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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꼭그래 Jun 11. 2018

사찰 설화

수덕사 설화

수덕사

수덕사 대웅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덕숭산 자락에 백제 위덕왕 대에 창건되었다 추정되는 수덕사가 자리하고 있다. 덕숭산 주위로 가야산과 용봉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능선이 매우 매끄러워 안정된 시선을 갖게 한다. 그렇기에 수도도량지에 적합해 많은 고승들을 배출한 곳으로 알려졌다. 국보 49호인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재위 1274 - 1308년) 대에 지어진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 대웅전 좌측의 관음전과 백련당 사이에 커다란 바위를 수덕사 관음바위라 한다. 


수덕사 관음바위와 관음보살상


수덕사 설화


관음바위에는 수덕각시와 덕숭낭자에 의해 수덕사가 중창하게 된 두 개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덕숭 설화


수덕도령이 사냥을 하던 중이었다. 노루를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데 노루 옆에 아름다운 묘령의 여인이 서 있는 것이었다. 수덕은 활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도령의 눈에는 묘령의 여인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인을 시켜 여인의 행방을 찾아보니 건너 마을의 덕숭낭자였다. 학식과 미모를 겸비해 온 마을의 청년들이 혼인을 청했으나 모두 거절했다는 것이다. 수덕은 매일 덕숭의 집을 배회하며 그녀와 만나기를 기다렸다.


덕숭은 홀로 살고 있었기에 집안은 조용했다. 그렇게 몰래 덕숭의 방 앞에 다가가 자신이 들어온 낌새를 알렸다. 그리고 덕숭에게 자신의 사정을 말한다. 시도 때도 없이 덕숭이 눈 앞에 어른거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덕숭에게 청혼하려 왔다 말한다. 그러자 덕숭은 일찍 비명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을 위로하고 싶으니 덕숭의 집 근처에 큰 절을 세워주면 청혼을 허락하겠다 말한다.


수덕은 부모의 반대와 마을 사람들의 비난에도 그날부터 절을 짓기에 전념한다. 그렇게 두 달 만에 절을 완성했다. 덕숭을 찾아가 절을 완성했다 말하려는데 하인이 급히 찾아와 절에 불이 났음을 알린다. 수덕은 크게 낙담한다. 그러자 덕숭이 수덕에게 여자를 탐하는 마음을 버리고 부처를 섬기는 마음으로 지어야 완성할 수 있다 말해준다.


아침마다 목욕재계와 불경을 염송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불사를 시작 했으나 완성할 무렵에 또다시 불에 타는 것이었다. 수덕은 반성하며 다시 시작하기를 여러 번 드디어 대웅전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덕숭을 찾아가 혼인할 것을 요청한다. 덕숭은 수덕의 노력을 높이 사 결혼을 승낙한다.


신방에 들어간 덕숭은 수덕에게 당분간 잠자리를 따로 할 것을 요구한다. 수덕은 덕숭의 말을 무시하고 덕숭의 손을 붙잡으니 갑자기 뇌성벽력과 바람이 일면서 낭자의 모습이 사라지고 수덕의 손에는 덕숭낭자의 버선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수덕은 덕숭낭자가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음을 깨닫고 불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지은 절을 수덕사라 하고 산의 이름을 덕숭산이라 했다 전해진다.


수덕각시 설화


가람이 퇴락하여 중창을 하려 했지만 막대한 불사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느 날 미모의 여인이 자기가 불사를 하겠다며 찾아왔다. 수덕사에 빼어난 미모의 여인이 있다는 말이 순식간에 소문이 퍼졌다. 사람들은 그 여인을 수덕각시라 했다. 여인을 구경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소문은 더욱 멀리 퍼져 신라의 대부호이자 재상의 아들인 정혜定慧에게도 알려진다. 정혜는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수덕각시를 보기 위해 수덕사를 찾게 된다.


