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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박완서의 나목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41,840 작성일2006.05.13

박완서의 나목 전문 가지고 계신분은 좀 알려주세요..

 

도서관에서 빌리려고 해도 벌써 대출이 되어 있고...

 

그 책을 읽고 독후감 써야 되거든요...

 

나목 줄거리 말고...

 

전문이 있는 곳 좀 알려주세요..

 

내공 10 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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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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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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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씨의 나목이란 작품(전문)은

출간도 됬고 인터넷에서 글 읽을 곳을

찾기란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그래서 참고할 만한 다른 사람의 작품평을 올려드립니다.

다른사람의 독후감을 봤다고

사고의 폭이 줄어든다는 말이 있는데,

질문자분이 이쪽에 속하시면 읽지 말으시고

그냥 한번 읽어두면 도움이 되겠다

라고 생각되시면 읽어두면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좋은글 쓰세요 ^^

 

 

『나목』(박완서) 감상

 

 

 박완서 초기작에서 현재에 이르는 작품들에 나타나는 그의 문학적 주제는 6?25전쟁이 한 가족에 미친 영향으로서 6?25이후에 분단상황하의 개인적 삶의 모습에 투영이 있다. 특히 6?25와 관련되고 전쟁과 분단을 다룬 작품들은 박완서의 초기작에서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관심이 지속되어 왔는데, 이는 작가 체험과 밀접한 관련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 전쟁의 소설도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될 때, 보다 절실한 체험에 진실성이 구현될 수 있다.

 박완서에게 있어서 전쟁이란, 자신의 가족을 붕괴시켰고 따라서 민족적 비극 이전에 개인적 비극으로서 직접적인 체험이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소설이 6?25와 관련된 가족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 6?25의 참변 속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후에 받은 상처로 인해 어머니가 겪는 한을 그리고 있는 「나목」,「엄마의 말뚝2」, 그 외 「부처님의 근처」,「카메라와 워커」,「겨울나들이」,「어느 이야기꾼의 수렁」,「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틀니」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 작품들은 6?25가 가져온 현실 생활의 파괴와 그 후 사회와의 부조화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을 내세워 분단의 아픔을 전하고 있으며,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두면서 6?25회고담이 삽입되어 있는데, 전쟁의 희생자인 오빠의 죽음은 가족을 파괴하였고,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개인들이 분단시대라는 상황 속에서 그 피해의식을 제각기 드러내고 있다.

 

전쟁체험을 바탕으로 한 : 「나목」

1970년에 발표된 박완서의 처녀작인 「나목」은 자신의 체험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전체가  1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51년에서 1952년에 걸치는 겨울을 시간적 배경으로 UN군에 의해 재수복되긴 하지만 아직 환도는 이루어지지 않은 서울을 배경으로 청춘의 성숙 과정과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 위한 길을 교차시키고 있다.

 

< 이야기의 대강...>

6.25 전쟁이라는 시대적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옥희도라는 미술가가 여성 화자의 관점에서 잘 그려져 있다. 전쟁의 삭막함 속에서는 고목으로 보였으나 안정된 상황에서는 나목으로 보이는 평범한 일상인의 눈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통찰한 예술가의 혜안이 역설적으로 잘 드러난다.

6.25 전쟁 중 서울 신세계 미군 PX 초상화 가게에 일하는 이경은 불우한 화가 옥희도를 만난다. 처음 만나 그의 눈에서 '황량한 풍경의 일각'을 느낀 그는 옥희도에게 끌린다. 두 오빠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는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던 그는 명동 성당과 완구점 앞에서 만남을 계속하면서 사랑을 느낀다. 진짜 화가가 되고 싶어하는 옥희도가 가게에 나오지 않자 그 집에 찾아가 캔버스에 고목이 그려져 있음을 목격한다. 두 오빠의 환영에 사로잡혀 있던 어머니가 죽자 이경은 태수라는 청년과 결혼한다. 전쟁의 기억이 멀어진 만큼 세월이 흐른 뒤 옥희도의 유작전에 가서 예전에 봤던 그림이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음을 알게 된다.

