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중세시대 중국과 이슬람 이 두개국 중에 어떤 나라가 제일 문화가 높았나여??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4,114 작성일2004.11.14
어떤분은 중국이 더 높았다고 하고 어떤분은 이슬람이 더 높았다고 하고 정확한 것은??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5 개 답변
2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chje****
중수
본인 입력 포함 정보

고대부터 중세까진 세계에서 중국이 문화가 가장 높았습니다.

쌍벽을 이루는 것이 이슬람이죠.

높고 낮음을 가리기 적당한 기준은 몽고의 선택을 볼수 있습니다.

중국과 이슬람 유럽까지 모두 점령한 몽고가 수도와 중심지의 선택을

중간지대인 이슬람에 두지 않고 중국에 두었다는 것이

근단적으로 모두 말해주는 거죠.

아무리 다른 말을 갖다 붙여도 이것으로 모든 것은 끝난 겁니다.

이슬람은 단합이 잘되고 유목민이기에 전국민이 북쪽의 유목민 처럼

군대화 할수 있습니다.그러나 중국은 군과 민이 분리되죠.

이슬람의 군사적기운을 누르긴 쉽지만 중국의 다양한 문명은

누르기 힘듭니다.

전쟁도 보급이 튼튼해야 됩니다.

그당시 이슬람이 살길은 강력한 군사기술로 중계무역하는 길박에 없엇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중계무역을 할 필요가 없었죠.자급자족됬으니.이게 중국인의 폐쇄성을 나았죠

몽골제국이 이슬람에 수도를 두지 안은 이유는 정복하고 나니

뜯어먹을게 없었던 겁니다.

중국은 물자가 풍부하고 뜯어 먹을수 있는게 많았죠.

보급의 문제도 해결되고

세계적으로 보급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강대한 군사력으로도

강해질수 없죠.

오늘날 미국이 강한 이유는 경제문화가 다양하고 풍부해 싸움이 나도 뒷받침해줄

능력이 있기 대문입니다.

자체보급강능한 군대라도 정복후 문화나 보급이 최강이지 않으면

제국을 유지하긴 힘든 겁니다.

 

 

2008.06.09.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3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ss****
고수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추천해주려다가 이의 제기만 하고 갑니다.

 

중국은 원나라의 등장과 함께 몽골인들이 가장먼저 총의 개념을 정립했습니다.

이것이 12세기 경이며 이것을 몽골인들이 아랍을 정벌하는데에 사용했는데 이때 아랍인들에게

화약을 이용한 발포의 개념이 전해졌습니다.

 

또한 세계최초의 대학은 기원전 387년경 그리스의 플라톤이 설립한 아카데미라는 얘기가 있지만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대학은 12세기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에 등장한 의학, 법학, 신학대학입니다.

 

이집트의 대학이 세계최초라면 중국의 주나라때의 학습기관도 포함되어져야 겠군요.

 

 

그리고 저도 인정하기 싫지만 정화의 원단은 서양인들도 인정하기 싫어하는 중국인들의 작품입니다.

중국인들이 너무 과장되게 묘사하여 마치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배와 선단을 만든것 같아 보이지만

양심있는 중국학자들의 토설로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되었는데.

 

대략 배의크기는 12겹의 돗대로 이루어진 65m길이의 거대한 배입니다.(중국학자들은 120m에 폭 50여m라 주장)

 

정화원단의 함선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중국인들이 만든 현대적인 조선소의 모습과 그 규모였는데, 이는 서양보다 앞약 400여년 정도 앞선 것이었습니다. 서양인들은 18세기 해양의 시대에도 중국인들의 건조규모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한 배의 구조면에서도 현대의 것과 흡사하기 때문에 정화시대의 중국함선은 분명 당대 필적할만한 상대가 없는 유일한 최첨단 배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중세의 중국인들을 치켜세우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신것은 참 좋은일이지만 tumentai님글은 거의 이슬람찬양자라고 보일만큼 객관성이 떨어집니다. 중국을 비판해도 너무 심하게 비판하셨네요. 이슬람의 건축양식도 사실상 로마와 그리스의 건축양식을 많이 모방했는데. 이를 이슬람만의 독자적인 것으로 묘사하셨습니다.

 

이슬람의 의학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의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고 이것이 7~8세기에 이슬람에서 발전한 것인데 오로지 이슬람만의 독자적인 고유의 것이라고 본다면 모순이죠.

