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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한지에 데한 것
appl**** 조회수 9,736 작성일2011.05.15

한지에 데한 숙제인데요.

도무지 찾아도 찾아도 안나오네요.

오늘안에 해야하는데 휴우ㅡㅡㅡㅡㅡ

부탁드립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질문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한지의 소개

 

2)한지의 특징

 

3)한지를 만드는법

 

4)한지의 유래

 

5)한지를 잘 쓰는법

___________________________ 끝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어떻게 되지 않을 까요??

지식인 님들을 믿습니다...

참고로 국어숙제입니다--12살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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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해랑
우주신
전통 예절, 의식 13위, 음식, 식재료 23위, 세시풍속, 명절 3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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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지의 소개

 

한지의 기원

 

제지법이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의 372년에 불교의 전래와 함께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닥종이 뭉치 등으로 미루어 보아 종이의 역사는 1500~160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종이의 역사는 인류문명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아직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지만 종이는 대략 서기전2세기경에 중국에서 발명되었다. 발명 초기에는 폐마를 원료로 사용했으나 한의 채륜이 A.D 105년에 생인피섬유를 사용하여 종이를 제조하는 방법으로 개량한 후 널리 전파되었다.

 

제지법이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의 372년에 불교의 전래와 함께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닥종이 뭉치 등으로 미루어 보아 종이의 역사는 1500~160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이는 신라시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으로 751년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770년의 일본 백만 다라니 868년의 중국 돈황천불동 보다 우리가 앞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전통한지 생산에 대한 관심도를 보면 고려 인종 23년에 왕명으로 닥나무 심기를 권장하였고 명종 19년에는 이를 법제화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세조 12년에 조지서(造紙署)를 설립하여 종이 생산에 힘을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확히 조지서(造紙署)는 태종 15년(1415)에 처음 조지소(組紙所)로 출발하여 세조 11년(1465)에 조지서(造紙署)로 개칭되었다. 이 시기 조선은 인쇄술의 발달과 향교, 서원, 서당 등의 설치로 서책류의 수요와 보급이 활발하게 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와서 한지 생산이 침체의 국면을 맞게 된다. 그것은 양란으로 인한 제지 시설의 파손과 지장(紙匠)들의 분산이 제지생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때 제지수공업은 조지서(造紙署)와 자급자족에 그치던 사찰에서 그 맥락을 유지하여 왔지만 지나친 조공지의 보충과 과도한 지역(地役)은 지장(紙匠)의 생산의욕을 침체시켜 한지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게 하였다. 마침내 조공 19년(1882)에는 조선 태종 15년 (1415)에 관설 제지소로 출발한 조지소를 형식적이나마 조선후기까지 그맥을 이어오다가 400여년만에 페지되었다.

 

조선시대 한지제조업은 국가의 기간산업으로서 다른 수공업분야 중에서도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개화기 이래 서양의 양지(洋紙)제지술이 도입되고부터 수요의 감소, 그에 따른 기술의 낙후성, 자본의 영세성으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었으나 근자에 와서는 옛것을 되찾자는 기운이 팽배해가면서 새로운 기술의 개발과 함께 전통적인 한지 제조법을 익히려는 사람의 수도 늘어나는 한편, 서예나 닥종이 공예에 뜻을 두는 전통문화애호 인구가 확대되어 한지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지(韓紙)의 전래과정

 

3~4세기경 도입된 것으로 추정...제지술 보다 앞서 전파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종이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는가는 아직 정확히 확인된 바 없지만 고대에 이미 종이가 만들어져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제지술을 도입하여 이를 더욱 발전시켰고, 그 품질 또한 매우 우수하였다. 현존하는 최고의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증거라 하겠다.

 

종이는 크게 수초지와 기계지로 나뉜다. 수초지는 손으로 만든 종이를 말하는 것으로, 중국의 화지(華紙), 일본의 화지(和紙)와 대비하여 우리나라 수초지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 종이의 기원과 전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3세기설, 4~5세기설, 6~7세기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3세설은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대로 중국에서는 종이가 이미 다른 서사재료를 대처했던 284년에 백제의 아직기(阿直岐)가 일본에 전했다고 하는 [천자문]과 [논어]등이 종이 서적일 가능성이 매우 큰 점이다. 왕인이 천자문을 전한 것이 채륜의 제지술 발명보다 180년이 경과한 후라고 본다면 서기 200년대 후반에는 제지술이 우리 나라에 보급되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4~5세기설은 중국에서 384년 백제에 불교를 전파하였는데 이때 많은 책과 제지술도 함께 전해졌다고 보는 것이다. 한반도의 제지술은 불교의 전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외국 학자들이 설을 지지하고 있다. 6~7세기설은 610년에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일본에 채색, 종이, 먹, 맷돌, 등의 만드는 방법을 전해주었다는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이다. 담징이 종이와 함께 일본에 전했다고 하는 맷돌은 종이 제조도구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제지에도 맷돌을 사용하였을 것이고, 이것은 우리 나라 제지법이 중국의 종이 기술과 동일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해준다. 이점은 715년 전후가 우리나라 한지(韓紙)와 중국의 화지(華紙)가 구별되는 시기라는 점도 시사한다. 우리 나라에 현존하는 8세기 이후의 종이는 중국처럼 섬유를 잘게 갈아서 만든 종이가 아니고 두들겨서 종이를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미루어 보아 7세기 이전에 이미 상당한 기술의 축척이 이루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경우든 대부분의 학자들이 종이가 제지술보다 일찍 전해졌을 것이라는데 동의하고, 그 시기를 3~4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한지의 전래과정을 정리하면

[채후지→한지→서기 610년 고구려 영양왕 21년 담징이 일본에 제지술을 전파]

이다.

 

 

2)한지의 특징

 

한지의 특징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한지의 우수성은 다음과 같다.

