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앞에 당돌한 '연암'에게 배우는 백수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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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앞에 당돌한 '연암'에게 배우는 백수의 지혜
'노동 없는 미래'를 대비하는 고전의 지혜
  • 입력 : 2018. 08.22(수) 16:38
  •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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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고미숙 | 프런티어 | 1만5000원
요즘 청년 담론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단연 '수저론'이다. 예전에 자주 사용하던 스펙이란 단어가 수저로 대체된 것이다. 수저론에는 금, 은, 흙 세가지 계급이 등장한다. 기준은 오직 화폐의 양이다. 세 등급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은수저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결국 금과, 흙 두가지 계급만 존재할 뿐이다.
조선 후기 걸출한 문인이자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소 중화주의에 찌든 사대부들에게 파란을 던진 문제작들을 다수 집필했다. 열하일기가 대표적이다. 청나라를 야만의 오랑캐로만 인식하는 조선에 오랑캐의 문물을 소개하며 현실을 바로 보자는 연암의 주장은 기존 질서와 가치를 뒤엎으려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정조가 열하일기를 문체반정의 시발점으로 삼고, 연암에게 반성문을 요구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수저론에 비추어보면 연암은 불가사의다. 조선 양반가 출신으로 소위 금수저였던 그가 열하일기를 집필한 것은 '왕에게 찍히는 것'을 자처한 셈이기 때문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가 흙수저의 인생을 선택한 것이다.
지난 2003년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재해석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시공간'으로 '고전평론가'라고 불리우고 있는 고미숙씨가 이번에는 '청년연암에게 배우는 잉여시대를 사는법'에 관한 책을 선보였다.
신간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는 연암의 청년시기와 요즘의 청년들을 오버랩하며 독자들에게 연암의 발자취로부터 배울 수 있는 행복한 백수의 삶을 일깨운다. 저자는 '일, 관계, 여행, 공부'의 키워드로 청년의 삶을 구분한 뒤 연암이 어떤 방식으로 살았는지 따라가며 그의 당당한 자신감을 배우라 말한다.
취업난에 맞닥뜨린 청년들만이 백수는 아니다.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를 포함해서 중년 백수, 장년 백수도 수없이 많다. 어떤 청년들은 자신의 때만이 가장 힘든 것처럼 방황하기도 하지만, 중장년의 방황은 생각보다 큰 파고를 지녔다. '안정된 생활'을 구축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세대들도 삶의 허무함을 마주하며 결국엔 백수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세대에서 백수가 양산된다면, 모든 인간의 종착지가 곧 백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때는 바야흐로 '잉여 시대'다. 4차 산업혁명은 '노동의 종말'을 고하고 있고, 당장 실현되는 52시간 근무제는 우리에게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묻고 있다. 경제 상황이 어렵다고 하지만 국민소득은 3만 불 시대에 진입했고 '저녁이 있는 삶'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맞이해야 할 잉여 시대는 벌써 코앞에 왔지만, 그것을 활용하며, 더욱이 행복하게 누릴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은 어디서든 당당하며 적절한 무게감과 끝없는 위트를 지녔던 '조선 백수' 연암에게 헬조선에 생존하는 지혜로운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밥벌이와 자존감에서는 백수에 대해 경제활동을 안 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것이라고 재정의가 인상적이다. 이와 함께 소비와 부채로부터 먼저 해방되라고 조언한다. 이는 자존감을 확립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2장 우정, 백수의 최고 자산-친구는 제2의 '나' 에서는 행복의 전제조건으로 관계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출신 성분과 직업, 성별을 뛰어넘어 길에서 만난 이들, 여행에서 만나는 타국인들에게 서슴없이 말을 건넸던 연암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혼밥''혼술'이 위험한 이유를 말한다.
3장 '집의 시대'에서 '길의 시대'로-청춘은 유동한다에서는 여행의 본질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단지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서 단기 여행을 떠나기보다는 다른 지역에서 살아보는 장기 여행을 권유한다. 여행과정에서 타자와 자신을 만나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통해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마지막 4장 배움에는 끝이 없다-네버엔딩 쿵푸에서는 진정한 공부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연암은 그 어렵다는 과거 시험에 두 번이나 합격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소과에 장원급제. 그런데 그는 대과에서 백지를 내고 나온다. 이후 여러 차례에 응시했지만, 기암괴석이 있는 산수화를 그리거나 답안에 이름을 기재하지 않는 등 기이한 행동을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백지 답안을 던지고 나오는 누군가는 한 번쯤 꿈꾸는 로망을 실제로 실천한 배포도 멋지거니와, 연암의 공부는 시험지를 뛰어넘을 줄 아는 진짜 공부였던 것이다. 공부의 근간은 기본적으로 말하기, 읽기, 쓰기지만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이런 것들을 배우기가 쉽지 않다. 저자는 모든 지식은 먼저 텍스트로 기록돼 있고 그것을 해독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 sangji.park@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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