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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내공] 이명박은선거법위반 했는데, 2002년에 어떻게 서울시장에 취임이 가능?
qn**** 조회수 23,487 작성일2007.11.12

중학교 교사인데요,, 선거법 관련 문제를 풀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제가 법령을 잘못 해석하고 있었나 해서 질문합니다.

고수님들의 도움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 공직선거법 제18조에보면,, 아래의 경우 선거권을 제한한다고 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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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거범, 정치자금법 제45조(정치자금부정수수죄) 및 제49조(선거비용관련 위반행위에 관한 벌칙)에 규정된 죄를 범한 자 또는 대통령,국회의원,지방의회의원,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서 그 재임중의 직무와 관련하여 형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제2조에 의하여 가중처벌되는 경우를 포함한다) 제129조(수뢰, 사전수뢰) 내지 제132조(알선수뢰),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알선수재)에 규정된 죄를 범한 자로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의 선고를 받고 그 형이 확정된 후 5년 또는 형의 집행유예의 선고를 받고 그 형이 확정된 후 10년을 경과하지 아니하거나 징역형의 선고를 받고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또는 그 형의 집행이 종료되거나 면제된 후 10년을 경과하지 아니한 자(형이 실효된 자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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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씨가 1996년 15대 총선에서 법정선거비 초과 사용으로

98년 4월 28일 4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여파로 98년 서울시장 당내 경선까지 포기해야 했구요.


그런데,, 이명박씨는 2002년 7월 1일 제 32대 서울특별시장 취임하게 되는데요..

선고받은 98년으로부터  4년 2개월 밖에 안된 이명박씨가 어떻게 선거권을 행사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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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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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께서 언급한 사항들은 사실이고, 공직선거법에 대한 이해도 맞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면복권을 받았기 때문에 서울시장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었습니다. 시기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996년 4월, 제15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종로구에 입후보, 당선됨
- 1996년 9월 10일, 선거 당시 보좌관이었던 김유찬이 기자회견을 열어 이명박씨의 선거법 위반 사실을 폭로. 법정 선거비용의 10배에 이르는 6억 8천만 원을 썼다는 것임.
- 1996년 9월 15일, 김유찬 가족 출국
- 1996년 10월 6일, 김유찬 전격 귀국, 검찰 수사 응하고, 10월 9일 검찰은 이명박씨를 불구속 기소함.
- 1997년 9월 11일, 서울지방법원 제23형사부는 이명박의 유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림.
- 1998년 2월 21일, 의원직 자진사퇴하고 서울시장 경선 출마 선언, 4월 25일 당내 경선.
- 1998년 4월 28일, 서울고법 항소심에서 선거법위반 벌금 400만원, 김유찬 해외도피 혐의로 벌금 300만원 선고. 판결과 함께 피선거권이 박탈되고 경선 포기를 선언함.
- 1999년 4월 9일, 대법원 상고 기각. 원심 확정.

따라서 이대로라면 이명박씨는 2002년 6월 13일에 치뤄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입후보할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 광복절 대사면으로 이명박씨는 복권이 됩니다. 당시에는 특별사면의 규모가 워낙 컸던데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고 있던 김영삼 전 대통령 측을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김현철, 홍인길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명박씨의 복권은 그리 큰 이슈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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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특사] 김현철씨등 3만647명 특별사면
한국일보|기사입력 2000-08-14 18:28 |최종수정2000-08-14 18:28

정부는 제55주년 광복절인 15일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공안·선거·경제사범과 IMF 생계형 사범 등 총 3만647명에 대해 특별사면 및 복권, 가석방조치를 단행한다고 14일 밝혔다.

이에 따라 특사 대상자 중 실형이 확정돼 복역중인 3,586명이 15일 오전10시 전국 교정기관에서 일제히 석방되고, 선거사범과 IMF 생계형사범 등2만3,673명은 복권돼 피선거권 등 공민권을 회복하게 된다.

특 히 지난해 잔형 집행면제를 받은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와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비자금사건으로 복역 중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이원조(李源祚)·노승우(盧承禹)전의원, 김기섭(金己燮)전 안기부기조실장이 형선고실효 및 복권되고, 한보·청구사건에 연루돼 복역중인 홍인길(洪仁吉)전 청와대수석은 형집행 일시정지로 풀려난다.

