999년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업체로는 한글과컴퓨터에 이어 두 번째로 연매출 100억원을 돌파했고 이후 세후 순익 100억원 돌파는 안철수연구소가 최초로 달성했다.

 

유학·교수 생활과 이후


2005년 당시 회사의 경영 사정은 매우 좋았으나 다른 벤처 기업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안철수는 자신의 능력을 산업 전반에 쓸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1년간 고민했고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회사를 창립한지 만 10년이 되는 날인 2005년에는 안철수연구소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했고 대신 이사회 의장 자리를 맡았다. 당시 발표날까지 직원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회사 경영하던 당시에 안철수는 직원들에게 주식을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으며 혼자서 이룬 성공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직원들과 나눈 것이었다. CEO를 그만두고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벤처 비즈니스 과정을 거쳐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MBA 2년 과정을 밟았다.

 

같은 시기에 딸도 미국에서 유학했는데 그 이유는 안철수의 부인이 나이 마흔에 ‘법’을 배우고 싶다며 의사를 그만두고 미국 로스쿨에 유학을 갔기 때문이었다. 5년을 공부한 아내는 캘리포니아 주와 뉴욕 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안철수도 뒤늦게 미국 MBA 석사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학교를 마치고 가족이 도서관에 모두 모여서 저녁 늦게까지 공부를 하기도 했는데 그 때가 가장 소중했던 기억이라고 말했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2008년 4월 30일 귀국한 안철수는 KAIST 경영학과 교수로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다가 2011년 6월부터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에 있다.

 

2005년에는 포스코의 사외이사가 되기도 하였으며, 2010년에는 포스코 이사회 의장에 선임되었다. 또한 2010년부터 안철수연구소의 사내벤처로 출발한 소셜네트워크게임 업체인 노리타운스튜디오의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으며, 2010년 6월부터 현재까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제2기 민간위원 직을 수행하고 있다. 2011년에는 학교법인 포항공과대학교의 이사로 선임되었다.

 

경영


안철수는 모든 직원들과 사람들에게 존댓말을 쓴다. CEO는 제일 높은 사람이 아니라 단지 역할만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수평적인 관계에 있으며 CEO는 대외적으로 회사를 대표하는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는게 기본 철학이다. 그는 회사를 경영할 때 영혼을 불어넣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인 회사지만 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믿는 가치관이 있으면 자신이 없거나 구성원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계속 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과거에는 바이러스가 장난의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최근의 바이러스는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바이러스 유포를 통해 개인정보를 알아낸 후 중국 등에서 한국인들의 개인정보를 암거래 하는데 사용되며 러시아의 마피아가 동원되는 등 조직범죄로 발전했다. 안철수는 “백신 회사는 범죄율(바이러스)이 높을수록 이익이 높아지는 아이러니한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명감이 높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 “돈벌이 수단으로 백신 사업을 시작한다면 오히려 사회에 해악이 된다”고 강조했는데 경찰과 군인 등도 마찬가지에 해당된다. 이를 위해 상류층의 사람들의 노력이 중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일례로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때도 사건의 핵심 인물 상위층으로 올라가면 명문 대학교를 나온 엘리트 출신들이 많으며 이들이 문제의 원인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안철수는 “사회에 똑똑한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회의감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와튼스쿨 MBA에서 법학 강의를 들을 때 담당 교수는 “A학점을 줄 수밖에 없는 똑똑한 학생들이 있었는데 10년 후에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감옥에 가 있었다”고 말했다며 똑똑하지만 개인적인 성공만 추구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일상 생활


부부싸움을 할 때도 존댓말로 하는 편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반말을 잘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시절에도 병사들에게 반말을 하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다. 이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는데 어머니는 안철수에게 매번 존댓말로 대해주었으며 혼낼때도 마찬가지였다. 안철수는 그동안 어머니의 존댓말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고등학교 1학년 때 늦잠을 자 택시타고 등교할 때 어머니가 “학교 잘 다녀오세요”라고 하자 택시기사가 “어떻게 어머니가 존댓말을 할 수 있느냐”라고 하는 것을 듣고 어머니의 존댓말이 평범하지 않은 것임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모범적인 사생활로도 유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재학 시절엔 술을 자주 마셨으나 회사를 경영하던 시절에 과음으로 건강이 크게 악화된 이후부터 술을 끊어 전혀 마시지 않고 있으며 흡연도 하지 않는다. 안철수는 직원들이나 남들 앞에서 화를 내본 적도 한 번도 없으며 욕을 해본 적도 없다. 다른 사람들은 안철수에게 청교도적인 삶을 산다고 지적하기도 하는데 그런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은 뭔가를 참아본 적도 없고 오히려 마음 편한대로 살아왔다고 말한다. 돈보다 명예가 중요하며, 명예보다 자기 마음 편한게 중요하며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한다.

