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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섬 - 진도군

독거도

한국 최상품 자연산 미역의 산지

[ 獨巨島 ]

요약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있는 한국 최상품 자연산 미역의 산지이다. 면적 1.689km2, 해안선 길이 5.8km인 독거도는 폭은 좁지만 길이는 상당히 길게 생긴 섬이다. 인구는 25가구, 40명이다.
위치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면적 1.689km2
길이 해안선 5.8km
인구 40명(25가구, 2021년 기준)

면적 1.689km2, 해안선 길이 5.8km인 독거도는 폭은 좁지만 길이는 상당히 길게 생긴 섬이다. 1973년도에는 30가구 179명, 분교생 38명이었다. 학교는 1950년에 조도초교 독거분교장으로 개교했다가 1997년에 폐교했다. 폐교하자마자 그 해에 개인에게 팔렸다고 한다. 현재는 25가구 4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독거도는 예전에 진도의 접도 수품항에서 섬사랑호가 출발하였지만 지금은 그 모항이 팽목항으로 바뀌었다. 진도 남단에 위치한 조도를 중심으로 하는 일단의 군도는 행정구역상 조도면이다. 독거도를 중심으로 한 네 개의 유인도서, 즉 독거도 · 탄항도 · 혈도 · 슬도를 '독거군도'라고 한다. 독거도는 슬도, 탄항도, 혈도 등과 함께 이루어진 독거군도의 중심섬이다. 전남 진도군에서 가장 외해에 연한 독거도를 두고 한국의 '빠삐용 섬'이라 부를 만큼 독거도는 고적하게 거친 바다와 맞부딪치고 있는 섬이다. 거친 파도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한다' 또는 '홀로 외로운 섬'이라고 해서 '독고도(獨孤島)'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섬의 서남쪽 2km에 부속도인 탄항도(열목섬)가 있는데, 이 사이를 '여울목'이라고 한다. 썰물 때면 갯벌이 드러나 두 섬이 하나로 연결된다.

독거도는 주로 암석해안이며,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롭다. 섬의 북쪽에는 해발 178m의 산이 솟아 경사가 급하다. 가파른 언덕은 대부분 200m 미만의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주로 임야이며 밭이 조금 있다. 취락은 섬 남쪽의 만입부에 집중되어 있다.

'물살이 거친 섬'이라는 동거차도는 그래도 그 물살을 이용한 낭장망 하나로 '고기에 묻혀 사는 섬'이지만, 같은 진도군에 속하는 독거도는 파도가 너무 거세어서 낭장망을 칠 수조차 없다. 그 대신, 고품질의 미역이 이 거센 파도를 맞으며 명품으로 자라나는 곳이다.

독거도 마을 전경

독거도 마을 전경

독거도 둘러보기

선착장에서 내리면 길이 상당히 가파르다. 이 길을 조금 더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오고 그 가운데에 조립식 건물 한 채가 나오는데 바로 대합실이다. 이곳을 통해 정기여객선 섬사랑10호가 매일 운항된다.

대합실 옆으로 산허리를 가르는 포장도로는 또 다른 선착장으로 가는 길이다. 길은 내리막길이라 조금은 위험하다. 비록 철제로 된 난간을 둘렀으나 잘못하면 바다로 그것도 암반 위로 추락할 수 있을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주로 암석해안이며,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롭다.

길은 북서쪽 선착장에서부터 시작해서 동남쪽 해안가로 이어진다. 섬의 중간지점을 가르는 길 양쪽에 봉우리가 두 개 있다. 북쪽 봉우리는 가막산으로 높이가 160m이며 남쪽의 봉우리는 주산봉이라고 한다. 이 길을 따라 어느 정도 올라가면 왼쪽으로 비석 한기가 보이는데, 함안 조씨 송덕비이다.

계속 오르면 왼쪽에 밭이 있는데, 장대로 길게 늘어놓아 건조대를 만들어두었다. 미역을 건조하기 위한 장치이다. 주변에 컨테이너 박스로 된 가건물이 있다. 이곳에는 이런 가건물을 여러 개 두었다. 그 맞은편은 내연발전소이다. 이 발전소는 2004년에 만들어졌다. 80kw 3기의 발전기가 있다.

