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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안철수의 선택
비공개 조회수 14,823 작성일2014.03.03

 안철수의선택이 꼼수인지 정략적인것인지 아니면 창당에 따른 금전적인지 정말 대의 명분이 있는지

 아니면 민주당에 고육계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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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수

 최근 안철수 의원 행보에 관심이 있어, 여러 생각을 해본 결과, 그냥 제 소신 껏 말하겠습니다.

일각에서는 안철수가 민주당과 합당해서 새정치 어쩌고 저쩌고 한게 결론은 국민에 대한 배신을 한거라고 떠들어 대지만, 제가 보기엔 안철수 의원은 우선 새정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맞는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 민주당과 합당한 것은, 새누리당 및 민주당과 다른 제3 지대에서 본인의 정치 뜻을 쉽게 이루지 못할거 같은 생각에 고육지책으로 나온 결단이라고 생각됩니다.

일각에서는 안철수가 그런 의도라면, 안철수가 합당을 좀 더 늦게,,즉 새정치 연합이 어느정도 지지도를 얻은 다음 하는게 맞지 않냐고 하지만,, 당장의 결과의 차이는 있겠지만, 멀리보면 큰 차이도 없을 것 같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새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기득권 세력(새누리당)을 뒤엎는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데 , 현재 민주당에 친노계파가 있는 한(친노세력이 옳고 그름은 논외로), 민주당 자체로서는 새누리당을 뒤 엎긴 힘든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걸 입증하는 건,,,민주당-새정치 연합 합당 추진 의원회는 민주당의 친노 세력이 빠져 있잔아요....

 

아무튼,,,제가 판단한건 안철수는 새정치를 뜻으로 둔 사람은 맞는거 같구요. 낡고 낡은 새누리당 및 민주당을 생각하면,,, 가장 대한민국의 정치에 있어서 발전하는 길은,,, 안철수가 야당의 새정치의 뜻이 있는 인사들과 의기투합하여,, 새누리당을 뒤 엎을 수 있는 정당이 되는 동시에, 기존의 구태연한 정치에 벗어나 새정치를 한번 시도인 것 같습니다 .

 

 

201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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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녹용 기자의 속풀이

     

    안철수의 새정치연합에 참여했다가

    가장 황당한 꼴 당한 사람, 김성식

  • 정녹용
    프리미엄뉴스부
    E-mail : jny@chosun.com
    1999년 기자생활을 시작해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등에서 일..
    •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입력 : 2014.03.11 08:46  

명분 고수하다 안철수에게도 손학규에게도 배신당해

김성식(56) 전 한나라당 의원(새정치추진위 공동위원장)의 전화에서는

9일에도 여전히 통화연결음만 들렸습니다.
지난2일
안철수 의원과 민주당 간 통합이 발표된 지 딱 일주일째입니다.
김 전 의원은 현 상황에 대해 가장 할 말이 많은 사람 중 하나일 겁니다.
 
그런데도 그는 통합 발표 이후 기자들과의 접촉을 끊었습니다.
대신 자신의 블로그에 2차례 글을 올려 안철수 의원과의 결별을 분명히 했습니다.
 
“오랜 기간 홀로 근신하겠다”고도 했습니다.
김 전 의원의 통화연결음은 미국의 R&B 가수 알 켈리(R.Kelly)가 부른 ‘I Believe I Can Fly’입니다.

그와 가까운 한 전직 의원에게 김 전 의원의 근황을 묻자 짧은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최근 전화통화는 했다.
본인이 말하기 싫어하는데 무슨 말을 전하겠나.
그냥 놔둬라.
당분간 정치를 안할 것 같더라.
얼마나 마음이 괴롭겠나.”
김 전 의원은 지금 지방을 다니며 머리를 식히고 있다고 합니다.
김 전 의원과 가까운 다른 인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새정치연합에 참여한 사람중 지금 가장 황당한 사람이 김성식일 것이다.
 
통합 발표 하루 전까지 ‘
민주당과의 통합·연대는 없다’고 한 게 김성식이다.

안철수에 대한 배신감을 다독이기 어려울 것이다.”

