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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박완서씨 작품의 경향
si**** 조회수 25,156 작성일2005.03.16
박완서씨 작품의 경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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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세계와 문학적 특징

박완서 소설의 가장 큰 특징으로 ‘기억과 묘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소설에는 모든 작가의 경우 필연적으로 자전적 요소가 투영되게 마련이라는 이야기를 훨씬 넘어설 정도로 자전적인 요소들이 많이 심어져 있다. ‘우리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이라고 지칭되는 그는 다른 어떤 작가보다도 소설 속의 인물과 작가를 겹쳐서 읽을 여지를 많이 남겨 놓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나목]이나 [목마른 계절] 그리고 [엄마의 말뚝] 시리즈나 단편 [조그만 체험기]등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그대로 녹아 들어 있는 것으로 이미 정평이 나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개인사를 털어놓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작가의 ‘천의무봉’한 문체 역시 이러한 착각을 더욱 부추기는 데 일조를 한다.
70년대 박완서의 소설은 대부분 6.25의 비극과 분단현실 그리고 중산층의 삶의 양식을 관통하는 물신주의적 풍토를 드러내는데 바쳐져 있다.
그가 20년 동안 써낸 작품들에는 전쟁과 분단의 체험이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렇기는 하나 전쟁의 원인과 전개양상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분단상황 자체를 문제삼고 있지는 않다. 대체로 그의 전쟁분단 소재의 작품들은 전쟁으로 인해 한 가족이 겪는 엄청난 상처와 그것의 치유과정을 그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념적 갈등과 화해, 내재된 증오의 폭발과 그로 인한 새로운 증오의 형성,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복판에서 피어나는 휴머니즘 등을 다루어온 저간의 전쟁, 분단 소재의 작품들과는 사뭇 차이나는 독특한 작품세계인 것인데, 그러기에 폭은 좁지만 그만큼 개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1976년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휘청거리는 오후]나 [조그만 체험기]같은 작품들의 경우 오늘날 우리의 사회가 개인과 사회를 어떻게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마비시키고 타락시키는가 하는 문제, 이런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이 착하고 순한 보통 사람들을 어떻게 소리도 없이 몰락시켜 버리는가 하는 문제들을 날카롭게 파헤쳐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조그만 체험기]에서는 작가 개인의 체험이 바탕이 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실감나게 생생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 사회 전체의 이지러진 정신 구조, 이러한 사회 구조가 개개인에게 욕하는 비뚤어진 삶의 방식, 이런 삶의 방식이 모르는 사이에 가져오는 개인 및 사회의 몰락과 파멸 등 매우 포괄적이고 심각한 문제를 다루며 활달한 언어구사와 칼날 같은 비판정신으로 이 시대의 풍속적 혼란과 도덕적 타락을 고발하는 데 천재적인 솜씨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저문날의 삽화]와 그 이후에 발표된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특징적인 현상의 하나로 구체적이고 친근한 소시민적 일상사의 여러 모습들을 자기 반성적인 시선으로 감싸안고 있는 것을 들수 있을 것이다. 이들 작품은 대개 중년이나 중년 이상의 여성을 작중 화자로 내세우고 있으며 따라서 이야기의 진행도 그들 세대의 일상적인 주변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전의 작품에서는 작중화자의 의식이 거의 완전히 작품에 밀착해있는데 비해 이들 작품들은 작가가 작중 화자의 의식에 대해 일정한 반성적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작중 인물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의 의미를 보다 폭넓게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들 작품에서 작가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삶의 자질구레한 갈등들을 비교적 균형잡힌 객관적 시각으로 드러냄으로써 이야기의 진행을 비판과 애정의 어느 한 극단으로 몰고 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 태도는 이들 작품을 이 시대 소시민적 삶의 충실한 풍속도를 이루게 한다.
그의 소설에서는 또한 여성해방의식의 형상화가 보여진다. 박완서의 소설에 나타나는 어머니는 아들이라는 우상에 매어있는 , 그래서 딸만 남겨 놓고 아들을 데려간 세월을 증오하면서 죽어간 그 시절 전형적인 어머니로 그려지고 있다. 그래서 [나목]의 어머니는 “어쩌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들을 몽땅 잡아 가시고 계집애만 남겨 놓으셨노”라고 탄식한다. 그 어머니에 대한 단상들이 소설의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이를테면 [서 있는 여자]에는 “여염집 여자란 말이 참 듣기 좋군요. 일부 조사를 삶의 목적으로 태어난 것 같은 정숙한 여자들, 얼마나 좋아요”라는 혹은 “엄마 좀 참으시지 그랬어요. 지금부터라도 참으세요. 여자가 참아야지 별 수 있나요”라는 비아냥거림과 “여자들이 본질적인 것에 무식하기가 어느 정도냐 하는 것은 그들의 언어 생활의 부정확성만 봐도 알고도 남는다니까”라는 언사에 대한 분노와 “여자가 남자가 하는 일을 대신할 수 있다고 해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 뿌리 깊게 가로놓인 문제가 본질적으로 달라지진 않는다는 얘기에요”라는 구체적인 고민이 세겨져 있다. 소설에 나타난 이런 측면들을 통해 그는 주체적인 입장을 가진 “인간”의 목소리를 소설 표면으로 복원하고자 한다.

