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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장승, 솟대, 서낭당 의 뜻과 마을 제사를 지내는 이유 그리고 은산별 산제와 성주신과 조왕신에 대해서 갈으켜주세용 답글 부탁드립니다.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6,883 작성일2009.12.04

저 숙제인데 답글 부탁드립니다.

장승:?

솟대:?

서낭당:?
마을 제사를 지내는 이유?
은산 별산제:?
성주신과 조왕신

그리고 심한 욕설은 삼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ㅎㅎ

그리고 좋은 하루 되세여......

내공 85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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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지식답변자
지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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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1: 장승 =  어느 마을 입구 첫머리 에 두개가 서 있습니다 !

하나는 ? 천하 대장군 이라 고 하문으로 써 있고요 !

두번째? 지하 여장군 이라 고 써 있는데 !

         두개의 장승이 마을 입구에 써 있는 뜻은 ? 우리 마을에 는 잡귀 들이 출입 하지 말라는 뜻으로 세운

          것입니다!

답변 2: 솟대 =   어떤 집의  어느 여인네가 남편이 일찍 죽고 그여인이 한평생 절개을 지키며 살은 인고의

                        높은 뜻을 나라에서 기리고쟈 나라에서 그 집에 내린 상징적인 하사품이라 할수 있습니다.

 

답변 3:서낭당 := 흔히 마을을 가고져 할때 작은 고개든 큰고개든 넘으면서 힘이드는데 아무리 기운이 없어 힘

들어도 어느지정된 나무 한그루 밑에 돌한개 씩을 사람들이 갔다 모아둔 장소을 일컬어

서낭당 이라 이름 붙여진 거지만 무속인들이 부르는 원 이름은 성황당 이라 부름니다.

이 서낭당에는 상여 나갈때 요령을 흔들며 어혀~~! 라고 무슨 말을 노래로 선창 하는 사람들

이 신이되어 이곳에 주재 한다는 뜻도 있어 일종의 길 안내자로 이해하면 됩니다!

   

답변4:마을 제사 = 우리가 살면서 조상님게 제사 날과 명절때 제사을 올리듯 마을 사람 들의 안녕과 무사고을

기원 하는 뜻으로 그마을을 위해 훌륭한 분들의 뜻을 기리어 마을을 살아가는 후손들도 먼

선친들을 뜻으로 보고배우며 마을의 편안함을 위해 향교라고 이름붙여진 장소에서 행합니

다!

답변5:성주신과 조왕신 = 성주신은 안방 의 대주 즉 가장을 뜻합니다.가장이 하는 모든일과 건강이 있어야 집안

이 편안하다고 해서 집안에서 굿 같은 것을 행할때 성주 즉 대주 가장의 이름으로 비는

행위이고 조왕신은 부엌 즉 주방을 일컬어 조왕신이 그가정의 식솔 들이 집안에서든 밖에

나가서든 굶지말고 배고프지 말라는 풍습에서 사람이 먹어야 살듯이 집안에서 굿을 할때

제일먼저 주방에서 빌고 그다음 성주가 머므는 안방에서 비는 행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은산 별신제  =은산 별신제는 은산 지역 바로 옆으로 흐르는 냇물이 있는데 자연 재해로 부터 마을 주민을 지

                       켜 달라는 마을 사람들의 기원 행사 인데 원낙 마을 주민들의 호응도가 높아 국가로 부터  무형

                        문화재로 승인 받은 무형 문화제 행사인데 충남 당진의 기지시리 줄다리기와 함께 외국에도

우리나라 무형문화제로 등록된 행사로 윤달이 있는 해에 큰 행사을 합니다!

2009.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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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uuu
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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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승 :

돌로 만든 석장승과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 있으며, 전국에 분포한다. 지방에 따라 장승·장성, 벅수, 법수, 당산할아버지, 수살목 등의 이름이 있다. 장승의 기능은 첫째 지역간의 경계표 구실, 둘째 이정표 구실, 셋째 마을의 수호신 역할이다. 길가나 마을 경계에 있는 장승에는 그것을 기점으로 한 사방의 주요 고을 및 거리를 표시하였다.


2. 솟대 :

전라도에서는 '소주', '소줏대', 함흥 지방에서는 '솔대', 황해도·평안도에서는 '솟댁', 강원도에서는 '솔대', 경상도 해안 지방에서는 '별신대' 등으로 부른다.

