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질문 그대로 입니다
88올림픽때 나왔던 성적을 좀 모두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1988년 한국의 서울에서 개최된 제24회 하계 올림픽 경기대회.
장소 : 한국 서울
기간 : 1988년 9월 17일~10월 2일
참가국수 : 159개국
경기종목 : 237개 종목
참가선수 : 8,473명
경기종목
정식종목 23개, 시범종목 2개, 시범세부종목 1개, 전시종목 2개, 전시세부종목 1개의 경기가 치러졌다. ① 정식종목:육상·양궁·농구·복싱·카누·사이클·승마·펜싱·축구·체조·핸드볼·하키·유도·근대 5종·조정·사격·수영·탁구·테니스·배구·역도·레슬링·요트 ② 시범종목:야구·태권도 ③ 시범세부종목:여자유도 ④ 전시종목:배드민턴·볼링 ⑤ 전시세부종목:장애자휠체어경기 등이다.
⑵ 경기결과
1위를 차지한 나라는 소련으로 금메달 55개, 은메달 31개, 동메달 46개를 획득하였고, 2위는 금메달 37개의 동독, 3위는 금메달 36개의 미국, 4위는 금메달 12개의 한국, 5위는 금메달 11개의 서독이 차지하였다. 서울올림픽의 메달 총수는 739개인데, 금메달 241, 은메달 234개, 동메달 264개이고, 메달권에 든 국가는 모두 52개국이다.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영남 레슬링(74kg급G)
1988년 대한민국(서울) 한명우 레슬링(82kg급G)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재엽 유도(60kg급)
1988년 대한민국(서울) 이경근 유도(65kg급)
1988년 대한민국(서울) 손미나 여자핸드볼(총15명)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영숙
1988년 대한민국(서울) 송지현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명순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춘례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현미
1988년 대한민국(서울) 이기순
1988년 대한민국(서울) 기미숙
1988년 대한민국(서울) 이미영
1988년 대한민국(서울) 성경화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경순
1988년 대한민국(서울) 석민희
1988년 대한민국(서울) 임미경
1988년 대한민국(서울) 박현숙
1988년 대한민국(서울) 한현숙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수녕 양궁(여자개인)
1988년 대한민국(서울) 박성수 양궁(남자단체)
1988년 대한민국(서울) 전인수
1988년 대한민국(서울) 이한섭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수녕 양궁(여자단체)
1988년 대한민국(서울) 왕희경
1988년 대한민국(서울) 윤영숙
1988년 대한민국(서울) 양영자 탁구(여자복식)
1988년 대한민국(서울) 현정화
1988년 대한민국(서울) 유남규 탁구(남자단식)
1988년 대한민국(서울) 김광선 복싱(플라이급)
1988년 대한민국(서울) 박시헌 복싱(라이트급)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와 종목입니다.
그리고 이하 1988서울올림픽 유치과정입니다.↓
1979년 2월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KOC)위원장으로 방종규씨가 취임하면서 스포츠 외교력을 강화하고, KOC 내에 전문위원실을 설치, 올림픽유치에 대한 구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으며 3월에는 제24회 올림픽 서울유치건의안을 문교부에 제출했다. 문교부는 서울올림픽유치에 필요한 경기장과 숙박시설, 운송수단을 비롯하여 대회유치에 따른 특실 및 개최가능성등에 대한 구체적인 보완자료를 제출토록 KOC에 요구하는 한편, 경제기획원, 외무부 등 관계기관의 의견도 청취했다. 이에 따라 국민체육진흥심의위원회는 79년 9월 3일 서면결의로 제24회 올림픽의 서울 유치계획을 의결하였고 9월 21일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가 나왔다. |
그러나 그로부터 18일뒤 "10.26사태"가 일어나 올림픽유치운동은 일단 잠잠해졌다.. 서울올림픽 유치의 결단을 내린 박정희 대통령이 타계하였고 올림픽 유치운동을 주도하던 박종규 위원장도 체육행정 일선에서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서울시나 체육회, KOC안에서 올림픽 유치에 대한 소극적인 의견이 대두됐고,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의 과도정부도 회의적인 처지였다. 그러나 1980년 8월 1일 제11대 전두환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올림픽유치 계획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
