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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낭만적 음식기행 - 소금·자연으로 완성한 고기 맛의 최고봉 

돼지고기 요리의 변천사 

박찬일 이태원 ‘인스턴트 펑크’의 주방장
본디 유럽에서는 삼겹살과 베이컨 기름은 아주 소중한 요리 재료…슈니첼, 코톨레타, 돈가스, 햄, 삼겹살로 이어지는 돼지고기의 세계적 변주

▎삼겹살은 유럽에서는 소중한 요리 재료다. 돼지 고기는 햄·슈니첼·돈가스·베이컨 등 세계 각국의 특성에 맞게 변화했다. 하지만 서민이 즐겨 먹는 대표 음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돼지고기를 둘러싼 4대 부위 미스터리가 있다. 삼겹살·머리·족발·갈비가 그것이다. 외국(보통 서양 기준)에 비해 적어도 2~10배쯤 한국이 더 비싼 부위다. 한국사람들이 워낙 좋아해서 국내 생산량으로는 충당이 안 되거나, 아니면 너무 비싸서 수입품이 들어오는 경우다. 삼겹살을 보자. 이 부위는 돼지 전체 중량에서 10%가 채안 된다. 그러나 선호도는 단연 1위다. 그러다 보니 수입량이 크게 늘었다.

정육점에 나가서 가격을 살펴봤다. 1㎏에 2만5천원이 넘는다. 한우 국거리가 1만원대에 팔리는 걸 보면 삼겹살이 ‘서민의 벗’이라는 것도 선입견이다. 물론, 그런 비싼 가격 때문에 온갖 나라에서 수입한다. 오스트리아·칠레·미국·독일·스페인·프랑스·벨기에…. 멕시코와 덴마크도 있다. 대충 15개국 정도를 넘나든다.

한국인의 삼겹살 사랑은 국제적으로 미스터리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 한국 친구들이 오면 종종 삼겹살을 구웠다. 정육점에 가서 이렇게 주문을 한다. “판체타 디 마얄레, 치르카 운 킬로! 딸리아 몰토소틸레 코메 카르테!”(돼지 삼겹살 1㎏ 주세요, 종이처럼 아주 얇게 썰어서요.)

이렇게 주문하지 않으면 두툼한 칼로 두껍게 썰어 준다. 이탈리아에서 돼지 삼겹살은 ‘고기’가 아니라 ‘양념’이기 때문에 주로 다른 부위의 고기를 감싸 덮는 용도로 많이 쓴다. 그래서 두껍게 썬다. 기름이 충분하게 나와서 주재료를 맛있게 익혀주길 바란다. 한국은 그 삼겹살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늘 두께에 신경을 쓴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삼겹살을 즐겼는지 궁금해진다. 별로 자료가 없다. 연구자가 아니어서 그런지 몰라도 찾기 어렵다. 문학작품에도 별로 안 나온다. 최근 작품은 꽤 있는데, 오래된 작품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돼지갈비는 자주 보인다. 예를 들면, 타계한 이문구 선생의 걸작 <장한몽>이다.

서울시 은평구 신사동의 공동묘지를 무대로 하층 민중들의 시난 고난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인데, 두 번 정도 돼지갈비가 등장한다. 특이하게도 갈빗집에서 먹는 게 아니라, 대폿집에서 이 메뉴가 나온다. 주인공들은 주로 막걸리에 이 고기를 뜯는다. 우리가 아는 보편적 상식과 상당히 다르다. 고깃집이 대중화된 건 70년대 이후다.

그 전에는 실비집 같은 데서 고기를 적당히 구워 팔았다. 우리가 아주 오래된 유행으로 생각하기 십상인 서울에서 소갈비의 유행은 알고 보면 80년대 이후인 것과 비슷한 이치다. 삼겹살은 개성 사람들에 의해 알려졌다고 한다. 개성의 명물 요리인 보쌈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원래는 세겹살이라고 불렸던 것이 그들이 그렇게 부르면서 고착됐다는 설이 있다. 언제부터 서울에서 삼겹살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아마도 현대 음식평론가의 시조 격인 홍성유·신태범·홍승면 선생의 저작에서도 삼겹살은 거론되지 않은 걸 보면, 극히 일부에서 소비된 듯하다.


▎베이컨은 양념으로 사용된다. 밋밋한 재료에 베이컨을 넣으면 맛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베이컨을 두른 돼지고기 안심.
삼겹살 즐겨 먹은 건 불과 30년 전부터

“그간 우후죽순처럼 주점가에 늘어가던 삼겹살집…” 1979년 8월 25일자 <동아일보> ‘횡설수설’에 언급된 내용이다. 삼겹살집이 이 시기에 크게 늘어났다는 걸 알 수 있다.