 

  • 닥나무 자체로 제작되므로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 여러 겹으로 배접 하므로 견고하고 단단하다.
  • 다양한 색지가 있어 개성 있는 작품을 완성할 수가 있다.
  • 재료구입이 용이하고 경제적 부담이 적다.
  • 장식성과 실용성이 뛰어나다.
  • 가볍고 운반이 용이하다.
  • 외국인들에게 우리 전통공예품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다.
  • 상품제작이 가능하다.

 

이렇게 한지의 우수한 성질을 간추려 내어 뽑아볼 수 있다. 한지의 우수성은 비단 위의 내용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옛 역사의 기록에서도 한지의 우수한 성질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종이의 명성은 조선으로 이어져 한지가 중국과의 외교에 필수품으로 여겨졌고 중국 역대 제왕의 전적을 기록하는 데에 고려 종이만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지의 질이 명주와 같이 정밀해서 중국인들은 이것을 비단 섬유로 만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한지는 중국과의 외교에서 조공품으로 많이 강요되었다. 한지의 강한 특성은 한지를 몇 겹으로 바른 갑옷의 예에서도 볼 수 있다.

 

옻칠을 입힌 몇 겹의 한지로 만든 갑옷은 화살도 뚫지 못했다고 한다.

 

 

3)한지를 만드는법

 

한지 제작과정

 

한지를 만드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한지를 백지라고도 하였는데 그만큼 손이 많이 가는 것이라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 만화로 보는 한지 제작과정

 

1.닥나무 채취2.닥나무 껍질벗기기3.닥나무 껍질 삶기4.닥나무 껍질 씻기
5.닥나무 껍질 두드리기6.닥나무껍질에 닥풀풀기7.한지뜨기8.한지말리기

1. 닥삶기

 

흑피와 청피를 제거한 백피를 맑은 물에서 하루 정도 잘 불린 후 잿물에 넣어 4~5시간 푹 삶는다. 잿물은 주로 콩대, 메밀대, 짚 등을 태운 재를 따뜻한 물에 우려 걸러서 사용한다. 잿물을 내릴 때는 밑에 구망을 낸 항아리 안에 나무와 망을 걸쳐놓고 재를 넣은 뒤 40~50도의 따뜻한 물을 부어 잿물을 내리며 이때 구멍 앞에 망을쳐서 불순물을 걸러 내어 쓴다. 이 알칼리성 잿물로 인해 한지를 PH9.5정도의 약알칼리성을 띠게 되는데 이러한 화학적 성질은 종이의 산화를 방지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2. 씻기 및 쐬우기(일광표백)

 

잘 삶아진 닥은 7~8시간 정도 솥에서 뜸을 들인 후 흐르는 맑은 물에 3~4일 정도 담가둔다. 이때 줄낫 등으로 잘 추스려주면 좋다. 이 과정에서 섬유질 이외에 당분, 회분, 기름기 등을 다시 한번 없애준다. 특히 물속에 담그고 햇볕을 쐬우는 경우는 흐르는 물속에 백피를 펼쳐놓고 원료 전체에 햇볕이 골고루 내려 쬐도록 자주 고르게 섞어 뒤집어 주면 백피가 더욱 하얗게 된다. 이 과정은 물속에서 햇빛의 작용으로 오존, 과산화수소가 발생하여 산화 표백하는 것으로 날씨에 영향을 받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지만 섬유가 손상받지 않는 다는 장점이 있다.
씻기와 햇볕 쐬우기는 주로 물의 온도가 낮은 겨울에 이루어 진다.

 

3. 티고르기

 

원료를 두드리기 전에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표피에 남아 있는 티를 일일이 골라 제거한다. 표백약품을 이용하여 티를 제거할 수 있으나 표백약품 사용이 섬유에 손상을 입히므로 전통한지 제조시에는 반드시 티를 제거하는 작업을 거친다. 하루종일 티를 골라내더라도 얻을 수 있는 깨끗한 닥의 양은 얼마되지 않으므로 이과정에 시간과 인력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 영세한 한지공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이런 투자가 어렵기 때문에 닥을 삶을 때 가성소다를 넣어 잡티를 표백해 버리는 방법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만든 종이는 강하고 질긴 한지 특유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게 된다.

 

4. 두드리기

 

원료를 평평한 돌 위에 올려놓고 나무 방망이로 2~3시간 두드려 섬유가 풀어지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한지와 서양지의 차이가 있다. 서양지에는 아마(亞麻)섬유가 많이 사용되는데 이것은 2~3일 밤낮으로 두드리지 않으면 섬유가 풀어지지 않는다. 이 공정에서 섬유가 많이 손상되고 섬유사이의 접척력도 닥종이에 비해 떨어지게 된다. 닥섬유는 물에 젖으면 유연성이 커지고 섬유 혹은 종이끼리의 접착력이 우수해 다른 종류의 종이와도 잘 접착한다. 한편 좀 더 고급한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리 하는 과정에서 섬유를 조금씩 물에 풀어 여러번 잘 흔들어 다시 한번 더 티를 제거한다.
티 제거시 섬유의 표백도 같이 해주는데 원료를 흐르는 물에 치어망을 놓고 계속해서 풀어 나가면 섬유속에 남아 있는 잿물성분과 리그닌이 서서히 제거되어 발색이 더욱더 희게 된다. 이런 과정을 2~3회 반복한다.

두드리기 - 고해 (叩解 )

 

저어주기 - 해리

 

5. 뜨기와 물빼기

 

닥섬유와 닥풀을 수조에 넣고 막대기로 저어 섬유의 엉킴을 풀어준 뒤 부유하는 섬유를 발로 건져내는 것을 수초(手抄)라 하는데 수초법에는 전통기법인 흘림뜨기(외발뜨기)와 개량기법인 가둠뜨기(쌍발뜨기)가 있다. 흘림뜨기는 섬유를 자유롭게 흘려보내면서 탈수를 하기 때문에 주로 수평적인 탈수를 하는 특징이 있고 가둠뜨기는 섬유를 틀 안에 채워 수직 방향으로 탈수를 한다. 흘림뜨기로 제조한 종이는 두께가 균일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결지해 한 장의 종이를 만드는데 섬유가 대각선 방향으로 배열돼 종횡으로의 강도 차이가 적어 가둠뜨기로 만든 종이에 바해 질기다.
수초한 종이를 나무판 위에 포개어 쌓고 그 위에 나무판을 얹은 후 무거운 돌을 올려 놓거나 지렛대로 눌러 하룻밤 동안 물기를 빼준다.