언덕 능선 부근에 위치한 집들은 대부분 폐가이다. 골목길을 돌아 나와 마을 쪽을 보면 북쪽 마을이 층을 이루고 있음을 본다. 원래 마을터는 새송골이었는데, 1720년 식수원이 좋고 농지가 좋은 지금의 터로 옮겼다 한다. 마을의 중심지에는 쉼터와 함께 고목나무에 종이 걸려 있다. 이 고목이 바로 당산나무다. 이 나무에 걸려 있는 종은 100여 년이 넘는 것이라고 한다. 현재 살고 있는 할머니들이 시집오기 전부터 있었단다. 불이 났을 때나 울력할 때 특히 물이 부족한 시절에 물을 배급해 주려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목적으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마을 고목에 달려 있는 종

마을 고목에 달려 있는 종

북쪽마을로 들어서는 길을 택했다. 골목길은 굽이져서 동쪽으로 이어진다. 밭이 있는 왼쪽에 길이 있고 그 끝에 계단이 있다. 계단 끝에는 폭이 좁은 공간에 두 개의 돌기둥이 있다. 갈데없는 분교장의 흔적이다. 나무로 가득한 운동장 한쪽의 계단 위로 건물이 보인다. 이미 폐교가 되어버린 독거분교는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잡목과 잡초가 우거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교실 안에는 칠판과 게시판이 그대로 있다. 이 학교 출신 학생 가운데에는 서울대를 포함한 명문대에 여러 명이 진학했다고 한다.

독거도 마을의 모습

독거도 마을의 모습

독거분교장은 1950년에 조도초교 독거분교장으로 개교했다가 1997년에 폐교했다. 폐교를 벗어나 큰 길로 들어섰다. 동남쪽 방향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드문드문 집들이 있다. 주변에 닭을 키우는 농막이 있고, 시누대 사이로 다 쓰러진 건물도 비친다.

드문드문 파밭이 있는 곳을 지나 시누대 사이로 조그마한 길이 하나 나 있다. 그곳을 통과하면 확 트인 동쪽 해안이다. 섬 하나 보이지 않는 해안이라 큰 바다와 연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갯바위로 된 이곳에는 기능을 상실한 접안시설이 있다. 이곳에 한창 물양장을 만들고 있었다.

바로 이곳이 독거도 미역을 생산하는 중심지다. 옛 영화를 증명이라도 하듯 '끌매'라는 시설이 눈에 띈다. 레일 비슷한 시설과 함께 끌매가 옆에 있다. 끌매는 배를 육지로 끌어올릴 때 썼던 장치이다. 바람이 거센 독거도 갯가에서는 태풍이 불라치면 배를 육지로 끌어올려야만 했다. 그래서 이 장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독거도의 배들은 작은 편이다.

미역말리기

미역말리기

선착장을 향해 내려가다가 언덕을 낀 해안도로로 발길을 돌린다. 거대한 암반을 끼고 이어지는 도로 끝에는 피항지가 있다. 태풍이나 풍랑주의보가 내려지면 주변에 있는 배들은 이곳으로 피항한다. 배를 끌어올려 대피시켜야 하므로 제법 넓은 공간이다. 방파제와 넓은 공간 사이에 경사제가 있다.

여기서 마주 보이는 섬은 슬도이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구도가 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 큰 섬이 면소재지인 조도이다.

독거도 생활

사람이 처음 이 섬에 들어온 시기는 1600년대 말엽으로 해남의 화산면에 살던 함안 조씨가 들어와 정착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윤씨와 안씨 그리고 조씨 세거지로 알려지고 있다. 함안 조씨는 9대손, 안씨는 11대손, 파평 윤씨는 10대손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부유한 섬에 속하는 독거도에는 약 23가구의 사람들이 자연산 미역채취와 멸치잡이로 생활한다. 물론 이들 모두가 이곳에 사는 것은 아니다. 절반 이상은 육지로 나가 살고 있다. 대신 봄과 여름철에는 다시 돌아와 섬에 생기가 넘친다.