 

 

당과의 탈라스 전투에서도 당의 몇배의 규모나 되는 전력을 투입하고 간신히 이긴 이슬람인들의 군대가 과연 단합되어졌고 위대한 군대라고 볼 수 있을까요?? 오히려 여기저기 각국에서 차출한 군대로 종교적인 신념하에 하나로 묶어내긴했지만 통합이 항상 잘되었다고 볼 순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페르시아 왕조가 멸망했을때에도 왕손들이 친분이 있던 중국왕실로 망명한 것을 보면 중국이 이슬람보다 많은 열세적 위치에 놓인 국가는 아니었습니다.  동등했다고 볼 수 있으나 중세시대에는 분명 이슬람이 더 앞선 것은 확실합니다.

2008.07.10.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1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탈퇴한 사용자 답변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중국을 상국으로 모셔서 살아왔기 때문에 너무 중국사를 대단하게 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하여튼 중국사와 서양사 이 두가지가 한국의 세계역사 발전에 너무 장애를 줍니다..

중국인들이 아시아에서 강국으로 군림하던건 고대시대에서 당나라 중기까지일뿐입니다. 그 이후는 이슬람의 등장으로 중국은 한 자리 물러나게 되었고 당나라 이후로는 점차 쓰레기같은 왕조들이 등장하면서(송나라 명나라) 중세시대 중국은 돈만 많은 약소국일 뿐입니다...

게다가 13세기부터는 몽골제국의 등장과 인도차이나에도 시암과 버마같은 새로운 강대국들이 등장하면서 이들이 16세기가 되어 유럽과 무역을 할정도로 성장해버리자 명나라의 국력으로는 이들을 상대할 힘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17세기부터는 일본까지 무서운 제국으로 성장해버렸으니 그때까지 중화사상에 젖어있는 명나라는 당연히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일본과 손잡고 청에게 대항할려고 했다는 군여.. 그러다가 결국 만주제국에게 패망하고 청은 명과는 달리 중국을 새롭게 탈바꿈했습니다.

원나라와 청나라 이 두시대를 제외하면 한족의 왕조들은 모두 약소한 나라일뿐입니다.. 한족의 나라들은 중화사상 주의로 인하여 발전을 할수가 없었고 말그대로 다른 나라와 싸워도 맨날 깨질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중국의 군대는 원과 청시대를 제외하면 모두 기병대를 제외하고는 갑옷하나 제대로 걸치지 못한 농민출신의 열약한 병사이며 서양 군사학자들 또한 중국에는 특별히 강한 정예병이 없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래서 기껏해야 인해전술밖에 없었지여.. 그러나 이런 인해전술로도 타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전투가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중국군대의 질이 매우 나뻤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이슬람과 중국의 문화와 과학기술을 비교해볼까여..

1.인구

물론 중국이 인구가 더 많다고는 하지만 이슬람은 지방마다 워낙 광대한 지방이 많습니다.. 레반트지방과 아나톨리아,아제르바이쟌,이라크,아라비아,남아라비아,페르시아,바바리(북아프리카),이집트,서아프리카,동아프리카의 토착 아랍인,페르시아,아프가니스탄같은 이런 비아랍계 국가들의 인구를 합쳐도 1억이 넘을 것입니다..

당나라에서 명나라때의 중국 인구도 2억이라곤 하지만 중국인들의 과장이 너무심해서 말입니다. 솔직히 중국에서 인구가 2억이 넘은 것은 청나라시대부터입니다.. 명나라때 기껏 많아봐야 1억 9천만 정도 되었을 까여??

그에 비하면 이슬람은 인구가 많은 인도나 인도네시아지방의 인구까지 합친다면 훨씬 인구를 많이 보낼수 있습니다..

2.병사의 질

중세 중국의 군대는 기병을 제외한 하급병졸은 모두 농부출신의 징발병이였습니다. 상비군의 숫자로 치자면 이슬람의 군대가 더 많었습니다. 전체군단 편제의 숫자에 봐서 중국군이 더 많지만 사실상 모든 군대로 그냥 백병전으로 싸우면 당연히 이슬람군이 승리할 확률이 80%가 넘습니다..

이슬람이 아니어도 인도차이나의 국가들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로 상비군의 숫자로는 중국을 압도했습니다.

게다가 중국군대는 특별한 정예병이 없다는 것은 서양군사학자들도 밝혀낸 사실입니다.. 그에 비하면 파리스니 마멜루크니 시파히니 예니체리니 무시무시한 정예병들이 많은 이슬람에게 상대가 될까여..