96년 4·11 총선과 관련, 선거사범으로 기소된 홍준표(洪準杓) 이명박(李明博) 최욱철(崔旭澈) 박계동(朴啓東) 이기문(李基文) 김화남(金和男) 전의원 등 6명은 형선고실효로 복권돼 향후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탈세 등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홍석현(洪錫炫)중앙일보 회장과 홍두표(洪斗杓)전 한국방송공사 사장 한보사건 등에 연루됐던 우찬목(禹贊穆)전 조흥은행장과 손홍균(孫洪鈞)전 서울은행장, 이수휴(李秀休)전보험감독원장, 김진영(金振永)전의원 12·12사건에 연루된 박희도(朴熙道)전 육참총장과 장기오(張基梧)전 총무처장관이 사면 및 복권된다.

또 정수일(남파간첩 깐수)전 단국대교수 등 공안·노동사범 1,101명이 석방·감형 또는 사면·복권되고,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우용각씨 등 비전향장기수 19명도 잔형집행이 면제된다.

한편 과실범죄와 부정수표단속법·교통사고처리특례법·자동차관리법 등83개 행정법규 위반사범 중 집행유예 또는 선고유예를 받은 2만2,235명은 형선고실효, 또는 복권된다.

참고자료
이명박 전시장 선거법위반 일지 정리 (희망! 한나라당 카페 http://cafe.daum.net/lovehannara)
이명박 범인 은닉 사건 판결문 (박사모 카페 http://cafe.naver.com/baksamo)
한국일보 2000-08-14일자
인터넷 법률신문 2000-8-21일자

200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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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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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신화는 허상

 

허상에 젖어 이명박이 자랑하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지 마세요

 

언론에 들이미는 것에 착각하지 말고 이면을 들여다 보면 진실은 보인다.

 

이명박의 지지자들은 이런 이유를 대고 있다


현대건설 사원에서 CEO

 

서울시장 (청계천)을 거치며   경제능력이 증명되었다.

 

아집과 독선이라고도 하지만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그 결단력과 추진력이 마음에 든다.

 

'성공CEO' 라고 자랑하고 '성공 CEO' '현대건설 성공신화' 라는 이미지로 지지를 받고 있다.

 

현대건설 사원으로 입사해 이른 나이에 사장에 올라 샐러리맨의 신화로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그런 이미지를 공적, 정치적으로 이용함.

 

한나라당 경선에서는

 

"나는 종업원이 90명 뿐인 중소기업을 16만명의 대기업으로 키운 세계가 인정한 CEO이다." 라고

 

자랑했지만.  실상은

 

MB가 입사한 1965년 당시 현대건설 종업원수는 380명,

 

 57년 한강 인도교 건설을 계기로 이미 대한민국 '5대건설회사'        - 현대건설 50년사

 

특히 이 시기는 1,2,3,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 -1966-) 으로 건설업이 엄청난 활황일때.

 

 

드라마 야망의 세월 ( 1990 - 1991년 방영) 과

 

현대가를 소래로한 드라마 영웅시대(04 -05 방영) 에서는

 

과대포장대고 미화되어 대중들에게 인식됨.

 

(없던 사실도 만들어내어 대중에게 잘못된 환상이 인식됨)

 

- 정주영 회장 회고록 -

 

"〈야망의 세월〉이라는 드라마가 그 분을 너무 유명하게 만들었는데,

 

그건 정말 작가의 장난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이명박씨가 소양강 댐이다 뭐다 해서 다 한 것처럼 나오고 박대통령 앞에

 

가서 으르렁으르렁거린 걸로 나오는데 사실이 아니다.

소양강 댐 만들 때 이명박씨는 간부도 아니었고 참여도 하지 않았다.

 

설계에서부터 설계 시공에 이르기까지 전부 서울공대 패거리들이 했다.

 

 모두 이씨의 (회사)선배 들이다. 

 현대건설은 생긴지가 40년이 넘는다.