「나목」에서 전쟁은 단순한 소재적 차원의 배경이 아닌 작품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여러 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즉 두 오빠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면서 그로 인해 경아네 집안사정이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어머니의 존재는 상징적인 인물로서 작품흐름에 한 축을 형성한다. 전쟁 중에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그 후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과거의 시간, 즉 6?25라는 전쟁의 시공간에 그녀의 삶은 정지되어있다. 폭격으로 두 아들을 잃고 난 후 "어쩌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들들은 몽땅 잡아가시고 계집애만 남겨놓셨노." 라는 어머니의 말은 주인공 경아에게 자신이 오빠들을 죽게 한 장본인이라는 피해의식을 심어주게된다. 결국 경아와 오빠들의 죽음사이엔 단지 우연일 뿐이었을 사건이 어머니라는 존재가 매개됨으로서 전쟁으로 인한 피해의식이 주인공에게 직접적으로 미치게 된다.

 아들을 잃고 부우연 회색빛 세계속에 침잠해 버린 어머니의 존재는 전쟁의 상처라는 표피적 의미만이 아니라 내면의식의 위축상태를 상징함으로서 민족분단의 비극성까지도 내포하고 있다.

 폭격으로 인한 두 오빠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 느끼며 살아가는 이경과 전쟁의 와중에 생활난 때문에 미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살아가는 옥희도는 사회적 상황이 만들어 낸 황량한 정신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태엽을 감아야 온갖 재롱을 피우는 완구점의 침팬지처럼 어떤 힘에 의해 조종당하는, 의식 없는 꼭두각시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황량함을 평범한 여인의 일상 생활로 되돌아가 극복하는 경아, 그리고 화가의 길에 들어서 작품을 남기고 떠난 옥희도는 꽃과 무성한 잎을 다시는 피우지 못하는 고목(枯木)이 아니라 잠시 성장을 멈추고 어려운 한 시기를 극복하는 나목(裸木)이었던 것이다.  

 

<작품 속에서...>

"여자와 남자가 이루는 풍경, 거기엔 적어도 춥지 않은 무엇이 있었다. 저들도 춥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랑을 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도 추운 김에 아쉬운 대로 옆에 있는 옥희도 씨라도 좋아해 볼까 보다고 뚱딴지 같은 생각을 하느라 별로 무섭다는 생각도 없이 어두운 길목들을 지났다."

 

*이렇게 시작된 사랑의 감정은 두 사람이 위스키를 따라 마시는 장난감 침팬지 앞에서 만나게 되는 도수가 불어감에 따라 절실한 것이 되어간다. 감기로 일터에 나오지 못한 옥희도 씨를 일터에서 알게 된 황태수란 청년과 함께 찾아간 여주인공은 옥희도 씨 내외가 아주 귀엽다는 듯이 너그러운 웃음으로 바라보는 것을 지그시 견디지 않으면 안 되었고 <어떤 심한 모욕도 이보다는 견디기 쉬웠으리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완구점과 명동의 성당 사이를 거닐며 사랑을 계속하지만 완구점과 성당 사의의 공간은 이 사랑이 짧을 수밖에 없고 현실에서 여물 수 없음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몇 차례의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긴 뒤 여주인공은 애초에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사랑하지 않는 사이의 홀가분함을 추호도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는 태수와 맺어지게 된다. 그 사이 어머니의 죽음으로 해서 사실상의 처녀 고아가 된 여주인공에게 남겨진 가장 순리에 맞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 장에서 중년에 접어든 주인공 내외가 옥희도 씨의 유작전을 참관하는 것으로 책이 끝난다.

 

*젊음과 사랑의 책인 것 이상으로 이 책은 전쟁과 불모(不毛)한 삶의 책인 것이다. 주인공들의 <완구점과 성당> 사이의 사랑을 가능케 했고 그 깨끗함과 대조를 이루며 나타나는 것은 억세고 잡스러운 사람에 대한 혐오감이다. 다이아나 김 같은 여인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겠는데 기실 여주인공의 옥희도 씨에 대한 사랑을 결정적으로 만들어주는 계기는 다이아나 김에게 곤욕을 당하고 난 그의 상심한 눈길이었다.

