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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듣말 5학년 1학기 93쪽 한지에 대하여,,
dptb**** 조회수 4,232 작성일2013.05.29
 듣말 5학년 1학기 93쪽 제가 한지에 대해서 한다고 했는데 한지에 대한 소개 한지의 유래 한지만드는 법 한지의 장점 이 4가지를 알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이거 내일 까지에요!!내공 40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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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법이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의 372년에 불교의 전래와 함께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닥종이 뭉치 등으로 미루어 보아 종이의 역사는 1500~160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종이의 역사는 인류문명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아직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지만 종이는 대략 서기전2세기경에 중국에서 발명되었다. 발명 초기에는 폐마를 원료로 사용했으나 한의 채륜이 A.D 105년에 생인피섬유를 사용하여 종이를 제조하는 방법으로 개량한 후 널리 전파되었다.

 

제지법이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의 372년에 불교의 전래와 함께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닥종이 뭉치 등으로 미루어 보아 종이의 역사는 1500~160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이는 신라시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으로 751년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770년의 일본 백만 다라니 868년의 중국 돈황천불동 보다 우리가 앞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전통한지 생산에 대한 관심도를 보면 고려 인종 23년에 왕명으로 닥나무 심기를 권장하였고 명종 19년에는 이를 법제화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세조 12년에 조지서(造紙署)를 설립하여 종이 생산에 힘을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확히 조지서(造紙署)는 태종 15년(1415)에 처음 조지소(組紙所)로 출발하여 세조 11년(1465)에 조지서(造紙署)로 개칭되었다. 이 시기 조선은 인쇄술의 발달과 향교, 서원, 서당 등의 설치로 서책류의 수요와 보급이 활발하게 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와서 한지 생산이 침체의 국면을 맞게 된다. 그것은 양란으로 인한 제지 시설의 파손과 지장(紙匠)들의 분산이 제지생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때 제지수공업은 조지서(造紙署)와 자급자족에 그치던 사찰에서 그 맥락을 유지하여 왔지만 지나친 조공지의 보충과 과도한 지역(地役)은 지장(紙匠)의 생산의욕을 침체시켜 한지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게 하였다. 마침내 조공 19년(1882)에는 조선 태종 15년 (1415)에 관설 제지소로 출발한 조지소를 형식적이나마 조선후기까지 그맥을 이어오다가 400여년만에 페지되었다.

 

조선시대 한지제조업은 국가의 기간산업으로서 다른 수공업분야 중에서도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개화기 이래 서양의 양지(洋紙)제지술이 도입되고부터 수요의 감소, 그에 따른 기술의 낙후성, 자본의 영세성으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었으나 근자에 와서는 옛것을 되찾자는 기운이 팽배해가면서 새로운 기술의 개발과 함께 전통적인 한지 제조법을 익히려는 사람의 수도 늘어나는 한편, 서예나 닥종이 공예에 뜻을 두는 전통문화애호 인구가 확대되어 한지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지(韓紙)의 전래과정

 

3~4세기경 도입된 것으로 추정...제지술 보다 앞서 전파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종이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는가는 아직 정확히 확인된 바 없지만 고대에 이미 종이가 만들어져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제지술을 도입하여 이를 더욱 발전시켰고, 그 품질 또한 매우 우수하였다. 현존하는 최고의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증거라 하겠다.

 

종이는 크게 수초지와 기계지로 나뉜다. 수초지는 손으로 만든 종이를 말하는 것으로, 중국의 화지(華紙), 일본의 화지(和紙)와 대비하여 우리나라 수초지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 종이의 기원과 전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3세기설, 4~5세기설, 6~7세기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3세설은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대로 중국에서는 종이가 이미 다른 서사재료를 대처했던 284년에 백제의 아직기(阿直岐)가 일본에 전했다고 하는 [천자문]과 [논어]등이 종이 서적일 가능성이 매우 큰 점이다. 왕인이 천자문을 전한 것이 채륜의 제지술 발명보다 180년이 경과한 후라고 본다면 서기 200년대 후반에는 제지술이 우리 나라에 보급되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4~5세기설은 중국에서 384년 백제에 불교를 전파하였는데 이때 많은 책과 제지술도 함께 전해졌다고 보는 것이다. 한반도의 제지술은 불교의 전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외국 학자들이 설을 지지하고 있다. 6~7세기설은 610년에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일본에 채색, 종이, 먹, 맷돌, 등의 만드는 방법을 전해주었다는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이다. 담징이 종이와 함께 일본에 전했다고 하는 맷돌은 종이 제조도구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제지에도 맷돌을 사용하였을 것이고, 이것은 우리 나라 제지법이 중국의 종이 기술과 동일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해준다. 이점은 715년 전후가 우리나라 한지(韓紙)와 중국의 화지(華紙)가 구별되는 시기라는 점도 시사한다. 우리 나라에 현존하는 8세기 이후의 종이는 중국처럼 섬유를 잘게 갈아서 만든 종이가 아니고 두들겨서 종이를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미루어 보아 7세기 이전에 이미 상당한 기술의 축척이 이루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경우든 대부분의 학자들이 종이가 제지술보다 일찍 전해졌을 것이라는데 동의하고, 그 시기를 3~4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한지의 전래과정을 정리하면