2. 작가의 의식

(1) 생명주의

박완서의 생명주의는 완벽한 질서나 화려한 문명보다 삶의 근원적인 활력 내지 야성을 존중하고, 첨단적인 기술이나 기계보다 인간의 생명과 성적 활력을 오히려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엄마의 말뚝1]과 [공항에서 만난 사람]에서는 야성에의 지향이, [그 가을의 사흘 동안]과 [울음소리] 에서는 인간본질의 근원탐구에의 집착이 뚜렷이 나타난다.
박완서의 가족사의 일부분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 [엄마의 말뚝1]은 어머니가 자녀교육을 위하여 시골에서 나와 대처 서울에 정착하는 전후과정을 소녀의 눈을 통하여 기록한 1인칭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소녀인 나는 대처생활에 차차 길들어 갔지만 끝내 처음의 두려웠고 주눅들었던 문밖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과, 또 엄마의 신여성을 표방한 교육이 실제에 있어 모순을 지니고 있었고 나에게 거부감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결국 나의 의식 내용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후일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어머니의 자식교육을 위해 박은 말뚝에서 자식의 의식 내용은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에서 우리는 박완서의 영원한 비도시적 문밖의식 내지 어릴 때 시곡생활에서 지니게 된 순수한 야성을 주목하게 된다. 왜냐하면 도시의 양복장이들, 이층집들, 가게의 신기한 물건들, 활기찬 소음 등의 번화와 누구나 맹종하고 있는 질서가 어린 박완서를 일시 주눅들게 했다 하더라도, 앞에 든 비도시적 문밖의식이나 어릴 때 오래 방목된 그녀의 야성은 끝내 무시되거나 소멸된 일이 없기 떄문이다. 소멸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특히 그런 야성은 삶의 그누언적인 활력으로서 박완서의 다른 작품들에도 거듭 나타나 있다.
[공항에서 만난 사람]에서 작자는 그 야성을 삶의 활력으로, 그 가운데서도 일종의 한국여인 고유의 오만하고 거칠은 생활력으로 구체화해놓고 있다. 이러한 야성의 여인상을 탁월하게 형상화 한 점이 돋보이는 이 작품의 주인공 무대소 아줌마는 이제 “주름이 난도질해 놓은 것처럼 처참한, 거칠게 늙은 여자” 이자, 과거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이었던, 외국인이면 누구나 “얕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터무니없이 오만한 어쩔 수 없는 우리 나라 사람” 으로 그려져 있다. 그것은 무대소 아줌마의 운명에 대처하는 자세에서 드러나는데 그녀는 6.25 동란중에는 미군 PX 의 청소부로 일했고, 휴전 후에는 국민방위군이어던 남편의 비참한 죽음을 겪었고, 그 뒤 늙고 보잘 것 없는 양키와의 결혼생활과 그의 죽음을 당했고, 이제 자신의 트기 아이들 교육 때문에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두 번씩이나 과부가 된 것을 비롯하여 그녀가 겪게 된 운명이 사나왔다는 데 있다기보다, 그러한 운명에 그녀가 오만하고 당당한 위엄과 사납고 야성적인 활력으로 대처했다는 데 있는 것이다.