독거도 인근 해역은 말 그대로 '물 반 꽃게 반'이다. 이들 해역이 '꽃게 황금어장'으로 거듭난 것은 무엇보다 꽃게가 서식하기 좋은 어장환경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래에 파묻혀 있다 저녁이나 새벽 어스름 무렵 먹이활동을 시작하는 꽃게는 서식에 가장 좋은 환경이 바로 모래펄이다. 진도군은 이 모래펄의 훼손을 막기 위해 이들 해역에서의 모래채취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독거도는 지선어업권이 구민 공동어장이 아니라 개별소유라고 한다. 즉, 연안어종 1종 공동어업권이 사유화가 된 것이다. 이웃섬 청등도나 관매도, 맹골도 등은 공동으로 미역과 톳을 채취하지만, 독거도에 속한 슬도와 탄항도 혈도는 개인이 '갱변'이라 부르는 바다와 해안을 나누어서 관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리가 좋고 어떤 사람은 자리가 대단히 불리하기도 한다.

독거도 바다의 거센 물살과 파도는 질이 뛰어난 미역을 길러낸다. 섬들을 돌아보면 저마다 특징이 있다. 신안군의 섬들은 대부분 간만의 차이가 심하여 주위에 모래사장이 있거나 개펄이 있다. 그러나 진도의 섬들은 수심이 깊어서 가파른 바위로 된 해변을 가졌다. 그래서 진도의 섬들은 해초가 많이 난다. 이 중에서 미역(곽)은 맛이 좋고 깨끗하기로 유명하여 옛날부터 진상품으로 사용되었다.

1530년(중종 25)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진도의 토산품 중 하나로 미역을 꼽고 있다. 1923년 발간된 '진도군지(珍島郡志)'에는 진도 자연산 돌미역을 왕실과 중앙 조정에 상납했고, 진도곽(珍島藿 · 진도미역) 중 독거곽(獨巨藿 · 독거도 미역)을 최상급으로 꼽는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그 이유는 수심이 매우 깊고 빠른 물살과 높은 파도속에 자란 것이라 잎이 적고 선인장처럼 줄기가 넓다. 그리고 그 줄기 속에 모진 풍파를 이겨낸 생명력이 영양소로 농축돼 있으므로 명산품으로 인정되어 수요에 비해 물량이 부족할 정도이다.

또 개펄 지역에서 나는 양식미역은 끓일수록 뻘처럼 흐늘거리는 데 비해, 줄기 위주인 독거도 자연산 미역은 끓일수록 검푸른 줄기빛깔이 되살아난다. 쌀뜨물에 중질 낙지 몇 마리를 함께 우려낸 연보랏빛 미역국은 산후조리를 겸한 원기회복에 있어 으뜸이다.

진도미역은 '진도곽'으로도 알려져서 딸을 가진 어머니가 일찍이 혼수감으로 미리 준비할 정도였다 한다. 또한 예로부터 산후 조리용인 미역국으로도 '산모곽'을 최고로 쳤다. 최근 미역 양식이 크게 늘어나면서 진도는 완도의 미역 생산량과 비교가 되지 못하였다. 전라남도 미역 양식 면적은 10,725ha이지만, 완도가 7,134ha를 차지하고 진도는 1,046ha이다. 진도의 미역 양식은 완도에 많이 미치지 못한다. 채취 시기도 완도가 1개월 정도 빨라 일본 수출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진도는 바위에 붙어 자라는 자연산 돌미역이 있다. 그 중에서도 조도산을 으뜸으로 친다. 똑같은 조도 지역의 미역이라고 하지만 독거도 미역은 한 뭇 값이 60만 원 이상이다. 이는 다른 조도 지역의 미역 한 뭇 무게가 4근 정도인데, 독거도 미역은 20근에 가깝게 크기와 분량이 많기 때문이다.

