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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등대
solo**** 조회수 12,788 작성일2003.04.08
최초의 등대는 어디에서 만들어졌나요?
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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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등대는?

 

등대의 효시는 지중해 알렉산드리아항의 팔로스섬에 세워졌던 것으로 기원전 280년경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먼 옛날부터 ‘봉화’라고 해서 산과 섬의 정상에서 불을 밝혀 뱃길을 도왔다. 근대식 등대로는 인천 팔미도등대가 최초로 1903년 6월에 세워졌다.

 

- 보 충 자 료 -

 

알렉산드리아 - 파로스(Pharos) 등대

BC 250년 무렵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에 의해 알렉산드리아항구 부근의 작은섬 파로스에 세워진 등대로,

높이 솟아 있는 석조건조물의 정상부분에 불을 태우는 장치가 있으며, 렌즈나 거울이 쓰였다고도 한다.

 

1994년 가을에 프랑스 해저 고고학 발굴팀이 깊이 7m 정도의 바다 속에서 등대의 잔해 수백점을 건지는데 성공을 하였다. 이로써 오랫동안 수수께끼에 싸여 있던 파로스 등대의 신비가 조금이나나 벗겨졌다. 발굴팀은 화강암으로 된 높이 4.55m, 무게 12톤의 여신상을 기중기로 끌어 올리는데 성공하였다. 발굴팀은 아직도 바다 속에 스핑크스와 오벨리스크 등이 잠겨져 있어 그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고 밝혔다. 여기에서 발굴된 잔해 또는 조형물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가 새겨져 있어서 사람들은 파로스 등대의 비밀이 밝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는 파로스 섬과 헵타스타디온이라고 불리던 1㎞정도의 제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곳의 동쪽 끝에 세계의 모든 등대의 원조격인 파로스 등대가 서 있었다. 대부분이 대리석 돌로된 등대의 높이가 135m로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명령으로 소스트라투스가 만들었다. 등대는 3개의 층계로 만들어졌다. 맨 아래층이 4각형, 가운데층이 8각형, 꼭대기 층은 원통형이었다. 각 층은 모두 약간 안쪽으로 기울게 지어졌다(기울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음). 등대 안쪽에는 나선형의 길이 있어서 등대 꼭대기의 옥탑까지 이어져 있었다. 옥탑 위에는 거대한 동상(여신상)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아마도 알렉산드 대왕이나 태양신 헬리오스의 모양을 본떴을 것으로 여기지고 있다.

 

등대 꼭대기의 전망대에서는 수십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고 또 먼 본토까지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7c이후 이집트를 정복했던 아랍인들에 따르면 램프 뒤쪽의 반사경으로 비치는 타오르는 불길은 43㎞정도 떨어진 바다에서도 볼 수 있었고, 맑은 날에는 콘스탄티노플까지도 반사경이 비쳤으며 또 햇빛을 반사시키면 160㎞ 정도 떨어져 있는 배도 태울 수 있었다고 한다.

 

B.C280년경에 만들어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떻게 등대에 불을 지폈을까? 아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파로스 등대는 상당히 오랜 기간 존속하면서 등대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단단한 돌로된 등대가 무너진 것은 12c경으로 짐작하고 있다. 아마도 1100년과 1307년의 두차례의 큰 지진으로 그 모습을 감추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잊혀져 있다가 20세기 초반 독일의 고고학자들이 등대의 흔적을 발견함으로써 그 모습을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이 등대에 대해서는 많은 전설이 존재하고 있다. 기원후 7세기에 이집트를 정복한 아라비아인들은 이 등대에 달린 거울로 빛을 한 방향으로 모으면 해상의 배를 태울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었다고 말을 전한다.

 

이 거대한 건축물이 파괴된 이야기도 대단히 신기하다. 등대가 파괴될 당시에 이것이 있던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와 같이 아라비아인에 의해 정복되어 있었는데 그 적대국으로는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한 비잔틴 제국이었다. 이 제국의 황제는 간계에 대단히 능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황제는 칼리프(회교의 교권과 왕권을 통합한 지위) 알와리드의 궁정에 비밀 지령을 내린 사자를 보냈다. 황제의 사자는 칼리프의 궁전에 도착하자마자 앞잡이들을 풀어 등대밑에는 이집트국왕이 지녔던 금은 보화가 가득하다고 거짓 소문울 내게 했다. 이 소문을 들은 이집트 고관들은 이 사실을 칼리프에게 알렸고 칼리프는 망설이다가 등대의 철거 명령을 내렸다. 등대의 철거가 한창 진행되어 거의 반을 허물었을 때 칼리프는 자신이 어리석음을 깨닫고 중지 명령을 내렸으나 때는 늦었다. 복구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작업이었다. 왜냐하면 이 등대를 건축할 수 있는 건축술이 당시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거대한 구면 거울도 파괴되어 산산히 파괴되어 버리고 말았다.

 

반쯤 남은 등대도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해 알렉산드리아에는 배의 길잡이가 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다.

이 등대는 14세기까지 반 정도 부서진 상태로 계속 서 있다가 대지진으로 완파되었다. 그후 여러번 등대를 재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이를 축조할 기술이 없었다. 이 기술이 가능한 때는 20세기 들어와 강철 구조의 사용 등 건축술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서야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대인들에게는 가능한 건축술이 그 후손들에게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은 묘한 느낌을 준다. 왜냐하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역사가 발전한다는 발전사관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증거들을 살펴보면 고대인들이 우수한 과학 기술 문명을 보여주고 있는 예는 상당히 많다. 예컨데 이집트나 마야의 피라미드가 그러한 경우이다. 이것은 고대의 문명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잃어버린 과거, 밝혀야할 역사가 상당히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퇴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게놈 프로젝트가 거의 완료됨으로 인해 만들어질 유전자 지도에서 유추해보건데...

태초의 인간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을까...

 

도움받은 곳

[세계의 마지막 불가사의] / 리더스 다이제스트 / 동아출판사 / 1993

[수수께께의 고대문명] / 김진영,김진경 / 넥서스 / 1997

[미스테리 세계사 1,2] / 프랜시스 히칭, 김향 / 가람기획 /1996

월간 [페이퍼] 1999. 8월호

브래태니커 백과사전

야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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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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