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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프랑스에 대해 궁금한게 많은데요...궁금한 것들 안에 있으니 자세히 좀 알려주세요
mais**** 조회수 21,743 작성일2005.08.06

우선 프랑스에는 어떠한 도시들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글구 프랑스의 축제, 건축물, 유명인, 특산품, 영화, 음악, 미술, 음식 문화 등의  기타 여러가지들을 자세히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단순히 이름만 열거 하는게 아니라 축제가 열리는 기간과 뭘 위한 축제인지, 역사와 유래, 언제 지어졌고 어떤 양식의 건물이며, 느낌이나 뭐 그런 세세한 설명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림두 함께 올려 주시면 더 감사하겠구요...

 

글구 와인에 대해서 알구 싶은데요.

와인의 종류

유래

라벨 읽는 법

시음 법

와인 잔

도수 나누는 법

와인에 따라 어떤 음식에 어울리는가

글구 와인을 만드는 포도의 종류

와인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지방

그 밖에 와인에 관한건 모든걸 다 알려주세요

 

2시간을 계속 찾아보고 있는데... 제가 원하는 것 처럼 자세하게 나온데가 없네요...

한 싸이트 발견 했는데... 잘못해서 창이 닫혔는데 그 뒤로 아무리 검색을 해보고 해도 안나오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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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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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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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하이요..
ㅈㅅ하지만. 넘 많아서 할수없이 퍼왔는데요. ^^;
읽기가 좀 번거로울거 가타요..
와인싸이트는.
www.bestwine.co.kr에서
회원가입하구난뒤에. basic코너에서. 밑에보면 시음및 ??
라 있음.
거기 클릭하면.. 로그인해라구 나와요 ㅡㅡ;

1) [레이블 읽기]

와인을 마시기 전에 잠깐! 시음을 하기 전에 꼭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 마시는 와인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단계이죠. 레스토랑에서는 웨이터가 와인을 따르기 전에 와인을 확인할 수 있도록 레이블을 보여주죠? 이럴 때나 직접 와인 샵에서 와인을 고를 때나 와인병에 붙어 있는 레이블은 꼭 잘 살펴 주셔야 합니다. 근데, 외국어로 되어 있어 어떤 내용이 써있는지 조차 모르시겠다구요? 다 그게 그것 같다구요?

와인의 얼굴. 와인 레이블.

처음에는 외국인들이 구별이 잘 안되듯이 와인도 그렇습니다. 다 비슷하게 생긴 병에 담겨 있고, 레이블에는 복잡하게 뭐라고 뭐라고 써있는데,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그러나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비슷한 내용의 정보를 제공하도록 되어 있고 몇 가지 예외적인 조항이 있을 따름이니까요.




프랑스 와인 레이블
이태리 와인 레이블


그럼, 레이블의 세계의 문을 열어 보시겠습니까? 와인의 레이블은 생각만큼 복잡하고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자신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려고 노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레이블에는 와인의 생산자명, 생산지역명, 빈티지, 포도 품종, 사용된 포도의 숙성 정도, 와인의 직접 재배병입여부, 기타 정보 등이 표시됩니다. 국가에 따라 레이블에 표시되어야 하는 정보들이 다르기 때문에 제공되는 각각의 정보에 대해 먼저 알아보고 각 국가의 레이블에서 이를 확인해 보도록 합시다.

우선, 와인 생산자명. 우리 나라에서는 실제로 와인 생산자 내지는 Winery 이름을 와인명으로 사용하고 있죠?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 샤또 마고(Chateau Margaux), 샤또 라투르(Chateau Latour)등은 제조자 명이랍니다. 그럼, Chateau Lascombes(샤또 라스꼼브), Stag's Leap와 Fontanafredda는 무엇일까요? ^^

두번째는 생산지역명. 생산지역이라고 하면 그 와인에 사용된 포도가 재배된 지역 또는 국가명을 의미한다. 생산지역명은 프랑스 보르도처럼 넓은 지역일 수도 있고, 보르도의 세부지역인 마고(Margaux)일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그냥 캘리포니아라고 명시되는 경우도 있고 Napa Valley라는 세부 지역명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지역명을 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생산지역명 표시를 법률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특정 지역명을 사용하려면 그 지역의 와인 85%를 사용해야 합니다. 이 조건을 지킨 경우에만 AOC(佛) 또는 DOC(伊)와 같은 사항을 레이블에 표시할 수 있습니다.(AOC와 DOC에대한 설명은 국가별 특징을 참조하세요^^)

셋째, 와인등급. 와인의 품질 구분이죠. 프랑스에서는 지역명표시가 와인의 품질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AOC를 하나의 등급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 등급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각 국가마다 같은 등급 기준과 명칭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명칭들을 익혀 두시는 것이 좋은데, 가장 핵심 국가들의 등급 기준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프랑스 : vin de table, vins de pays, VDQS, AOC

독 일 : tafelwein, landwein, QbA, QmP

이태리 : vino da tavola, IGT, DOC, DOCG etc.

앞에서 국가별 특징에서 이 내용을 설명해 드렸는데 다 기억나시죠?

네째, 빈티지. 와인에 사용된 포도가 재배된 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러 해의 포도로 생산된 와인을 블랜딩해서 쓰는 것은 빈티지가 명시되지 않는 것(non-vintage)도 이러한 이유에서죠. 따라서 빈티지를 와인의 출고년도 또는 와인이 병입된 해로 잘못 이해하시면 안됩니다!! 와인의 재료가 된 포도가 재배되던 해의 기후 조건이 좋았으면 와인의 품질도 좋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좋은 해(great years)의 포도로 생산된 와인은 다른 해의 와인보다 가격이 높습니다.

다섯째, 포도 품종. 와인생산에 사용된 포도 품종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정보는 모든 레이블에 다 명시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프랑스와 이태리 와인 레이블들은 포도품종을 표시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각 지역마다 재배되는 포도 품종이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명이 곧바로 특정 포도 품종과 연결 지어지기 때문이죠. 예로, 보르도에서는 까베르네 소비뇽, 까베르네 프랑, 멜로, 쁘띠 베르도와 말벡 품종만을 재배하기 때문에 보르도라는 지역명칭 내지는 보르도의 세부지역이 표시된 경우에는 이 품종들이 사용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태리 피에몬테 지역 (또는 그 세부지역 바롤로, 발르바레스코)라고 표시된 와인 레이블의 경우에는 달리 품종 표시가 없어도 네비올로가 사용되었음을 유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알자스 지방이나 독일 그리고 신흥 와인 생산국에서는 사용된 포도 품종이 바로 레이블에 표시됩니다. 단, 그 품종이 어느 정도는 사용되어야 된다는 법적 조건을 만족시킨 다음에야 가능하죠. (미국의 경우에는 75%이상, 유럽과 호주에서는 85%이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섯째, 사용된 포도의 숙성도에 의한 구분. 모든 와인 레이블에 표시된 경우는 아니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레이블에서는 포도의 숙성정도와 이 포도로 만든 와인들의 품질을 나타내는 용어들을 표시하게 되어있습니다. 예로, 독일 레이블에서 볼 수 있는 Kabinett, Spatlese, Auslese, Beerenauslese, Trockenbeerenauslese들이 이에 해당하죠.

일곱째, 포도원 병입 여부 및 생산자 주소 등. "Estate Bottled", "Mis en bouteille(s) au Chateau(佛)", "Gutsabfullung" 또는 "Erzeugerabfullung(獨)"은 모두 와인 생산자가 직접 포도를 재배하고 이를 양조 병입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포도원에서 직접 병입하지 않는 경우에는 달리 "Mis en Bouteille par(佛)" 내지는 "Bottled by" 등으로 표시되구요.




프랑스 와인 레이블
독일 와인 레이블


여덟째, 기타 요구되는 정보. 국가에 따라 달리 요구되는 필수 사항들. 독일의 경우에는 "Amptliche Prufungs Nummer (AP Number)"를 표시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이 번호는 국가공인시음위원회가 그 와인을 시음할 때 부여하는 번호입니다. 프랑스 와인의 경우에는 세부 등급 분류를 표시해 줄 수 있습니다. 예로, Premier Cru, Grand Cru, 또는 Cru Bourgeois등이죠. 그리고 미국의 경우에는 레이블 또는 back 레이블에 아황산염이 들어가 있다는 것과 알코올 섭취가 태아에 미칠 수 있는 영향과 운전신경을 둔화 시킬 수 있다는 경고문을 명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레이블에서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사항은 병크기(거의 가 750ml)와 알코올 도수가 있습니다. 병 크기는 20세기까지도 단일화 되지 않고 사용되었으나, 1979년에 미국이 미터법을 채용하면서 750ml로 할 것을 요구하면서 정착되었습니다. 보통 이 크기의 병을 쓰나 디저트 와인과 같은 스위트 와인은 375ml병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외의 병 사이즈:매그넘(Magnum):1.5리터, 더블 매그넘: 3 리터, 제로보암(Jeroboam): 보르도에서는 5리터, 버건디, 샴페인에서는 3리터. 등). 알코올 도수는 와인생산지의 특징과 포도의 숙성정도에 따라서 차이가 납니다. 숙성이 덜된 포도를 사용한 경우에는 7도 정도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나 칠레와 같이 일조량이 많은 곳에서 생산된 포도의 경우에는 당도가 높아 알코올 도수가 13도 내지는 13.5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강화 와인의 경우에는 이보다 더 높아지죠.

자, 이것으로 레이블 판독을 끝냈습니다. 이제는 레이블에 적혀 있는 각각의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것인지 아시겠죠? 더 이상 외국인의 얼굴처럼 그 레이블이 그 레이블 같지 않으시죠?

자, 이제 어떤 와인을 마시는지 알 수 있으니까 얼른 마시자구요? 그렇게 서두르시면 안되죠. 애써 고른 와인인데 보관 상태나 서빙 상태가 나빠 입맛을 버리면 안되죠. 와인 샵에서는 어떤 상태로 보관해 두었는지, 레스토랑에서는 어떻게 두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보관해야 하는지도 아셔야 합니다. 게다가 어떤 온도에서 서빙을 해야 하는 지 알아야 하구요. 애써 만든 요리를 아무데다 두었다가 증정용 플라스틱 접시에 드시지는 않으시죠? 와인도 마찬가지랍니다.

2)포도 품종

White Grape

10. 샤도네이(Chardonnay)

프랑스의 가장 잘 알려진 화이트 와인용 포도 품종입니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데 주로 사용하는 품종이며 '샹빠뉴(Champagne)' 지방에서도 이 포도가 사용됩니다. 열대 과일향, 메론햔, 감귤향이 일반적으로 감지되며 많은 경우 오크통에 숙성을 시켜 보다 복잡미묘한 와인으로 생산됩니다. 거의 다른 포도 품종과 블랜딩되는 경우가 없으나, 최근에 들어서 쎄미용과 블랜딩 된 경우도 있습니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데 주로 사용하는 품종이며 '샹빠뉴(Champagne)' 지방에서도 이 포도가 사용됩니다.


11. 슈냉블랑(Chenin Blanc)

프랑스 남부 르와르(Loire)지방에서 재배되는 품종으로 높은 산도(Acidity)가 특징인 포도입니다. 프랑스 이외에는 남아프리카, 캘리포니아,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재배되고 있습니다.



12. 리슬링(Riesling)

독일 화이트 와인의 최상급 포도 품종으로 단맛과 신맛이 강한 포도입니다. 이 포도는 기온이 낮은 기후에서 잘 자라서 독일과 프랑스의 알자스, 그리고 호주에서 재배되고 있습니다. 이 포도는 다른 화이트 와인용 포도에 비해 오래 숙성될 수 있는 성격을 가지며, 오랜 숙성 후에도 신선한 과일향과 산도를 잃지 않는 품종입니다.




13. 뮐러 투루가우(Muller-Thurgau)

리슬링과 실바너의 교배종으로 독일 화이트 와인의 주종으로 사용됩니다. 이 포도로 만든 와인은 부드럽고 산도가 낮으며, 약간의 포도껌향을 갖습니다.



14. 실바너(Sylvaner)

예전에는 독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었던 포도였지만, 자생력이 더 강한 뮐러 투루가우 종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또한 근원지라고 알려져있던 오스트리아에서도 그 재배향이 많지 않습니다. 원래 근원은 오스트리아라는 말이 있지만 이 국가에서도 많이 심지 않습니다. 연한 과일 향과 산도가 특징적입니다. 이 포도의 보다 정확한 명칭은 Gruner Silvaner로 비슷한 이름을 갖는 Blauer Silvaner과 혼동해서는 안될겁니다.


15.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서 화이트 와인에 사용되는 대표적 포도 품종입니다. 프랑스 르와르 지역과 뉴질랜드에서도 이 포도로 와인을 만들고 있지요. 아주 드라이하며 향기가 독특하며 스모키한 냄새가 특징적이죠. 만약에 상큼하고 풀향기가 나면서 우아한 와인을 선호하신다면 르와르 것이 더 입에 맞을 겁니다. 아니면 자몽향이 두드러지는 뉴질랜드산 소비뇽 블랑을 드시는 것이 좋을 듯 하구요.



16. 쎄미용(Semillon)

과일향기가 아주 독특하며 신맛이 강하지 않고 황금색에 가까운 아름다운 색을 갖는 와인이 되는 이 포도는 프랑스 메독 지역 남부의 쏘테른(Sauternes) 지방에서 주로 사용되는 아주 부드럽고 달콤한 맛의 품종입니다. 이 품종의 주요 임무는 소비뇽 블랑과 함께 콤비를 이루는 것 일겁니다. 왜냐하면 쎄미용이 가지는 복숭아향의 부드러움은 소비뇽 품종의 상큼하고 깔끔한 맛이 갖는 부족한 부분을 아주 잘 채워 주니까요. 이 둘의 조화가 절정을 이루는 와인으로는 쏘테른(Sauternes)과 발삭(Barsac)이 있습니다.


3)생산과정

포도재배과정

와인은 포도로만 만들어집니다. 와인에는 물이나 다른 알코올 또는 화학 성분이 첨가되지 않습니다. 즉 포도즙 100%입니다. 그래서 포도의 재배는 와인 생산에 있어서 기본인 동시에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포도가 어떻게 재배되고 포도가 재배되는 동안 전통적인 포도 농장에서는 어떤 작업들이 이루어지는 지 알아볼까요?

포도 농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1년 작업 과정을 보면...


[ 1월 ]

요즈음은 12월부터 시작하지만 전통적으로 포도나무 가지치기는 성빈센트일(St.Vincent Day : 1월22일)에 시작됩니다. 1월에는 그 전해에 수확한 와인이 저장되있는 오크 통의 마개(Bung이라고 부릅니다)를 아황산염(Sulfur dioxide)용액으로 이틀에 한번씩 닦아주는 작업이 빼먹지 않고 합니다.(오크 통 속의 와인이 밖의 공기와 접촉되어 각종 균으로 부터 감염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겠죠?). 날씨가 청명하고 건조한 날에는 저장해 두었던 와인을 병입하고 레이블을 부착하며 고객에게 우송할 박스를 포장합니다.

[ 2월 ]

프랑스 와인을 만드는 포도나무의 뿌리가 미국산이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19세기 중순, 전세계의 포도나무를 황폐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포도뿌리혹벌레(Phylloxera :사진 참조)'라는 놈이 포도나무를 모두 병들게 하였는데 유일하게 미국에 있는 포도나무만 병이 들지 않았던 것이죠.알아봤더니 미국산 포도나무는 그 벌레에 내성이 있어서 피해를 입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에 있는 와인 생산자들이 미국산 포도나무를 수입하여 다시 심고 기존의 포도품종의 가지를 미국산 포도뿌리에 접목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포도 농장에서는 매해 가지치기를 끝내고 2월부터는 접목을 위한 작업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작년에 수확하여 양조한 새 와인을 맑게 하기 위하여 재강에서 짜내어 깨끗한 통으로 옮기고 와인을 균등하게 만들기 위하여 서로 배합을 시킵니다.

[ 3월 ]

겨울을 난 포도나무에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수액이 오르기 시작하면 농부들은 포도밭을 쟁기질합니다. 그리고 이즈음이면 지난해 포도수확으로 양조한 와인은 신비스러운 감응을 나타내며 2차 발효(감산발효)를 시작합니다.]

[ 4월 ]

농부들은 4월이 되면 쟁기질을 모두 끝내고 포도밭을 정리하고 1년 산 가지들을 접목합니다.
그리고 곧 내릴 서리에 대해 노심초사하며 싹이 천천히 트기를 기원합니다. 왜냐하면 싹이 트자마자 서리가 내려버리면 그 해 포도의 수확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편 오크 통에 저장된 와인은 서서히 숙성되면서 그 양이 약간씩 줄기 시작합니다.
이 때문에 오크 통 속의 윗 부분에 약간의 공기가 들어갈 수 있는 빈 공간이 생기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이 공간에는 산소가 가득차게 되지요. 산소는 곧 산화 작용을 의미하므로 이 공간을 없애기 위해 계속 와인을 채워 넣는 일을 일주일에도 두 세번 씩이나 해야 합니다.