"어리석지 않게 선량한 눈에 담긴 피로와 상심……순간 그의 상심이 예리한 아픔으로 나를 찔렀다"

 속되고 잡스러운 것에 대한 강렬한 모멸은 다이아나 김이 사실상 동정에 값하는 생활인이고 장한 어머니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후에도 감소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특히 착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어머니라는 이름에 너무 관대한 게 나에겐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난 그녀가 어머니라고 해서 그녀에 대한 내 모멸의 십분의 일도 상쇄시킬 수는 없었다."

 속되고 잡스러운 것에 대한 적의는 온갖 인위적인 것, 점잖은 체하는 것, 도덕적인 것으로 확대된다. 그것은 똑같이 속된 것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주인공은 다이아나 김이 동거하던 남자에게 처자식이 있음을 알고 첩노릇도 못 하겠고 남의 남편을 아주 빼앗을 수도 없었다면 <내가 물러나는 게 제일 깨끗하고 도리에 합당>한 일이었다고 털어놓을 때 <언닌 화냥년만도 훨씬 못하군요>하고 서슴없이 내뱉는다. <아니꼽게도 그녀의 체념에는 도덕적인 만족이 있다.>

 

*여주인공이 미국인 일등병의 구애에 호응하여 경서 호텔로 찾아갔다가 정사 직전에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도망쳐 나오는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여주인공이 순순히 경서 호텔로 찾아가 미군의 애무에 몸을 맡기는 것은 일종의 자기 파멸에의 충동이랄 수가 있다. 사실 웬만큼 눈치 있는 독자들은 여주인공이 안전하고 탈없이 그곳을 빠져나오리라는 것을 예감하게 되지만 그것이 두 오빠의 죽음과 연관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하고 또 그 의미는 다음 장에 가서야 뚜렷해진다. 어쨌거나 위기의 순간에 우리들의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은 부서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 당장 내 육신이 죠오에 의해 처참하게 망가질 것 같았다. 혁이 오빠와 욱이 오빠의 육신처럼 호청을 붉게 물들이며 참담하고 추악하게 조각날 것 같았다. 도망쳐야지. 도망쳐야지."

 

 그녀는 사실 도망에 성공한다. 「프리이즈 돈 브레이크 미」하고 애걸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장면과 조금 앞의 무참히 찢겨진 젊은 육체의 환시(幻視)는 심층적으로 보아 의미심장하다. 미국 병사인 죠오에게 몸을 여는 것이 파멸을 의미한다는 직관은 세상의 통속적 도덕에 의해서 매개되었다기보다는 두 오빠의 죽음을 초래한 어둠의 힘이 그대로 자기마저 휩쓸려 한다는 것을 아는 이를테면 육체적 직관이다. 그것은 전쟁을 몰고 온 어둠의 힘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으며 억지스러운 허풍기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을 몹시 인상적인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중년이 된 여주인공이 <나목>에 의해서 촉발되는 감개는 이 작품의 열쇠 같은 구절이 되어주고 있다.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또한 내가 그 나목 곁을 잠깐 스쳐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서성댄 철없는 여인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나목은 비단 옥희도 씨의 표상으로 그치지 않고 사람살이의 근원적인 외로움의 표상으로 이어진다. 사실 위에 적은 감개에 이어서 여주인공은 세속적인 소망의 두루뭉수리인 남편을 한 사람의 낯선 이방인으로 느끼고 느닷없이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그러나 그것이 진하게 얽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어쩔 수 없이  간헐적으로 드러나게 마련인 사람살이의 홀로임을 달래주지  못한다. 젊은 시절 침팬지를 바라보고 있는 옥희도 씨가 고독을 앓고 있으며 그를 도와줄 수 없다고 느꼈던 여주인공은 중년의 종장에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가지를 비비댈 수는 있으나 서로의 거리를 좁힐 수 없는 어린 나목들임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시각적 심상이 있다. 그것은 '부우연' 휘장· '부우연' 캔버스와 같은 '부우옇다'는 심상이다. 이것은 이경이 옥희도의 눈에서 본 '황량한 풍경의 일각 같은 것'과 같은 심상이다.

외부의 세계가 부옇게 보이는 것은 '자신의 눈에 무엇이 덮여 그렇게 보이는 것'과 '정말로 외부의 세계가 부옇다'라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여기서 나타난 '부우연'의 의미는 인물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생각들이,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를 부옇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경은 옥희도가 그리던 그림을 죽어버린 나무, 생명력을 상실한 나무로 보았고, 후에 가정을 가지고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후, 겨울 한철을 이겨 내고 있는 나무인 나목(裸木)으로 보았다.

