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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천주교 갈등중.. 가장 큰 갈등은 교황이 적그리스도이냐 아니면 가톨릭 전체가 바벨론의 음녀인가..?궁금합니다 이때문에 입교를 망설이고 있네요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1,369 작성일2018.10.13
지금 제가 개신교인데.. 천주교에 입교하고 싶은데 연옥교리를 처음들었을때 연옥이 있을꺼라고 생각햇거든요.. 왜냐면 예수님을 믿어도 죽기전에 거짓말같은 죄를 한번 실수로 저지르고 회개를 못하고 죽고나면 지옥간다는것이 좀 그랬는데.. 연옥이란 말을 들으니깐 그럴듯 하더라고요.. 근데 여쭤볼게 있습니다.. 마카베오기? 그 구약성서는 루터가 종교개혁?분열?하면서 안들고 나온건가요.. 아니면 가톨릭이 차별화를 두기위해 연옥이라는 교리를 마카베오기 등에 내용에 집어 넣은건가요.. 왜 개신교는 구약 성서 7권이 더 없나요.. 정말 궁금합니다.. 또 처음에는 교황님?분?(호칭을 모르겠네요..ㅎㅎ)이 적그리스도라고 했던 글을 봣는데 천주교 제사 내용을 찾아보다가 교황(가톨릭 전체)가 계시록(묵시록)에 나오는 바벨론의음녀라는 글도 보았는데 교황이 적그리스도나 사탄숭배자면 구마사제들이 귀신을 어떻게 쫓아내는걸까요.. 또 만약 가톨릭 전체가 묵시록(계시록)에 나오는대로 바벨론의 음녀라면 666짐승위에 타있다가 버려진다고 했는데 그럼 이들은 구원이 없는건가요..? 제가 성경같은걸 본건 아니라 인터넷 글들만 봐서..ㅠㅠ 성경은 봐도봐도 이해가 잘 안가더라고요.. 그리고 성시간? 성체 들어가는게 태양신 숭배라는거도 봤는데.. 이는 어떻게 되는건가요.. 성체가 태양신 숭배라는거도 있고 성시간에 있는 태양처럼 생긴 무늬가 태양신 숭배라는 말도 있더라구요.. 어떤게 맞는건가요..?그리고 천주교에서 제사가 조상을 숭배하는게 아니기때문에 신주? 그런 것들은 없애고 십자가를 갖다논다고 했는데.. 이렇게 하면 제사가 상관이 없는것인가요..?(큰절을 바쳐도..?)) 천주교 예비신자교리까지 주변 성당에서 알아보고 있는데 위에 내용등으로 굉장히 갈등이 있네요.. 두서가 없는 내용이긴 하지만 상세히 알려주세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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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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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은하신 열심답변자
교통, 길찾기, 개신교 55위, 한국사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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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초대교회가 유대교와 차별을 위해 히브리어 사본이 없는 7권을 정경으로 인정하는 겁니다.
유다인들이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이 7권을 부정하면서, 예수님 그림에다 침을 뱉고 그런짓을 했고요.
그걸 루터가 히브리어 성경이 없다는 이유로 뺏는데, 봐도 상관없다며 부록에다가 실어놨습니다.
근데 우리나라는 장로회가 대세다 보니 이게 위경으로 굳어져 버린겁니다.
그리고 위 7권이 있어야 구약과 신약이 자연스래 이어집니다.
그리고 연옥이라 하는 곳을 질문자님께서 잘못 생각하시는데, 천국,지옥의 중간이 아닙니다.
연옥은 사심판에서 천국으로 들어가기로 이미 정해진 사람들 중에서 잠벌을 정화하기 위해 불로써 단련받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성체 태양신론이나, 바빌론 666음모설은 둘다 사이비가 제작한 겁니다.
이 둘은 사이비 하나님의 교회가 제작한 겁니다. 안증회 하나님의 교회는 소설 엄청나게 잘 만듭니다.
안증회 지들끼리 성당 화장실가지고 소설만들고 그런 짓 벌이는 대표적인 사기단체입니다.
그러니 주의하시고요.
가톨릭에서 성체를 들어올리는 것은 신자들에게 잘 보여주게 하는 것이고,
성체 집는 모습을 자세히 보세요. 엄지와 검지로 잡고 있습니다. 이게 태양신 표시와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고 사이비 하나님의 교회 지들 모순 엄청납니다.
십자가를 우상숭배라면서 지들은 안상홍과 장길자를 우상숭배하고
성체를 태양신이라며 우상숭배한다면서 지들은 빵과 포도주를 안상홍의 몸과 피라며 먹고 마시고
이런 모순이 수천가지 있는데가 사이비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교황의 직함 "하느님의 아들의 대리자"라서 그 수를 더하면 666이 되어서 적그리스도라는 주장은
안식일재림예수교가 제작했다 포기한 주장입니다.
교황님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공식직함으로 썼습니다.