 

그런데 현대건설 초반기에 맡았던 공사에 그 분이 주역을 담당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드라마상으로는 조선소 건설이나 자동차 등등 다 그 분이 한 것처럼 나오니까

 

사내에 보이지 않는 위화감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나는 밑의 직원이 매스컴에 나오면 그걸 좋게 보지만 같은 동료들은 그렇지가 않다.

그 때 저 밑에서 서류도 만져보지 못한 사람이 자기가 다 한 걸로 나오고,

 

그건 좋은데 중동건설도 다 자기가 한 것처럼 나오니, 그 때 이명박씨는 참가할 자격도 못 됐다.

 

서울대 (회사)선배들이 다 한 건데 서로 말은 못해도 회사 내에서 분위기가 아주 어색했다.

 

그런 저런 이유로 해서 그 분이 떠날 분위기를 자초한 거다. "       - 정주영 회장 회고록 -

 

 

사장으로 현대건설은 어떠했나?    -  현대건설 성공신화는 가짜

 

현대건설 CEO


1965년 입사 1979년 1월 국내외 경영총괄사장 취임 1992년 퇴직


정주영 회장의 유별난 총애속에 1979년 사장에 오르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현대건설이 이라크 시장에 진출.


이라크 공사 수주가 1980년-1985년 집중됨


 당시 이라크 상황은 1980년-1988년까지 이란과 전쟁, 후세인 대통령의 잔혹행위등 전세계로


부터 고립되어지고 8년간 외국기업들은 1차 탈출 행렬을 이뤘고


1991년 걸프전으로 대부분의 외국기업들은 떠나고 이후에 대외지불능력 불가상태가 됨. 


이러한 가운데도

 

이명박은 현대건설의 이라크 시장 사수를 강요했고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현대건설만 꿋꿋이 버티고 앉아서 이라크에서 무리한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공사를 강행해 나간 것이죠



지지자들이 좋아한다는 이후보의 추진력과, 결단력이 잘 나타남.

 

결단한건 강력하게 밀어붙이는게 마음에 든다는 분들이 있죠


걸프전 당시 외국인들은 모두 철수했지만 이명박은 현대건설 임직원들에게 현장을 지키라고 강요했습니다.


당시 이라크 현장에 있던 현대건설 직원들은 본부로부터 철수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공포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냈다고함.

 

지지자들은 "아집과 독선이라고도 하지만 행동으로 밀어붙이는 그 추진력과 결단력이 마음에 든다"라고 말하지요


 

그럼 그렇게 강력하게 이라크 시장을 사수했는데 경제성적표는 어떠할까?


1979년 1,362억이던 공사미수금은 매년 증가하여

 

퇴임 직전인 1991년 8,908억원으로 무려 540% 늘었음. 

 

이러한 공사미수금은 순자산의 205%


현대건설의 미수금은 이라크에 진출했던 한국기업 미수금 총액의 90%,

 

이라크 진출 전 세계 민간기업 채권액의 40%. (이라크 시장의 점유율이 40%가 아닙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더욱 가관인것은

 

미수금이 쌓여가며 이자로 점점 더 늘어나는 상황속에서  


1991년 걸프전으로 미수금 회수 가능성이 거의 희박해지는데


회사를 생각하는 올바른 CEO라면 당장은 부실이 드러나니 안좋은 모습이지만

 

회사의 발전,안정을 위해 당연히 회수불가능 채권의 추산액을 따지는것


(대손충당금)을 쌓아 놨어야(적립해 놨어야) 했지만


받을수 있는 돈으로 계상(계산하여 올림)하는 등 사실상 분식회계 처리를 한것입니다.


* 대손(bad debts)- 돈을 빌려줬는데 그 돈을 빌린 차입자의 신용도가 좋지 않아서 다시  회수할 가능성 이 적은 빚


* 충당금- 어떤 부분이 부족하여 그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설정해 놓는 금액


* 대손충당금- 빌려준 자금의 회수가 힘들것을 예상하여 미리 그 회수가 불가능하다 예상 되는 부분에 미리 돈을 쌓아놓는 것

 

대손충당금이란, 100만원의 채권중에 부실거래처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미래 불확실성에 따라

 

                    "에이~ 이정도쯤은 못받는다고 쳐버리자!"라고 다짐한 부분


* 만약, 실제로 대손이 발생하였는데 충당금을 쌓아놓지 않았다면, 그 규모가 클 경우 회사는 부도가 나게 될 수도 있겠죠.