삼한시대에 신을 모시던 장소인 소도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소도에 세우는 솟대가 그것이며, 소도라는 발음 자체도 솟대의 음이 변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농가에서 섣달 무렵에 새해의 풍년을 바라는 뜻에서 볍씨를 주머니에 넣어 장대에 높이 달아맨다. 이 볏가릿대를 넓은 마당에 세워 두고 정월 보름날 마을 사람들이 농악을 벌이는데, 이렇게 하면 그 해에 풍년이 든다는 것이다. 또 민간신앙의 상징물인 장승 옆에 장대를 세우고 장대 끝에 새를 나무로 깎아서 달기도 하였다.


3. 서낭당 :

산신을 모셔놓은 신당으로서, 큰 산을 중심으로 산악숭배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고 동제당으로 신앙되기도 한다. 대개의 경우 산신은 산을 주관하며, 그 아래에 사는 마을 주민들도 수호한다고 믿어 동제당의 성격을 가진다. 서낭당 외에 산신당, 당산, 산제당 등의 명칭을 가지는데 서낭당은 경기 ·충청 ·강원 등지에서 많이 사용된다.

 

마을제사를 지내는 까닭은

 

-한해동안 마을 사람들이 변 탈 없이 지내고, 풍년이 들기를 비는 마음으로 지냈다.

-마을의 수호신에게 제를 올리고, 마을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장소에서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의식을 하였다.

-제사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서 음식을 먹고 노래를 하였다.

-마을 제사를 통해 마을의 중요한 일을 모두 모여 의논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

그리고 검색창에 내공냠냠치면 사전에 설명되어있는거 정말 웃김 ㅋ

 

2009.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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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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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승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워진 목상이나 석상. 마을의 수문신·수호신, 사찰이나 지역간의 경계표, 이정표 등의 구실을 하며,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나무기둥이나 돌기둥의 상부에 사람 또는 신장의 얼굴 형태를 소박하게 그리거나 조각하고, 하부에는 천하대장군·지하대장군 등의 글씨를 새겨 거리를 표시한 신앙대상물이며, 보통 남녀로 쌍이 되어 마주 서 있다.

 

장승은 동제의 주신 또는 하위신으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며, 솟대·돌무더기·신목·서낭당·선돌 등과 함께 동제 복합문화를 이룬다.

 

장승은 그 형태나 크기에 있어서도 다양하거니와, 몸체에 새기거나 쓰여진 이름도 다양하다. 천하대장군·지하대장군류, 상원주장군·하원당장군과 같은 도교적 장군류, 동방청제장군·서방백제장군·북방흑제장군·남방적제장군 등의 방위신장류, 불교의 영향을 받은 호법선신·방생정계·금귀·수조대장 등의 호법신장류, 풍수도참과 결부된 진서장군·방어대장군 등의 비보장승류, 기타 두창장승류가 있는데, 이 가운데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의 명문이 가장 많다.

 

2.솟대

 

신앙의 대상으로 세우는 장대. 지역이나 목적에 따라 짐대·소줏대·표줏대·솔대·거릿대·수살목·서낭대 등 여러 가지 명칭이 있다. 형태도 다양하여 일시적인 것이나 영구적인 것, 가정이나 개인신앙의 대상에서 촌락 또는 지역을 위한 것이 있다.

 

최근까지 흔히 민간에서 세우던 솟대는 기원적으로 ≪삼국지≫ 마한전에 나오는 소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손진태는 〈소도고〉에서 소도는 별읍이 아니라 대목이며, 이것이 신간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솟대’라고 하였다. 시라도리는 솟대가 신목을 숭배하던 신앙에서 발생한 것이라 하였다.

 

즉, 처음에는 생목을 잘라서 신간으로 삼았으나 차츰 나뭇가지를 버리고 장대만을 신간으로 삼게 되었으리라고 추측하였다. 이러한 신간숭배 민속은 한국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습속이다.

 

조간과 달리 일시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무 것도 조각하지 않고, 다만 대나무가지나 긴 장대 또는 소나무가지를 가지고 서낭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솟대가 수호신의 상징이라는 점과 성역의 상징 또는 경계나 이정표 표시 등의 기능이 있는 것은 장승과 마찬가지이다.

