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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돌팔이는 언제나 선구자인 법이지!"

[취미는 독서] 열한 번째 날

▲ <단속사회>(엄기호 지음, 창비 펴냄). ⓒ창비
노정태(자유기고가․<논객시대> 저자)
: 한국계 독일 사회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가 큰 성공을 거둔 2012년 이후, ‘XX사회’라는 제목 짓기 방식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비로 그 한병철 교수 본인의 신간 <투명사회>(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와 더불어 나온 최근의 책이 바로 이것이다. <단속사회>(엄기호 지음, 창비 펴냄). 한자에 따라 '단속'이라는 단어는 연속적이지 않고 끊어진다는 뜻을 지닐 수도 있고, 집안이나 몸가짐을 삼간다는 의미를 띌 수도 있다. 각기 다른 한자의 같은 음을 이용한 중의적 제목인 것이다.

많은 이들이 칭송하고 있는 것처럼, 저자 엄기호의 시선은 섬세하면서도 날이 잘 서 있다. 현재 한국 사회의 아픈 곳을 잘 찌르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책의 내용이 아니라 그의 이력을 통해 짐작하건대, 활동가 출신의 인류학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류학자 엄기호는 관찰 대상과 분리되는 '주체'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현실을 향해 발언하는 텍스트를 만드는 모든 이가 처하게 되는 딜레마가, 이 책에도 구현되어 있는 셈이다.

이 지면은 본격적인 서평이 아니므로 더 이상 길게 논의하기는 어려울 듯하지만, 한 가지만 지적해두도록 하자. 나는 한국 사회에 대한 엄기호의 분석에 상당 부분 수긍하고, 그의 결론에도 동의한다. 그런데 내가 그의 결론에 동의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지난 수요일 <좌파로 살다> 토론회에서 나온 그의 표현을 빌어보자면, 계몽의 가능성을 믿지 못하는 계몽주의자인 셈이다. <단속사회>를 통해 다시 환기된 문제의식이, 적어도 오늘은, 맑은 공기 속에 떠돌고 있다.

정승일(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 : 중학교 시절은 내 인생 최고의 황금기였다. 공부는 전혀 하지 않고 방과 후면 매일 매일 야구와 로켓 만들기와 그리고 <삼국지>, <서유기>, 김유정 소설 등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 3년을 살았다.

▲ <평설 인물 삼국지>(김경한 지음, 북오션 펴냄). ⓒ북오션
그 중학교 시절 <삼국지(삼국지연의)>를 세 번 통독했다. 권당 두께가 5센티미터는 되었을 법한 5권짜리 묶음의 <삼국지연의>였으니, 한번 읽는 데만도 반년은 걸렸을 것이다. 대학 시절에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본격 가담하면서, <손자병법>을 읽고 무릎을 친 적이 있었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건 중원 정복을 위한 전쟁이건, 승리를 위한 정치 전략과 군사전략에는 공통의 요소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우연히 접한 새 책 <평설 인물 삼국지>(김경한 지음, 북오션 펴냄)를 읽어보니, 중학교 시절부터 감동 깊게 기억하는 제갈공명과 관우, 장비, 유비의 실제 모습이 적나라하게 파헤쳐진다. 나관중이 유비의 후한을 미화시키려고 엉뚱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예를 들어 적벽대전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 제갈공명이 화살 10만 개를 얻기 위해 일부러 작은 조각배를 띄어 화살공격을 유도했다는 스토리가 실제 정사에 따르면 다른 전투지에 나오는 다른 이야기란다. 조자룡이 10만의 조조 군대에 맞서 유빈(주군 유비의 아내)과 아들을 구한 것 역시 완전 거짓말이며, 실제로는 경황없는 전쟁터에서 기껏해야 수십 명을 상대했을 것이란다. 게다가 관우와 장비는 칼싸움 잘하는 의리의 무사들, 요즘 말로 조폭 깡패들에 불과했을 뿐이며, 더구나 전쟁 지휘관으로서는 빵점이었다니!…유비 역시 무위도식을 즐기는 무뢰배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런 젠장…나의 청소년 시절 영웅 스토리를 이렇게 뭉개버리다니….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저자의 주장이 매우 설득력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전쟁에서는 멋진 영웅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다 - 이 책이 새삼스럽게 선사하는 깨달음이다.

