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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박정희에대해 질문
비공개 조회수 110,651 작성일2012.12.09

 안녕하세요

조금씩 역사를 배워가고 있는 한 학생입니다.

박정희독재시대때 존f케네디가 만든 프레이져로 인해서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게 된것이잖아요.

그렇다면 경부고속도로나 포항제철은 미국의 계획으로 이루어진건가요?

아니면 박정희의 계획으로 이루어진건가요?

 

또 박정희가 경부고속도로를 설립했을때 대한민국 발전의 의도가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었다는데 그것도 설명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박정희의 독재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희 엄마아빠를 조금 설득시키고 싶어서 박정희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데요.

엄마아빠를 설득시킬 수 있는 박정희의 현실이나 세태에 대해도 조금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카키마사오로 일본에 혈서 쓴거 이런 기본적인것은 잘 아니까 박정희가 했던 일들이나 사건들에 대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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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시대에는 어쩔수 없는 현실이고 상황입니다

북에서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따르는 사람도 있지만  그사람들이 사는 체계가 그러니까요

변명은 아닙니다만 읽어보시고 귀하가 판단 하세요

친일이던,  친미던 국민이 편한 세상이 되어야지요

 

이글 속에 은지원에 대한 자료가 나와 있네요

 

 

정·관·재계 ‘거미줄’ 같은 

박근혜 친인척 혼맥 대해부

 

[특별기고]

박근혜와 문재인의 결정적 차이는 ‘혼맥’…

박정희 18년 통치의 수혜자들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 | media@mediatoday.co.kr  
입력 : 2012-12-03  16:10:50   노출 : 2012.12.06  08:53:14

대통령 선거가 2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박근혜와 문재인.

두 유력 후보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스스로 물어본다.

대답은 의외로 쉽게 돌아온다.

각각 대통령의 딸과 비서실장이라는 정치적 배경을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는 거의 모든 것이 차이점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두 후보의 지금까지 삶과 배경은 다른 정도가 아니라

대척점(對蹠點)에 서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적확할 것이다.

그 차이점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사람 즉 인적 네트워크다.

세 가지 대표적 인연 중 지연과 학연에서는 두 사람 사이의 비교우위랄까

차이점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

결정적인 차이가 혈연 즉 혼맥이다.

혼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6․25때 북한에서 거제도로 피난 온

실향민에게서 태어난 문재인은 박근혜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혼맥은 단순히 박근혜와 문재인 두 유력 대통령 후보의 차이점만을 설명하는 열쇠는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전체 인구의1%도 채 되지 않는 가벌(家閥)이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서 살아가는데 피할 수 없는3가지 세속적 욕망이나 가치,

즉 돈(금력),

권력,

명예 모두를 사실상 독점하거나 그 분배구조를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의 당락과 관계없이 혼맥은 기로에 선 한국 사회의 운명을 가를 열쇠가 될 것이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다해도 그는 혼맥으로 얽히고 설킨 지배세력과 힘든 싸움을 할 수 밖에 없다.

그가 모셨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경제민주화 방침을 철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가 속해 있거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지배세력의 혼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후보의 친인척,

그리고 혼맥으로 얽히고 설킨 새누리당과

박근혜 캠프의 주변 인사들에 관한 기사를 몇 차례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박정희 18년 통치의 수혜자 가족들.

박근혜 후보는 미혼이다.

그러나 그의 혼맥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다.

물론 이것은 박근혜 후보가 의도한 결과는 아니다.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은 뒤 죽을 때까지

나라를 다스린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박근혜에게 물려준 숙명과 같은,

그 어떤 물질적 재산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유산이다.

우선 박근혜의 직계 가족부터 보자.

아버지 박정희는 공식적으로 결혼을 두 번 했다.

그리고 여순반란 사건 때 남로당 핵심 간부로 체포돼 군법회의에 회부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만주군 선배들인

백선엽<동생 백인엽과 이름을 각각 한자씩 딴 ‘선인학원(현 인천대학)’ 설립>,

정일권(육군참모총장),

이용문 장군(이번에 대선 후보 사퇴하고 박근혜 지지를 선언한 전 대전고검장 이건개의 부친) 등의

도움으로 감형받으며

형 집행정지로 풀려난 바 있다.

그는 민간인 신분으로 육본 정보국에 근무할 때,

이화여대 출신과 동거한 적이 있다.

박정희는 이미 본부인 김호남과 결혼한 상태였다.

 

박근혜 형부 한병기(UN 대사) 가족,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로 막대한 돈 벌어

첫번째 부인 김호남(1920~1990)과 사이에 태어난

외동딸 박재옥(1938년생)의 남편이 한병기(1931년생) 전 캐나다 대사다.

8대 국회의원(민주공화당)을 지내고 유엔대사 등을 역임하고

1998년에는 대통령 자문기구인 방송개혁위원회 위원까지 지낸 바 있다.

박근혜 후보의 이복언니의 남편이다.

한병기와 그의 가족이 소유경영하고 있는

(주)설악관광은 설악산 권금성 산장으로 연결되는 케이블카를 운영하며 막대한 돈을 벌고 있다.

현재 한병기의 차남 한대현(1963년생)이 설악관광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박근혜에게는5촌조카인 셈이다.

 

한병기 사위 박영우 가족회사 대유신소재, 스마트저축은행 인수하려다 탄로나 무산

한병기-박재옥 부부는 슬하에2남1녀를 두었다.

사위인 박영우(1955년생)씨가 부인 한유진(1961년생)과 함께 (주)대유신소재와 계열사의 (최)대주주로서 부실저축은행인 스마트저축은행을 인수하려다 민주당 송호창 의원(현 무소속)의 문제제기와

한겨레신문 보도(2012년 7월26일자 5면, 2012년 7월30일자 6면 기사 참조) 등으로 무산된 바 있다.

대유신소재가 스마트저축은행 인수를 추진할 당시 정부와 금융당국자들은 ‘미래권력’이라 불리던

박근혜 후보와 친인척이란 사실 등을 고려한 듯,

갖가지 특혜를 주려했다는 것이 한겨레신문 보도의 요지였다.

