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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리고장의 문화재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7,463 작성일2006.10.14

부탁합니다;;

저 내일까지 이거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요;;

광주의 문화재 사진과 설명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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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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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조금 썰렁~~~ 하네요

 

아는것만 적어놓구 갑니다.

 

1.국보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화순 대곡리 출토 청동 유물

 

2.보물

 

광주 서오층 석탑

광주 동오층 석탑

증심사 철조 비로 자나불좌상

금계일기

정지장군 환삼

안중근 의사 유묵

약사암 석조 여래 좌상

전오치지영정

 

3.사적

 

광주 충효동 도요지

광주 신창동 유적

 

4.시 지정 유형 문화재

 

증심사 삼층 석탑

광주 십신사지석불

광주십신사지석비

광주 재명 석듳

전라남도 도청 회의실

원효사 출토 유물

광주향교

지신재

병천사

신룡동 오층 석탑

증심사 오백전

증심사 석조 보살 입상

원효사 소장 만수사법종

눌재집 목판각

사암집 목판각

취병조형 유허비

고봉문집

제봉문집 목판

포충사 소장 고경명 문적

기대승 송손가 소장 문적

회재유집 목판

전라남도 회의실 신축 설계도

의신의 종가 소장 고문서

오웬 기념각

 

5.시 지정 기념물

 

환벽당

정지장군 예장 석묘

전상의 장군 예장 석묘

충효리 정려 비각

허백련 춘설헌

오지호 가

포충사

방월당

칠석동 은행나무

양씨 삼강문

고씨 삼강문

용아생가

무지고성지

우일선 선교사 사택

충효동 왕 버들

양림동 호랑 가시나무

화삼사

학동 느티나무

월계동 장고분

금곡동 제철유적

명화동 장고분

범세동 선생묘

괘고 정수

광주 북구 천주교회

광주학생 독립운동 발상지

 

6.시 지정 문화재 자료

 

증심사

약사암

무양서원

풍영정

만귀정

용두동 지석묘

용진정사

고견의 가옥

운림동 석실 고분

고내 상성지

용진 산마야 여래좌상

 

이상... 도움 많이 되셨기를 빕니다..

내공 많이 주세요..

 

200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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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자⋅지식인이 채택한 답변입니다.

  • 출처

    내머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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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ji****
지존
사회, 도덕 41위, 영어 72위, 국어, 한문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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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흥산성 쌍사자석등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 이라고도 하며, 대개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자리한다. 일반적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을 이루는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2..광주동오층석탑

광주시내에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2기의 탑 가운데 동쪽에 위치한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이다. 탑이 서있는 부근은 백주사(栢州寺)터로 알려져 있기도 하나 추정할 만한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탑의 구성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형태로 신라석탑의 기본형을 잃지 않고 있다.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는 여러 개의 돌을 짜맞추어 구성하였으며,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다. 특히 지붕돌 밑면의 받침이 1층은 5단인데 비해 2층부터는 4단으로 간략화되어, 양식상 만들어진 시대가 통일신라 후기로 내려옴을 알 수 있다.

3.광주서오층석탑

광주공원 안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으로 이 부근은 성거사(聖居寺)터라고 전해진다. 이 광주공원은 원래 성거산(聖居山)이라 불렀는데, 산의 모양이 거북처럼 생겼으므로 광주를 떠나지 못하도록 등위치에는 성거사를 세우고 거북의 목 부근에는 5층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석탑으로, 통일신라시대의 2단 기단 양식에서 기단을 1단만 두는 고려시대로의 양식변화를 보여준다. 또 지붕돌 추녀와 몸돌의 알맞은 비례감과, 위로 오르면서 줄어드는 비율이 크지 않아 전체적으로 높게 보이면서도 안정감이 있다.

 

4.광주약사암 석조여래좌상

호남지방에서 보기 드문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보존 상태까지 양호하다. 거친 화강암 석재를 다듬어서 만들었으며, 질병에 빠진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약사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약간 숙이고 있는 얼굴은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모양이다. 체구는 전체적으로 당당하게 표현되었으나 어깨선이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약간 쳐져 보인다. 허리는 지나치게 가늘게 표현되어 상대적으로 가슴쪽의 양감이 풍부해 보인다.