[ 5월 ]

밤과 새벽에 내리는 서리 때문에 농부들은 밤잠을 설칩니다. 심지어는 포도밭에 대형 난로를 설치하여 서리를 막기까지도 합니다. 그리고 농부들은 끊임없이 자라나는 잡초들과 여러 가지 좋지 않은 병균, 곰팡이들과의 한판 대결을 벌입니다.


[ 6월 ]

기온이 18~20C가 되면 드디어 포도나무에 꽃이 핍니다. 가지에 포도줄기가 뻗어나기 시작하면 가장 실한 줄기를 철사 줄로 지탱시켜 주는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이전 해와 그 이전부터 저장 중이던 와인이 기온의 상승으로 증발이 점점 빨라지므로 농부들은 이들에 더욱 세심히 주의를 기울입니다.

[ 7월 ]

7월에도 잡초와 각종 병균을 제거하는 작업들을 계속하고 포도알이 더욱 실하게 영글 수 있도록 길게 자란 줄기를 쳐줍니다. 그리고 농부들은 와인이 저장된 창고(Cellar)를 시원하게 유지하는 데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며 시간이 날 때마다 와인을 병입하기 시작합니다.


[ 8월 ]

포도는 한여름의 태양 빛을 받아 영글기 시작하고 보라색 포도알은 거의 시커멓게 변색됩니다. 최상급의 포도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7월, 8월의 평균 일조시간이 최소 월220시간이상 되어야 한다는 사실! 포도가 익는 동한 농부들은 곧 있을 수확기를 대비하여 오크 통을 깨끗이 씻어둡니다.



[ 9월 ]

대개 9월 셋째 주가 되면 수확을 시작합니다. 모든 가족과 친지, 이웃이 동원되어 품앗이를 하면서 포도를 수확합니다. 노동력이 싼 이웃 나라에서도 품팔이 인력이 대거 이동하기도 합니다.

[ 10월 ]

대략 둘째 주 전에 포도 수확이 모두 끝납니다. 포도가 다 걷힌 밭에는 비료(주로 와인 제강찌거기와 포도껍질)와 영양분을 뿌리고 다음 해의 농사를 대비하여 다시 깊게 쟁기질을 해둡니다. 전년에 수확하여 저장해 둔 와인을 2년 산 와인 창고로 옮기고 금년에 수확한 와인을 새로 저장합니다.

[ 11월 ]

2년 이상 저장된 와인에서 앙금이나 찌꺼기를 걸러낸 후, 정제된 상태의 와인을 병입하고, 레이블을 붙이고, 포장을 한 후 이미 주문을 받아 두었던 도매상에게 판매합니다.





[ 12월 ]

2년 이상 저장된 와인에서 앙금이나 찌꺼기를 걸러낸 후, 정제된 상태의 와인을 병입하고, 레이블을 붙이고, 포장을 한 후 이미 주문을 받아 두었던 도매상에게 판매합니다.

전통적 포도재배의 1년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 드렸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수확된 포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저장 숙성이 되는 지 빠져있죠? 레드와 화이트 와인, 그리고 로제.. 이 와인들은 조금 다른 방법으로 와인으로 만들어 지기 때문에 따로 설명드리려구요... 자 그럼. 와인 공장 안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와인 양조과정

사실 와인의 생산과정은 매우 단순합니다. 포도 껍질에 이미 효모균이 자체 서식하기 때문에 와인 양조장 근처에 가지않고서도 '와인'이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포도 껍질이 터지는 것만으로도 효모의 작용이 시작되기 때문이죠. 포도 껍질에 있던 효모는 포도의 당분을 이산화탄소와 알코올로 만드는 데 이것이 바로 발효 작용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저절로 시작되듯이 포도내의 당분이 다 알코올로 분해되면 자연적으로 정지됩니다.

모든 포도가 자연적으로 이 과정을 거치게 되므로 결국 와인의 종류를 결정하는 것은 포도의 종류와 그 포도가 거친 세부 단계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구에는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수천가지의 포도 품종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현재 많이 사용되는 가지 수는 수백개로 줄어듭니다. 이 다양한 품종들에 대해서는 차차 얘기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그저 청포도/화이트 품종과 적포도/레드 품종으로 나누어 와인의 세부 제조단계들을 살펴보기로 하지요. (여기에서의 화이트 포도, 레드 포도의 구분은 단지 외관상의 색 구분입니다.)

우선 수확된 포도는 밭에서 양조장으로 운반됩니다. 그러나 공장에 들어서는 순간 포도가 (청포도인지 적포도인지)화이트 품종인지 레드 품종인지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죠. 자, 그럼 레드와인, 로제 와인 그리고 화이트와인 투어를 떠나 보실까요?

1. 레드 와인 투어(밀착 취재)

레드 품종의 포도는 양조장에 들어서면 우선, 파쇄기(destemmer/crusher)에 들어갑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포도송이에서 포도 알맹이들이 분리되고 알맹이들은 터뜨려집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발효탱크에 옮겨져 1차 발효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을 달리 침용과정(maceration)이라고 하는 데, 이때 포도껍질의 적색 색소가 백색의 포도즙에 용해됩니다. (즙은 과육에서 나오는데, 과육의 색깔은 적색이 아니죠. 그래서 포도즙은 일반 포도주스처럼 보라색이 아닙니다.) 발효된 포도와 포도즙은 이제 압착기에서 포도즙과 껍질 등등이 분리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다음은 2차 발효 단계이고 이 과정도 끝나면 여과 과정을 통해 남은 효모 등을 걸러내는 단계를 거칩니다. 그리고는 다시 숙성 통 속에서 여러 날 숙성이 됩니다. 그리고는 병입이 되어 소비자들이 직접 볼 수 있는 곳으로 운반되는 거죠.

2. 로제 와인 투어

로제 와인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화이트와 레드 와인을 혼합하여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레드 와인과 같이 레드 품종으로 시작하여 1차 발효기간 즉, 침용기간을 짧게 가져 포도 껍질의 색소가 약간만 묻어나도록 해서 생산됩니다. 나머지 과정은 레드 와인과 같습니다.

3. 화이트 와인 투어

화이트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포도는 청포도 뿐이다? 아니죠. 위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과즙은 청포도나 적포도나 다 같이 투명한 색이므로 두 가지 다 화이트 와인의 원료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려는 경우에는 레드 와인의 경우처럼 껍질이 있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침용)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화이트 와인은 발효 과정에 먼저 색소나 탄닌 성분이 우러날 수 있는 소지를 제공하는 껍질을 없애기 위해서 압착을 합니다. 포도즙과 나머지 부분들을 분리해 내는 거죠. 그리고 나서야 축출된 포도즙으로 발효과정을 거칩니다. 발효 후에는 여과, 숙성, 병입절차를 거쳐 여러분들의 테이블 위에 올라옵니다.

짚고 넘어 가야 하는 화이트 와인이 레드 와인과 다른 점 또 하나! 화이트 와인으로는 Sweet(달콤한)한 것, Dry(떫은)한 것 두 종류의 와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 Sweet 한 이유는 포도즙을 탱크에 저장한 후 강제적으로 필터링하여 효모를 제거하거나 화학물질(Sulphur)을 첨가하여 효모의 발효 작용을 억제하여 당분이 발효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따라서 알코올 성분이 매우 적습니다). 반면에, Dry 화이트 와인은 발효통에서 포도가 완전히 발효되게 한 후 숙성 병입(甁入)하여 생산하기 때문에 알코올 성분이 많고 당분도 거의 남지 않은 경우입니다. 레드 와인의 경우에는 이처럼 발효과정을 억제하지 않고 생산됩니다. 그래서 와인을 주문하실 때는 드라이하냐? 스위트하냐? 하고 물으시는 것 보다 드라이한 화이트인지 스위트한 화이트인지 또는 레드인지 물어보시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죠.


와인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무려 8000년 전 우리 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와인이 개발되어 대중화가 시작된 해는 1977년. 즉 이제 겨우 20여년 된 우리 와인과 와인 문화를 서양의 것과 비교를 한다는 것은 8000대20의 비교가 될테고...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겠죠? 하지만, 현대인의 놀라운 문화 적응력과 정보전달의 혁신이라 할 수 있는 인터넷의 강력한 힘 덕분에 이러한 격차는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증가하는 와인 판매량과 와인 전문 상점, 다양한 와인을 준비하고 있는 고급식당들, 그리고 와인 애호가들의 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와인 문화는 이미 우리나라에서 확고한 문화와 산업으로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큰 저항감 없이 와인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그 세계에 자꾸 빠져들어 가는 이유는 분명히 와인에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먼저 김한식 선생님의 저서 '현대인과 와인(1996, 도서출판 나래)'의 추천사를 써주신 조병화 선생님(시인, 예술원회장)의 글에 아주 좋은 내용이 있어서 인용해 봅니다.

"자고로 와인은 생명의 물이라고 한다. 몸의 원기를 도와주는 음료수라는 말이겠지요. 생각만 해 보아라. 그 싱싱한 포도 알에 들어 있는 가득찬 수분을, 그 수분이 적당히 발효가 되어 쾌적한 향기와 알코올로 우리들을 매혹하는 그 기분, 어찌 도원경이 아니라 하겠는가."
이러하기 때문에 고대 희랍 유랑시인 호머시대, 그 까마득한 옛날부터 이 포도주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가장 매혹적인 기분 전환의 음료로. 실로 포도주는 삭막한 마음을, 그 기분을 몇 잔으로 완전히 풀어 준다.

마침내 봄바람이 얼어붙은 나뭇가지를 서서히 풀어 나가듯이. 봄바람의 연한 향기. 그걸 맡아 본 일이 있는가. 특히 과수원을 솔솔 불어 올리는 봄바람. 그것들은 가지가지의 새싹 눈을 근질근질하게 만든다. 그와 매한가지로 포도주는 우리들의 굳은 마음을 설레는 기분으로 더욱 설레게 하여 이 건조한 세상을 윤택하게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기분도 기분이려니와 그 분위기 또한 그러하다. 맛과 향기와 그 사랑스러운 분위기. 그것은 이 포도주가 제일이 아닐 수 없다. (중략)

와인이 있는 식탁은 다정한 이야기와 사랑하는 마음이 같이 숨어 있는 따뜻한 식탁이다. 이러한 향기 높은 생명의 물을 같이 마실 수 있는 동료가 있다면 더욱 인생이 향기로워 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우리가 와인을 마실 때 와인 관련 서적에서 습득할 수 있는 교과서적인 내용들(색깔, 향기, 맛 등등)을 느끼는 것 이외의 좀더 다른 감정과 느낌을 먼저 지닌 상태에서 와인을 마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의 힘과 이에 순종하여야 하는 농부의 노력과 그들의 흘리는 땀"이 바로 그것입니다.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가 영글 때까지의 힘든 노동, 한여름에 작렬하는 햇빛, 그 햇빛의 에너지를 마시는 포도알, 수확기의 불청객인 비와 서리에 대한 노심 초사, 수확기의 고된 노동, 오크 통의 숙성, 와인의 병입(甁入: Bottling), 그리고 기나긴 시간의 보관 등등의 모든 과정에 쏟았던 농부의 땀을 머금은 그 포도 주스를 입안 가득 한 모금 넣고 오래, 그리고 깊이 느낍니다.
입안에서 혓바닥의 부분마다 변화하는 맛, 삼켰을 때 목구멍에 넘어가는 액체의 감도, 삼킨 후 남아 있는 잔향과 여운. 이런 것들과 함께 "자연의 힘, 농부의 땀"을 상상합니다.

우리 나라가 많이 가난하였을 때 어머니가 식탁에서 "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라, 그 한 톨을 만들려면 시골에서 농부들이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아느냐" 하시던 말씀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정미소 기술이 낙후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밥 한 공기에 쌀겨가 그대로 있는 쌀 톨들이 꼭 몇 개씩 있었고(이것을 '뉘'라고 하였죠.) 저는 이 '뉘'를 꼭 이로 터뜨려서 속에 있는 밥알 1알을 먹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밥을 먹으면서 시골에 계시는 수많은 농부들의 땀과 노력을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와인에 대해 글을 쓰면서 '오늘 저녁에는 밥을 오랫동안 꼭꼭 씹고 침과 충분히 섞어서 단 맛이 들 때까지 자연의 힘, 농부의 땀과 노력을 생각하자'를 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와인을 마시는 자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오늘 와인 이야기를 읽으시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가장 중요한 점이며 그리고 맨 마지막 와인 이야기에서 다시 한번 얘기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우연한 발견

전설에 의하면 와인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었습니다.

포도를 너무도 좋아한 한 페르시아의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잘 익은 포도를 저장실에 보관해 두고 일년 내내 포도를 즐겨먹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이 쌓아놓다 보니 밑에 깔린 포도는 위에 있는 포도의 무게 때문에 알맹이가 터지게 되고 터진 포도 알맹이들은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효모에 의해 발효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스가 발생했고 이 포도 창고에 들어간 노예 몇명이 그 가스를 마시고 일시적으로 기절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왕의 노여움을 산 한 후궁이 이 사건에 대해서 듣고 포도에서 흘러나온 액체를 극약으로 착각하고 죽을 각오로 이를 마셨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후궁은 죽지 않고 오히려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더라는 겁니다. 이것을 본 왕은 포도에서 나온 포도즙이 슬픈 사람을 기쁘게 하는 신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이 신비한 음료(오늘날의 와인)를 만들도록 명하였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확인해 볼 수 없지만, 기원전 3000년에 이미 이집트에서는 와인 양조기술이 정착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중국의 전설에서도 와인에 대한 언급이 있죠. 이들에게 와인은 약 또는 장례에 필요한 의식에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2500년 전에 "알맞은 시간에 적당한 양의 와인을 마시면 인류의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고, 이집트에서 발견된 파피루스에서도 와인이 포함된 조제 처방전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디오니소스(Dionysus/Bacchus)가 인간에게 이런 좋은 효험을 지닌 와인을 선물했다고 하지만 와인 양조기술은 이집트인들이 개발하여 전파한 것입니다.


좀 배가 꽉 찬다 싶은 음식을 먹고픈, 그런 기분이 드는 날이 있습니다. 집에서 매번 먹는 밥과 반찬 말고 좀 특별한 요리를 놓고 한 끼 잘~먹었다 하고 호기를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 날도 스산해지는데 좀 보글보글 끓인 든든한 음식을 먹고 싶은 날. 프랑스에서는 갈비찜(!)을 해 먹지 않을까요?

뵈프 부르기뇽

아니 프랑스에서 웬 갈비찜? 하실 분들 분명히 있으시겠지요. 엄밀히 말하면 갈비찜이 아니라 뵈프 부르기뇽(Boeuf Bourguignon)이라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지방색 강한 음식이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딱 갈비찜, 그거 외에 따로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또 프랑스 요리사들이 점심 서비스를 마치고 나서 직원식사를 할 때, 마땅히 이것저것 준비할 시간도 없고 재료도 변변찮을 때, 있는 고기를 숭덩숭덩 넣고 와인을 콸콸 부어 뭉근하게 불에 올려놓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밥 때 되면 꺼내 먹는 초 간단 음식이기도 하죠.

프랑스식 갈비찜, 하나도 어려운 거 없습니다. 즐겁자고 먹는 데 만들면서 괴로운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Château Chamilly 2000

원래 뵈프 부르기뇽에는 저렴한 가격의 뱅 드 따블르급 와인을 사용합니다. 이 음식이 부르고뉴 지방의 음식이었던 만큼, 와인도 부르고뉴 와인을 사용했겠지요. 그래서 메르뀌레(Mercurey)와인을 매치 시켜 보았습니다. 와인의 과일 향이 매우 강한 편이고, 부드럽고 세밀한 맛이 있는 반면에 동물가죽 냄새 같은 강한 캐릭터를 동시에 갖고 있기도 합니다. 강한 면이 있는 고기를 뭉근하게 끓인 느낌과 맞다고 할 수 있겠죠.


Château Les Hauts de Pontet 1999

뵈프 부르기뇽이라는 음식 자체가 섬세하고 손이 간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톱 클래스의 와인을 매치시키기에는 조금 아까운 감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뽕뗴-꺄네의 세컨드 와인은 와인에 탐이 나서 매치시키고픈 생각이 들게 하죠. 보르도의 세컨드 와인 중에서도 최고라는 찬사를 듣는 이 와인은 세컨드 와인 중에 유일하게 “샤또”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와인이기도 합니다. 향이 풍부하면서도 구조감이 뛰어나서 일단 와인을 충분히 음미한 다음에 음식과 함께 하길 권하고픈 와인입니다.