한병기의 장남 한태준(1959년생, 연세대 졸, 브라운대 경제학 박사)은

경제기획원 연구원을 지내다 지금은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있다.

 

박근혜 남동생 박지만, 코스닥기업 (주)이지(EG) 실질 소유, 매출액 1천억원 육박

  

박지만 (주)EG 회장.

박근혜의 유일한 남동생 박지만(1958년생)에 대해서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중앙고등학교와 육군사관학교(37기)를

졸업한 박지만은 몇차례 마약복용으로 감옥을 드나들다가 이를 안타깝게 여긴

고 박태준 전 국무총리

(1927~2011, 포스코 회장,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비서실장 역임)의

도움으로 포스코에 산화철과 고철 등을 가공하여

납품하는 (주)이지(EG Corporation)를 인수하여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주)이지의 2011년 매출액은846억원이었고,

빅지만은 2012년8월 9일 현재 이 회사의 주식28.87%를 가진 최대주주다.

 

박지만 부인 서향희 변호사, 한 때 LH공사 법률고문 지내

  

서향희 전 법무법인 새빛 대표변호사.

박지만의 부인이자 박근혜 후보의 올케인

서향희(1974년생, 고려대 법학과 졸, 사법시험 41회) 변호사도 잘 알려져 있다.

서 변호사는 2002년 사법연수원(제31기)을 수료한 후 바로 변호사로 개업,

2009년부터 법무법인 주원 공동대표변호사로 일하다,

지난9월까지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 법률고문을 맡아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항간에는 한때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다 뇌물수수 혐의로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이상득 국회의원(이명박 대통령의 둘째형)의 ‘만사형(兄)통’에 빗대어,

“만사가 올케로 통한다”는 ‘만사올통’이라 부르기도 했다.   
  

박근혜 여동생 박근영, 첫결혼 실패하고 재혼 후 순탄지 않은 삶 

박근혜 후보의 가족 중 그를 가장 아프게 하고 있는 사람이

여동생 박근영(1954년생)이 아닐까 싶다.

경기여고와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나온 박근영씨는 1982년 방위산업체인

(주)풍산 회장인 류찬우씨의 장남 류청씨(1950년생, 전 풍산 부사장, 개인사업)와 결혼했으나

얼마 살지 못하고 이혼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원래 이름 근영(槿暎)에서 서영(書永)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다시 근영(槿令)으로 바꾼 것이 상징하듯 그녀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박근영씨의 굴곡진 삶은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사무실과 부지가 있는

육영재단 경영권을 둘러싼

언니 박근혜 후보와 남동생 박지만과의 갈등으로도 끝이 나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에는 보다 ‘심각한 상황’까지 발생하는 바람에

이제 박근영씨와 언니인 박근혜 후보와 남동생 박지만과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형국이다.

2008년 재혼한 박근영씨의 남편 신동욱씨(1967년생)는

처형인 박근혜 후보를 무고한 혐의로 징역을 살고 있다.

이제 박근혜 후보의 아버지 형제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박근혜 후보의 조부 박성빈(1871~1938)은 부인 백남의씨(1872~1949) 사이에5남2녀를 두었는데

5남이자 막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22살 많은 박정희 맏형 박동희옹 평생 농사, 아들 박재홍은 동양철관 경영

  
박재홍 전 국회의원.

박정희 맏형 박동희옹은 1895년생으로박 대통령과 무려 22살 차이다.

박동희 옹은 막내동생이 대통령이 된 후에도 고향에서 평생 농사만 짓다가

1972년 작고했다.

동생이 대통령이 된 뒤 정부 관계자가 박 옹이 사는 시골마을에

전기를 가설해 주겠다고 하자,

다른 지역 전기 가설 여부를 물어 본 뒤에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지역이 아직 많이 있다고 하자

대통령 형이 사는 마을에 전기를 먼저 가설할 수 없다고 거절한 얘기로 유명하다.

박동희옹은 슬하에1남1녀를 두었는데,

외아들 박재홍(1941년생, 고려대/대구상고 졸)은 포항제철에 납품하는

동양철관을 소유경영하다 11대부터14대까지 국회의원

(민정당, 현 새누리당)을 지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건강 문제로 요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정희 둘째형 박무희 손자들, 4촌끼리 살해 후 자살?       

만약 대통령의 자격 중 중국 고전에 나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구절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

박근혜 후보는 여동생 박근영과의 좀처럼 돌이키기 어려운 관계에 이어,

4촌 사이인5촌조카들 사이의 죽임과 죽음을 둘러싸고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이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목사 아닌 목사’ 최태민(1912-1994, 전 대한구국선교단 총재)과의 관계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문제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

일부 언론과 시사주간지 <시사인>은 최근호(272호)에서

2011년 9월6일 박정희 대통령의 둘째형 박무희씨(1898~1960)의 차남인 박재호씨

(1931년생, 전 동양육운 회장)의 차남 박용수씨(1960~2011)가

4촌동생인 박용철씨(1961-2011)를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과 관련,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사체부검 감정서 등을 근거로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피살된 것으로 경찰이 발표한

박용철은 박무희의 장남 박재석(1922년생)의4남2녀중 4남이다.

박재석씨는 민족중흥동지회 이사장과 국제전기산업협회장을 지낸 바 있다.    

    

가수 은지원의 할머니가 박정희 대통령의 큰누나

박근혜 후보에게는 고모가 둘이다.

큰고모이자 박정희 대통령의 큰누나인 박귀희씨(1901~1974)는

가수 은지원의 조부 은용표씨(1888년생)와 결혼,

1녀3남을 두었으나 장남(은희은)과 차남(은희준)은6․25때 전사하고

셋째아들인 은희만씨(1926년생)가 부인 김연순씨(1937년생) 사이에3남3녀를 두었고,

이 가운데 막내가3남 은지원(1978년생)이다.

은지원의 부친 은희만씨는박정희 대통령 생존시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한 바 있고,

은퇴 이후에는 서울 중구 장충동에서 사파리클럽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수 은지원은 아버지 은희만씨가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하다 은퇴한 뒤에도 한참 동안

박정희 대통령과 관계를 몰랐다고 한다.

