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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할리우드에서 감독으로서도 유명한 배우
beau**** 조회수 109,548 작성일2006.01.01

클린트 이스트우드같이 감독 겸 배우로 유명한 분들 알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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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
식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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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배우들 외에  존 휴스턴(John Huston),  스파이크 리(Spike Lee), 마틴 스콜세지 (Martin Scorsese), 시드니 폴락 (Sydney Pollack), 프랑소와 트뤼포 (Francois Truffaut)...등의 인물들도 감독 겸 배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일단 주연급 배우가 아닌데다가 배우보다는 감독을 먼저 시작한 사람들이라 아래 목록에서는 제외시켰습니다. 타란티노 역시 그런 면이 없지않아 있지만.... 아직 젊고 감독과 배우를 거의 동시에 시작했기에 목록에 추가시켰습니다.

작품이 적어 목록에서는 빠졌지만 소피아 코폴라 (Sofia Coppola),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도 감독 겸 배우라고 할 수 있겠네요.

 

 

 

팀 로빈스 Tim Robbins

국적 : 미국

출생 : 1958년 10월 16일

신장 : 196cm 

 

* 작품 정보> 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541

 

미국 출신의 배우, 감독, 작가. 영화 [19번째 남자]에서 만난 영화배우 수잔 서랜든과 결혼하여 세 명의 자녀를 두고있다. 팀 로빈스 (본명:Timothy Francis Robbins)는 1958년 10월 16일 캘리포니아 웨스트 코비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질 로빈스는 하이웨이맨(The Highwaymen)이라는 그룹의 포크싱어이자 나이트클럽의 운영자였으며 어머니 메리는 출판사 간부로 일했다.

그는 12살 때 이미 아방가르드 연기모임인 극단에 소속되어 있었고 반전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UCLA에서 드라마를 전공하고 1981년 최우수로 학교를 졸업한다. 같은 해 그는 유럽 아방가르드 형식의 실험적이고 정치적인 공연을 하는 엑터스 갱(Actors' Gang)이라는 극단을 만든다.

이런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적인 색이 강했던 그는 영화배우나 감독으로 유명해지고 난 후에도 강한 정치적 발언을 많이 하여 할리우드에서 반골로 통하고 있다. 195cm나 되는 큰 키에 하얀 애기 얼굴을 한 팀 로빈스는 교활한 인물에서 둔하거나 순진한 인물까지 다양한 역을 소화할 수 있었다.

그는 1984년 처음으로 영화에 출현하는데 [장난감 병사 Toy Soldier](84)나[확실한 것 The Sure Thing](85), [하워드 덕], [탑건]과 같은 영화에 작은 역으로 출현하다 조디 포스터와 함께 출현한 영화 [5번가의 비명]으로 주목받기 시작하고 부인 수잔 서랜든을 만난 영화 [19번째 남자]에서 비중있는 역을 맡는다.

영화 [바이킹]에서는 뿔 달린 모자를 쓰고 칼을 휘두르는 바이킹 에릭으로 등장했다 애드리안 라인의 [야곱의 사다리]에서는 베트남전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 야곱으로 등장한다. 그 후 몇 편의 영화에 더 출현했던 그는 92년 감독, 각본, 주연을 혼자해낸 정치적인 영화 [밥 로버츠]로 감독에 데뷔한다. 또한 팀은 같은 해 주연으로 출현한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영화 [플레이어]로 깐느영화제와 골든글러브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로버트 알트만 감독 역시 이 영화로 깐느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는데 이 영화에서 맺은 인연을 바탕으로 팀은 그후 [숏 컷], [패션쇼]와 같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영화에 단골로 출현하게 된다.

[밥 로버츠]로 감독데뷔를 치루어낸 팀 로빈스는 그의 부인 수잔 서랜던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데드 맨 워킹]으로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굳힌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합법적으로 죽이는 사형제도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이 영화는 오스카, 베를린 영화제 등 각종영화제에 노미네이트되어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을 수상했고 수잔 서랜든은 남편이 감독한 이 영화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쥔다.

