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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과 김정은 그리고 운동화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젊은 사람들과 대화중 ‘옛날에 우리는~’이라고 하면 금방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도 9·19 평양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옛날 얘기’ 한번 해보려고 한다. 60년대 말 운동화 한 켤레는 우리 세대에게도 작은 사치였다. 삼형제 중 막내였던 난 형들에 비해 고무신을 신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 전주 오목대에서 삼형제가 찍은 사진에 큰 형과 난 고무신인데 둘째형만 낡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언젠가 부모님께 ‘왜 둘째형만 운동화 사주고 저는 고무신 신겨주셨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그 운동화는 큰형이 신던 것을 물려 준 것이고 한 번도 둘째에게는 새신을 신겨 본 적이 없다. 큰형은 장남이라고, 넌 막내라고 항상 새 운동화, 새 교복만 사줬다.” 언젠가 추석 명절에 그 얘기가 나왔을 때 둘째 형은 “나도 새 운동화를 한번만이라도 가져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차마 속내를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같은 형제간이라도 형편에 따라 입고 신는 것이 이렇게 다르다. 하물며 한민족인 남북한의 지금 처지가 크게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보면 마치 이제는 잘 살게 된 형이 어릴 적 가정 형편 때문에 마음에 독기와 상처만 받고 자란 동생을 오랜만에 만나 달래고 치유해 가는 과정을 보는 듯하다.

2000년대 초 평양에 남북고위급 경제회담을 취재하러 간적이 있다. 당시 북한 시골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이 발생하고 생활고로 탈북이 줄을 이을 때였다. 어스름한 저녁에 평양 순안공항에 내려 고려호텔로 가는 동안 사방이 어두컴컴해 도로 양측에 건물이 전혀 없는 줄 알았다. 나중에 낮에 돌아올 때 보니 전기사정으로 아파트들이 불을 켜지 못한 것이었다. ‘고난의 행군’속에서도 유독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평양 거리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아이들은 남한의 또래아이들에 비해 체격이 무척 왜소했다. 그 무리 속에서 내 눈길을 끈 것은 당시 유행하던 만화캐릭터가 붙어 있는 새 운동화였다. 나중에 북측에서 나온 관계자와 밤늦게 술한잔 기울이며 낮에 본 운동화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내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 민족은 원래 자식사랑이 유별나지 않습네까? 부모가 아무리 배곯아도 자식에게 좋은 것 입히고 먹이고 싶은 마음은 북남이 다 똑같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남북 경제회담은 북측이 경제적 지원을 받는 회담이라고는 해도 자격지심이 큰 그들이 순순히 어려운 사정을 인정하는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한편으로는 자식들을 걱정하는 그 마음을 엿보며 가슴이 아렸던 기억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시 햇볕정책에 따른 경제지원을 ‘퍼주기’고 결국 식량이 아이들보다는 군대에 들어간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 북측 관계자의 말이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정말 그럴까?’ 하는 마음이다. 우리 속담에 ‘곳간에서 인심난다’라는 말이 있다. ‘사흘 굶으면 아무리 선비라도 담 넘지 않을 사람이 없다’라는 속담도 있다. 성장기에 충분한 영양공급을 받지 못하고 자란 북측 아이들은 남측 아이들에 비해 체격이 왜소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제 때 배불리 먹지 못한 어릴 적 상처는 커서도 결국 강퍅한 마음만 들게 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마침 19일,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한 평양공동선언이 발표됐다. 연내에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도 답방하다는 희망적 소식도 나왔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김 위원장이 김일성과 김정일이 생전에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34대 전주 김씨(全州金氏) 시조인 태서(台瑞)묘가 있는 전주 모악산에 와서 성묘도 하고 전주 한옥에서 하룻밤 묵으며 가면 어떨까 하는 발칙한 상상도 해보게 된다. 그리고 이번 추석에는 형에게 새 운동화 하나 사서 선물해 드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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