게다가 중국의 기병조차 이슬람의 기병보다 질이 상당히 떨어지며 경기병이나 중장기병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중국기병들은 달리면서 활을 쏘는 파르티안 샷이 없지만 이슬람국가들은 인도네시아나 말레이 일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런 능력을 가진 기병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노궁을 말타면서 쏜다고 하지만 그 연사력도 느린 것이 대단할까여.. 게다가 활 역시 노궁만 제외하면 이슬람군의 활이 더더욱 사정거리가 길고 위력적입니다..

중국활은 복합궁이지만 이슬람활은 대부분 국가가 합성궁을 썼고 비아랍계 국가인 터키나 페르시아의 활은 몽골활과 더불어 장거리 활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병역시 숫자는 중국이 압도해도 질면에서는 차이가 너무 납니다.. 이슬람군의 칼이나 창과 도끼가 중국의 검이나 창보다 더더욱 제련도가 훌륭하다는 것이져... 이슬람의 훌륭한 무기 제련술은 나중에 다마스커스강이라는 무시무시한 무기를 만들어내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갑옷은 대부분 이슬람군은 가죽갑옷이나 비늘갑옷과 사슬갑옷을 걸쳤고 일부 친위대는 금속갑옷을 신체의 상반신에 걸쳤습니다.. 중국은 귀족이나 일부 중장기병만 오직 철덩어리 철편을 꿰멘 갑옷을 입었을뿐 대부분 병졸은 가죽이나 구리로 만든 갑옷을 입었고 아예 안 입는 병사도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리하여 군사의 질부터 중국은 이슬람보다 뒤져있습니다..

3.정치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300년이상 지속된 왕조는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중국인들이 단합이 약했고 그에 비하면 이슬람은 압바스왕조는 509년을 오스만제국은 624년을 라시드왕조는 1066년을 갔습니다.. 그외엔 300년이나 200년 일대의 나라뿐이지만 이슬람교라는 한 종교로 백성을 단합할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도 나중에 여러 종파로 나누어지면서 달라지지만여..

4.경제

중국은 무역을 통해 막대한 수입을 얻었지만서도 기본경제 시스탬은 농사였습니다. 상공업이나 기타 산업의 비율이 높은 이슬람의 경제가 어느정도 선진적이였다는걸 알수있습니다. 또한 이슬람은 초기부터 화폐의 사용이 많었던 반면 중국같은경우는 물물교환이 대게 성행하였고 화폐가 통용화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생기었습니다. 또한 괭장히 상업적이라서 자기집에서 빵을 만들어먹는것보다 상점에서 사먹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이슬람 상인들의 활약을 봐도 말이져... 카라반이라는 아랍상인들을... 그리고 비단 역시 페르시아 지방이 원조라는 설도 있습니다.

5.해군력

물론 배는 중국의 배가 더 크다고는 하지만 이슬람의 경우는 영지가운데에 지중해와 흑해와 홍해와 인도양이 있기때문에 물길을 통해 상업을 하기도 하고 전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선박업이나 해산업 분야는 이슬람이 월등하며 게다가 아랍상인의 아프리카와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중국까지 향하는 대양항해는 위대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중국은 기껏해야 정화의 횡단 정도고 이것도 현재는 남아있는게 거의 없습니다.. 특히 오스만제국은 해군강국이었고 오만술탄국 역시 마찬가지로 동아프리카와 인도의 일부까지 지배하는 무서운 해양강국이었습니다..

6.언어

아랍문자는 비교적 어렵다고는 하지만 아랍인뿐만 아니라 케말이 설치기 전까지의 터키와 북아프리카와 프랑스 침공 이전의 서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 해안과 이집트와 페르시아와 아프가니스탄과 위구르와 파키스탄과 말레이지아까지 전파되어 수많은 민족이 사용된 언어입니다.. 하지만 중국의 한자는 본토의 인구만 사용할뿐 그 형태가 상형문자이고 그숫자가 천개가 넘어 배우는데 상당히 오래걸립니다.

7.과학기술

전통적으로 이슬람의 과학기술은 연금술만으로도 세계 최고의 국가였고 이걸로 인하여 나프타라는 석유폭탄을 개발하여 중국보다 화약을 먼저 개발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존심만 강한 저 짱개들은 정말 인정을 할줄 모릅니다..나프타는 던지면 폭발하여 사람의 몸에 불이 붙으면서 순식간에 몸이 녹아내리는 무기로 8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이슬람세계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나중에 대포의 발달로 사용이 줄어들지만 투척병이나 투척기의 발달로 이 나프타의 위력은 유럽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으며 몽골제국또한 나프타 투척기를 받아들여 다른 나라를 정복할때 사용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중국은 기껏해야 불꽃놀이에나 사용되는 수준이고 그나마 명나라때 그것도 서양에서 불량기포라는 것을 들어와 대포를 썼고 화승총도 그 당시 들여온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이슬람은 13세기 마멜루크왕조가 최초로 미드파흐라는 소총과 대포를 사용하였고 이것이 14세기에 북유럽에 최초로 전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오스만제국시대에는 거포와 박격포와 로켓포와 기관총 비스므리한 무기와 화염을 내뿜는 무기까지 발명하게 되면서 명나라의 불량기포니 화승총은 비교가 안됐고 예니체리의 총도 사실 바주카포 수준이었다져..

