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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리히텐슈타인 궁전
비공개 조회수 565 작성일2018.05.14
리히텐슈타인 궁전이라고 체코에 있는데 자료가 안나와서요ㅜ
이 궁전에대해서랑 역사적 배경 알고싶어요! 내공 90이요 급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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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사용자 참여 분야 지식인 #김전일 #해피빈 #명탐정코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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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은 본래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직할영지였으나,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한스 아담 1세가 제국의회 참가자격을 얻기 위해서 셀렌베르크 남작령(Herrschaft Schellenberg, 1699)과 황제 직할 영지인 파두츠 백작령(Grafschaft Vaduz, 1712)을 구입하여 합쳤다. 그 뒤 1719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6세의 윤허를 얻어 공국(Fürstentum)의 지위를 얻어 리히텐슈타인 공작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리히텐슈타인 땅을 다스려서 리히텐슈타인 공작이 된 게 아니라,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다스리는 땅이라서 리히텐슈타인이 된 거다. 정작 가문명의 유래가 된 첫 영지인 리히텐슈타인 성(城)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성(城)은 13세기 이후로 상실하였다가 19세기에 복구하였으며, 그 뒤로 줄곧 리히텐슈타인 가문에서 소유 중이다.

이후 프랑스 혁명과 뒤이은 혁명전쟁 당시 오스트리아의 봉신국으로서 참전했다. 당시 리히텐슈타인 공은 오스트리아군의 주요 지휘관 중 하나였으며, 그는 기병 2000기를 이끌고 보병 7000여명 규모의 일개 군단을 격파하는 무쌍을 벌이기도 했다.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면서 독립국이 되었다가, 1806년 라인 동맹에 가입하고 1815년 독일 연방에 가입하는 등, 이리저리 돌다가 1866년 정식으로 독립국이 되었다. 이 무렵의 군주인 요한 2세(별명은 "선하신 공 요한(Johann II der Gute)")는 70년간 재위하면서(1858~1929년) 유럽 주권국의 군주 중에선 두번째로 오래 재위했다.[6] 본래 리히텐슈타인 공작가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신하인 탓에, 1866년 이후로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화폐를 사용하고 리히텐슈타인 공작가도 빈에 거주하는 등, 일종의 오-헝 제국의 제후국이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의 종료 이후 오-헝 제국이 붕괴되면서 실질적으로 독립국화. 이후 1921년 신헌법을 제정하고 입헌군주제를 채택하였으며 이전(1852년)에 오스트리아와 맺었던 관세동맹을 폐지하고, 새로이 스위스와 관세동맹 (1919년)을 맺고 스위스 프랑을 기본통화로 사용하고 있으며,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1938년 이후로는 공가도 리히텐슈타인에 살게 되었다. 다 필요없고 당시 공비 (프란츠 1세의 후처) 엘리자베트가 유대인이라 빈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어찌보면 '현존하는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제후국'이다.

한편 리히텐슈타인 공작가는 체코슬로바키아에 1,600㎢가 넘는 영지(리히텐슈타인 영토의 열 배)를 가지고 있었다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체코슬로바키아가 귀족들의 영지를 몰수하면서, 이후 체코 당국에 이를 반환해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그래서 리히텐슈타인은 체코 및 슬로바키아와 외교관계가 없었다가, 2009년 뒤늦게 수교했다.

리히텐슈타인 공가의 종가는 오스트리아에 있는데, 규모가 어마어마한 저택으로 어지간한 궁궐보다도 크다. 현재는 상당 부분 외부에 개방되어 관광 명소로 유명하다고.

20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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