최근까지 영화 [낫싱 투 루즈], [함정]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는 1997년 엠파이어 잡지가 선정한 최고의 영화스타 중 60 위를 기록했다. 가장 최근에는 미국에서 2000년 3월 개봉예정인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공상과학영화 [화성탐사 Mission to Mars]에 출연하고있다. 1996년에는 피플지가 선정한 최악의 드레서에 꼽히기도 했던 그는 수잔 서랜든의 50회 생일 때 리조트 전체를 1주일간 전세내 숀 팬, 로빈 윌리엄스, 줄리아 로버츠 등 그녀의 친한 친구 50명을 초대할 정도로 부인과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손 웰즈 Orson Welles ·

국적 : 미국

출생 : 1915년 5월 6일

사망 : 1985년 10월 10일

 

* 작품 정보> 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7577

 

세계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 명인 오손 웰즈는 발명가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미술과 음악 등에 재능을 보인 천재적인 예술가이자 배우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31년 토드 스쿨을 졸업한 후 세계를 돌아다니며 스케치 여행을 하였다. 런던의 연극 무대에서 잠시 활동하기도 하였으나 별다른 명성을 얻지는 못하였다. 41년에 만들어진 영화 [시민 케인]은 그가 25세의 나이로 처음 감독한 작품으로 영화사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이 영화는 기존의 규칙을 허물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 획기적인 작품으로 당시 상업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서서히 재평가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극찬을 받고 있다. 오손 웰즈는 연출과 연기를 맡아 이 영화에서 활약하였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52년작 [오셀로] 연출 시에는 영화 제작비 조달을 위해 단역도 불사한 일담도 있다. [오셀로]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카리스마 그 자체였는데 연출뿐만 아니라 연기에서도 재능을 발휘해 다재 다능한 그의 예술가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49년에 만들어진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서스펜스로 평가되는 캐롤 리드 감독의 [제3의 사나이]에서 신비의 인물 해리 라임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가 만든 다른 영화들도 대부분 상업적으로 실패하긴 하였지만 평단에서 비교적 호평을 받고 있으며, 84년도에는 미국을 이끄는 감독상인 그리피스 어워드에 선정되었다. 오손 웰즈는 감독의 타이틀로 더욱 익숙한 배우로 85년 심장마비로 숨진 후에도 영원히 세계 영화팬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스타이다.

 

 

 

 

버스터 키튼 Buster Keaton

국적 : 미국

출생 : 1895년 10월 4일

사망 : 1966년 2월 1일

 

* 작품정보 > 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4218

 

 '미스터 스톤 페이스(Mr. Stone Face)'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버스터 키튼은 좀체 자신의 영화에서 웃는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동시대의 또다른 명감독이자 배우였던 찰리 채플린과 대조를 이루면서 두 사람의 영화관에서의 차이를 상징하는 것이 되기도 했다.(두 사람은 52년 채플린의 [라임 라이트]에서 함께 공연한다.)

유랑 극단이었던 가족들 덕으로 어려서 부터 판토마임이나 기계 체조등의 잔재주를 배웠던 키튼은 공연 관람을 하던 영화 제작자의 눈에 뜨여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1923년 감독으로 데뷔하면서 확고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냈는데 유랑 극단에서의 공연 경험을 바탕으로 마치 곡예를 하는 듯한 긴장감 도는 액션을 선보여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무성 영화가 갖는 한계라고도 볼 수 있는 정적으로 고정된 카메라 워크를 벗어나 버스터 키튼은 카메라에 특별한 움직임을 부여했고, 시각적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는 후기작으로 가면서 기술적으로 계속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는데 너무 앞서 갔던 탓인지 관객들은 외면하기 시작했고, 제작한 영화마다 흥행에서 참패를 거듭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의 영화 인생은 기울어지게 되고, 전속 제작사인 MGM에서 해고 당하자 이혼까지 당하고 만다.

'영화는 활동 사진'이란 정의를 가장 잘 이해한 시네아스트였던 버스터 키튼은 시대를 앞서간 천재들의 최후처럼 고독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찰리 채플린 Charles Chaplin

국적 : 영국

출생 : 1889년 4월 16일

사망 : 1977년 12월 25일

 

* 작품정보> 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7121

 

세계 영화사에서 어쩌면 가장 위대한 배우이고 감독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진정한 예술가이다.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연기를 했다. 미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그는 무성 영화에서 배우로 활약한다. [비에 흠뻑 젖어]부터 감독을 하게 되는데 단순한 슬랩스틱 코미디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는 메리 픽포드,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그리피스와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라는 영화사를 세우기도 한다. 그는 [황금광 시대]라는 방랑자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드는데 디테일이 살아있는 코미디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시티 라이트]는 부자와 빈자, 실업자와 꽃파는 소녀 등을 등장시켜 계급 사이의 갈등과 낭만적인 사랑을 그려낸다. [모던 타임스]는 포드주의가 인간을 지배하는 산업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독재자]는 그의 몇 안되는 토키 영화로 나치즘과 파시즘을 풍자한 걸작이다. 그의 수많은 영화들은 코미디뿐만 아니라 영화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작품들이다. 메카시즘에 의해 피해를 받기도 했던 그는 진정한 영화 예술가로서 존경받아야 마땅한 아티스트였다.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 Erich von Stroheim