 


악수하고 있는 안철수(왼쪽) 의원과 김성식 전 의원.
 
하루전까지 독자 노선 강조했지만 안철수는 민주당과 통합 발표
말하자면 김 전 의원은 안철수 의원에게 일종의 ‘
배신’을 당한 것이고,
그 배신감을 삭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안철수와 김성식의 관계를 따져본다면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전 의원과 안 의원은 2012년 대선 때 만납니다.
 
안 의원이 대선 출마선언을 한 2012년 9월 19일 김 전 의원에게 전화를 해 만나자고 했습니다.
안 의원은 부산고 3년 선배인 김 전 의원에게 도와달라고 했고,
김 전 의원은 안철수 후보 캠프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김 전 의원은 한나라당을 탈당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갑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돼 원내에 들어왔습니다.
 
한나라당에서 소장파 모임인 ‘민본21’ 간사를 맡는 등 내내 쇄신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2011년 12월 한나라당 쇄신 파동 과정에서 재창당 등
전면 쇄신을 요구했지만 지도부가 답이 없자 정태근 전 의원과 함께 탈당했습니다.
 
이후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유기홍 민주당 의원에게 패했습니다.

안 의원의 요청을 받은 김 전 의원은 안철수 대선 캠프의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아 안 의원을 도왔습니다.
 
당시 김 전 의원은 안 의원에게 ‘
대선 완주’를 거듭 권유했으나 안 의원은 결국 중도 사퇴했습니다.
하지만 2013년 4월 안 의원이 국회에 들어가기 위해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
김 전 의원은 큰 역할을 합니다.
새정치연합 한 관계자는 “
당시 김 전 의원은 안 의원 선거 캠프를 사실상 진두지휘하다시피 했다.
자기 선거처럼 뛰며 안 의원 당선을 도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두 사람 관계가 소원해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습니다.
 
김 전 의원은 지난해 11월21일 김영춘 민주당 전 의원이 부산에서 개최한 포럼 강연에서
안철수 신당에 대해 쓴소리를 했습니다.
 
그는 당시 “
안철수 의원이 국민으로부터 새정치를 실현해달라고 받은 ‘
안철수 현상’을
새로운 정당으로 구체화하려면 스스로 내려놓을 것은 없는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
 
새정치는 누구의 독점물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이후 김 전 의원이 안 의원의 신당 추진 기구인 새정치추진위원회에 참여하지도 않자
두 사람 사이가 벌어졌다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1월24일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합류하면서 불화설을 일축했습니다.
안 의원이 1월21일 독자 신당 창당을 선언한 직후였습니다.
 
이때 김 전 의원은 “독자 창당 선언이 나왔기 때문에 달려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안철수, 김성식 놓치면 중도보수 확장 어려울 것”
하지만 이도 잠시,
재합류한지 불과 한달여 만에 이제 안 의원과 사실상 완전히 결별했습니다.
 
김 전 의원은 윤여준 전 의원과 함께
안철수 진영 내부 인사 중 독자 신당에 대한 의지가 가장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민주당과 통합이나 연대는 없다”고
줄곧 강조해왔습니다.
 
심지어 통합 발표가 있기 하루 전날인 지난 1일에도
김 전 의원은 한 방송 토론에 출연 “우리는 양당 구조,
독과점 정치를 깨겠다는 열망 위에서 신당을 만들고 있다”며
독자 노선을 설파했습니다.
 
하지만 안 의원은 한마디 상의도 없이 김 전 의원의 말을 하루아침에 ‘
거짓말’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명분을 중시하는 김 전 의원으로선 참기 어려운 모멸감을 느꼈을 수 있다는게 정치권의 얘기입니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김성식은 설득해 데려와야 하는데 어려울 것 같다.
 
김성식은 안 의원이 중도보수 진영으로 지지기반을 확장하는 데 있어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김성식을 못 데려오면 중도보수 진영으로의 확장은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2007년 한나라당 탈당 극력 반대했지만 결국 탈당한 손학규
 

2011년 12월 한나라당 탈당 의사를 밝히고 있는 김성식 전 의원.
 
