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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말레이시아역사 레알급함!!
dewk**** 조회수 5,126 작성일2011.09.15

1. 말레이시아 역사(PPT한페이지에 다들어갈정도로 간단하게)

2. 말레이시아 경제.

3. 말레이시아 중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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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트레블
식물신
인도 4위, 싱가포르 42위, 아시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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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최초의 독립국가인 말라카 왕국이 건국된 것은 1405년, 그때까지 수마트라 섬과 말레이 반

 

도 지역을 다스렸던 마자파히트 왕국의 왕국의 군대를 피해 수마트라 팔렘방의 왕자 파라메스바라가 자

 

그마한 어촌이었던 말라카에 말레이인들을 이끌고 정착한 것이 시초였다.

 

 

파라메스마라는 말라카를 거점으로 해상 무역을 발전시켰고, 말라카 왕국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렸다.

 

힌두교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나 아랍, 인도의 이슬람 상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이슬람교로

 

개종했을 정도로 철저했던 무역 전략이 말라카를 무역 왕국으로 발전하게 했던 것이다.

 

또한 당시 세력을 키우고 잇던 샴(태국)왕국으로부터 벗어 날 목적에서 중국 명나라의 속국이 되어 그

 

보호 덕분에 정치 적으로도 안정을 꾀했다. 이 무역 왕국 말라카가 바로 현재 말레이시아의 기원이다.

 

                      (말라카 왕궁)

 

왕국의 지배하에서 말라카는 동부 여러국가(지금의 인도네시아 제도를 중심으로 한 일대의 군도)에서

 

생산된 후추와같은 향신료를 유럽에 수출하는 중계무역항으로 번영을 이루었다. 최고 전성기 때는 4000

 

명의 외국인 상인들이 이곳에 머물렀고 80개국 이상의 언어가 통용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말라카는 당

 

시 아시아 진출을 꾀하고 있던 유럽 강대국들의 주목을 끌고 있었다. 1511년 당시 스페인이나 네덜란드

 

등의 열강과 식민지를 놓고 다투던 포르투갈이 가장 먼저 말라카로 손을 뻗었다. 대략 1개월에 걸친 포

 

위 공격을 계속한 결과, 포르투갈 함대는 마침내 말라카 왕국을 점령, 그위 1641년 까지 약 130년 동안

 

이땅을 지배했다. 그러나 사이 1545년에는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말라카를 방문해, 그리스도교를 포교

 

하기 시작했다. 현재도 그 무렵에 세워진 교회가 지난 역사를 말해준다.

 

                

                (말라카 박물관)                                                                (말라카 교회)

 

 

1641년 네덜란드 해군은 말라카 해협에서 포르투갈 함대를 격파시키고, 새로운 지배자로 마라카를 통치

 

하게 되었다. 현재 말라카시 교외이 남아 있는 '포르투갈 마을'은 그 시대에 살 았아던 포르투갈인들의

 

후예이다. 이후 영국의 세력이 말레이 반도까지 미치게 된 18세기 후반까지 네덜란드에 의한 지배는 3

 

세기에 걸쳐 지속되는데, 그 사이에도 유럽 열강에 의한 격렬한 영토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문화와

 

경제라는 관점에서는 큰 번영을 이루게 되지만 정치적으로는 정체된 시기를 맞게 되었다.

 

 

 

영국의 영향력이 미치게 된것은 1786년의 일이다. 케다주의 술탄이 미얀마와 태국의 힘을 두려워하여

 

영국에게 호위를 의뢰하고, 그 대신 페낭 섬을 동인도회사에게 할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페낭섬을 손

 

에 넣은 일로 말레이 반도 남부를 점령할 수 있게 된 영국은 단숨에 세력을 확장하여 1795년에는 말라카

 

로도 손을 뻗쳤다. 그 뒤 나폴레옹전쟁을 비롯해 네덜란드 & 프랑스 간, 영국&네덜란드 간의 식민지 쟁

 

탈전도 종식을 맞게 돼, 결과적으로 영국은 네덜란드의 식민지를 수중에 넣게된다. 이렇게하여 1824년

 

말라카도 영국 동인도회사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 후 동인도회사가 해산한 1867년에는 말라야 일대

 

가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된다. 한편 보르네오 섬에서슨 북보르네오(지금의 사라와크 주)원주민을 보호

 

한다는 목적에서 1841년 탐험가 제임스 브룩이 브루나이의 술탄에게서 라자(왕)로 임명되었다. 영국은

 

그후 1세기에 걸쳐 이 땅을 통치하게 된다. 이후 영국 왕가의 영국인에 의한 말레이 지배는 세기를 넘어

 

제 2차 세계대전 발발시까지 지속되었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1942년 1월에 일본군은 싱가포르 이외의 말라야 지역을 점령, 다음해에

 

는 싱가포르까지 손을 뻗쳐 1945년 일본군 일본군 패망이 있기까지 3년 반 동안 이곳을 통치했다. 그러

 

나 일본이 퇴각하자 다시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영국은 싱가포르를 제외한 전 말레이 반도를 통일

 

하는 말라야 연합을 수립하고, 각 민족에게 평등하게 권리를 주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일본 통치시

 

절에 우대받았던 말레이인들이 이에 반발하자 1948년 말레이인에게 특권을 주는 협정을 맺었으나, 다시

 

이에 불만을 가진 중국인들이 북부 지방에서 게릴라전을 펴는 등 파란이 거듭되었다. 그뒤 1955년 총선

 

거게서 말레이인 정당인 연합 말레이 국민 조직(UMNO), 말라야 중국인 협회(MCA), 말라야 인도인 회

 

의(MIC)가 연합당을 조직하여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1957년 8월 31일 말라야 연방은 완전한 독립을

 

이룬다. 초대 총리로 취임한 압둘 라만은 말라야 연방, 싱가포르, 사바, 사라와크, 브루나이로 이루어진

 

말레이시아 연방을 결성하자고 했고, 1963년에 브루나이를 제외한 말레이시아 연방을 발족했다. 그러나

 

말레이인 우대 정책에 반발한 싱가포르는 1965년에 분리. 독립했다.