진도 조도의 자연산 돌미역은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약 30일간 채취한다.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사리 때를 맞추어서 미역이 바위에서 드러나는 4~5 시간 정도만 작업한다. 채취 시기에 바람이 불거나 태풍이 오면 큰 어려움을 겪는다. 태풍이 몰아치면 미역이 바위에 붙어 있다가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태풍이 오기 전에 작업을 완료해야 큰 피해를 보지 않는다.

미역 채취 방법

2013년 여름에 조도 지역의 사진 촬영을 위해 약 1달 정도 등대호가 머물렀다. 죽항도와 슬도, 청등도에서 멸치잡이를 돌아보고 독거도에 왔는데 바람도 많이 불지 않았는데도 너울 때문에 도저히 배를 접안할 수가 없었다. 그 너울 속에서 독거도 주민이 작은 덴마를 타고 가서 세워 놓고 미역을 채취하고 있었다. 독거도는 가장 외해에 속하기 때문에 바람이 불지 않아도 성난 바다를 자주 만난다.

물때에 맞추어서 미역을 채취하러 나온 주민들은 바위에 부딪힌 파도가 다시 바다로 밀려나갈 때 갯바위에 붙어 춤을 추는 미역들을 잽싸게 낫으로 베어내었다. 바위에 미끄러질 수도 있고, 몸이 파도에 휩쓸려 바닷속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능숙하게 미역을 채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환경에 적응하여 익숙하게 파도를 달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파도와 씨름을 하면서 미역을 한 주먹 베고, 파도가 치면 피하여 위로 올라오고 이러기를 반복하다가 작업 시간이 점차 길어지면서 바위에는 검붉은 미역이 수북이 쌓여갔다. 다른 지역은 이렇게까지 고생을 하지 않는다. 독거도 미역 채취가 유독 힘들어 보이는 것은 파도를 피하면서 미역을 채취하기 때문이다.

바위에 붙은 미역을 낫으로 베고 있다

바위에 붙은 미역을 낫으로 베고 있다

독거도는 워낙 지형이 높아 바위가 많다. 배를 가진 사람은 배를 타고 자기 해안 구역으로 나가서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나이 들어 배까지 없는 할아버지들은 위험한 산길을 돌고 돌아서 갱변으로 나가 해안 절벽 아래 미역밭에서 파도와 시달리며 미역을 채취한다.

파도와 싸우며 미역을 채취하는 모습

파도와 싸우며 미역을 채취하는 모습

또 채취한 미역을 배에 싣고 오기도 하지만 배가 없는 사람은 등에 메고 몇 번이나 쉬면서 온다. 길이 워낙 사납기 때문에 올 때는 더욱 힘이 든다. 그래서 대대로 이어온 미역 갱변이지만 힘이 없어서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외지인들에게 임대를 주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미역을 말리는 일은 할 수 있지만, 위험한 바다에서의 미역 채취는 더 이상 할 수 없다. 1년이면 여름 한 달만 고된 노동이 반복된다. 겨울에 하는 '갯닦이'(바위닦이)도 매우 힘이 드는 일이다. 정월 이월에는 더욱 파도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비옷을 입고 갯바위를 닦는다. 나무에 쇠꼬챙이가 붙은 서까래를 갖고 미역 포자가 잘 붙으라고 잡초를 제거해 준다. 육지에서 농사를 지은 것과 같이 바다의 갯바위에서 미역 농사를 지으려면 정성을 들이고 땀을 흘려야 한다. 그래야 한여름에 미역 농사를 풍성히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 주민들은 농사는 거의 없고 오직 자연산 미역채취로 생활한다. 독거도 외에도 슬도, 혈도, 청등도, 죽항도, 곽도, 맹골도의 사정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미역이 많이 나는 이들 섬을 '돈섬'이라고 불러왔다. 그만큼 품질이 좋아 일반 미역보다 2~3배 비싸게 거래되므로 미역 덕분에 무인도가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섬들이다.