1969년 <경향신문>에는 삼겹살로 볶음요리를 소개하고 있다. 구이로도 비싼 부위를 볶아서 먹은 걸 보면, 그때만 해도 삼겹살이 그다지 비싼 부위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확실히 필자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에 대중화의 길을 걸은 것 같다. 그때가 위 <동아일보> 기사와 일치하는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이다. 대체로 은박지를 깔고 가스 화로에서 삼겹살을 구웠다. 삼겹살은 기름이 많아 직화로 구울 경우 그을음이 많이 생기고 속이 익지 않아 낭패를 본다.

그래서 두툼한 사각 철판과 유행타기 시작한 알루미늄 포일은 아주 좋은 궁합이었을 것이다. 이 조합은 솥뚜껑과 화로, 돌판과 석쇠 등 수많은 불판의 명멸사(?)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있다. 주로 다른 한식을 팔면서 삼겹살도 곁들여 파는 동네의 작은 실비집에서 파는 방식이다.

80년대 초반 무렵, 갓 술을 배울 때 신촌 일대의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시키면 가짜가 나오곤 했다. 돼지 전지(앞다리)를 둘둘 말아서 동그랗게 만든 후 살짝 열려서 수직으로 썰면, 동그랗고 기름과 붉은 살이 교대로 박힌 삼겹살 코스프레(?)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것을 불판에 올려 구우면, 고기와 기름 부위가 갈라져서 가짜라는 걸 스스로 ‘폭로’하곤 했다. 다들 그러던 시절이라 웃고 말았지, 가짜라고 항의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이때쯤에는 삼겹살이 귀해지고, 비싸졌다고 볼 수 있겠다. 유행한 지 불과 몇 년 사이에 폭발적인 수요 증가가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앞서 삼겹살을 유럽에서는 양념으로 쓴다고 했는데, 그 대표격이 베이컨이다. 베이컨은 그냥 먹기도 하지만, 대개는 양념이다. 밋밋한 재료에 베이컨을 넣으면 맛이 좋아진다. 예를 들면 돼지 안심은 부드럽지만 그 자체로 진한 맛을 내지는 못한다. 이 부위에 베이컨을 친친 감아서 오븐에서 구우면 맛이 훨씬 나아진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 동네 할머니가 굽는 맛있는 치킨 요리가 있었다. 닭 껍질이 아주 바삭바삭하고 속은 촉촉한데, 뭔가 특이한 맛이 났다. 그 비결은 닭의 몸통에 삼겹살을 감는 것이었다. 삼겹살은 일종의 트랜스지방 같은 역할을 한다. 튀기듯 구우면 그 진가가 발휘된다. 재료가 바삭바삭해지는 것이다.

미국식 패스트푸드인 감자튀김 맛의 비결이 바로 소기름이었듯이 말이다. 할머니가 굽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닭을 넓은 팬에 한 번 지지고 난 후 삼겹살을 돌려 감았다. 중간에 오븐에서 꺼내서 바닥에 고인 삼겹살 기름을 닭에 여러 번 끼얹어줬다. 투명한 돼지기름이 지글지글거리면서 맛있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돼지기름, 특히 삼겹살과 베이컨 기름은 아주 소중한 요리 재료다. 우리는 기름이라면 끔찍해 하지만, 사실 동물성 기름을 어지간히 먹고 있다. 자, 친구들과 삼겹살집에 갔다 치자. 고기를 구워 잘 먹었다. 이때 불판에 홈을 만들고 흐르는 기름을 받게 된다. 언젠가 그 기름을 맥주잔에 부어서 양을 측정해 봤다.

3인분을 구웠더니 대략 맥주잔 하나가 가득 찼다. 바싹 구우면 더 많은 기름이 나오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버리는 기름에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한 셈이 된다. 대신, 몸에 나쁜 기름은 먹지 않았다고? 적당히 구운 삼겹살은 여전히 많은 양의 기름을 포함하고 있다. 삼겹살을 꼭 구워 먹으란 법도 없다. 김치찌개에 넣기도 한다. 이때 기름은 고스란히 우리 입에 들어간다.