이 대목에서 7년 전 일을 거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 전 의원 입장에서는 7년 전에도 이번 일과 유사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한나라당 탈당 사태입니다.

운동권 출신인 김 전 의원은 유신반대운동과 노동운동 등을 하다 1997년 한나라당에 입당했습니다.
민주당 강세 지역인 서울 관악갑에서 2000년과 2004년 두 차례 총선에 도전했지만 낙선합니다.
 
2004년 총선 낙선 이후
김 전 의원은 당시 손학규 경기지사 밑에서 2년2개월간 경기도 정무부지사를 합니다.
이 당시 김 전 의원은 ‘
손학규의 복심(腹心)’으로 통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손 전 지사가 2007년 대선에 도전할 때 김 전 의원은 손학규 캠프의 정무특보를 맡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이명박 박근혜 후보에게 밀린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을 탈당해 당시 범여권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하는 문제를 놓고
큰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 김 전 의원은 손학규 캠프에서 가장 극렬하게 탈당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당시 손학규 캠프에서 일했던 한 인사의 전언입니다.

“김 전 의원은 박종희 전 의원과 함께 손학규 캠프의 좌장 역할을 했다.
김 전 의원은 손 전 지사가 탈당하면 절대 안된다고 적극 주장했다.
 
캠프 관계자들에게 탈당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에서 장관과 경기지사 등을 했는데
 대선을 위해 탈당을 한다는 것은 명분이 없다는 논리였다.
 
‘명분 없는 탈당은 안된다’고
그렇게 만류했지만 결국 손 전 지사는 탈당을 강행했다.
김 전 의원은 그때도 자신과 상의하지 않고
탈당을 결행해버린 손 전 지사에게 서운함을 크게 느꼈을 것이다.”

손 전 지사는 2007년 3월 탈당했습니다.
이때 한동안 두문불출하던 김 전 의원은 결국 손 전 지사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대신 한나라당에 남아 이명박 후보 캠프 조직기획팀장을 맡습니다.
이후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치러진 2008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은 관악갑에서 세번째 도전만에 금배지를 달게 됩니다.

김 전 의원으로선 어쩌면 이번 일이 7년 전 데자뷰(deja vu)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뜻과 정반대로 가버린 ‘
주군’을 “
명분에 맞지 않다”며 따라가지 않은 것도 비슷합니다.
 
과거 정치권에서 명분을 고수하다 좌절한 사람들이 많지만 사람들의 뇌리엔 오래 기억되지 않습니다.
한국 정치풍토의 후진적인 한 단면인지 모릅니다.
이번엔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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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영림 기자의 여론풍향계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통합 선언해도

    새누리당 못따라가는 이유

  • 홍영림
    여론독자부 차장
    E-mail : ylhong@chosun.com
    대우경제연구소를 거쳐 1997년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사회부와 ..
    서강대와 서울대 대학원에서 사회학 전공
입력 : 2014.03.11 15:32  
 
안철수 의원이 추진하던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의 통합 추진 발표 이후
지난 1주일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통합신당의 지지율은 들쭉날쭉했습니다.
 
통합신당 지지율은
미디어리서치(39.7%),
중앙일보 조사팀(35.9%),
디오피니언(34.3%),
한국갤럽(31%),
한국리서치(29.8%) 등 조사기관에 따라 약 10%포인트나 차이를 보였습니다.

모든 조사에선 여전히 새누리당이 통합신당을 앞섰지만,
새누리당의 우세도 적게는 3.2%포인트(미디어리서치)부터
많게는 9.5%포인트(한국리서치)까지 편차가 심했습니다.
 

 
통합으로 야권은 지지율이 올랐을까?
가장 관심을 모았던 ‘야권(野圈) 통합 효과’도 조사 결과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4일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통합신당 지지율은 39.7%로 지난달 21~22일
민주당·새정치연합 합계인 36.6%에 비해 3.1%포인트 높아졌습니다.
 
한국리서치의 지난 3~4일 여론조사도 통합신당 지지율은 29.8%로
지난달 말 민주당·새정치연합 합계인 24.0%보다 5.8%포인트 상승했습니다.
 