박완서의 이와 같은 야성지향적 생명주의는 [그 가을의 사흘 동안 ] 과 [울음소리] 에서 인간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변모된다. 전자의 작품에서는 30년 동안 의사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만이라도 살아있는 아기를 받아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구체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소파수술한 임부의 손상되지 않은 태아에 뚜렷이 박힌 두 개의 눈을 보고 생명을 훼손한 과거의 자기 죄과에 대해서 깊은 뉘우침과 두려움에 떨기도 하는 그녀는 어느날 스무살도 안돼 보이는 앳된 소녀의 태아 처리를 하다가 뜻밖에 그 소녀의 살아있는 팔삭동이 미숙아를 받고 아기를 갖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히나 아기는 죽게 되고 그녀는 그 아기를 자기의 새집 뜨락에 깊이 잠재워 아기의 무덤이라도 가진 여자가 되고자 한다.
이와 같이 아기를 갖고 싶다는 일종의 여성 고유의 생명에 대한 사랑의 눈뜸은 [울음소리]에도 약간 변모된 형태로 나타난다. 칠년적 딱 한 번 낳은 아기가 살아 있은 삼주일 동안 뇌성마비로 심한 고통을 겪는 것을 보고 이 부부는 아이를 다시는 갖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무의식중에 이 부부가 함께 멀리서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환청으로 들으며 행복한 공감으로 사랑의 순간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정욕보다 더 강렬한 생명에의 갈구로 이루어지는 부부의 성적 결합 장면은 박완서의 생명주의의 특이한 일면을 잘 드러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단순한 기계문명 존중이나 육체의 예찬과는 다른, 강렬한 생명애에 기초한 박완서의 생명주의는 [유실]에서 인간존재의 정체탐구에 집착한다. [유실]은 제목 그대로 ‘잃어버린 것’에 대한 이야기지만 여기서 추구하는 잃어버린 것은 물질이 아니라 주인공 자신의 숨겨진 존재의 정체이다 그것은 우리의 평행 감각을 일탈하는 일종의 인간 속성인 동시에 삶의 원동력으로서의 성본능과도 불가분의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박완서의 생명주의는 이와같이 삶의 근원적인 활력으로서의 야성 및 성본능을 중시하고, 직접 인간의 생명을 사랑하고, 중용과 평형에서의 일탈을 가능케 하는 싱싱한 인간내면을 추구하기도 한다. 결국 그러한 생명주의는 인간의 참다운 삶의 가치를 밝히고 지켜나가는 것과도 다르지 않는 것이다.