 

 

독립국가 성립후에도 민족간의 분쟁은 한동안 계속되었지만, 1967년 동남아 아시아 국가연합(ASEAN)

 

가입등의 정극적인 외교 정책과 1970년대 초 말레이인 우대정책을 도입하여 점차 상황이 나아졌교,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마하티르 총리의 지휘하에 철저한 경제구조 개혁을 추진하는 등 오늘 날의 말레

 

이시아는 동남아 국가중에서도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로 손꼽힌다.

 

말레이시아 역사와 각 분야의 의미있는 숫자들의 나열, 사실들. 그리고, 한국과의 비교를 통한 말레이시아에서 살면서 우리가 말레이시아에 대해 적어도 알고 있어야 하는 다양한 사실들을 알아보기로 하자. ( 여기에 서술되는 사실들은 20114월 기준, 미국 CIAThe World Factbook을 참고로 하였음을 밝혀둔다. )

 

말레이시아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동안 현재 말레이시아 지역은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이후 1942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이 점령했으나, 1948년에 반도 말레이시아가 말라야 연방이라는 이름으로 영국령에 속했다가 1957년에 독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1963년에 역시 영국 식민지였던 싱가포르와 동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의 사바주와 사라왁주가 말레이시아 연방에 편입됨으로써 말레이시아 연방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몇 년간 공산주의자들의 반란과 인도네시아와의 대립, 사바주에 대한 필리핀과의 영토 분쟁, 그리고 1965년 싱가포르의 분리독립 등으로 말레이시아 연방의 역사는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마하티르(Mahathir) 총리(1981-2003)22년간 집권하면서 말레이시아는 비로서 1차산업 위주의 나라에서 제조업, 서비스업, 그리고 관광산업에 이르기까지 산업의 다양화에 성공하게 된다. 2009 4월에 취임한 현 나집(Najib) 총리 또한 이러한 기존의 정책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말레이시아

대한민국

참 고

면 적

329,847 sq Km (66)

99,720 sq Km (108)

3.3배 말↑

해안선

4,675 Km

2,413 Km

1.9배 말↑

가장 높은 산

4,100 m (키나바루산)

1,950 m (한라산)

말↑

인 구

28,728,607(43)

48,754,657(26)

1.7배 한↑

인구증가율

1.576% (74)

0.23% (174)

6.9배 말↑

출산율

21.08/천명당 (83)

8.55/천명당 (216)

2.5배 말↑

사망률

4.93/천명당 (189)

6.26/천명당 (157)

1.3배 한↑

성별 비율

1.01 (남자/여자)

1 (남자/여자)

거의 동일

출산 사망률

15.02명사망/천명당 (119)

4.16명사망/천명당 (198)

3.6배 말↑

* 중위 연령

26.8

38.4

11.6세 한↑

예상 수명

73.79(112)

79.05(41)

5.3년 한↑

AIDS 사망

5,800(36)

500명이하 (88)

11.6배 말↑, 2009년 기준

문맹률

88.7% (93)

99.0% (17)

99.8% (1:쿠바,폴란드)

교육비 지출

GDP4.5% (86)

GDP4.2% (97)

2007년 기준

실업률

3.5% (28)

3.3% (27)

2010년 추정

** 지니계수

44.1 (44)

31.4 (106)

2009년 기준

*** 1인당 GDP

$14,700 (77)

$30,200 (44)

2010년 기준

실질성장률

7.2% (23)

6.1% (38)

말 ↑ (2010년 추정)

인플레이션

1.7% (44)

3% (85)

한 ↑ (2010년 추정)

인터넷 유저

154십만명 (26)

394십만명 (11)

2009년 기준



                                 

1.      * 중위연령(Median Age) : 전체 국민을 나이순으로 나열했을 때 중간에 해당하는 연령, 그 나라의 노령화를 가늠할 수 있음.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레이시아 사람들에 비해 11.6세 만큼 더 나이를 먹었다는 이야기임. 현재 말레이시아의 중위 연령은

우리나라 1989년도 중위연령과 거의 같다.

2.      ** 지니계수(Gini Index) : 빈부격차와 계층간 소득분포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소득이 어느 정도 균등하게 분배되어

있는지를 평가하는 데 주로 이용된다. 지니계수는 0 1 사이의 값을 가지는데, 값이 0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낮다는 것을 뜻한다. 보통 0.4가 넘으면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심한 것으로 본다. [ 이를 지수(Index)화하여 1

아닌 100으로 산정한다. , 40이 넘으면 불평등 정도가 심한 것. ]

3.      *** 1인당 GDPPPP(purchasing power parity)를 인구 수로 나눈 값이므로, 환율이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이를 다시

계산해보면, 말레이시아는 $7,600, 한국은 $20,200 정도 된다.

 



 

 

201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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