살짝 매콤한 대하 구이

경지에 오른 쉐프들이 대체적으로 하는 말은 비슷합니다. ‘음식에 창의성이나 기교를 부여하기 전에 훌륭한 재료를 쓰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지요. 여기에서 훌륭한 재료에 항상 포함되는 것은 제철음식입니다. 그러니 지금 대하요리를 해서 먹는 건 어떻게 해도 훌륭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특히 대하는 <본초강목>에서 이미 ‘신장을 좋게 하고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양기를 왕성하게 돋워준다’고 평한 원기회복 식품이기도 합니다. 타우린과 키토산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서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놀랄 만큼 낮춰주고, 특히 타우린은 해독작용을 돕고 알코올로 인한 간 기능 저하를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고 하니 대하와 함께 마시는 술은 그 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대하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그대로 숯불에 구워서 굵은 소금을 터진 등 사이로 솔솔 뿌려 소금 알갱이가 살짝 녹아 들 때 낼름 집어 먹는 겁니다. 토독~하고 터지는 탱탱하고 촘촘한 새우살이 씹히는 질감에 볼이 아플 정도로 침이 나오는 순간 화이트 와인 한 모금 머금어 준다면 천국이 따로 없지요.


[구운 오리 가슴살과 버섯의 향연]

아무리 피부노화를 막아주고 혈액순환도 촉진시켜 주고 한다지만 오리가슴만 썰고 있기는 허전하잖아요. 그러니 장보러 들른 김에 종류별로 버섯을 한 움큼씩만 담아 돌아와서 와인을 따 놓은 후, 잽싸게 요리를 해서 먹는 거지요.

1. 오리 껍질 부분을 잘 손질해서 소금, 후추를 뿌립니다.

프라이팬을 아주 뜨겁게 - 물을 살짝 튀겨봤을 때 기름이 세게 튀어 오를 만큼 - 달군 다음 껍질 부분부터 10분 정도 익힙니다. (그래야 껍질이 바삭하게 익어서 맛있습니다.) 잘 익었으면 살 부분을 한 3~4분 정도 익힙니다. 오리는 이것으로 완성!

2. 한 움큼씩 되는 버섯의 흙을 잘 털어내고 기둥 부분도 잘라냅니다. 오리를 구운 팬에 버섯을 볶습니다. 오리맛(!)이 배어나와 더욱 향이 깊어집니다. 살짝 간을 합니다. 버섯도 완성!

3. 역시 같은 팬에 발사믹 식초를 약간 붓습니다. 지금까지 요리한 오리고기와 기름, 버섯의 잔해물들이 팬에 붙어 있지요? 그것을 식초와 함께 닥닥 긁어서 살짝 데웁니다.

4. 접시에 버섯을 깔고, 그 위에 오리 가슴살을 얹고, 껍질 위에 3번에서 긁어낸 즙을 살짝 뿌려준 후 맛있게 따라 놓은 와인과 함께 즐깁니다.

이 요리의 진정한 장점은 팬 하나로 모든 과정을 해결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 간단하기도 하구요. 버섯 가격이 조금 비싼 게 흠이긴 하지만 흙내음, 나무내음처럼 갖가지 향이 어우러진 버섯향연을 생각한다면 전혀 아까울 게 없지요. 오리도 버섯도 가벼운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와인도 조금 무겁게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

정말 길죠?
이상이였습니다.
질문이 더 있으시면 쪽지 보내시구요 ^^;
출처는 베스트와인 사이트입니다. ^^;

200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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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및 기후
캘리포니아보다 약간 더 넓은 프랑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유럽에서 넓은 나라이다. 영국해협이 북서쪽으로, 대서양은 서쪽으로 접해있으며, 남쪽으로는 피레네산맥을 건너 스페인이 있고, 코르시카를 포함한 지중해가 남동쪽으로, 동부알프스와 쥬라산맥이 스위스와 이탈리아에 뻗어있다. 주변보다 상대적으로 평평한 프랑스의 북동쪽 국경은 독일과 룩셈부르크, 벨기에와 접하고 있다.1790년 프랑스는 약 6100sq km마다 데빠르뜨망(department)이라는 행정단위를 나누어 현재 96개의 데빠르뜨망이 있고 이 외 5개의 해외프랑스령이 있다. 해외 데빠르뜨망으로는, 카리브해의 과들루쁘(Guadeloupe)와 마르띠니끄(Martinique), 태평양 섬인 뉴칼레도니아(New Caledonia), 타히티(Tahiti) 그리고 프렌치 폴리네시아(French Polynesia), 남미의 프렌치 기아나(French Guiana), 마다가스카르 동부 인도양에 있는 레위니옹(Reunion) 그리고 뉴펀들랜드(Newfoundland)남부 대서양에 있는 쌩 피에르(Saint Pierre)와 미클롱(Miquelon) 등이다.프랑스 알프스지역인 4800m의 몽블랑은 유럽에서 최고봉이다. 프랑스 고대산맥 중 가장 장엄한 것은 마씨프 쌍트랄(Massif Central)로, 국토의 6분의 1을 차지할 정도의 방대한 프랑스 중부지역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으로는, 르와르강(Loire)으로 마씨프 쌍트랄에서 대서양까지 장장 1020km에 달한다. 이 외 수로역할을 하는 주요강으로는, 쎄느강(Seine), 론강(Rhone), 갸론(Garonne)과 라인강(Rhine)이 있다. 3200km에 달하는 해안선이 노르망디의 백악절벽과 브르따뉴의 고지대에서부터 대서양을 따라 있는 해변가까지 뻗어 있다. 남동부 지중해연안은 자갈과 바위해변이 많으나, 랑그독(Languedoc)과 루시용(Roussillon)에 있는 해변에서는 낭만의 모래성도 쌓을 수 있다.여러 기후와 영토가 섞여 있어 프랑스에는 다양한 동식물종이 서식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농사기술과 도시계획화, 오염 등으로 종의 균형이 깨져, 피레네 아이벡스 염소, 코르시카 사슴, 갈색곰, 늑대, 수달 등은 현재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일부 동물과 조류들- 샤무아 영양, 큰 아이벡스종, 비버, 황새, 독수리종 - 은 국립공원의 소생프로그램에 힘입어 아직도 야생에서 살고 있다. 너도밤나무와 오크나무, 소나무가 빽빽한 숲은 국토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숲지대는(방대한 습지대와 마찬가지로) 대다수 포유류와 조류의 생태를 유지하게 해준다.프랑스는 온난기후가 주류를 이루며, 산악지대와 북동부를 제외하고는 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은 날씨가 이어진다. 북서부는 대서양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아 습도가 높고, 때로 극심한 서풍이 불며 강수량도 많다. 북동부 지방은 전형적인 대륙성기후를 보여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로 뚜렷한 계절차이를 보인다. 앞의 두 지역 중간에 있는 파리는 프랑스에서 가장 낮은 강수량을 보이며 그나마 비도 불규칙적으로 온다. 파리의 연평균기온은 12도 정도이나 1월에는 영하로 내려갈 때도 있으며 8월에는30도 이상을 넘을 때도 있다. 남부연안 평지대는 쾌적한 지중해 기후가 주류를 이루는데, 서리는 거의 내리지 않으며, 봄과 가을에는 짧지만 갑작스런 폭우가 쏟아지기도 한 반면 여름에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남부는 북서풍 지역으로 1년에 100일 정도는 론(Rhone)계곡 저지대에서 불어오는 차고 건조한 바람을 맞아야 한다. 특히 봄에는 혹독하고 가차없이 불어와 심할 경우 사람도 날려버린다.

역사
*선사시대

9만-4만년 전, 구석기시대 중반에 프랑스지역에 인간이 살았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BC 2만5천년 경 석기시대에 크로마뇽인들은 동굴벽화와 조각품들로 그들의 존재를 알렸다. 또한 프랑스에 신석기시대가 존재했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BC4000-2500년으로 추정되는 거석과 고인돌이다. 청동기시대가 도래하면서, 구리와 주석의 수요로 BC2000년 즈음에는 프랑스와 그 외 유럽국가들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고대와 중세

프랑스 원주민은 원래 리구리아인이었는데, 켈트족 고울인들이 기원전 1500년-500년에 이주해 와 그들을 정복하고 동화시켰다. 고울족은 로마시대에 북쪽으로 진출하려는 로마인들을 맞아 수 세기에 걸쳐 싸워왔으나 결국 줄리어스 씨저에 의해 정복당하고, 그 후는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로마문화를 흡수하고 2세기에는 기독교를 도입하게 되었다. 게르만인들이 로마영역 밖에서 침략을 일삼고 있을 때인 5세기까지도 프랑스는 로마통치하에 있었다. 게르만 중에서도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진출한 것은 동게르만인이었는데 이들이 로마제국을 멸망시키면서 라틴족과 혼합된다. 게르만의 이동과 로마인들과의 융합, 통화과정 후 프랑크족이 유럽에서 대통합의 왕국을 건설했는데 그것이 바로 프랑크왕국이다. 프랑크족은 5세기 경 전 유럽을 통합하여 프랑크왕국을 세워 약 400년동안 로마교황과 손을 잡고 서유럽을 통치했다. 프랑크왕국의 주요구성원은 독일을 중심으로 한 게르만족,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고울족(현재 프랑스적인 요소에 영향을 끼친), 그리고 로마문화를 계승한 이탈리아지역의 라틴족이었는데, 이들은 각각 인종, 문화, 전통이 달라 갈등을 겪다 결국 동프랑크(현재 독일과 동유럽국 지역), 서프랑크(현재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로 3분된다.새로운 질서 속에서 안정을 되찾은 유럽은 다시 한번 격동에 휘말리는데, 8-9세기에 사라센이 동남쪽에서 침입하고 마쟈르인(아시아계로 현재 헝가리인)이 동쪽에서 침입하고 게르만의 일파인 노르만인이 침입한 것이다. 노르만족에게 시달리던 서프랑크왕국(프랑스)은 융화책으로 현재의 세느강주변 땅을 그들에게 주는데 바로 노르망디 지역이다. 이들은 프랑스에 동화되었으나 후일 노르망디공국을 세우게 된다. 987년 귀족들이 위 까페(Hugh Capet)를 왕으로 선출하면서 까페왕조가 들어서는데, 프랑스 역대왕조는 이 까페가에서 비롯되었으므로 현재 프랑스의 국가적 기원이라 할 수 있다.한편 노르망디를 지배하고 있던 윌리암은 1066년 영국을 점령하고 영국에 프랑스제도를 이식한다. 12세기 중엽 헨리2세가 영국과 노르망디를 모두 지배하게 되었고 나아가 현재 프랑스 영토의 3분의 1을 지배하게 된다. 그 후 이 프랑스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프랑스와 영국 300년동안 계속 갈등을 겪다가 결국, 어머니가 까페왕조의 혈통인 영국왕 에드워드 3세에 이르러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전쟁(1337-1453)을 치루게 된다. 1348년 흑사병이 온 나라를 흽쓸었을 때에만 잠시 중단되었던 이 전쟁 중에 17세기 시골소녀 잔다르크가 등장한다. 그녀에 의해 역전된 전세는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었고, 1453년 깔레를 제외한 프랑스의 모든 영토에서 영국인들은 추방당하게 된다.

*르네상스

15세기 말경,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사상과 미학이, 군사전략상 이태리에 머물렀던 프랑스귀족들에 의해 일부 소개되었다. 이 영향은 프랑소아1세 때 지대하게 미쳤고 퐁텐블로(Fontainbleau)와 슈농소(Chenonceau)성이 대표적인 예이다

.*종교개혁

530년대 유럽을 휩쓸던 종교개혁의 바람은 랑스에서도 강하게 일었다. 프랑스에 종교개혁의 바람을 일으킨 사람은 제네바로 망명한 캘빈(John Calvin)이었다. 1562년 1월칙령이 발표되자 구교도(주로 귀족)들은 심하게 반발했다. 그들의 이런 반발은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한 측면도 다분히 있었다. 1562-1598년 사이의 종교전쟁은 세 집단이 관련되면서 더욱 복잡해진다. 프랑스 신교도인'위그노', 기즈당이 이끄는 구교도, 군주 중심의 구교도로 갈라진 전쟁은 왕권을 약화시키고 프랑스를 분열시켰다. 1572년 8월24일, '성 바톨로뮤 학살'이 일어났는데, 결혼축하를 위해 파리에 갔던 3000명의 위그노들을 구교도가 학살한 사건이었다. 이 학살은 지방에까지 확산되었는데, 이 후로 프랑스에서 신교도세력은 급격히 약화되고, 지금도 프랑스에서는 구교도가 대부분이다. 그 후 실권을 잡은 구교도들의 내분으로 앙리 3세는 암살당하고, 위그노였던 나바르의 왕 앙리는 구교로 개종한 후 앙리4세가 된다. 그는 598년 위그노의 종교적 자유와 시민권 보장의 내용을 담은 '낭트칙령'을 선포하는데, 100년도 채 안되 1685년 루이14세에 의해 폐지된다.

*루이14세롸 구제도(Ancient Regime 앙시엥 레짐)태양왕 루이14세는 1643년 5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1715년까지 통치했는데, 긴 통치기간 동안 프랑스 군주의 권력을 옹호하는 왕권신수설을 내세우며 강력한 왕권을 확립했다. 그는 국제적으로 프랑스의 권위를 높이고 프랑스의 문화예술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도록 만들지만 영토를 확장하기위해 전쟁을 많이 일으켰으며 베르사이유궁전같은 사치스러운 건물을 짓느라 엄청난 국고를 낭비해(지금은 관광수익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지만) 그의 후계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다. 그 뒤를 이은 루이15세와 16세는 매우 무능했다. 루이15세는 오스트리아와 연합해 영국, 프러시아에 대해 7년 전쟁을 벌였는데, 전쟁에 패해 서인도제도의 식민지와 인도를 영국에게 빼았겼다. 그러나 이 패배는 미국혁명이 몰고 온 급진적 민주사상을 프랑스에 유포한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 대혁명

1780년대까지도 무능하고 결단력없는 루이16세와 그의 아내 마리앙뜨와네뜨는 개화파에서 보수파에 이르는 사회 모든 계층을 멀리한 채 지냈다. 1789년 루이16세가 삼부회에서 개혁파들의 세력을 약화시켜 보려했으나 거리에는 파리의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시위를 하였고 드디어 그 해 7월14일 구제도 붕괴의 상징인 바스띠유 감옥이 붕괴되고 말았다. 1793년 1월 루이16세는 지금의 파리 콩코드광장 단두대 위에서 급진파와 시민들에 의해 처형되었는데, 1794년 중반까지 참수형으로 무려1만 7000명이 처형되었다. 말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로베스삐에르를 포함한 초기혁명 지도자들이 단두대에서 처형되기도 했다.

*나폴레옹

나라는 더욱 혼란해졌고 이를 틈타, 프랑스군인 지도자들이 사회에 불만을 품기 시작하는데, 이 때 나폴레옹이 역사에 등장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불가능은 없다'며 알프스를 건너 오스트리아를 격파하면서 국민적 인기를 얻게 되고 그는 이 힘을 몰아 독립적 정치세력을 키우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나폴레옹이 제1제정을 맡았으나 1802년 국민투표로 종신제정을 선포하고 그의 생일은 국경일이 되었다. 1804년 황제로 즉위한 그는 더 많은 지지와 세력확보를 위해 많은 전쟁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프랑스는 유럽 대부분을 정복하고 1812년 대륙의 마지막 라이벌인 짜르를 정복하러 러시아로 향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에 물러서고 말았고 이 틈을 타 나폴레옹의 적들이 파리로 쳐들어오면서 나폴레옹은 엘바로 유배되고 만다. 1915년 그는 엘바를 탈출해 군을 모아 다시 파리를 탈환하나 원털루전에서 패하고 결국 남태평양의 외딴 섬 세인트 헬레나에서 1821년 생을 마감하게 된다. 어쨌든 전쟁의 영웅인 그가 이룩한 '나폴레옹 법전'은 오늘날까지 프랑스는 물론이고 유럽국가 법체계의 근간이 되고 있다.