우연히 아버지 서재에서 발견한 사진에 아버지와

박정희 대통령이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모습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다

아버지로부터 사실관계를 전해들었다는 것이다.

 

박정희 셋째형 박상희가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장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

박정희 대통령의 셋째형 박상희씨(1906~1946)는 사회주의자이자 항일운동가였다. 동아일보 지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아버지처럼 따르고 존경했던 셋째형 박상희로 인해

박정희는 자신의 일생에서 엄청난 소용돌이를 경험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남로당 핵심 간부로 여순반란 사건 때

체포되어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셋째형의 친한 친구인

‘거물간첩’ 황태성을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5․16 쿠데타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미국으로부터 사상적 의심을 받기도 했다.

박정희가1961년 쿠데타에 성공하자,

박정희와 황태성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북한은 당시 무역성 부상(차관)까지 지낸 바 있는

황태성을 비밀회담을 위한 ‘특사’로 파견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으로부터 사상에 관한 의심을 받던

박정희는 당시 반도호텔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을 만나러 온 황태성을 간첩으로 규정,

처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상희씨는 조귀분(1909년생)씨와 사이에 5녀1남을 두었고,

그 가운데 맏이이자 장녀인 박영옥씨(1929년생)가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부인이다.

‘냉혹한 권력의 화신’

 박정희와 ‘영원한 2인자’

김종필씨의 최고권력을 둘러싼 롤러코스터와 같은 복종과 갈등 관계 속에서도

두 사람이 파국을 맞지 않은 것은

셋째형의 피붙이인 조카딸 박영옥씨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연민이나 배려 덕분 때문이었을 것이라 분석하기도 한다.

 

김종필 동서 김희용은 벽산그룹 창업주 김인득의 차남

  

김인득 전 벽산그룹 명예회장.

김종필씨의 막내동서가 김희용(1942년생) 동양물산기업 회장이다.

그는 벽산그룹 창업주  김인득씨(1915~1997)의 차남으로

그의 부인이 박상희의 5녀 박설자씨(1945년생)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새마을운동 때 지붕개량 사업으로

초가집을 슬레이트와 함석(양철) 지붕으로 바꿀 당시

슬레이트를 독점 공급함으로써 급속하게 기업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0~40년 지난 지금 대표적 발암물질의 하나인 석면(asbestos)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슬레이트는 처리하는데 막대한 비용을 수반하는 난제 중의 하나이다.

이제 그 책임과 비용은 누구의 몫인가?
           
박상희의 외아들인 박준홍씨(1947년생)는 대통령인 작은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31세에 대한축구협회장을 지내기도 했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자민련 소속으로 경북 구미갑 선거구에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현재는 사단법인 민족통일촉진회의 총재다.

 

  

지난 1972년 10월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전국체전 예행행사에서 연출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카드섹션.

 


 
박근혜 후보의 외가쪽 인척 상당수, 정수장학회 등 관리 맡기도  
박근혜 후보의 외가쪽 인척들이 박정희 대통령이18년 통치하는 동안,

아니 최근까지 누린 영향력과 지위는 친가쪽 못지않다.

어떤 의미에선 훨씬 무서운 혼맥이자 네트워크로서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바라며 19일을 학수고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충청북도에서 최고갑부로 꼽혔던

박근혜 외조부 육종관씨(1894~1965)는 본부인 이경령 여사(1896~1976) 사이에 1남3녀를 두었는데

세 딸 중 차녀가 육영수 여사(1925~1974)다.

육종관의 맏이이자 장녀인 육인순씨(1914~1972)는 만주국 사무관 출신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홍순일씨(1910~1950)와 결혼했다.

육종관의 장남이자 육영수 여사의 오빠인 육인수씨(1919~2001)는 매제인

박정희 대통령 후광으로5선 국회의원(6~10대)과 국회 문화공보위원장을 지내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육영수 여사의 여동생 육예수씨(1929년생)의 남편 조태호씨(1923~1988)는

대통령을 동서로 둔 덕으로 서울MBC와 부산MBC 이사는 말할 것도 없고,

부산일보 회장 등을 거쳐,

1965년부터 1971년까지는 정수장학회 이사를 지내다,

1980년부터 1988년 사망하기 직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냈다.
   
박근혜 이종사촌과 형부 가족들, 대한민국 혼맥 축소판

박근혜 후보의 큰이모인 육인순-홍순일 부부는3남5녀를 뒀다.

장남인 홍세표씨(1935년생)는 춘천고와 고려대를 나온 뒤 한국은행에 입사하여

줄곧 금융인의 길을 걸어오다 한미은행과 외환은행장을 역임했다.

이후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 일하며,

중앙일보에 객원기자로 일하기도 하는 등 글쓰는 일에도 부지런하다.

그의 부인 김영자씨(1937년생)와 장녀인 홍소일씨(1963년생)는

고려대학에서 민속학과 정치학박사 학위 논문이 각각 통과된 뒤,

같은 날 학위를 수여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홍순일-육인순 맏사위 장덕진 고시3과 합격, 박정희 밑에서 농수산부장관   

  
장덕진 전 농림부장관.

홍순일-육인순의 맏사위 장덕진씨(1934년생)는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 이른바 고시3과에 모두 합격해,

1977년 43세 때 박정희 대통령이 농수산부장관에 임명했다.

대륙연구소를 설립해 중국 진출에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아들 장원준(1967년생)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

현재 산업부 차장으로 있다.

장원준 기자의 부인은 SBS 보도본부 한수진 차장이다.   

 

박근혜 사촌형부 한승수씨, 국무총리 거쳐 김앤장 고문 복귀

  
한승수 전 국무총리

홍순일-육종관 부부의 둘째사위 한승수 전 국무총리만큼 정부 안팎의 다양하고

화려한 요직을 거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그가 거쳐간 요직 중 대강만 꼽아보자.

이명박 정부의 국무총리,

국회의원(13, 15~16대),

UN총회 의장,

외교통상부장관,

상공부장관,

주미 대사,

(김영삼) 대통령 비서실장,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등등.

대통령직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정부와 국회 요직이란 요직은 다 거쳤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가 맡았거나 맡고 있는 직책 중 눈에 띄는 것이 법률사무소 김앤장 고문직이다.