반면 한국갤럽의 지난 4~6일 조사는
통합신당 지지율이 31%로 1주일 전 갤럽조사의
민주당·새정치연합 합계인 33%에 비해 오히려 2%포인트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각 조사 결과가 일치하는 현상도 있습니다.
통합신당 지지율이 얼마 전인 지난 2월 말의 양당 지지율 합계보다
다소 올라간 조사들이 있긴 하지만,
작년 연말에 비해 아직 야권 전체의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한 것은 모든 조사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디어리서치의 지난해 11월말 조사에서
안철수 신당(32.2%)과
민주당(13.6%)의 지지율 합은 45.8%로
새누리당(40.2%)보다 높았지만,
최근엔 야권 통합 소식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42.9%) 지지율이 통합신당(39.7%)보다 높았습니다.
갤럽조사도 지난해 12월에
안철수 신당(32%)과
민주당(10%)의 지지율 합이 42%로
새누리당(35%)보다 높았지만,
최근엔 새누리당(39%)이
통합신당(31%)에 비교적 큰 차이로 앞서 있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
민주당과 새정치연합 모두 지지율이 바닥권으로 떨어지던 상황에서 합쳐졌기 때문에
통합신당 지지율이 양쪽의 단순 합계보다 높게 나온 조사가 많았다”며 “
 
그러나 안 의원이 독자세력화를 표명하고 신당 창당 의사를 밝혔던 작년 말에 비해
야권 전체의 지지율은 아직 회복하지 못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은 야권의 전반적인 지지율 하락에 일단 제동을 건 효과는 있었지만,
기존의 야권 지지층을 완벽하게 복원시킬 정도의 파괴력은 보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갤럽의 장덕현 부장은 “안 의원의 인기가 상한가를 칠 때와 비교하면 현재 야권이 통합으로 인해
‘1+1=2+α’란 시너지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럼 아직까지 통합신당 지지층으로 합류하지 않은 기존의 야권 지지층은 누구일까요?
미디어리서치의 지난해 11월말과 최근인 지난 4일 조사를 비교하면
30대·화이트칼라·수도권에서 누수(漏水)가 가장 심했습니다.
 
전체 야권 지지율이 30대는 69.9%에서 54.2%,
화이트칼라는 61.1%에서 47.2%로 15%포인트 가량이나 하락했습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49.6→42.5%)의 낙폭이 가장 컸습니다.
 
지난 대선 때부터 안철수 의원의 강력한 지지 기반이던 30대·화이트칼라·수도권에서
이탈이 가장 뚜렷했던 셈입니다.
 
‘새정치’와 ‘독자세력화’를 내세웠던 안 의원에 대한 실망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6·4 지방선거에 야권 통합이 미칠 영향은?
그래도 갤럽조사 이외에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야권은 통합 효과로 인해 지지율이 다소 반등했습니다.
 
야권 분열로 6·4 지방선거 필패(必敗)가 예상되던 상황에서
야권 지지층의 기대감을 살려놓은 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야권의 통합 효과가 지속될 것으로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재 통합신당 지지자 중에서도 여전히 양당의 통합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유권자가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갤럽조사에서는
통합신당 지지자의 17%가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통합신당을 만들기로 한 것을 좋지 않게 본다’고 답했습니다.
 
통합신당을 지지하면서도 ‘
안 의원에 대한 생각이 이전보다 나빠졌다’는 응답자도 17%였습니다.
 
또 통합신당 지지자의 27%는 ‘
안 의원의 행보를 새정치로 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지금은 일단 통합신당에 지지를 보내고 있긴 하지만,
야권 통합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거나
안 의원에게 실망한 사람들이 야권 지지층의 5명 중 1명에 달하는 20% 안팎으로 분석됩니다.
 