 

3.서낭당

 

마을의 수호신으로 서낭을 모셔놓은 신당. ‘성황당’이라고도 한다.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 형태로, 그 곁에는 보통 신목으로 신성시되는 나무 또는 장승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이곳을 지날 때는 그 위에 돌 세 개를 얹고 세 번 절을 한 다음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신이 있다.

 

서낭당은 서낭신을 모신 신역으로서 신앙의 장소이다. 이곳을 내왕하는 사람들은 돌·나무·오색 천 등 무엇이든지 놓고 지나다녔다. 물론, 그곳의 물건을 함부로 파거나 헐지 않는 금기가 지켜짐은 말할 나위가 없다.

 

서낭이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서, 또는 석전에 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민간에서의 서낭은 종교적 의미가 농후하다.

 

우리 나라에 서낭신앙이 전래된 것은 고려 문종 때 신성진에 성황사를 둔 것이 서낭의 시초라 한다. 그 뒤 고려에서는 각 주부현마다 서낭을 두고 이를 극진히 위하였는데, 특히 전주서낭이 유명하였다. 고려 고종은 침입한 몽고병을 물리치게 된 것이 서낭신의 도움 때문이라 하여 서낭신에게 신호를 가봉하였던 일도 있었다.

 

수호신으로서의 서낭은 조선시대도 널리 신앙되었다. 조선시대의 서낭은 국행 서낭과 민간에서의 서낭으로 나누어진다. 국행서낭은 호국이라는 두 글자를 붙였다.

 

서낭당의 형태는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① 서낭나무에 잡석을 난적한 누석단이 있고, 이 신수에 백지나 청·홍·백·황·녹색 등의 오색 비단 헝겊을 잡아맨 형태, ② 잡석을 난적한 누석단 형태, ③ 서낭나무에 백지나 5색 비단 헝겊 조각을 잡아맨 형태, ④ 서낭나무와 당집이 함께 있는 형태, ⑤ 입석 형태 등이다.

200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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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승
    ① 마을 어귀에 세워 두는 것입니다.
    ②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 재앙, 전염병 등을 몰고 오는 역신을 쫓아 내는 기능을 하였
       습니다.
    ③ 이정표 역할을 하거나, 마을의 경계를 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2) 솟대
    ① 조상들은 하늘에 있는 신이 솟대를 통해서 오르내린다고 생각하였습니다.
    ② 솟대를 세워 하늘을 섬기고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였습니

(3) 서낭당
    ① 질병, 재앙 등을 막기 위해 마을 입구나 산기슭 등에 서낭당을 세운 것으로 마을을 수호
       하는 서낭신을 모셔 두었습니다.
    ② 신에게 바치는 제물은 서낭나무에 걸어 두었습니다.
    ③ 마을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날 때 돌을 주워 던지는 풍습이 있습니다.


2. 마을 제사

(1) 성격
    ① 마을을 지켜주는 신들에게 지내는 의례입니다.
    ② 마을 사람들이 즐기는 잔치이며, 마을의 중요한 일을 의논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2) 제사를 지내는 이유 및 효과
    ① 한 해 동안 마을 사람들이 별 탈 없이 지내고, 풍년이 들기를 비는 마음에서 지내게 되었
       습니다.
    ② 함께 행사를 준비하면서 협동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습니다.
(3) 은산 별신제
    ① 억울하게 죽은 넋을 위로하고 마을의 풍요와 평화를 기원하는 마을 제사 입니다.
    ② 오늘날에는 8일 동안 행해지며, 무형 문화재 제9호입니다.

3. 조상들이 서로 도우며 생활했던 모습

(1) 두레
    ① 마을 단위로 조직한 공동 노동 조직입니다.
    ② 농촌에서 농사일로 바쁠 때에 서로 힘을 모아서 공동으로 일을 하던 모임으로, 특히
       모내기 때부터 김매기가 끝날 때까지 공동 작업을 하기 위한 것 입니다.
    ③ 마을에 큰 일(마을 축제, 장례, 혼례)이 있을 때에도 조직되었습니다.
(2) 품앗이 :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서로서로 노동을 교환하는 것입니다.
(3) 농악
    ① 대표적인 민속 놀이의 하나로, 풍물놀이라고 합니다.
    ② 농악의 다양한 형태 : 마을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기 위한 것, 마을 사람들의 공동
       작업에서 일의 능률과 흥을 돋우기 위한 것, 집집마다 돌며 복을 빌어 주고 쌀과 돈을
       거두는 것, 각종 민속 놀이에 흥을 돋우는 것 등의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③ 농악은 우리 민족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민속 놀이로, 오늘날까지 중요한 민속 음악
       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4. 함께 즐겼던 놀이