국적 : 오스트리아

출생 : 1885년 9월 22일

사망 : 1957년 5월 12일

 

* 작품정보> http://us.imdb.com/name/nm0002233/

 

[국가의 탄생]에서 조감독과 배우를 맡았던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은 192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한 사람이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유태 상인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감독과 제작 그리고 각본과 배우를 겸한 작업을 병행하면서 활발한 영화 활동을 펼쳤다.

 

 

 

 

로버트 레드포드 Robert Redford

국적 : 미국

출생 : 1937년 8월 18일

 

* 작품 정보> 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635

 

콜로라도 대학을 중퇴한 뒤 화가가 되고자 유럽을 떠돌아 다녔다. 무대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 미국 연극아카데미에 들어갔는데, 곧 배우를 지망하게 되었다. 63년 브로드웨이 연극인 <맨발로 공원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영화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69년에 폴 뉴먼과 공연한 죠지 로이 힐 감독의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의 선댄스 키드 역이었다. 원래 선댄스 키드 역은 잭 레몬이 맡기로 되어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로버트 레드포드가 맡게 된 것으로 그에게는 크나 큰 행운이었다. 죠지 로이 힐-폴 뉴먼과는 73년 <스팅>에서 다시 만나 아카데미와 흥행가를 휩쓴 명컴비이기도 하다.

레드포드는 배우에만 만족하지 않고 69년에는 <은색 레이서>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는데, 80년 <보통사람들>을 직접 감독해 첫 작품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쥐는 신기록을 세웠다. 그는 자신이 감독한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고 연출에만 전념하는데, 감독 작품으로는 항상 인간적이면서도 사회성이 강한 미국민의 삶을 그리는 영화들을 택해 왔다. <밀라그로 콩밭 전쟁>과 92년에 만든 <흐르는 강물처럼>이 있는데 두 편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자신을 유명하게 한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의 극중 이름인 선댄스 키드의 이름을 따 젊은 영화인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인 선댄스 인스티튜트를 창설했는데,이 기관에서 운영하는 선댄스 영화제는 신인들이 헐리우드로 진출하는 가장 확실한 창구로 인정받고 있다. 배우로서는 만인의 연인으로 사랑받는 정감 넘치는 역을 많이 맡아 여성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모았는데, <추억>, <위대한 개츠비>,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 많은 명작들에 출연했다.

 

 

 

 

워렌 비티 Warren Beatty

국적 : 미국

출생 : 1937년 3월 30일 워렌 비티.

 

* 작품 정보 >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821

 

1981년 [레즈]로 아카데미 남우 주연, 감독, 각본, 제작 후보에 올라 [시민 케인]의 오손 웰즈가 세웠던 아카데미 4개부문 동시 후보의 대기록을 수립했으며 현재까지 개인으로는 13회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제작한 영화로는 52개 아카데미 노미네이트에 빛나는 영화인.

헐리우드의 유명배우 셜리 맥클레인의 남동생으로 24세 때 엘리아카잔 감독의 [초원의 빛]에 주연을 맡으며 소녀들을 설레게 했던 워렌 비티는 이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젊고 반항적인 미국 청년의 자화상으로 떠올랐다. 이후 [샴프]와 [해븐 켄 웨이트] 등의 영화로 아카데미 각본상, 제작상, 감독상 등에 노미네이트되며 천재적인 영화적 재질을 발휘했다. 81년 레이건 행정부의 미국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던 화제작 [레즈]는 무관심 속에 잊혀져간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과감하고도 놀랄 만큼의 완성도로 그 해 아카데미 최고의 결실로 꼽혔다. 그

