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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조선시대 머리 모양 표준화
비공개 조회수 2,180 작성일2018.07.17
조선시대 때 남여의 머리 스타일이 어떻게 표준화 돼있는지 자세히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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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웃기는민트
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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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
혼인한 남자의 전통적인 머리모양이다.전통사회에서는 혼인한 사람과 혼인하지 않은 사람 사이에 엄격한 차별을 두어, 어린아이라도 장가들면 상투를 틀고 성인 대접을 받았고, 나이가 많아도 혼인하지 않은 자에게는 하댓말을 썼다.

민상투
하류층의 결혼한 남성이 트는 머리모양새로서 일절의 수식 없이 상투만 얹는 것


땋은머리
땋은머리는 단군조선의 기록에도 나타나는 가장 오래된 한민족 미혼녀의 전통 머리
성리학의 영향으로 머리를 자를 수 없었으므로
긴 머리는 묶기보다 늘 땋아 내리는 것이 간편했을 것으로 보인다

바둑판머리
가르마를 바둑판 모양으로 나누어 여러 가닥으로 땋은 뒤 다 같이 뒤로 묶어 댕기를 드리운다.
태어나 두 번째 머리이다.(약 3~5세 정도)
낭자쌍계머리
생머리와 함께 미혼녀의 대표적 머리형인 ‘낭자쌍계’의 ‘낭자’란 쪽머리를 일컫는 것으로,
머리를 땋아 머리 뒤에서 좌우로 갈라 두 개의 쪽을 찐 형태이다.


대수머리
대수는 궁중에서 왕비의 의식용으로 대례복 차림에 사용되었던 머리 모양이다.
대수는 가체로 꾸미고 있으며 그 모양이 과대하고 화려했다


새앙머리
조선시대 말 궁중 견습 나인들의 머리 모양
새앙은 생의 늘임말인데,
명칭도 모양도 전통적인 쌍계에서 유래한 것이며
새앙머리는 궁중의 견습 나인들만이 아니라 왕가의 소녀들도 했고 민간의 처녀들도 했다.

얹은머리
두발(頭髮)을 땋아 앞 정수리에 둥글게 고정시키는 머리모양.
상대(上代)로부터 내려오는 부인의 기본 머리형
조선시대까지 그대로 시행되어 왔는데
, 가체를 더하여 높고 크게 만드는 것이 유행하여 가체에 대한 사치가 날로 심하여지고 폐단 또한 많아
1788년(정조 12) 발제개혁(髮制改革)을 단행하여
가체를 금하고 제 머리만으로 쪽을 찌고 족두리로 대신하라는 강력한 금령을 내렸다.


첩지머리
정조의 가체금지령 이후 궁중의 새로운 머리 형태.
첩지는 장식과 형태, 재료에 따라 신분을 나타내는 계급 표시이기도 하였고,
예장할 때 화관이나 족두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황후(皇后)는 도금한 용(龍)첩지를 사용하였고, 비(妃)와 빈(嬪)은 도금한 봉(鳳)첩지를,
내외명부는 지체에 따라 도금, 은, 놋쇠로 만든 개구리 첩지를 사용하였다.


개수머리
개화기에 유행한 반가 노부인들의 머리형
얼굴과의 조화를 쉽게 이뤄내 노부인의 품위를 돋우는 역할을 했다


코머리
고을 관아에 속한 기생의 우두머리
한 주막의 평민여성


떠구지머리

조선시대 궁중에서 왕비와 왕세자빈 등이 예장할 때 이용하던 머리모양
떠구지는 어여 머리 위에 올리는 비녀로, 떠받치는 비녀라는 용어에서 비롯


어여머리,어유미

궁중의 왕비, 공주, 옹주와 지체 높은 지밀상궁과
당상관 이상 반가 부녀자들만이 할 수 있다가
영조대에 이르러서는 어유미가 주로 외명부의 의식용으로 쓰였고
조선 말기에 와서는 떠구지머리와 어유미는 큰 구별 없이 혼용되었고
일반인도 잔치와 혼례 때에는 어유미를 사용할 수 있었다.

201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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