 

매순간 재미있고 의미있는 생활을 해왔다고 자부했는데 “의사로써 계속 생활을 했다면 훨씬 단순하고 집중할 수 있는 생활을 했겠지만 의사를 그만둠으로 인해서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에 의미를 두므로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효율성 측면에서만 본다면 안철수는 자신이 가장 비효율적인 사람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이 효율성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자기에게 맞는 분야를 찾기 위해서 쓰는 시간은 값진 시간”이라고 하였고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기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안철수는 자신이 크게 성공한 것에 대해 시기가 잘 맞았다고 말한다. 바이러스는 기계어를 알아야 분석할 수 있는데 적절한 시기에 기계어를 배운 상황에서 바이러스를 만나게 되어 이런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운이라는 것은 기회가 준비와 만난 순간이다”라고 하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가 오지만 준비된 사람만이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가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공한 사람은 재능과 노력, 운이 모두 맞아떨어진 것이며 사회가 그 사람에게 기회를 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이며 사회적 성공이 혼자서 이룬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201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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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좌파입니다

 

 

최근 행적을 보면 알지만

 

 

 

그 전부터 이미 좌파입니다

 

 

 

좌파의 특징은

 

주로 민족성을 따지고

 

외국에 대해 배타적이구요

 

 

 

특히 미국, 일본 등에 대해 배타적이죠

 

 

 

그것은

꼭 이념적인 면에서가 아닌

 

 

 

 

한국인 혹은 종족적인 특성으로서

 

 

 

어떤 부류에 대해 싫어하는 감정들이 있습니다

 

 

 

 

한국인중 좌파들은

 

 

 

 

북한등과 마찬가지로

 

 

 

미국인들의 부류등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죠

 

 

 

 

그게

생활습성이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 등등....

 

 

 

 

자석으로 치면

 

 

 

N 극과 S 극

 

 

같은 거부감을 가지는 부류가 있습니다

 

 

 

 

 

그게

미국인, 일본인이 우선적으로 주되죠

 

 

 

왜냐면

 

 

 

 

미국인, 일본인들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거부감을 가질만한 인류 중에

 

 

가장 강한쪽을 우선 선택해서 거부감을 가지죠

 

 

 

 

그자들을 이기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안철수란 사람도  거부감을 가지는 같은 부류이구요

 

 

그래서 좌파가 되죠

 

 

 

 

 

 

 

 

어느지역 어느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냐에 따라

질이 달라지는 겁니다

 

쉽게 말해 대륙의 북방 아시아인이라 할수 있는 겁니다

 

 

 

201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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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서울대 교수님이 박근혜 보다 우월하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701&docId=136638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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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과 정의를 존중하고 진실을 좋아하는 분만 검색해 보세요 .

안철수 서울대 교수님의 능력과 애국심, 애민심은 군인 출신 대통령들 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아버지가 독재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고 , 독재자인  부모로  부터  교육받은

 

사람 보다,  서울대 의대 출신의 지성인이신  아버지와 이 시대의 신사임당 같은

 

어머니로 부터 민주적인 교육을 받고  성장하신 분이  더욱  민주적인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하리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지요  ?

 

기자가 박근혜 의원에게 지지율  하락에 대한  질문을 했다고 ' 병 걸리셨어요 ? "

 

라고 말한 것이나,  삼화저축은행  비리 관련 발언 등을 보면  부모가 독재적으로 

 

지배하던 모습이  연상 됩니다.

 

참고로 30년간 군사 독재를 했던 박정희 , 전두환, 노태우는 모두 대구 경북 출신

입니다.

박정희 대구 사범졸업 18년 장기집권,  전두환 대구공고 졸업 7년 단임,  노태우

 

경북고  졸업 5년 단임으로  모두  합치면  30년 입니다.

 

다른  지역에는  군사 독재에  소질있는  사람이  없나  봅니다.


박정희는 62세 때인 1979년 양쪽에 여자들을 끼고 ( 여대생도 있음 )

술마시다가  죽었지요.

 

부모로 부터 민주적인 교육을 받고 성장한  분이 대통령이 되신다면,  국민들은

 

정말 군사독재와 비교할 수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안 교수님 부인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시고 미국에 유학하여 로스쿨을

 

마친 뒤에  캘리포니아주의 변호사 자격과 뉴욕주의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셨는데

 

지금은  KAIST  대학교에서  교수로  계신 분이기에  역대   최고의  국모가  되실

 

자격을 충분히 갖춘  분입니다.

이런 분들이 나라를 맡아야 정말 상식이 통하고,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며,

다수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노력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국민은 흐뭇하고,

대통령은 진정으로 국민을 존중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201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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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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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la****
초수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시청으로 갈까요~~~~~~~~~

청와대로 갈까요~~~~~~~~~

차라리 여의도로 떠날까요~~~~~~~~~~~~~~

많은 사람 오고가는 정치판에서

내가 들어갈 그자리를 찾고 있어요~~~~~~~~~~~~~~~

아 이쪽 저쪽 사방팔방 둘러보아도

거품같은 지지율로

밀어부칠 자신은 없네~~~~~~~~

아 내가 찾는

비례대표 공천 없나요~~~~~~~~~

아무리 따져봐도

그거만한 방법이 없네~~~~~~~~~~~

청와대로 갈까요 여의도로 갈까요

연구소 길모퉁이에 나는 서있네~~~~~~~~~~~~

201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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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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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se****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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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니 우파니 보수니 진보니 하는 편가르기는 소모적일 뿐 아무 실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안철수 교수님이나 가수 김장훈님처럼 사익보다는 공익을 자신보다는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삶을 살아오신 분들을 존경하는 많은 국민들이 있습니다.

 

현재의 야당들로는 서민들을 만족시킬 강력한 개혁을 하기힘들어 보입니다. 그들은 미적지근하게 야당 흉내나 내고 있습니다

 

안철수 교수님을 중심으로 여야를 막론하고 양심적이고 도덕적이며 지적인 의원님들과 인사들이 모여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 대선에서 승리하여 서민들의 실질적인  생활안정과 복지를 위한 과감하고 혁명적인 정책을 이 눈치 저 눈치 보지말고  실천하는 것이 역사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2011.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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