* 요즘 신문지상에 많이 오르내리는 카드사의 대손충당금 적립기준이 강화되었다라는 것도  이런 차원에서 입니다.


* 따라서 , 회사의 경우는 대손에 대해서 실제로 상각(비용으로 처리)하거나 충당금을 쌓아  야겠죠.



현대건설 재무재표(1976~95년)를 보면,

 

이 회사는 1976~80년까지는 이라크 공사를 비롯


해 국내외 공사 미수금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매년 20억~42억원 가량 적립했지만,

 

81년부터 95년까지는 이를 전혀 계상하지 않았다.


부실을 감추기 위해 분식회계처리를 한것이지요


 여기에 MB은 "미수금으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진건 인정" 하고 있고


                   " 대손충당금을 적립하는건 경영적 판단일뿐" 이라고 발뺌합니다.


1992년 회사에 8,908억원 미수금을 떠안기고 자신은 떠남.


 이명박이 남긴  이라크 장기 악성 미수채권은 회사에 엄청난 빚으로 쌓여갔고

 

막대한 부실채권이 속으로 곪아오면서


           이라크 장기 미수채권은 2000년 기준 약 1조 703억원 규모

 

로 2005년 현대건설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5551억원의 손실을 회사에 입힌것.


2000년 현대건설은 2조 9천 8백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

 

이라크 미수채권이 차지하는 비율은 36%에 이르렀으며 8095억원 규모였던 2001년에는 150%

 

현대건설 회계감사보고서는

 

이와같은 대규모 손실의 원인이 이라크 장기 미회수 공사대금 1조 703억원 때문이라고 기재되어 있음.


 이것이 2000년 현대건설 부도의 결정적 이유

 

현대가 왕자의 난도 영향이 없지는 않았지만 다른 현대 기업들은 현대건설처럼 무너지진 않았지요.

 

2001년 6월 워크아웃에 들어갈 당시 현대건설은 적자 2조9000억원, 부채 4조4000억원이란 완벽

 

한 부실 그 자체였습니다.


그 중 가장 결정적인 부실이 이명박 후보가 현대건설의 경영총괄담당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집중적으로 공사를 수주하면서 발생한 이라크 장기 악성 미수채권 건.

 (1979-1991년까지 재직  .  1980 -1985년 공사 수주 집중 )

  

 이처럼 막대한 자금이 부실채권으로 묶이자 현대건설은 부족한 자금을 금융권 차입 등으로 대환

 

면서 경영상태가 악화됐고, 결국은 유동성 위기까지 초래.


김대중 정부는 현대건설 부도로

 

 26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4,573억원을 지원

 

  공적자금이 투입된 채권금융기관들이 총 4조 1,839억원을 지원

 

 현대건설 부도의 책임을 모두 국민이 낸 혈세로 감당한 것임.


 

더욱이, 대부분의 외국기업들이 이라크에서 철수를 마쳤던 1990년대 초까지 직원들에 대해 이라

 

크 잔류를 지시하며 사를 강행하도록 한 것은 '미친 짓'이라고 표현할 수 밖음.



한 마디로 '묻지마 수주'와 '묻지마 시공'이 기업의 재무구조에 치명타를 입혔을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안전과 생명마저 위협한 처사

 

현대건설 부도 문제뿐만 아니라

 

자신의 CEO 재직기간 중 벌어진 걸프전쟁 당시의 무모함에 대해서는 피해갈 수 없을것이다.  

 

 

현대는 지난 2005년 나머지 채권 중 80%를 탕감하고 이자·원금을 받는 조건으로 미수금 문제를 마무리지었다.

 

즉 원금과 이자를 합한 1조 6,951억원의 미수채권 중 무려 80%인 1조 3,561억원을 탕감

 

해 준 것으로

 

1조가 넘는 돈이 허공에 날아간 것입니다.

