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지법(2)

노칠환 / 기사승인 : 2018-09-05 17: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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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환노의 울산 이바구

서울에서 고시 공부를 하던 동생이 왔다. 시험에 연이어 낙방을 하고 사귀던 여친한테도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동생이 그의 집에 오고 보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동생과 별 대화가 없던 습성 탓도 있지만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 오후 3시 이후에 수업을 시작해 자정이 넘어 일을 마친 뒤에는 가까운 선생(강사)들과 이른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지낸 탓이었다. 그는 동생이 되지도 않은 고시는 때려치우고 그의 학원에서 수업을 맡아 줬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원장님, 삼촌이 이상해요. 밤마다 강의실에 앉아서 소주를 마시구... 오늘은 칼을 앞에 놓고 술을 마시고 있어요.” 학원 근처의 육회집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을 때 그의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뭐! 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 지금은 어디 있노?” 그는 아무 잘못 없는 아내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중등부 강의실요.”


함께 술 마시던 선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온 학원에 동생은 없었다.


“어디 갔노?”


“몰라요. 전화하는 사이에 나갔나 봐요. 복개천시장 부근의 포장마차에 자주 가던데...”


“알았다. 찾아보지, 뭐!”


선생들과 함께 마신 술이 얼굴로 올라오면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바쁜 걸음으로 동생이 있을 만한 곳으로 향했다. 복개천 도로가로 붙어 있는 포장마차 끄트머리에 앉아 있는 동생의 모습이 제법 먼 거리임에도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진정이 되지 않는 심장을 제지하며 천천히 포장마차에 다달았다.


“여 있었나?” 그가 태연한 척 말했다. 그러나 그의 동생은 돌아보기는 커녕 미동도 없다. “그래, 먼일인지는 모르지만... 술 마시고 있는 거 보이 마음이 놓인다. 한 잔 따라 봐라.” 머쓱한 느낌을 깔고 뭉개는 기분으로 동생 옆에 앉으며 그가 말했다.


포장마차 아줌마가 주는 술잔에 술을 따른 동생은 없는 사람마냥 석고처럼 앉아만 있더니 떠들고 있는 그에게 한 마디 불쑥 던졌다.


“니는 알 것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조용히 해라!”


“야! 새꺄, 니가 밤마다 칼을 앞에 놓고 고민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모른 척해란 말이가?”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이라는 녀석의 말하는 싸가지가 귀에 거슬렸지만 아내가 말한 것에 대한 사실은 확인을 해야 했다.


“커터 칼은 내 상비용이다.”라는 말을 남긴 동생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동네 뒷산이 있는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일마야, 술 쳐묵는데 멀라꼬 상비용 칼...” 동생을 잡아 세우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동생은 들은 척도 않고 멀어지고 있었다.


황급하게 계산을 치르고 어둠속으로 희미해져가는 동생을 놓치지 않기 위해 뛰어 갔다.


“야! 거 서라. 글로 가면 길 없다. 새꺄!” 키가 크고 날씬해 성큼성큼 달아나듯 가는 동생을 따라 잡으려 뛰어가던 그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었다.


몸무게가 100kg을 넘어선 지가 오래 되었다. 180cm가 넘는 키 때문에 그리 뚱뚱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배가 불룩하게 나와 있었다. 강의실과 술집에서 분필 가루와 술로 허약해진 몸은 빠른 걸음으로 달아나는 듯한 동생을 쫓기에는 무리였다.


그가 사라져버린 어둠속으로 한참을 걸어가자 길이 끝나는 지점의 낭떠러지가 나왔다. 안전장치로 막아놓은 담벽에 두 팔을 뻗쳐 손을 짚고 엎드린 자세로 동생이 서 있었다. 산을 깎아서 조성한 주택단지의 끝자락이었다. 낭떠러지 뒤로는 시커먼 어둠을 덮어쓴 산자락이 희미하게 보였고 2~3층 높이의 낭떠러지 밑에는 완성되지 못한 산골짜기가 도랑처럼 좌우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여서(여기서) 뛰 내릴라 카나? 지랄하고 자빠졌다. 여서는 안 죽는다. 근데도 겁나서 못 뛰겠나?” 그는 낭떠러지를 막아 놓은 울타리를 힘겹게 기어오르며 말을 하고 있었다. 동생이 말릴 사이도 없이 그는 골짜기 아래로 훌쩍 뛰어 내렸다.


철퍼덕 소리를 내며 물컹한 액체가 몸을 덮침과 동시에 발뒤꿈치에서 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저절로 튀어나온 비명소릴 느끼며 뛰어내린 위를 올려다보니 동생이 난간 위로 올라서고 있었다.


“뛰내리지 마라. 시궁창에 똥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동생도 뛰어 내렸다.


어둠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난간으로 막아 놓았던 골짜기 바닥에는 뻘 같은 것이 깔려 있었고 물컹한 뻘 아래에는 돌덩어리들이 있었다. 그들이 덮어쓴 액체에서는 하수구 썩는 냄새와 함께 똥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바닥을 걸어 난간을 세워둔 옹벽으로 걸어간 두 사람은 서로의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나?” 그가 동생에게 물었다.


“괜찮고 머고 이기 무슨 냄새고! 시궁창 냄새도 아이고 똥꿀내도 아이고 미치겠네. 니는 미친것도 아이고 머한다고 뛰내리가... 식겁하겠다.” 동생은 그를 원망했다.