수덕각시를 본 정혜는 여인의 아름다움에 빠져 청혼하기에 이른다. 수덕각시는 자신이 지금 사찰의 중창을 맡고 있어 그럴 수 없다 말한다. 자신과 혼인하고 싶으면 수덕사의 완공이 있은 뒤에야 가능하다고 답한다. 그러자 정혜가 사찰의 중창에 나서 3년 만에 완성한다.


약속대로 혼인할 것을 말하자 수덕각시는 옷을 갈아입고 정혜를 따라갈 터이니 잠시 시간을 달라 말한다. 그렇게 말을 하고 옆 방에 간 수덕의 낌새가 없자 정혜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니 수덕각시는 급히 다른 방으로 몸을 숨기는 것이었다. 정혜가 달아나려는 수덕각시를 붙잡으려 하자 바위가 갈라지고 수덕이 그 틈으로 들어가자 바위가 다시 닫혔다. 바위틈에는 수덕각시의 것으로 보이는 버선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그 뒤로 봄이면 갈라진 바위틈에서 버선 모양의 꽃이 지금도 피고 있다. 정혜는 사찰의 이름을 수덕사라 하고 바위는 관음바위, 혹은 수덕각시 바위라 불려지게 되었다 전해진다.


해설


두 설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은 버선과 덕을 닦는다는 의미의 수덕과 덕숭이고, 관음을 뒤쫓는 정혜定慧다.


버선

사람이 심을 수 없는 비좁은 바위틈에 골담초가 자라고 있다. 골담초의 꽃이 완전히 피기 전에 버선처럼 생겨  버선 꽃이라 한다. 관음바위의 크기는 대웅전 기단 부근에서 아래 백련당까지다.


수덕사 관음바위 버선꽃

사진은, http://blog.daum.net/sungesan/8557959에서 가져옴


담장 근처나 뒷마당 장독대 근처에 많이 심어졌던 골담초는 풀 초草가 들어가 식물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엄연한 나무다. 뿌리는 뼈에 좋다 알려져 약재로 쓰인다. 버선꽃이 피면 아이들의 간식이 되기도 했다. 향긋하고 달콤한 맛으로 입을 즐겁게 한다.

바위에 뿌리 내린 덕숭산 도토리나무

바위틈에는 주로 도토리와 같은 참나뭇과의 열매가 떨어져 들어가 자라기도 한다. 그런데 이곳 수덕사 관음바위에는 골담초가 자라고 있으니 그 연유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을 것이다. 어느 승려는 이 유례에 관해 불교 사상으로 설명하려 했던 것이 설화로 전해지게 되었을 것이다.


골담초에 담긴 의미는 미륵이 손가락을 퉁기는 소리를 내자 누각의 문이 열리고 선재동자가 누각 안으로 들어가니 문이 닫혔다는 화엄경의 내용을 가져온 것이다. 선재가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바위 안이 비어 있어야 한다. 선재동자가 누각 안으로 들어간 조건과 마찬가지로 나옴의 조건을 세상이 갖춰야 하는 것이다. 이 비어 있음은 장자의 소요유편으로 설명하자면 생명력이다. 


"대해가 거칠어져 태풍이 일면 남쪽 끝에 있는 어두운 바다로 향해 옮겨 가려고 하는데, 이 바다는 천지라 일컫는다. 아지랑이와 먼지는 여러 가지 생물이 서로 내뿜는 숨결이다. 하늘은 저렇게 푸르기만 하니 저 푸른빛은 하늘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빛일까. 이 지상을 내려다보아도 역시 푸르게만 보일 것이다. 물의 깊이가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만한 힘을 지니지 못한다. 한 잔의 물을 뜰의 패인 곳에 부으면 지푸라기는 뜨겠지만, 거기에 잔을 놓으면 땅에 닿고 말 것이다. 물은 얕고 배는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람의 부피가 두텁지 않고서는 붕의 큰 날개를 지탱할 수 없다. 그러기에 9만리나 되는 높이까지 올라가야만 비로소 그 날개를 지탱할 수 있는 바람이 밑에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뒤에야 바람을 타고 등에는 창공을 업고 아무 거리낌없이 남쪽을 향해 날아갈 수 있다."