1980년 12월 15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서울시가 이미 확보한 시설과 앞으로 건설할 계획인 경기장, 대회경비 및 대회운영에 관한 총괄계획 등 150항목에 달하는 질문서와 함께 답변서 및 유치신청서양식을 KOC에 보내왔다. 40여일 간의 작업 끝에 영어판 190페이지, 불어판 16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답변서가 작성됐고, 이를 IOC의 요청대로 300권의 책 인쇄를 끝낸 것은 신청마감 불과 4일 전인 2월 24일 이었다. |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이 유치포기를 공식 발표하고, 올림픽 영구 개최론을 들고 나왔던 그리스의 아테네가 신청서의 제출을 포기함으로써, 1988년 제24회 올림픽유치 경쟁은 서울과 일본 나고야의 대결로 압축됐다. IOC본부는 1981년 3월 IOC와 국가 올림픽 위원회 연합회(ANOC)및 국제경기연맹(ISF)의 조사단을 파견했다. KOC관계자의 안내로 건설 중인 올림픽 주 경기장과 태릉국제사격장 및 선수촌 등을 둘러보고 지하철 시승까지 하는 등 사전 조사단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한 이들 일행은, 서울의 무서운 추진력에 감탄하고 올림픽 개최 능력을 확신하게 됐다. |
바덴바덴 총회를 3주일 앞두고 구성된 유치대표단은 체육계 인사는 물론 재계의 유력 인사, 정부관계인사, 언론인 등 107명의 많은 인원으로 짜여졌다. 유치대표단이 바덴바덴으로 출발하기 직전 실무 대책반이 최종적으로 점검한 IOC위원들의 성향을 보면 예상투표자 82명중 한국지지 26명, 호의적 고려 6명, 중립 34명,반대 16명으로 분석됐다. 그때까지 확실한 태도를 밝히지 않았던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출신 IOC위원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승패가 갈릴 전망이었다. |
바덴바덴 총회를 3주일 앞두고 구성된 유치대표단은 체육계 인사는 물론 재계의 유력 인사, 정부관계인사, 언론인 1981년 9월 18일 서울을 떠난 유치단은 20일 바덴바덴에 도착 "바덴바덴 10일 작전"의 막을 올렸으나 현지 분위기는 완전히 "나고야 우세"로 기울어져 있었다. |
설명회를 맡은 서울과 나고야 유치단의 자세는 극히 대조적이었다. 승리를 기정사실로 믿고 승전분위기에 젖어있던 나고야 대표단이 설명회에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은데 반해, 서울대표단은 최후의 심판을 받겠다는 각오로 임했다. |
오후2시, 80명의 IOC위원들은 제24회 올림픽개최 신청을 한 서울과 나고야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역사적 결정을 내리기 위해 외부와의 출입이 통제된 쿠르하우스 회의실에 모였다. 그로부터 1시간 40분뒤 사마란치 위원장이 위원들의 투표결과 집계표를 들고 발표장에 나타났다. "서울 52, 나고야 27", 예상을 뛰어넘은 서울의 압승이었다.
그리고 아래는 국가별 메달집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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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국기는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의 국기입니다.(참가국:160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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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대회휘장 및 마스코트입니다.
대회휘장은 우리민족 전래의 문양인 삼태극에서 착상됐다. 삼태극은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시각적 표현으로 예로부터 태극선을 비롯 한옥의 대문, 공예품, 민예품 등에 널리 사용되어 왔으며 외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삼태극을 원심운동과 구심운동의 두가지 형태로 형상화했는데 구심운동 모습은 온 세계인이 서울에 모이는 것을 표현, 범 세계적인 '화합'을 상징하며 원심운동 모습은 인류의 영원한 행복과 번영을 향한 '전진'을 나타내고 있다. |
조직위는 마스코트의 이름을 선정하면서 친숙감, 한국적 감각 ,암기, 발음 및 표기, 국제적 통용성등을 선정기준으로 설정하고 민속학자, 한글학자, 동물학자, 언론인, 외국인 등 각게 전문가 11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1984년 4월 마스코트의 이름을 `호돌이(HODORI)`로 확정하 였다.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는 전통적으로 우리민족에게 친근감을 주고 위엄과 용맹을 갖춘 호랑이를 아기호랑이로 단순 형상화하여 제작 됐다. 몸전체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하여,한 껏 귀여운 모습이면서 올림픽메달을 목에 걸어 올림픽 마스코트임을 나타냈고 한국고유의 농악 놀이인 상모를 돌리는 자세를 하고 있어 우리민족의 멋이 한결 돋보인다. 상모돌리기의 긴끈 역시 부드러운 선으로 서울의 영문표기 첫자인 'S'를 자연스럽게 표현하였다. |
이하 대회개요입니다.
대회기간 | 1988. 9.17(토) - 1988. 10. 2(일) : 16일간 |
대회장소 | 서울 및 경기지역과 4개 지방도시 (34개 경기장, 72개 연습장 및 각 행사장) |
정식종목 | 시범종목 | 전시종목 |
23개(금메달 237개) | 2개(야구, 태권도) | 2개(배드민턴, 볼링) |
참가국가수 | 160개국 |
참가인원 | 선수, 임원단 : 13,304명 국제임원 : 7,670명 보도진 : 15,293명 |
대회운영요원 | 49,712명 |
자원봉사자 | 27,221명 |
관중 | 2,700,000명 |
관광객 | 240,000명 |
200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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