*19세기

19세기 프랑스는, 어리석은 정부와 쓸모없는 전쟁이 난무한 혼돈의 시기였고, 공화국으로서 나라가 설립되는 제3공화정이 1870년 출범된 의미깊은 때이기도 하다. 제3공화정에 도덕적,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힌 것은 1894년 '드레퓌스 사건'이었다. 유태인 육군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 첩보원으로 누명을 써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으면서 이 사건이 시작되었는데, 군통치부, 우익정치가들, 구교도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다시 심의되어 결국 그의 결백이 증명되었다. 이 사건은 군대와 교회의 불신감을 더욱 강화시켰고 결과적으로 시민에 대한 군의 통제는 더 심해졌으며 1905년 교회와 정부는 법적으로 분리되었다.이 시기에, 아프리카 식민지를 두고 경관계에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 간에 앙땅뜨 꼬르디알(Entente Cordiale)이라는 협약이 체결되어 이 후 둘은 협조관계에 놓이게 되었고, 이것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세기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프랑스는 230만의 사상자와 폐허가 된 많은 영토, 산업의 붕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독일에게 장악되는 등 상황은 더 악화되었고 비굴한 비쉬정권이 나타났다. 한편 프랑스가 전쟁에서 항복하자 당시 부차관이었던 샤를르 드골(General Charles de Gaulle)은 런던으로 건너가 망명정부를 세웠고 독일과의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지하 레지스땅스를 만들었다. 1944년 중반,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펼치면서 프랑스는 해방되었다. 드골은 전쟁이 끝나자 파리로 돌아와 임시정부를 세웠고, 1846년 1월 대통령직을 사임하지만 그의 복귀를 원하는 대중들의 요구로 제4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적극적인 미국의 우너조로 프랑스 경제는 서서히 회복되었다. 그러나 인도차이나 식민통치의 재시도는 실패했고, 백만 프랑스인이 거주하는 알제리아에서는 아랍민족주의자들이 그들의 독립을 얻기 위해 폭동을 일으켰다. 제 4공화국은 1958년 끝났으나 알제리아폭동에 대한 패배에 분노한 극우파들의 쿠데타 음모와 시민폭등을 저지하기 위해 드골은 권좌에 다시 복귀했다. 1962년 제리협상으로 알제리전쟁은 끝났으나 그곳에 거주하고 있던 75만의 '삐에 느와르(검은 발이라는 뜻으로 알제리태생의 프랑스사람) 가 프랑스로 들어와야 했다. 이 시기 아프리카에 있는 다른 프랑스 식민지와 보호국들도 독립을 찾기 시작했다.정부와 온 나라에 전면적인 변혁을 가져온 것은 1968년 '5월혁명' 이었다. 시작은 데모하는 대학생들과 경찰의 충돌정도였으나 이것은 점점 확산되어 9백만 파리시민들이 파업에 동참하는 등 전국을 거의 마비상태로 몰아넣었다. 드골은 무정부상태의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호소함으로써 위기를 넘겼고, 안정이 되어 갈 즈음 교육제도개혁을 포함한 중요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1969년 드골은 드골파인 죠르쥬 뽕삐두에게 자리를 넘긴다.1974년 발레리 쥐스까르 데스뗑이, 198년 에는 사회당인 프랑소와 미테랑(Francois Mitterand)이 자리에 오른다. 미테랑은 1988년 재선에 당선되나 1986년 의회선거에서 쟈끄쉬락이 이끄는 우파가 다수당이 된다. 임기 마지막 2년동안 미테랑대통령은 반대당 내각과 전례없는 보혁공존(cohabitation꼬아비따씨옹)을 하게되며 결국, 1995년 5월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주의당을 앞서며 국무총리였던 쉬락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놀라운 것은 쟝 마리 르뺑(Jean-Marie Le Pen)이 이끄는 반이민 국민전선(FN)은 20%도 득표하지 못하였다.1995년 7월 빠리와 리용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났는데 이것은 정부의 알제리 지원에 반대하는 테러집단에 의한 것으로 외국인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초기에 쉬락은 EU에서의 확고한 입지와 유고슬라비아 전에 대한 대처로 국민의 신임을 얻었으나, Mururoa의 폴리네시아섬에서 핵실험을 시행한다는 결정을 하면서 프랑스와 외국으로부터 많은 반발을 샀다. 마지막이라고 표방한 이 실험으로 쉬락정부의 프랑스와 태평양주변국과의 외교관계는 악화되었고, 타히티를 포함한 태평양과 카리브해에 있는 프랑스의 식민지들에서는 독립의 원성이 높아졌다. 한편 국내에서는 복지비를 제한한다는 쉬락의 정책발표로, 1968년이래 최대의 시위가 일어났다. 1995년 말 3주동안 빠리의 공공써비스는 마비되었고, 이로 인해 경제가 악화되면서 유럽경제와 화폐통합에 대한 프랑스의 가능성이 불투명해지게 되었다. 쉬락은 화폐통합에 대한 국민투표라는 명목하에 1997년 임시투표를 하게되지만, 변덕스러운 프랑스인들은 쉬락의 RPR당을 저버리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녹색당의 연합을 지지하게 된다. 아직도 대통령의 권좌에 있는 쉬락이 넘어가야할 두 단계는, 현 사회주의당 국무총리인 리오넬 죠스뺑(Lionel Jospin)과 평균치에 걸려있는 화폐통합이다.

경제
GDP : US$1조 32억
1인당 GDP : US$22,700
연성장률 : 4%
인플레이션 : 2%
주요 생산품 : 정유,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농산물, 사치품, 화학품, 자동차제조, 에너지 생산품 등
주요 교역국 : EU, USA

문화
문화란 개념은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프랑스인들은 그것을 전부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비록 현대 세계시장에선 이제 구석자리로 밀리는 경향이 있지만. 프랑스인들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다른 나라사람의 취향과 생각에 부합되지 않을지라도, 그들이 얼마나 프랑스적인 것에 도취해 있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가장 먼저 튀는 것은 프랑스 건축물로 12세기 중반 북부 프랑스에서 기원된 고딕양식이다. 이 양식은 샤르트르(Chartres)와 렝스(Reims), 아미엥(Amiens)의 성당 양식으로 이어진다. 그 후 15세기 말 샤를르 8세가 이탈리아를 수회 침입할 무렵, 르네상스가 프랑스 전역에 퍼졌고, 이는 건축, 시각예술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 시대라블레(Rabelais)와 몽테뉴같은 작가들에게는 이것이 프랑스문학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16세기말에서 18세기후반까지 지속된 바로크시대에는 회화, 조각, 고전건축이 한층 정교하고 세련되며 우아해졌다. 프랑스 바로크 음악은 국내뿐만 아니라 널리 유럽에도 영향을 끼쳤다.이 시대 프랑스 연극은 당대 최고의 희극작가 몰리에르(Moliere)로 인해 웃음이 주류를 이루었다.1789년 혁명 지도자 중 하나인 쟈끄 루이 다비드(Jaques Louis David)는 나폴레옹에게 발탁되어 공식적인 국가의 화가가 되었고 실상 미술분야의 독재자역할을 하였다. 그의 방대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은, 혁명독재자였던 마라(Marat)가 욕실에 누워 죽은 그림이다. 이 시기 문학은 볼테르(Voltaire)와 루소(Rousseau) 등 철학자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음악에서는 프랑스음악에 르네상스바람을 일으키며 오페라와 교향곡을 작곡한 현대관현악의 창시자 베를리오즈가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의 영향하에 가브리엘 포르(Gabriel Faure)와 인상파음악가 끌로드 드뷔시, 모리스 라벨 등 위대한 음악가들이 탄생하였다.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노트르담의 꼽추(Notre-Dame de Paris)와 함께 시로 널리 인정받은 빅토르 위고(Victor Hugo)가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이 외 유명한 작가로는 스탕달(Stendhal)과 마리 앙리 베일(Marie Henri Beyle), 방대한 프랑스 사회역사를 다룬 소설 '인간의 희극(La Comedie Humaine)'을 쓴 오노레 드 발작(Honore de Balzac) 그리고 조르쥬 상드로 더 잘 알려진 오로르 뒤뺑(Aurore Dupain), 몽테크리스토백작의 알렉쌍드르 뒤마(Alexandre Dumas) 등이 있다. 19세기중반 낭만주의가 소설과 시에서 새롭게 대두되었는데 이 주류의 세 거장은,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그리고 에밀졸라(Emile Zola)가 있다. 시인 랭보(Arthur Rimbaud)는 불후의 명작을 두 편을 남겼는데,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s)과 지옥의 계절(Une Saison en Enfer)이 그것이다. 조각가 로댕(Auguste Rodin)도 이 시대의 빼놓을 수 없는 예술가로, 미술역사상 가장 정교한 초상화화가로도 평가되고 있다. 인물화는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와 들라크루와(Eugene Delacroix)가, 풍경화는 밀레(Jean-Francois Millet)와 바르비종 학파, 그 뒤로 마네(Edouard Manet)와 사실주의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마네의 후기작품들은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인 모네(Claude Monet)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의 제자들 중 피사로(Camille Pisarro)와 드가(Edgar Degas)를 꼽을 수 있다.후기인상주의는 20세기 획기적이고 많은 양식을 파급시켰다. 그 중 특히 앙리 마티스의 야수파와 파블로 피카소의 입체파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 후 1차 세계대전의 부정적인 반향으로 허무주의가 나왔고, 대표적으로 마르셀 뒤샹은 실생활의 물건들을 작품으로 전시하는데, 예를 들면 소변기를 전시해 놓고 'Fountain and signed'란 타이틀을 붙여 논 것이 유명하다.문학에서 20세기초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du Temps Perdu)의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있다. 2차대전 후에는 실존주의가 일어났고 쟝뽈 사르트르, 시몬느 드 보브와르 그리고 알메르 까뮈같은 작가들이 대표적이다. 1950년대 후반 젊은 소설가 나탈리 사로트(Nathalie Sarraute)와 1984년 '연인(L'Amant)'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마르그리트 뒤라(Marguerite Duras)도 참신하고 개성있는 작가들이다. 1950년과 60년대는 프랑스 영화의 혁명기이다. 이 시기 새바람을 일으킨 영화감독의 선두주자는 쟝뤽고다르(Jean-Luc Godard), 프랑소와 트뤼포(Francois Truffaut) 그리고 루이말르(Louis Malle)등이다. 이 감독들은 1970년대까지 독주하였는데, 이후는 새바람의 실험적인 선을 넘지 못하였고, 불란서 영화에 대한 고정적인 틀(수준높고, 엘리트하며, 솔직하고 지루한 기획이라는)이 생기게 되어 더 이상 앞서지 못하였다. 1980년과 90년대 가장 성공적인 감독들의 영화는, 특이한 소재와 이상한 스토리, 독특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근본적이고 시각적으로 눈에 두드러지는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주목받는 감독으로는 디바(Diva)와 베티블루(Betty Blue)의 쟝쟈끄베네(Jean-Jacques Beineix) 그리고 제5원소와 니키타, 프로페셔날을 직접 쓰고 감독한 뤽베쏭(Luc Besson) 이 있다.종교는 로마카톨릭이 다수인데 실제로 교회생활은 거의 없고, 예배참석률도 매우 낮다. 1905년 정부와 교회가 분리됨에 따라 일반적으로 신앙도 세속적이 되었다. 이어 이슬람교도가 많으며 그 뒤로 신교, 유대교 등이 있다.프랑스 음식에 대해 말하자면 끝이 없는데, 간요리, 로크포르 치즈, 달팽이 요리, 과일 파이 등 많은 독특한 요리들이 미식가들의 입맛을 끌어당길 것이다. 그러나 달팽이요리와 포도주만 먹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의 북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들 요리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전형적인 프랑스사람들의 아침식사는 카페오레 한 사발과 크루와쌍, 버터와 쨈을 바른 빵 한조각이다. 점심과 저녁은 거의 비슷하게 먹는데, 주로 전채요리는 떼뜨빠떼(돼지머리를 젤라틴화시킨 것)나 생선수프의 일종인 부이야베스(Bouillabaisse), 그리고 주요리로 송아지나 양고기로 요리한 화이트소스 스튜(블랑켓트(Blanquette)) 그리고 후식으로 치즈나 사과 파이등이 대표적이다. 식사 전에는 키르(kir)라고 하는 달짝지근한 화이트 와인이 나오기도 하며, 디제스티프(digestif)라고 하는 소화촉진제로 꼬냑이나 아르마냑 브랜디가 식사 후에 나오기도 한다. 식사 후 소화를 돕고 얘기를 더 하기 위해 마시는 것으로는 에스프레소나 맥주, 파스티스(pastis)같은 술류 그리고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프랑스산 와인 등이다.

축제 및 행사
프랑스는 한마디로 '축제의 장'이다. 수많은 도시에서는 매년, 음악, 춤, 연극, 영화, 예술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들이 개최된다. 시골마을은 나름대로 그 지역 성인에서부터 농사수확물까지 여러 주제로 다채로운 전시와 축제가 펼쳐진다. 프로방스지방의 쌩뜨 마리 드 라 메르(Saintes-Maries-de-la-Mer)에서는, 집시의 수호자인 사라(Sarah)를 경배하는 화려한 집시축제가 매년 5월 열린다. 열광적인 노래와 춤이 이 행사의 특징이다. 주요 국경일로는, 노동절인 May Day (5월1일 : 이 날 많은 사람들이 행운을 준다고 하는 뮈귀예(muguet:백합꽃의 일종)를 친구들에게 선물한다)와 바스티유의 날(Bastille Day (7월14일: 친구들에게 폭죽을 던지며 경축한다))이 있다.지역 행사로는, 파리의 쁘레따뽀르떼 패션쇼(2월초) : 깐느 영화페스티발(5월중순) : 스트라스부르그 국제 영화페스티발(6월 3주동안 열림) ; 아비뇽 연극페스티발(7월중순-8월중순) :낭시 째즈페스티발(10월9일에서 24일까지) 등이 있다.

여행자 정보
비자 : 대한민국여권소지자는 비자없이 3개월간 여행할 수 있다.
보건위생 : 햇빛에 의한 화상, 발의 물집, 벌레물림, 과음, 과식 등 기본적인 사항들이다.
시차 : 한국이 프랑스보다 8시간 빠르다.
전압 : 220V, 50Hz
도량형 : 미터제를 사용(도량형 환산표 참조(영문))
외래 관광객 : 연 6,050만 명

경비 및 환전
통화 : 프랑스 프랑 (FF)

일반 경비

저렴한 식사 : US$5-15
중급 레스토랑 : US$15-30
최고급 레스토랑 : US$30 이상
저렴한 숙소 : US$25-35
중급 호텔 : US$35-60
최고급 호텔 : US$60 이상

커피 한잔에 US$5정도인 이 곳이 유럽에서 저렴한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쉴 만한 장소로 은행을 찾아야만 할 정도는 아니다. 최저로 경비를 쓴다면 하루 US$40정도 예상하지만, 이 경우 식사는 매일 공원에서 치즈와 바게트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편안한 침대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보며 다니려면 최소 US$80은 잡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학생과 노인을 위해서는 여러 곳에서 할인요금이 적용된다.프랑스에서는 여행자수표가 가장 안전하고 편리한 회계관리방법이며 거의 모든 종류의 여행자수표가 사용되어 진다. 대도시와 관광지에서는 특히. 은행과 환전소에서는 현금보다 여행자수표를 더 환율 우대한다. 방끄 드 프랑스(Banque de France)가 일반적으로 가장 좋은 환율을 제시한다. 현금인출기에서는 모든 주요신용카드와 은행카드가 사용가능하며, 신용카드로 물건 구입 시 보다 좋은 환율을 적용받을 수 있다. 팁을 주는 것은 미묘한 문제로, 식당과 숙박지같은 경우는 계산서마다 10-15%의 팁이 요구되는데, 일반적으로 대부분 사람들은 써비스가 만족스러울 경우 동전 몇 개를 놓고 간다.

여행 시기
프랑스 최고의 계절은 뭐니뭐니 해도 봄이다. 해변 휴앙지들은 5월에 문을 열어관광객 맞을 준비를 한다. 가을도 쾌적하긴 하지만 기간이 짧아 10월말쯤에는 '꼬뜨 다쥐르'에서 일광욕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추워진다. 겨울은 알프스, 피레네 그리고 여러 산악지대에서 겨울레저를 즐기기에 좋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방학에는 많은 학생들로 스키장이 대만원을 이룬다. 7월중순에서 8월하순까지는 대부분 도시인들이 해변으로 산으로 외딴지역으로 그들의 5주휴가를 떠나기때문에 휴양지의 호텔과 야영지는 공급이 턱없이 모자라는 반면, 한적한 도시의 상점, 식당, 극장, 호텔 등은 외국 여행객들이 많이 머무르긴 하지만 대부분 문을 닫고 여름을 지낸다. 2,3월방학기간도 마찬가지이다

주요 여행지
빠리(Paris)

광범위하게 따져 인구 1300만 명이 거주하는 빠리는, 대표적인 명물 노틀담과 에펠탑, 일출, 일몰 그리고 밤마다 변하는 세느강과 강변의 황홀한 아름다움 등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아무도 19세기의 넓은 가로수 길과 아름답고 인상적인 건물, 박물관과 공원, 정원, 산책길 등 빠리 곳곳에서 풍기는 웅장함과 독특한 분위기를 만족스럽게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계절 모두 매력적인 도시인 빠리를 걷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귀에 익었던 샹송을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것이다. 행정상 빠리는 20개의 구(arrondissements아롱디쓰망)로 나뉘어져 있다. 빠리 주소에는항상 구번호가 적혀 있는데, 1er는 1구, 19e는 19구를 뜻한다. 주소의 다섯자리 우편번호에도 구가 표시되어 있다. 예를 들면 75001은 1구, 75014는 14구이다.빠리의 전철시스템은 아주 편리하며 교통수단이 교차되는 곳 500m이내에는 항상 지하철역(Metro)이 있다.