“그래가 뛰 내리지 마라 켔는데, 인자 할 수 없다. 냄새보다 나는 다리가 부러진 것 같은데! 니는?” 그는 오른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아팠기 때문에 동생에게 물었던 것이다.


“발바닥이 닿을 때 뒤꿈치에 딱딱한 기 받치가 망치로 맞은 것같이 아프다. 머가 잘못 되기는 했는데! 냄새 때문에 미치겠다.”


“나는 오른 발목이 뿌러진 것 같다! 냄새는 씻으면 되는데 다리가 이래가... 여를 어째 올라가겠노?”


2미터가 조금 넘을 듯한 옹벽을 올라가기 위해 두 형제는 용을 쓰고 있었다. 그는 동생이 먼저 올라가 자기를 당겨 올리라고 하고, 동생은 자기가 받쳐줄 테니 먼저 올라가서 자기를 당기라고 하면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올라가기는 쉬울지 모르지만 나는 무거운 니(형)를 못 끌어올린다. 니(형)가 먼저 올라가라.” 그의 동생은 등을 밟고 올라가라는 형의 말에 반박을 하면서 동생인 그가 밑에서 받쳐 올려줄 테니 형이 먼저 올라가라고 말했다.


그는 발뒤꿈치가 아파서 서 있기도 어려운 지경이었지만 그의 동생은 발꿈치가 아프긴 해도 서 있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동생이 그의 뒤에서 그의 무릎을 껴안고 옹벽 위로 들어 올리려 했지만 그의 몸은 쉽게 들리지 않았다.


“와 이래 무겁노, 몸무게가 얼마고? 이런 몸으로...”


“야 새꺄, 그라이 니보고 올라가라 켔다 아이가. 내가 엎드리께 밟고 올라가라. 내를 못 올리겠으면 사람을 불러오면 안 되나?” 동생의 불평과 발목의 통증 때문에 짜증이 난 그가 말했다.


“니가 미쳤제? 이 드럽븐 꼬라지를 해가지고 사람을 불러라 말이가.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골이 난 동생의 볼멘 소리였다. “단디 해 봐라.” 그의 동생은 다시 한 번 들어볼 테니 형은 옹벽을 잘 잡고 자신의 힘을 잘 이용해보라고 하면서 다시 그를 들어올렸다.


그는 다치지 않은 왼발에 힘을 주고 두 팔을 들어올려 옹벽의 벽면에 손바닥을 붙여서 힘을 줬다. 그의 동생도 그가 몸을 옹벽에 붙이며 무게를 줄이는 순간에 그를 들어올렸다. 옹벽 위의 모서리가 그의 손에 잡혔다.


밑에서 그를 밀어 올리기 위해 용을 쓰는 동생의 어께와 머리를 왼발로 딛으며 간신히 도로 위로 올라간 그는 동생을 끌어 올렸다.


“덩치가 크이 힘도 좋네!” 그의 손에 끌려 올라온 동생이 그에게 한 말이었다.


“까불지 마래이, 내 힘 봤제. 니는 형한테는 안 된다.” 동생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그가 평소에 품고 있던 생각을 농담처럼 말했다.


“니는 꼭 그래 말해야 기분 좋나! 여러 말 말고, 인자 우짤래?”


동생은 올라왔으니 다음 대책이 뭐냐고 그에게 물었다. 길에 퍼질러 앉은 두 사람은 몰골을 확인했고 자신들이 얼마나 큰 곤경에 빠졌는지를 실감하고 있었다. 학원과 집까지의 거리는 2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았지만 몸에는 시궁창에서 묻은 오물과 악취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오른쪽 발목이 부러졌는지 딛을 수 없는 지경이었고 동생도 왼쪽 발목이 퉁퉁 부어 있었다. 형제는 서로를 비난하며 원망하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두 형제는 서로를 부축해가며 그의 학원으로 가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숨바꼭질하듯이...


그의 전화를 받은 아내는 학원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층 계단을 기어서 올라가야 했다. 화장실로 들어가 옷을 벗고 오물을 씻어내면서 두 형제는 처음 보듯 서로의 나체를 확인하고 있었다.


“발 뒤꿈치가 으스러졌다”고 의사가 말했다.


동생은 아킬레스의 인대가 늘어났다고 했다.


동생은 붕대를 감았고, 그는 뒤꿈치 뼈가 조각나서 수술해도 안 해도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깁스(plaster cast)를 한 후에 지켜보자고 해서 깁스를 했다. 깁스를 한 오후에도 수업은 해야 했다. 의자에 앉아서 하는 수업은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일주일 쯤 지났을 때 아내가 말했다.


“원장님, 삼춘 서울 갔어요.”


“차비도 없는 기(것이) 어째 갔단 말이고?”


“시장 아줌마한테 일수 얻어서 드렸어요.”


“뭐! 얼마를...?”


“오십만...”


“그런 거를 내하고 상의도 없이 결정하면 되나 안 그래도 죽을 지경인데, 이 사람이 생각이 있는 사람이가.”


“원장님은 뭘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시동생하고 좁은 집에서 함께 지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이나 해 봤어요. 성격이라도 좋아야지요. 말 한마디 없이... 삼춘이 안가면 내가 나갈라 했어요.”


노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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