[채후지→한지→서기 610년 고구려 영양왕 21년 담징이 일본에 제지술을 전파]

이다.

 

 

2)한지의 특징

 

한지의 특징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한지의 우수성은 다음과 같다.

 

  • 닥나무 자체로 제작되므로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 여러 겹으로 배접 하므로 견고하고 단단하다.
  • 다양한 색지가 있어 개성 있는 작품을 완성할 수가 있다.
  • 재료구입이 용이하고 경제적 부담이 적다.
  • 장식성과 실용성이 뛰어나다.
  • 가볍고 운반이 용이하다.
  • 외국인들에게 우리 전통공예품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다.
  • 상품제작이 가능하다.

 

이렇게 한지의 우수한 성질을 간추려 내어 뽑아볼 수 있다. 한지의 우수성은 비단 위의 내용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옛 역사의 기록에서도 한지의 우수한 성질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종이의 명성은 조선으로 이어져 한지가 중국과의 외교에 필수품으로 여겨졌고 중국 역대 제왕의 전적을 기록하는 데에 고려 종이만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지의 질이 명주와 같이 정밀해서 중국인들은 이것을 비단 섬유로 만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한지는 중국과의 외교에서 조공품으로 많이 강요되었다. 한지의 강한 특성은 한지를 몇 겹으로 바른 갑옷의 예에서도 볼 수 있다.

 

옻칠을 입힌 몇 겹의 한지로 만든 갑옷은 화살도 뚫지 못했다고 한다.

 

 

3)한지를 만드는법

 

한지 제작과정

 

한지를 만드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한지를 백지라고도 하였는데 그만큼 손이 많이 가는 것이라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닥(Paper Mulberry)                     닥풀(Abelmosk)

 

 

■ 만화로 보는 한지 제작과정

 

1.닥나무 채취2.닥나무 껍질벗기기3.닥나무 껍질 삶기4.닥나무 껍질 씻기
5.닥나무 껍질 두드리기6.닥나무껍질에 닥풀풀기7.한지뜨기8.한지말리기



1. 닥삶기

 

흑피와 청피를 제거한 백피를 맑은 물에서 하루 정도 잘 불린 후 잿물에 넣어 4~5시간 푹 삶는다. 잿물은 주로 콩대, 메밀대, 짚 등을 태운 재를 따뜻한 물에 우려 걸러서 사용한다. 잿물을 내릴 때는 밑에 구망을 낸 항아리 안에 나무와 망을 걸쳐놓고 재를 넣은 뒤 40~50도의 따뜻한 물을 부어 잿물을 내리며 이때 구멍 앞에 망을쳐서 불순물을 걸러 내어 쓴다. 이 알칼리성 잿물로 인해 한지를 PH9.5정도의 약알칼리성을 띠게 되는데 이러한 화학적 성질은 종이의 산화를 방지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2. 씻기 및 쐬우기(일광표백)

 

잘 삶아진 닥은 7~8시간 정도 솥에서 뜸을 들인 후 흐르는 맑은 물에 3~4일 정도 담가둔다. 이때 줄낫 등으로 잘 추스려주면 좋다. 이 과정에서 섬유질 이외에 당분, 회분, 기름기 등을 다시 한번 없애준다. 특히 물속에 담그고 햇볕을 쐬우는 경우는 흐르는 물속에 백피를 펼쳐놓고 원료 전체에 햇볕이 골고루 내려 쬐도록 자주 고르게 섞어 뒤집어 주면 백피가 더욱 하얗게 된다. 이 과정은 물속에서 햇빛의 작용으로 오존, 과산화수소가 발생하여 산화 표백하는 것으로 날씨에 영향을 받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지만 섬유가 손상받지 않는 다는 장점이 있다.
씻기와 햇볕 쐬우기는 주로 물의 온도가 낮은 겨울에 이루어 진다.