쌩 말로(Saint Malo)

항구도시 쌩말로는 브르따뉴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로, 랑스(Rance)강 입구에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름다운 해변은 세계에서 가장 조수간만의 차가 큰 해변 중 하나로 밀물과 썰물 때 해수면의 높이가 13m까지 차이를 보인다. 쌩말로 북쪽에는 '에메랄드 해안(Cote d'Emeraude 꼬뜨 데메로드)'이 있다. 쌩말로는 17, 18세기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 중 하나로, 영국을 대상으로 한 많은 상선들이 이곳을 근거로 활동했었다. 2차 세계 대전인 1944년 8월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한 전투에서 구시가지의 80%가 파괴되었는데, 전쟁이 끝난 후 주요 유적지들은 복원되었지만 나머지는 17, 18세기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이 곳의 볼거리로는 11세기의 쌩 뱅쌍 성당(Cathedrale Saint Vincent)과 수세기를 지내오면서 거의 그대로 보존된 성벽(이 곳에서 보는 파노라마가 일품이다) 그리고 이 도시의 역사가 전시된 구시가박물관(Musee de la Ville뮈제 드라빌)과 거대한 수족관(Le Grand Aquarium) 등이 있다. 쌩말로에서 몽생미쉘(Mont-Saint-Michel)을 당일로 갔다올 수 있다.

샹보르 성(Chateau de Chambord 샤또 드 샹보르)

프랑소와 1세에 의해 1519년 건축되기 시작한 샹보르 성은 르와르지방에서 가장 크고 가장 방문객이 많은 성이다. 르네상스풍의 건물과 장식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왕의 초대를 받아 앙브와즈(Amboise(이곳에서 45km 남서쪽))에서 1516년부터 3년 후 그가 죽기까지 살았다고 한다. 프랑소와1세의 창조물인 샹보르에는 해그의 상징인 'F'자와 광폭한 성질을 가진 도롱뇽 무늬가 건물 내 대다수 방에 새겨져 있는데, 800명의 노동자와 예술가들이 15년간 샹보르성의 건축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몰리에르는 이곳에서 그의 가장 유명한 두 작품을, 루이14세 및 청중들 앞에서 처음 상연하였다. 성에 있는 나선형 계단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로 간주되며, 화려한 초창기 르네상스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성의 440개 방 중, 단지 10개만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옥상 테라스에서는 이 지역의 인상적인 스카이라인을 볼수 있다.

비아리쯔(Biarritz)

이 고급스런 해변도시 비아리쯔(인구 3만명, 그러나 여름엔 4배가 된다)는 베이욘느(Bayonne)에서 서쪽 8km거리에 있다. 나폴레옹3세가 그의 부인 유제니와 함께 찾아오곤 했던 19세기 중반무렵부터 휴양지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 후에는 부유한 영국인들이 많이 찾아왔으며 빅토리아여왕과 에드워드 7세도 방문했는데 방문을 기념해서 그들의 이름을 딴 길도 생겼다. 멋진 해안과 유럽에서 손꼽히는 파도타기 지역으로 유명하다. 여름철마다 각종 텐트가 줄지어 있는 그랑드 해변(Grande Plage)는 19세기 중반 나폴레옹3세와 그의 부인 유제니를 위한 별장으로 건설된 곳이다. 그랑드해변에서 남쪽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자줏빛 절벽과 만나는데 Rocher de la Vierge라는 바위섬으로 꼭대기에는 성마리아의 하얀 조각상이 있다. 비아리쯔의 해양박물관(Musee de la Mer)에는 24개 탱크의 수족관이 있으며 다양한 물고기와 물개, 상어 등이 전시되어 있다. 비아리쯔는 물가가 비싸서 여행예산에 심한 타격을 줄 수도 있는 곳이지만, 베이욘느나 앙글레(Anglet)에 있는 호스텔에 묵으면서 하루 정도 들러 볼 만한 곳이다.

싸를라 라 까네다(Sarlat-La-Caneda)

보통 싸를라(Sarlat)라고 불려지는, 뻬리고르지역의 이 아름다운 르네상스도시는, 수세기에 걸친 전쟁과 재난에도 불구하고 16세기와 17세기의 석회암건축물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 있는 쌩 싸쎄르도 대성당(Cathedrale Saint Sacerdos)은 원래 9세기에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지어진 것이었으나, 그 후 몇 세기가 지나면서 여러 양식이 혼합되어 증축, 재건축된 것이 오늘날 볼 수 있는 것이다. 동쪽으로는, 싸를라의 중세 공동묘지 쟈르뎅 데 뻬니땅(Jardin des Penitents)과 12세기에 성 베르나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벌통모양의 탑 랑떼른느 데 모르(Lanterne des Morts:죽은 자의 빛)가 있다. 라리베르떼 광장(Place de la Liberte)에서 열리는 토요시장도 볼 만하다. 싸를라에 있는 여행사에서 남쪽의 베제르(Vezere)계곡과 라스꼬 제2동굴 등 인근의 여러지역으로 가는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샤모니(Chamonix)

인구 1만명인 샤모니는 프랑스 알프스에서 가장 멋진 경관을 가진 곳이다. 알프스 주변의 웅장한 경관은 거의 히말라야 산맥과 흡사한데, 골짜기 바닥에서부터 3.8km 수직으로 솟아있는 몽블랑(Mont Blanc)과 얼음으로 뒤덮인 뾰족한 봉우리들, 그리고 수 km의 빙하계곡들이 장관을 이룬다. 늦봄과 여름에는 빙하들이 약간씩 녹아 꽃과 나무로 가득한 주변의 초원과 언덕에 촉촉한 물기를 제공한다.샤모니 지역에는 330km에 달하는 등반로가 있고, 겨울에는 최고의 스키지역으로 200km의 다운힐과 크로스 컨트리 스키장이 있다.에기유 뒤 미디(Aiguille du Midi)는 몽블랑 정상에서 8km 떨어진 한적한 바위꼭대기로, 샤모니에서 이곳으로 오는 뗄레페리끄(telepherique)는 세계에서 가장 높이 있는 케이블카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빙하와 눈 덮인 평원, 바위산 등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대개 아침 일찍 올라가야 시야도 좋고 비 맞을 확률도 적다. 5월 중순에서 9월까지는 Aiguille du Midi에서, 이탈리아 국경부근에 있는 봉우리 뿌엥뜨 엘브로네(Pointe Helbronner(3466m))와 이탈리아 휴양도시 꾸르마예르(Courmayeur)로 갈 수 있다.계곡 서쪽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르브레방(Le Brevent 2525m)은 몽블랑과 계곡 동쪽을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샤모니에서 뗄레꺄빈(telecabine)과 뗄레페리끄로 올 수 있는 이곳에는, 다양한 루트의 하이킹코스도 있다.알프스에서 두 번째로 큰 빙하 메르 드 글라스(Mer de Glace 얼음의 바다)는 길이 14km 폭 1950m로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1913m의 정상까지는 등반기차로 쉽게 오를 수 있는데, 기차는 샤모니의 몽땅베르 기차역(Gare du Montenvers)에서 출발한다. 아를르(Arles)인구 5만2천의 아를르는 꺄마르그(Camargue)충적평야 북쪽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시저가 폼페이를 도와 마르세이유를 침략, 점령하던 BC49년부터 번영하기 시작했고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곳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이어 중요한 무역도시로 발돋움하더니1세기 말엽에는 2만석 규모의 원형극장과 1만2천석 규모의 극장건물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아렌느(Arene)와 떼아트르 앙띠끄(Theatre Antique 고대극장)으로 불리우는 이 두 건물들은 아직까지 투우경기와 문화행사를 위해 사용되는 곳이다.12세기 지어진 쌩트로핀 성당(Cathedrale Saint Trophine)과 쌩트로핀 종탑은 로마네스크 건물로, 반 고호가 해바라기같은 그의 유명한 작품을 이곳에서 그렸다는 사실로 더 유명하다.아를르 시내광장은 여유롭게 쉴 수 있는 곳으로, 긴 콧수염을 휘날리며 광장에서 뻬땅끄(petanque 프랑스 구기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테라스가 있는 레스토랑에서 천천히 목을 축일 수 있다.

아를르(Arles)

인구 5만2천의 아를르는 꺄마르그(Camargue)충적평야 북쪽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시저가 폼페이를 도와 마르세이유를 침략, 점령하던 BC49년부터 번영하기 시작했고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곳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이어 중요한 무역도시로 발돋움하더니 1세기 말엽에는 2만석 규모의 원형극장과 1만2천석 규모의 극장건물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아렌느(Arene)와 떼아트르 앙띠끄(Theatre Antique 고대극장)으로 불리우는 이 두 건물들은 아직까지 투우경기와 문화행사를 위해 사용되는 곳이다.12세기 지어진 쌩트로핀 성당(Cathedrale Saint Trophine)과 쌩트로핀 종탑은 로마네스크 건물로, 반 고호가 해바라기같은 그의 유명한 작품을 이곳에서 그렸다는 사실로 더 유명하다.아를르 시내광장은 여유롭게 쉴 수 있는 곳으로, 긴 콧수염을 휘날리며 광장에서 뻬땅끄(petanque 프랑스 구기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테라스가 있는 레스토랑에서 천천히 목을 축일 수 있다.

깐느(Cannes)
깐느는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항구, 만, 언덕, 해변가 산책로, 해변, 그리고 거기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등이 어우러져 방문객을 흥겹게 한다. 세련된 매너로 돈을 물쓰듯 하는 부자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일 것이다. 깐느는 많은 페스티발과 문화행사로 유명하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깐느 국제 영화제(5월중순)일 것이다.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질 않지만 5월-10월이 가장 붑비는 관광철-이 때를 피해가면 지역 주민들이 좀 더 친절하고 가격도 저렴해져 스트레스받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해변가를 끼고 산책하기에 좋은 곳들이 많다. 한때는 어항이었지만 지금은 유람의 목적으로 이용되는 구항구(Vieux Port 비유뽀르)에는 으리으리한 요트들이 많이 정박되어 있다. 이 곳의 주변거리는 여름철 해가 지면 수많은 카페와 레스토랑의 색색의 네온사인으로 아주 아름다운 야경을 이룬다. 구항구 바로 서쪽에 있는 언덕 르쉬께(Le Suquet)는 맑은 날 밤에 올라 깐느 시의 훌륭한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꼭대기에는 카스트르박물관(Musee e la Castre)도 있다. 불르바르 드 라 크루와젯(Blvd de la Croisette)은 전나무와 야자수가 드리워진 길로, 이곳을 걷는다면 리비에라에서 가장 멋진 길에서 산책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 길을 따라 고급 호텔들이 많이 있는데 이 호텔들이 해변을 거의 소유해,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해변은 페스티발 궁전 가까이 있는 좁은 모래사장 뿐이다. 무료 해수욕장으로는, 쁠라쥬 뒤 미디(Plages du Midi)와 쁠라쥬 드 라 보까(Plages de la Bocca)가 있다.유칼리나무와 소나무로 뒤덮인 성 마가리트섬(Ile Sainte Marquerite)은 알렌상드르 뒤마의 소설로 유명해진 '철가면'이 17세기 말 유배되었던 곳으로, 육지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다. 면적이 넓지 않아(3.2x0.95km) 다양하게 난 길들을 따라 섬을 횡단하거나 둘러보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마가리트섬보다 더 작은, 성 오노라섬(Ile Saint Honorat)에는, 한때 이 지역에서 명성과 영향력을 떨쳤던 5세기 수도원이 있다. 이 두 곳은 깐느에서 페리로 연결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일 두쌍 (Ile d'Ouessant)

아름답지만 야생적인 이 섬은 브르따뉴해안에서 가장 험한 곳이다. 이 지역의 거친 특성과 험한 바위들은 무서움을 느끼게도 한다. 8km길이 집게발모양의 섬은 매년 수로로 들어오는 50,000척의 배들에게 등대 노릇을 한다. 과거의 세기들을 극복하고 이 곳은 더 이상 다른 세상과 격리되어 살아가진 않는다. 이 곳의 집들은, 성모마리아를 위해 파랑과 하양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부목과 내부 인테리어와를 구별하기 위해 초록과 하양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이 곳 할머니들이 거칠고 마디 굵은 손으로 매듭을 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남편의 영혼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섬 어디에서나 검은 색의 작은 양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 곳의 주요음식은 양스튜이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등대와 이 지역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 그리고 멋진 산책로와 경치도 빼놓을 수 없는 이곳의 자랑거리이다.본토에서 20km 떨어져 있는 이 섬은 브르따뉴 북서부연안의 르 꽁께(Le Conquet)와 브레스크(Brest)항에서 갈 수 있다.

피레네 국립공원(Parc National des Pyrenees(빠르 나씨오날 데 삐레네))

1967년에 생긴 피레네 국립공원은, 프랑스-스페인 국경을 따라 100km까지 뻗어 있고, 460평방km의 공원에는 수백개의 고지대 호수들과, 프랑스 피레네에서 가장 높이 솟은 3300m의 비뉴말봉(Sommet du Vignemale)이 포함되어 있다.그러나 공원면적은 단지 12%정도에 불과하다. 연강수량은 2000mm이며 대부분은 눈이 내린다. 보호동물종으로는 갈색곰(15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음)과 스라소니, 샤무아영양, 마멋, 그리고 멸종위기의 조류인 수염난 대머리수리와 황금독수리가 있다.공원에는 암벽등반가와 하이커들이 선호하는 350km의 등반로들이 있는데, 그 중 몇 곳은 스페인과 연결되어 있다. 더욱이 이곳에는 연중 개방되는 산장들이 많이 있다.인근에 있는 뽀(Pau)에서, 가이드와 함께 이 곳을 등반하는 소규모 그룹에 참여할 수 있으며, 개별 하이킹과 자전거여행도 가이드받을 수 있다. 루르드(Lourdes)남쪽에서 30km거리, 공원 동쪽편의 꼬트레(Cauterets)가 가장 편하고 가기 쉬운 관문이다.

베즐래(Vezelay)

베즐레는 작은 성곽마을로, 많은 포도밭과 해바라기 들판, 브루넷 농경지와 인상파 그림을 떠올리는 목초더미들이 한 폭의 풍경화를 이루며, 부르고뉴의 아름다운 시골풍경에 자리잡고 있는 역사적인 마을이다. 원래 이곳은 방어의 목적으로 언덕지대에 세워졌는데 10세기에는 순례자들이, 그 후에는 십자군 원정 때 왕과 대공들이 모여드는 장소가 되었다. 이 곳의 하이라이트는 9세기에 지어진 성 마들렌느 성당(Basilique Sainte Madeleine)이다. 중세기 동안, 이 곳은 막달라 마리아의 유골이 묻혀있던 장소로 여겨 그녀를 기리는 7월22일에는 순례자들이 꾸준히 이곳을 찾아들었다고 한다. 이 전통은 꾸준히 이어져, 지금도 매년 행사에서 마을을 도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훌륭하게 복구된 교회는 부르고뉴양식의 걸작품으로, 로마네스크 건축물에 그로테스크한 조각물, 조각된 기둥들과 웅장한 예배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당 뒤에 있는 공원에서는 뀌르(Cure)강 계곡과 인근 마을들의 멋진 전경을 볼 수 있으며, 이 마을들 어느 곳이든지 시골의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산책로들이 많이 있다.베즐레는 아발롱(Avalon)에서 15km, 옥세르(Auxerre)에서 51km 떨어져 있고, 모르방 자연공원(Parc Naturel Reginal du Morvan)구역 내에 위치해 있다.

그라쓰(Grasse)

깐느에서 7km 떨어져 있는 그라쓰는 오랫동안 프랑스의 주요 향수생산지로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있는 향수제조의 대가(흔히 네쯔(nez:불어로 '코'란 뜻)라고 불리는)들은 이 자연의 선물인 '향기'를 연구하여 6000여종 이상의 향을 만들어 내왔다. 오렌지빛 지붕으로 눈에 띄는 이 마을에는 향수의 도시답게, 쟈스민, 센티폴리아 장미종, 미모사, 오렌지색 사과꽃, 취하게 하는 나르시스 등이 재배되고 있다.4여개의 향수공장 중 3개만이 일반에게 공개된다. 그 중 하나인 프라고나르(Fragonard)는 17세기 무두질 공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 투어에 참가하면, 비누더미, 향기나는 가죽다발, 향료가 가득한 상자들로 쌓여진 창고를 둘러보며 이곳을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무수히 많은 꽃들에서 향료를 추출하고 걸러내어 무수한 향 테스트를 한 후 1리터의 향수가 나오기까지의 전 과정을 볼 수 있는데, 이 곳을 다 구경한 후 나오는 사람들로부터는 향수냄새가 진동을 할 것이고 손에는 향수꾸러미가 여지없이 들려 있을 것이다.

