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러일전쟁 말고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한 적이 또 있나요?
비공개 조회수 1,163 작성일2017.12.07
러일전쟁은 1904~1905년에 일어났다고 아는데 이 전쟁 이후에도 러시아와 일본이 또 전쟁한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듣기론 2차 대전?에서 일본이 러시아와의 전투에서 개털렸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4 개 답변
3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jonathan
물신
세계사 69위, 연애, 결혼, 한국사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두번 더 있었습니다.


한번은 시베리아출병입니다.

1차대전중에 러시아가 혁명이 일어나서 소련이 되었는데요.

이 러시아땅에 아직 저항하고 있는 백군세력들이 있었는데요. 이때

이 백군들을 돕기위해서 또 체코슬로바키아,영국,프랑스,미국,일본

등등이 출병한 전쟁이 있었는데 여기에 일본도 한몫끼어서 전력을 과시

했습니다. 특히나 바이칼동쪽지역이 일본이 전력을 과시했던 곳입니다.


한번은

2차대전직전까지 몇달간 했던 할힌골전투(노몬한전쟁)입니다.


일본은 만주를 점령하고 만주국을 세웠고 몽골은 소련을 섬기면서

세계에서 두번째의 공산국가인 몽골인민공화국을 세웠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만주국과 몽골인민공화국이 국경을 맞대게 되었는데요.

국경이 제대로 확정되지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던중에 몽골기마병일부가

만주국의 국경을 넘어오게되자 이를 침략으로 간주하고


공격을 했던것을 시작으로 만주와 몽골의 대결이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곧 일본과 소련의 대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이 노몬한전쟁이 난 해는 2차대전이 일어난 1939년이었습니다.


안그래도 독일,이태리와 방공협정을 맺어놓은 상태였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는 독일이 소련과 폴란드땅의 반을 줘서 소련에게

개입하지 말아달라고 거래하고있던 시기였는데요.


이 전쟁이 다 끝나가는 시기에 소련의 전력이 만만치않다는 것을

안 일본은 소련과 중립조약을 체결했는데요. 독일이 동쪽을 공격해

달라고했을때도 중립조약을 들어서 거절하고 미국과 대결하는데

집착했습니다.

2017.12.07.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2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태대각간
물신
영업/판매원 한국사, 세계사 61위, 역사학 87위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러시아내전
(적백내전)(일본외에도 미국 영국 프랑스등등 공산주의에 반대하여 수많은 자본주의국가들이 개입함)

1917년부터 시작된 러시아내전
적백내전으로 알려진 러시아의 내전에 일본이 개입
명분은 공산주의확대저지이다.그래서 공산주의자인 적군을 공격 백군을 지원하였다.
허나 사실상 일본은 이 기회에 영토확장이 목적이었다.
일본은 사할린일대와 블라디보스톡으로 진격하였다.
블라디보스톡엔 8만의 일본군이 잠시 점거하지만
얼마못가 뺏긴다.


일본명 노몬한사건(러시아명:할힌골전투)
주제의 이름처럼 일본은 노몬한에서 일어난 작은사건이라고 표현한반면

러시아는 전투로 보고있다.

허나 규모로 보나 피해자로 보나 사건으로보기엔 규모가 크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만주를 점령한 일본이었지만
만주북쪽의 소련과 소련지원하에 건국된 몽골과의 국경이 애매했다.
그러던중 몽골군이 애매하던 국경사이를 지나건것을 빌미로 일본군이 몽골군에 공격을 개시
이에 같은 공산주의국가인 소련도 나서게되며 규모가 커졋다.

일본군8만 소련군9만
일본군은 대다수가 깡보병이 주류
일본은 80여대의 전차가 전부다.
소련은 800여대의 전차 및 장갑차
600여대의 항공기의 지원이 따르던 사실상 육군면에서는 최강의 소련군이었다.
초반에 승기를 잡아 우세했으나
소련군의 탱크가 속속 지원오자 패하였다.
일본군의 피해가 큰건 맞으나
소련군의 피해도 막상막하였다.

일본군피해 전사8000 부상8000
소련군피해 전사9000 부상15000

단지 소련은 인구 및 자원면에서 월등하기때문에
이러한 전사자규모면에서 일본의 피해가 사실상 더큰것또한 사실이다.

결론은 한국내에서 일본을 좀 까내리려는 경향과 일본이 소련탱크에 대한 공포심에 대한 이미지가 겹치며 소련을 과대하게 포장한 사례이다.
그리고 그당시 소련의 명장으로 유명한 주코프가 참전한 전투였다는점에서 일본도 꽤 전과는 올린셈

2017.12.07.

  • 채택

    질문자가 채택한 답변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4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비공개 답변
우주신
그 뒤로 한 세번 정도? 


1. 1차 대전 이후 러시아 내전 기간 동안 일본이 블라디보스톡을 침공한 적이 있는데, 이를 간섭전쟁이라고 합니다. 즉,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 세력에 대한 몇몇 국가들의 군사적 공격이었는데, 본격적으로 싸웠다기 보다는 결국 당사국 끼리 손발이 안 맞아서 결국 철수합니다. 


2. 1939년, 일본이 소련에게 대판 개발살 나는 할힌골 전투가 있는데, 일본애들은 죽어도 잊고 싶어서 노몬한 사건으로 부릅니다만. 규모를 보면 사건으로 축소할 법한 문제는 아닌거라고 보입니다만...ㅋ 

몽골 국경을 두고 소련-몽골 연합군과 일본군-만주군의 전투였고 말그대로 개털렸습니다. 하긴 애초에 계란으로 바위치기였고... 2차 대전이나 중일전쟁사에서 이 전투가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이유는 이때 털린 일본이 겁을 집어 먹고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은데 있습니다. 즉, 독일은 일본이 소련의 뒤통수를 쳐주길 바랬지만, 일본이 저거 안되겠다... 라고 생각해서 아예 눈을 돌려 버리고 현실도피를 하게 된 동기입니다. 


3. 세번째는 2차 대전 말기에 있었던 만주침공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만, 이는 1945년 8월초, 그러니까 일본이 항복하기 며칠 전부터 소련의 대규모 공세가 만주지역을 넘어 한반도까지 이르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즉, 미소 분할 구도가 나온게 이때였다고 보시면 되고요. 

이 만주침공은 여러 의미가 있는데, 실제로 소련이 이런 대규모 공세 전환에 나선 것은 몰락작전이라고 이름 지어진 연합국의 일본 대공세의 불투명성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만, 8월 6일 핵을 처맞은 일본의 동요가 예상보다 큰 것으로 간주한 소련은 이후 있을 승전국의 협상에서의 배분 문제를 고려해서 일단 숟가락을 들이 밀고 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게 나름 성공적이어서 8월 9일~15일 까지 한반도 북부까지 밀고 들어오게 되었고요. 

그리고 8월 18일에 소련은 쿠릴열도에 상륙, 결론적으로 현재 북방영토 분쟁이라고 부르는 이 쿠릴 열도 지역을 먹게 됩니다. 이것도 사실 2차 대전 말반의 전투로 봐야 하는 거죠. 



정리하면, 러시아 내전 당시 1번, 그리고 "소련" 타이틀일때 두번 정도로 나눌수 있는 큰 사건들이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2017.12.07.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1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삭제된 답변
작성자가 직접 삭제한 답변입니다.
2017.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