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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독일에대해
제제 조회수 3,972 작성일2015.09.15

제가 독일에대해알아보려고하는데 독일의 자동차에대해 자세하게 알려주시면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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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래스
태양신
세계사 15위, 사회학 7위, 한국사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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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Bayerische Motoren Werke AG), 베엠베 (영어로는 비엠더블유)

BMW는 뮌헨에 본사를 두고 있다. BMW는 4실린더 엔진 개발자인 니콜라스 오토의 손자가 경영하던 항공기엔진 회사를 모체로 성장하였다. 1916년 구스타프 오토 프레시 마크루 페블릭과 라프 모토렌이 합병해서 1929년 설립되었고 이 회사의 오토바이가 최고 속도의 기록을 갱신하면서 유명해졌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항공기 엔진을 생산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는 자동차와 전쟁영화에 매번 등장하는 군용 모터사이클을 생산하여 명성을 쌓았고 세계 최초의 제트 비행기의 기관을 제작했으며 독일 공군이 사용했다. 전후 이 회사는 소형차 시장에 진출하려고 시도했으나 폭스바겐의 값싼 소형차와 경쟁할 수 없어 포기했다. 1969년 파산 지경에 이르러 바이에른 정부에 2,900만 달러 상당의 빚을 지게 되었으나 곧 신형 자동차를 소개해 재정적 곤경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 자동차들은 평범하게 디자인되었지만 경주용 차와 같은 속도를 낼 수 있었고 가격도 그와 비슷했다. 이와 때를 같이해 이 회사는 일련의 새로운 오토바이를 선보였으며 특히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전후에도 자동차와 모토사이클 생산부문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으며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BMW 로고의 하늘색과 흰색은 바이에른주를 상징하는 깃발에서 유래했다.


Benz (벤츠)

본사는 슈투트가르트에 있다. 1871년에 만하임에 기계 공작 공장을 세우고 작은 형태의 고속 엔진을 연구하여 1878년에는 2사이클의 가스 엔진을 제작, 1885년에는 다임러와는 별도로 4사이클의 가솔린 기관을 장착한 자동 삼륜차를 제작한 칼 프리드리히 벤츠에 의해서 세워진 회사이다. 만하임에 세운 공장은 후에 경쟁업체였던 다임러의 공장과 합병하여 다임러-벤츠가 되었고 그 후 회사 임원인 옐리네크의 딸 옐리네크 메르세데스의 이름을 붙인 메르세데스 벤츠가 탄생했다. 당시 엔진을 설계하고 생산한 기술자 이름이 마이바흐였으며 현재 벤츠의 최고가 승용차 이름에 그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2007년에는 미국 자동차 회사인 크라이슬러와 합병하여 다임러-크라이슬러 새롭게 출발했다가 2008년에 크라이슬러를 매각했다. 다임러-벤츠는 볼보, 스카니아와 함께 세계 3대 대형 자동차 메이커로 트럭, 버스, 특수용 자동차를 생산하고 메르세데스-벤츠는 주로 승용차를 주로 생산한다.


Porsche (포르쉐)

유명한 폭스바겐을 설계한 오스트리아출신의 포르쉐 박사에 의해서 세워진 자동차 회사이다. 스포츠카의 거목으로서 포르쉐 911 시리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본사와 공장은 슈트트가르트에 있다. 포뮬러에서 포르쉐의 협찬이 없으면 실패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1950년 포르쉐 스포츠 카가 등장하여 세계의 젊은이들을 열광케 했다. 포르쉐 911 시리즈는 새로운 형태의 스포츠카로 명성을 얻었으며 공냉식 엔진으로는 최고의 성능을 발휘했다. 엔진이 차체의 뒷 편에 장착된 것이 특징이었다.  포르쉐는 오스트리 출신의 공학자(1875~1959)로서 나치 독일 시절 국민차라는 이름의 폴크스바겐을 설계하였다. 폴크스바겐이 독일식 발음이지만 현재는 외국인들이 주로 발음하던 폭스바겐으로 변경되어 있다. 포르쉐는 1916년 아우스트로-다임러 회사의 이사가 되었으며, 1923년 슈투트가르트의 다임러사로 자리를 옮겨갔다. 1931년 그곳을 그만두고 회사를 설립하여 스포츠 카와 경주용 자동차를 설계했다. 그는 히틀러의 국민차인 폴크스바겐에 대한 계획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고 히틀러의 신임을 한몸에 받았다. 1934년 아들인 페리와 폴크스바겐을 최초로 설계했다. 프랑스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중 포르쉐 부자가 타이거 탱크와 같은 군용 차량을 설계했다는 이유로 전쟁 후 그를 투옥시켰다. 포르쉐 박사의 이름은 제2차 세계대전 후반부에 등장한 독일군의 킹타이거(쾨히니스 티거) 탱크 설계에 참여했다. 킹타이거 탱크의 경우 포탑이 포르쉐형과 헨셀형이 있었다. 그리고 페르디난트라는 자주포는 그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OPEL (오펠)