김용언(<프레시안> 기자) : “돌팔이란 언제나 선구자인 법이지. 점성술사는 천문학자가 되고, 연금술사는 화학자가 되고, 최면술사는 실험심리학자가 되었어. 지난날의 사이비가 오늘날의 전문가란 말이야.” (‘가죽 깔때기’ 중에서)

▲ 『J.하버쿡 젭슨의 진술』(아서 코난 도일 지음, 송기철 옮김, 북스피어 펴냄). ⓒ북스피어
『J.하버쿡 젭슨의 진술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송기철 옮김, 북스피어 펴냄)은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의 창조물’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코난 도일은 초자연적 공포를 해양 생활, 극지 체험, 격렬한 스포츠와 결부시킴으로써, 독특하게 남성적인 어조의 썩 괜찮은 공포 소설도 다수 발표했다. ‘공포’라는 것이 훨씬 예민하고 감수성 풍부한 존재들에게 쉽게 발현된다는 점에서, 코난 도일의 공포 소설들 속 ‘믿지 않는 자’로서의 이성적인 남성 주인공이 발휘하는 경계 장애적 느낌은 에드거 엘런 포의 전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J. 하버쿡 젭슨의 진술’과 ‘가죽 깔때기’, ‘경매품 249호’, ‘북극성호의 선장’ 등 총 네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가죽 깔때기’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흑마술과 독약과 치정이 뒤범벅된 마리 마들렌 도브레 실화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 네 편의 단편에 대한 ‘팬심’의 해설이 수록된 <코난 도일을 읽는 밤>(마이클 더다 지음, 김용언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도 함께 읽으면 좋겠다. 후후후후….

안은별(<프레시안> 기자) : 인용은 정확하지 않으나, 사회학자 노명우가 어느 글에서 '세상에 어려운 일이 참 많지만 외국 다녀온 사람 입 막기는 진짜 어려운 일이다'라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이 말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찔려야 마땅한데, 이래저래 도합 2년쯤을 일본에서 생활하거나 여행·취재를 한 나 역시 누군가 일본 사회를 내가 겪어온 것과 다르게 혹은 내가 아는 선에서 부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상하게 좀이 쑤셔왔기 때문이다. 실은 나도 잘 모르는데, 잠깐 다녀와 본 게 뭐라고.

일본은 가깝기도 하고 접할 기회도 많아 누구나 떠드는 소재이기도 하다. 대화 참여자가 이 층위에서 대화하기로 합의가 되어 있다면, 즉 인상에 불과한 것을 어디에다 근거 삼아 쓰지 않고 표면적인 이해라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나무랄 수 없는 태도라 본다-라기보다 매 순간 타국의 사정을 '내재적으로'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 <일본 탐독>(김원우 지음, 글항아리 펴냄). ⓒ글항아리
그런데 그 인상이란 것을 어떻게 다루고 쓰느냐에 따라, 내가 타국을 더 깊이 아네 네가 더 잘 아네 하는 차원을 넘어선 성취를 이루기도 한다는 사실을, 김원우의 <일본 탐독>(글항아리 펴냄)을 읽으며 새삼 느꼈다. "내가 읽고 보아온 일본/일본인에 대한 직관·감상·느낌"을 분명한 전제로 하는 이 글 모음집은 매번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고 개인의 필터와 기억의 왜곡을 의심하며 타지/타자를 어루만진다는 태도 면에서 감명 받을 곳이 적지 않았다.

한편 이 책은 1990년 신문사의 후원으로 20여 일간 열도를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겹쳐 있는 시제를 읽는 즐거움도 준다. 세계화의 거센 파도가 들이치며 선진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1990년, 가깝고도 멀며 원한과 부러움의 시선이 엉켜 있는 선진국 일본은 경원시되면서도 따라잡아야 한다는 강박을 부추기는 그 시대 한국의 거울이었다. 일본을 알자는 강박적인 출판 러시가 일고 베스트셀러도 종종 나왔던 그때에 이 책이 출간되었다면 정보는 새로웠겠지만 이렇게 입체적인 느낌은 못 주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가의 길고 단단한 문장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장의 길고 짧음이 좋은 문장의 요건에 관여하는 게 아니라 결국 문제는 힘의 분배임을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으면서 되새긴다.