 

3. 티고르기

 

원료를 두드리기 전에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표피에 남아 있는 티를 일일이 골라 제거한다. 표백약품을 이용하여 티를 제거할 수 있으나 표백약품 사용이 섬유에 손상을 입히므로 전통한지 제조시에는 반드시 티를 제거하는 작업을 거친다. 하루종일 티를 골라내더라도 얻을 수 있는 깨끗한 닥의 양은 얼마되지 않으므로 이과정에 시간과 인력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 영세한 한지공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이런 투자가 어렵기 때문에 닥을 삶을 때 가성소다를 넣어 잡티를 표백해 버리는 방법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만든 종이는 강하고 질긴 한지 특유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게 된다.

 

4. 두드리기

 

원료를 평평한 돌 위에 올려놓고 나무 방망이로 2~3시간 두드려 섬유가 풀어지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한지와 서양지의 차이가 있다. 서양지에는 아마(亞麻)섬유가 많이 사용되는데 이것은 2~3일 밤낮으로 두드리지 않으면 섬유가 풀어지지 않는다. 이 공정에서 섬유가 많이 손상되고 섬유사이의 접척력도 닥종이에 비해 떨어지게 된다. 닥섬유는 물에 젖으면 유연성이 커지고 섬유 혹은 종이끼리의 접착력이 우수해 다른 종류의 종이와도 잘 접착한다. 한편 좀 더 고급한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리 하는 과정에서 섬유를 조금씩 물에 풀어 여러번 잘 흔들어 다시 한번 더 티를 제거한다.
티 제거시 섬유의 표백도 같이 해주는데 원료를 흐르는 물에 치어망을 놓고 계속해서 풀어 나가면 섬유속에 남아 있는 잿물성분과 리그닌이 서서히 제거되어 발색이 더욱더 희게 된다. 이런 과정을 2~3회 반복한다.

두드리기 - 고해 (叩解 )

 

씻기와 햇볕 쐬우기 등의 과정을 마친 백피를 닥돌 위에 올려놓고 닥방망이로 40~60분 정도 두들겨서 닥섬유를 찧는다.
두들기는 시간은 지종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짓쪄진 섬유의 부피가 처음 백피량의 2배 정도로 늘어나고 섬유가 튀어나갈 정도에 이르면 이 과정은 끝난다.
두드리는 판은 돌판이나 나무판을 사용하는데 돌판의 경우는 평활한 판위에 원료를 늘어 놓고 닥방망이로 우에서 좌로, 좌에서 우로 가지런히 원료를 두드린다. 나무판은 보통 상당히 두꺼운 목재(느티나무, 떡갈나무 등)를 사용하고 그 위에 원료를 늘어놓고 두드린다.


 

손고해는 두들기는 작업이 상당히 힘들기 때문에 요즘은 기계로 대용시킬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 모터를 이용한 기계 고해법이다.


기계 고해기의 모양은 안쪽 아래가 평평한 절구와 원료를 두드리는 T자형 절구공이로 되어있다. 고해할 때는 절구 안에 원료를 넣고 동력을 이용해 절구공이를 순차적으로 회전시키면서 낙하시킨다.
원료는 절구공이가 1회전 하면 전체적으로 한 번 두드리도록 되어있다. 작업자는 그때 그때 주의해서 원료를 뒤집거나 섞어주어야 한다.


기계 고해는 고정된 절구공이로 두들기지만 닥나무 타해기는 절구공이가 두드리는 판 위를 좌우로 이동하면서 고해를 행하는 것으로 언뜻 보기에 손고해과 비슷한 방법이다. 절구공이의 낙하하는 상태도 손고해와 비슷하나 동일한 부위를 2~3회 두드리고 다음 부분으로 옮아갈 수 있게 만든 기구로 닥섬유 고해용으로 적당하다.

이렇게 직접 원료를 두들겨서 고해하는 것 외에 원료를 잘게 잘라서 펄프화 시키는 방법에 사용하는 것에 비다가 있다. 비다는 Hollander형(마루) 비이터와 Knife형(칼) 비이터가 있다.


홀랜더형 비이터는 서양식 초지법과 기계한지 제조에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5㎏~40㎏정도의 원료 처리가 가능한 것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나이프형 비이터는 닥나무 인피나 뽕나무 인피섬유 고해에 주로 이용된다. 회전날개를 둥근 칼모양으로 짜맞추어 장치한 것으로 하나의 장섬유에 작은 섬유가 휘감겨서 발생하는 섬유결속현상이 생기지 않아 고해에 주로 사용된다. 현재는 일반적으로 나이프형 비이터를 주로 사용하고 있는데 닥섬유는 길고 질겨서 잘 잘라지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고급지종의 고해는 닥방망이에 의해 이루어 진다.

