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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백과

김희성

[ 金稀成 ]

요약 아버지가 순교하자 가족들과 함께 경상도 영양 일월산 근처로 피신했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기도와 극기로 신앙을 지켜나가다가 1815년 배교자 전지수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다음해 대구 감영에서 순교하였다.
출생-사망 ? ~ 1816
별칭 세례명 프란치스코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충남 예산

세례명 프란치스코. 조선시대의 천주교 신자로, 을해박해(乙亥迫害) 때의 순교자이다. 일명 경서라고도 한다. 충청도 예산(禮山) 여사울(지금의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 출신으로 1801년에 순교한 김광옥(金廣玉)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글공부에 열심이었고, 아버지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한 뒤에는 그의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순교하자 가족들을 데리고 경상도 영양(英陽) 일월산(日月山)에 있는 곧은정(지금의 영양군 일월면 소재)이라는 곳으로 피신하여 살았는데, 나무뿌리와 도토리로 연명하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교회 서적을 읽으며 기도와 극기로 신앙을 지켜나갔다.

1815년 3월 배교자 전지수의 밀고로 안동 포졸들이 그를 체포하러 오자, 아들에게 남아서 집안을 보살피라는 부탁을 하고 집에 들러서는 아내에게 신앙을 지켜 장차 자기 뒤를 따르도록 하라고 이른 뒤 순순히 포졸들을 따라 나섰다. 그는 처음 안동 진영에서 신문(訊問)을 받고 신앙을 증거한 뒤, 김종한(金宗漢)과 고성대 ·고성운 형제들과 함께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어 여러 차례 형벌을 받았지만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사형 선고를 받은 뒤 20여 개월을 옥중에 있다가 마침내 1816년 12월 26일 대구 감영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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