이들은 야권 통합신당 창당 과정을 지켜보다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엔 언제든지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야권 통합이 6·4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에 대해 전문가들은 “
새정치연합에 기대감을 가졌던 지지층의 이탈 폭이 선거 결과를 가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디어리서치 이양훈 수석 부장은 “
통합신당이 불협화음 없이 창당 과정을 거치고 새정치에 부합하는 개혁을 추진하며 기존의
안 의원 지지층을 온전히 끌어 모은다면
지방선거는 지난 대선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접전 구도로 전개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야권 창당 과정에서 잡음이 계속 불거지고 결과적으로 포장지만 바꾼 ‘

도로 민주당’이 된다면 선거의 승패는 의외로 쉽게 갈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홍영림 기자 [홍영림 기자의 여론풍향계]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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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훈기자의 鳶飛魚躍

     

    "윤여준이 언제 또 보따리 쌀 지 모른다",

     늙은 유세객의 마지막 행보는?

  • 이동훈
    프리미엄뉴스부
    E-mail : dhl@chosun.com
    연비어약(鳶飛魚躍), 하늘엔 솔개 날고 물 속에선..
    •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입력 : 2014.03.12 10:58 
수정 : 2014.03.12 11:31 
 
 
2003년 말,
대선 패배 1년이 지났지만 한나라당은 여전히 어수선했다.
그런 가운데 소장파 의원들 주최로 당의 진로를 고민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자들의 발제가 끝난 뒤 주최측 인사가 방청석에 앉은
윤여준 의원에게 ‘
당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처방해 달라’며 코멘트를 요청했다.
 
윤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딱 한 마디를 했다.
“지금 환자 자신이 중병에 걸렸는지도 모르는데 뭘 진단하고 처방합니까?”
방청석에선 웃음소리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윤 의원의 촌철살인이 한나라당이 처한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씁쓸한 표정을 짓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적어도 윤여준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당을 이끌고 있던 최병렬 대표의 측근이자 당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소의 소장이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현실이었지만 시니컬한 말 몇마디를 던져놓고 그 뒤로 숨어버렸다.
한 관계자는 “
윤여준이 어떤 사람이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윤여준은 보수진영의 책사로 불렸다.
적어도 2004년까지는 그랬다.
 
보수 진영의 수장(首長)들은 ‘대를 이어’ 그를 썼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청와대 공보수석으로 그를 썼고,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가 여의도연구소장으로 그를 곁에 뒀다.
 
윤여준은 최병렬 전 대표를 거쳐
2004년 총선 때 박근혜 대표를 도왔다.
 
그런 경력은 윤여준을 ‘
당대의 책사(策士)’로 등극토록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

보수의 장자방’으로 불렸다.

 


김영삼 대통령의 공보수석 시절의 윤여준
 
하지만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여권 인사들의 얘기는 달랐다.
적극적으로 손사래를 치지는 않았지만 세간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굳이 윤여준의 탁월한 점을 꼽으라면 유연한 사고를 할 줄 아는 점”이라고 한 인사는 말했다.

윤여준은 자신의 하루 일과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새벽 뉴스전문채널의 첫 뉴스를 시청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어 조간신문을 탐독한다.
공직(公職)에 나온 이래 아침 신문 스크랩을 거르지 않았다.
관심있는 기사를 뜯어내 노트에 붙여놓는 식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스크랩북들이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의 호기심은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왕성해보였다.
백수 시절 그의 손엔 늘 책이 들려 있었다.
그는67세가 되던2006년에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그 나이에 무슨 골프를 배우냐’는 주위의 타박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했다.
그는 젊은이들을 가까이 하려 했다.
주위엔 늘 젊은 기획통들이 있었다.
 
새정치연합 이태규 기획팀장은 그의 보좌관 출신이다.
진영·
남경필 의원,
원희룡·
권영진·
정태근 전 의원 등과 친했다.
젊은이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품이 넓었다.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았다.

자신이 고리타분한 늙은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그는 어린 기자들과의 밥 자리에서도 상석에 앉기를 마다했다.
 
70대 노정객이 아들뻘 기자들을 부르는 호칭은 ‘김형’,‘이형’이었다.

젊은 기자들보다TV인기 드라마를 더 잘 꿰고 있었다.

 
한 여권 인사는 “
유연하면서도 중도적인 윤여준의 사고는 보수 진영 수장들에게 신선하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라며 “

그들이 대를 이어 윤여준을 곁에 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자기 아이디어 내는 것을 본적이 없다.”

