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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클래식

파리넬리

제라르 꼬르비오 감독

서양음악사에서 바로크 시대는 카스트라토의 전성기였다. 카스트라토는 변성기가 되기 전에 거세를 해서 성인이 된 후에도 여성의 높은 음역을 내는 남성 소프라노를 말한다. 거세한 남성은 정상적인 성인 남자보다 몸이 크다고 한다. 몸집이 크기 때문에 여성 소프라노보다 강한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렇게 여성의 높은 음역에 남성 특유의 강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카스트라토는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 무대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음악리스트
No. 아티스트 & 연주  
1 헨델 [리날도] 중 [나를 울게 내버려 두오(Lascia chio pianga)] / 버나뎃 그리비(노래), 아카데미 실내악단(연주), 레이먼드 레퍼드(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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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라토의 인기는 요즘 한창 잘 나가는 대중스타 뺨칠 정도였다. 일단 이름난 카스트라토가 되면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었다. 그래서 수많은 소년들이 카스트라토를 지망했는데, 이탈리아에는 카스트라토를 전문으로 양성하는 학교까지 있었다고 한다. 17, 18세기 동안 수 천 명의 어린 소년들이 카스트라토가 되기 위해 거세 시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모두 다 가수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남자로서의 정상적인 삶을 포기한 채 그늘 속에서 일생을 보내야 했다. 시술 과정 중의 비위생적인 처리나 호르몬 분비의 이상으로 평생 불구가 되는 아이들도 많았다. 이런 폐해 때문에 1903년 로마 교황이 공식적으로 카스트라토를 금지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1930년대까지 카스트라토가 활동했다고 한다.

제라르 꼬르비오 감독의 [파리넬리]는 18세기 유럽 무대를 풍미했던 까를로 브로스키라는 한 카스트라토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영화의 제목이 된 파리넬리는 그의 예명이다. 파리넬리가 카스트라토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17살이던 1722년이었다. 영화 [파리넬리]는 바로 이 무렵 나폴리의 한 광장에서 있었던 파리넬리와 트럼펫 주자 간의 대결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트럼펫 연주 솜씨를 자랑하며 어느 누구도 자기를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고 으스대는 트럼펫 주자 앞에 갑자기 나타난 파리넬리. 그는 트럼펫을 압도하는 정확하고 화려하고 정교한 소리로 트럼펫 주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다. 갑자기 나타난 복병에 트럼펫 주자가 당황하고 있는 동안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일제히 ‘파리넬리’를 연호하며 그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낸다.

이런 파리넬리를 형 리카르도가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형 리카르도는 작곡가인데, 두 형제는 일종의 공생관계로 형이 노래를 만들면 동생이 그것을 부른다. 동생은 자신의 목소리에 맞는 노래를 얻을 수 있어서 좋고, 형은 동생의 인기를 업고 자신의 작품을 널리 알릴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이들 형제는 무엇이든 함께 나눈다. 음악은 물론 여자까지도.

파리넬리는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전역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는 국제적인 가수였다. 당시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영화에서 파리넬리가 형 리카르도가 작곡한 오페라 [이다스페(Idaspe)] 중에 나오는 아리아 [행복의 그늘가에서(Ombra fedele anchio)]를 부르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때 파리넬리는 무대 저 위에서 그리스 신화에나 나올 법한 화려한 하늘 마차를 타고 노래를 부르며 무대 중앙으로 내려온다. 그 모습이 마치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뮤즈 신과도 같다. 머리에 색색의 깃털을 달고 화려한 의상을 입은 파리넬리가 노래를 부르며 등장하자 객석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18세기 당시 큰 인기를 누렸던 이탈리아 오페라 가수, 파리넬리.