1898년 오펠 가문의 5형제가 아담 오펠(1837~95) 소유의 자전거, 재봉틀 공장을 자동차 공장으로 전환하면서 창립된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유럽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생산했다. 첫 해에는 오펠-루츠만이라는 모델을 생산했으나 곧 없어졌다. 더 많은 시험을 거친 뒤에 최초의 고유 모델인 2기통 오펠이 개발되었다. 오펠사는 초기 자동차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으나 1911년 화재로 공장이 소실되었다. 공장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오펠사는 최신 설비를 갖추게 되었고, 1913년 트럭 생산시설이 추가되었다.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함에 따라 생산이 축소되었으나 효율적인 조립 라인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생산성은 오히려 향상되었다. 당시 오펠의 가장 유명한 차종은 녹색의 차체에서 이름을 딴 라우프프로슈('청개구리'라는 뜻)라는 로드스터(roadster : 1920~30년대의 2~3인용 무개차: 지붕이 없는 차)였다. 1920년대에 발생한 경제대공황으로 인해 오펠이 공장의 운영을 포기함에 따라 결국 미국의 제너럴모터스사로 합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하면서 오펠사는 생산 라인의 일부를 소련에 빼앗겼으나 남은 설비로 생산을 계속했다. 현재는 미국 제너럴모터스사의 자회사로 승용차, 미니버스와 소형 밴 등을 생산한다. 쌍용자동차와 회사로고가 비슷해서 쌍용의 로고사용을 금지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본사는 뤼셀스하임에 있다.


VolksWagen 폭스바겐(폴크스바겐)

1937년 독일정부에 의해 설립되어 저가의 '국민차'를 대량 생산했다. 본사는 볼프스부르크에 있다. 이 회사는 본래 나치 조직인 독일 노동전선에 의해 운영되었고 페르디난트 포르쉐를 영입하여 자동차를 설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동차의 생산이 중단되었고 전쟁이 끝날 무렵 폴크스바겐 생산공장과 볼프스부르크 시가 모두 폐허화되었다. 전후 서독의 자동차산업은 폴크스바겐을 중심으로 부흥했고 10년이 채 안 되어 서독 자동차의 50%를 이 회사가 생산하게 되었다. 세계 곳곳에 이 회사 차량이 수출되었지만 작은 크기, 이상하게 생긴 둥근 외형, 나치 독일과의 역사적인 관계 등의 이유 때문에 초기에 미국에서의 판매는 상당히 저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판매부진현상은 1959년 미국의 광고회사인 도일데인번바흐사가 획기적인 광고를 하면서부터 반전되기 시작했다. 당시 광고사는 "딱정벌레"라는 별명을 폴크스바겐에 붙였고 소비자들에게 소형차의 이점을 널리 선전했다. 이러한 광고전략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 그후 몇 년 동안 '딱정벌레'는 대량으로 미국에 수입, 판매되었고 독일 부흥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Audi (아우디)

4개의 원이 겹쳐진 모양의 로고를 단 아우디 자동차로고는 4개의 독일 자동차회사가 합병하면서 탄생한 로고이다. 1930년대에 일어난 대공황으로 독일 자동차 회사들에게 큰 위기가 닥치자 당시 아우디, 호르히, 데카베, 반더러가 합병해 아우토 유니온이라는 이름의 회사가 탄생했다. 아우디라는 이름은 호르히 자동차회사 설립자인 아우구스트 호르히가 회사에서 퇴출된 후 아우디라는 회살를 설립했고 아우디라는 이름은 지금까지 계속 유지가 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공장이 크게 파괴된 후 패전 후에는 동독지역의 공장을 서독으로 이전 후 벤츠의 자회사가 되었다가 벤츠가 폴크스바겐에 매각했다. 이후 지금까지 폭스바겐의 자회사로 있다. 다른 자동차 회사에 비해서 아우디라는 이름은 가장 늦게 알려졌다. 2000년대 이전에는 전세계적으로 고급차에 속하지 않았으며 21세기에 와서야 독일의 명차 대열에 들어왔다.