그는 2004년 5월부터 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법률사무소인 김앤장의 고문으로 있다가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당선자)이 국무총리에 내정하자 그만뒀다가,

2009년 9월 국무총리직에 물러난 다음 달에 바로 김앤장 고문으로 복귀했다.

그는 현재 제일은행(현 스탠다트차타드은행)의 모그룹인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 사외이사와

맨스필드재단 이사도 맡고 있다.

그의 부인 홍소자씨(1939년생)는 보스톤대 교육학박사 출신으로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를 지내기도 했다.

 

한승수-홍소자 사위 김세연 새누리당 국회의원, 비상대책위원으로 활약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

한승수-홍소자 부부는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는데,

사위가 바로 김세연(1972년생)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다.

지난 4․11 총선을 앞두고 구성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도 활약한

김세연 의원은 부산 최대의 토착기업의 하나인 동일고무벨트의 최대주주로,

새누리당 국회의원 중 정몽준 다음으로 재산이 많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부친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의 부총재를 지낸 바 있는

김진재(1943~2005) 전 국회의원(11,13~15대)이다.

김세연씨는 부친 작고 이후 동일고무벨트를 경영하다,

18대 국회의원 선거 때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지역구(부산 금정)에

공천신청을 했으나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뒤 바로 한나라당에 입당했고 19대에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한승수 국무총리 사돈은 경총 회장 지낸 이수영 OCI 회장

  

이수영 OCI 대표이사회장.

한승수-홍소자 부부의 장남 한상준씨(1972년생)는 2004년 2월부터

2010년 2월까지 6년 동안 한국경영자총협회(약칭 경총) 회장을 지낸 바 있는

이수영 OCI(동양제철화학에서 개명) 회장의 조카딸과 결혼해,

장인이 지배하는 회사인 유니드의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2010년 2월 이수영 OCI 회장이 경총 회장직에서

물러 날 때까지 우리나라 기업측 3대 경제단체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경총) 대표 모두가

이명박 대통령과 한승수 국무총리 등을

비롯한 전현직 행정부 수뇌부와 재벌 회장 등과 혼맥으로 얽혀있어,

청와대 등에서 주요경제단체장과 간담회를 열면

‘가족회의’ 혹은 ‘사돈회의’로 불리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2007년 3월부터 작년 2월까지 전경련 회장을 지냈고,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손경식 CJ그룹 회장(대외담당)은

이병철 회장의 장손인 이재현(1960년생) CJ그룹 회장의 외삼촌이다.

손경식 회장의 부친은 손영기(1904~1976) 전 경기도지사로 삼성화재 전신인

안국화재 회장을 지낸 바 있다.

손경식 회장의 장인은 국회 법사위원장과 예결위원장을 지낸 김봉환(1921년생) 변호사이고,

손 회장의 장녀 손희영씨(1972년생, 동덕여대 교수)는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차남이자,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매형인 이동훈(1948년생)

전 제일화재 회장의 장남 이재환씨(1972년생)와 결혼했다.

 

육인순 셋째사위 유연상과 숙부가 영남대학 재단 이사와 이사장에

유연상씨(1933년생)는 한승수 전 국무총리의 바로 아랫동서이자

박근혜의 큰이모 육인순씨의 셋째사위다.

그는 1980년부터 1986년까지 학교법인 영남학원 이사를 지냈고,

방위산업 장비를 수출입하는 브라이틴코리아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그가 영남학원 이사를 재내는 동안,

그의 숙부인 유준씨(1916년생, 연세대 의과대학장, 경성의학전문학교 졸)는

영남대 재단 이사장을 거친 뒤 영남대 총장까지 지냈다.   

유준씨가 1980년부터 1983년까지 영남대학 재단(영남학원) 이사장으로 지내는 동안,

7명의 이사 중에는

박근혜 후보와 박 후보에게 현재 시가로 수십억원짜리 주택을 지어준

신기수(1937년생) 전 경남기업 회장,

그리고 박 후보의 여동생 박근영씨가 포함돼 있다.    

 

국책사업 ‘용인민속촌’도 박근혜 이종사촌 형부 가족 품에         

역사 드라마 촬영 등으로 유명한 용인의 한국민속촌은 1974년 개촌 당시

정부가 소요예산 14억1천여만원의 절반에 가까운6억8천만을 지원하여 국책사업으로 시작했다.

운영은 나머지 소요예산7억3천여만원을 투자한 민간 기업인 김정웅씨(당시 한국고미술협회 회장)에

위탁하는 방식이었다가 석연찮은 과정을 통해 1976년 10월 운영권 등이

박근혜 후보의 이종사촌 형부인 정영삼씨(1936년생) 가족 소유 회사에 인수된다.

한승수 전 국무총리의 아랫동서인 정영삼씨 가족은 이를 발판으로 재산을 증식해

현재 소유하고 있는7개 기업의 총자산은4,529억원(2011년말 기준)에 이르고,

이 회사들이 보유한 토지의 공시지가 총액만 2,93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지난 10월 정기국회 때 박원석 의원(현 진보정의당 소속)이

기획재정부 국정감사 과정에서 밝힌 내용이다.

정영삼씨는 한국민속촌을 경영하는 조원관광진흥(주)의 회장이고,

장남인 정원석씨(1971년생)가 대표이사 사장이다. 

 

  

1977년 3월 청와대 뜰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선 후보.


         
육인순-홍순일 막내사위는 윤석민 전 대한선주 회장

박근혜의 큰이모 육인순의 다섯째이자 막내사위는 윤석민(1938년생)

전 국회의원(한국국민당, 11대)이다.

윤씨는 1979년 12․12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전두환의 신군부 주도로

국가정보원(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이 배후에서 조종하여 탄생한 세번째 큰 정당이라 해서

(집권세력의) ‘3중대(여당인 민정당은1중대, 제1야당 민한당은2중대)’로 불렸던

한국국민당의 부총재도 지냈다.

대한선주의 부실에 따른 통폐합 이후에 윤씨는 서주산업 회장을 지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박근혜 외사촌 국립대 교수는 대전지역 11개 친박단체협의회 회장에
박근혜의 외조부 육종관씨는 알려진 혼외부인(첩)만 다섯 명이다.