코르시카(Corsica)

꼬뜨다쥐르 남동쪽으로 170km거리에 있는 코르시카는, 급류가 굽이치는 산악에서부터 부드러운 모래사장이 펼쳐진 해안까지, 지중해에 있는 섬 들 중 가장 다채로운 지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방대한 하이킹지역뿐만 아니라 멋진 배경의 사진장소들도 많이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이곳은 프랑스와 전혀 다른 언어와 요리, 생활방식으로 색다른 이국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코르시카 독립에 대한 끊임없는 움직임이 이런 이질적인 문화을 더욱 갈구한 것이다. 대부분 민족주의자 단체들은 내부의 보복살인과 재산피해를 가져오는 폭력을 자제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이곳에서의 여행자들은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항구도시 아작시오(Ajaccio)는 나폴레옹의 출생지로, 대부분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코르시카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최근 현대화의 바람이 일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이 파스텔풍 도시의 구시가 골목길에는 산책과 사색을 즐기기에 좋은 여유가 남아 있다. 나폴레옹의 교훈을 남기는 수많은 기념비와 박물관 외에도, 화강암 봉우리 '라 쁘웽뜨 드 라 빠라따(la Pointe de la Parata)'에서 일출을 볼 수도 있고, 마을에서 가까운 해변에서 수영도 할 수 있다.섬에서 가장 알아주는 자연지역은 레깔랑슈(Les Calanche)로, 붉은색과 오렌지빛 화강암으로 된 산악지형은 악마성과 평범성을 가진 양면의 인간과 동물 그리고 빌딩 모양을 하고 있다. 날씨가 좋을 때는 지중해와 북부산악지대의 경치는 그야말로 절경을 이룬다. 그리고 근처엔 짧지만 쉽지않은 하이킹코스도 많이 있다. 코르시카 최남단에 있는 보니파시오 성( Citadelle of Bonifacio)은 길고 좁은 석회암 꼭대기에 우뚝 서 있다. 중세기동안 수회의 잔인한 공격을 받았던 마을의 좁은 골목길 등에서는 중세풍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성에서 가까운 칼비(Calvi)는 코르시카 북서쪽 해변마을이며, 북쪽 25km 뻗어있는 칼비와 루스섬(l'Ile Rousse)사이의 해안에는 아름다운 해변가들이 줄지어 있다.코르시카 여행에 최적의 시기는, 항상 태양을 볼 수 있고 꽃들이 활짝 피는 5월과 6월로 이 때는 유럽여행객들로 붐비지도 않는다. 코르시카의 마을들로 가려면 프랑스 여러 공항과 유럽 대도시에서 직항편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고, 더 저렴한 방법으로는 페리를 이용하는 것인데 페리는 종종 잦은 파업으로 노선이 끊길 때가 있고 심지어는 몇 주 동안 운항이 중단될 때도 있다.


--와인--

와인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한 날에 특별한 사람들이 마시는 술이 아니다. 최근 ‘웰빙’이라는 트렌드와 맞물려 일상에서도 자주 접하게 된 와인은 하나의 문화를 이룰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아무리 와인 보다 소주가 더 좋다고 해도, <사이드웨이>의 잭처럼 와인을 단순히 포도주로 담근 술이라고 생각하는 와인 문외한이라고 해도 와인을 마시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언제, 어느 상황에서 와인과 만나더라도 주눅들지 않고 기꺼이 마셔줄 수 있다.

마일즈는 역시 와인 전문가답게 와인의 색깔과 투명도를 먼저 이야기 한다. 와인을 감별할 때 색깔을 관찰하는 것은 와인의 특성과 건강상태, 나이, 품질을 관찰할 수 있는 기본이다. 마일즈는 포도 품종으로 색깔을 구분했지만, 숙성된 지 얼마 안 되는 신선한 적포도주는 제비꽃이나 체리색, 루비색을 띤다. 숙성기간이 오래되면 암홍색, 벽돌색, 갈색, 호박색으로 변해 간다. 색상이 진한 와인은 일반적으로 튼튼하고 힘세며 탄닌이 풍부하고 향이 진한 숙성용 와인이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와인의 색깔은 선명하고 밝아야 하며 탁하거나 흐릿해서는 안된다.

마일스는 눈으로 와인을 관찰한 다음 잔에 코를 깊숙이 대고 냄새를 맡아보라고 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코가 잔 속으로 들어가도록 해서 천천히 깊이 숨을 들이쉬며 향을 맡는 것. 이 때 맡는 향은 ‘노즈(Nose)’라고 불리는데 여기서 고급 와인과 저급 와인의 품질이 드러난다. 물론 좋은 와인이 기분 좋게 하는 향이 난다. 그러나 마일스의 행동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흔들기 전과 흔들고 난 후 와인의 맛과 향은 다르다. 처음 향기가 그대로 지속되는 와인이 품질이 좋은 와인이다.

다급해진 잭이 언제 마셔야 하냐고 묻는 순간, 바로 와인을 맛보는 것을 ‘감식’이라고 부른다. 와인을 한가득 머금고 입의 구석 구석으로 돌려보면서 와인의 맛과 향, 강도를 느껴야 하건만 우리의 잭은 껌을 씹은 채로 와인을 마셨으니, 마일즈가 기겁을 할 수 밖에! 여기서 마지막 포인트는 와인을 삼키고 난 후에도 뒷맛이 길게 느껴지는 와인이야말로 정말 좋은 와인이다.

200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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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자연

프랑스의 지형
프랑스는 낮고 평활한 지형의 나라이다. 지형구조상 기본선은 동부의 보주와 쥐라의 산지 사이로부터 손강·론강 하천 골짜기 우변을 따라 남하하여 지중해 해안평야 북쪽 가장자리를 거쳐 피레네 북쪽에서 대서양으로 나간다. 일반적으로 북서쪽은 완만한 경사면, 남동쪽은 험한 벼랑이 이어져 피레네 북쪽 기슭을 제외하고는 비대칭 능선을 이루며, 동시에 중요한 분수계가 되어 있다. J자형을 그리는 이 기본구조선의 북서쪽에서는 경사면에 따라 모젤강과 센강이 영국해협을 향해 있고, 루아르강과 가론강 등이 대서양을 향하여 흐르며 남동쪽에서는 손강·론강이 지중해로 흘러든다. 북서쪽으로 길게 유역면적이 넓고 경사가 완만한 대하천이 많다. 기본구조선의 북서쪽은 동유럽부터 북서유럽으로 이어져 있는 평야·대지·고원이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데, 약 3억∼4억년 전 헤르시니아조산운동으로 형성된 것으로 오랜 세월 동안 침식되어 고원 모양으로 낮아진 고생대 산지를 골격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 헤르시니아기 산지가 V자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고, 북서부에는 아르모리칸산지, 중남부에는 마시프상트랄(중앙산지), 북동부에는 아르덴산지와 보주산지가 있다. 이들 산지 사이의 산마루에 해당되는 부분은 문턱(seuil)이라 불릴 만큼 낮고 북서부와 중남부에는 푸아투문턱, 중남부와 북동부에는 부르고뉴문턱이 있다. 뒤의 것은 마시프상트랄과 피레네 사이에 있는 로레게문턱과 함께 기본구조선상 지중해·대서양 분수계 일부이기도 하다. 마시프상트랄에는 그 뒤에 분화한 화산지형도 볼 수 있는데, 이암과 편암이 침식되어 단단한 석회암이 남아 있으며, 지질구조가 지형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V자의 바닥에 해당되는 지방에는 코스(causse)라 불리는 석회암대지가 퍼져 있고 종유동이나 깊은 협곡을 볼 수 있다. V자 모양의 산지에 둘러싸인 부분에 파리분지, V자의 아래에 아키텐분지가 형성되었으며, 이들 분지에는 주변 산지에서 흘러온 토사가 중생대부터 제3기에 걸쳐 퇴적하여 중앙부에서 약간 낮게 주변부를 향하여 높아지는 지층을 형성한다. 여기서도 석회암이 침식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경우가 있어 파리분지에서는 동쪽에서 남동쪽에 걸쳐 안쪽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완경사, 바깥쪽은 험준한 벼랑이 된 케스타지형을 이룬다. 이 가파른 벼랑을 일단 통과하면 평탄한 토지가 펼쳐진다. 또 파리 남쪽 보스평야와 같이 석회암을 기반으로 하는 대지는 투수성이 높아 작은 하천은 적으나 큰 하천은 강 나비도 넓고, 센강·모젤강은 유량도 안정되어 내륙 하천교통이 발달하였다. 그러나 마시프상트랄고원지방을 출발하는 루아르강 등은 이른 봄 해빙으로 인한 증수와 여름철 갈수의 유량차가 심하여 하천교통은 하구 부근에 한정된다. V자의 오른쪽은 기본 구조선에 연하여 험준한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 남동쪽 프랑스는 알프스조산대에 의하여 조성된 알프스·피레네·쥐라의 대산맥과 이것들을 꿰뚫은 하곡으로 대표된다. 이들 산맥은 제3기 약 8000만 년 전 아프리카 플레이트와 유럽 플레이트가 부딪쳐 형성된 것으로서, 단층이나 습곡(褶曲)이 많으며 보주산지나 마시프상트랄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제4기 빙하기의 영향을 정면으로 받은 이 남동쪽은 빙하에 의하여 조성된 U자형 골짜기가 리옹 가까이까지 밀고 나와 모레인(氷堆石)을 남기고 있다. 유럽 제1의 고봉 몽블랑을 비롯한 많은 고산에는 빙하로 깎여진 험준한 바위가 많으며 아직 빙하도 남아 있다. 이러한 산의 물이 모여서 흘러내리는 론강은 급류로서 운반되는 토사량도 많아 하구에는 카마르그(camargue)라 불리는 삼각주지대를 형성, 에그모르트와 같이 이전의 항구를 내륙으로 거둬들이는 한편 쌀농사나 방목에 이용할 토지를 확대시키고 있다.

프랑스의 기후
기후는 3개의 정체성기단과 따뜻한 북대서양 해류상에서 발생하여 서쪽으로 이동해오는 온난습윤한 이동성 저기압과의 관계에 의하여 정해진다. 정체성기단 가운데 남쪽의 아조레스고기압은 고온건조하며 겨울에는 사하라사막까지 후퇴하는데, 여름에는 프랑스 남부까지 뒤덮는다. 북쪽의 아이슬란드저기압은 저온습윤하며 직접 프랑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여름에 세력이 강해지면 냉하(冷夏)의날씨로 비가 많게 되고, 겨울에 약해지면 혹한으로 맑은 날씨가 많게 되는 등의 영향을 준다. 또 하나의 정체성기단은 여름에 저압대가 되고겨울은 고기압이 되어 동쪽에서 이동해 오는 시베리아기단이다. 겨울에 이것이 약해지면 난동으로 비가 많게 된다. 지역적으로는 알프스·피레네 등의 고산지역은 별도로 치고 프랑스는 이들 3개의 기단에 대응한 3가지 기후가 나타난 다. 첫째는 아조레스고기압의 영향을 받는 지중해성기후이다. 여름은 건조함과 눈부신 태양, 맑은 공기가 특징이며, 아조레스고기압이 발달하였을 때 이 기후구는 루아르강 근처까지 북상한다. 이 고기압이 약해지고 시베리아고기압과의 사이 골짜기에 저기압이 진행되어 오는 가을부터 많은 비가 내리는데 도랑을 파내고 급류가 되며 표토를 밀어낸다. 이로 인하여 삼림은 성장하지 못하고 마키(maquis)라 불리는 식물군락이나 가리그(garigue)라 불리는 관목 덤불 등 여름의 건조에 견디는 관목의 밀림을 형성하게 되며, 경지는 관개되는 일이 많다. 겨울은 대체로 온난한데 서쪽에서 오는 저기압이 지중해에서 발달하면 내륙의 고기압으로부터 론강 골짜기를 향하여 미스트랄이라는 차가운 북풍이 불어온다. 둘째는 겨울 내륙의 고기압에 지배되는 대륙성기후로 겨울은 춥고 건조하며 맑은 날씨가 많다. 여름은 내륙이 저압부로 되어 내륙 깊은 곳까지 저기압을 끌어들여 강수현상이 나타난다. 이 겨울 고기압은 프랑스 전지역을 지배하는 엄동도 있지만, 자주 동쪽으로 후퇴해 버리는 난동도 있으며, 동부는 이른바 대륙성기후로의 점이대(隷移帶)이다. 산지 동쪽의 손강·라인강·모젤강 등의 하곡에서는 서쪽에서 오는 저기압의 산그늘에 해당되므로 여름에 비가 적고 기온이 높으며 기온의 연교차가 큰 대륙성기후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셋째는 아이슬란드저기압 영향을 받으면서 이동성온대저기압이 잇따라 대서양으로부터 이동해 오는 해양성기후(서안해양성기후)이다. 부르타뉴반도의 기후가 그 전형으로 저기압으로 인해 여름은 선선하고, 겨울은 따뜻하여 기온의 연교차가 작다. 비는 보슬비로 강우일수는 길지만 강수량은 적다. 반도 앞 끝의 브레스트에서는 연간 220일 정도 비가 내리지만 강수량은 불과 1130㎜이다. 수시간 단위로 날씨가 바뀔 만큼 일기 변화가 심하며, 특히 저기압이 내륙의 고기압과 부딪치는 겨울에는 따뜻하고 습기찬 공기가 급랭하여 안개나 폭풍우가 몰아 닥친다. 영국해협 등에서 해난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이 시기이다. 프랑스의 탁월풍은 대체로 서풍인데, 해양성기후에서는 겨울에 태양을 거의 볼 수 없지만 들판의 푸르름은 그대로 지니게 된다.

프랑스의 생물상
프랑스의 삼림은 전체 국토면적의 약 20%를 차지하며 보주산지 일대에 많이 형성되어 있다. 빙하기 때는 침엽수림이 대부분이었으나 기후가 온난다습해짐에 따라 낙엽활엽수립으로 바뀌었다. 서프랑스에서는 참나무·밤나무·소나무·자작나무가 많이 자라고 동프랑스에서는 노르웨이단풍나무·자작나무·유럽졸참나무·잎갈나무 등의 수목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보주산맥 능선 부근의 목초지대 아래쪽으로 전나무삼림이 펼쳐져 있고, 뫼즈강, 모젤강의 케스타 사면, 랑그르고지에는 너도밤나무·종비나무·적송 등이 삼림을 이루고 있다. 고산지대는 해발고도가 낮은 곳은 자작나무가 많이 자라고 높을수록 잣나무와 소나무가 많아진다. 특히 피레네산맥은 너도밤나무·소나무 등 비교적 단순한 식생을 보이는 반면 마시프상트랄과 알프스에서는 떡갈나무·밤나무 등의 삼림이 수평·수직으로 복잡하게 분포되어 있다. 수목한계선 위쪽으로는 목초지와 제대로 자라지 못한 나무들이 있다. 지중해안 저지는 건조한 여름이 길기 때문에 낙엽활엽수림이 자라지 못하는 대신 올리브·측백나무·주목·협죽도 등 상록활엽수와 관목이 자란다. 또한 여름의 가뭄으로 구근식물은 죽고 가시나무류, 코르크참나무, 히속(屬)의 각종 식물과 물푸레나무류인 시스투스라벤더 등의 건생식물이 잘 자란다. 지중해지역의 삼림은 일단 파괴되면 초원이 되지 않고 관목이 자라며, 리비에라 해안은 겨울에도 따뜻하여 오렌지가 재배된다. 이 밖에 털가시나무·소나무·노송나무류, 석회암지대의 소관목과 방향성 초본(草本) 만이 생육하는 석회질황지(石灰質荒地), 코르시카섬 결정암지대의 밀생관목림(密生灌木林) 등은 남프랑스의 독특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동물은 붉은사슴·노루·멧돼지 등의 포유류와 여우·사향고양이류·희귀종유럽살쾡이 등의 육식동물이 있다. 알프스산맥고지에는 영양류인 샤무아와 야생염소가 서식하고 삼림과 들에는 토끼 등 각종 설치류가 있다. 그 밖에 외래조류종 분포지의 북쪽 경계선에 해당하는 남프랑스에서는 홍학류·이집트민목독수리·장다리물떼새·벌잡이새류·파랑새류 등을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지지(地誌)
각기 다른 자연조건과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지구(小地區)와 그 필연적·인위적인 지역적 집합인 프로방스의 개념은 현재까지도 프랑스인들의 마음 속에 살아 있다. 이것이 강력한 파리중심체제에 의해 묶여 있는 것이 프랑스 지지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에 공업화가 시작되었을 때에도 공업도시는 파리에 집중되어 있었고 경제 분야에서도 수도로서의 지위가 강화되었다. 마시프상트랄, 남서지방은 서유립대공업지대와 멀기 때문에 투자삭감·인구노령화 등으로 시달리고 있다.