 


이회창 전 총재 시절 비례대표 의원으로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낼 당시의 윤여준.

윤여준은 한나라당이 탄핵 후폭풍으로 휘청대던
200417대 총선에서 선대위 부본부장을 맡아 선거를 실무지휘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그나마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책사
윤여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후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그 당시의 얘기다.
 
선거일이 임박해 TV에 내놓을 선거광고를 놓고 한나라당 천막당사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젊은 홍보 실무진은 ‘
어머니의 회초리를 맞는 아들’을 콘셉트로 한 광고를 제작해 회의석상에 올렸다.
당료들이 반발했다.
 
“우리가 죄인이냐?”,
“광고가 너무 과장됐다.”

하지만 젊은 실무진들은 “
지금은 무조건 엎드려야 한다”며 강행을 주장했다.
논쟁은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결국 회의 흐름이 ‘
회초리 광고’를 내보내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회의 내내 한마디도 않던 윤여준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이걸로 갑시다.”

당시 상황을 잘아는 A씨는 “
윤여준은 매사 이런 식이었다”며
일견,
남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는 결국 책임을 지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계속되는A씨의 얘기다.
“나는 윤여준의 머리에서 전략이나 아이디어가 나온 것을 본 적이 없다.
그 사람은 자기 얘기가 없다.
 
다만 귀가 열린 사람이다보니 주위의 좋은 의견을 들을 줄 알았다.

판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을 지켜본 뒤 대세에 편승했다.”

 
당시 총선에 관여했던 또다른 관계자는 “
젊은 기획통이 윤여준에게 올린 기획안은 늘 
윤여준으로 저자가 바뀌어 대표에게 보고됐다”고 말했다.

책사로서 그의 능력에 대한 물음표는 사실
2002년 대선 때부터 달렸다.
 
그는 당시 이회창 전 총재의 측근이었다.
하지만 그해 대선에서 패했다.
 
윤여준은 그 때의 패배에 대해 이렇게 해명하곤 했다.
2000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면서 이 전 총재는 대통령이 다 된 듯 오만해졌다.
더 이상 내 조언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나이든 영남출신 의원들에게 둘러싸였다.
뒤늦게 내게 손을 내밀었지만 이미 늦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잘 알는 한 인사의 얘기는 다르다.

그는 윤여준을 강하게 비판했다.

 

“윤여준은 이회창 총재가 위기에 처하자 가장 먼저 현실을 회피하고 도망가버렸다.
그에게는 책사라는 말을 들을 머리도 없었고,
어려움을 헤쳐갈 용기도 없었다.
 
번지르르하게 말만 잘 하는 평론가일뿐 진정한 책사는 아니라는 게 그때 이미 드러났다.”

박근혜이명박이 치열하게 맞붙은2007년 대선전에선 윤여준은 어느 캠프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2012년 대선에서 그는 진영의 경계를 넘어 민주당 문재인 후보 쪽으로 갔다.
 
그리고 또 졌다.

“그는 가는 곳마다 패배한 실패한 책사”라는 평가가 여권에서 나오는 이유다.

“윤여준은 안됩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윤여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주일한국대사관 공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윤여준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3대에 걸쳐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다.
 
그리고 야당이 된 보수진영에서 이회창 전 총재를 도왔다.

하지만 보수진영에서 그의 쓰임은 2004년으로 끝이었다.
 
보수진영의 책사로 일컬어지던 그는
2011년에 안철수라는 신인을 발굴해 보수진영을 두려움에 떨게 하더니,
이듬해 대선에선 민주당으로 가버렸다.
 
그는 안철수를 발굴하면서 ‘
새정치’를 얘기했고,
민주당으로 갈 때는 ‘통합’을 얘기했다.
 
그의 행보는 나라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받아들여주는 곳을 찾아가 자기 사상을 펼치는
춘추전국시대의 유세객을 연상케 했다.

윤여준과 친했던 여권 인사B씨는 그런 행보가 “
그가 기본적으로 이상주의자이기 때문”이라며 “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해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움직인 것”이라고 했다.
 