(1) 고싸움놀이 : 양편의 고가 서로 부딪쳐 고를 눌러 땅에 닿게 하여 승부를 겨루는 놀이
    입니다. 광주 칠석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민속 놀이입니다.
(2) 줄다리기 : 볏짚을 이용하여 암줄과 수줄을 만든 다음, 마을 단위로 두 편으로 나누어 줄을
    당기는 놀이입니다. 줄다리기에서 암줄이 승리해야 풍년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마을제사

동제:제사와 굿이 혼합된것으로 촌락의 조상신 또는 수호신에세 풍요와 재앙을 막아 줄것을 비는 제사
산신제:마을 뒷산의 중턱이나 산기슭에 당을 마련해놓고 매년 정초에 날을 잡아 풍요 건강 행운을 기리며 산신에게 지내는 재사
기우제:가뭄이 오래 계속될때 나라와 민간에서 비오기를 기원하며 용왕신이나 천신에게 지내는 제사
탑신제 :마을을 지키고 평안을 빌며 질병과 악귀를 좆아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풍어제:해안지방 도서지방의 어촌에서 풍어와 마을의 평안 해상의 안전을 비는 제사.

제사 종류
동제:제사와 굿이 혼합된것으로 촌락의 조상신 또는 수호신에세 풍요와 재앙을 막아 줄것을 비는 제사.
산신제:마을 뒷산의 중턱이나 산기슭에 당을 마련해놓고 매년 정초에 날을 잡아 풍요 건강 행운을 기뤙하며 산신에게 지내는 재사.
기우제:가뭄이 오래 계속될때 나라와 민간에서 비오기를 기원하며 용왕신이나 천신에게 지내는 제사.
탑신제 :마을을 지키고 평안을 빌며 질병과 악귀를 좆아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풍어제:해안지방 도서지방의 어촌에서 풍어와 마을의 평안 해상의 안전을 비는 제사.
은산별신제:억울하게 죽은사람의 넋을 위로하고 마을의 풍요와 평화를 기원하는 마을 제사.
두레: 한국 농촌사회에 있어서의 전통적인 공동노동(共同勞動) 가운데 하나. 주로 모내기나 김매기 때와 같이 단기간 내에 대규모의 노동력을 집약적으로 투입해야 할 때 관행(慣行)되어 왔다. 두레는 고대의 씨족공동사회에서 지역공동체의 호칭이었다가, 점차 인위적인 공동체로 변해온 것으로 생각된다. 두레는 협력의 합리성을 강조한 제도이고, 품앗이는 증답(贈答)과 교환관념에 비중을 둔 제도이다. 나아가 두레에는 마을 성원들의 능력에 대한 평등관이 깔려 있기도 하다.
향약: 조선시대 권선징악(勸善懲惡)과 상부상조(相扶相助)를 목적으로 마련된 향촌의 자치규약. 〔향약의 도입 역사〕 향약의 시작은 중국 송(宋)나라 남전현(藍田縣)의 여씨형제(呂氏兄弟)가 만든 《여씨향약(呂氏鄕約)》을 출발점으로 하여, 한국에는 고려말에 남송(南宋)의 주희(朱熹)의 《주자증손여씨향약(朱子增損呂氏鄕約)》이 도입되었다.
품앗이: 농업생산에서 농민들이 노동을 서로 교환하는 단순협업(單純協業). 품앗이라는 말은 노동 또는 노동력을 의미하며, <품>과 <앗다>의 명사로로서 품일을 품일로서 갚는다는 뜻인 <앗이>의 복합어로서 두레와 마찬가지로 예전부터 우리나라 농촌에 널리 관행되어 오는 것이다. 품앗이는 이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것으로서 최소규모는 2∼3인이다. 또 두레는 도작지대(稻作地帶)의 농촌에서 널리 보급되고 있으나 품앗이는 전작(田作)지대에서도 관행되고 있다. 품앗이에는 인간의 노동력만이 아니고 가축이나 농기구같은 것도 그 일원으로서 참가하는 일이 많다.
경기도 축제
과천한마당축제 남양주세계야외공연축제 단원미술제 부천루미나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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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축제
마포나루굿축제 서울세계불꽃축제 세계애완동물축제