 

닥나무 인피섬유의 고해시 닥나무 인피는 길고 견사처럼 가는 섬유이나 섬유속에는 절류가 있어서 비이터로 고해하기 어렵다. 섬유와 섬유끼리 서로 엉키어 결속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요즘엔 수타, 절구식 고해나 타해기 등으로 섬유를 해리시키든가 비이터 고해를 만든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원래 점상으로 되기 쉬운 섬유이기 때문에 과도한 고해를 하면 초지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안피고해는 삼지닥의 경우와 별로 차이가 없지만 안피지의 특성상 보통 삼지닥보다다 장시간 고해해야 한다. 그렇지만 원래 점상으로 되기 쉬운 성질이 있어 과도한 고해는 초지가 용이해지지 않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저어주기 - 해리


한편 좀 더 고급한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리 하는 과정에서 섬유를 조금씩 물에 풀어 여러번 잘 흔들어 다시 한번 더 티를 제거 한다.

 

티 제거시 섬유의 표백도 같이 해주는데 원료를 흐르는 물에 치어망을 놓고 계속해서 풀어 나가면 섬유속에 남아 있는 잿물성분과 리그닌이 서서히 제거되어 발색이 더욱더 희게 된다. 이런 과정을 2∼3회 반복한다.

 

해리후 완전히 풀린 원료에 닥풀(황촉규)수액을 넣고 섬유가 전체적으로 일정한 농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다시 잘 저어야 한다. 이와같이 다시 잘 젓는 과정을 팔개친다고 한다.

 

 

5. 뜨기와 물빼기

 

닥섬유와 닥풀을 수조에 넣고 막대기로 저어 섬유의 엉킴을 풀어준 뒤 부유하는 섬유를 발로 건져내는 것을 수초(手抄)라 하는데 수초법에는 전통기법인 흘림뜨기(외발뜨기)와 개량기법인 가둠뜨기(쌍발뜨기)가 있다. 흘림뜨기는 섬유를 자유롭게 흘려보내면서 탈수를 하기 때문에 주로 수평적인 탈수를 하는 특징이 있고 가둠뜨기는 섬유를 틀 안에 채워 수직 방향으로 탈수를 한다. 흘림뜨기로 제조한 종이는 두께가 균일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결지해 한 장의 종이를 만드는데 섬유가 대각선 방향으로 배열돼 종횡으로의 강도 차이가 적어 가둠뜨기로 만든 종이에 바해 질기다.
수초한 종이를 나무판 위에 포개어 쌓고 그 위에 나무판을 얹은 후 무거운 돌을 올려 놓거나 지렛대로 눌러 하룻밤 동안 물기를 빼준다.

종이뜨기 - 초지 (抄紙 )

 

한지는 수록이 특징이며 이 수록기술에 의해서 종이의 종류와 품질이 좌우된다.
수록지를 뜨는 방법은 대개 흘림뜨기와 가둠뜨기가 있느데 전통적인 한지의 초지법은 흘림뜨기인 외발뜨기와 장판지뜨기 이고 현재 많이 사용되고 있는 초지방법인 쌍발뜨기는 가둠뜨기와 흘림뜨기의 중간 형태를 띠고 있다.

수록 한지의 초지원리는 다음과 같다.

 섬유지료와 닥풀 또는 PAM, PEO 등의 초지용 점제를 수중에 부유시켜 초지발로 전후 좌우로 흔들면 물 때문에 탄성을 잃었던 섬유가 서로 얽히게 되는데, 이때 대부분의 물이 초지발을 통해 제거되고 섬유층은 남는다. 이 섬유층을 다른 곳으로 옮겨 압착 , 건조시키면 섬유는 탄성을 갖게되고 이것들로 지합을 형성하면 비로소 한지가 된다.

 

닥풀(황촉규 黃蜀葵)- 아욱과에 속하는 일년생 초본식물. 학명은 Hibiscus manihot L. 이다.
닥풀은 뿌리에 점액이 많기 때문에 제지용 점제로 사용하기 위하여 재배한다.
닥풀은 한지 제조에 꼭 필요한 것으로써 지통에서 지료액이 점성을 갖게하여 닥의 인피섬유 같이 긴 섬유가 침강하는 것을 방지하며, 발 위에서 물이 흐르는 속도를 조절하고 초지를 용이하게 하여 지질을 고르게 하는 작용을 한다. 또한 지상판 위에 쌓아놓은 습지가 압착한 뒤에도 붙어버리지 않고 떼어낼 때 낱장으로 잘 떨어지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원망식초지기로 얇은 종이를 뜰 때에도 이 닥풀을 사용하면 용이하게 얇고도 균일한 종이를 뜰 수 있다. 닥풀의 농도도가 약해지는 것과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철나무과인 윤여리 나뭇잎 즙을 섞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PAM (폴리아크릴산나트륨 polyacryamide) - 황촉규 점액과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으며 초지용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주로 40%이하의 점조성의 액체 혹은 겔상태의 고분자로 이것을 물에 용해시켜 사용한다.


