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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리히텐슈타인
tjsg**** 조회수 4,624 작성일2009.09.01

리히텐슈타인 작품들 모조리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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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77위, 사회, 도덕, 사회학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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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

로이 릭턴스타인(Roy Lichtenstein, 1923년 10월 27일~1997년 9월 29일)은 미국의 대표적인 팝 아트 미술가이다. 만화의 장면을 캔버스로 옮긴 작품으로 유명하다.

작품

작품 이름 [머리 리본을 한 소녀 Girl with Hair Ribbon]

 

 


위의 그림이 Roy Lichtenstein 의 Living Room이란 그림입니다.

 

 

 

Roy Lichtenstein
The Den
woodcut and screenprint
57.5 x 71.6"
1991, signed/numbered on front

 

 

로이 리히텐슈타인, In the car(차안에서)

 

리히텐슈타인

팝 아트의 선구자 중 하나로 대중문화 속에서 작품의 소재를 얻었다. 리히텐슈타인은 1949년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미술학석사학위를 받았고 오하이오 주(1946∼51)와 오스웨고의 뉴욕주립대학교(1957∼60) 및 뉴저지의 뉴브런즈윅에 있는 럿거스대학교의 더글라스대학(1960∼63)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51년 화가 생활 초기에는 목동이나 인디언들을 현대적 미술 양식으로 그렸으나 1957년에는 추상 표현주의를 시도했다. 리히텐슈타인이 미술적 주제의 하나로 만화에 관심을 보인 것은 아마 1960년에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미키 마우스 그림을 그려준 데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후기작품에서는 주로 만화 등장인물들을 크게 확대시켰는데, 만화 인쇄에 나타나는 벤데이 점까지도 금속 등사판을 이용해 똑같이 옮겨 그렸다. 그결과 상업미술과 추상미술이 합쳐지게 되었다. 검정색 윤곽선 안에 칠해진 밝은 색채는 만화를 주제로 한 그의 첫 개인전(1962 뉴욕시티)에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며 1968년경에는 그의 희한한 작품에 대한 관심이 널리 퍼지게 되어 결국 그는 미국 작가로는 최초로 런던의 테이트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갖는 영예을 얻게 되었다.
리히텐슈타인은 한동안 계속해서 감상적인 로맨스 잡지에서 주제를 얻었다. 그는 대화내용을 풍선 속에 집어넣기도 했으며 만화양식으로 풍경화를 그렸다. 1967∼68년의 조각작품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것이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1930년대의 유리와 크롬 곡선 양식을 의도적으로 환기시켰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작품들은 정물의 묘사와 붓질의 움직임이 초기 양식으로부터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 이 작품들은 보다 절충주의적 미술관에서 나온 것이며 다양한 미술 사조의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살바도르 달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200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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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H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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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 In the car(차안에서)

 

 

   리히텐슈타인은 앤디 워홀, 올덴버그와 함께 1960년대 미국 팝아트의 대표적 작가다.

앤디 워홀이 코카콜라와 마릴린 먼로 같은 대중문화 이미지를 변형해서 썼듯, 리히텐슈타인은 광고, 만화, 신문, 잡지에서 빼낸 이미지를 변형해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만들었다.

인쇄할 때 생긴 망점(網點)이 흉할 정도로 크게 드러나도록 크게 확대한 뒤, 이를 캔버스 위에 유화 등 재료로 다시 그렸다.

현대인이 의존하는 인쇄기술이 사실은 망점 여러 개가 찍힌 ‘눈속임’이라는 것, 그리고 자세히 보면 색깔도 촌스럽다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

작가의 손이 안 들어간 듯 하면서 엉큼하게 현대사회에 대해 세련된 풍자를 한다.


  전통적으로 회화는 자연을 보고 그렸지만, 20세기부터 미술은 ‘이미 있는 이미지’에 작가의 새로운 해석만 보탰다.

특히 팝아트는 기성 대중문화 이미지를 고급미술 단계로 끌어올림으로써(혹은 끌어올렸다고 주장함으로써) 미술의 ‘고상함’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미술시장의 유혹’을 쓴 정윤아 상명여대 겸임교수는 “팝아트는 미국이 유럽의 귀족적 미술에서 벗어난 첫 번째 미술이었고, 지금까지 세계 현대미술에 끼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특히 ‘행복한 눈물’은 리히텐슈타인의 절정기인 60년대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빨간 입술을 반쯤 벌리고 애처로운 눈빛을 한 여자 캐릭터가 들어간 만화는 미국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흘러간 그 옛날 문화’다.

박수근 그림 속 아기 업은 소녀가 한국인의 감성을 자극하듯, 이 이미지는 미국인들 감성을 건드린다.

뉴욕근현대미술관 ‘모마(Moma)’의 안내서 표지에 리히텐슈타인의 1961년 작품인 ‘공을 든 소녀(Girl with Ball)’가 찍혀있을 정도로 그는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작가다.

  국제미술시장 분석기관인 아트프라이스닷컴이 올해 3월에 발표한 ‘비싼 작가 톱10’의 2위는 앤디 워홀, 10위는 리히텐슈타인이다.

지금까지 경매에서 팔린 리히텐슈타인의 가장 비싼 작품은 2005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1600만 달러에 낙찰된 ‘차 안에서(In the Car·1963년작)’다.

서울옥션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미술 구매력이 다른 나라들을 앞지르면서 미국미술을 대변하는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가치도 치솟은 것”이라고 말했다.

 

200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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