종이뜨기 - 초지 (抄紙 )

물빼기 - 짐짜기, 압착탈수 (壓搾脫水)

 

벼게놓기

 

6. 말리기(건조)

 

한지의 전통적인 건조법은 습지를 온돌방 방바닥에 펴서 비로 쓸어 가면서 말리거나, 아니면 벽에다 부쳐서 말리거나 나무판에 붙여서 일광건조를 시켰다. 비가 올 때는 장판이나 흙벽에 붙여서 건조시키기도 했는데 현재는 철판에 열을 가해 건조시키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철분 오염의 우려가 있고 건조 온도가 높아 빨리 건조되므로 목판건조에 비해 신축률이 떨어지며 수분함량이 낮아 종이가 딱딱해 진다. 또한 건조시에 베어나오는 철판의 녹 때문에 종이 산화 촉진의 원인이 된다.

 

7. 다듬이질(도침질)

 

디딜방아 모양의 도침기에 덜 마른 한지를 여러 겹 포개놓고 계속해서 두드리면 치밀하고 매끈한 종이를 얻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도침질을 하지 않은 종이의 1/2~1/3정도로 두께가 줄어드는데 자연 사이징(Sizing)효과를 얻을 수 있어 먹의 번짐을 조절하기가 쉬워진다. 그러나 최근에는 도침을 실시하는 곳이 드물다. 도침을 하지 않은 닥종이의 먹의 발색이나 발묵이 좋지 않아 작품의 재료로 꺼려지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4)한지의 유래

 

한지(韓紙)의 유래

 

고려때의 스님 ‘설(薛)’씨의 이야기는 한지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흥미롭게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만들어진지 200여년이 지난 후라 한지의 기원에 대해 정확히 말해 준다고 볼 수는 없다.

 

종이의 기원도 불확실하고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믿을 만한 이야기가 발견되지 않아 우수한 우리의 종이문화에 대한 자세한 유래를 찾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는 3대 종이 고장이 있는데 경상도의 경주와 의령, 전라도의 전주가 그곳이다, 이중 경상도 의령에는 옛날부터 전하는 종이 설화가 있다.

 

고려 때는 스님 ‘설(薛)’씨의 이야기가 이것인데, 이것은 한지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흥미롭게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이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만들어진지 200여년이 지난 후라 한지의 시작에 대한 재미있는 설화로 남을 것이다.

 

의령은 종이로 유명하였다. 이는 [의춘지(宜春誌)]나 옛날 기록인 [교남지(嶠南誌)]를 통해 알 수 있다. 즉 위령의 토산물에 대해서 백화사(白花蛇), 봉밀(蜂蜜), 매실(梅實), 은구어(銀口魚), 대나무, 토란, 석류(石榴), 감나무, 즉어, 적복령(赤茯?), 백복령(白茯笭), 구기자(拘杞子)...등등 33가지를 소개하면서, 그중 10번째로 종이를 적고 있다. 그러나 설(薛)씨에 대한 문헌적 고증 자료는 없고 다만 구전으로 전해오는 것이 있을 뿐이다. 이 구전내용이 향우지인 [의령향우]에는 “1,000년 전 고려 때 의령군 봉수면 서암리에 국사봉 중턱에 약 20년 전까지 터가 있었다는 대동사의 주지 ‘설(薛)’씨가 어느 봄날 닥나무 껍질을 흐르는 냇물에 담가 두더니 껍질이 물에 풀리면서 삼베올처럼 섬유질이 생기는 것을 발견하여 이를 손으로 주물러서 바위 위에 건져 놓았더니 종이와 같은 물체가 만들어져, 이것을 계속하여 종이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5)한지를 잘 쓰는법

 

창호지로 사용

 

한지의 우수성은 창문용으로 사용되는 창호지의 열적 성능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옥에서 사용하는 창호지와 현대 기술의 산물인 창유리와의 역적 성능을 비교하니 에너지 파동이래 많은 건물에서 사용되고 있는 값비싼 이중 창문(피어글라스)보다 한지(창호지)를 사용한 이중 창호지 문의 열적 효과가 높았다.

 

 

창호지의 가장 큰 장점은 현대 문명 기술이 만들어 낸 어떤 종류의 창문 재료보다 실용성이 높다는 점이다. 창호지는 눈에 안 보이는 무수한 구멍이 있어 방문에 발라두면 환기는 물론, 방안의 온도와 습도까지 자연적으로 조절된다.

 

온돌에 장판을 발라 생활했던 우리의 주생활은 방안에 습기가 많은 것이 문제점이었으니 이습기를 창호지로 자연 배출되도록 유도해 쾌적한 생활 공간이 되도록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습기가 많으면 그것을 빨아들여 공기를 건조하게 하고 공기가 건조하면 습기를 내뿜어 알맞은 습도를 유지하게 하는 신축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창호지를 ‘살아 있는 종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창호지가 자연 현상에 이처럼 순응하는 성질은 모두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방한 재료로 이용

 

날씨가 추워지면 과거 우리 선비들은 앍고 난 책들을 모아 함경도나 평안도 지방의 변방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보내주는게 관례였다.

 

그책장을 뜯어 속옷을 지어 입거나 솜 대신 옷 속에 누벼서 조금이나마 추위를 면해보라는 우리 선비들의 갸륵한 온정이 책 선물 이였던 것이다.