 

5.전오자치영정

조선시대 무신인 오자치를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초상화로 가로 105㎝, 세로 160㎝이다. 오자치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나, 세조 13년(1467) 이시애의 난을 물리친 공을

인정받아 일등공신에 올랐다고 한다





 

200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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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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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sr****
고수
사회, 도덕 62위, 국어, 한문, 영어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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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광주 산성소주 제조 기능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3호, 남한산성소주 담그는 장면
궁중음식을 본떠 만든 독특한 음식들
1994년 12월 24일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으며, 기능보유자는 강석필이다. 광주 산성소주라고도 한다. 광주는 예부터 작은 서울이라 불릴 만큼 경치가 뛰어나고 부자들이 많이 살았으며,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여러 가지 궁중음식을 본떠 만든 독특한 음식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산성막걸리와 산성소주는 이 고장의 특산물이다. 특히 산성소주는 처음에는 여유있는 가정에서 건강주로 만들어 먹던 것이었다. 그런데 널리 알려지면서 제사 때 조상에게 바치는 제사술로 사용되었으며 귀한 손님 대접이나 선물로 쓰이면서 그 맛과 향취가 각지로 소문이 나게 되었다.
남한산성 깨끗한 물과 재래종 누룩과 엿기름
최초로 빚은 시기는 남한산성을 축조한 조선 선조(宣祖:1568∼1608) 때로 추정되며, 그 후 임금님께도 진상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양조재료로는 남한산성에서 흘러내려오는 물과 이 곳에서 생산되는 쌀, 재래종 통밀로 만든 누룩, 재래식 엿기름 등이 있다.

술을 빚을 때 재래식 엿을 사용하는 것은 다른 토속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데, 특별한 맛을 낼 뿐만 아니라 술의 저장성을 높일 수 있으며 술을 마신 후 숙취가 없고 술의 향취를 좋게 한다.

성분은 100g당 알코올 성분 40g, 당분 3∼5g, 열량 230∼250㎉ 정도이고, 여러 가지 유기질과 각종 향미 성분이 다양하게 함유되어 있어 적당히 마시면 식욕이 증진되고 혈액순환이 촉진되며 피로회복에도 효과가 있다.


장인의 열정으로 빚은 다양한 산성소주
오래둘수록 무르익는 술맛
알코올 도수는 처음 거른 술은 85도 이상이고 후의 것은 점차 도수가 낮아지므로 이를 섞어 40도가 되도록 조절한다. 용기에 담은 후 밀봉만 잘 해두면 오래 저장할 수 있으며, 오래될수록 술맛이 무르익어 소주의 맛은 더욱 좋아진다.

중부면 산성리는 병자호란 때부터 조선말기까지 천여 호나 되는 많은 주민들이 살았던 명승고적지로 부유층이 많아 수준 높은 문화생활과 갖은 음식물들이 궁중의 본을 따서 만들어졌으며, 여유있는 가정에서는 자가용으로 특주인 건강주를 만들어 즐겨 마셨던 것으로 그 향취와 맛이 경향각지로 퍼지는 명산물이었다.

* 주재료: 물엿(옥수수, 쌀, 엿기름), 누룩
* 순도: 45도

 

해동화 놀이(중부면 광지원리 )

매년 음력 정월 15일에 중부면 광지원에서 치뤄지는 2백여년 된 민속놀이.

광지원리는 서울방면과 남한산성 길의 교차로에 있는 약 90여 세대의 동리로써 부락의 주위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광지원은 원래 예전의 통신방법으로 이용되었던 남산역(南山驛)이 있었던 곳으로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황교원(黃橋院)이 있어 서울에서 광진교를 건너 덕풍역을 거쳐서 경안 이천 여주 충주 청주방향으로 남하하던 관리나 역마가 쉬던 곳이다.

조선시대 여주 영능에 가시던 임금이 이곳에서 쉬다가 동리의 가운데 있는 물이 하도 맑아서 햇빛에 반사되어 빛을 발하자 광지원이라 칭했다고 하는 유래가 깊은 부락으로써 이 곳의 주민들은 이 원(院)의 터를 원집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동리에는 예부터 정월 상원일을 맞이하여 부락 내에서 달맞이 의식이 벌어지는데 그 의식의 명칭을 동리의 화를 풀어 버린다고 하여 해동화(海 洞禍)놀이라고도 하고 정월 상원일의 의식이 대개 농작에 관계되는 것으로 동리의 안녕이나 풍농을 위해서 겨우내 얼었던 것을 녹인다고 하여 해동화(海東火)놀이라고도 하는데 이 달집 형태의 나뭇단을 "해동홰"라고 지칭하고 있으며 더욱 나뭇단을 사용한 불이기에 해동화(海冬火)가 옳은 것으로 보인다.