프랑스의 역사

도르도뉴계곡, 피레네지방, 론강 하류유역 등에서 발굴된 석기시대의 유물로 미루어 볼 때 프랑스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보통 선사시대·갈로로망시대·중세·근대·현대로 구분된다. 선사시대는 구석기시대의 크로마뇽인시대부터 신석기시대를 거쳐 초기 켈트부족시대까지이고, 갈로로망시대(BC 2세기∼5세기)는 켈트인을 거쳐 로마 군인 G.J. 카이사르에 의한 갈리아정복에서부터 로마지배의 붕괴까지를 가리킨다. 중세 초기(450∼1108)는 로마와 게르만적 전통이 존재하면서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변혁에 의해서 제도가 발전하였고, 후기(1108∼1515)는 카페왕조의 왕정강화, 백년전쟁, 발루아왕조의 수립 등 봉건사회의 성립, 전개 시기를 가리킨다. 근대는 루이 11세와 계승자들에 의한 절대왕정의 수립과 영토확장에서의 붕괴, 프랑스혁명, 1871년 파리코뮌까지로 자본주의 경제가 발달한 시기이다. 현대는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온 시기로 제3공화정 이후 현재까지를 나타낸다.

프랑스의 사회

주민·종교
유럽에서 가장 일찍 민족을 형성한 국가로 예로부터 지리적 여건상 중동·아프리카·중앙아시아·북유럽으로부터 이주해온 다양한 인종이 정착하여 살았다. 농업과 상업이 시작되어 지중해 서부에서 농경생활을 하다가 이주해온 지중해인은 키가 작고 마른 몸에 장두(長頭)이며 머리털과 눈이 검다. 또 서아시아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농업을 영위하였던 알프스인들은 단두(短頭)가 특징적인데 알자스·파리분지 등에서 살다가 알프스산지로 거주지가 확대됨에 따라 알프스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들은 마시프상트랄·피레네 등지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 북방인은 러시아 스텝지대 수렵민이 그 기원으로 켈트인이 이에 속한다. 이들 각 인종은 수 세기에 걸친 전쟁과 이민족의 점령을 거치면서 켈트·라틴·게르만계의 혼합족을 이루어 오늘날 프랑스인이 되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인종적 특성이 강하게 남아 있는 지역도 있는데 피레네 서부의 바스크인은 에스파냐 바스크인의 일부로 바스크어를 사용한다. 또한 노르망디인은 브리튼어를 사용하는 켈트계 주민으로서 모두 프랑스 소수민족을 구성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다른 대륙에서 유럽으로 몰려드는 이민들의 주요 목적지가 됨으로써 인종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국민의 약 85%가 가톨릭신자이다. 북아프리카에서 이민온 사람들로 이슬람교도도 상당수 있으나 노동자층과 청년층에는 무신론자들이 많다.

인구
1801년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았으나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제1·2차세계대전 등을 겪으면서 급감하였다. 1938년 이후 가족수당을 제도화하는 등 인구증가정책을 추진한 결과 한동안 증가추세를 보였으나 1970년대 중반부터 다시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에는 기존인구의 1/3 수준으로 떨어졌고 1988년 인구조사에서는 제1·2차세계대전의 영향으로 고령자의 남녀비율이 불균형적으로 나타난 것이 특징적이다. 또한 14세 미만이 20.5%, 15~60세가 60.8%, 60세 이상이 18.7%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서 고령화 경향을 볼 수 있다. 1993년 총인구는 5769만으로 세계인구의 1.3%를 차지, 세계에서 17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며 평균수명은 남자 72.9세, 여자 81.1세이다. 인구의 도시집중도 뚜렷하여 수도권은 전인구의 16%를 차지하며 이곳을 제외한 도시권 인구 20만 이상의 도시인구가 41%에 이르고 있다. 인구가 가장 많은 일드프랑스·론알프·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노르파드칼레지역은 전국토의 약 1%에 해당하는 면적에 인구는 총인구의 40%가 넘는다. 반면에 인구가 가장 적은 지역은 코르시카·리무쟁·프랑슈콩테·오베르뉴로 전국토의 12%에 해당하는 면적에 인구는 총인구의 6%에 불과하다. 도시성장에 따른 교외주택화는 미국·영국보다 늦게 이루어졌는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파리의 외곽교외인구가 일드프랑스지역 총인구의 39%를 차지하게 되었다. 농촌인구는 농업현대화가 이루어지면서 계속 감소, 1980년대에는 3/4이 도시민화하였다. 직업별로는 농업인구가 10% 이하, 신중간층이 50%이며 직업여성 비율도 1968년의 35%에서 1984년 42%로 증가하였다. 그 밖에 여성의 사회참여가 증대, 30대 평균 취업률이 50%를 넘는다. 19세기 중반부터 외국인 유입이 활발히 이루어져 1850~1914년 약 430만, 제1·2차세계대전 때 300만의 이민이 생겼다. 20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가장 개방적인 나라였으나 후반부터는 아프리카인을 배척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1992년 통계에 의하면 130만 명이 해외에서 살고 있는데 특히 유럽에서 프랑스인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또한 아프리카에 18만 8810명, 미국에 15만 5682명, 근동(近東)에 5만 1553명,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 4만 675명 등 각 지역에 걸쳐 살고 있다.

국민생활
2002년 1인당 국내총생산은 2만 2670달러이다. 북동지방과 남서지방은 큰 소득격차로 인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1970년대 말부터 시정정책을 편 결과 약간 축소되었다. 산업경영자·자유업 및 상급 관리(cadre)는 소득이 높은 편으로 특히 중간층과 많은 차이가 나고 생산노동자보다 4배 정도가 많다. 프랑스인은 휴가의 비중을 크게 두어 1936년 주당 40시간 노동과 연간 15일의 유급휴가를 법으로 정하였다. 1969년 휴가기간이 4주일로 늘어났고 1985년에는 1주가 더 늘어났다. 특히 여름휴가는 <그랑드 바캉스>라고 부르는데 이 여름 바캉스를 위해 1년간 저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만큼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때 국민의 55%가 바캉스를 즐기기 위해 떠나고, 1인당 평균 휴가 이용일수는 26일 이상에 이른다. 휴가철에는 지중해안·대서양 또는 에스파냐·포르투갈·이탈리아 등으로 대대적인 인구이동이 일어나고 도시의 상점들은 문을 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겨울철에는 알프스에서 스키를 즐기는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전체인구의 7%가 별장을 소유하고 있다.

노동
프랑스에서 노동문제는 오랫동안 개인적 문제로 여겨졌으나 제1차세계대전 이후 공업국으로 출발하면서 사회적·경제적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1914년 전국실업금고(全國失業金庫)가 창설되고 1919년 기술·직업·교육에 관한 아스티에법이 제정되었으나 1945년이 되어서야 국가가 고용을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기본방침이 확인되었다. 1950년 최저임금법이 발효되었으며 1970년부터는 최저임금액을 물가상승률보다 빠른 속도로 인상시키는 규정(SMIC)이 최저임금법에 추가되었다. 노동자의 조합조직률은 노동조합 승인이 19세기 후반에 뒤늦게 이루어진데다 노동조합센터가 분립해 있기 때문에 높지 않다. 노사관계의 조정은 호텔업, 신문·잡지업, 가내공업을 제외한 부문의 프랑스고용자전국평의회(CNPF)와, 노동조합단체인 노동총동맹(CGT), 노동자의 힘(FO)·프랑스노동자민주동맹(CFDT)·프랑스그리스도교노동자동맹(CFTC) 및 교육계의 국민교육연맹(FEN) 등이 맡고 있으며 분쟁은 계약방식에 의해 해결할 의무를 각각 지고 있다. 또한 1950년 법률에 따라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의 집단관계를 정하는 단체계약의 체결은 조합의 의무이기도 하다. 이 계약은 부문별 또는 일정수의 기업에 대해 전국적·지역별 모든 노동조건이 포함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문제성(社會問題省)이 분야·지역별로 일률적 조건을 적용하기도 한다. 1991년 총노동인구는 2440만이며 이 가운데 44%가 여성으로 사무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1993년 실업자수는 302만 4000명에 이르렀으며 여성 실업자수는 남성의 2배 가까이 된다. 평균적으로 남자의 소득이 여자보다 28.2% 정도 많으며, 관리직 임금이 육체노동자의 임금보다 2.7배 정도 높다. 1936년 노동시간이 주 40시간으로 줄어든 뒤 1982년 주 39시간으로 바뀌었으며, 오늘날에는 주 5일제 근무가 널리 보급되어 있고 연차유급휴가도 확대일로에 있다. 이민노동자는 155만 7000명 정도로 전체노동인구의 66%를 차지하는데 이들 가운데 약 58%가 육체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교육
15세기 말 그 동안 성직자만을 대상으로 하던 교육은 파리대학이 설립됨으로써 일반에게 개방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1791년 헌법에 모든 국민이 교육을 받을 권리가 명시되어 제3공화정 때에 현재의 교육제도가 확립되었다. 1808년 나폴레옹이 <제국대학>을 설립하여 국가교육제가 확립되었고 1850년 사립교육이 허가되었다. 1880년 여성에게도 중등교육기회가 주어지고 이듬해 초등교육 무상제도가 실시되었으며 1882년 초등교육의 의무조항과 교내에서의 종교교육 금지조항이 제정되었다. 그 결과 문맹률이 1872년 20%에서 1910년 4.2%로 감소하였다. 프랑스 교육체제는 영재교육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제2차세계대전 후 P. 랑주뱅의 개혁, 제5공화국이 수립된 뒤 1959년의 개혁, 1968년 소르본대학을 중심으로 일어난 <5월 사태> 등을 계기로 크게 변화하였다. 또한 1969년 6월에는 인구증가에 따른 학교의 증설, 기술·직업교육, 사립학교 및 외국과의 협력사업 등의 책임을 맡는 각외상(閣外相)이 따로 임명되었다. 프랑스 교육은 공교육과 사교육으로 분리된다. 공교육은 일체 무료이며 6~16세까지 의무교육이 적용된다. 초등교육은 6~11세, 중등교육은 제1단계(11~15세)와 제2단계(15~18세)로 나누어진다. 제1단계에서는 진학·취직의 예비코스로 구분되며 뒤에 변경이 가능하다. 제2단계에서는 직업면허증을 딸 수 있는 2년과정과 대학입학자격시험(바칼로레아)을 볼 수 있는 고등교육인 3년과정 중에서 선택하여 진학한다. 바칼로레아 합격자에게는 문호가 개방되는 일반대학에 비해 엄격한 시험을 통과해야 입학이 허용되는 고등전문학교(그랑드제콜)가 따로 있다. 여기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바칼로레아 취득 후 유명고등학교 안에 설치된 수험준비학급에서 2년동안 공부한 뒤 시험을 치르게 된다. 유명한 그랑드제콜은 엘리트 양성기관으로서의 성격이 강해 일반대학과 면학조건이나 교육조건에서 차이가 나며 졸업 후에는 성적순으로 관청·기업·교수직 등의 지위가 주어진다. 권위 있는 고등전문학교로 세계적 명문인 소르본대학을 비롯 프랑스 제1의 이공과학교인 에콜폴리테크니크 등이 있다. 사교육은 주로 로마가톨릭 계통이다. 헌법에서는 종교의 분리를 명시하고 있으나 1959년 제정된 법률에 의거하여 정부의 일정한 간섭을 받는 대신 재정지원을 받는다. 교육비는 국민총생산의 3.5%가 투입되며 1991년 교육예산은 439억 달러였다.

사회복지
산업혁명 이후 19세기말∼20세기초 유럽 각국에서 사용자과실의 입장을 배제하는 노동재해보상입법이 채택됨에 따라서 1898년 4월 프랑스에서도 노동재해보상법이 시행되었다. 1910년 근로자·농업종사자 퇴직연금법이, 1932년 가족수당법이 제정되었으며 1945∼1946년 종합적 사회보장원칙이 확립되었다. 이에 따라 종전에 시행되던 사회보험법·노동재해보상법·가족수당법 및 노령 피고용자수당에 관한 법이 1945년 제정된 사회보장의 조직에 관한 법률에 통합되었다. 제5공화국이 들어선 뒤 <1967년 개혁>이 이루어져 종래 사회보장에 대한 대폭적인 개혁이 단행되었다. 이에 의해 재정을 총괄하던 전국사회보험금고 대신 질병보험금고, 노령보험금고, 가족·급여금고를 설치하였으며 수공업자나 독립자영업자도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게되었다. 사회보장 전체의 재원은 1984년의 경우 사용자 50.2%, 피보험자 23.8%, 국가·지방공공단체 22.6%, 기타 3.4%로 사용자 부담률이 큰 편이다. 일반보험 재원은 사용자와 피보험자가 부담하며 노동재해보상보험과 가족수당은 고용자에게서 징수된 보험료만으로 충당한다. 노령연금은 피보험자기간 37.5년인 사람이 60세가 되었을 때부터 적용되며 지급액은 소득이 가장 많았었던 10년간의 평균임금 연액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최저액이 보장된다. 가족수당은 1세기에 걸친 인구정체를 해결하고자 한 것으로, 종류가 많고 지출액도 전체의 1/3을 차지한다. 또한 임산부수당·출산수당·산후수당 등이 있으며 수입과 자녀수에 상응하는 주거수당이 있다. 그 밖에 단일급여수당은 자녀양육을 위해 주부가 근무를 단념해야 할 경우 그 가계를 보조하는 취지로 자녀수에 따라 부수입의 상한을 넘지않는 가정을 대상으로 지급된다. 이처럼 가족수당은 출산장려의 목적이 잘 반영되어 있다. 주택은 현재 40% 이상이 1948년 이전에 건축된 것이며, 1945년부터 주택난이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할증금·융자·감세혜택 등을 통해 건축사업을 장려하는 한편 1960∼1970년대에는 대규모 공영주택 건설계획을 추진하였다.

프랑스의 문화

문화의 특질과 변모
프랑스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문화의 나라로서 그 문화는 켈트·그리스·로마·게르만 요소들이 복합된 고대문명에서 유래한다. BC 9세기 켈트인이 갈리아로 이주하여 켈트문화가 형성되었으며 이후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라틴어·법률·행정제도·종교·건축 등의 영역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 당시 문화의 흔적은 오늘날 님이나 아를의 신전과 투기장, 퐁뒤가르의 수도교(水道橋) 등의 유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후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게르만이 지배하였는데 루아르강을 경계로 북쪽은 게르만의 지배와 영향을 많이 받았고 남쪽은 로마의 영향을 받았다. 이와 같은 문화적 차이는 오늘날 북프랑스와 남프랑스의 문화적 차이로 이어졌다. 프랑스인의 주지주의적·법률주의적 기질과 주변국의 문명·제도의 영향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적 조건은 인문 등 여러 분야를 다양하게 발전시켰고 중앙집권체제 확립에 큰 역할을 하였다. 주지주의는 중세봉건제의 확립·발전과 더불어 점차 프랑스인의 기질에 침투하여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기에는 명료한 특징을 나타내었다. 명석한 논리와 비판을 즐기는 지성, 구체적인 것을 존중하는 실증적 정신은 프랑스문화의 대표적 경향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또한 국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추상적 관념이 법률주의로 정착됨으로써 파리에 확립된 강력한 관료정치의 정신적 밑바탕이 되었다. 이와 함께 다양성을 인정하는 한편 명료한 카테고리의 설정을 즐기는 정신은 동질의 것을 통한 조직에 대하여 편향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종적(從的)인 전국조직인 중앙집중의 경향은 행정·직업분야에서 명확하며 수평방향에는 익숙하지 않다. 근세에 이르러서는 자유와 법률주의 사상이 사회와 문화를 강력하게 지배하였다. 르네상스시대에 이미 강대해진 프랑스는 군사적·정치적 우세와 더불어 유럽의 문화중심지가 되었고 종교개혁도 르네상스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새로운 인문주의가 대두하였다. 18세기 계몽주의는 부르주아시대를 맞으면서 그리스도교를 대신하는 새로운 보편적인 문화를 형성하였고 동시에 자유검토의 정신을 진작시켜 사회적으로는 대혁명의 1단계가 되었다.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독재를 거쳐 19세기에는 부르주아계급시대를 맞이하였고 낭만주의가 활발하였다. 제3공화정으로 교체되는 시기에는 과학·기술분야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룩한 동시에 문예는 세계의 중심적 존재가 되었다. 세계의 문학·예술·음악·연극 등의 모든 예술활동은 파리에 집중되고 각각 반발과 공명(共鳴)을 되풀이하면서 새로운 틀 속에서 재창조되어 다다이즘·미래파·초현실주의 등이 등장하였다. 19세기말 초등교육에 무상의무제가 도입됨으로써 교육기회가 확대되어 문맹률이 낮아지면서 문화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 제2차세계대전 후 16세까지 중등교육을 무상의무제로 실시하고 빈민층에 대해 재정지원을 강화한 결과 저소득층의 지적·사회적 성장에 기여하였다. 파리는 예로부티 프랑스 문화의 중심지였으나 다른 지방보다 문화색이 강하다. 파리의 문화는 브르다뉴지방이나 마시프상트랄지방의 농민문화보다 오히려 런던이나 뉴욕의 문화에 가까우며 같은 파리안에서도 지식인과 노동자의 생활에 큰 차이점이 나타난다. 또한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1960년대 북아프리카로부터 건너온 이민들이 프랑스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파리와 마르세유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공동체들은 프랑스의 회화·무용·음악·문학에 크게 기여하였다.
연표