 후 기존 영화의 비쥬얼 양식을 한 템포 앞당긴 [딕 트레이시],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은 영화 [벅시], 로맨스 가이로서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러브 어페어]등 출연 영화마다 카멜레온과도 같은 다채로운 변신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 모든 변신들은 불워스에서 그가 보여준 놀라움과 찬사에 비하면 지극히 온건한 것. 양복을 벗어버리고 헐렁한 티셔츠와 반바지를 걸친, 머리에는 두건을 두르고 선글라스를 낀 채 어깨를 들석이며 연신 허공에 손짓을 해대는 워렌 비티. 쉴 새 없이 쏟아 붓는 랩송으로 스크린을 팽팽한 리듬으로 채우고 스테이지를 누비는 현란한 댄스로 관객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간 불워스는 어떤 영화에서도 만나지 못할 충격적 변신으로 기록될 것이다. 나탈리 우드, 레슬리 캐론, 쥴리 크리스티, 다이앤 키튼, 이자벨 아자니, 킴 베신저, 마돈나, 아네트 베닝까지 수많은 히로인들을 실제로 사로잡았던 러브 메이커이자 한계를 알 수 없는 헐리우드의 천재인 그의 생애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조차 듣고 있는 불워스에서 또 한번 우리를 놀라게 한다.

 

 

 

 

우디 알렌 Woody Allen

국적 : 미국

출생 : 1935년 12월 1일

 

* 작품 정보> 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12

 

뉴욕 영화의 거장. 슬랩스틱 코미디로 출발해서 작가주의 감독으로 우뚝 선 입지전적 감독이다. 우디 알렌의 키워드는 '유태인' '정신분석'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뉴욕' '스윙재즈' '코미디' '위트있는 대사' 등이다. 즉 뉴욕을 배경으로 유태인이 느끼는 죄의식을 정신분석하며, 잔잔한 스윙재즈를 깔아두고 뿔테 안경 쓴 사람이 재치있는 대사를 건네기 시작하면, 그의 전형적인 영화 속 풍경이 된다. 하지만 그는 후기로 갈수록 점점 진지해지고 실험적이 되어 이런 식의 규정에서 가볍게 벗어난다. 데뷔작 [돈을 갖고 튀어라], 이어지는 코미디 [바나나 공화국] [당신이 섹스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 까지만 해도 그는 재능있는 코미디 감독일 뿐이었다. 하지만 77년 아카데미의 절대적 지지까지 이끌어낸 걸작 [애니 홀]에서부터 그의 궤도수정은 불가피했다. 유럽의 감수성을 자신의 영화언어에 접목한 그는 담담하면서도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는 지적인 수준급의 코미디로 전환한다. 79년 [맨하탄], 80년 [스타더스트 메모리]를 거쳐 83년 [젤리그], 85년 [카이로의 자줏빛 장미]에선 '영화에 대한 영화'의 실험적 양식을 대단히 냉철하게 보여줬다. 특히 85년 [카이로의 자줏빛 장미]는 그의 젊은 날의 영화에 대한 성찰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한편, 87년 [라디오 데이즈]는 노스탤지어의 기억과 복고풍을 결합하였고, 86년 [한나와 그 자매들], 88년 [또다른 여인]은 뉴욕의 현재 삶으로 다시 돌아와 간과할 수 없는 진실을 잘 그렸다. 89년 [범죄와 비행]은 그의 중기 걸작이며, 유태인의 삶에 깃든 죄의식과 회피할 수 없는 구원과 속죄의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이후 90년 [중년의 위기], 92년 [우디 알렌의 부부일기], 93년 [맨하탄 미스테리] 등 뉴요커의 삶을 관통하는 결혼 생활의 위기와 갈등을 위트있게 드러내며 수작 퍼레이드를 이어갔다. 90년대 중반부터는 새롭게 뮤지컬과 그리스 고대 비극에 탐닉한 인상이 짙다. 즉 94년 [브로드웨이를 쏴라], 95년 [마이티 아프로디테], 96년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등은 경쾌하고 밝은 인생의 햇볕을 느끼게 하는 뮤지컬의 수작들. 우디 알렌은 아직도 뉴욕 영화의 당당한 현역이며, 어느 재즈빠에 정기적으로 재즈를 연주하는 뮤지션이고, 삶의 쾌락과 유머를 즐기지만, 또한 인생의 어두운 면도 놓치지 않으려한 작가이다.