 

<박완서의 작가관>

박완서의 문학은 대중 지향적이다. 평범한 일상적인 개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면서 주인공은 자신의 삶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현실적 조건을 거부하지 않고 일상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선, 소설에 등장하고 있는 중산층의 생활양식에 대한 해석을 작가의 이데올로기적 지평과 연관하여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중산층을 소설적 무대로 설정하여 일상성의 의미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가족 내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사회 윤리적인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기도 하고, 가족 구조의 변화를 역사적인 사회 변동의 한 양상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는 사회적 단위 집단으로서의 가족 구성의 원리와 그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현실 사회의 내면적인 변화와 그 문제성을 비판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문학은 여성 중심의 문학이다. 또한 6.25 전쟁과 분단 체험의 문학이다. 작가의 소설에서 중요한 역사적 배경은 전쟁과 분단의 체험도 민족 분단의 상처를 안고 있는 독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민족 분단과 전쟁은 사회구조의 급격한 변동을 초래하면서,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의 사회 윤리적 규범을 붕괴시키고 있다. 가치관이 전도되고 심성조차도 변질된다. 인간적인 가치의 붕괴를 형상화하기 위해, 전쟁으로 인한 파괴가 그만큼 강조되는 것이다. 박완서는 분단이나 전쟁 자체를 문제삼고 있기보다는 그러한 상황적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존재 방식을 따지고 있는 것이다.

 박완서는 문단 데뷔작인 <나목>부터 최근의 자전적 작품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게 한국전쟁의 경험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목마른 계절>은 중산층 여성의 속물 근성에 대한 냉엄한 비판과 함께 박완서 문학의 기둥을 이루고 있는 전쟁과 분단 현실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작품의 시간적 배경을 살펴볼 때에 전쟁의 후유증을 담아내고 있는 <나목>과 전쟁의 경험을 다루고 있는 <목마른 계절>은 하나의 연속된 과정 속에 있다. 그래서 작품을 통독하다 보면 한 개인이 거대 이념의 틈바구니에서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다가 '문학'이라는 영역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과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나목>과 <목마른 계절>은 박완서 문학의 원형질이라고 할 수 있다.

   박완서의 문학이 한 가족에 미친 전쟁의 상처를 탐구하는데 바쳐지고 있다면, 이 작품에서도 나타난 바 있는 오빠의 죽음이라는 모티브는 <나목>부터 <부처님 근처>, <카메라와 워커>, <엄마의 말뚝> 등의 작품을 거쳐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반복되고 변주된다. 그것은 "생때 같은" 한 청년의 죽음이야말로 한 가족의 슬픔의 차원을 넘어서 민족 전체의 비극을 대표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이란 어머니의 삶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을 집어삼킨 폭력의 과정이었고, 신앙과도 같았던 아들을 빼앗아가버린 전쟁으로 말미암아 어머니는 삶의 의욕을 상실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한 젊은 처녀의 눈으로 바라본 전쟁을 담고 있다. 전장이 아니라 후방에서 여성들이 겪게 되는 비참한 현실과 생존에 대한 간절한 욕망이 드러나는 것이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나목」은 전쟁과 청춘의 책이다. 환도하기 이전인 전쟁중의 서울을 무대로 전개되는 이 작품에서 전쟁의 현장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으나 멀지 않은 곳에서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작중 인물들의 의식과 행동을 규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쟁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한편 젊음의 실상과 그 뜻하는 바를 이모저모로 싱싱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젊음의 불안과 추위와 아슬아슬함등을 표현하고 있다. 대입 준비를 위해 처음 접했던 박완서의 소설 '나목'... 잔잔한 감동과 생각이 끊임없이 밀려오게 하는 이야기인 듯 싶다.

 

"빨간 풍선을 놓친 계집아이가 자지러지게 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빠져들 듯이 풍선이 멀어 간다. 드디어 빨간 점을 놓치고 만 나는 눈물이 솟도록 하늘의 푸르름이 눈부시다."

 

 

 

 

 

 

200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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