 

섬유가 귀하던 시정에는 이종이 옷을 변방의 숫자리 병졸들이 방한복 대용으로 입었다 해서 주지의(收紙衣)라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조선의 19대 임금인 숙정9년에는 양반들이 종이신 신는 것을 멋으로 알고 시중에 신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이를 만들어 파는 자들이 많았고 사대부 집들에는 서책 도독이 극성이라 하니 철저히 단속하라는 어명이 내려졌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종이신은 미투리 또는 지혜(紙鞋)라 하여 책종이를 갸름하게 자른 다음 노끈으로 꼬아 만들었는데 당시 장안의 최고 멋쟁이로 통하던 양반들에게 인기를 끌만큼 그 맵시가 으뜸이었다. 한지처럼 우리 조상들의 멋과 지혜, 생활의 정서가 듬뿍 배인 물건도 드물 터이다.

 

 

문방사우 및  공예품에 사용

 

우리네 선비들이 ‘문방사우’라 하여 정신적 영물 대접을 해주던 문필의 용도에서부터 부채, 베개, 동고리, 모자, 반닫이, 우산, 요강 등의 생활용품이나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한지는 예로부터 우리민족 생활사에 없어서는 안될 최고의 장식품이자 생활용품이었다. 특히 아무리 짧게 잘라 보아도 똑같은 곳이 한군데도 없이 각각의 결이 살아 숨쉬는 듯한 닥나무의 질감에 식물의 뿌리, 잎, 줄기 등에서 얻어진 천연염료로 때깔을 입혀 만든 수공예품을 감상하노라 면 우리옛 선조들의 혼과 얼이 그 안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우리가 TV사극에서 자주 보게되는 장면 중에 양반들의 밤 나들이 안내하는 하인들이 손잡이가 달리 동그란 모양의 등을 들고 밤길을 비추는 장면이 있다.

이때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조족등(照足燈)이라는 등으로 대나무와 한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조족등은 사방 어느곳으로 비추어도 그 안에 있는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제작되었으며 농암에 민감하게 반은하여 한지의 특성과 맞물려 어두운 밤길의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이처럼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 이용될 수 있는 한지의 유수성은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정평이 나 잇다.

 

흔히 가죽처럼 질기다 해서 등피지(等皮紙)라고도 했던 우리 나라 전통한지는 종이의 종주국인 중국인들조차도 감히 그 품질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이다. 더욱이 요즘도 북경의 상류사회에서는 우리 나라 전통한지로 방벽을 바로 사는 대관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또한 과거 고려나 조선시대 사신들이 중국에 갈 때 가장 대접받는 선물로 청심환과 함께 한지를 가져갔다는 이야기가 지록으로 전해지고 있을 정도이다. 우리 나라의 종이 문화는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후 2천년 가까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종이 생산국으로서의 명성을 떨쳐왔다, 그러나 외래문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전통 한지는 점차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고 그 자리를 서양종이가 차지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서양종이라는 ‘물건’을 취하게 됨으로써 우리한지의 ‘스밈과 여백의 문화’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한지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오래가는 중성지인 이유?

 

닥나무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관목으로 한지를 만드는데 1년생 가지가 좋은데 길이는 2~3m정도이다. 같은 종류의 닥나무라도 기후, 토질에 따라 섬유의 폭, 길이 등이 달라져 품질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닥풀(황촉규:Hibiscue mamihot.L)은 아욱과에 속하는 1년생 초본식물이다. 닥풀은 뿌리에 점액이 많기 때문에 종이만들 때 지통에서 섬유가 빨리 가라앉지 않고 물속에 고루 퍼지게 하여 종이를 뜰 때 섬유의 접착이 잘 되도록 한다. 또한 발에서 물 빠지는 속도를 조절하여 물지를 쉽게하여 종이의 질을 고르게 하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닥풀의 농도가 낮으면 종이를 뜰 때 물빠짐이 빨라 두꺼운 종이가 만들어지고 농도가 높으면 물빠짐이 나빠 얇은 종이가 된다.

 

우리 한지는 우리 선조들이 재료의 성질을 잘 파악하여 닥나무에 리그닌과 홀로셀룰로오즈 성분이 이상적으로 함유되어 있는 시기인 가을에 채취하여 알칼리성을 전통 잿물로 표백하고 닥풀(황촉규)을 접착제로 사용하여 만들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오래가는 중성지를 탄생시켰다. 잿물은 주성분이 산화칼륨으로 이성분의 양에 따라 잿물의 염기도가 증가되며 이밖에도 인, 산화나트륨 및 산화칼륨의 양이 많으면 약알칼리로 만든다는 것이 분석결과 나타났다. 특히 닥풀은 주성분이 당류로서 종이를 뜰 때 닥나무의 섬유 점착을 좋게 해주어 종이의 가도를 증가시키며 얇은 종이를 만드는데 유리하고 순간적인 산화가 빨라 겹친 젖은 종이가 떨어지기 쉽게 한다. 한지를 만드는 송정 또한 펄프종이보다 더 과학적이라는 사실에 우리 조상들의 과학슬기가 얼마나 우수했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쓰고 있는 종이는 로진사이즈 처리와 황산알루미늄의 사용으로 강한 산성(ph4-5.5)을 띠게 되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가수분해로 종이가 열화되어 100여년 정도 지나면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분해되고 만다. 또한 우리 고유의 방법으로 만들지 않는 한지는 비록 펄프종이의 함유성분이 우리 한지를 만드는 성분과 비슷하다고 할지라도 표백용으로 첨가되는 수산화나트륨과 차아염소산으로 인하여 산성을 띠게 되고 표백과정중에 종이의 섬유조직이 상하게 되어 보존성이 훨씬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제조과정의 차이로 우리 한지는 천년이 지나도 종이가 보존되는 반면 펄프종이는 오랜 기간의 보존이 불가능 하게 된다.