(2)비판의식

박완서는 1970년대부터 창작활동을 시작하였고 작품의 시대적 배경 역시 대부분 그것과 비슷한 시기를 택하고 있다. 이무렵 우리 사회는 파행적인 산업화와 경제 발전 그리고 기형적인 도시화 등으로 갖가지 사회적 부조리와 불균형, 비리와 타락이 계속 심화되는 중이었다. 게다가 6.25동란은 아직도 우리에게 유형무형의 상처와 고통으로 남아 있으며, 분단의 문제는 여전히 절실하고 심각한 민족적 과제로 엄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완서의 많은 소설들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상황과 역사적 조건에 대해서 그녀 자신이 문학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그리고 거기데는 우리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깊은 투시와 날카로운 비판이 수반되어 있다. 박완서의 작품이 모두 총체적 상황의식을 지니고 있는지는 더욱 검토를 요할 문제이지만 현실에 대한 이 작가의 투철하고 예리한 비판의식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예컨대 현대분명의 획일성이 초래하는 인간소외 문제를 다룬 [닮은 방들], 우리 사회의 편의주의적 자기기만성을 고발한 [상], 관료사외의 모순을 비판한 [조그만 체험기], 그리고 분단의 모순과 고통을 그려낸 [엄마의 말뚝2]등은 그 두드러진 작품들이다.
사회비판적인 작품으로는 그밖에도 세속적인 안일주의의 사회풍조를 풍자한 [지렁이 울음소리], 가난한 사람의 성실한 삶이 농락되는 현실을 고발한 [도둑맞은 가난], 금력과 허영심이 지배하는 풍토에서 아이들이 바르게 자랄 수 없음을 말한 [낙토의 아이들], 무식과 교만, 비겁과 위선, 타산과 과욕이 판을 치는 저질의 사회를 비판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에 힘들 정도로 많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회적 타락이 전쟁과도 연관되는 것으로 본 경우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기 이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이다. 피난 도중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머니는 딸인 내가 양갈보 되기를 바랐고, 나는 세 번이나 시집가서 타락한 세태를 겪어야 했는데 세 번 모두 나는 후취로 시집을 갔고 그 세 남편은 한결같이 돈에 기갈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배금주의자들이 지배하는 사회를 살아온 나는 어느 날 관광 안내원이 경제제일주의의 깃발 아래 대외적으로 나라 망신도 불사하는 것을 보고 잊었던 부끄러움을느끼게 되어, “모처럼 돌아온 내 부끄러움이 나만의 것이어서는 안될 것 같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박완서는 이처럼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 타락뿐만 아니라 분단과 전쟁이 남긴 개인적 내지 민족적 고통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쏟는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박완서의 작품들이 제시하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들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생명주의와 비판 의식이다. 삶의 근원적인 활력을 소중히 생각하는 이 작가의 생명주의는 답답한 질서나 기술이나 기계보다 인간의 생명을 사랑하고 또 중용과 평형에서의 일탈을 가능케 하는 싱싱한 인간내면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명주의는 인간의 참다운 삶의 가치를 밝히고 지켜나가려는 박완서의 휴머니즘과도 동질적인 것이므로 그것은 그 자체를 저해하는 사회와 역사의 모순이나 문명의 해독을 비판하게 마련인 것이다.

3. 정리

1970년 [여성동아]에 장편[나목]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이래 최근에 이르기까지 박완서는 그야말로 ‘문학사’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초기 소설에 드러나는 중산층의 허위의식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라든가, 자신의 가족사에 근거한 분단 비극의 형상화, 그리고 최근 들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페미니즘이나 생명사상에 대한 따뜻하고도 설득력 있는 공감 등, 이 작가가 이제까지 다루어 온 주제들은 한결같이 해당 시기마다 우리 문학의 가장 예민한 공감대를 형성해 온 바 있다.
그의 개인사는 단순히 개인의 실존적인 고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박완서와 동일한 시대를 살아갔던 무수한 개인들의 고백을 대표한다. 이것은 박완서 세대가 우리 역사에서 남달리 중요한 시기. 예컨대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에 이르는 기간, 그리고 해방기의 혼란으로부터 한국 전쟁의 참사에 노출된 시기 등 굴곡진 삶을 살아왔다는 의미에서 그러할 뿐만 아니라 작가가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회한에 가득차서 회고하는 삶의 내용이 개인의 삶의 그것만으로 머무르지 않는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 곧바로 한 집단이나 한 세대의 일반적인 경험의 양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은 그 경험이 강제하는 고통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분명 작가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축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최근 들어 비슷한 소설적 경향을 보여 주는 다른 작가들과 구별되는 박완서 문학만의 독특한 특징이 아닐 수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박완서 문학은 개인사를 넘어서는 세대의 기록으로 다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 ^^;; 5페이지 정도 되는 거 같아요..요약해서 보세요 **

200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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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뚝」「꽃을 찾아서」「저문 날의 삽화」「한 말씀만 하소서」「너무도 쓸쓸한 당신」등이 있고,

장편소설「휘청거리는 오후」「서 있는 여자」「그해 겨울은 따뜻했네」「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미망」「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아주 오래된 농담」등이 있다.

또한 동화집「부숭이의 땅힘」「보시니 참 좋았다」등이 있고

수필집「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살아있는 날의 소망」「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어른 노릇 사람 노릇」「두부」등이 있다.

200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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