컴필레이션뮤직페스티벌
하이서울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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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승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워진 목상이나 석상. 마을의 수문신·수호신, 사찰이나 지역간의 경계표, 이정표 등의 구실을 하며,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나무기둥이나 돌기둥의 상부에 사람 또는 신장의 얼굴 형태를 소박하게 그리거나 조각하고, 하부에는 천하대장군·지하대장군 등의 글씨를 새겨 거리를 표시한 신앙대상물이며, 보통 남녀로 쌍이 되어 마주 서 있다.

 

장승은 동제의 주신 또는 하위신으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며, 솟대·돌무더기·신목·서낭당·선돌 등과 함께 동제 복합문화를 이룬다.

 

장승은 그 형태나 크기에 있어서도 다양하거니와, 몸체에 새기거나 쓰여진 이름도 다양하다. 천하대장군·지하대장군류, 상원주장군·하원당장군과 같은 도교적 장군류, 동방청제장군·서방백제장군·북방흑제장군·남방적제장군 등의 방위신장류, 불교의 영향을 받은 호법선신·방생정계·금귀·수조대장 등의 호법신장류, 풍수도참과 결부된 진서장군·방어대장군 등의 비보장승류, 기타 두창장승류가 있는데, 이 가운데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의 명문이 가장 많다.

 

2.솟대

 

신앙의 대상으로 세우는 장대. 지역이나 목적에 따라 짐대·소줏대·표줏대·솔대·거릿대·수살목·서낭대 등 여러 가지 명칭이 있다. 형태도 다양하여 일시적인 것이나 영구적인 것, 가정이나 개인신앙의 대상에서 촌락 또는 지역을 위한 것이 있다.

 

최근까지 흔히 민간에서 세우던 솟대는 기원적으로 ≪삼국지≫ 마한전에 나오는 소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손진태는 〈소도고〉에서 소도는 별읍이 아니라 대목이며, 이것이 신간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솟대’라고 하였다. 시라도리는 솟대가 신목을 숭배하던 신앙에서 발생한 것이라 하였다.

 

즉, 처음에는 생목을 잘라서 신간으로 삼았으나 차츰 나뭇가지를 버리고 장대만을 신간으로 삼게 되었으리라고 추측하였다. 이러한 신간숭배 민속은 한국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습속이다.

 

조간과 달리 일시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무 것도 조각하지 않고, 다만 대나무가지나 긴 장대 또는 소나무가지를 가지고 서낭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솟대가 수호신의 상징이라는 점과 성역의 상징 또는 경계나 이정표 표시 등의 기능이 있는 것은 장승과 마찬가지이다.

 

3.서낭당

 

서낭당은 산신당과 같은 뜻입니다.

 

즉, 산신을 모셔놓은 신당.




큰산을 중심으로 산악숭배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고 동제당으로 신앙되기도 한다. 대개의 경우 산신은 산을 주관하며, 그 아래에 사는 마을 주민들도 수호한다고 믿어 동제당의 성격을 가진다. 산신당 외에 서낭당 ·당산 ·산제당 등의 명칭을 가지는데 산신당은 경기 ·충청 ·강원 등지에서 많이 사용된다. 이 밖에 절안에 있는 산신당 ·산신각 등은 민간신앙이 불교와 습합하여 이루어진 형태이다. 동제당으로서의 산신당은 아무 표시가 없지만 마을과 가까운 산의 어느 특정한 장소를 정하여 주민들이 산신제를 지내는 당으로 신앙하는 경우도 있고 특정 나무를 신체로 모시면서 주변을 산신당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또는 당집을 지어 위패와 신상도를 모시는 수도 있다. 산신의 신상도는 대개 범을 거느리고 있는 노인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대관령의 산신처럼 신라의 장군 김유신과 같은 특정한 인물을 주신()으로 모시는 경우도 있다.