행복의 그늘 가에서
사랑하는 그대와 축배를 드노라
행복의 그늘 가에서
우리 사랑 너무도 아름답게 빛나도다
행복의 그늘가에서
우리 사랑 영원하길 간절히 기원하며
환희에 젖노라

간주가 나가는 동안 파리넬리는 걸치고 있던 스카프를 관중석을 향해 던진다. 그러자 관중석에서 다시 환호가 터져 나오고, 한 귀부인이 그가 던진 스카프를 황홀하게 받아안는다. 무대에서 파리넬리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기교를 선보인다. 빠르고 화려한 멜로디를 정확하고 섬세하게 구사하고, 클라이맥스에서 높은 음을 오랫동안 길게 끌어 관객들을 숨 막히게 한다. 객석 여기저기에서 감탄의 소리가 터져 나오고 급기야는 귀부인 두 사람이 그 자리에서 기절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한 귀부인은 두 눈 가득 눈물을 머금고 목에 걸고 있던 값비싼 목걸이를 풀어 파리넬리에게 바친다. 그러면서 그녀는 파리넬리에게 말한다. 당신은 나에게 음악적 오르가슴을 느끼게 해 준 최초의 남자라고.

그런데 바로 이 무렵 영국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활동하고 있던 당대의 대작곡가 헨델이 파리넬리를 찾아온다. 헨델은 파리넬리에게 자기 극단으로 올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형 리카르도를 배반할 수 없는 그는 헨델의 얼굴에 침까지 뱉어가며 이 제안을 거절한다. 그리고 1734년, 헨델과 라이벌 관계에 있던 스승 포르포라를 돕기 위해 런던으로 건너간다.

파리넬리는 자기 극단으로 오라는 헨델의 제안을 거절한다.

파리넬리의 출현으로 파산 직전에 있던 포르포라의 귀족 극단은 기사회생의 길을 걷는다. 파리넬리의 명성을 듣고 극장을 찾은 수많은 관중들을 보면서 포르포라는 환성을 지른다. 관객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무대에 등장한 파리넬리는 [나는 파도를 가르는 배(Son qual nave ch'agitata)]라는 노래를 부른다. 이 곡은 핫세가 작곡한 오페라 [아르타세르세(Artaserse)] 중에 나오는 아리아를 형 리카르도가 파리넬리의 목소리에 맞게 편곡한 것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경쾌하고 빠른 멜로디를 화려하게 펼쳐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험난한 인생의 바다를 거침없이 헤쳐 나가는 배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움직이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는 무대장치가 인상적이다.

나는 배
요동치는 바다의 파도를 가르는 배
요동치는 바다에 물보라를 남기며
거친 바다를 헤치며
인생의 파도를 가르며 가는 배
어둠 속에 떨면서
노도처럼 밀려오는 파도를 헤치며
험하고 높은 파도를 헤치고 또 헤치며
그렇게 가고 있는
나는 배

영화에서 [나는 파도를 가르는 배] 노래를 부르는 파리넬리

파리넬리의 런던 데뷔 무대는 크게 성공을 거둔다. 더불어 그가 소속되어 있는 귀족 극단이 라이벌 관계에 있는 헨델의 극단을 앞서게 된다. 헨델은 영국 왕실의 비호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관객들을 끌어모으는데 실패하고, 심지어는 단골 관객들을 파리넬리가 소속되어 있는 포르포라의 극단에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파리넬리 때문에 헨델은 결국 오페라 작곡을 포기하고, 오라토리오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파리넬리가 헨델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포르포라의 귀족 극단 소속이었기 때문에 생전에 파리넬리는 헨델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파리넬리가 헨델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나온다. 그는 처음에는 형과의 의리 때문에 자기 편으로 오라는 헨델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진정한 예술은 없고,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쓸데없이 기교만 잔뜩 부리는 형의 음악에 염증을 느낀다. 그래서 어느 날, 형의 음악을 쓰레기라고 비판하며, 그동안 공생관계에 있던 형과의 결별을 선언한다.

파리넬리의 실제 초상화. 1750년경

헨델의 음악에서 진정한 예술을 발견한 파리넬리는 헨델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귀족 극단 무대에서 헨델의 아리아를 부르는 치기를 보인다. 이런 파리넬리의 무모함에 관객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낸다. 하지만 노래가 계속되면서 웅성거리던 관객들이 하나 둘씩 노래를 경청하기 시작한다. 이때 파리넬리가 부른 노래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중에 나오는 [사랑하는 나의 신부여(Cara sposa)]라는 아리아이다. 오페라 [리날도]는 파리넬리가 카스트라토로 활동하기 훨씬 전인 1711년에 작곡된 것으로 런던에서 초연되어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초연 이후 15일 동안 공연되었고, 헨델이 살아있는 동안 모두 53번이나 공연되었던 헨델의 대표적인 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나의 신부여]는 오페라의 주인공인 십자군의 전사 리날도가 예루살렘의 왕 아르간테에게 잡혀간 연인 알미레나를 그리워하면서 부르는 일종의 비가이다. 헨델의 아리아 중에서도 특히 그 멜로디가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전주에서부터 바로크 오페라 특유의 격조 높은 슬픔이 느껴진다.