 

이러한 우리 겨레의 과학슬기가 듬뿍 담긴 전통한지의 많은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현대 제지공업과 접목한다면 새로운 용도, 즉 장판지, 도배지, 한지 장식품, 장기간의 보존을 필요로 하는 서적용은 물론이고 기계적으로 흡음성과 밀도가 뛰어나 스피커의 음향판이나 밀폐용개스킷 등 첨단 소재개발에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옛 문헌과 옛유물의 철저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대량생산을 위한 기술개발에 노력하고 한지의 우수성을 정량화하여 수출전략에 힘씀으로써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세계 만방에 떨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진정한 과학기술의 세계화라 할 것이다.

201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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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한지공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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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일본의 종이


중국이나 일본의 종이와 한지는 원료나 만드는 방법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중국의 전통 종이는 주로 대나무 껍질이나 마 껍질, 삼 껍질에서 뽑아낸 섬유와 볏짚이나 밀짚을 섞어 만듭니다.


일본의 전통 화지는 삼지닥나무와 마의 섬유를 사용합니다.


만드는 과정을 비교해 보면


먼저 한국에서는 닥나무를 하루나 이틀 냇물에 담가둡니다.

중국에서는 각 원료의 특성에 따라 다른데 대나무 같은 것은 약 백일 동안 담가둡니다.

원료를 삶을 때 한국과 중국에서는 잿물을 이용하고 중국에서는 잿물이나 석회를 넣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표백을 할 때 주로 햇빛을 이용했지만 중국은 종이를 뜰 때 지통 안에 지약을 넣어 표백합니다.

중국에서 한국의 한지 색이 비단같이 희다고 하였던 것은 이 과정의 차이 때문입니다.

고해를 할 때 한국은 닥을 찧어서 하지만 중국에서는 대나무를 제외하고는 원료를 맷돌에 갈아서 이용합니다.


이 것은 한지 교유의 특성을 결정짓는 원인이 되는데 '중국 종이는 지료를 가늘게 갈아서 결이 생기지 않고 연하고 무르지만 우리나라는 갈지 않기 때문에 결이 보이고 정교하지 않지만 경고하고 치밀하다'는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종이를 뜰 때 우리나라는 닥풀을 분산제로 사용하지만 중국에서는 단섬유를 사용하므로 분산제를 잘 쓰지 않습니다.

종이를 말릴 때도 우리나라는 온돌을 이용하거나 햇볕에 말리는데 중국의 경우 이중벽을 세우고 그 사이에 땔나무를 태워 벽을 달구어 말립니다.


우리나라에는 마무리로 도침이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죽지를 만들 때 동유를 발라 광택을 냈고 일본은 사철나무 잎으로 표면 처리를 하였습니다.

 

우리나라한지

한지의 재료 : 주로 닥나무와 닥풀로 만듭니다.
<한지의 우수성>
① 다른 종이에 비해 질기고 오래간다.
② 촉감이 부드럽고 통기성과 보온성이 뛰어나다.
③한지는 다른 종이와는 다르게 질감이 독특하고 부드러운 효과를 만듭니다.

<한지의 이용과 전통>
① 부채, 화선지, 창호지, 도배지, 한지 장식품 등에 사용한다.
② 전통 한지의 맥을 이어 가는 장인들의 노력이 있기에, 조상들의 슬기로움과 전통 한 지가 지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한지는 언제부터 쓰였을까?>
- 조선시대부터 쓰였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기법으로 만든 종이로서 보통 '조선종이'라고도 한다. 닥나무나 삼지닥나무의 껍질을 원료로 하여 뜬다. 질기고 오래가서 무려 1000년을 넘어도 변색이나 훼손이 되지 않는다. 촉감이 부드럽고 통기성과 보온성이 뛰어나다. 닥나무와 삼지닥나무를 다발로 묶어 물을 부은 가마솥에 세우고 가마니로 둘러싼 뒤 불을 때어 껍질이 흐물흐물 벗겨질 정도로 삶은 다음 껍질을 벗겨 말린다. 말린 껍질을 다시 물에 불려 발로 밟은 다음 하얀 내피(內皮) 부분만 가려내고, 이것에 양잿물을 섞어 3시간 이상 삶아 압축기로 물을 짜낸다. 여기에 닥풀 뿌리를 으깨어 짜낸 끈적끈적한 물을 넣고 잘 혼합하여 고루 풀리게 한 다음, 발로 종이물을 걸러서 뜨면 만들어진다

 쓰임새

- 책이나 불경을 제작할 때 사용되었다.
-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이용하였다.
- 창살로 만들어진 창틀과 문틀에 한지를 발랐다.
- 한지에 기름을 먹여 장판을 바르면 건강에 좋아서 장판에 이용되었다.
- 한지로 공예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 특별한 날 한지로 만든 옷을 입기도 한다.
- 한지로 부채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한지의 단점

1.먼지가 잘붙는다.

2.흡수성이 좋다.

3.풀시공을 할때 잘 늘어진다.

4.물기에 약하다.

5.지면이 잘핀다.

6.만드는 과정이 까다롭다.

장점

- 다양한 색을 낼 수 있다.
- 구입이 용이하고 경제적 부담이 적다.
- 장식성과 실용성이 뛰어나다.
- 가볍고 운반이 용이하다.

 

특징

- 촉감이 매우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 통기성과 보온성이 우수하다.
- 먹물이 고르게 퍼진다.
- 질기고 오래간다.
- 산성비에도 잘 손상되지 않는다.

 

한지의 기원

1. 한지(韓紙)의 전래과정
2. 한지(韓紙)의 유래


 

 

한지의 특징
1. 창호지로 사용
2. 방한재료로 사용
3. 문방사우 및 공예품에 사용
4.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중성지



 

■ 한지 제작과정

 

1.닥나무 채취2.닥나무 껍질 벗기기3.닥나무 껍질 삶기4.닥나무 껍질 씻기
5.닥나무 껍질 두드리기6.닥나무 껍질에 닥풀풀기7.한지뜨기8.한지말리기
 

한지의 유래

 

고려때의 스님 ‘설’씨의 이야기는 한지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흥미롭게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만들어진지 200여년이 지난 후라 한지의 기원에 대해 정확히 말해 준다고 볼 수는 없다.

