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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백남준의 업적에 대하여
wnsl**** 조회수 9,478 작성일2013.06.06

 백남준의 업적에 대해서 좀 써 주세요. 업적은 길게 말고 짧게 5개 이상 좀 부탁드려요~~ 의견은 내일까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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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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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白南準
Nam June Paik
출생1932년 7월 20일
일제 강점기 경성부
(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사망2006년 1월 29일 (73세)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배우자구보타 시게코 (2번째 부인)
국적 미국
대한민국 (前)
분야피아노 연주자
작곡가
전위 미술가
비디오 예술가
교육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 대학원 음악학 석사

백남준(白南準, Nam June Paik, 1932년 7월 20일 ~ 2006년 1월 29일)은 한국 태생의 미국 현대 미술가이다. 여러가지 매체로 예술 활동을 하였고 비디오 아트를 만들어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은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백낙승이고, 본관은 수원(水原)이다.

가족 및 친척 관계

학력

명예 박사 학위

생애

1932년 7월 20일 일제강점기 조선 경기도 경성부 서린동에서 아버지 백낙승과 어머니 조종희 사이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수송국민학교와 경기보통중학교를 다니면서 피아니스트 신재덕에게 피아노 연주를, 작곡가 이건우에게 작곡을 각각 배웠다. 1949년 그는 홍콩 로이덴 스쿨로 전학했으며,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가족이 일본으로 이주했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52년 도쿄 대학교 문과부에 입학했다. 2년 후 미학 및 미술사학으로 전공을 정하고, 주로 작곡음악사를 공부했다. 졸업 논문은 ‘아르놀트 쇤베르크 연구’이다.

1956년 백남준은 독일로 유학을 떠나 뮌헨 대학교쾰른 대학교 등에서 서양의 건축, 음악, 철학 등을 공부하였다. 뮌헨 대학교 입학 1년 후에는 프라이부르크 고등음악원으로 옮겨 볼프강 포르트너 교수에게 배우지만 곧 현대음악의 실험이 활발하던 다름슈타트 하기 강좌에 참여했다. 1958년 그 곳에서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를 만나 그의 자유로운 음악적 실행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1950년대 말부터 활발해지기 시작한 독일 라인 지역의 음악 퍼포먼스의 장에서 백남준은 ‘아시아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앨런 카프로)라고 불릴 정도의 탁월한 퍼포머로 활약했다. 1959년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에서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바이올린을 파괴하거나(바이올린 솔로)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라버린 퍼포먼스(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가 특히 유명하다. 1961년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음악 퍼포먼스 ‘오리기날레’에서 머리와 넥타이로 잉크를 묻혀 두루마리에 흔적을 남기는 독특한 퍼포먼스 머리를 위한 선을 보여주기도 했다. 1960년대 초반 조지 마키우나스, 요셉 보이스 등을 만나 플럭서스 활동을 전개했다. 다다이즘에 영향을 받은 플럭서스는 헤라클레이투스가 주장한 ‘변화 생성의 흐름’ 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여 이벤트와 퍼포먼스 그리고 음악에 주력했고, 세계로 퍼져나갔다.

백남준은 슈토크하우젠이 중심이 된 쾰른의 WDR 전자음악 스튜디오에 출입했으며, 특히 레이더와 TV 작업에 몰두했던 독일 작가 칼 오토 괴츠의 영향을 받아 2년여 동안 홀로 TV 실험에 착수했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1963년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자신의 첫 번째 전시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을 열었으며, 13대의 실험 TV를 통해 비디오 아트의 초기 형태를 보여주었다. 이 전시에는 ‘총체 피아노’, ‘랜덤 액세스 뮤직’ 같은 실험적 음악의 시도와 ‘잘린 소머리’, ‘파괴된 누드 마네킹’, ‘보이스의 피아노 파괴 퍼포먼스’ 같은 파괴적 에너지의 설치 및 참여적 형태의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청년 백남준은 이러한 내용을 ‘동시성’, ‘참여’, ‘임의접속’ 등등에 관한 16개의 테마로써 종합적인 큐레이팅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최근 독일, 오스트리아 등의 연구자들 사이에 점차 활발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1964년 백남준은 일본을 거쳐 뉴욕으로 이주했고, 1965년 소니의 포타팩(세계 최초의 휴대용 비디오카메라)으로 미국 뉴욕을 첫 방문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6세를 촬영하여 곧바로 그 영상을 ‘카페 오 고고’에서 방영했다. 이것이 미술사에서는 공식적인 비디오 아트의 시작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첼로 연주자이자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의 기획자였던 샬럿 무어먼과 함께 비디오 아트와 음악을 혼합한 퍼포먼스 작업을 활발히 펼쳤다. 특히 1967년 음악에 성적인 코드를 집어넣은 백남준의 ‘오페라 섹스트로니크’에서 샬럿 무어먼은 누드 상태의 첼로 연주를 시도하다가 뉴욕 경찰에 체포되어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로 인해 예술 현장에서 누드를 처벌할 수 없다는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 ‘TV 첼로’, ‘TV 침대’ 등등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퍼포먼스를 결합한 많은 활동을 전개했다.