혼외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만 최소 8명이다.

혼외부인 사이에 태어난 손자들 중에 충남대 교수로 있는 육 모씨는 자신의 고종사촌인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위해 지난 10월 22일 대전 지역 친박 성향 단체들을 아우르는

친박연합체의 회장에 선출됐다.

10월24일자 대전일보에 따르면,

이 친박연합회에는 박사모를 비롯해,

희망포럼,

대박산악회,

미래포럼,

포럼동서남북,

BH 대청클럽,

청산회 등 친박 외곽조직 및 팬클럽11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박근혜 친인척들, 재벌, 족벌언론사주, 관료 등과 혼맥으로 얽히고 설켜

결론적으로 박근혜 후보와 그 친인척들은

박정희 대통령이18년 독재를 통해 물려준 거대한 유산의 관리자 혹은 수혜자로서,

역시 박정희 장기독재와 특혜경제가 낳은,

전체 국민의1%도 되지 않는 지배계층과 혼맥으로 연결돼 있다.

 어느 재벌 회사 광고 카피처럼 거대한 ‘또 하나의 가족’이다.


꼭 참고하세요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최고에 대통령님이 십니다

 

박정희(朴正熙,  1917년 11월 14일 ~ 1979년 10월26일)는

대한민국의 군인·교사·정치가이며

제 5·6·7·8·9대 대통령이다.

대구사법학교 출신으로3년간 교사로 근무했고,

만주군관학교 졸업후 일본육균사관학교에 3학년 과정에 편입하여 졸업,

만주 보병제8사단에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할 때까지  만주국의 장교로 근무했다.

해방 이후에는 남로당에 입당했다.

(號)는 중수(中樹),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5.16 군사정변을 주도하였고, '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과 의장,

그리고  1963년12월 부터 1979년 10월26일까지

대한민국 의  제 5.6.7.8.9.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3선 개헌 및 유신헌법 등의 독재 장기집권을 반대하던

야당 및 학생운동 세력과 끊임없이 충돌하였고

1979년 10월에는 김영삼의원 제명 파동 등을 사주하여 부마항쟁을 야기하였다.

1970년 10월26일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박정희의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평가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으로 다양하게 나뉘고 있다.

우선은,

전쟁과 가난으로 피폐해진 대한민국을 국가주도의

'산업화'를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 경제를 부강하게 만들었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도시화와 다르게 새마을운동은  농촌발전에 대한 성공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으나

부정적인 평가에서는 개발 위주의 획일화된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존경하는 대통령을 비롯한

대통령 선호도와 공적 평가 등에 대해1위를 차지하고 있다.

5.16 군사정변,

10월 유신을 통한 인권 탄압,

노동 운동 및 야당 탄압,

군사유혈독재와 부정축재,

친일반민족행위 논란 등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존재한다.

한일협정을 강행한  것과 월남전 파병에 대한 평가가 양립하고 있다.


 

 

‘친박좌장’ 김무성 일가,

 4대 재벌가 얽힌 혼맥

 

 

 

[대해부②]

박근혜 후보 측근 인사들의 혼맥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 | media@mediatoday.co.kr  

입력 : 2012-12-11  13:58:28  

노출 : 2012.12.11  23:45:03

박근혜 후보에게는 신(神)이나 다름없는 박정희 대통령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물려줬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난 직후,

두 개의 청와대 금고(박정희가 직접 관리하던 금고와 비서실 금고)에서

나온 돈 6억원을 건네준 사람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다.

전두환(육사 11기, 1955년 임관)은

박정희가 5.16쿠데타 직후부터 양아들처럼 키운 사람이다.

박정희는 전두환을 위관 장교 시절부터 국가재건최고회의,

경호실 등에 (파견)근무토록 했고,

청와대로 수시로 불러 직접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금을 쥐어줬다.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영남대,

한국문화재단 등 엄청난 ‘장물바구니’는 별개로 하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치밀하고 냉혹한 ‘권력의 화신

’ 박정희는 어쩌면 자신의 ‘불행’에 대비해 군 안팎의 모든 정보를 관장하는

전두환을 보안사령관에 임명했는지도 모른다.

박정희는 그럴 수 있을 정도로 치밀한 사람이다.
      
‘박근혜의 신’은 그녀에게 돈만 물려준 것이 아니다.

돈보다 몇 천,

몇 만배 더 소중한 재산을 물려줬다.

바로 사람과 인적 네트워크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그녀의 당선을 위해 뛰고 있는 관계자들 중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이런 저런 인연의 끈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김무성 총괄선거대책본부장과 김종인 새누리당 행복추진위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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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총괄선거대책본부장 김무성, 친인척 상당수 박정희 시절 정부 요직
새누리당의 대통령 선거 실무 최고 책임자는 김무성 전 원내대표다.

박근혜의 복심으로 불리던 최경환 의원의 사퇴로 김무성 전 의원이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뒤,

선거가 가까워오자 당 안팎의 잡음이 사라졌다.

김무성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총괄선거대책본부장.

 

 

 

 

 

 

 

 

 

 

 

 

 

 

 

 

 

 

 

 

 

 

 

 

 

 

 

 

 

 

 

 

 

김종인 위원장이 할아버지한테서 정치를 배웠다면,

김무성은 아버지 ‘어깨너머’로 정치를 배웠을 법하다.

그의 아버지 김용주(1905-1985, 전남방직 회장/민주당 민의원 원내총무/초대 주일공사)가 그랬듯이

김무성에게도 기업가와 정치인의 DNA가 있는 것일까?

아버지와 아들이 국회 원내총무를 지낸 경우는

김용주-김무성 부자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아닐까?

김무성 자신만이 아는 가슴 아픈 가족사와 상관없이,

김무성과 그의 아버지 형제 중심의 혼맥은

정계,

재계,

관계,

법조계 등을 망라하는 가히 지배세력 혼맥의 축소판이라 부를 만하다.

김무성 혼맥지도에 등장하는 주요 친인척만 살펴보자.

