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선영씨의 발언은 잘못되었는가? 잘못되었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안선영씨의 발언은 변명의 여지없이 잘못된 것입니다. '100만원은 더 벌어야 남자로 보인다'는

말 이면에 깔린 의미는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어야만 남성적 매력이 있다.' 입니다. 남성성을 화폐단위로만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죠.

이렇게 말하면 어떤 여성 분은 남자들도 예쁜 여자만 좋다고 하면서 왜 여자가 남자를 능력으로 평가하는 게 안되냐고 하시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잘못 파악하고 하는 말입니다.

안선영씨의 발언은 겉으로는 '나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 남자가 좋다.'는 의미로 보이지만 뉘앙스와 조사에서 느껴지는 속뜻은 '나는 나보다  경제적 능력이 좋아야만 남자로 취급한다.'입니다. 즉 안선영씨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자신의 이상형과 배치되는 모든 남성들의 남성성을 부정한 셈이 되어 버린 거죠.

입장을 바꾸어 남성이 비슷한 말을 했다면 여성들도 매우 기분이 나빴을 겁니다. 독신 남성이 '나는 얼굴이 예뻐야만 여자로 보인다.' 한다면 예쁘지 않은 여성들은 모두 여성성이 없는 겁니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넌 남자로 안보여. 남성성이 없어' '넌 여자로 안보여. 여성성이 없어'란 말을 듣는다면 불쾌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더군다나 수없이 많은 다양성이 인정되는 21세기에 이 같이 경제적 능력이란 단 한 가지 자신의  편협한 기준을 들이대서 수많은 다양성을 무시하는 건  매우 몰상식한 발언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원시인이었다면 안선영씨의 발언도 허용되었을 겁니다. 원시사회에서는 남자는 경쟁자와 적을 쫓아내고 큰 사냥감을 잡아와야만 인정받을 수 있었고 여자는 아기를 잘 낳고 잘 돌봐야만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현재, 인류 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했고 매우 복잡하고 방대해졌습니다. 

이러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보다 전문적이고 세분화된 직종들이 탄생했고 그에 적합한 새롭고 다양한

능력들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은 개개인의 재능이 모두 다르고 각자 상이한 분야의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생겼고 그 다양성이 인정받는 것을 넘어서 존중받아야한다는 합의에 이르른 겁니다.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 '나보다 100만원은 더 벌어야 남자로 보인다.'는 발언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21세기에는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가치인 신체적 강인함과 아이를 잘 낳고 기르는 능력, 그리고 자본주의적 가치인 경제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모든 다양한 가치가 존중 받을 대상입니다. 물론 개개인마다 선호도가 다르고 취향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가치를 똑같이 매력적이라고 느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잘생긴 외모, 예쁜 외모를 가장 선호하고, 어떤 사람은 지적 능력을 가장 선호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성격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길 것입니다. 어떤 가치를 어떤 특성을 선호하고 우선시 하느냐는 개개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강요하고 다른 가치들은 폄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몰상식하거나 원시적인 사회지능을 가졌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이런 발언이 나오고 대중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가?

안선영씨는 능력 있고 당당하고 젊은 독신여성 계층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방송인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어떻게 앞서말한 몰상식하고 원시적인 사회지능을 가졌다고 보여지는 발언을 했을까요? 안선영씨가 속된 말로 '골이 빈 된장녀'라 그런 것일까요?

그러나 이렇게 치부하기에는 이상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안선영씨는 그 동안 방송에서 '개념 발언'이라

불릴 만한 말들도 종종 했습니다. 게다가 안선영씨는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나라의 젊고 능력 있는 여성들도 대부분 은연 중에 자신보다 뛰어난 경제적 능력을 가진 남성을 만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젊은 여성들도 대부분 '골이 빈 된장녀'가 되는데 이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여성들에게 '골이 빈 된장녀 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죠.

이런 발언들이 나온 사회적 분위기의 근간을 살펴보면 자본주의적 가치만을 최고로 생각하는 물질만능주의 풍토와 우리나라의 가부장적 가치에 기반한 남성의존적 사고방식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제적 능력만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부자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대우받는 분위기는 어딜가나 똑같습니다. 다만 선진국들의 경우 이러한 폐해를 비교적 일찍 겪었고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어나 학교와 가정에서 어린 아이들이 자본주의적 가치만을 중요시 여기지 않도록 교육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산업화로 경제가 발달했고 실제로 경제 부유국이 된지는 얼마 되지 않다보니 이러한 논의와 문제의식이 부족한 편입니다. 때문에 종종 물질만능주의적 발언이 나오고 명품 가방이니 고가의 스마트폰이니 하는 것들도 반드시 사야하는 필수품이 되어가고 있죠.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경제적 능력으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발언이 나오게 된 것이라 할 수 잇습니다.

그러면 왜 여자는 쏙 빼놓고 남자한테만 경제적 능력을 요구하느냐하는 문제가 남는데 이 부분은 가부장적

사고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앞서 말했듯 해방이후 급속한 산업화를 겪었습니다. 그 말은 달리 말하면 해방 이전에는 산업사회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나마의 산업시설을 지어놓은 것도 우리 스스로의 기술력이 아니라 일제나 기타 강대국에 의한 것이었죠. 또한 산업화 이전에는 아직 조선시대 때의 가부장적 가치관이 우리사회의 주된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해방이 되었을 무렵에 수많은 사람들이 대통령과 왕을 구분하지 못해서 이승만 대통령을 왕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급속한 산업화를 시작해서 불과 수십년 만에 경제 10위권 국가로 자리매김 합니다.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었고 외국에서는 기적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났다고 했을 정도였죠. 문제는 산업화만큼 의식이 따라오지 못했고 전근대적인 가부장적 가치관이 아직도 조금은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결혼할 때 남자가 집을 마련해야한다는 고정관념이 남아있고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어오고 여자는 집안일을 하는 거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부인도 직장을 다니는 데도 불구하고 남편이 가사일을 전혀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겁니다. 비단 이런 가부장적 사고방식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적용되어 '남자가 여자인 나보다 더 벌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 여자들도 나오는 겁니다.

이렇듯 안선영씨의 경솔한 발언은 백번 질타받아야 마땅하지만 가부장적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결합된 우리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것이니 만큼 너무 심한 비난은 자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우리나라의 여성들도 겉으로 보이는 불합리한 제도에만 권리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보이지 않는 잘못된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주체성을 주장했으면 바람이 있습니다. 직장 내 출산, 육아로 인한 불이익, 성차별만 문제가 심각한 만큼 우리 안의 보이지 않는 남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도 심각한 문제이니까요. 물론 남성들도 이런 고정관념을 뿌리뽑는데 동참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