게다가 사파비왕조나 북아프리카의 왕조들과 무굴제국에도 화기가 대량 보급되었습니다.

연금술에서 중국은 이슬람의 상대가 되지 못하며 게다가 의학에서도 여전히 이슬람이 우세합니다..

중국에서는 의사를 무당의 푸대짓으로 천대했지만 이슬람에서는 의료원의 발달로마을이나 소도시에도 병원은 꼭 있었습니다. 중국의 경우는 전염병이 상당히 많이났습니다. 전염병을 낳게는 하지못하고 죽이는것으로 대체로 해결했습니다. 국민 건강의 정도도 사실 이슬람이 더 높습니다.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흑사병이 창궐하였을때 이슬람지역에서 위생시설로 인하여 사막지방의 하층민이나 노예들이 대부분 죽었을뿐 대도시에는 크게 희생자가 없었습니다.. 유럽같은 미개족들이 비위생적이라 대다수가 죽었져.. 게다가 이슬람에는 유명한 의학자가 두명 있었습니다.. 그들의 저서와 인체를 나타내는 해부도까지 있었으니 중국의 침놓는 의술같은 건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서양놈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의술도 모두 이슬람 의술이 기초이며 서양의 항해술 역시 오스만제국의 제독 피리 레이스의 항해의 서가 시초였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종이만은 중국이 조금 우세하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슬람은 8세기에 탈라스강에서 승리하여 종이제지법을 얻었으니까 말이져..

그리고 나침반도 중국의 시초지만 그것을 잘 사용한 것은 여전히 이슬람입니다...15세기에 동아프리카 해안에 도착한 포르투갈 항해사가 아랍인 길안내인인 이븐 자얀에게 나침반을 보여줬는데 그는 비웃었다져..

그리고 건축술 역시 이슬람이 한수위입니다.. 이슬람의 건축은 예술의 여왕이라고 불렀으며 그 찬란한 모스크와 첨탑과 아라베스크 풍의 벽장식은 정말로 화려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외에도 예루살렘의 황금 돔과 다마스커스의 궁전과 바그다드의 대모스크와 페르시아 이스파한의 궁전과 블루 모스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블루 모스크와 터키의 술탄 메흐메드 모스크와 이집트의 아즈하르 대학과 튀니지의 카이르완 대학과 스페인 코르도바 대학과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과 알제리의 베이 하마드 요새와 모로코의 대왕궁 등등

하지만 중국은 단순 왕궁인 자금성만 엄청나게 넓게 지었을뿐 나머지 기왓장을 단순 올려놓는 식으로 웅장함이나 건물을 높게 짓는 기술은 이슬람보다 여전히 뒤집니다..

8.문화

철학 등과 교육등은 중화문화권 국가들의 철학이나 수학도 우수한편이나 나라의 제도가 워낙에 실추되었던 지라 국가 교육시설은 많이 없었던것이 사실입니다.

그와 반면에 이슬람은 교육시설과 학교는 기본적으로 갖췄습니다. 세계 최초의 대학인 이집트 아즈하르 대학과 튀니지의 카이르완 대학과 스페인의 코르도바 대학이 있고 이슬람의 대학은 교육을 받는 동시에 대모스크의 일도 수행합니다..

그리고 이슬람의 숫자가 인도와 네팔을 제외한(인도와 네팔은 독자적으로 자신들만의 숫자를 사용)나머지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알코올,알칼리,알케미스트같은 이런 과학용어는 아랍어이며 파자마,커튼,오렌지 이런 것들도 모두 아랍어에서 나온 것입니다.

게다가 엄격한 금욕정신과 정신무장으로 이슬람에서는 강간이나 도둑질같은 그런 썩어빠진 타락한 짓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고 도둑질하는 자는 손목을 자르고 강간범은 공개 참형으로 엄격히 다스렸습니다. 게다가 지하드 정신으로 전 국민들은 칼리프나 술탄을 따렀습니다..