 

PEO (폴리에칠렌옥사이드 polyethylene oxide) - 폴리에칠렌옥사이드는 평균 분자량이 200∼400미만인 고증합체로서 물에 녹기 쉽다. 동시에 다량의 분말을 물에 넣으면 덩어리를 만들기 때문에 용해시에는 소량씩 넣어가면서 용해시키는 것이 좋다. 이것은 황촉규근 점액을 이용한 초지에서 어려운 내부 사이징처리를 개선할 수 있다.


 

종이뜨는 법(초지법)

 

㉠ 전통초지법 - 외발뜨기

 

한지의 전통적인 초지방법은 외발초지이다. 이것은 먼저 고해 공정에서 피브릴화가 행해진 인피섬유를 완전히 해리한 후, 초지통에 넣고 물에 잘 분산되도록 둥근 막대기로 충분히 저어 준다.
이렇게하여 완전히 분산된 원료에 닥풀 수액을 넣고 잘 팔개쳐준다. 이렇게 마련된 닥죽을 가지고 외발을 이용하여 낱장으로 종이를 뜬다.
물질은 위로부터 하나의 끈으로 묶여있는 틀 위에 발을 놓고, “앞물”을 떠서 뒤로 버리고 “옆물”을 떠서 서로 반대되는 쪽으로 버리는 동작을 두번씩 반복하면 적당한 두께의 습지가 만들어 지는데, 두께를 조절하기 위해 습지 두장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겹쳐 1장의 종이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종이를 뜨면 질기고 강한 종이를 만들 수 있다.

 

㉡ 전통초지법 - 장판지 뜨기

장판지 뜨기는 장판지나, 과지, 왕조실록 등 크기가 큰 한지를 뜰 경우 사용하는 초지법으로 3인이 1조가 되어 물질을 한다.
2명이 발의 앞과 끝을 잡고 초지를 하는데 앞물을 뜨고 뒷물을 뜬다음 옆물을 서너번 떠서 두께를 잡으며 나머지 1명은 습지를 포개는 작업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습지를 가지고 원하는 두께에 맞게 합지를 하여 사용한다.
장판지 뜨기의 특징은 종이의 섬유조직이 완전한 #형태를 이루면서 합지(8∼10합지 정도가 장판지)가 되는 방식으로 종이의 인장 강도가 무척 강하다. 장판지의 발과 발틀의 형태는 외발과는 차이가 크며 발촉 또한 두껍게 제작되고 발 중간의 매김이 엇갈리게 이루어져 있다.
장판지 초지법은 전주, 의령, 경기 등에서 다소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는 하나 서로 흡사하며, 현재는 장판지 뜨기를 할 수 있는 지장도, 발과 발틀의 형태도 모두 사라진 상태의 초지법이다.

 

㉢ 개량초지법 -쌍발뜨기

 

쌍발뜨기는 일본으로부터 들어와서 1900년경부터 전주를 중심으로 전파된 초지 방법이다.
이것은 먼저 지통에 물을 넣고 지료를 부유시킨 후 초지용 점제인 황촉규를 넣고 팔개친 다음 초지발을 지통에 담그고 일정량의 지료 혼합물을 건져서 초지발 표면에 고르게 퍼지도록 한다. 이때 티고르기를 한번 더 시행한다. 이것은 첫물뜨기로 형성된 지층의 티는 마무리 과정에서 티고르기를 시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다음 초지발을 지통에 다시 담궈 지료 혼합물이 고르게 덥히도록 전후, 좌우로 휘저으며 흔든다. 이것을 앞물치기, 옆물치기라고 한다. 특수한 경우는 좌우로만 흔들어 줄 때도 있다. 초지발에 담긴 물을 빼면서 초과된 지료를 덜어내고 다시 초지발을 담그어 앞물치기와 옆물치기를 하면 초지발 위에 얇은 종이 결정막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을 물질이라고 하는데 물질은 5~6회 정도가 적당하다.

 

쌍발뜨기는 발의 형태가 보이게 뜨는 방식과 보이지 않게 뜨는 방식 두가지가 있다.
쌍발뜨기는 가둠뜨기와 흘림뜨기의 복합형으로서 두께가 일정하고 표면이 고른 종이를 뜰 수 있다는 점과 외발뜨기로 종이 1장을 뜰 때 쌍발뜨기로 하면 4장을 뜰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외발뜨기에 비해 종이가 질기거나 강하지 못한 단점이 있다.

