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환과 명성황후가 관련이 있나요?
어떤분은 민영환이 명성황후의 오빠라고도 하시고,,,
명성황후의 오빠가 민영환인가요?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민영환과 명성황후는 솔직히 관계가 없습니다
제가 책을 봤는데 명성황후는 오빠는 민승호이더라구요
병조판서:민승호
대사성:민경호
황해도감찰사:민태호
이조판서:민규호
민승호에대해..
(백과사전에서..죄송)
본관 여흥. 자 복경(復卿). 명성황후의 오빠. 1864년(고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66년 여동생의 왕비 책봉으로 중용되었다. 이조참의를 거쳐, 1867년 호조참판에 임명되고, 형조 ·병조판서를 지냈다. 1873년 대원군이 실각하자, 적극적으로 국정에 참여하여 민씨일문의 거두로서 큰 세도가가 되었다. 1874년 한 수령(守令)이 보낸 선물로 위장한 폭약을 풀다가 일가족과 함께 횡사하였다.
정적(政敵)’이었던 대원군이 실각(1873년)한 직후 명성황후(1851~1895)가 오빠에게 보낸 한글 문안 편지 2통이 공개됐다. 을사늑약(1905년) 직후 자결한 민영환(閔泳煥)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던 것으로, 민영환의 손자 병진씨가 27일 본지에 공개했다. 받는 사람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은 이 편지에 대해 병진씨는 “민승호(閔升鎬·1830~1874)에게 보낸 편지라고 집안에서는 이야기한다”고 밝혔다.
편지는 적색과 황색으로 된 청나라제 예쁜 색지(色紙)에 한글로 썼다. 꽃과 나비 그림에 ‘위천연우’(渭川煙雨·중국 시안에 흐르는 강인 위천의 안개와 비) ‘당호동원사어미몽헌(當湖東園寫於味夢軒·중국 저장성의 호수인 당호의 화가 ‘동원’이 미몽헌에서 그렸다)이라는 글을 곁들인 아름다운 편지지에서 당시 스물넷 한창나이였던 명성황후의 취향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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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양 경희대 교수(국어학)는 “아주 잘 쓴 궁체(宮體)인데, 획의 돌림 등에서 날카롭고 꼼꼼한 성격이 엿보인다”고 밝혔다.
언제 쓴 편지일까. 날짜가 나와 있지 않지만, 두 통 모두 1874년 2월에 태어난 순종에 대해 언급했으며, 민승호는 1874년 11월 폭사(爆死)했기 때문에 편지는 그 해 쓴 것으로 보인다. 명성황후의 편지는 현재 3~4점 정도 전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200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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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은 명성황후의 조카.
명성황후의 오빠는 민승호입니다.
본래 민승호는 민치구의 아들로, 흥선대원군의 처인
부대부인 민씨와 남매간이었습니다만,
민치록에게 아들이 없어 양자로 들어간거죠.
1874년 집으로 배달된 폭약이 터져 일가족이 모두 죽었는데,
그 이후 민치삼의 아들 민태호의 아들 민영익이 민승호의 양자로 들어갑니다.
질문하신 민영환은 민치구의 아들 민겸호(민승호와 형제)의 아들입니다.
20세 21세 22세 23세 24세 25세 26세 27세
민광훈 ─ 민유중 ┬ 민진후 ─ 민익수 ─ 민백분 ─ 민기현 ─ 민치록 ┬ 민승호
│ └ 명성황후
├ 민진원 ─ 민형수 ┬ 민백상 ─ 민홍섭 ─ 민치삼 ─ 민태호 ─ 순명효황후
│ └ 민백흥 ─ 민상섭 ─ 민치오 ─ 민규호
├ 민진영 ─ 민낙수 ┬ 민백술 ─ 민단현 ─ 민치구 ┬ 민겸호
│ │ └ 흥선대원군 부인
│ └ 민백준 ─ 민정현 ─ 민치응
└ 인현왕후
200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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