"자부심과 겸손이 고루 무르녹아 있는 두 모자의 자태를 이번에는 내가 찬찬히 훑어가자, 직업의 귀천을 떠나서 일업일생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낙이 이런 게 아닐까에 이어 아들의 전공 분야가 무엇을 겨냥하든 간에 평생토록 손님의 숙식을 뒷바라지해온 한 노친네의 구변에서 '간사이 미학'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 풍경이 얼마나 희귀한가라는 생각이 저절로 괴어들었다." (99쪽)

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 내 생애 최초로 완독한 두꺼운 영어책은 대학 2학년 때 읽은 'The Tao of Physics'였다. 우리나라에는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프리초프 카프라 지음, 이성범 옮김, 범양사 펴냄)으로 번역되어 있다. 읽는 데 한 학기가 걸렸다. 하루 생활이 투쟁으로 점철되던 시절에 무슨 짬을 내서 그 책을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프리초프 카프라에 푹 빠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지 힘들게 읽었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으면 억울해서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이 따위 신비주의 유사과학책이나 읽었다니…….

▲ <불안이 주는 지헤>(앨런 와츠 지음, 이석명 옮김, 마디 펴냄). ⓒ마디
요즘 내 삶이 불안한지 아니면 알랭 드 보통의 여운이 남았는지 <불안이 주는 지혜>(앨런 와츠 지음, 이석명 옮김, 마디 펴냄)를 고민 없이 쉽게 집었다. 이 책은 공허한 물질주의의 약속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을 찾자고 말한다. 미래가 아니라 지금에 집중하라는 것. 있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오늘을 허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늘상(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딸에게 하는 이야기다. 한국 독자에게 먹힐만한 내용인데 1951년에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이 어쩌다 이제야 한국에 번역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책을 쓸 무렵 30대에 불과했던 앨런 와츠는 이런 지혜를 어디서 얻었을까? 혹시 니트족? 하지만 최근 나온 <빈둥빈둥 당당하게 니트족으로 사는 법>(파 지음, 한호정 옮김, 동아시아 펴냄)과 궤를 같이 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동양의 선불교와 신비주의에 빠져있다. 그 내용이 좋을지라도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과학 물을 먹은 독자는 심기가 불편해진다. 그리고 작가에 대한 이런저런 의심이 생긴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이따금 인간은 동물을 부러워한다. 동물은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고 있지만 죽음을 크게 '문제 삼는' 것 같지 않다. 또 그들의 삶에는 그렇게 복잡한 문젯거리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45쪽)

앨런 와츠는 실제 동물들을 보지 않았나보다. 동물원에 갇혀 살기 전에야 이런 일은 없다. 그리고 사자에게 목의 동맥이 끊겨 죽어가는 사바나의 들소들이 고통 속에 흘린 눈물은 본 적이 없나보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잘 수 있을 정도로 삶이 녹록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삶에 대한 집착이 있다. 원래 생명이 그러하다.

앨런 와츠의 성찰 과정에는 의심을 품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는 내가 딸에게 하고픈 것들이다.

"현대에 나타나는 불안 현상은 지나치게 안정만을 추구하는 인간 행위로 말미암은 결과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사실을 가장 명확하게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온전한 정신을 회복할 수 있다." (19쪽)

정혜윤(CBS PD) : 엘리자베스 비숍은 "만일 내가 시를 읽은 후 24시간 동안 세상이 그 시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좋은 시임이 분명하다. 그림도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했는데 현재 포르투갈에 살고 있는 김한민 작가의 신간 <책섬>(워크룸프레스 펴냄)이 내겐 그랬다.