 

물빼기 - 짐짜기, 압착탈수 (壓搾脫水)

 

 

한지의 물빼기 방법은 쌓아놓은 습지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아 압착 및 탈수가 일어나게 하였다. 널판지 위에 먼저 작은 통대로 엮은 발을 깔고 나서 그 위에 종이를 뜬 초지발을 뒤집어 놓고 궁글통를을 굴려 물기를 빼고 습지를 판자 위에 주름이 잡히지 않도록 놓는다.
둥글레질을 할 경우에는 발의 형태가 선명하게 나타나고 둥그레질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발의 형태가 잘보이지 않거나 나타나지 않는다. 둥그레질을 한후 천천히 발을 들어내면 종이만 남게된다.
종이를 쌓을 때는 습지 상태의 종이를 가지고 500~600장 정도로 지층을 만드는데 습지를 한장씩 한장씩 포갤 때는 종이 사이에 왕골로 된 벼개를 끼워 나중에 종이를 떼어 내기 좋게 하여 여러겹으로 쌓아놓는다.
옛날에는 커다란 돌을 이용하여 탈 수했으나 오늘날 사용되는 것은 잭 및 전동식을 사용하여 압착한다.
건조할 때 종이가 한 장 한 장 잘 일어 나도록 하려면 이 짐짜기를 잘하여야 한다. 오랜시간 서서히 그리고 완전히 물을 빼야 종이를 떼어낼때 잘 일어난다.

 

벼게-습지를 하나하나 떼어내어 건조하려할 때 습지를 떼어내기 쉽게하기위하여 종이의 가장자리에 올려놓는 것으로 종이가 베고 있는 것이라 하여 베개라한다.
옛날에는 왕골을 이용했으나 요즘은 나일론 줄을 이용한다.

벼게놓기

 

6. 말리기(건조)

 

한지의 전통적인 건조법은 습지를 온돌방 방바닥에 펴서 비로 쓸어 가면서 말리거나, 아니면 벽에다 부쳐서 말리거나 나무판에 붙여서 일광건조를 시켰다. 비가 올 때는 장판이나 흙벽에 붙여서 건조시키기도 했는데 현재는 철판에 열을 가해 건조시키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철분 오염의 우려가 있고 건조 온도가 높아 빨리 건조되므로 목판건조에 비해 신축률이 떨어지며 수분함량이 낮아 종이가 딱딱해 진다. 또한 건조시에 베어나오는 철판의 녹 때문에 종이 산화 촉진의 원인이 된다.

 

7. 다듬이질(도침질)

 

디딜방아 모양의 도침기에 덜 마른 한지를 여러 겹 포개놓고 계속해서 두드리면 치밀하고 매끈한 종이를 얻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도침질을 하지 않은 종이의 1/2~1/3정도로 두께가 줄어드는데 자연 사이징(Sizing)효과를 얻을 수 있어 먹의 번짐을 조절하기가 쉬워진다. 그러나 최근에는 도침을 실시하는 곳이 드물다. 도침을 하지 않은 닥종이의 먹의 발색이나 발묵이 좋지 않아 작품의 재료로 꺼려지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4)한지의 유래

 

한지(韓紙)의 유래

 

고려때의 스님 ‘설(薛)’씨의 이야기는 한지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흥미롭게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만들어진지 200여년이 지난 후라 한지의 기원에 대해 정확히 말해 준다고 볼 수는 없다.

 

종이의 기원도 불확실하고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믿을 만한 이야기가 발견되지 않아 우수한 우리의 종이문화에 대한 자세한 유래를 찾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는 3대 종이 고장이 있는데 경상도의 경주와 의령, 전라도의 전주가 그곳이다, 이중 경상도 의령에는 옛날부터 전하는 종이 설화가 있다.

 

고려 때는 스님 ‘설(薛)’씨의 이야기가 이것인데, 이것은 한지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흥미롭게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이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만들어진지 200여년이 지난 후라 한지의 시작에 대한 재미있는 설화로 남을 것이다.