그에 비하면 중국을 비롯한 중화문화권 국가에서는 오직 귀족들만 교육을 받았고 성균관같은 것들도 이슬람의 대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조선 이도왕이 그렇게 자랑하는 양부일귀니 물시계니 해시계니 하는 것도 이미 이슬람에서 13세기부터 사용하고 있던 것들입니다.. 이런 걸 보고 15세기 조선의 과학기술이 최고였다같은 것들은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조선에도 당시 이미 이슬람교도들이 활약하고 있었고 나중에 이방습속 금지로 이들을 추방하기 전에는 이도왕도 쿠란 낭송을 즐겨 들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도시 치안과 상업에서도 중국은 이슬람보다 뒤져 있었습니다.. 도시 치안에서 중국은 도둑질이 그치지 않았고 강간범 역시 상당했져.. 게다가 온갖 도적떼가 돌아다니는 곳 역시 중국입니다..

중국이 뭐 강했다니 이런 것들은 중국인들 특유의 과장과 날조에 불과합니다.. 중국처럼 날조를 즐기는 나라는 서양이 유명하져.. 흔히 말하는 중화사상의 덕택에 말입니다. 요즘도 역사왜곡을 보면 이런 중국같은 나라를 끝까지 숭배하고 이슬람의 기술과 문화를 저렇게까지 인정안하는 저런 멍청한 작자들을 보면 한숨이 터져 나옵니다.

식인문화에 전족과 야만적인 형벌같은 짐승같은 풍습에 화잘실문화도 제대로 발달 못한 중국이 과연 이슬람보다 문화가 높을까여??


당시 인도차이나의 왕국들은 초기에는 중국에게 조공을 바쳤지만 시암의 아유타야는 16세기에 당장 파기하였고 라오스도 16세기에 왕국이 강성해지자 당장 파기했으며 미얀마와 크메르는 아예 조공 자체를 바치지 않았습니다..

말라카 역시 왕국의 기초가 안잡혀있을때 명의 조공국으로 살았지만 왕국이 확장되고 이슬람교가 국교가 되자 파기했습니다.

베트남은 아예 중국과 문화가 비슷하면서도 아예 중국을 배척했습니다. 뭐 당시 북원과 오이라트 여전히 쓰레기같은 명나라를 두려워했을까여.. 티베트와 위구르 역시 중국처럼 덩치만 컸지 힘도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일본 역시 명나라를 7년전쟁때 압박했고 나중에는 청에게 망해가는 명과 손잡고 청과 싸울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쓰레기같은 명에게 개처럼 설설 기는 조선이라는 한심한 나라는 당시 국제정세에 너무 어두운 불쌍한 나라입니다.. 귀족은 썩으면 그 나라는 백성만 불쌍해지기 마련입니다.

국제정세도 모르고 끝까지 청에게 대항하고 명을 숭배하고 만동묘같은 것을 짓는 조선은 정말 한심한 국가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벌론이니 뭐니 자신들의 군대가 총과 총끼리 싸운 주제에 러시아군 타격주었다고 최강으로 알고 발광을 하다가 뒈진 그 멍청한 정연이라는 왕은 주제파악을 못하는 저능아에 불과했습니다.

제가 당시 조선의 국왕이었으면 그 썩어빠진 중화문화를 몽땅 없애고 이슬람교를 받아들여 문화와 과학상승을 시도하고 동남아시아와 일본을 강국으로 인정하고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군사를 모두 새롭게 바꾸고 무역과 이득을 봐서 그때 국력이 안정되었으면 청과 한판 붙고 안되면 다른 국가에게 동맹맺어 싸우고 화친하고 이걸 반복하고 왕실을 유지하면 적어도 훌륭한 국가가 될수 있습니다..

게다가 인재등용도 그런 썩어빠진 당파맨들을 몽땅 추방하고 이슬람 울라마들을 과학자로 받아들이고 중국식 연호니 이런 건 몽땅 없애고 새롭게 작은 이슬람왕국으로 만들것입니다..

말라카나 인도네시아의 왕국들도 이슬람화되자 순식간에 무서운 강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메카의 지원 없어도 대신 인도네시아나 말라카에서 이슬람 상인이나 과학자들을 기다리고 지원받으면 됩니다..

그리고 왕이나 황제니 같은 짱개칭호는 폐지하고 술탄이나 말리크로 왕명을 정하져..

그리고 제가 말한 중국과 이슬람의 군사력을 다시 한번 설명해드립니다.