500 켈트인 정착, 라 텐 철기문화

BC 58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51)

AD 406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활발해짐

481 클로비스 1세, 메로빙거왕조 프랑크왕국을 창시

496 클로비스 가톨릭으로 개종

511 클로비스 사망. 왕국 네 아들에게 분할됨

714 카를 마르텔 궁재가 됨

732 카를 마르텔, 투르·푸아티에전투에서 이슬람교도 격퇴

751 소(小)피핀, 카롤링거왕조 창시

768 카를 대제(샤를마뉴) 즉위(~814)

794 프랑크푸르트공회의

814 루이 1세(경건왕, ~840)

843 베르? 조약(프랑크왕국 3분할, 프랑스·이탈리아·독일의 기원)

870 메르센조약

875 샤를 1세 황제가 됨

884 카알 3세 프랑스왕 겸함(샤를 2세)

888 (파리伯) 외드 즉위(~898), 로베르가(家) 성립

898 샤를 3세 즉위(~923)

911 노르만인, 노르망디 공국 세움

936 루이 4세 즉위(~954)

954 로테르 3세 즉위(~986)

987 위그 카페 즉위(~996), 카페왕조 성립(~1328)

996 로베르 2세 즉위(경건왕, ~1031)

1031 앙리 1세 즉위(~1060)

1066 노르망디공 윌리엄, 영국 정복

1096 제 1 차 십자군(~99)

1108 루이 6세 즉위(~1137)

1137 루이 7세 즉위(~1180)

1147 제 2 차 십자군(~1149)

1154 앙주 백작 앙리 플랜태저넷, 영국 왕위에 오름

1180 필리프 2세 즉위(왕권강화, ~1223)

1189 제 3 차 십자군(~1192)

1202 제 4 차 십자군(~1204)

1223 루이 8세 즉위(~1226)

1226 루이 9세 즉위(~1270)

1248 제 6 차 십자군(루이 9세 참가, ~1254)

1270 제 8 차 십자군(루이 9세 튀니스에서 사망)

1270 필리프 3세 즉위(~1285)

1285 필리프 4세 즉위(~13l4)

1302 최초의 전국 삼부회 소집

1314 루이 10세 즉위(~1316)

1316 필리프 5세 즉위(~1322)

1323 샤를 4세 즉위(~1328)

1328 필리프 6세 즉위(~1350), 발루아 왕조 시작(~1589)

1337 영국·프랑스 백년전쟁 시작(~1453)

1358 에티엔 마르셀의 반란(파리), 자크리 농민 폭동(북프랑스)

1364 샤를 5세 즉위(~1380)

1378 아비뇽의 교황 클레멘스 7세(~1394)

1380 샤를 6세 즉위(~1422)

1382 파리 마이요탱의 반란(~1383)

1422 샤를 7세 즉위(~1461)

1428 영국 오를레앙 포위

1429 잔 다르크, 오를레앙 해방. 샤를 7세, 랑스에서 대관식 거행

1431 헨리 6세 파리에서 대관식 거행, 잔 다르크 화형

1436 프랑스군 파리탈환, 샤를 7세의 내정개혁

1461 루이 11세 즉위(~1483)

1483 샤를 8세 즉위(~1498)

1494 샤를 8세, 이탈리아 전쟁을 개시(~1559)

1498 루이 12세 즉위(~1515), 밀라노 원정

1515 프랑수아 1세 즉위(~1547), 밀라노 점령

1516 로마 교황과 정교화약(政敎和約), 프랑스 교회의 독립 시작(갈리카니슴)

1547 양리 2세 즉위(~1559)

1556 대 에스파냐전쟁(~1559)

1559 프랑수아 2세 즉위(~1560)

1560 샤를 9세 즉위(~74). 모후(母后)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섭정

1562 종교전쟁(위그노 전쟁) 시작(~98)

1572 성 바르톨로뮤대학살(구교파의 신교도학살)

1574 앙리 3세 즉위(~1589)

1589 앙리 3세 암살. 앙리 드 나바르, 앙리 4세로 즉위(~1610). 부르봉왕조를 창시(~1792)

1598 낭트칙령 발표(신앙의 자유 확립)

1610 루이 13세 즉위(~1643). 마리 드 메디시스가 섭정

1614 전국 삼부회 소집(이후 1789년까지 소집하지 않음)

1624 리슐리외, 제상이 됨(~42)

1635 프랑스, 30년전쟁 개입(~48), 네덜란드·프랑스 방어협정, 아카데미 프랑세즈 창설

1639 상마르의 음모사건. 노르망디 농민 폭동

1643 루이 14세 즉위(~1715), 마자랭 재상이 됨. 로크로와전투(에스파냐군 격파)

1648 프롱드의 난(~53), 베스트팔렌조약 체결, 30년전쟁 끝남

1665 콜베르, 재무장관 취임(~83)

1667 플랑드르전쟁 시작(~68), 루이법전 편찬

1672 네덜란드 전쟁 시작(~78)

1678 나이메헨 화약

1685 낭트칙령 폐지

1689 영국과 식민지전쟁 시작(~1697)

1701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 시작(~1713)

1715 루이 15세 즉위(~1774), 오를레앙공 필리프 섭정

1740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에 개입(~48)

1756 영국과 7년전쟁 시작(~63)

1774 루이 16세 즉위(~92). 튀르고, 재무장관 취임.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됨.

1778 미국의 독립전쟁에 개입(~83)

1787 명사회 소집. 고등법원 귀족의 반항 거세짐

1789 프랑스 혁명 시작. 5.5. 삼부회 소집. 6.17. 국민의회결성, 테니스코트서약. 7.14. 바스티유 공략, 지방에서 농민 폭동. 8.4. 귀족의 봉건적 특권 폐지 선언. 8.26. 인권선언. 10. 루이 16세 파리 소환. 11.2. 교회재산 국유화

1790 행정제도 개혁(州 폐지, 83 縣 설치), 폭도진압법, 사제에 대한 민사기본법. 낭시사건, 귀족작위제도 폐지

1791 4.미라보 사망. 6.20. 국왕 가족, 바렌 도피사건 발생. 9.14. 뒤앙 헌법. 10.1. 입법의회 성립

1792 3. 지롱드내각. 4.20.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 8.10. 파리 민중봉기, 코뮌(자치사회)성립. 9.21. 보통선거에 의한 국민공회 성립, 공화제 선언

1793 1.21. 국왕 루이 16세 처형. 2. 프랑스에 대한 대동맹(제 1 차)성립. 3. 방데의 반란 시작. 4.6. 공안위원회 설치. 5.5월 31일 혁명. 6. 자코뱅 독재. 7.17. 영주 지대의 무상 폐지, 미터법 채용. 8. 마라 암살. 9. 공포정치 시작. 마리 앙투아네트 처형

1794 7.27. 테르미도르의 반동, 로베스피에르 체포

1795 9~10. <95년헌법>에 따라 총재정부 성립(~99)

1798 나폴레옹, 이집트 원정

1799 3. 프랑스에 대한 제 2 차 대동맹. 11.9. 브뤼메르 18일의 나폴레옹쿠데타, 통령(또는 집정)정부 수립.

1804 3. <나폴레옹 법전> 성립. 5.10. 나폴레옹, 황제즉위(제 1 제정 성립, ~14)

1806 11.21.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

1812 6. 나폴레옹 러시아원정

1814 4. 나폴레옹 퇴위, 엘바섬에 유배. 5. 루이 18세 즉위(~24), 제 2 차 왕정복고. 9. 빈회의 개막(~1815.6)

1815 3. 1~6.22. 나폴레옹의 백일천하. 6.18. 워털루싸움. 6.22. 제 2 차 왕정복고(~30). 10. 나폴레옹 세인트 헬레나섬에 유배

1821 빌레르내각(~1827), 나폴레옹 1세 사망

1822 베로나회의

1824 샤를 10세 즉위(~30)

1830 6~9 알제리점령. 7.27~29 파리 민중봉기, 7월혁명. 루이 필립 즉위(~48). 7월 왕정 성립.

1834 파리·리옹 노동자폭동

1836 제 1 차 티에르내각

1840 파리에 공화파 반란.

1848 2.23~24. 2월혁명. 공화제 임시 정부 성립. 6.23~26. 파리 민중폭동(6월사건). 11. 제 2 공화국 헌법제정. 12.10. 루이 나폴레옹,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

1851 12.2.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

1852 1. 신헌법 포고. 12.2. 국민투표로 루이 나폴레옹 황제에 즉위, 제 2 제정 성립(~70)

1854 3. 크림전쟁. 영국·프랑스 호혜조약. 러시아와 싸움(~56)

1860 영국과 자유통상 조약, 청(淸)과 베이징조약 체결. 니스, 사부이를 합방

1861 멕시코에 출병(~67)

1870 올리비에 개혁안 국민투표. 7.9. 보불전쟁(프로이센, 프랑스) 개시. 9.4. 파리에서 제 3 공화국 선언, 국방정부 수립. 10. 사회급진주의자들의 파리소요

1871 1.28. 파리함락, 휴전성립. 2.8. 보통선거에 의해 보르도 국민의회성립. 티에르임시정부. 3. 베르사유가조약. 3.18. 파리 코뮌 혁명(~5월 28일). 5.10. 프랑크푸르트조약. 8.31. 티에르, 대통령에 지명됨. 제 3 공화정 시작(~1940)

1875 발롱헌법 개정안 통과, 제 3 공화정 헌법 공포

1878 베를린 열국회의

1879 공화파 상·하 양원을 제압, 왕당파 대통령 마크마옹 사임. 공화파 그레비, 대통령취임

1881 선거를 통해 오포르튀니스트(기회주의파) 정권 장악(~99), 튀니지를 보호국으로 함. 교육관계법률 제정(~1886)

1883 4. 청·프 전쟁 시작(~1884. 5. )

1887 불랑제장군의 반의회주의운동 시작

1889 1.27. 불랑제 센주(州)선거에서 대승. 불랑지슴 운동 절정에서 몰락

1893 클레망소 급진사회당 결성

1894 10.15. 드레퓌스 사건(~99)

1898 영국·프랑스 충돌(파쇼다사건)

1899 장 조레스 프랑스 사회당 결성, 루소 공화제 방위내각(급진당)

1904 4. 영국·프랑스 협상 성립

1905 3. 제 1 차 모로코사건. 12. 정교(政敎)분리법 성립

1907 8. 영국·프랑스·러시아 3국협상 성립

1911 7.1. 제 2 차 모로코사건

1912 푸앵카레내각(~1913)

1914 7.31. 사회주의자 조레스 암살. 8.3. 독일·프랑스 전쟁 시작, 제 1 차세계대전 시작

1917 11.15. 클레망소 정권, 반전운동을 탄압

1918 11.11. 독일항복, 휴전조약 체결. 제 1 차세계대전 끝남

1919 1. 파리강화회의. 6.28. 베르사유조약, 알자스·로렌 회복. 11.16. 선거에서 공화 우파 압승

1923 1.11. 프랑스·벨기에군, 루르 점령(~25). 10. 라인공화국 선언(주민의 반대로 중지)

1924 5. 선거에서 좌익연합 승리, 에리오내각 성립(~1925)

1925 10.16. 로카르노조약, 브리앙 평화외교 전개

1926 7. 좌익 정권 몰락, 공화우파 푸앵카레 거국내각 성립(외상 브리앙)

1928 8.27. 켈로그-브리앙 조약

1929 7. 푸앵카레 사임, 브리앙 유럽연방 제창

1931 세계공황, 프랑스에 파급, 농업위기 심각

1934 2.6. 파리 콩코르트광장의 우익 대폭동. 2.12. 노동자, 반파시즘의 대파업. 7.27. 사·공(社共) 통일행동협정 성립

1935 5. 프랑스-소련 상호원조 조약. 6. 급진사회당·사회당·공산당에 의한 인민연합(인민전선) 성립

1936 5월 선거에서 인민전선파 승리. 레옹 부름내각 성립(~1937)

1938 4. 제 2 차 부름내각 사퇴(인민전선 사실상 붕괴), 달라디에 내각 성립(급진사회당). 9. 뮌헨 협정. 11. 인민전선 붕괴. 달라디에 내각 반대파업

1939 9.2. 영국-프랑스,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 제 2 차세계대전 시작(~45)

1940 5. 독일군 마지노선 돌파, 영국·프랑스군 대패. 6.18. 드골, 런던에 망명정부 조직. 6.22. 독일·프랑스 휴전조약(항복). 7.2. 페탱내각, 비시로 이전. 7.10~11. 제 3 공화정 폐지, 페탱(국가주석) 독재제 성립

1942 11. 연합군, 북아프리카에 상륙. 독일, 프랑스 전역 점령

1943 6. 드골, 알제리에 프랑스해방위원회 조직

1944 5. 전국저항평의회(CNR) 성립. 6.6. 연합군, 노르망디 상륙. 8.19~25. 드골 파리 개선. 파리 해방. 9. 드골, 프랑스공화국 임시정부 수립

1945 5. 프랑스에서 독일군 항복, 제 2 차세계대전 종식. 11. 3당연합에 의한 드골 정권성립

1946 1.26. 드골 사임. 10. 국민투표로 제 4 공화정 헌법 제정(~58). 11월 선거에서 공산당이 제 1 당이 되고 브름 내각 성립

1947 5. 미·소 냉전으로 인해 공산당 각료를 라마디에내각에서 배제

1954 4. 제네바 회의. 5.7. 베트남의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군 항복. 6.20. 망데스 프랑스내각 성립. 7.21. 제네바협정으로 베트남 전쟁 종전. 11. 알제리전쟁 시작

1956 3. 모로코·튀니지, 프랑스로부터 독립. 11.5. 영국·프랑스군 이집트 출병(~12)

1958 1.1. EEC(유럽경제공동체) 발족. 6.1. 드골 내각 성립. 9.28. 제 5 공화정 헌법제정. 10. 제 5 공화국 발족. 12.21. 드골 대통령 당선

1960 2.13. 사하라에서 제 1 차 핵실험

1962 3. 에비앙협정으로 알제리전쟁 끝남. 알제리 독립 달성

1964 1.27. 중국 승인. 드골, 동남아시아 중립화구상 발표

1966 3.7.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

1968 5. <5월 위기(5월혁명)> 시작. 전국의 노동자 총파업으로 확대(6월 상순까지). 6. 선거에서 드골파 압승

1969 4.28. 상원 개편 등의 국민투표에서 드골 패배하고 퇴진. 6.15. 대통령 선거에서 퐁피두 당선

1974 5.19. 대통령 선거에서 독립공화파인 지스카르 데스탱, 미테랑에 신승

1981 5.10. 대통령 선거에서 미테랑 승리. 6.21. 의회선거에서 사회당 진출하여 좌익 승리. 좌익 연립정권 발족

1982 2.9. 대기업, 39개 은행의 국유화법 발효. 3. 구(舊)지사제의 폐지를 포함한 지방분권의 추진

1984 6. 유럽주 의회선거, 극우 <국민전선> 진출

1986 3. 국민회의 선거에서 보수파 승리, 시라크내각 성립. 제 5 공화국 헌정사상 첫 좌우동거내각 출범

1988 총선거에 미테랑 재선, 수상에 로카르 취임

1989 7. 고르바초프 서기장 프랑스 방문, 미테랑 대통령과 회담

1990 1. 미테랑 대통령 연두정책 발표에서 <유럽연방구성> 제창. 4. 콜 수상과 회담

1992 9.20. 국민투표에서 유럽통합에 관한 마스트리히트조약 통과

1993 3. 총선거에서 사회당 참패, 공화국연합과 프랑스민주연합 압승. 2차 동거내각 발족

1995 5. 대통령 선거에서 시라크 승리

1997 6. 총선거에서 좌파연합 승리, 제 5 공화국 3차 좌우동거내각 출범. L. 조스팽 총리 취임. 연말부터 실업자들의 시위로 산업마비

1998 1. 총리의 실업대책 발표. 7. 월드컵축구대회 개최, 프랑스 우승. 12. 독일에 이어 영국과의 정상회담 개최, 이들 국가와 경제·군사면 공조합의

2002 라파랭 총리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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