 

 

 

 

데니스 호퍼 Dennis Hopper

국적 : 미국

출생 : 1936년 5월 17일

 

* 작품 정보 >  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877

 

미국 캔사스주 닷지 시티 출생. 데니스 호퍼는 뉴욕의 명문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5년 동안 연기를 공부한 정통파 배우이다. 많은 영화에서 극과 극을 달리는 배역을 맡아 열연하여 일관된 이미지를 찾기가 어려운 배우에 속하는 그는 [이유 없는 반항]과 [자이언트]에서 제임스 딘과 함께 연기한 이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이력 중 그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것은 당연코 69년 작품 [이지 라이더]이다.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히피, 장발, 오토바이, 마약, 섹스 등 현실 도피적이고 불안한 당대의 청년문화를 예리한 시각으로 보여준 수작으로 그가 직접 공동 각본을 쓰고, 연출, 주연까지 맡아 칸느 영화제에서 신인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한때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였으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 출연하면서 재기에 성공하였다. 그밖에 미국 컬트영화의 대표주자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작품 [블루 벨벳]에 출연하여 연기력을 과시하기도 한 데니스 호퍼는 [스피드], [워터 월드]에서는 형편없는 악당으로 분하기도 하였다. 의식 있는 연기자이자 감독, 제작자이기도 한 그는 여전히 할리우드 100인에 손꼽힐 만큼 건재한 배우이다.

 

 

 

숀 펜 (Sean Penn)

국적 : 미국

출생 : 1960.8.17

 

* 작품정보>  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672

 

연예 가족으로, 아버지는 TV 프로듀서 아써 펜, 형 마이클 펜은 가수, 동생 크리스토퍼 펜은 배우다. 어린 시절부터 연기에 뜻을 두어서 산타모니카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8미리 영화에 출연한 경험이 있다. 졸업 후 무대극에 서면서 지방극단에 속해있기도 했는데, 2년간의 밑바닥 생활 끝에 TV 인기시리즈인 <형사 코작>에 출연했다. 영화 출연은 81년에 출연한 <생도의 분노>가 처음으로, 사관학교의 폐교 명령에 반항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사관생도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는데, 숀 펜은 성격파 배우로서의 기틀을 데뷔작에서부터 다지기 시작했다.

이후 <범죄와의 전쟁>에서는 신참형사, <전쟁의 사상자들>에서는 양민을 학대한 병사로 나오는 등 개성있는 연기들을 보여주었다. 그는 록스타 마돈나의 남편으로도 유명한데, 85년 그녀와 결혼한 뒤 <상하이 유혹>이라는 영화에서 공연하기도 했지만 89년 이혼했다. 그는 영화 속에서처럼 사생활에서도 좌충우돌하는 급한 성격에 알콜 중독 증상을 보이기도 해 연기력에 비해 환영을 받지 못하는 편이었다. 91년에는 자신이 직접 메가폰을 잡고 <인디안 러너>를 만들어 감독 데뷔를 했다. 1997년 그는 로 깐느에서 남우주연상을, 로 1998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케빈 코스트너 (Kevin Costner)

생년월일 : 1955.1.18

출생지 : 미국 캘리포니아 콘프톤

 

* 작품 정보 http://movie.naver.com/movie/bi/pi/filmo.nhn?code=867&mb=c

 

1955년 1월 18일 캘리포니아 콘프톤 출생. 고교 시절은 전미주 지역 선발의 스포츠 선수로 활약, 캘리포니아주립 프래튼 대학 상과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갔다가 30일만에 퇴사. 학생시절부터 꿈꿔왔던 연기의 길을 걷기로 결심, 극단에 들어가 스테이지 매니저 겸 연극배우가 된다. 81년 <스테이시의 기사> 데뷔, 그 다음에 출연한 <빅칠>이란 영화에서는 운이 없게도 편집 과정에서 출연장면이 모두 삭제되었다. 83년의 에서는 자살한 남자의 사체역을 맡지만 화면에는 나오지 않는다. PBS-TV의 드라마 <성서>에서의 연기로 호평을 받고, 케븐 레놀즈 감독의 데뷔작 <휀딩고>에, 그리고 85년에는 카스단 감독의 서부극 <실버라도>에서 큰 역을 맡았다. 숀 코넬리와 공연한 <언터쳐블>, <노 웨이 아웃>으로 국제적 스타가 되었고 87년 극장주 연합회에서 선장한 '미래의 스타'로 선정되었다. 90년에는 이색 서부극 <늑대와 춤을>의 각본, 감독, 주연을 맡아 아카데미-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 감독, 각본을 포함 7개부문을 휩쓸었다. 부인 신디와의 사이에 딸 둘, 아들 하나가 있다.

