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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Apr 21. 2017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사랑은 변하지만 그래도 아름답다

책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대부분 원작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책이라는 매체와 다르게 영화의 영상이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에 쓰이는 활자엔 상상의 제약이 없지만, 촬영에 의해 보여지는 영상은 책에서 자유롭게 펼쳐진 상상들을 실제 눈에 보이는 확실한 현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아무리 촬영 기술이 발전했고 CG 같은 예전엔 상상하지도 못했던 과학 기술들이 영화에 접목되고 있다 하더라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영화에는 2시간 남짓의 러닝타임이라는 한계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이유들로 인해 책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좋은 평을 받기란 여간해서 쉽지가 않다.

오늘 소개할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그런 일반적인 논리에서 벗어난 영화이다.

물론 원작 소설이 30페이지 남짓의 짧은 단편 소설이었기 때문에 영화가 소설의 내용보다 풍부해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이 양적으로 풍부해졌을 뿐 아니라 이 영화는 내용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풍성하다. 또 소설의 열린 결말과는 다르게 영화는 확실한 엔딩 장면으로 뚜렷한 결말은 전달하고 있다.

배우들 또한 캐릭터에 충실한 연기로 몰입도를 높였고, 영상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누군가 필자에게는 원작보다 뛰어난 영화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필자는 망설이지 않고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추천해줄 것이다.



01. 편견을 벗어나자


1. 장애인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먼저 분명히 말해둘 것이 있다.

몇몇 관객들은 이 영화를 관람한 뒤 영화를 "장애인과 일반인의 사랑"이라고 단정 지어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확실하고도 분명한 "사랑"영화라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 앞에 특별한 수식어나 미사여구를 붙일 필요가 없다.

"장애인과의 사랑"이라는 흐름으로 영화가 보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남자와 여자의 사랑"으로 영화를 봐야 진정 이 영화가 말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자칫 "장애"라는 편견에 갇혀 "사랑"을 놓치지 말았으면 한다.


물론 여주인공 조제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다.

그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주인공 조제와 츠네오가 만들어가는 사랑의 모습은 대상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특별할 수밖에 없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누구나 해봤고, 봤고, 들었던 일반적인 사랑이다.

그러므로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분명하고 확실한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의 변화에 관한 영화라는 말이다.


2. 우리는 모두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조제는 장애를 가지고 있어야 했을까?

다리가 불편한 조제라는 캐릭터는 어떤 의미일까?

조제의 장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필자는 조제가 가지고 있는 장애는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질 수밖에 없는 하나의 결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점이 다리가 불편한 장애라는 것으로 상징화된 것이다.

조제가 가진 결점은(장애를 결점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이다. 조제의 결점은 눈에 드러나는 결점이다. 눈에 확실히 드러나므로 숨길 수 없고, 그러므로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에게 집중된다.

조제는 자의적으로 그리고 타의적으로(대부분은 할머니로부터) 스스로의 결점을 인정하고 세상으로 나오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한다.

하지만 그녀의 결점은 츠네오를 만나고, 츠네오와 사랑을 하면서 극복된다.

츠네오의 결점은 조제의 그것과 다르게 눈에 드러나는 결점은 아니다.

그의 결점은 조제를 만나기 전까지 사랑을 일종의 오락으로 여긴다는 점이었다. 감정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여자와 잠자리를 할 수 있는 모습들. 그것도 사랑이지 않겠느냐, 말할 수도 있겠지만 조제를 만난 후 조제를 사랑해가는 츠네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했다.

각자만의 결점을 가지고 있었던(조제는 외적인, 츠네오는 내적인) 조제와 츠네오는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함께 지내는 과정 중에서 결점을 극복하게 된다.

사랑은 결점이 없는 완벽한 사람 두 명이 만나 아무 문제없이 이루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만의 결점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결점을 극복해 나가며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과정인 것이다.

덤으로, 필자가 좋아하는 배우인 우에노 주리가 연기한 카나에의 결점은 착하다는 것이다.

아니, 착하다는 것이 어떻게 약점이 되느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사랑에 있어서 착하다는 것은 종종 결점이 되기도 한다. 카나에는 스스로 착하다는 관념에 갇혀있는 캐릭터이다. 스스로 가지고 있는 착하다는 이미지 때문에 카나에는 츠네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하기도 한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카나에는 자신의 이런 이미지를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의 엔딩 장면에서 조차 카나에는 그저 착할 뿐이었다.



02. 츠네오의 사랑


1. 연민과 동정이 아닌 진짜 사랑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가장 밉상(?) 캐릭터라고 평가되는 인물은 아마 츠네오일 것이다.

"사랑한 사람을 버린 나쁜 놈."
"동정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조제에게 상처를 준 놈."
"결국 장애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사랑에서 도망친 놈."