사실상 중국은 대량보병으로 숫자로 밀치거나 노궁으로 안전한 요새에서 사격만 하는 단순한 전술을 썼습니다.. 뭐 삼국지니 초한지니 하면서 온갖 병법도 다 나오지만 거의 대부분 짱개들의 허풍과 과장에 불과하며 그런 전술을 가진 중국이 타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전투가 적은 걸 보면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중세시대 중국인들은 말그대로 병법은 커녕 물량전인 개떼전술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단순한 전술을 썼으니 탈라스에서 아랍에게 고선지같은 명장을 보유함에도 무참하게 깨지고 티벳에게 세 차례나 대패하고 키타이,알탄,탕구트,몽골,베트남,시암,미얀마에게도 깨지고 벽제관에서 사무라이에게 보병전으로 덤비다가 학살당한 이여송도 유명하져..

물론 숫자가 많으면 유리하긴 하지만 중국병사들은 질이 너무나 이슬람병사를 비롯한 대부분 주변국들보다(조선 제외) 월등히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인해전술이라고 해봤자?? 장군이 전사하거나 몇십명이 죽으면 나 살려라 하고 달아나기가 바쁜 군사들입니다..
에센칸이 2만의 기병으로 50만이 넘는 명군을 박살내버린것도 질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명나라 최고의 황제라는 주체(영락제)조차도 북원을 원정하다가 델베그칸과 아다이칸의 아병살성진 전술에 고전하다 결국 3차원정때 전장에서 병사해버렸습니다.. 게다가 영락제가 죽은 후에 베트남도 독립하고 레로이가 이끈 5만의 병사를 앞뒤에서 협공했는데도 대패를 당한 명군은 정말 질이 나뻤습니다.

7년전쟁때 조선에 지원온 명군조차도 벽제관에서 사무라이의 신기에 가까운 백병전에 큰 타격을 받고 나중에는 대포로 사격만 하는 맥빠진 전술만 사용했습니다... 그 잘난 이여송은 이 전투에서 사무라이에게 살해당할뻔 했으나 부장이 몸을 날려 대신 죽으면서 간신히 도망쳤다고 하더군여..

나중에 이여송은 티벳과의 전투에서 살해당합니다.

소사평전투는 유일하게 명이 백병전으로 일본을 격파한 전투지만 이것도 대포로 먼저 사격한 것이며 나중에 중장기병을 보내 겨우 이긴 것이며 사상자도 명군의 사상자가 일본군의 10배가 넘었다는 군여.. 당시 일본군은 백병전 질에서는 세계최강이나 다를빠 없었습니다.

특히나 일개 일본해적들의 노다치 전술에도 관병이 맥없이 나가떨어질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실제로 이때는 소림사 전문 무공들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구 대패했다고 하네여..

그리고 소사평전투에서 간신히 일본군을 물리친 양호의 중장기병대는 나중에 살이호전투에서 누르하치의 팔기기병대에게 대학살을 당합니다..

그래서 원숭환은 팔기전사에 두려움을 갖고 영원성에서 누르하치의 전부인과 친척들을 잡아다가 인질로 삼아 누르하치칸을 심리적을 동요케 했답니다..

누르하치칸이 영원성에서 패전한 것은 그가 역량이 부족한게 아니라 위에서 말한 원숭환이 비열하게 누르하치의 친척과 가족들을 인질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 원숭환도 나중에 홍타이지칸의 계략에 말려 멍청한 숭정제에게 끌려가 처형당하고 그의 시체를 백성들이 먹었다고 하더군여.. 정말 짐승같은 짱개들..

당시 중국이 제대로 상대할 만한 나라는 유럽이나 조선정도일까여?? 유럽은 군사를 동원을 많이 못해서 중국이 숫자로 밀면 큰 희생을 보고 그나마 잡겠군여..

이상 중세 중국군의 허접합을 썼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중세시대 중국의 기병대는 중장기병이라 할지어도 질면에서는 이슬람이나 유목제국의 중장기병보다 월등히 떨어지며 그래서 이슬람기병이나 오스만 예니체리보병같은 정예 이슬람보병을 격파할수 없습니다.

유럽기사랑 뜨면 만만할지도 모르겠군여...

이슬람은 국가에 따라 다르지만 오스만제국의 경우 친위대인 시파히와 아킨지기병대와 그외 기타 경기병과 용병기병대를 포함해서 기병대가 전 통틀어서 15만의 기병을 소유하였습니다.
그에 비하면 중국에서는 몽골과 티벳이나 위구르와 만주와의 국경지대가 아닌 이상 중원이나 강남지방에서 기병이 많다는 소리는 들어본적이 없지여..