강성태 상공부장관, 손창환 보사부장관, 이태희 검찰총장
이승만 정부 때 상공부장관을 지낸 강성태씨(1903-1976)와 역시 자유당 정부 때

보사부장관과 대한적십자사총재를 두차례나 지낸 의사 출신 손창환씨(1909-1966).

두 사람은 각각  김무성의5촌조카들의 장인이다.

법무부 검찰국장과 검찰총장을 지낸 변호사 이태희씨(1911-1999)도 김무성의 5촌조카의 장인이다.
 
박근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사범학교 4회 동기동창들 중에서

언론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사람들이

김지태 삼화그룹 회장에게서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 전신)를 강탈해 가는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던 황용주씨(1918-2001, 부산일보 주필/사장, 정수장학회 이사)와

서정귀(1919-1974) 전 호남정유 사장이다.

박정희 대구사범 동기동창 서정귀, 박정희 비서실장 이후락이 사돈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제국주의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

재무부 정무차관 등을 지낸 서정귀씨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호남정유(현 GS-칼텍스,전 LG정유) 사장을 지내는 동안

박정희의 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을 지내며 엄청난

‘떡고물 아닌 떡고물’을 챙긴 이후락씨(1924-2009)와 사돈을 맺었다.

서정귀씨의 차녀 서옥로씨(1946년생)가 이후락씨의 큰며느리다.

서정귀씨의 장녀인 서경자씨가 바로

김무성 본부장의 4촌 김규성씨(1919년생)의 큰며느리다.             

박정희의 사실상의 2인자로 군림하며 한 때5개기업을 뒤에서 봐주며

돈을 뜯어내 ‘5개기업 회장’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후락씨는 4명의 아들 중3명을 정유회사 집안으로 장가를 보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큰아들 이동진씨(1947-2004)가 앞에서 언급한 서정귀씨의 둘째사위고,

둘째아들 이동훈씨(1948년생, 전 제일화재 회장)가 경인에너지를 소유 경영했던

한화그룹 김종희 회장의 맏사위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매형이다.

이동훈의 부인 김영혜씨(1948년생, 김승연 회장의 누나)는

제일화재 대주주로 우리나라 여성 중에서 10대 부호다.

김승연 회장 동생 김호연 빙그레 회장, 새누리당 총괄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배임 혐의 등으로 감옥에 있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장인이

서정화(1933년생) 전 내무부장관이다.

서정화씨는 민정당(현 새누리당) 국회의원(12-16대)이 되기 전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내기도 했는데,

서정귀씨와는8촌간이다.

이후락씨의 네 아들 중 막내아들 이동욱씨(1962년생)는

SK정유회사를 거느린 SK그룹 공동창업주 최종건씨(1926-1973)의 넷째사위다.

현재 SK그룹은 최종건씨와 함께 그룹을 일군

동생 최종현의 장남 최태원씨(1960년생)가 회장을 맡아 경영중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위인 최태원 회장은 부인 노소영씨와 별거 중인 것으로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바 있다.


혼맥이란 네트워크가 워낙 얽히고 설키다보니,

돌고 돌아 겹사돈이 되기도 하고,

상상을 뛰어넘는 관계가 맺어지기도 한다.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피고 최태원 회장도 인척관계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태원 회장의 숙부 최종관(1934-, 전 SK그룹 부회장)의 사위가

나진호씨(1963년생, 한양증권 상무)로 경제부총리를 지낸

나웅배씨(1934년생)의 차남이다.

나웅배 전 부총리의 바로 밑의 여동생 나문숙씨(1938년생)가

한국전력 사장을 지낸 박정기씨(1935년생, 육사 14기 하나회 소속, 대구공고)의

부인이다.

나웅배씨의 또 다른 매제가2009년부터2년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을 지낸

이진강(1943년생)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이다.

윤필용 사건으로 임태희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장인

권익현(1933년생, 육사 11기) 전 민정당 대표 등과 함께 군복을 벗은

박정기 사장의 사위가 바로 지난주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한상대씨(1959년생)다.

한상대

검찰총장.

한상대 검찰총장은 배임 등으로 기소된 최태원 회장에 대해

대법원의 법정 선고 권고형량인7년보다 훨씬 낮은 4년을 구형토

대검 중수부 수사팀에게 지시해 관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검찰 내부의 비판에 굴복해 사퇴하는 굴욕을 당했다.

혼맥지도를 보면,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최태원 회장의 친분은 고려대 선후배로서

테니스를 같이 하는데서 오는 관계 이상임을 알 수 있다.     

조동성 교수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사돈 서봉균 재무부장관은

박대통령기념사업회 감사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최태원 회장의 막내숙부 최종욱씨(1939년생, SKM 회장)의 부인,

즉 최 회장의 막내숙모가 조동옥씨(1946년생)인데,

조동성(1949년생,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의 누나이다. 조동성 비상대책위원의 남동생 조동일씨(1958년생, 서울공대 전기공학과 교수)의 장인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재무부장관을 지낸 서봉균씨(1926년생)로

서 씨는 박정희기념사업회 감사이다.

조동성 교수의 부친 조효원씨(1917-1977, 전 연세대/서울대 정치학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스리랑카 통상대표부대사 등을 지내기도 했다.

김무성씨, 통일민주당 김영삼에 당사 임대 자금 제공 
김무성 본부장의 정치 역정은 본인의 노력과 별개로 당사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얘깃거리가 흥미롭다.

그는 원래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고향 포항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었다.     

노태우,

김대중

김종필과4자 대결로 치러진 1987년 12월 대선에서 당선을 확신한

김영삼 대통령 후보(당시 통일민주당 총재)는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치자금을 끌어다 쓰고 패배했다.

설상가상으로 그 다음해4월 치러진 총선에서 전국 득표는 2위를 하고도

의석에서는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에 뒤져 제1야당 지위도 내주고 말았다.

아마도 이 때가 김영삼 정치인생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다 보니,

당사를 구할 자금이 없어 애를 먹고 있었다.

그 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사람이 바로 김무성 본부장이다.

당시 돈으로 몇천만원으로 서울 서부역 뒤 조그만 건물을 당사로 임대할 수 있었다.