스테이크는 또 어떤가? 마블링이란 결국 기름이다. 돼지기름보다 더 나쁘다고 하는 소기름이다. 이 경우는 기름기가 보이지 않으므로 훨씬 심리적으로 안정된다. 소시지나 햄도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동물성 지방을 꽤 많이 포함한다. 결국 우리의 시각적 반응이 지나치게 민감하다고 할 수 있다. 적당히 동물성 기름을 먹되, 운동을 하는 게 ‘미식’ 생활에 더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돼지기름은 미식의 중요한 배경

어렸을 때 어머니가 시키는 심부름은 아주 다양했다. 산에 가서 땔감을 한 짐 해오라고 시키지는 않았지만, 별별 심부름이 다 있었다. 그중에는 비계 심부름도 있었다. 그게 참 어린 마음에도 어색했다. 고깃간에 가면, 아저씨가 반색하며 맞아주는데 “저, 비계 50원어치만 주세요” 하면 안색이 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분명히 냉장고에 있던 걸 잘라줬을 텐데, 내 기억에 그 비계는 따뜻했다.

비계를 둘둘 만 신문지―그 시절에는 비닐봉투가 아주 귀했다―를 들고 가면, 이상하게 돼지의 체온 같은, 온기가 있었다고 기억된다. 그 물성(物性)은 정말 기분이 나빴다. 물컹물컹, 거기에다 손에 기름기가 배어 나왔다. 돼지기름은 보통 체온 정도에서 조금씩 녹는다. 낮은 온도에서 잘 녹을수록 좋은 비계라고 할 수 있다. 하얀 돼지보다 버크셔 계열의 흑돼지 비계가 더 낮은 온도에서 녹기 때문에 몸에 더 좋다는 말도 있다.

집에 와서 비계를 묻은 신문지를 떼어내자면 이게 골칫거리였다. 기름을 먹어서 신문지에서 잉크 냄새가 났고, 젖었으니 살살 떼어내지 않으면 비계가 달라붙어 곤욕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산 비계는 요긴하게 썼다. 어머니는 비계를 자주 쓰는 편은 아니었다. 대개 기름장수가 이고 온 낙화생(땅콩)이나 들기름을 식용유로 썼다. 친구 집에서는 비계로 못하는 게 없었다. ‘도나쓰’도 튀겨서 설탕을 술술 뿌려 먹었고, 부침개에도 비계를 썼다.

아버지가 타이완 사람인 화교 친구가 있었는데, 녀석의 집은 아주 비계로 잔치를 했다. 만두 빚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보통 재료가 반, 비계가 반이었다. 만두를 얻어먹을 때, 이게 아주 곤란했다. 멋모르고 씹을 때 비계 녹은 기름이 찍 흘러서 입가를 타고 옷에 질질 흘러내리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 만두 하나는 정말 맛있었다. 녀석은 중학생이 될 무렵, 타이완으로 이주했다. 지금 뭘 하고 살까 궁금해진다. 이름이 ‘찐두’였고 얼굴 한쪽에 자주색 반점이 커다랗게 있는 녀석이었는데.

비계를 녹일 때 나는 냄새는 식용유는 상대가 안 된다. 옆집에 음식 한다고 광고를 한다. 그래서 오두막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서울 변두리에서 음식을 혼자 해서 먹을 수 없었다. 비계 타는 냄새, 김치 냄새, ‘쎄멘 부로꾸(시멘트 블록)’로 쌓아올린 낮은 담벼락과 골목길이 눈에 선하다. 그렇게 비계 냄새는 시절과 함께 사라졌다.

식용유라는 이름의 수입 콩기름이 시장을 장악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1970년대 초반 콩기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해표식용유’는 진입 장벽에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엔 콩기름이란 장판에 발라서 윤을 내는 기름이라는 인식이 컸다. 그런 기름을 먹으라고 했으니 반발이 컸다.

그래서 영업사원들이 골목을 돌며 공짜로 물건을 뿌리고, 여자 중·고교 가사 실습장에도 기름을 제공했다. 이런 노력으로 1978년부터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기름이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고 오래된 신문기사에 거론되고 있다. 식물성 기름은 건강하고, 돼지기름은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이 한몫을 했다.

삼양라면의 우지파동이 그런 오해에 영향을 끼쳤다. 알다시피, 삼양라면이 공업용 우지(소기름)로 라면을 튀겼다고 해서 발칵 뒤집힌 사건이다. 나중에서야 사실과 다르다고 밝혀졌지만, 삼양라면은 상당한 곤란을 겪었다. 이 사건은 현재도 검찰의 무리한 기소, 언론의 확인하지 않고 보도하는 행태를 비판할 때 자주 거론될 정도로 유명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돈가스는 오스트리아 ‘슈니첼’, 이탈리아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제’가 원조다. 일본에서 독특하게 분화했다. 포크와 나이프 없이 젓가락으로도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썰어져 나오는 일식 돈가스(왼쪽)와 오스트리아 ‘슈니첼’.