 

종이의 기원도 불확실하고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믿을 만한 이야기가 발견되지 않아 우수한 우리의 종이문화에 대한 자세한 유래를 찾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는 3대 종이 고장이 있는데 경상도의 경주와 의령, 전라도의 전주가 그곳이다, 이중 경상도 의령에는 옛날부터 전하는 종이 설화가 있다.

 

고려 때는 스님 ‘설’씨의 이야기가 이것인데, 이것은 한지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흥미롭게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이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만들어진지 200여년이 지난 후라 한지의 시작에 대한 재미있는 설화로 남을 것이다.

 

의령은 종이로 유명하였다. 이는 [의춘지]나 옛날 기록인 [교남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즉 위령의 토산물에 대해서 백화사, 봉밀, 매실, 은구어, 대나무, 토란, 석류, 감나무, 즉어, 적복령, 백복령, 구기자...등등 33가지를 소개하면서, 그중 10번째로 종이를 적고 있다. 그러나 설씨에 대한 문헌적 고증 자료는 없고 다만 구전으로 전해오는 것이 있을 뿐이다. 이 구전내용이 향우지인 [의령향우]에는 “1,000년 전 고려 때 의령군 봉수면 서암리에 국사봉 중턱에 약 20년 전까지 터가 있었다는 대동사의 주지 ‘설’씨가 어느 봄날 닥나무 껍질을 흐르는 냇물에 담가 두더니 껍질이 물에 풀리면서 삼베올처럼 섬유질이 생기는 것을 발견하여 이를 손으로 주물러서 바위 위에 건져 놓았더니 종이와 같은 물체가 만들어져, 이것을 계속하여 종이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지의 전래과정

 

3~4세기경 도입된 것으로 추정...제지술 보다 앞서 전파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종이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는가는 아직 정확히 확인된 바 없지만 고대에 이미 종이가 만들어져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제지술을 도입하여 이를 더욱 발전시켰고, 그 품질 또한 매우 우수하였다. 현존하는 최고의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증거라 하겠다.

 

종이는 크게 수초지와 기계지로 나뉜다. 수초지는 손으로 만든 종이를 말하는 것으로, 중국의 화지, 일본의 화지와 대비하여 우리나라 수초지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 종이의 기원과 전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3세기설, 4~5세기설, 6~7세기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3세설은 [일본서기]의 기록대로 중국에서는 종이가 이미 다른 서사재료를 대처했던 284년에 백제의 아직기가 일본에 전했다고 하는 [천자문]과 [논어]등이 종이 서적일 가능성이 매우 큰 점이다. 왕인이 천자문을 전한 것이 채륜의 제지술 발명보다 180년이 경과한 후라고 본다면 서기 200년대 후반에는 제지술이 우리 나라에 보급되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4~5세기설은 중국에서 384년 백제에 불교를 전파하였는데 이때 많은 책과 제지술도 함께 전해졌다고 보는 것이다. 한반도의 제지술은 불교의 전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외국 학자들이 설을 지지하고 있다. 6~7세기설은 610년에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일본에 채색, 종이, 먹, 맷돌, 등의 만드는 방법을 전해주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이다. 담징이 종이와 함께 일본에 전했다고 하는 맷돌은 종이 제조도구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제지에도 맷돌을 사용하였을 것이고, 이것은 우리 나라 제지법이 중국의 종이 기술과 동일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해준다. 이점은 715년 전후가 우리나라 한지와 중국의 화지가 구별되는 시기라는 점도 시사한다. 우리 나라에 현존하는 8세기 이후의 종이는 중국처럼 섬유를 잘게 갈아서 만든 종이가 아니고 두들겨서 종이를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미루어 보아 7세기 이전에 이미 상당한 기술의 축척이 이루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경우든 대부분의 학자들이 종이가 제지술보다 일찍 전해졌을 것이라는데 동의하고, 그 시기를 3~4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한지의 전래과정을 정리하면

[채후지→한지→서기 610년 고구려 영양왕 21년 담징이 일본에 제지술을 전파]

이다.

 

 

1.한지의 유래

     

A.D 105년 중국후한시대에 채륜이 종이를 발명하였다.

     

이 기술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시대인 372년, 불교와 함께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낙랑고분에서 출토된  닥종이 뭉치 등으로 미루어 우리의 종이역사는 1500~1600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우리 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이는 신라시대의 다라니로 751년이전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 한지의 원료와 특징

 

우리 고유의 한지는 닥나무를 원료로 하여 섬유질이 단단하고 질기며 그 면이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며 중국 송나라 사신 서긍이  엮은 '고려도경'이나 명나라 도융이 편찬한 '고반여사'등의 문헌에서는 우리 한지의 우수성을 소개하고 있다.

 

3.한지의 보급

 

고려시대의 전통 한지 생산에 대한 관심도를 보면 고려 인종23년에 왕명으로 닥나무 심기를 권장하였고 명종 19년에는 이를  법제화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세조 12년에 조지서를 설립하여 종이 생산에 힘을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인쇄술의 발달과 향교, 서원, 서당 등의 설치로 서책류의 수요와 보급이 활발하게 되어 그 사용이 급증하였으나, 1882년에는 400여년 존속한 초지서가 폐지되고 양지가 발달함에 따라 한지의 생산과정이 어렵고 비싸다는 이유로 점차 그 사용이 줄어 들었다.

 

4. 한지의 계승발전

 

최근 우리 옛것을 찾아 보존하고 계승하고자 하는 바람이 불면서 한지 생산이 제개되고 서예,서화,공예연구의증가로 더불어 닥나무 재배도 활발해지고 있다.