김무성 형 김창성씨, 박근혜의 한나라당에 당사 임대 

김창성 전 경영자

총협회장

그리고 세월이 흘러2003년

박근혜 대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천막당사를 마련하고

낮은 자세로 임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염창동에 당사를 마련해 들어갔는데

바로 그 건물의 주인이 김무성 본부장의 형인 김창성(1932년생) 전

경영자총협회 회장이다.

부친의 가업을 이어 (주) 전방 회장을 지냈고,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김 본부장의 둘째형의 장인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검찰총장과

전두환 대통령 시절 법무장관을 지낸 오탁근씨(1921년생, 경북고 21회)다.

오탁근씨의 매형이 바로 재무부장관을 지낸 천병규씨(1918-1993)다.

김무성씨 장인은 최치환 전 경향신문 사장,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김무성 본부장의 장인은5선 국회의원인 최치환씨(1923-1987)다.

미시간주립대를 졸업하고 도경찰국장(현 지방경찰청장)을 여러군데 지냈고,

이승만 정부의 공보실장(문화공보부장관)을 지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강탈한 경향신문사 사장을 지냈다.

관계에서 은퇴한 후에는 삼성그룹 고문과 경기고등학교 총동창회 회장을 지냈으며

조선일보 방일영(1923-2003) 전 회장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김무성 누나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모친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조부인 현준호씨 (1889-1950),

즉 김무성 본부장의 누나 김문희씨(1928년생, 용문학원 이사장)의

시아버지는 호남의 갑부로 일제 때 호남은행을 설립,

운영하다6.25 때 공산군에 의해 피살됐다.

현준호씨는 부친 현기봉씨와 함께 일제 때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내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기도 했으나,

현준호씨가 호남은행을 경영하면서 나름대로

우리말과 우리 민족을 지키기 위한 몇가지 원칙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져

친일행위를 둘러싸고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현준호씨가 호남은행을 설립,

경영하면서 발탁한 경남 산청 출신의 경리전문가는 부사장까지 올라 동업하다시피 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외조부인 김신석씨(1896-1958, 부산상고 졸)다.

김신석씨의5촌조카들이 바로 김영삼 대통령 시절 법무장관을 지낸

김두희씨(1941년생)와 법무부차관을 지낸 김상희씨(1950년생)다.

MBC 이상호 기자가 취재해 폭로한,

이른바X-파일에서 홍석현 회장과 이학수 삼성 부회장이 검사들에 떡값 아닌

뇌물을 돌리는 문제를 의논할 때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의 처삼촌 박정희 대통령 9년3개월 비서실장 지내

박근혜 후보에게는 경제민주화가 뜨거운 감자다.

그것은 김종인 위원장과 박근혜 후보 사이의 냉온탕을 왔다갔다하는 관계를 봐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김종인은 누구인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9일 오전 여의도 당사 회의실에서 열린

 `D-10 향후 선거대책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해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김 위원장은 "최근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실천 의지가 약해지지 않았는지

의구심을 갖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경제민주화에 대한

박 후보의 생각에는 변함없다는 데에 뜻을 같이 한다"고 말했다.

오른쪽 두번째부터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

안종범 의원,

권오을 총괄선대본부 부본부장,

이정현 공보단장.

 
 
 

 

 

 

 

 

 

 

 

 

 

 

 

 

 

 

 

 

 

 

 

 

 

 

 

 

 

그는 흔히 ‘경제민주화의 원조’라 불린다.

그럴만도 하다.

그가 바로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119조 2항을 입안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경제학자,

그는 노태우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 중 한 명이었고,

전두환의 신군부가 국회를 해산하고 대신

국가보위입법회의란 대체기관을 급조해 운영할 때 전문위원을 지냈다.

또한 전두환 대통령을 설득해 경제민주화 조항 도입에 반대하는 재벌과 장관 등

고위관료들을 제압하게 만든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의 인생 역정에 두 사람의 든든한 배경이 있다.

한사람은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佳人)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고,

다른 사람은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다.

김종인은 할아버지한테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자유당 정부 시절,

신년이 되면 입법부와 행정부의 모든 수장들,

심지어 대법원 판사들도 이승만 대통령에게 세배를 갈 때

그의 조부인 김병로 대법원장은 사법부 대표로서 권력 분립 등을

이유로 세배를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그의 조부가 한 때 야당의 지도자로 일할 때 밑에서 비서로 정치를 배웠다고 한다.

처삼촌 김정렴 비서실장 통해 박정희 대통령과 직간접 대화 

이진설 전

건설부 장관

김종인의 처삼촌이 박정희 대통령의 비서실장을9년3개월이나 지낸 김정렴씨다.

김종인의 장인 김정호씨(전 한일은행장)가 김정렴 비서실장의 형이다.

김종인은 처삼촌인 김정렴 비서실장을 통해 경제발전단계에서

예상되는 여러 문제점들에 관해

박정희 대통령과 많은 ‘간접대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실의 하나가1977년 의료보험제도의 도입이다.    

김종인의 친인척 중에는 헌법재판소장,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경제 각료 등이 두루 포진해 있다.

그의 매형은 박봉환 전 동자부장관이고,

4촌처남이 노태우 정부 시절 건설부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이진설씨다.

4촌처남이 같은 대통령 밑에서 경제수석을 지낸 것이다.

또 다른4촌처남 중에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윤영철씨가 있고,

또 다른 4촌처남이 얼마전 작고한 이택돈 신민당 국회의원(대변인/변호사)이다.  
 

윤영철 전

헌법재판소장

그는 독일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

서강대 교수로 재직했다.

서강대는 박근혜가 졸업한 학교이다.

서강대 교수 출신 중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참모나 경제각료를 지낸 사람이 많은데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남덕우 전 국무총리

(경제부총리/대통령경제특보/재무부장관)다. ‘서강학파의 대부’로 불린다.
 

정재철 새누리당

상임고문

남덕우 전 국무총리의 장남 남기선(1953년생)의

장인이 정재철 새누리당 상임고문

(민정당 재정위원장/4선 국회의원)이다.