태풍이 거칠어져 파도가 치고 바람이 거세진 거대한 움직임의 생명력으로 가득 찬 세상이 나옴의 조건이다. 관음바위는 장자의 생명력과 반대인 발 아래의 일, 즉 죽음의 세계를 말한다. 자신의 생에서 펼쳐지지 않는 과거 조상의 일과 미래 후손의 일을 말한다. 그것을 버리고 바위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수덕각시와 덕숭낭자를 붙잡거나 세상에 다시 나오게 하려면 발 아래의 일을 붙잡으려 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세속 사람들은 그것을 붙잡고 살아간다. 수덕도령과 정혜는 자신의 생명력보다는 발 아래의 일인 후대를 위해 결혼을 이루려 한 것이다. 인간 세상은 결혼을 통해서 사회가 이루어지지만 그것이 자신의 생명력을 버리는 행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관음바위가 전하려는 의미다.  


갈라진 틈


"사람이 천지 사이에 살아 있는 시간이란 마치 준마가 벽의 틈 사이를 잠깐 지나가는 듯 순식간의 일이다. 사물은 자연의 변화에 따라 생겨났다가 다시 변화에 따라서 죽는 것이다. 이것을 생물이나 인간은 애달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지만 죽음이란 활집이나 옷의 주머니를 끄르듯 하늘에 받은 형체를 떠나 육체가 산산이 흩어지고 정신이 형체를 떠나려 할 때 몸도 이와 함께 무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것은 곧 도에의 복귀인 것이다."


수덕각시와 덕숭낭자가 들어가 머물고 있는 바위는 생과 사에 관한 도에의 복귀인 것이다. 세속의 사람들은 그들이 남겨 놓은 버선을 통해서 생과 사에 관한 무심無心의 발자국을 따르라 하는 것이다.

  

무심無心


골담초의 버선꽃은 선가에서는 무심無心에 관한 의미를 담고 있다. 대혜 종고는 말한다. 소를 찾으려면 발자국을 찾아야 하고, 도를 배우려면 먼저 마음이 없어야(무심無心 해야)한다고. 인연을 만남에 마음이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고,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곳에 열려서 걸림 없고, 막힘없고, 오염됨이 없으면서 오염됨 없는 곳에 머물지 않고, 몸과 마음을 꿈이나 환상같이 보면서도 꿈이나 환상과 같이 허무한 곳에 머물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수덕도령과 정혜는 덕숭낭자와 수덕각시를 보고 그렇지 못했다.


덕德


옛사람들에게 사찰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까이 살면 다행이었지만 멀리 사는 사람들에게 사찰을 찾아가는 것은 큰 결심이어야 했다.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한 것도 아니어서 걸어 찾을 때는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석가탄신일과 같은 특별한 날이 되면 멀리 있는 절을 찾기 위해 며칠 전부터 준비한다. 사찰을 찾기 전에 목욕재계를 하고 그동안 입지 않았던 고운 옷과 튼튼한 신발을 신어야 했다. 머리에는 공양할 곡식을 머리에 이고 길을 떠난다. 지나치는 마을 정자에서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쉬어 간다. 사찰을 찾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이야기들은 마을 정자의 쉼터에 쌓인다. 그렇게 마을을 지나쳐 사찰에 도착하는 것을 말이 먼저 도착했다고 한다.


세간의 일을 자신은 이렇게 생각한다며 듣는 사람의 마음에 닿으려 말에 뜻을 담는다. 뜻은 진심에서, 진심은 덕에서 꺼낸 듯 말해야 말하는 이의 뜻이 듣는 사람의 진심에 도달하고 도달한 진심은 상대방의 덕의 그릇에 담길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게 말하기도 하고 과장하거나 과소하게 말하기도 하지만 그 뜻들이 사실처럼 말하지만 여러 사람들 말이 모여들면 언젠가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밝혀진 사실만큼 소식이 된다. 소식이 도착할 무렵에 말을 했던 사람들은 사찰을 떠난 뒤다. 또한 소식은 덕이라는 포장을 벗어난 상태다. 말이 오니 소식이 뒤 따라온다는 것이며 소식에는 누구의 덕도 소식을 포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덕이 공하다고 한다.  