 

5. 한지의 특징과 장점

 

1)한지의 재질을 그대로 살리므로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2)여러겹으로 배접하므로 견고하고 단단하다.
3)다양한 색지가 있어 개성있는 작품을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
4)재료 구입이 쉽고 경제적 부담이 적다
5)장식적으로 실용성이 뛰어나다
6)가벼워 운반이 용이하다.
7)전통 문화를 비교적 쉽게 구현할 수 있어 전통의 계승발전에 유리하다
8)외국인들에게 우리 전통공예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다.
9)작품과 상품제작의 유용한 재료와 수단이 되어준다

201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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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는 언제부터 쓰였을까?>
- 조선시대부터 쓰였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기법으로 만든 종이로서 보통 '조선종이'라고도 한다. 닥나무나 삼지닥나무의 껍질을 원료로 하여 뜬다. 질기고 오래가서 무려 1000년을 넘어도 변색이나 훼손이 되지 않는다. 촉감이 부드럽고 통기성과 보온성이 뛰어나다. 닥나무와 삼지닥나무를 다발로 묶어 물을 부은 가마솥에 세우고 가마니로 둘러싼 뒤 불을 때어 껍질이 흐물흐물 벗겨질 정도로 삶은 다음 껍질을 벗겨 말린다. 말린 껍질을 다시 물에 불려 발로 밟은 다음 하얀 내피(內皮) 부분만 가려내고, 이것에 양잿물을 섞어 3시간 이상 삶아 압축기로 물을 짜낸다. 여기에 닥풀 뿌리를 으깨어 짜낸 끈적끈적한 물을 넣고 잘 혼합하여 고루 풀리게 한 다음, 발로 종이물을 걸러서 뜨면 만들어진다

 쓰임새

- 책이나 불경을 제작할 때 사용되었다.
-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이용하였다.
- 창살로 만들어진 창틀과 문틀에 한지를 발랐다.
- 한지에 기름을 먹여 장판을 바르면 건강에 좋아서 장판에 이용되었다.
- 한지로 공예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 특별한 날 한지로 만든 옷을 입기도 한다.
- 한지로 부채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한지의재료 : 한지의 재료는 닥나무 입니다

 

한지의 쓰임: 한지의 쓰이는곳은  예전에는 방문을 바르는 창호지로 쓰였으며

 서예나 동양화를 그릴때 화선지로도 쓰였으며

부채를 만드는데도 사용 되었으며

한지공예에 쓰입니다

 

 

한지의 우수한점

 질기고 가벼워  쓰기에 매우 좋습니다

- 한지의 통기성(공기와 수분 투가성)

- 부드러운 촉감

- 유연한 접힘, 빠른 흡수성

- 먹물에 의해 발묵 현상이 우수

- 강인성이 뛰어남(보존기관 1000년)

- 방음성과 방한성, 보온성이 우수

 

전통을이어가려면 어떻게해야되나요:

한지를 많이 사용하고  한지사용을  장려하는 정책과 쓰이는곳을  개발하여야 합니다

①한지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하고 한지의 장점을 홍보한다.

②여러 물건을 디자인을 하여 한지를 적용한다.

③우리전통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④전통을 많이 조사하여 안다.

⑤우리가 우리 전통을 아끼고 사랑한다.

 

 

한지제작과정

 

1.닥나무 채취
주로 1년생 닥나무를 12월에서 다음해 3월말까지 채취를 하는데, 강원도 주문진,경북 예천 의성, 경남 고성등지에서 이루어 집니다.

 

2.피닥 만들기
백닥나무가지를 베어낸 후 닥무지를 하여 가마솥에 넣고 물을 부운 다음 10시간 정도로 삶아서 껍질을 벗겨내면 피닥이 됩니다.

 

3.닥 만들기
피닥 가운데 표면이 넓고 고른 것을 선정한 후 가운데 60센티만 잘라서 장시간 물속에 넣고 불린 후 칼로 겉껍질(흑피)를 제거하여 백닥을 만듭니다.

 

4.닥 삶기
백닥을 물속에 충분히 불린 후 삶는데, 이 과정에 메밀짚을 태워서 재를 만든후, 시루에 천을 깔고 태운 재를 넣고 물을 부어서 울어 나오도록 만든 잿물을 넣어 장작불로 5-6시간동안 삶습니다.

 

5.헹굼(씻기)과 일광표백
삶은 백닥을 맑은 물로 10일 가량 헹굼과 원료 전체에 햇볕을 쬐어 하얗게 표백을 합니다.

 

6.티 고르기
백닥속에 남아 있는 표피, 불순물등을 제거하는 작업으로 정성이 많이 들어가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7.짓 이기기
티 고르기 작업을 마친 닥을 물을 짜낸 후 넓은 돌판(닥돌) 위에 올려놓고 나무방망이(닥방망이)로 두들겨 닥섬유가 물에 잘 풀어질 때까지 두들겨 줍니다.

 

8.종이 만들기
닥죽(원료)을 지통에 깨끗한 물과 함께 넣고 세게 저은 후, 황촉규 점액을 자루에 담아 걸러서 닥풀이 잘 섞이도록 다시 저어 준 다음에 종이뜨는 발로 앞물을 떠서 뒤로 흘려 버리고, 옆물을 떠서 반대 되는 쪽으로 흘려 버리는 것을 반복합니다.

 

9.물 빼기(탈수)
발로 건진 종이를 바탕이라 하는데, 바탕을 차례로 쌓아 올려 놓고 그위에 널판지를 얹고 무거운 돌을 올려 놓아 물이 천천히 빠지도록 한 다음 압축기에올려 놓고 물을 완전히 빠지게 합니다.

 

10.건조
물을 뺀 종이를 한 장씩 떼어 말리는데, 옛날에는 방바닥, 흙벽등에서 말렸으나 최근에는 대부분 열판에 붙여서 말립니다.