 

 

서낭당

 

마을의 수호신으로 서낭을 모셔놓은 신당. ‘성황당’이라고도 한다.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 형태로, 그 곁에는 보통 신목으로 신성시되는 나무 또는 장승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이곳을 지날 때는 그 위에 돌 세 개를 얹고 세 번 절을 한 다음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신이 있다.

 

서낭당은 서낭신을 모신 신역으로서 신앙의 장소이다. 이곳을 내왕하는 사람들은 돌·나무·오색 천 등 무엇이든지 놓고 지나다녔다. 물론, 그곳의 물건을 함부로 파거나 헐지 않는 금기가 지켜짐은 말할 나위가 없다.

서낭이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서, 또는 석전에 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민간에서의 서낭은 종교적 의미가 농후하다.

우리 나라에 서낭신앙이 전래된 것은 고려 문종 때 신성진에 성황사를 둔 것이 서낭의 시초라 한다. 그 뒤 고려에서는 각 주부현마다 서낭을 두고 이를 극진히 위하였는데, 특히 전주서낭이 유명하였다. 고려 고종은 침입한 몽고병을 물리치게 된 것이 서낭신의 도움 때문이라 하여 서낭신에게 신호를 가봉하였던 일도 있었다.

수호신으로서의 서낭은 조선시대도 널리 신앙되었다. 조선시대의 서낭은 국행 서낭과 민간에서의 서낭으로 나누어진다. 국행서낭은 호국이라는 두 글자를 붙였다.

 

서낭당의 형태는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① 서낭나무에 잡석을 난적한 누석단이 있고, 이 신수에 백지나 청·홍·백·황·녹색 등의 오색 비단 헝겊을 잡아맨 형태,

 ② 잡석을 난적한 누석단 형태,

 ③ 서낭나무에 백지나 5색 비단 헝겊 조각을 잡아맨 형태,

 ④ 서낭나무와 당집이 함께 있는 형태,

 ⑤ 입석 형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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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문당리성황단
 
종    목시도민속자료 
제13호 (괴산군)
명     칭괴산문당리성황단(槐山文塘里城隍壇)
분     류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제사유적/ 성황당
수량/면적1곽(廓)
지 정 일2002.07.12
소 재 지충북 괴산군  청안면 문당리 산96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오리목마을
관 리 자오리목마을(괴산군)
상 세 문 의충청북도 괴산군 문화체육과 043-830-3444

 

성황단은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신인 서낭신에게 제사하기 위한 제단으로, ‘서낭단’이라고도 한다. 주로 마을 입구나 고갯마루에 작은 돌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가까이에 나무가 있다.

문당리 성황단은 오리목 마을 입구에 있는데, 제단부와 좌우 돌탑 등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성황단은 비교적 정연한 형태로 쌓은 제단부를 중심으로 좌우에 2기의 원추형 돌단을 쌓아 남성 성기형의 적석단을 이루고 있다. 산에서 사룡(蛇龍)이 마을을 향하여 긴 꼬리를 하고 내려오는 형상의 돌무지 성황단으로 양쪽에 남성 성기 모양인 2개의 돌무지가 있고 가운데에 남근 모양의 형상으로 만든 적석단의 특이한 성황단이다.

돌탑을 좌우에 두고 가운데에 폭 3m, 길이 5m 규모의 제사공간과 90㎝×90㎝정도 크기의 제물대를 갖춘 제단을 쌓은 것이다. 제단부에서 산쪽으로 꼬리를 끌 듯 10여m 가량 돌무지를 늘여 쌓아 마을 주산으로 연결하고 있다.

이 성황단은 마을이 형성되었던 조선시대 중기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매년 정초에 색색의 헝겊을 끼운 금줄을 적석단 옆의 신목(神木)에 쳐놓고 생기발복일(生氣發福日)을 골라 제사를 지내되 3일전부터 금기가 있었으나 요즈음은 사라졌다.

차츰 사라져가는 마을신앙 유제(遺制)의 보존과 조성된 시기가 분명하지 않으나 지금까지 알려진 일반적인 형태와는 다른 독특한 형태를 갖춘 제당(祭堂)형식으로 그 예가 드물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답변
1. 위 자료 참고하시고
2.같은 말입니다 소리 나는대로 읽고 쓰는 문법문제입니다

2009.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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