등등, 츠네오를 비판하는 평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조제를 향한 츠네오의 사랑은 동정이나 연민이 절대 아니다. 츠네오는 분명히 조제를 한 명의 이성으로 생각했고, 여자로서의 조제의 매력에 빠져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츠네오와 조제의 첫 만남은 굉장히 이색적이고 독특했다. 그리고 그런 점이 츠네오로 하여금 조제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했을지도 모른다. 동네에서 소문만 무성했을 뿐 그 존재에 대해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던 조제라는 존재를 직접 마주하게 되는 츠네오. 조제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츠네오는 그도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조제에게 빠져들게 되고 그녀를 통해서 조금씩 사랑을 알아가게 된다.


2. 사랑이라는 감정에 솔직한 츠네오


영화에서 자신의 감정에 가장 솔직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츠네오다.

츠네오가 보여주는 사랑에 대한 감정들 그리그 그 감정의 변화를 겪고 다시 그런 변화로 괴로워하는 마음들. 이것들은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세상에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맞아. 나도 저랬었는데'라는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조제를 향한 츠네오의 사랑을 증명해주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조제를 위해 만들어준 스케이트보드 유모차와, 그녀가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프랑수아즈 사상의  <한 달 후 일 년 후>의 속편인 <멋진 구름>을 힘들게 구해서 선물해주는 것, 그녀를 어둡고 좁은 옷장 속이 아니라 진짜 세상을 데려고 나와주는 것, 또 조제가 만나고 싶어 했던 친구 코지를 만나게 해주는 것.

이것은 동정심이나 연민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함께 있고 싶고, 상대가 원하는 걸 선물해 주는 마음은 당연한 것이니까. 우린 그런 것들을 망설이지 않고 사랑이라 부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츠네오의 사랑이 쉽지만은 않다.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에 있어서 눈에 보이는 장애물은 조제의 할머니다. 할머니는 조제가 세상에 나가는 것을 막는다. 조제의 존재를 어쩔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장애물은 아마도 츠네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과연 츠네오가 조제를 감당할 수 있느냐의 문제.

나는 정말로 그녀를 동정이 아닐 사랑하고 있느냐의 문제.

결국 츠네오는 조제와 이별(?)을 하게 되고, 조제를 잊기 위해 카나에와 데이트를 하고 조제를 만나기 전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사랑이, 사람의 감정이 그렇게 끊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조제의 흔적에 츠네오는 무너진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자꾸만 자꾸만 그에게 떠오른다.

츠네오는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가 조제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할머니의 도움 없이 살아가야 할 다리가 불편한 조제가 걱정되어 다시 조제를 찾아간다. 거기서 츠네오는 조제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신하게 된다. 호기심이나 연민이나 동정 따위가 아니라 사랑.

할머니의 존재는 츠네오에겐 조제를 포기한 하나의 변명에 불과했다. 할머니가 가로막으니까 난 조제와 함께 있을 수 없다, 라는. 하지만 츠네오는 이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세상의 편견과 타인의 시선을 모조리 제외하고 과연 나는 조제를 사랑하는가?

자신의 마음을 확인한 츠네오는 조제와 함께 지내기로 한다.


3. 하지만 결국 사랑은 변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변하지 않길 바라는 사랑만 있을 뿐이다.

일반적인 사랑의 과정을 말해보라면 "끌림-사랑-익숙함-이별"

츠네오의 사랑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고장 난 조제의 유모차를 고쳐주지 않고 방치한 것. 조제를 부모님에게 보여주는 것을 망설이는 것 등.

하지만 츠네오와 조제는 이 과정의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서 맞이 한다. 담담하게. 원래 일어나야 했던 일들이 성실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사랑을 확신할 수 있을까?

감정을 약속할 수 있을까?

익숙해지고 변해가는 츠네오의 감정에 우리는 과연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 둘의 사랑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어쩌면 츠네오보다 조제 쪽이다. 하지만 순간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고 또 그것들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츠네오다.


그리고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우리 모두는 그것들 앞에서 한 명의 츠네오일 것이다.


03. 조제의 사랑


1. "조제"라는 이름

사실 조제의 이름은 쿠미코다.

조제라는 이름은 그녀가 좋아하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매일 작은 옷장 안에서 할머니가 주어다 주는 책을 읽으며 살아가는 쿠미코에게 조제는 그녀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이상향인 것이다. 자신의 현실과는 정 반대에 놓여 있는.

쿠미코가 자신의 불편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소설 속의 조제를 읽는 것이었다. 쿠미코는 현실이라는 답답한 세상 속에서 조제라는 다른 세상의 삶을 꿈꾸는 그녀.

조제라는 이름 자체는 그녀에게 꿈 그 자체였을 것이다.


2. 할머니의 존재

할머니는 조제의 보호자인 동시에 그녀를 세상에서 격리시키는 존재다.

할머니에게 조제는 조제가 아니라 그저 쿠미코일 뿐이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쿠미코는 사랑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며 아예 세상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여긴다.

하지만 아무리 할머니가 조제의 사랑을 가로막는 존재라고 해도 조제는 할머니가 필요하다. 할머니가 주어다 주는 책이 조제가 꿈꿀 수 있는 유일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조제가 생활을 해나가고 삶을 유지하기 위해선 할머니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면서도 서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

우리는 과연 누구 편에 서있어야 할까?