 

11.도침
마지막 작업으로 우리 한지의 우수성을 인정받게 했던 것으로 약간 덜마른종이를 포개어서 방망이로 두들겨 한지의 밀도와 섬유질 형성을 높이도록 하는 과정입니다

201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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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백과사전에 들어가면 다 있습니다.

 

2011.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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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부터 쓰였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기법으로 만든 종이로서 보통 '조선종이'라고도 한다. 닥나무나 삼지닥나무의 껍질을 원료로 하여 뜬다. 질기고 오래가서 무려 1000년을 넘어도 변색이나 훼손이 되지 않는다. 촉감이 부드럽고 통기성과 보온성이 뛰어나다. 닥나무와 삼지닥나무를 다발로 묶어 물을 부은 가마솥에 세우고 가마니로 둘러싼 뒤 불을 때어 껍질이 흐물흐물 벗겨질 정도로 삶은 다음 껍질을 벗겨 말린다. 말린 껍질을 다시 물에 불려 발로 밟은 다음 하얀 내피(內皮) 부분만 가려내고, 이것에 양잿물을 섞어 3시간 이상 삶아 압축기로 물을 짜낸다. 여기에 닥풀 뿌리를 으깨어 짜낸 끈적끈적한 물을 넣고 잘 혼합하여 고루 풀리게 한 다음, 발로 종이물을 걸러서 뜨면 만들어진다

 쓰임새

- 책이나 불경을 제작할 때 사용되었다.
-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이용하였다.
- 창살로 만들어진 창틀과 문틀에 한지를 발랐다.
- 한지에 기름을 먹여 장판을 바르면 건강에 좋아서 장판에 이용되었다.
- 한지로 공예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 특별한 날 한지로 만든 옷을 입기도 한다.
- 한지로 부채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한지의재료 : 한지의 재료는 닥나무 입니다

 

한지의 쓰임: 한지의 쓰이는곳은  예전에는 방문을 바르는 창호지로 쓰였으며

 서예나 동양화를 그릴때 화선지로도 쓰였으며

부채를 만드는데도 사용 되었으며

한지공예에 쓰입니다

 

 

한지의 우수한점

 질기고 가벼워  쓰기에 매우 좋습니다

- 한지의 통기성(공기와 수분 투가성)

- 부드러운 촉감

- 유연한 접힘, 빠른 흡수성

- 먹물에 의해 발묵 현상이 우수

- 강인성이 뛰어남(보존기관 1000년)

- 방음성과 방한성, 보온성이 우수

 

전통을이어가려면 어떻게해야되나요:

한지를 많이 사용하고  한지사용을  장려하는 정책과 쓰이는곳을  개발하여야 합니다

①한지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하고 한지의 장점을 홍보한다.

②여러 물건을 디자인을 하여 한지를 적용한다.

③우리전통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④전통을 많이 조사하여 안다.

⑤우리가 우리 전통을 아끼고 사랑한다.

 

 

한지제작과정

 

1.닥나무 채취
주로 1년생 닥나무를 12월에서 다음해 3월말까지 채취를 하는데, 강원도 주문진,경북 예천 의성, 경남 고성등지에서 이루어 집니다.

 

2.피닥 만들기
백닥나무가지를 베어낸 후 닥무지를 하여 가마솥에 넣고 물을 부운 다음 10시간 정도로 삶아서 껍질을 벗겨내면 피닥이 됩니다.

 

3.닥 만들기
피닥 가운데 표면이 넓고 고른 것을 선정한 후 가운데 60센티만 잘라서 장시간 물속에 넣고 불린 후 칼로 겉껍질(흑피)를 제거하여 백닥을 만듭니다.

 

4.닥 삶기
백닥을 물속에 충분히 불린 후 삶는데, 이 과정에 메밀짚을 태워서 재를 만든후, 시루에 천을 깔고 태운 재를 넣고 물을 부어서 울어 나오도록 만든 잿물을 넣어 장작불로 5-6시간동안 삶습니다.

 

5.헹굼(씻기)과 일광표백
삶은 백닥을 맑은 물로 10일 가량 헹굼과 원료 전체에 햇볕을 쬐어 하얗게 표백을 합니다.

 

6.티 고르기
백닥속에 남아 있는 표피, 불순물등을 제거하는 작업으로 정성이 많이 들어가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7.짓 이기기
티 고르기 작업을 마친 닥을 물을 짜낸 후 넓은 돌판(닥돌) 위에 올려놓고 나무방망이(닥방망이)로 두들겨 닥섬유가 물에 잘 풀어질 때까지 두들겨 줍니다.

 

8.종이 만들기
닥죽(원료)을 지통에 깨끗한 물과 함께 넣고 세게 저은 후, 황촉규 점액을 자루에 담아 걸러서 닥풀이 잘 섞이도록 다시 저어 준 다음에 종이뜨는 발로 앞물을 떠서 뒤로 흘려 버리고, 옆물을 떠서 반대 되는 쪽으로 흘려 버리는 것을 반복합니다.

 

9.물 빼기(탈수)
발로 건진 종이를 바탕이라 하는데, 바탕을 차례로 쌓아 올려 놓고 그위에 널판지를 얹고 무거운 돌을 올려 놓아 물이 천천히 빠지도록 한 다음 압축기에올려 놓고 물을 완전히 빠지게 합니다.

 

10.건조
물을 뺀 종이를 한 장씩 떼어 말리는데, 옛날에는 방바닥, 흙벽등에서 말렸으나 최근에는 대부분 열판에 붙여서 말립니다.

 

11.도침
마지막 작업으로 우리 한지의 우수성을 인정받게 했던 것으로 약간 덜마른종이를 포개어서 방망이로 두들겨 한지의 밀도와 섬유질 형성을 높이도록 하는 과정입니다

 

도움이되었으면좋겠네요

2011.05.22.

  •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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