 

의령은 종이로 유명하였다. 이는 [의춘지(宜春誌)]나 옛날 기록인 [교남지(嶠南誌)]를 통해 알 수 있다. 즉 위령의 토산물에 대해서 백화사(白花蛇), 봉밀(蜂蜜), 매실(梅實), 은구어(銀口魚), 대나무, 토란, 석류(石榴), 감나무, 즉어, 적복령(赤茯?), 백복령(白茯笭), 구기자(拘杞子)...등등 33가지를 소개하면서, 그중 10번째로 종이를 적고 있다. 그러나 설(薛)씨에 대한 문헌적 고증 자료는 없고 다만 구전으로 전해오는 것이 있을 뿐이다. 이 구전내용이 향우지인 [의령향우]에는 “1,000년 전 고려 때 의령군 봉수면 서암리에 국사봉 중턱에 약 20년 전까지 터가 있었다는 대동사의 주지 ‘설(薛)’씨가 어느 봄날 닥나무 껍질을 흐르는 냇물에 담가 두더니 껍질이 물에 풀리면서 삼베올처럼 섬유질이 생기는 것을 발견하여 이를 손으로 주물러서 바위 위에 건져 놓았더니 종이와 같은 물체가 만들어져, 이것을 계속하여 종이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5)한지를 잘 쓰는법

 

창호지로 사용

 

한지의 우수성은 창문용으로 사용되는 창호지의 열적 성능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옥에서 사용하는 창호지와 현대 기술의 산물인 창유리와의 역적 성능을 비교하니 에너지 파동이래 많은 건물에서 사용되고 있는 값비싼 이중 창문(피어글라스)보다 한지(창호지)를 사용한 이중 창호지 문의 열적 효과가 높았다.

 

 

창호지의 가장 큰 장점은 현대 문명 기술이 만들어 낸 어떤 종류의 창문 재료보다 실용성이 높다는 점이다. 창호지는 눈에 안 보이는 무수한 구멍이 있어 방문에 발라두면 환기는 물론, 방안의 온도와 습도까지 자연적으로 조절된다.

 

온돌에 장판을 발라 생활했던 우리의 주생활은 방안에 습기가 많은 것이 문제점이었으니 이습기를 창호지로 자연 배출되도록 유도해 쾌적한 생활 공간이 되도록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습기가 많으면 그것을 빨아들여 공기를 건조하게 하고 공기가 건조하면 습기를 내뿜어 알맞은 습도를 유지하게 하는 신축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창호지를 ‘살아 있는 종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창호지가 자연 현상에 이처럼 순응하는 성질은 모두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방한 재료로 이용

 

날씨가 추워지면 과거 우리 선비들은 앍고 난 책들을 모아 함경도나 평안도 지방의 변방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보내주는게 관례였다.

 

그책장을 뜯어 속옷을 지어 입거나 솜 대신 옷 속에 누벼서 조금이나마 추위를 면해보라는 우리 선비들의 갸륵한 온정이 책 선물 이였던 것이다.

 

섬유가 귀하던 시정에는 이종이 옷을 변방의 숫자리 병졸들이 방한복 대용으로 입었다 해서 주지의(收紙衣)라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조선의 19대 임금인 숙정9년에는 양반들이 종이신 신는 것을 멋으로 알고 시중에 신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이를 만들어 파는 자들이 많았고 사대부 집들에는 서책 도독이 극성이라 하니 철저히 단속하라는 어명이 내려졌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종이신은 미투리 또는 지혜(紙鞋)라 하여 책종이를 갸름하게 자른 다음 노끈으로 꼬아 만들었는데 당시 장안의 최고 멋쟁이로 통하던 양반들에게 인기를 끌만큼 그 맵시가 으뜸이었다. 한지처럼 우리 조상들의 멋과 지혜, 생활의 정서가 듬뿍 배인 물건도 드물 터이다.

 

 

문방사우 및  공예품에 사용

 

우리네 선비들이 ‘문방사우’라 하여 정신적 영물 대접을 해주던 문필의 용도에서부터 부채, 베개, 동고리, 모자, 반닫이, 우산, 요강 등의 생활용품이나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한지는 예로부터 우리민족 생활사에 없어서는 안될 최고의 장식품이자 생활용품이었다. 특히 아무리 짧게 잘라 보아도 똑같은 곳이 한군데도 없이 각각의 결이 살아 숨쉬는 듯한 닥나무의 질감에 식물의 뿌리, 잎, 줄기 등에서 얻어진 천연염료로 때깔을 입혀 만든 수공예품을 감상하노라 면 우리옛 선조들의 혼과 얼이 그 안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우리가 TV사극에서 자주 보게되는 장면 중에 양반들의 밤 나들이 안내하는 하인들이 손잡이가 달리 동그란 모양의 등을 들고 밤길을 비추는 장면이 있다.