 

 

 

 

멜 깁슨 (Mel Gibson)

생년월일 : 1956.1.3

출생지 : 미국 뉴욕

 

* 작품 정보> 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28

 

허리우드의 톱스타 배우일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감독상에 빛나는 감독이자 제작자이다. 그의 연기 경력을 돌아보면 불록버스터 액션 [리쎌 웨폰] 시리즈, 흥행 대성공을 거둔 로맨틱 코미디 [왓 위민 원트], 웨스턴 코미디 [매버릭] 그리고 서스펜스 스릴러 [랜섬] 등 장르가 다양하다. 그만큼 그의 연기 폭은 넓고 깊다. 멜 깁슨은 [브레이브 하트]를 감독, 제작하고 직접 출연했으며 이 작품으로 10개의 아카데미 상 후보에 지명됐고 작품상, 감독상 등 다섯 개 부문에서 오스카를 거머쥐었다. 멜 깁슨이 브루스 데이비와 세운 아이콘 프러덕션에서 [브레이브 하트]를 제작했으며 그 후로도 베토벤의 러브 스토리를 그린 [불멸의 사랑], [왓 위민 원트],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햄릿],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사랑을 위하여], [페이백] 등을 제작했다. 멜 깁슨은 뉴욕 업스테이트에서 출생했으며, 열 두 살 때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주했다. 깁슨은 시드니의 뉴 사우스 웨일즈 대학에서 공연예술을 전공했으며, 조지 밀러의 눈에 띄어 [매드 맥스]에 캐스팅됐다. [매드 맥스]는 깁슨을 일약 세계의 무대에 올려놓은 성공작이다. 흥행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둔 [매드 맥스]는 그 후 시리즈로 제작되면서 계속 성공했다. 깁슨은 과 피터 위어 감독의 등 두 개의 작품으로 호주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으며, 위어 감독과 깁슨은 에서도 함께 호흡을 맞추었다.

 

 

 

 

리차드 아텐보로 Richard Attenborough

국적 : 영국

출생 : 1923년 8월 29일

 

* 작품 정보> 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4495

 

1982년 '간디'를 제작/감독 하여 8개 부분에 걸쳐 아카데미 상을 받았다. 1923년 영국 캠브리지에서 태어나 단과대학 학장인 아버지를 따라 Leicester에서 성장했으며 17세에 London Royan Academy of Dramatic Art 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였고 30년 후에는 이 학교의 학장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때 공군으로 참전한 후 수많은 연극과 영화에 출연했으며, 스티븐 스필버그의 잃어버린 세계에 출연했었다. 1959년에는 제작자로서 여러 작품에 배우 겸 제작자로 황동하였으며 1962년 '간디'를 찍기위해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1971년에 영국에서 첫번째 오락프로 전문회사인 Capitol Radio를 설립하여 70세에 명예 사장으로 있었다. 또한 Channel 4 방송국을 설립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1980년 부터 1992년 까지 회장을 역임했다.

 

 

 

 

조디 포스터 Jodie Foster

국적 : 미국

출생 : 1962년 11월 19일

 

*  작품정보 > 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259

 

어머니가 임신 중에 아버지가 도망을 치던 바람에 어려서부터 궁핍했던 조디 포스터는 생계를 위해 CF 모델일을 시작하였다. 1972년도에 출연한 에서의 연기로 천재 아역 배우라는 칭호를 얻은 그녀는 1976년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에 출연하여 최연소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하지만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의 저격 미수 사건의 범인인 힝클리가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니로와 조디 포스터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어린 나이로 국가적인 스캔들에 휘말리게 된 조디 포스터는 연기와 담을 쌓고 공부에만 전념하게 된다. 예일대학을 졸업한 뒤 조디 포스터가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은 [피고인]. 이 영화와 [양들의 침묵] 두 편으로 조디 포스터는 30세 이전에 오스카상을 두 번 받은 최초의 여자 배우가 되었으며. 또한 [꼬마 천재 테이트]를 비롯한 3편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으로서, 그리고 자신의 프로덕션까지 가진 프로듀서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빌리 밥 손튼 Billy Bob Thornton

국적 : 미국

출생 : 1955년 8월 4일

 

* 작품 정보 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733

 

미국 알칸사스 핫 스프링즈 출생.