이슬람같은 경우는 중장기병이 아니어도 경기병조차도 중무장한 멍청한 유럽기사를 파도전술로 박살내버린 것만 봐도 중국의 질나쁜 중장기병정도는 경기병으로도 한주먹감입니다..

게다가 이슬람기병은 유목기병처럼 경기병이나 중장기병이나 모두 활을 달리면서 쏘는 기능을 가지고 있고 중국기병도 활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은 달리면서 쏘는게 아니라 그저 보조무기에 불과했고 기껏해야 노궁을 달리면서 쏘지만 노궁은 기마전에 적합한 무기가 아닙니다..

유럽에서도 중부에서는 원시적인 석궁을 든 기병이 동방의 궁기병대에 대항하기 위해 편성됐지만 효과를 보지도 못했습니다.

기병대의 능력에서 중국은 이슬람에 비해 크게 떨어집니다..

활은 위에 말했듯이 노궁을 제외하고는 기존 활은 이슬람국가들이 훨씬 강력합니다.. 그리고 이슬람이라고 해도 석궁이 약한 것은 아닙니다.. 그라나다나 북아프리카와 시리아와 페르시아 동부의 석궁병이 유명했으니까여..

특히 터키나 페르시아의 활은 위력도 노궁을 능가할 장거리활이니.. 이 활을 마구 퍼부어대면 상상이 가겠지여..

당시 중국의 경우는 복합궁 아닌 죽궁이나 파마궁을 썼습니다. 이외에도 노궁이 존재했는데 가장 보편화된게 노궁이며 그 이유는 숙련도가 쉬워서 그렇습니다.

문제는 중국의 노궁은 유럽의 석궁보다 비교도 안될 만큼 사정거리가 길었지만 장전속도가 형편없기 짝이 없고 보편화된 숫자로 밀어붙이기위해 노궁을 통용화시킨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기병한테 노출되면 처참하게 짉밝힐 부대입니다.

연노는 두 종류가 있는데 대형과 휴대용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대형은 명중률이 극악하게 짝이 없었고 휴대용 연노는 관통력이 너무나 약해 위력적이지 못했습니다..


이외에도 이슬람에는 투창병이나 투창기병인 제리드가 있습니다.. 이들은 근거리에서 창을 날리며 투창용 창도 1인당 10개식 지급이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투창은 그 무게나 크기에 있어서 짧은거리에서 파괴력은 가히 살상적입니다.

또한 이슬람에는 악천후때를 제외하고는 나프타란 석유를 담은 항아리를 투척하여 적진에 불을 붙이고 적군 병사를 녹여버릴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병이나 경보병에게 공포의 대상인 낙타병이 있져.. 낙타병은 말이 싫어하는 냄새로 인하여 기병을 쉽게 상대할수 있고 중보병이 아닌 이상 말보다 큰 덩치로 인하여 경무장 보병에게 무시무시한 존재입니다.. 페르시아에서는 중무장한 낙타병을 보유했으며.. 가즈니왕조나 코라즘제국이나 인도의 이슬람왕조들은 말그대로 코끼리병을 보유했습니다..

백병전에서는 당해낼수가 없는 코끼리병.. 이슬람의 코끼리병은 인도차이나의 코끼리병과는 달리 코끼리에게도 갑옷을 입힌 중장코끼리병으로 백병전에서는 정말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보병.. 중국의 경우는 대부분 하급병졸이 농부출신입니다.. 그에 비하면 이슬람은 보병도 대부분 상비군입니다... 다만 십자군 원정 초기때 징모병을 조금 썼습니디만..

그러나 이슬람보병은 일본보병보다는 못하지만 근접능력은 월등히 뛰어납니다.

예니체리는 활이나 총을 쓰는 병사도 근접전에 강했으며 이외에도 광신도인 가지나 푸투와나 하시신과 니자리와 카피쿨루 보병대와 마멜루크 보병대와 그라나다 시민병과 흑인용병들은 근접능력에서 상당한 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예니체리중 중장갑보병인 자르힐 네페르는 사무라이도 근접전에서 당해내지 못할 정도로 갑옷도 부수는 무시무시한 갈고리창과 기묘하게 생긴 방패와 사슬갑옷으로 무장한 부대였습니다..

게다가 다마스커스 강으로 만든 반월도는 중국의 검이나 도보다는 월등히 내구력이 높으며 창병은 중국이 더 많다고는 하지만 중국의 창병은 거의다 농부들로 구겸창병이나 부창병이 아닌 이상 전부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또한 상비군으로 있는 보병의 숫자에선 이슬람이 월등히 유리했습니다. 사실상 질적인면으로 볼때 이슬람군이 훨씬 우세입니다.

