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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강북구 문화유산
비공개 조회수 2,689 작성일2017.09.14
강북구에 대표적인 문화유산좀 추천해주세요..강북구에 있는 문화유산은 뭐든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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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신
2019 지역&플레이스 분야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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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구의 문화유산입니다.


(강북구의 문화유산)

 

1.북한산성

 

종 목 사적 제 162호

지 정 일 1968.12.05

소 재 지 서울 강북구 우이동 68-1외

시 대 삼국시대

 

북한산성은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면서 뺏고 빼앗기던 한강 북방 군사상의 요지이다.

 

<삼국사기> 에는 개루왕 5년(132)년에 북한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11세기 초 거란이 침입했을 때에는 이곳에 고려 태조의 관을 옮겨 온 일도 있었으며, 고려 고종 19년(1232)에는 몽고군과의 격전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외침을 당하여 도성 외곽의 축성론이 일어나 숙종 37년(1711) 에 왕명으로 대대적인 축성공사를 하여 7,620보의 석성이 만들어졌다. 조선 영조 21년(1745) 스님 성능이 지은 <북한지>에는 북한산성의 축조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성의 길이는 21리 60보이며, 시설로는 14개의 성문과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와 행궁, 군창이 있었으며, 성내에는 승군이 주둔했던 중흥사등 12개 사찰, 99개소의 우물, 26개소의 저수지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성의 둘레는 12.7km이며 성안의 면적은 2백만 여평으로 훼손된 대남문, 대성문, 대동문, 보국문과 성곽들은 일부 보수, 복원되었다.

 

 

2.사인비구 제작 동종-서울 화계사 동종

 

종 목 보물 제11-5호  

지 정 일 2000.02.15

소 재 지 서울 강북구 인수봉로47길 117 (수유동 487) 화계사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종을 매다는 고리 부분에 두 마리의 용을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종의 어깨 부분과 입구 부분에 넓은 띠를 두르고 있으며, 몸통에는 사각형의 유곽과 위패 모양을 균형있게 배치하여 안정감을 준다.

 

사실성과 화사함이 돋보이는 수작일 뿐 아니라, 승려가 공명첩을 가지게 되었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알려주는 명문이 남아있어, 종 연구와 더불어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

 

 

3.봉황각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호

지 정 일 1969.09.18

소 재 지 서울 강북구 삼양로173길 107-12 (우이동 254)

시 대 일제강점기

 

1912년 의암 손병희 선생이 세운 것이다.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찾기 위해 천도교 지도자를 훈련시킨 곳으로 의창수도원이라고도 부른다. 봉황각이란 이름은 천도교 교조 최제우가 남긴 시에 자주 나오는 ‘봉황’이라는 낱말을 딴 것이다. 현재 걸려있는 현판은 오세창이 썼다.

 

손병희 선생은 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천도교의 신앙생활을 심어주는 한편, 지도자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수련장으로 이 집을 지었다. 1919년 3·1운동의 구상도 이곳에서 했으며, 이곳을 거쳐간 지도자들이 3·1운동의 주체가 되었다.

 

봉황각과 부속 건물에는 그 당시의 유물이 남아있고 이곳 앞쪽 약 50m 지점에 손병희 선생의 묘소가 있다.

 

4.도선사 마애불입상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4호

지 정 일 1977.09.05

소 재 지 서울 강북구 삼양로173길 504 (우이동 264)

시 대 조선시대

 

신라 경문왕 2년(862)에 도선이 절을 세운 후, 큰 암석을 손으로 갈라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전체 높이 8.43m의 마애관음보살상으로 신체는 원통형으로 되어 있다.

 

신비스러운 영험이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일 날이 없으며 석불 앞에는 석탑과 석등이 있다.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방치되었던 이 석불은 철종 14년(1863)에 나라의 기도도량으로 지정된 바도 있다.

 

불상 형태로 보아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마애불 계통을 이신라 경문왕 2년(862)에 도선이 절을 세운 후, 큰 암석을 손으로 갈라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전체 높이 8.43m의 마애관음보살상으로 신체는 원통형으로 되어 있다.

 

신비스러운 영험이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일 날이 없으며 석불 앞에는 석탑과 석등이 있다.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방치되었던 이 석불은 철종 14년(1863)에 나라의 기도도량으로 지정된 바도 있다.

 

불상 형태로 보아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마애불 계통을 이어받은 조선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5.화계사 대웅전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5호

지 정 일 1985.12.05

소 재 지 서울 강북구 삼양로173길 504 (수유동 487)

시 대 조선시대

 

 화계사는 조선 중종 17년(1522)에 신월스님이 지은 절이다. 원래는 고려 광종(재위 949∼975) 때 법인대사가 삼각산 부허동에 보덕암을 짓고 이어져 내려오던 것인데, 신월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크게 짓고 화계사라 이름지었다. 그 후 광해군 10년(1618)의 큰 화재와 오랜 세월로 인해 건물이 퇴락하자, 고종 3년(1866) 흥선대원군의 시주로 다시 지었다. 1933년 조선어학회 주관으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위해 이희승·최현배 등의 국문학자 9명이 기거하며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양옆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는 회계사 대웅전은 고종 7년(1870)에 새로 지었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놓은 다포양식 건물이다.

 

회계사 대웅전은 내부천장의 장식이나 기타 다른 건축부재의 장식들이 모두 조선 후기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목조건축물이다.

