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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러일전쟁이후 청나라와 일본의 관계
비공개 조회수 1,201 작성일2018.04.05
러일전쟁이후의 중국과 일본의 대외적인 관계와 변화에 대해 알려주세요.
또, 양국간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나 중요한 협약&조약의 체결이 있다면 그것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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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사용자 참여 분야 지식인 #김전일 #해피빈 #명탐정코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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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식민지를 원했습니다. 이 세계에서 독립 국가로 살아남고, 부국강병을 이루려면 반드시 식민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일본은 청과 일본 양국에 종속되어있던 류큐를 완전히 장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1875년에는 서구 열강의 행동을 그대로 모방하여 조선을 위협하여 개항을 요구했죠.
조선은 일본의 요구에 굴복하여 1876년에 강화도조약을 체결했습니다.

1894년에는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청나라와 일본간의 전쟁이 벌어지죠.
청나라는 수백년간 지켜오던 조선에 대한 종주적인 권리를 잃지 않으려고 했으며, 일본은 식민지를 원했습니다. 1894년 8월에 일본이 중국에 선전포고하면서 청일전쟁이 벌어지죠.
근대화에 앞서 있던 일본은 육해군 모두 청국군보다 우세했습니다. 전쟁은 8개월만에 일본의 승리로 끝났으며, 일본은 1895년 4월에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했죠.
청은 조선에 대해서 손을 뗐고, 거액의 배상금을 일본에 지불했으며 타이완과 요동 반도를 일본에 할양했습니다. 이때부터 일본은 식민지를 경영하면서, 서구의 국가들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의 대열에 오르죠.

일본이 요동 반도를 할양받자 만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던 러시아는 이에 위협을 느껴, 이 지역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던 독일과 프랑스까지 끌어들여 일본에게 요동 반도를 다시 청국에 반환하라고 위협했습니다.
(삼국간섭) 일본은 삼국에 굴복하여 요동반도를 다시 청국에 반환했죠.

이를 기회로 러시아는 뤄순과 다롄의 조차권을 획득하고 만주와 조선에까지 진출했고, 독일과 프랑스는 중국으로부터 더 많은 이권을 얻어냈죠. 죽쒀서 개준꼴이 된 일본은 분통이 터졌지만, 상대가 아시아 국가냐, 유럽 열강이냐에 따라 게임의 룰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조선과 만주를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간의 긴장감은 고조되었습니다.
1904년 2월 일본과 러시아는 만주와 조선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전쟁에 돌입했죠.
일본과 러시아 양측 엄청난 전사자와 처절한 공방전끝에 봉천과 선양에서 일본군은 러시아 육군을 궤멸시켰으며, 대한해협에서 러시아 발틱함대가 도고 헤이치로 제독이 이끄는 연합함대에게 전멸당했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군대가 유럽 군대를 패배시킨 것이죠.
이로인해 일본 육군은 엄청난 명성과 힘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러시아는 육전과 해전에서 연달아 패배하고, 또 국내 정치가 혼란스러워 더 이상 싸울수가 없었습니다.
포츠머스 조약으로 일본은 사할린 남부를 할양받았고, 한국과 만주에서 우월적인 권리를 인정받았죠.

또 러시아같은 강대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국제적으로 일본은 명실공히 세계 열강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때까지 질질 끌어오던 불평등 조약 문제도(1850년대에 에도 막부가 서구 각국과 체결한)
1911년에 영국이 일본의 관세자주권을 인정하면서 일본은 구미제국과 대등한 지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2018.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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