중국의 경우 대부분의 병사가 징집되어 강제로 전장에 나온 병사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슬람군의 경우는 완전한 상비군 체제로 평소의 부대전술 숙지도나 개개인의 전투력에 있어서 이슬람군에 대하여 비교우위에 있었다고 할 수 있지요.

게다가 중국에서는 특별히 강한 신앙이 없어 병사의 사기를 올릴만한 능력이 부족한 것에 비해 이슬람에서는 지하드정신으로 인하여 병사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니 가장 큰 무기가 될수 있었습니다..

그럼 군사력은 당연히 이슬람이 더 강한 것입니다.. 중국사와 서양사가 한국역사를 너무 잡아서 한국은 정말 세계사에 발전이 없습니다..

2004.11.16.

  • 채택

    질문자가 채택한 답변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5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djaa****
고수
판타지소설, 사람과 그룹, 사회, 도덕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많은이들이 고대에서까지, 그것도 당제국 시절에만 중국이 세계최강이라고 하시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슬람이 강한 나라인건 맞습니다만.

고대~중세까지는 중국이 세계최강국가인건 사실이였습니다.

몽골족이 세계를 지배할때 중국의 오늘날 수도 베이징을 기점으로 하여 원나라를 세운것이 일단 중국이 앞서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몽골족들은 페르시아를 정벌했는데 그게 오늘날까지도 폐허로 남아있습니다. 몽골의 쿠빌라이칸이나 징기스칸이 생애에 가장 이루고 싶은 목적은 '세계정복'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서하제국'정벌인것입니다. 즉, 중국을 정벌하여 영웅이 되고자 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은 군사력 면에서나 영토 면에서 가히 세계최강을 불허하는데..

이는, 한무제 500만군대를 봐도 알수있죠. 또한 진나라 특공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춘추전국시대 이후에 '손자병법'및 여러 병법서가 등장했으며, 종이나 화약, 나침반 등등의 중요한 물건들은

죄다 중국에서 만들어졌죠.

그리고 그런것들을 세계에 수출하면서 세계대제국이 되었습니다.

유럽국가들은 그것으로 무역을 하고 대항해시대를 열어 신항로를 개척하는등 역사의 시대까지 만들어 놓았죠.

너무 큰 업적과 성과라서 유럽 학계들은 이 '4대 발명품'을 영국이나 유럽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합니다만...

중국의 발명품인건 사실입니다.

또한 '총'이나 '대포'역시 원나라에서 만들어 졌다고 하니 이미 끝장이 난거죠.

실제로 원나라 이후라도 명, 청제국 의 힘이나 영토가 그전의 중국보다 떨어진 감이 있을뿐이지, 결코 뒤지진 않았습니다. 청제국 전성기의 강희제같은 황제들의 힘에 세계는 감히 어쩔수가 없었죠. 청제국이 몰락한 말기가 되서야 그것이 끝장난것입니다. 실제로 영국은 아편전쟁을 하면서 모든 유럽국가와 영국이 청제국의 승리를 믿어의심치 않았죠. 결국 청제국은 중화사상과 몰락기라는 2개때문에 아편전쟁에서 지고 말았지만요.

 

2008.10.06.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7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snow****
초수
본인 입력 포함 정보

한, 중, 일의 모든것도 전부 중국으로 되있는거나 다름없잖아요;;

사실 일본의 무사니 사무라이, 닌자같은것도 기원이 중국이고, 천황이라는 것도 기원이 천자황제폐하인 중국이고, 일본의 음양사도 역시 기원이 중국이잖아요;

한국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세계사를 공부하는 제가 알기론..

한, 중, 일 뿐만 아니라 티벳이라든가 또한 여러 북방민족과 이슬람이나 유럽도 사실상 중국의 영향아래 있다고 봐도 되었던것 같아요;;

솔직히 당나라제국 같은 경우 세계를 지배하던 막강한 제국이었는데... 히말라야를 넘어 이슬람군대를 공격해서 실패한것도 히말라야를 넘었다는것이 있지만 숫적으로도 이슬람이 훨씬 우세했고 무엇보다 이슬람이 수비를 한거였잖아요. 또한 이슬람 성지가 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막았을 거구요.

이슬람이 강하고 문화 면에서 높은 아름다운 곳이긴 하지만, 역시 과거에서 중국을 따라갈 국가는 없을것 같아여;;

2008.10.06.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