교육자이자 코치인 아버지와 영매인 어머니 사이에서 3남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Tres Hombres라는 밴드에서 드럼을 치고 노래도 하던 빌리 밥 손튼은 1981년에 L.A.로 건너가 드러머와 보컬 활동을 하면서 연기와 글 쓰기에 착수하였다. 워낙 궁핍했던 이 시절에 그는 영양 실조와 약한 심장으로 자주 병원에 실려 갔었다는데, 결국 1987년에 극영화와 TV에 얼굴을 내밀게 된다. [용사를 위하여]나 [트러블 바운드], [툼스톤] 등에 출연하던 빌리 밥 손튼은 90년대 후반부터 그 가공할 만한 연기력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1996년에 연출까지 겸한 [슬링 블레이드]가 개봉되면서 바야흐로 빌리 밥 손튼의 전성기가 열리게 된다. 영화에 출연할 때마다 너무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서 왠만한 눈썰미로는 알아볼 수조차 없을 정도인 그의 역할 변신은 올리버 스톤의 [유턴]에서 50파운드를 늘린 모습과 - 가히 [언터처블]과 [분노의 주먹]에서 몸무게를 늘린 로버트 드 니로와 비견될 만하다 - [에어컨트롤]에서 군살 하나 없이 안젤리나 졸리와 함께 서있는, 극과 극을 달리는 상반된 모습으로 단박에 확인된다. [콘 에어]에서의 양복 입은 모습과 [심플 플랜]에서의 비열한 시골주민 역할 역시 빌리 밥 손튼의 360도 연기 변신을 맛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감독 데뷔작인 [슬링 블레이드]로 그 해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그는 2000년에 두 번째와 세 번째 감독작을 한꺼번에 연출 중에 있다.

 

 

 

빈센트 갈로 Vincent Gallo / Vinnie Gallo

국 적 미국

출 생 1962년 4월 11일

 

* 작품정보 > 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582

 

빈센트 갈로는 뉴욕의 저명한 '홀리 솔로몬 갤러리'에 전시할 정도로 성공한 예술가이고 캘빈 클라인의 포스터와 TV 광고 모델 활동을 했었다. 또한 자신의 밴드도 가지고 있었고, 소니사와 레코드판 내기로 계약을 맺기도 했다. 그리고 헐리우드 주류에 반대하는 독립 영화([퓨너럴][팔루커빌][아리조나 드림])의 최고 배우 중 하나인 빈센트 갈로는,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하고, 인기를 얻은 달콤쌉싸름한 코믹 영화 [버팔로 66]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조각같은 얼굴, 조롱하는 듯한 눈빛, 반항적 고수머리를 가진 빈센트는, 지적이면서 멋진 남자이고, 프로이면서도 기상천외한 감독이며, 위대한 표현력을 가진 배우이다. 즉, 짧게 말해서 완벽한 예술가이다. 또한 그의 날카로운 비판력은 동료인 존 터투로, 구스 반 산트에게조차 독설로 이어질 정도로 직설적이어서 더욱 유명하다.

 

 

 

 

쿠엔틴 타란티노 Quentin Tarantino

국적 : 미국

출생 : 1963년 3월 27일

 

* 작품 정보 http://www.cineseoul.com/movies/people.html?peopleID=3681

 

감독이며 배우이자 프로듀서. 1990년대 미국 영화에서 가장 폭력적이며 가장 특색 있는 감독 중의 한 명이다. 전 세대의 배우들이 학교에서 영화를 배웠던 것과는 달리, 타란티노는 비디오 점원으로 일하면서 그의 영화 코드를 익혀나갔다. 그 결과 그는 팝 문화와 독립 영화를 과감하게 뒤섞은 퓨전 폭력 영화들을 만들어냈고, 또 자신의 영화에 출연도 했다. 타란티노는 우선 배우로서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가 감독하고 각본을 쓰고 출연한 영화 [저수지의 개들]이 1992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고, 컬트 영화로서 히트했다. 1993년 감독하고 각본을 쓰고 출연도 한 영화 [펄프 픽션]의 대히트는 전 세계적으로 타란티노의 추종자들을 만들어냈으며, [펄프 픽션]은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이후 자신이 프로듀싱한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에 출연했으며, 감독한 영화 [포 룸]에도 출연했다. 타란티노는 현재도 여전히 자신의 독특한 색을 유지하고 있으나 [펄프 픽션]을 능가하는 작품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200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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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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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이우드에서는 심형래

한국에선 이경규

 

입뉘다

2008.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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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클루니 올인 ~ !

2008.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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