1974년부터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설치 작업을 다양하게 진행했으며, ‘TV 부처’,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TV 정원’, ‘TV 물고기’ 등등 많은 대표작을 선보였다. 이 작품들은 비디오 아트와 자연물을 음악적으로 혼합하여 테크놀로지로 물든 현대 사회의 새로운 혼합적 생명력을 추구했다는 평판을 얻었다. 1982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개최된 ‘백남준 회고전’을 통해 그의 예술 세계가 뉴욕을 중심으로 미국 사회에 많이 알려졌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뉴욕 WNET 방송국, 보스턴 WGBH 방송국과 협력하여 자신의 비디오 아트를 공중파 TV에서 방송했고, 이는 예술 세계의 영역 확장이었다. 나아가 1984년 1월 1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를 뉴욕 WNET 방송국과 파리 퐁피두 센터를 연결한 실시간 위성 생중계로 방송하여 전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위성 아트에는 로리 앤더슨, 피터 가브리엘,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앨런 긴즈버그, 이브 몽탕 등이 참여했으며, 전 세계 2천 5백만명(재방송 포함)이 시청하였다. 이후에도 ‘위성 아트’ 3부작으로 명명된 ‘바이 바이 키플링’(1986), ‘손에 손잡고’(1988) 등이 이어졌다.

1993년 백남준은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작가로 초대되어 최고 전시관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 전시에서 그는 일렉트로닉 수퍼하이웨이(전자 초고속도로) 라는 명명 하에 북방 유라시아의 유목 문화를 배경으로 한 ‘칭기스칸의 복권’, ‘마르크폴로’, ‘훈족의 왕 아틸라’,‘스키타이의 왕 단군’, ‘로봇 전사’, ‘고대기마인물상’ 같은 작품들을 다수 내놓았다.

1995년 백남준은 제1회 ‘광주 비엔날레 INFO art’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같은 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설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써 한국 미술이 세계 진출을 하는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었다. 1996년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며, 2000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백남준의 세계’ 라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으며, 이때 백남준은 레이저 아트 ‘야곱의 사다리’, ‘삼원소’ 등을 전시한 바 있다.

2006년 1월 29일, 미국 마이애미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75세로 별세, 유해가 서울, 뉴욕, 독일에 나눠서 안치되었다.

주요 작품

퍼포먼스

  •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1959년)
백남준의 첫 번째 음악 퍼포먼스였으며, 피아노를 파괴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었다.
  •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1960년)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른 소동으로 유명한 퍼포먼스이다.
슈토크하우젠의 작곡작품 'Kontakte'를 발표한 퍼포먼스에 백남준이 참여하여 '머리를 위한 선' 등을 발표하였다.
  • 《작은 여름축제-존 케이지 이후》(1962년)
<플럭서스>의 퍼포먼스로서 '플럭서스 선언'이 발표되기도 했다.
<음악에서의 네오다다> 행사에 참여하여 바이올린을 단숨에 파괴하여 유명한 퍼포먼스이다.
  • 《페스툼 플럭소룸 플럭서스》(1963년)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에서 펼쳐진 플럭서스 그룹의 퍼포먼스이다.
  • 《오페라 섹스트로니크》(1967년)
뉴욕의 시네마테크 필름메이커스에서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이 연주 도중 옷을 벗었고, 뉴욕 경찰에 체포되었던 퍼포먼스이다. 이후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지만, 당시 주지사 록펠러는 뉴욕 예술계의 여론을 반영하여 "예술 행위에서 누드를 처벌할 수 없다" 라고 법 개정에 사인한다. 이 퍼포먼스는 뉴욕을 예술하기 좀 더 좋은 환경으로 만든 계기가 되었다.
  •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브라》(1969년)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에게 3kg짜리 소형 TV 모니터로 만든 브래지어를 채우고 연주하게 했던 퍼포먼스이다. 1969년 7월 20일 코코란 갤러리에서 당시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장면을 이 TV브라를 통해 내보내어 반향을 얻기도 했다.

전시 작품 [편집]

독일 프랑크푸르트 Museum für Kommunikation 앞에 세워진 백남준의 작품.
존 케이지의 영향을 받은 '장치된 피아노'로서 타악기 음색이 난다.
즉석에서 마음 가는 대로 음악을 혼합할 수 있는 개방된 테이프 설치 작품이다.
백남준이 제작한 휴머노이드형 로봇으로서 걷는 기능, 배설 기능이 있다.
  • 《비디오 신시사이저》(1969년)
음악 대신에 영상을 '신시사이징'하는 기계로서 백남준과 엔지니어 아베 슈야가 만들었다.
백남준의 작품 중 최초로 팔렸다. 네덜란드 슈테델릭 미술관에서 구입.
24대의 TV와 어항이 마주보게 설치되어 있다.
  •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1975년)
13대의 TV 주사선을 조작하여 TV 모니터 속에 인공의 달 이미지를 보여준다.
식물과 비디오 영상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다다익선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되어 있다.
1003개의 텔레비전을 쌓아 만든 탑이다.
높이 18.5 미터, 지름 7.5 미터, 무게 16
농업, 환경, 경제, 자서전 등등의 제목을 가진 연작 시리즈로서 총 13개로 설치된 작품이다.
  • 《전자 초고속도로:미국 대륙》(1995년)
313대의 TV 모니터, 네온과 철구조물 등등으로 설치된 작품이다.