MAN(만)

MAN SE (Maschinenfabrik Augsburg-Nürnberg SE)는 바이에른 주 뮌헨에 본사가 있는 자동차 생산회사이다. 산업 장비와 상용차를 제조 및 공급하는 회사로 주로 트럭, 버스 및 여러 가지 장비를 생산한다. 현재는 폭스바겐의 자회사다. 주로 트럭을 생산하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MAN 이라는 이름을 단 트럭을 볼 수 있다.


실버 에로우 (Silver Arrow, 은빛화살)

독일에는 많은 자동차 엔진 생산 회사가 이미 1800년대 후반부터 있었다. 뿐만 아니라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도 자동차제도 회사들이 많았다. 많은 회사들은 자신이 만든 자동차의 실력을 경쟁하는데 그 경쟁은 자동차경주대회였다. 유럽에서는 자동자경주대회가 대중적으로 인기가 매우 높았으며 따라서 자동차경주대회에서 승리는 국가의 명예를 높이는 경기였다. 자동차 회사는 경주대회를 통해서 자신의 브랜드와 기술력을 알렸기 때문에 유럽의 많은 자동차 회사들은 자동차경주대회에 막대한 재정지원을 했다. 독일에서는 벤츠와 아우디가 경쟁을 했다. 히틀러의 지원을 받은 자동자경주대회에는 출전한 자동차의 무게에 제한을 두었는데 독일을 대표해 출전한 경주용 자동차가 무게제한을 약간 초과했다. 무게를 줄여야 했는데 당시 기술자 중 한 명이 자동차에 칠한 페인트을 지우자고 말해 페인트를 지우는데 그 결과 아슬아슬하게 통과를 했다. 페인트를 벗겨낸 벤츠의 자동차는 알루미늄의 원색인 은빛을 노출했고 경주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이후 은빛화살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이후 독일의 자동차는 은색을 독일자동차를 대표하는 색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재도 독일 자동차 회사들은 광고에는 언제나 은색 자동차를 광고용으로 사용한다. 물론 이 이야기 전체가 과장, 조작되었다는 말도 있는데 사실과 무관하게 은색은 독일 자동차를 상징한다. 이탈리아 자동차는 빨간색(예: 페라리), 영국 자동차는 녹색과 같이 색을 통해서 국가 브랜드화한 것인데 은빛화살의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은색은 독일자동차를 상징하고 있다.


디젤(Diesel) 엔진

디젤엔진은 이 엔진을 설계한 독일의 기술자 이름에서 유래했다. 루돌프 디젤(Rudolf Christian Karl Diesel) 은 벤츠가 세계최초로 실용적으로 만든 가솔린 엔진과 달리 엔진을 움직이는 방식이 전혀 다른 디젤 엔진을 만들었다. 디젤 엔진은 가솔린 보다 질이 좋지 않은 연료(비싼 휘발유 대신에 저렴한 경유 사용) 를 사용해도 엔진구동이 가능했기 때문에 실용성이 높았다. 낮은 속도에서도 큰 힘을 낼 수 있었으며 현재 연비가 좋다고 말하는 디젤엔진은 설계 당시 부터 적은 연료를 사용해서 가솔린엔진 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디젤엔진은 주로 선박, 트럭, 버스에 사용하는 엔진이며 승용차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디젤 엔진은 생산 단가가 높아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 가격이 높으나 수명이 길다는 장점이 있다. 소음이 크다는 문제가 있었으나 연비가 좋다는 이유와 소음을 줄이는 기술이 개발됨에 따라서 사용 용도가 크게 확대 되었다.



2015.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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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백과사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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