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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장영실의 옥루
Isabella 조회수 6,941 작성일2009.01.15

인터넷에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요ㅠㅠ

제발 옥루 사진 좀 찾아주세요 제 모든 내공 다 걸께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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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d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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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화학공학, 수학, 지구과학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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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루를 다른말로 옥루 라고 불렀데요 ~ 이게 맞는것 같에요 ^^

 

정밀한 자동제어장치 ‘자격루’의 비밀
남문현 교수가 밝힌 자격루의 작동 원리는 물시계의 기본인 물의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다시 일정한 시차로 구슬과 인형을 건드리도록 설계한 완벽한 자동제어 시스템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5세기 당시, 중국과 이슬람의 기술에다 우리의 탁월한 제어계측 기술을 결합해 세계적인 보편성과 독창성을 구현해낸 것”이다.

자격루는 물의 흐름을 이용해 인형이 종, 징,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려 주는 첨단 물시계이며 한국 최초의 디지털 기계이다. 하루를 2시간씩 나눈 12지시(오후 11시인 자시, 오전 1시인 축시 등)마다 종을 울리고 밤 시간인 5경(오후 7시인 1경∼오전 3시인 5경)에는 북과 징을 울리도록 함으로써 혼동을 피할 수 있다. 12지시에는 각각의 시간에 해당하는 동물 인형(자시의 쥐, 축시의 소 등)이 뻐꾸기시계처럼 시보상자 구멍에서 튀어 오르도록 했다.

자격루는 크게 3부분으로 나뉘는데 왼쪽의 수압과 수위를 조절하는 수위조절용 항아리가 있고 중앙에는 두 개의 계량용 항아리가 있다. 마지막으로 오른쪽 부분에는 시보(자격)장치가 있는데 이 부분이 시간을 알려주는 종과 북 징을 치는 시보인형이 위치하는 것이다.



이를 분석해 보면 물시계는 아날로그 시스템이고 시보장치는 디지털 시스템인 격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시스템이 접속되려면 아날로그·디지털 변환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보루각 안에 층층이 다락마루를 놓아 맨 위 층에 용모양의 도수관이 달린 커다란 저수조를, 그 밑에 단계적으로 수압조절용, 수위조절용 항아리들을 놓아 일정한 유량이 계량호에 유입되도록 한 다음 계량호 안에 거북모양의 부자를 넣고 그 위에 시간눈금을 새긴 잣대를 꽂는 물시계를 만들었다. 이 계량호에 물이 유입되면 수위가 증가함으로 그에 따라 잣대가 떠오르면서 관리자가 잣대에서 12시와 경점의 눈금을 읽어 시각을 알아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시각을 알아내는 시스템을 시각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변환하는 것이 자격루에서 가장 중요한 시보장치이다. 잣대가 떠오르면서 계량호 위에 세운 방목 안에 설치한 탄알만한 작은 구슬(12용은 12개, 경점용은 25개)이 담긴 수납기구를 밀어 올려 구슬을 떨어뜨리는 동판기구를 고안한 것이다.

이러한 동판기구는 부력에 의해 작은 구슬이 낙하하면서 발생하는 힘만으로는 로봇인형이 종이나 북을 울릴 수 없으므로 인형기구를 작동시키는 달걀크기만한 쇠구슬을 미리 저장하였다가 동판기구에서 떨어진 작은 구슬이 이것들을 순서대로 방출시켜주는 철환방출 기구를 통해 12시 로봇과 경점 로봇들이 연결된 제어기구들을 작동시켜 각각 종, 북, 징을 울리게 한다.
 
■세종의 경천애민 사상으로 태어난 ‘자격루’
자격루의 탄생 배경에는 세종의 경천애민사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세종실록』 「보루각기」에 “임금께서는 시각을 알리는 사람이 잘못 알리게 되면 중벌을 면치 못하는 것을 염려하여 호군 장영실에게 하명하여 시각을 알리는 일을 맡길 시보인형을 나무로 만들었으니, 이에 시각에 따라 스스로 알리므로 사람의 힘이 들지 않았다…”고 사료에 밝히고 있다.
 
당시 왕조시대의 시간은 천체 관측 기술을 통해 하늘의 능력을 받아 백성들에게 편리함을 주는 능력을 보여줘야 했다. 이는 최고의 국가 통치 기술이자 제왕학의 기본이었다. 하지만 이미 중국에서 발전된 천문과학 기술에 만족하지 않고 세종이 장영실을 통해 새로운 관측기를 개발하도록 명한다.



중국의 천문 기계는 중국의 시점에 맞추어 제작됐기 때문에 조선의 실정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현대의 시차를 살펴보더라도 북경과는 1시간, 남경과는 그 이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조선만의 새로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은 신분이 천한 관노 장영실을 통해 그 결실을 맺는다. 당시 관노 출신의 천한 일개 기술자를 그의 뛰어난 재능 하나만을 보고 귀하게 쓴 세종의 리더십을 엿볼 수 있다. 자격루의 개발 성공으로 세종은 조선왕조의 시간표준을 통해 국가 발전의 초석을 이룰 수 있었다.
 
그는 이번 성과를 되돌아보면서 세종의 경천애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백성을 아끼는 세종의 이같은 노력이 시대를 뛰어넘는 과학의 성과를 보이며 세계 기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출쳐 조경희 월간 PC라인

200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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