 
 

6.본원정사 목 보살좌상(지장보살)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36호

지 정 일 2001.09.15

소 재 지 서울 강북구 삼각산로 1 (수유 6동 산125)

시 대 조선시대

 

본원정사 명부전에 모셔져 있는 나무로 만든 지장보살상이다. 이 지장보살상은 삼각산 태고사에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태고사에 불이 나 본원정사로 옮겨졌다고 전한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앉아 있는 이 지장보살좌상은 신체에 비해 얼굴이 다소 넓적하고 큰 느낌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단정하면서도 균형이 잘 잡혀 있어 안정감을 준다. 이마가 넓고 두 귀가 크게 표현된 얼굴에 머리는 민머리 형태를 하고 있다. 몸체가 그다지 큰 편은 아니지만 양감이 잘 표현되었다. 두 어깨를 모두 감싼 옷은 자연스러운 옷주름을 만들면서 흘러 내려 온몸을 감싸고 있다. 특히, 오른쪽 어깨 위에서 흘러내린 옷자락이 팔에 걸쳤다가 다시 아래 입은 옷의 속으로 끼워져 있다. 지장보살좌상의 손부분은 원래의 것이 불에 타 다시 갈아 끼운 것이다.

 

전체적인 형태와 앉은 자세, 옷자락의 세부 표현 및 착의법, 양감표현, 목조 재질이나 나무를 깎은 수법, 복장유물을 넣었던 구멍을 막은 기법 등의 면에서 18세기 초기 불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목조지장보살좌상은 규모나 조각 수법, 양식적인 특징 등은 조선 후기 목조각을 대표할 만한 것으로 평가된다.

 

 

7.도선사 목 아미타불 ․ 대세지보살상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91호 
지 정 일 2004.09.30
소 재 지 서울 강북구  삼양로173길 504 (우이동 264)
시 대 조선시대

 

이 불상은 목조로 조각된 아미타불좌상과 대세지보살이다.


이 불상 조성원문에 의하면 영조 16년 견신 10월에 청신녀 정기춘 등이 세상이 불난 집과 같고 뜬 구름과 같다고 생각하여 불상을 조성하여 선의 수행을 하기 위하여 조성되었다.


조성자는 인성, 치준, 지찬, 삼안 충신등이며, 도봉산 원통암에서 조성하여 삼각산 진관사에 봉안하였다가, 6.25사변 이전에 도선사로 옮겨졌다고 한다. 본존 아미타불상은 대좌와 광배는 없지만 불상은 완전하다고 볼 수 있다. 머리에 육계주 표현이 보이지 않는 대신 육계주가 높이 솟아있고 나


발이 촘촘하게 표현되고, 중앙 계주는 반달형으로 작은 편이다. 얼굴이 사각형에 가까운 편이고 턱주가 둥글게 표현되고 있다. 백호는 작으며 눈은 가늘고 길며 코는 삼각형으로 오뚝하고 입은 작고 뚜렷한 편이다.


상체는 비교적 길지만 목은 짧고 굵으며 어깨를 움츠리고 아랫배가 약간 나온 편이다. 결가부좌한 하체는 길상좌이고 수인은 시무외인으로 아미타 하품하생인을 짓고 있다.


대세지보살상, 목아미타불과 동일한 형식과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8.도선사 석 독성상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92호 
지 정 일 2004.09.30
소 재 지 서울 강북구  삼양로173길 504 (우이동 264)
시 대 조선시대


여기에 모셔져 있는 분은 나반존자 상이다. 나반존자는 독성이라 일컫는데 고유의 신앙대상을 부처님 재세시 민두로파라타존자와 동일한 대상으로 여겨지는 독특한 성인이라고도 하나 민두로파라타라고도 주장 한다. 민두로파라타는 16나한의 한분이다.


나한의 아나한의 준말로 소승의 교법을 수행하는 성문이다. 나반신앙은 남방, 북방의 중국, 티벳, 일본 등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한국불교 특유의 신앙형태로 사찰내에서는 독성각이라는 전각을 세워 모셔져 있으며 부처님과 같이 응공 할 자격이 있으며 중생들의 소원을 성취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으로 숭배하고 있다.


이 상은 오른손을 짚고 왼손은 궤자로 세운 왼무릎 위에 손을 얹는 자세의 이 나한상은 삭발의 머리칼, 길고 침잠한 얼굴, 단정한 체구, 자유스러운 자세 등 조각수법이 비교적 세련된 편이다 이 상은 붉은 가사를 입고 있는데, 왼쪽어깨에 가사를 묶는 고리가 표현되어 있고, 오른쪽 어깨를 살짝 걸쳤으며 가사에는 흰색으로 꽃무늬가 그려져 있다.


이 상은 개분기에 있듯이 1876년(광서2년)에 개분되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18세기 작품으로 판단된다.

 

 

9.도선사 청동 종 및 일괄 유물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59호 
지 정 일 2008.05.08
소 재 지 서울 강북구  삼양로173길 504 (우이동 264) 대한불교조계종 도선사 
시 대 고려시대


1972년에 청담대종사의 사리탑 및 사리탑비·사적비 등을 조성하기 위해 사리탑 부지를 터파기할 때 고려 범종 1점을 비롯한 청동시 5점, 청동저 1짝, 청동국자 2점, 동경 1점, 동전 1점이 일괄로 출토되었으며, 현재 청담기념관에 보관중이다.


출토지가 분명한 이 유물들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금속공예품과 조선시대 상평통보, 그리고 일본 에도시대 동경이 서로 섞여 있는데 이는 사리탑 부지가 오랜 기간 존속된 건물지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2017.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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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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