음악 작품 [편집]

  • 《압쉬츠심포니》
듣기: A면·B면
  • 《인 메모리암 조지 마키우나스, 1931-1978》
듣기
  • 《TV 첼로》
듣기: 1부·2부
  • 《TV 첼로와 비디오테이프를 위한 콘서트》(1982년)
듣기 : 1부·2부·3부

비디오 아트

현존하는 초기 비디오 아트 작품으로 손꼽히며, 자켓의 단추를 잠궜다 풀었다 하는 동작이 반복된다.
  • 《전자 오페라 No.1》(1969년)
4분 30초짜리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이다.
1969년 제작된 비디오 신시사이저로 제작한 작품이다.
28분 30초의 싱글채널 비디오로서 비디오 신시사이저로 제작한 작품이다.
  • 《머스 바이 머스 바이 백》(1975년)
미국 무용가 머스 커닝엄의 춤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뉴욕의 마천루를 배경으로 여러 영상을 편집한 작품이다.
  • 《과달카날 진혼곡》(1977년)
태평양 전쟁의 격전지에서 동서의 화해를 구하는 퍼포먼스 필름과 전쟁 다큐멘터리 필름을 교차편집한 작품이다.

위성 아트 [편집]

  •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어두운 미래의 전망에 대한 반박이다.
  • 《바이 바이 키플링》(1986년)
동서양은 서로 소통할 수 없다는 키플링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수상

전시회

  •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
장소 :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 갤러리
일시 : 1963년 3월 11일~20일
대표작 : 《임의접속 음악》, 《총체 피아노》, 《13대의 실험 TV》, 《TV를 위한 선》
  • 백남준 회고전
장소 : 뉴욕 휘트니 미술관
일시 : 1982년 4월 30일~6월 27일
대표작 : 《비라미드》
  • 백남준.비디오때.비디오땅.
장소 : 국립 현대미술관
일시 : 1992년 7월 30일~9월 6일
대표작 : 《나의 파우스트》
  • 백남준 '95 예술과 통신
장소 : 갤러리 현대
일시 : 1995년 9월 1일~9월 24일
대표작 : 《커뮤니케이션 타워》
  • 백남준의 세계
장소 :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일시 : 2000년
대표작 : 《야곱의 사다리》, 《삼원소》
  •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1]
장소 : KBS 신관
일시 : 2007년 7월 27일~12월 30일
대표작 : 《거북》
  • 백남준 상설전
장소 : 백남준아트센터
일시 : 2009년 3월~ 현재
대표작 : 《코끼리 마차》, 《TV 정원》, 《TV 부처》,

어록

 
  • '예술이란 게 반이 사기입니다. 속이고 속는 거지요. 사기 중에서도 고등 사기입니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게 예술이죠'[2]
  • '인생 자체가 예술'
  • '예술가는 절반은 재능이고 절반은 재수'
  • '표현은 인간의 자유를 뜻한다. 예술은 인간의 배설적 행위이기 때문에 사회의 안전벨트 역할을 한다'
  • '애국하면 나라 망한다'
  • '세계의 역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규칙을 바꾸라고 가르쳐준다.'
  • '은 가장 오래된 TV다'
  • '영혼의 신비한 새인 소문호모 사피엔스가 만들어낸 최초의 라디오다.'
 

백남준 선생님께선 다다익선을 만드신 것으로 유명하신데요.다다익선은 1,003개의 TV 모니터로 구성된 백남준비디오아트로, 1003은 10월 3일 개천절을 의미한다. '다다익선()'은 많을수록 좋다는 고사에서 연유된 명칭이지만 여기서 많다는 것은 어떤 물건이 많다는 것이 아니고, 수신()의 절대수를 뜻한다. 이것은 오늘날 매스커뮤니케이션구성원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콜라주 기법이 유화의 기법을 대신하였던 20세기 초의 캔버스 표면에 대해 백남준은, 장차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라고 하였다. 즉, TV 모니터는 화가의 캔버스와 같고, 화가들이 물감을 붓에 묻혀 캔버스에 표현하는 작업은 신시사이저가 대신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TV 모니터로 만들어진 캔버스에 대해 백남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처럼 정확하고, 파블로 R. 피카소(Pablo Ruizy Picasso)처럼 자유분방하며, 아우구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처럼 호화로운 색채로,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처럼 심원하게,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처럼 야생적으로, 그리고 제스퍼 존스(Jasper Johns)처럼 리드미컬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

《다다익선》의 TV 모니터는 그들이 가진 요소를 시간으로 분해하여 색채들로 재구성된 현대회화인 셈이다. 그것은 시간축으로서의 공시적() 대립과 통시적() 균형의 컴포지션으로 비유된다. 《다다익선》은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 램프코아를 장식하고 있다.

201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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