 

현대건설 여동진 해외사업본부장은 작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건을 계기로 아무리 규모가 큰 공사라고 하더라도 공사비를 받는데 어려움이 있

 

다면 공사를 수주하지않는다는 확고한 원칙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얼마나 뼈저린 반성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사 한 임원은

 

 “재임기간 중 수주한 공사에 대해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고

 

악성 장기 미 수로 남긴 채 회사를 떠난다면 최고경영자로서 결격사유" 라고 밝혔습니다.

 

  

 이래도 '현대건설 성공신화' , '성공 CEO' 라는 말이 어울리나요?

200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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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송영 작가님 말씀 중에 <도덕이 밥 먹여준다>는 게 있었죠. 그런데 이건 정말 진실입니다.

 

태국의 탁신 보세요. 이명박을 훨씬 능가하는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경제인이었죠. 그래서 태국인들은 탁신에게 굉장히 기대를 많이 했어요.

 

허나 결과는 꽝이었습니다. 바로 도덕성 때문이죠. 탁신의 부패한 정권이 결국 나라 경제를 말아먹었습니다. 그 결과 탁신은 쿠데타로 인해 쫓겨나죠. 지금 멘체스터 시티 인수해서 여론 몰이하고 재기를 꿈꾸나 본데, 아니 될 말씀입니다.

 

또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이태리의 베를루스코니입니다. 지난 2001년 총리 된 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입니다. 유럽 최저입니다. 쪽팔리는 일이죠. 그런데 이 베를루스코니는 탁신보다도 훨씬 더 부자입니다. 세계12위라고 하더군요.

 

이태리 국민들도 베를루스코니에게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자신의 부를 축적한 것처럼 나라의 경제로 살려달라 이거죠. 허나 결과는 역시 꽝이었습니다. 이유는 바로 부패 때문이죠.

 

부패는 우리에게 밥그릇을 뺏어가는 이리 승냥이인 것입니다.

 

반면 도덕은 우리에게 밥을 줍니다. 바로 그 사실을 아일랜드를 통해 알 수 있죠.

 

아일랜드는 80년대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부터 부패 청사을 위해 노력했고 급기야 메리 매컬리스라는 뛰어난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모신 후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됐죠.

 

그녀는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됐고 2004년 재선에 성공합니다. 그것도 90% 가까운 엄청난 지지율에다가 단독 출마라는 유례없는 사건까지 만들면서 말이죠. 집권 10년째인 지금도 지지율이 80%를 넘는다고 합니다.

 

그 결과 아일랜드는 현재 5만 달라가 넘는 일인당 국민소득으로 세계 6위의 개인소득국가를 자랑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메리 매컬리스 대통령이 1997년 대통령에 출마할 때까지 정치 경험이 전무했다는 겁니다. 젊을 때 잠시 하원의원 출마했다가 낙선한 거 말고는 정치 경험이 아예 없었습니다.

 

영국 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치던 학자였는데 단번에 출마해서 대통령이 되었죠. 정치적 기반이 없다는 것이 그녀에겐 크나큰 장점이 되었던 겁니다.

 

아일랜드 국민은 정치 경험보다 그녀의 비전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아일랜드 국민들의 선택은 적중했죠.

 

그녀는 기존의 부패한 정치세력과 완전 단절하고 아일랜드 경제성장을 위해 박차를 가합니다.

 

물론 지나친 외국 자본 유입으로 인해 비판될 점도 많기는 하지만 어쨌든 부패와 갈등을 뿌리뽑고 고도 성장을 이룩했으며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아일랜드 국민을 단합시켰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바로 문국현이 한국의 매컬리스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부패한 정치권과 아무런 연결점도 없기에 오히려 부패를 청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패는 밥그릇을 빼았습니다. 도덕이 밥을 먹여줍니다. 태국, 이태리, 아일랜드의 교훈을 잊지 맙시다.

200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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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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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5위, 정부기관 35위, 정당, 사회단체 26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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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받은 98년으로부터  4년 2개월 밖에 안된 이명박씨가 어떻게 피 선거권을 행사한 것인가요?

**이 것이 대법원의 확정 판결인가요?

**상소와 상고를 거쳐 대법원 확정 판결에서 경감 될 수 있고. 시기 계산은 행위시를 기준하므로 1996년 선거일을 기준 하고.  중간에 대통령의 일반, 특별 사면을 받은 경우가 가능 합니다

200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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