돈가스, 일본이 탄생시킨 근대의 산물

우리 민족은 돼지를 즐겨 먹었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 사육을 일찍 시작했고, 요리도 발달했다. 소와 마찬가지로 알뜰하게 먹었다. 전국에서 돼지고기를 먹었는데, 제주도 문화가 요즘 주목받고 있다. 내륙의 경우 미디어의 발달, 산업화, 이주 등으로 고유한 돼지 잡기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반면 제주도 특유의 이웃 문화는 오랫동안 돼지를 잡고, 나누는 고유한 정서를 잇고 있다.

제주도 특유의 공동체 문화 중에 ‘몸국’이 한몫을 한다. 돼지를 푹 삶고 모자반을 넣은 걸쭉한 국은 제주도민은 누구나 먹어본 음식이다. 이 국을 나눠먹는다는 건 곧 이웃임을 증명하는 행위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제주도 이마트에선 몸국을 판다는 점이다. 얼마나 이 국이 제주도에서 중요하고도 흔한 음식인지 말해준다.

제주도는 그만큼 돼지를 잡고 나누는 것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데, 제주도 출신 재일동포들은 일본에 건너가서도 그 문화를 지켰다고 한다. 자이니치(在日)의 극적인 삶, 김준평이라는 극도의 가부장을 통해 전후 재일동포의 삶을 조망한 걸작 <피와 뼈>(양석일의 소설로 최양일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기타노 다케시가 주인공 김준평 역을 맡았다)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제주도 출신의 주인공 김준평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이 돼지를 잡는 장면이 나온다. 고기를 거의 먹지 않는 일본인에게 우리의 고기 먹는 문화가 크게 영향을 끼쳤다. 서양은 스테이크와 돈가스, 우리는 야키니쿠 불고기와 내장, 돼지고기 먹는 법을 알려준 셈이다.

돈가스는 정말 특이한 음식이다. 원래 ‘슈니첼’이라고 하는 오스트리아 요리이면서 동시에 이탈리아에선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제’라고 부르는, 빵가루 입혀 기름이나 버터에 지지는 음식이다. 이것이 일본에 건너가서 독특한 형태로 분화한다. 일제 식민지 시절에 우리나라에도 전래돼 한국에서 경양식 문화를 오랫동안 이어가게 만들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선 ‘A4 돈가스’라고 해, 돼지 등심을 두들기거나 칼로 펴서 넓게 만들어 지진 것이 유행한다. 이것은 유럽식 돼지 커틀릿(돈가스라는 이름에서 ‘가스’가 바로 커틀릿의 일본식 발음 가스레토에서 온 것이다)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것이다. 김치와 쌈장, 청양고추 ‘콤보’를 반찬으로 제공하는 전형적인 한국식으로 바뀐 것이다.

돈가스는 일본이 탄생시킨 근대의 산물이다. 돈가스의 역사만 추적해도 일본의 식문화와 근대 역사를 알 수 있을 정도라는 말도 있다. 알다시피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7세기 덴무천황이 도살을 금지한 후 일본은 육식의 청정지대에 가까웠다. 새나 멧돼지 등을 안 먹은 것은 아니겠지만 소나 돼지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육식이 금지됐으니 유신 이후 고기를 ‘장려’하는 정책은 생경할 뿐이었다. 심지어 육식 개방 한 달 후인 1872년, 자객 10명이 천황의 거처에 난입해 4명이 사살되고 6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놀라운 건 그들의 진술서 내용이었다.

“이방인이 들어와 육식을 한 후 일본이 더러워지고 있다. 이를 바로잡고…”(오카다 데쓰, <돈가스의 탄생>, 뿌리와 이파리 간) 유럽 못지않게 스테이크를 먹고, 돈가스의 천국이 된 현재의 일본이 불과 150여 년 전에 이런 판국이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돈가스가 육식 개방 이후에 곧바로 일본 민중의 사랑을 받은 건 아니었다. 현재와 같은 돈가스가 생겨난 건 60여 년이 흐른 후의 일이라고 한다.