이때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조족등(照足燈)이라는 등으로 대나무와 한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조족등은 사방 어느곳으로 비추어도 그 안에 있는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제작되었으며 농암에 민감하게 반은하여 한지의 특성과 맞물려 어두운 밤길의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이처럼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 이용될 수 있는 한지의 유수성은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정평이 나 잇다.

 

흔히 가죽처럼 질기다 해서 등피지(等皮紙)라고도 했던 우리 나라 전통한지는 종이의 종주국인 중국인들조차도 감히 그 품질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이다. 더욱이 요즘도 북경의 상류사회에서는 우리 나라 전통한지로 방벽을 바로 사는 대관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또한 과거 고려나 조선시대 사신들이 중국에 갈 때 가장 대접받는 선물로 청심환과 함께 한지를 가져갔다는 이야기가 지록으로 전해지고 있을 정도이다. 우리 나라의 종이 문화는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후 2천년 가까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종이 생산국으로서의 명성을 떨쳐왔다, 그러나 외래문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전통 한지는 점차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고 그 자리를 서양종이가 차지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서양종이라는 ‘물건’을 취하게 됨으로써 우리한지의 ‘스밈과 여백의 문화’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한지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오래가는 중성지인 이유?

 

닥나무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관목으로 한지를 만드는데 1년생 가지가 좋은데 길이는 2~3m정도이다. 같은 종류의 닥나무라도 기후, 토질에 따라 섬유의 폭, 길이 등이 달라져 품질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닥풀(황촉규:Hibiscue mamihot.L)은 아욱과에 속하는 1년생 초본식물이다. 닥풀은 뿌리에 점액이 많기 때문에 종이만들 때 지통에서 섬유가 빨리 가라앉지 않고 물속에 고루 퍼지게 하여 종이를 뜰 때 섬유의 접착이 잘 되도록 한다. 또한 발에서 물 빠지는 속도를 조절하여 물지를 쉽게하여 종이의 질을 고르게 하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닥풀의 농도가 낮으면 종이를 뜰 때 물빠짐이 빨라 두꺼운 종이가 만들어지고 농도가 높으면 물빠짐이 나빠 얇은 종이가 된다.

 

우리 한지는 우리 선조들이 재료의 성질을 잘 파악하여 닥나무에 리그닌과 홀로셀룰로오즈 성분이 이상적으로 함유되어 있는 시기인 가을에 채취하여 알칼리성을 전통 잿물로 표백하고 닥풀(황촉규)을 접착제로 사용하여 만들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오래가는 중성지를 탄생시켰다. 잿물은 주성분이 산화칼륨으로 이성분의 양에 따라 잿물의 염기도가 증가되며 이밖에도 인, 산화나트륨 및 산화칼륨의 양이 많으면 약알칼리로 만든다는 것이 분석결과 나타났다. 특히 닥풀은 주성분이 당류로서 종이를 뜰 때 닥나무의 섬유 점착을 좋게 해주어 종이의 가도를 증가시키며 얇은 종이를 만드는데 유리하고 순간적인 산화가 빨라 겹친 젖은 종이가 떨어지기 쉽게 한다. 한지를 만드는 송정 또한 펄프종이보다 더 과학적이라는 사실에 우리 조상들의 과학슬기가 얼마나 우수했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쓰고 있는 종이는 로진사이즈 처리와 황산알루미늄의 사용으로 강한 산성(ph4-5.5)을 띠게 되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가수분해로 종이가 열화되어 100여년 정도 지나면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분해되고 만다. 또한 우리 고유의 방법으로 만들지 않는 한지는 비록 펄프종이의 함유성분이 우리 한지를 만드는 성분과 비슷하다고 할지라도 표백용으로 첨가되는 수산화나트륨과 차아염소산으로 인하여 산성을 띠게 되고 표백과정중에 종이의 섬유조직이 상하게 되어 보존성이 훨씬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제조과정의 차이로 우리 한지는 천년이 지나도 종이가 보존되는 반면 펄프종이는 오랜 기간의 보존이 불가능 하게 된다.

 

이러한 우리 겨레의 과학슬기가 듬뿍 담긴 전통한지의 많은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현대 제지공업과 접목한다면 새로운 용도, 즉 장판지, 도배지, 한지 장식품, 장기간의 보존을 필요로 하는 서적용은 물론이고 기계적으로 흡음성과 밀도가 뛰어나 스피커의 음향판이나 밀폐용개스킷 등 첨단 소재개발에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옛 문헌과 옛유물의 철저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대량생산을 위한 기술개발에 노력하고 한지의 우수성을 정량화하여 수출전략에 힘씀으로써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세계 만방에 떨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진정한 과학기술의 세계화라 할 것이다.

채택 부탁드려요 ㅎㅎㅎ

201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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