여권 인사 C씨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자신의 논리에 갇혀있지 않고 항상 유연하고 탄력적이었다.
 
새로운 비전을 항상 고민했다.
자리를 탐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수진영 내에선 “
윤여준이 보수진영을 떠난 것은 더 이상 그를 써주기 않았기 때문”이란 얘기가 많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은 모두 윤여준을 쓸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 때 윤여준은 늘 비서실장이나 총리 하마평에 오르곤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윤여준 카드는 늘 당내의 강한 비토에 부딪혀 사라졌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비대위를 꾸릴 때의 일이다.
박 위원장은 측근들에게 ‘
윤여준을 비대위원에 임명하면 어떨까’라고 물었다.
 
돌아온 답들은 완강했다.
 
“김종인은 몰라도 윤여준은 안됩니다.”
 
결국 윤여준은 이명박 박근혜,
근래 보수의 양대 정권으로부터 낙점 받지 못했다.
 
한 관계자는 그 이유를 “
2000년 총선과
2002년 대선을 거치면서
윤여준에 대한 강한 비토그룹이 보수 내에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윤여준은 2000년 총선 당시 이회창 전 총재의 측근으로 선거를 기획했다.
김윤환,
이기택,
이수성 등 거물급 중진 의원들을 대거 낙천시킨 공천개혁이 그의 작품이다.
 
한나라당은 그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노태우ㆍ
김영삼 정권 시절 윤여준을 여러 모로 도왔던
김윤환이 윤여준의 손에 날아갔다는 사실이 부각됐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자신의 칼럼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이회창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자신을 대선후보로 두 차례나 만들어준 김윤환을 전격 낙천시켰다.
 
그 배경은?
이른바 ‘
살생부’의 기획자 중 한 명이 바로 윤여준!
자신의 정치적 대부인 김윤환의 목을 내려친 것.
윤여준은 직접 김윤환의 지역구인 경북 구미에 내려가 딴 후보를 물색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김윤환은 나에게 ‘
윤여준이 그 놈아는 내 사람이었는데,
아무리 정치라고 하지만 어떻게…’.
말을 잇지 못했다.”

2000년 이후 윤여준에겐 ‘

능력도 능력이지만 의리와는 담을 쌓은 못 믿을 사람’이란 ‘악풀’이 달려버렸다.

“내 인생의 마지막 봉사”

 


안철수와 윤여준
 
쓰이지 못하면 보따리를 싸는 것이 유세객의 운명이다.
 
박근혜와 이명박에게 쓰임을 받지 못한 윤여준은
안철수라는 대안을 발굴해 내며 30여년을 머물러 온 보수 진영을 떠났다.
 
청춘콘서트를 기획해 안철수를 발굴해내는 그에게서 ‘
나를 버린 보수에 복수하겠다’는 의지가 읽혔다는 여권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진보로 간 윤여준의 행보는 보수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불안해 보인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그는 안철수와 결별했다.
 
그리고는
2012년 대선에선 민주당 선대위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을 맡아 문재인 후보를 도왔다.
2013년엔 다시 안철수로 돌아왔다.
그 과정에 식언도 잦았다.
 
신당 창당을 준비하던
윤여준은 안철수가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합치기로 했다는 소식을 기자들과 함께 들어야 했다.
윤여준과 안철수의 관계는 여전히 불안해 보인다.
“윤여준이 언제 다시 보따리를 쌀 지 모른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여권 관계자의 얘기다.
“보수 진영에선 윤여준의 중도개혁적인 주장만으로도 존재의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이나 안철수 쪽으로 간 윤여준에게는 그 공간이 크지 않을 것이다.
그 쪽으로 간 윤여준의 실패는 예정돼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
윤여준으로선 마지막으로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큰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꾸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고 했다.

윤여준은 최근 “(안철수 의원과 함께 하는 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봉사”라고 말한적이 있다.
 
올해로75세이니 허언은 아닌 듯 싶다.
늙은 유세객의 마지막 행보는 과연 어떤 그림을 그리며 끝을 맺을까.
이동훈 기자

201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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