3. 조제의 세상

필자가 처음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접했을 때 들었던 호기심은 바로 제목이었다.

"사랑"을 주제로 한 "멜로"영화라고 하기에 제목이 조금은 독특했으니까. 물론 일본 영화의 제목이(일본 영화 전부라고 말하긴 힘들겠지만) 우리에겐 약간 생소함을 갖고 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은 어쨌든 이 영화의 제목은 독특하다.

필자가 생각하고 추측해본 영화의 제목은 조제의 세상, 혹은 세계관이라고 생각한다.

"조제"는 조제 본인을 뜻하고 "호랑이"는 조제가 바라보고, 두렵고, 낯설지만 갈망하는 세상이다.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만약 남자가 안 생기면 호랑이는 평생 못 봐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조제는 츠네오와의 동물원 데이트에서 자신이 왜 호랑이를 보고 싶었는지를 말한다. 조제에게 호랑이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다. 장애를 가지고 있던 자신이, 할머니에게 가로막혀 나가지 못했던 세상 그 자체이다. 조제의 대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조제는 남자 친구가 생기지 않으면 세상에 나올 마음이 없었다. 조제를 세상으로 끌어낸 건 바로 사랑이다.

또 다른 면에서 조제에게 호랑이는 사랑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그건 아마도 사랑일 테니까.

호랑이는 길들일 수 없다. 세상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다. 길들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무섭고 두렵다고 해서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섭더라도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내 옆에서 손을 잡아 줄 한 사람일 것이다.



04. 사랑은 결국 변하지만, 사랑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의 흐름을 암시해주는 것은 바로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한 달 후 일 년 후>, 그리고  <멋진 구름>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은 조제와 츠네오를 사랑으로 연결시켜준 매개일 뿐 아니라 조제의 독백으로 채워진 <멋진 구름>의 한 부분을 살펴보면 주인공들의 사랑의 흐름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네,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영화를 다 본 이후, 그러니까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를 확인한 후 다시 한번 이 장면에서 나오는 책의 내용을 본다면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조제가 담담히 츠네오를 보내 줄 수 있었던 것은 조제가 배우고 알게 되었던 사랑이 바로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의 내용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뭐가 보여?"
"그냥 깜깜하기만 해."
"거기가 옛날에 내가 살던 곳이야."
"어딘데?"
"깊고 깊은 바닷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왜?"
"너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그랬구나. 조제는 바다 밑에서 살았구나."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외로웠겠다."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바다 밑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어쩌면 처음부터 조제는 자신과 츠네오의 사랑의 결말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을 예감했고 예상했고 준비해왔던 조제는 츠네오와의 마지막 순간에도 덤덤하다.

자신을 부모님에게 소개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츠네오를 원망하지 않는다. 또, 점점 변해가는(그것은 츠네오가 변해가는 것보다는 사랑 그 자체가 변해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츠네오를 인정한다.


사랑의 변화는 붙잡을 수 없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하지만 설사 그것이 변한다 하더라도 사랑은 사랑인 것이다.

사랑은 설렘으로 시작해 서로에게 빠져드는 과정을 지나 결국 이별의 단계로 진행된다. 그 모든 것이 다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05. BEST CUT

우리는 몇 달을 더 같이 살았다. 담백한 이별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아니, 사실 단 하나뿐이었다.
내가 도망쳤다.
헤어지고 친구로 남기도 하지만 조제는 아니다. 조제를 만날 일은 다신 없을 것이다.


담담했던 이별 뒤에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아픔과 슬픔.

결국 츠네오는 무너진다. 만약 츠네오가 조제가 읽었던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을 읽었더라면 저렇게 무너져 내려 흐느껴 우는 일은 없었을지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이 실패는 아니다.

츠네오의 슬픔은 그들의 커다랗고 행복했던 사랑을 반증해줄 뿐.



06. 필자의 감상


시간이 지나도 오래 남는 영화가 있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그렇다. 이 영화는 개봉한 지 상당히 오래됐지만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마음속에 오래 남아 가끔씩 삶의 어느 순간을 멈춰 세우는 이유는 왜일까?

아마도 나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는 우리가 겪어내고 행복해하고 흠뻑 잠기기도 하며 결국 그것으로부터 튕겨져 나와  한참을 아파해야만 했던 "사랑의 변화"에 관해 말하고 있다.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마지막까지의 두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조제와 츠네오가 겪었던 처음부터 끝까지를 함께 숨 쉬며 느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 뿐 아니라 아마 십 년 후에 이 영화를 다시 본 다 하더라도 그때도 분명히 지금처럼 좋을 것이다.


결국, 사랑에는 완성이 없다. 실패도 없다.

사랑이라는 행복했던 시간 동안 우린 그 안에서 순간순간의 행복했던 기억의 무늬를 마음에 새기며 조금씩 성장할 뿐이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은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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