독거도 물 문제 · 전기 사정

독거도는 산이 높고 나무가 울창하여 밭이 거의 없다. 겨울에는 항상 물이 부족하여 물기근에 시달려왔다. 2일에 한 번 산에서 흘러온 물이 고이면 이곳의 마을이장이 종을 울린다. 종치는 소리가 나면 섬주민들이 물통을 들고 나와서 물배급을 받아가는 실정이었던 것이다. 집집마다 큰 물통이 필수품이며, 빗물을 받아 허드렛물로 쓰거나 끓여먹기도 했다고 한다.

2005년에야 비로소 내연발전소를 통해 전기를 공급받기 시작했다. 전기공급이 시작되자 샘을 파고 모터를 달아서 각 가정으로 물을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 전기가 물문제까지 해결해주니 천지가 개벽한 거나 다름없었다.

농협을 통해 13가구 전체가 냉장고를 한꺼번에 들여놓기도 했다. 24시간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는 태양열 전지판을 이용하여 불을 켰으므로 냉장고나 선풍기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이다. 더구나 비가 오고 흐린 날이면 태양열 충전이 잘 되지 않아서 밤에 불만 겨우 켜고 살아가던 섬이었다.

독거도를 떠나면서

독거도의 가장 큰 어려움은 선착장 시설이 없다는 것이다. 워낙 수심이 깊다보니 예산이 많이 들어서 지금까지 섬에서 가장 중요한 선착장이 없다. 어머니 품속과 같은 이런 시설이 없기 때문에 배를 안전하게 댈 수 없다. 그래서 24시간 배를 바다에 띄어 놓았다가 바람이 세차게 불면 줄이 떨어져 배가 바위에 부딪히기에 깨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사람들이 정을 붙이고 살 수 없게 만들었다. 요즈음은 지자체에서 크레인 시설을 해 주어서 배를 육지로 안전하게 올리지만 배가 크면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2008년 2월 MBC '느낌표' 촬영 때 남희석 씨와 박정아 씨가 함께 이곳에 와서 주민들과 대화를 한 일이 있다. 여자 이장인 이성자 씨는 이제 70세가 넘어 다른 사람이 이장을 하고 있다. 그때는 여름이 아니라서 독거도 사람들이 제일 크게 생각하는 미역 채취 작업을 보지는 못했다. 독거도는 바로 앞 섬 슬도와 그 옆에 있는 죽항도와 함께 조상 때부터 구역을 나누어 미역을 채취한다. 그러나 이웃의 청등도와 관매도는 공동으로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 독거도는 명절 때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북적거릴 때가 바로 미역을 채취하는 철이다. 그때 자식은 모두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며 미역 작업을 돕는다.

이곳에 사는 어느 주민의 한 마디가 귓속에 맴돈다. 독거도의 미역이 유독 맛이 좋은 것은 험한 파도에 심하게 시달렸기 때문이란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고난을 겪어야만 겸손해지고 깨달음을 얻어서 큰 사람 되듯이, 온갖 시련 속에서 자랐기에 질 좋은 미역이 되는 것이다.

독거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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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도

독거도 전남 진도군 조도면에 속하는 섬. 진도의 남단에서 12.2㎞에 있으며 독거군도의 주도이다. 인근 해상에는 서쪽에 슬도, 관매도, 남쪽에 탄항도, 개의도가 있다. 면적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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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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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처 정보

『한국의 섬』 시리즈는 25년 동안의 현지답사와 섬에서 만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듣고 눈으로 보며 느낀 감상과 행정기관에서 갖고 있던 기존의 자료 등을 정리한 것으로, 각 지역별로 나누어 수필집 형태로 구성하였다. 총 13권으로 출간되었다. 자세히보기

  • 저자 이재언 섬 탐험 전문가

    섬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우리나라의 섬 탐험 전문가이다. 바나바선교회 섬 선교사로 파송되어 선교활동을 하던 중 섬의 중요성을 깨닫고 전국의 446개 섬을 3번이나 순회하였다. 저자는 많은 섬을 찾아다니며 섬의 기본 현황과 역사, 문화, 민속, 주업, 삶의 애환 등 수많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사진을 촬영하여 기록을 남겼다(드론 사진 포함).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에 재직하였고, 2020년 1월부터 목포과학대학교 해양레저사업단 섬해양 선임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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