양무제가 달마에게 물었다.

"짐은 절을 짓고 수많은 스님들을 출가시켰으며 불경을 널리 편찬케 했는데, 나의 공덕이 어느 정도인가?"

달마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양무제가 물었다.

"어찌하여 공덕이 없는가?"

달마가 대답했다.

"그것은 다만 하늘에 태어나는 조그만 과를 낳는 유루有漏(번뇌)의 원인일 뿐입니다. 마치 그림자가 모습을 따르는 것과 같으니, 비록 있지만 진실이 아닙니다."

수덕 각시에게 정혜가 찾아가고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찾아간 것은 소식을 받아 자신들의 소식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소식은 수덕각시와 덕숭낭자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설화에서도 양무제처럼 불사를 완성한 정혜와 수덕의 공덕은 유루의 원인일 뿐인 것이다.

번뇌의 짝

"번뇌의 짝이 여래의 씨앗입니다. 비유하자면 높은 언덕 위에 연꽃이 나는 것이 아니라, 낮고 축축한 진흙 속에서 연꽃이 난다 합니다. 불난 집의 번뇌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다가, 문득 고통을 싫어하여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나오면 비로소 위 없는 깨달음의 마음을 내는 것이니, 번뇌의 짝이 여래의 씨앗이 된다는 것은 이것을 말합니다." 대혜 보각선사 어록


소식이 도착했다고 해서 진심이 도달하지는 않는다. 진심이 번뇌가 되기도 한다. 남에게 베풀어 덕을 쌓는다는 것도 무심함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 위 없는 깨달음의 마음을 내는 것이다. 내가 해준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고마움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남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게 고마움을 강요하게 되는 마음이 일어나니 이것이 위의 일이다. 위의 일이라는 것은 왕이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는 통치행위이지 덕을 베푸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위 없는 무심함의 덕이라는 것이다.

정혜와 수덕도령은 수덕각시와 덕숭낭자의 내면의 마음에 도달하려 수덕사를 짓게 되지만 정작 그들의 마음은 수덕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수덕각시와 덕숭낭자의 외모라는 외면에 있었다. 수덕각시와 덕숭낭자는 반대로 정혜와 수덕도령의 번뇌를 통해서 수덕사를 완공하게 된다. 그들이 짝으로 삼았던 것은 서로 달랐다. 수덕각시와 덕숭낭자가 짝으로 삼았던 것은 수덕사라는 불심이지만 정혜와 수덕도령이 짝으로 삼으려 했던 것은 여인들에 대한 탐욕이었던 셈이다.

불사가 불에 탄다는 것은, 정혜와 수덕도령의 불사는 불심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불타는 번뇌의 집이며 그 속에 머물고, 앉고, 눕고 하는 사이에 탐욕貪慾과 진에瞋恚와 우치愚癡, 탐진치 삼독과 함께한 것을 의미한다. 


정혜사定慧寺


덕숭산 정상 부근의 정혜사定慧寺다. 수덕사설화는 속인(중생)과 수행자에게 가르침을 옛 승려들이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설화라 할 수 있다. 속인에게는 무심한 덕을, 수행자에게는 무심한 덕과 정혜의 수행방법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것이다.

한국 불교계가 중국과 일본의 불교계와 달리 선종과 교종의 통합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선종의 수행방법과 교종의 공부방법이 대립하지 않고 참 수행법이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정혜쌍수로서 선법과 교법의 수행을 게을리 하지 말기를 설화는 전하고 있다. 스님들의 공부 도량인 덕숭산 정혜사 아래에 바위 문이 있는데, 정혜의 가르침을 전하는 정혜쌍수문定慧雙修門이 아닐까 한다. 소식이라는 번뇌를 만나더라도 심의식을 고요하게 하며, 몸과 마음을 안정되게 하여 도道로, 진리로 나아가라는 옛 스님들의 관음에 관한 가르침이 담긴 수덕사 설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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