정월 대보름은 그 해의 풍작에 관한 풍흉을 미리 점치는 의식이 많이 나타나며 겨우내 얼었던 땅에서 실질적인 농작의 준비가 이날부터 시작이 되고 있으며 그 높게 쌓은 나뭇단에 불을 붙여 겨울동안 얼었던 땅을 녹이고 추위를 물리친다는 뜻을 지니는 것으로서 이 불은 자연히 정화의 뜻이 있어 재난이 방지되어 마을의 안녕이 뒤따를 것을 알 수 있다.
이 해동해는 그 쌓아놓은 나뭇단의 높이가 예전에는 20여 미터나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7∼ 10여 미터에 달한다.

동리에 전해지는 구전(口傳)에는 이 행동화 놀이의 유래는 약200여 년 전에 이 동리에 마마나 장티푸스 등의 질병이 돌아 온 동리가 병고에 시달리고 있을 때 강표(姜杓)라는 노인의 꿈에 신이 나타나 "각 집마다 나무단을 모아서 그것을 엮어서 섶을 만들고 그것에 불을 놓고 제사를 올리면 병이 치유된다"고 하여서 그때부터 매년 정월 보름날 밤에 이 의식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각 지역에서 나타나는 민속의 유래는 정확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알 수 없으며 이 해동화 놀이를 보더라도 짚을 사용치 않고 나뭇단을 사용하는 특이한 점이 있으나 이 나뭇단을 사용하는 부락은 같은 광주시내의 학동리에서도 나타난다.

이 지역의 공통적인 점이 산이 많고 농지가 적기 때문에 나무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 전해지는 유래가 각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보아도 각 지역에서 어느 시기엔가 필요에 의해 창출된 설화로 보인다.
따라서 달맞이의 일반적인 형태가 가정마다 볏짚을 한 단씩 걷어서 달집을 짓기 때문에 짚을 사용한 달집이나 나뭇단을 사용한 해동화 놀이나 공통된 놀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해동화 놀이는 풍농의 기원과 동리의 안녕, 가내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마을 공동체의 단합을 목적으로 하는 기원성 민속으로서 무속적(巫俗的)사고에서 창출된 특이한 형태의 민속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동리에서는 해동화 놀이가 벌어지기 전에 동리의 노인 중에서 육갑(六甲)을 따져 길인을 지명하여 제서를 주관할 제주를 선출하는데 제주는 몸과 마음을 청결케 하고 문밖출입을 금하며 며칠 전부터 식수에 목욕재개하고 부정을 멀리해야 한다.
또한 동리에 초상이 나거나 출산이 되면 의식을 거행하지 않는데 이러한 것은 전부가 청결한 가운데 제를 올려야 된다는 강한 무속신앙 때문이다.

이와 같이 광지원의 해동화 놀이는 200여년을 이어왔으며 만일 이 의식을 거행하지 않으면 동리에 불상사가 생기고 흉년이 든다고 하여 일제 시에는 등화관제소의 허락을 받고 의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해동화 제작
정월 보름이 가까워지면 동리의 각 가정마다 나뭇단을 한 단씩 걷어 그것으로 해동해를 만든다. 동해는 마을의 중앙 공지에 세우며 높이는 약 7m 정도로 동해가 쓰러지지 않게 버팀목을 세우고 새끼줄로 둘레를 여러 번 감는다.
달맞이 신호
광지원은 주위가 전부 산으로 둘러싸여 달이 떠오르는 것을 동리에서 보게 되려면 시간적으로 늦기 때문에 산 위에 사람이 올라가 있다가 달이 떠오르면 횃불을 흔들어 신호해 준다.
달집 태우기와 제사
신호를 받으면 해동홰에 올라가 윗부분에 불을 붙이며 이 달집 앞에 제상을 차리고 제주가 삼배(三杯)를 드린 후에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한다.
지신밟기
제주가 술잔을 올리고 나면 동리의 농악대가 삼채장단을 치면서 횃불의 주위를 돌다가 동리의 집집을 다니며 가내의 안과태평과 초복수액을 기원해 주는 지신밟기(이 곳에서는 고산밟기라 한
다)를 한다.

<!--추가테이블 박찬봉--><!---- 본문 내용 끝----->

 

 

200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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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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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k****
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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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월요일까지 청주에 있는 명승고적지를 알려주세요 제발요~~~~~~~흑흑

 

2008.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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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답변

감사합니다. 덕분에 숙제를 할 수 있었요.

2008.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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