사랑하는 나의 신부여
나의 연인이여
당신은 어디에 있소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거요
슬픔과 고통의 기다림에 지쳐
나는 밤하늘의 별이 되었소
돌아와 주오
부디 돌아와 주오
내가 이렇게 울고 있지 않소

영화에서 파리넬리는 손등에 하얀 비둘기를 얹어 놓고 이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는 그의 뒤편으로 커다란 공작새의 모형이 보인다. 공작새가 계속 꽁지의 날개를 펼쳐가고 있다. “사랑하는 나의 신부여. 대체 어디 있는 거요. 부디 내게 돌아와 주오.” 파리넬리는 이렇게 노래하면서 하얀 비둘기를 객석으로 날려 보낸다. 노래가 끝나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온다. 처음에 헨델의 음악에 반감을 가졌던 관객들이 완전히 헨델의 열혈팬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런 다음, 그 유명한 아리아 [나를 울게 내버려 두오]가 나온다. 헨델의 오페라 아리아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 노래는 오페라 [리날도]에서 아르간테에게 잡혀간 리날도의 연인 알미레나가 탄식 속에서 부르는 것이다.

나를 가혹한 운명 속에
그냥 울게 내버려 두오
그리고 자유를 갈망하며
탄식하게 해주오
숙명은 나의 영혼을
영원한 고통 속에 울게 하지만
사랑하는 이여
나를 내버려 두오
이 고통으로
내 형벌의 사슬을 끊게 하고
오직 자비로서
번뇌와 슬픔이 사라지게 해주오
 이미지 1

파리넬리는 런던에 3년 동안 머물렀다. 중간에 파리에서 잠깐 공연을 가진 적이 있지만 1736년과 37년 시즌에 참가하기 위해 다시 런던의 귀족 극단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바로 이 시즌의 공연이 그가 대중 앞에서 한 마지막 공연이었다. 1737년 5월과 6월 건강상의 이유로 몇 차례 공연을 취소한 파리넬리는 그 후 조용히 런던을 떠나 스승 포르포라와 함께 스페인으로 갔다.

그리고 스페인 왕 필립 5세의 궁전에 들어가 왕실 전속 가수로 그로부터 약 20년간 오로지 왕을 위해서만 노래했다고 한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왕은 그의 노래를 자장가 삼아 잠자리에 들곤 했는데, 말하자면 왕에게 있어 파리넬리의 노래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일종의 안정제와 같은 것이었다. 왕은 노래를 [폴리페모(Polifemo)] 중에 나오는 아리아 [높으신 조베여(Alto Giove)]를 부른다.

높으신 조베여
자비와 영광으로
불멸의 생명을 내려주소서
당신의 위대한 사랑이
나의 영원한 평안이 되게 하소서
높으신 조베여
당신의 자비와 당신의 영광으로
나의 지친 영혼이 안식을 얻게 하소서
오직 당신을 받드는 자만이
위대하고 존엄한 생명을 깨닫게 하소서

파리넬리의 노래와 함께 태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의 노래가 마치 오르페오의 피리 소리처럼 신비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느끼게 하는 순간이다.

생전에 파리넬리는 헨델의 오페라를 부른 적이 없지만 만약 이 영화가 사실에 충실한 나머지 오로지 포르포라와 브로스키의 노래로만 음악을 채웠다면 어땠을까. 그들의 어떤 음악도 헨델의 [나를 울게 내버려 두오] 만큼의 감동을 주지는 못 했을 것이다. 실제의 파리넬리는 오페라 작곡가로서 헨델의 상상력을 고갈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영화 속의 파리넬리는 헨델의 주옥같은 아리아로 그 음악의 위대함을 오늘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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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정보

발행일

발행일 : 2013. 12. 16.

출처

제공처 정보

  • 진회숙 출판편집인,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네이버 미술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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