처음 돈가스 스타일의 고기 요리가 유럽에서 전래됐을 때는 슈니첼과 흡사했다. 즉, 돈가스의 ‘시조’인 바로 그 요리다. 일본은 어떻게 슈니첼 같은 커틀릿을 돈가스로 만들어 먹게 됐을까? 커틀릿이 소개되자, 일본인의 반응은 냉담했다. 거의 먹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고기는 피를 더럽히고 신앙에 위배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차츰 고기를 먹어가던 중, 돈가스는 일본화의 길을 걷는다. 즉, 포크와 나이프라는 생소한 기물 대신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도록 개량됐다.

그래서 일본식 돈가스는 미리 잘라서 젓가락으로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게 접시에 담아 나온다. 여기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걸쭉한 그레이비 풍의 소스 대신 간장 소스를 뿌렸고, 그것도 일본인이 좋아하는 채소(양배추)를 가늘게 썰어서 그 위에 뿌렸다. 그뿐이랴. 결정적인 일본 돈가스만의 특징이 나온다. 바로 꿩 대신 닭, 아니 빵 대신 밥이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시작돼 한국으로 전래된 경양식집은 “빵으로 하시겠습니까, 밥으로 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던 것이다.


▎소금과 자연으로 완성된 햄은 돼지고기 맛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스페인의 대표 먹거리, 전통 발효 햄 ‘하몽’을 파는 가게.
햄의 등장으로 돼지고기 대량소비


▎이탈리아 사람들이 즐겨먹는 돼지고기햄 프로슈토. 돼지 엉덩이살로만 만드는 게 원칙이다.
보통 우리는 돼지의 여러 부위를 모아 만들어 굳힌 것을 ‘햄’이라고 한다. 스테이크나 덩어리로 쓰기 힘든 부위나, 질겨서 그대로 먹기에 적당하지 않은 부위를 섞은 것을 말한다.

더 맛을 좋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첨가물을 섞어서 만든 것을 지칭하기도 한다. 산업사회에 들어서면서 보존기술이 좋아지고, 첨가물이 발달하면서 육류의 대량소비 사회가 되자 육류가공회사에서 개발해낸 식품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햄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유명한 스팸이 들어간다. 그런데 원래 햄이란 오직 돼지의 엉덩이를 뜻한다. 바로 스페인의 하몽, 프랑스의 바이욘, 이탈리아의 프로슈토가 그것이다. 여러 잡부위(심지어 돼지 말고 다른 고기를 섞기도 하며 밀가루를 넣기도 한다)로 만든 공장 햄의 포장지를 보면, 10가지가 넘는 첨가물이 들어간다. 그런데 오리지널 햄을 보면 아주 간단하다.

“salt, meat.” 아, 이 얼마나 간단한 조리법인가. 그런데 거기에 덧붙인다면 나는 ‘자연’을 들겠다. 소금 친 돼지 뒷다리 엉덩이를 맛있게 만들어주는 건 바로 자연이다. 소금 친 돼지고기는 조건이 맞으면 발효한다. 김치가 익는 것과 같은 이치다. 김치도 천연 재료 외에는 오직 자연에 기대는 것처럼 말이다.

이탈리아 중북부 포(Po) 강 유역에서 유명한 파르마 프로슈토를 만드는 마을에서는 이런 얘기가 떠돈다. 홍수로 강이 범람할 때 대피 순서다. “프로슈토 먼저! 어린이, 여자, 그리고 남자들.”

요즘 한국 미식가들 사이에서 인기인 하몽(이베리코)은 떡갈나무숲에서 도토리만 주워 먹으며 자란 것이 최고다. 18개월 이상 도토리만 먹이는 것도 있다. 더 비싸고 맛있다. 하몽을 잘 저미는 일은 웨이터의 의무다. 가는 칼로 하몽을 써는 건, 예술적 성취다. 다리 안에서도 근육의 결과 경도, 맛이 다르기 때문에 하몽을 자르는 일은 프로의 솜씨로 다루는 일이다. 하몽은 요새 부쩍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스패니시 타파스의 핵심이다. 하몽 없는 타파스는 상상도 할 수 없다.

하몽을 만드는 건 하나의 세계를 결정하는 일이다. 겨울에 염장을 시작해서 기온이 12℃ 정도 되는 봄에 건조를 시작한다. 습도 80%. 돌벽으로 지은 지하창고에서 하몽은 익어간다. 그렇게 24~36개월의 세월의 세례를 받아 더 익어간다. 처음 소금을 뿌린 후 그것으로 완성된 맛. 아무것도 양념하지 않은, 그 스스로 순결한 존재로 익은 하몽의 맛이다.

201401호 (20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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