▲ <책섬>(김한민 지음, 워크룸프레스 펴냄). ⓒ워크룸프레사
자, 여기 책을 짓는 외로운 사람이 있다. 그는 세월이 흘러 한 가지 소원을 갖는다. 책을 짓는 기술을 전수할 단 한사람이라도 만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만났다. 눈먼 아이…. 아쉽다. 나를 만났어야 하는데. 나도 알고 싶은데.

대체 책 짓는 기술은 뭘까? 책은 어떻게 만드는 거야? 어떤 사람은 왜 책을 지을까? 어떤 사람은 왜 책을 읽을까?

책 속에서 특별히 마음에 남는 한 구절이 있다.

"자기 혼자만 견디면 남들은 따뜻하다는 생각으로 버티는 데까지 버티던 나날, 그러다 어느 날…"

그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다. 이 문장에 걸려 넘어졌다. 책을 읽기도 짓기도 걸려 넘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성현석(<프레시안> 기자) : 지식이나 기술, 예술을 소비하는 비용이 너무 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말도 안 돼’라며 발끈 할 이들이 많을 것 같다. 가방끈 긴 사람이 돈 잘 벌고 대접 받는다는 건 초등학생도 아는 이야기니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에선 지식이 대접 받는 게 아니다. 명문대 학위, ‘사’자로 끝나는 자격증이 대접을 받는다. 또 엘리트와 통하는 인맥에 비싼 값을 쳐준다. 지식이나 학위나,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엄연히 다른 범주다. 무식한 박사, 초등학교만 나온 지식인. 모두 가능하다. 그런데 무식한 박사는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지만, 초등학교만 나온 지식인은 입에 풀칠도 하기 힘들다.

학위, 자격증, 인맥의 값은 좀 떨어뜨리고, 지식이나 기술, 예술 등의 값은 좀 올리는 게 옳다고 본다. 그러자면, 갖춰져야 할 장치가 많다. 어떤 창작물이 더 뛰어난지를 판별하는 비평 활동이, 더 엄격해져야 하고 더 활발해져야 한다. 이는 무식한 박사가 걸러지고 초등학교만 나온 지식인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필수조건이다. 좋은 비평이 없는 곳에선, 창작자의 배경에 기댄 평가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또 정비돼야 할 장치가 특허, 지적재산권 등이다. 이런 장치가 없다면, 아무리 뛰어난 창작을 해도 먹고살기가 어렵다.

그러나 특허, 지적재산권 등을 무작정 옹호할 수는 없다. 특허는 더 이상 영세 발명가의 무기가 아니다. 가난한 환자들이 약을 구할 수 없게끔 하는 장치, 시장을 선점한 기업이 후발주자의 발을 묶는 장치, 지식 소비 비용을 높이는 장치 등으로 쓰일 때가 더 많다. 제약 특허의 권리가 조금만 느슨해져도, 숱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 <세상을 뒤흔든 특허전쟁 승자는 누구인가>(정우성 지음, 에이콘출판 펴냄). ⓒ에이콘출판
특허, 지적재산권 등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나는 어디쯤에 자리 잡아야 할지, 망설여지곤 했다. 여기에 겹쳐 애플과 삼성의 특허전쟁까지 벌어지니까, 생각이 더 복잡해졌다.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지식과 기술에 울타리를 치더니, 함부로 다가가지 말라고 한다. 그러더니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공룡들이 울타리를 넘었네, 안 넘었네 하며 서로 싸운다. 싸움 결과에 따라 막대한 돈이 왔다 갔다 한다. 애국심에 불타는 언론이 보기에, 이 싸움은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다를 게 없다. 우리 편이 곧 옳은 편이다. 심판이 우리 편에게 불리한 판정을 했다며 발끈하거나, 딱히 이긴 게 아닌 결과를 승리로 포장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정우성 변리사가 쓴 <세상을 뒤흔든 특허전쟁 승자는 누구인가>(에이콘출판 펴냄)라는 책이 도움이 됐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몇 가지 생각은 정리가 됐다. 정 변리사가 공저자로 참가한 <특허전쟁>(정우성․윤락근 지음, 에이콘출판 펴냄)도 읽어볼 참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 지식에 친 울타리를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한 생각은 앞으로도 안갯속일 게다. 그러나 글로벌 특허전쟁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한 입장은 곧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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