남기선의 처남이자,

정재철 고문의 외아들이 바로

‘NLL 관련 별도 대화록 존재’ 주장으로 물의를 빚었던

정문헌 전 국회의원(17대)이다

그는17대 국회의원 선거때 아버지 지역구

(속초·고성·양양)에서 출마,

당선된 바 있고,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냈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장관

이명박 정부에서 고위직에 오른 김무성의 친인척 중,

‘강만수(현 산은금융지주 회장) 사단’의 일원으로 불리며,

청와대 경제수석,

필리핀 대사,

지식경제부장관직을 잇따라 지내며

‘최틀러(‘최’씨와 독재자 히틀러의 합성어)‘라 불리던

최중경씨가5촌조카 사위고,

또 다른 5촌 조카사위가UAE 대사로 있는 권태균 전 조달청장이다.

최씨는 최중경이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일할 때 UAE 대사로 발탁됐다.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

 

 

 

 

 

거짓입니다

일단 혈서부터 해명드리겠습니다

조선인은 엄연히 사회에서는 차별받았지만 법적으로는 일본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엄연히 일본 육사에 진학할 수 있었고 일본군도 될 수 있었습니다(위에 분이 잘못 쓰셔서)

박정희 대통령이 혈서를 써서 보낸 것은 사실이라고 압니다

그렇다면 그 배경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박정희는 혈서를 만주로 보냈습니다

당시 박정희는 대구사범을 졸업한 후 교사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군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계속 버리지 않았죠

따라서 군인이 되는 길을 찾아봤는데 길은 딱 2가지였습니다

한 가지는 일본 육사, 또 한 가지는 만주군관학교였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나이 제한에 걸렸습니다 보통 16~18세에 입학했는데 박정희는 20대 초반이었죠

그래서 만주로 혈서를 보냈습니다

만주에는 당시 대구사범 시절 박정희와 알고 지내왔던 아리카와 대좌가 있었고

그가 힘을 써서 나이 제한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되었고 합격했죠

그리고 박정희와 일본 육사를 연관지으며 친일파라고 모는 것은 오해입니다

당시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만주군관학교에서 일본 육사로 유학을 간 것이죠 마치 우리나라 장교들이 미국 같은 선진국으로 유학을 가서 훈련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일본 육사 졸업 후 돌아와서도 박정희는 만주군 장교가 된 것입니다 박정희가 친일파라면 일본 육사에서도 성적이 우수했던 박정희가 왜 일본군이 아닌 괴뢰국 만주국의 장교가 된 것인지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박정희는 만주군 장교 당시 팔로군과의 전투에 투입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공산군과의 전투였죠

비록 그것이 잘한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만주국은 일본의 괴뢰국, 표면상 동맹국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독립군을 토벌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당시 만주 근처의 독립군이 일제의 대토벌로 거의 괴멸 상태였고 독립군의 일부가 팔로군에 스며들어간 것은 사실입니다만 팔로군의 목적은 엄연히 공산 세력 확대였습니다 그 전투에 투입된 것이 친일이라면 한반도에서 살아남아 장사하고, 농사짓고, 초등학교 다니면서 황국신민서사 신사참배하던 모든 사람들이 친일파라는 논리입니다 그것은 아주 잘못된 논리입니다

  

201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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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ath of an Angel
지존
일본어, 한국사, 세계사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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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시대를 경험한 부모세대나, 겪지 못한 자식세대가 있지만
경험한 세대도 탄압을 받은 분, 안받은 분으로 나뉘어 격렬하게 상호비판을 하며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도, 독재자다, 국가 발전을 위해 애쓴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다 하며
지금도 여전히 격렬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인물을 두고 상반된 평가가 극렬하게 전개되는
이유는 우리시대의 사람이고 죽은지 얼마 안됬기 때문입니다. 

살다보면 이런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습니다. 부모님을 설득한다기 보다 부모님의 가치관이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시고 질문자님도 질문자님 신념대로 살아가면 그만입니다. 즉 이미 머릿속에 어떠한 가치관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걸 바꾸라고 설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박정희가 친일하고 독재하고 민주화탄압한것도 맞고, 경제 부흥을 일으켜 이만큼 잘 살게한것도 맞습니다.
다만 전자에 비중을 더 두느냐 후자에 비중을 더 두느냐는 사람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집니다.

포항제철, 고속도로 등은 우리의 편익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원조가 있었지만 미국의
계획대로 만들어진건 아닙니다. 미국이 조그만 한국땅에 고속도로를 계획하면서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포항제철 같은 경우는 일본의 원조를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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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수
 경부고속도로나 포항제철은 미국의 계획으로 이루어진건가요?

아니면 박정희의 계획으로 이루어진건가요?

또 박정희가 경부고속도로를 설립했을때 대한민국 발전의 의도가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었다는데 그것도 설명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박정희의 독재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희 엄마아빠를 조금 설득시키고 싶어서 박정희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데요.

엄마아빠를 설득시킬 수 있는 박정희의 현실이나 세태에 대해도 조금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카키마사오로 일본에 혈서 쓴거 이런 기본적인것은 잘 아니까 박정희가 했던 일들이나 사건들에 대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질문해 주셨네요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모두 박 전 대통령의 경제계발 계획입니다. 케네디에게 돈을 꾸러 갔을때 만나주지도않아 눈물흘리며 돌아오셨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살아보지도 않으셨으면서 그것에대해 말하지 마십시오

당시사람들은 좋아하고 혁명이라고 할정도로 사랑하는사람들이 많은데 왜 님께서 그러시나요

하지만 유신은 매우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식은 잘못되었죠

 

그리고 친일 혈서니 어쩌고 하시는데 민문연의 조작입니다.

당신이라면 사시에 붙은거 아는데 붙게해달라고 혈서 쓰시겠소?

 

 

요약하자면 박정희정권시절 6,25가 얼마지나지않았고 빨치산같은 족속들이 남아있었기에 철권통치를 감행하였다고 볼수있네요.

 

앨빈 토플러가 이런 말을했죠

 

“민주화란 것은 산업화가 끝나야 가능한 것입니다.
자유라는 것은 그 나라의 수준에 맞게 제한되어야 합니다.
이를 가지고 독재라고 매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201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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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

201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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