201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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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lfl****
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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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받은 천주교 신자가 답변드립니다.
차근차근 말씀드리건데 지금 알고계신 내용 대부분이 잘못된 지식으로, 개신교계열에서 천주교를 비난하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입니다. 설명드리죠.
1.개신교에서 성서를 제외시킨겁니다.
개신교는 천주교에서 빠져나오면서 구약성서의 몇 권을 제외시켰습니다. 사실 사도행전 또한 제외하려 했으나 최종적으로는 그러지 않았죠. 천주교는 성서가 완성된 이후로 성서를 바꾼 적이 없습니다.
2. 교황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입니다.
천주교는 예수님의 제자인 12사도에서 시작되어 2000년의 역사를 가집니다. 그리고 그들의 후계자가 지금의 '대주교'입니다. 교황의 정식적인 명칭은 '로마의 대주교'로 대주교들의 대표입니다. 교황은 적그리스도나 사탄의 시종같은 게 아닌 천주교도와 사제들이 현실적으로 본받을 모범 또는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에 가깝습니다.
3. 천주교 또한 구원이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구원의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봅니다. 설령 지옥에 있다한들 예수님께서는 그들조차 구원받길 바라시기에, 무한히 회개하고 진정 죄를 뉘우친다면 그들조차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4. 성체는 예수님의 만찬식에서 시작했습니다.
성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빵을 나누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빵이 바로 '성체'입니다. 왜 성체냐 하면 예수님께서 빵을 나누어주면서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5.성시간은 성서에서 말씀하셨듯 예수님이 바라시기에 행하는 겁니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당하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와서 '내 마음이 괴롭다. 나와 함께 깨어있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시간은 바로 여기서 유래합니다. 수난을 당하시기 전날 밤에 모여 함께 기도하며 예수님을 기립니다.
6.제사는 신주와 같은 우상숭배의 요소만 없으면 허락합니다.
제사가 우상숭배인 이유는 '신주에 영혼이 있다, 그것들을 섬긴다.'라는 전통사상때문이었습니다. 신주가 없다면 '부모님과 조상을 기념하는 의식'을 막을 이유가 없습니다. 영혼이 와서 뭘 주워먹느니, 영혼과 직접 만나는게 아니라 그저 그들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거니까요. 

인터넷에는 잘못된 정보가 많습니다. 곧이곧대로 들으면 좋지 않은 것들이죠. 가까운 성당의 신부님 또는 수녀님에게 가서 직접 질문해보고 상담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천주교는 어느 성당을 가든 상관없으니, 혹시 탐탁치않으시면 지인이 없는, 약간 거리가 있는 성당을 가셔도 좋습니다.

201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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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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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n****
달신
가톨릭 7위, 이슬람교 10위, 종교 41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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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가톨릭에 대해서 의심스러워 하신 모든 내용들이 인터넷에서 정체없이 돌아다니는 음해성 내용들이라는 겁니다. 한 마디로 거짓말이라는 것이죠.

첫번째, 성경 권수에 대한 것을 보겠습니다. 아직 신약성경이 확립되기 전,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구약성경이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인이 아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으로 사용했던 성경은 그리스어 성경으로서 '70인역 성경'이라고 불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70인역 성경은 기원전 4세기 무렵에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디아스포라 그룹에 의해 히브리어 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된 것인데 이때 당시까지 그리스어로만 전해져 오던 일부 성경이 포함되었습니다. 이 부분이 바로 제2경전(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부름)입니다. 이후 그리스도인들도 다 제2경전(마카베오기 등이 포함된)이 들어있는 70인역 성경을 봉독했고 390년 무렵 카르타고에서 종교회의가 열려 그리스도교 성경의 정경목록이 확정될 때에도 그대로 구약의 목록 46권에 반영되었습니다. 그리고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그 구약목록을 지금까지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16세기 들어서 루터가 가톨릭에 반항하며 떨어져 나갈 때, 명목상으로는 구약의 언어가 히브리어이므로 히브리어 원전이 없는(당시까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제2경전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그동안까지 잘 쓰고 있던 제2경전 부분을 외경이라고 치부하고 제거함으로써 지금의 개신교 구약 39권이 정해지게 됩니다. 문제는 이와 동일한 논리가 90년 팔레스티나의 얌니아에서도 있었다는 겁니다. 기원 후 90년 얌니아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유대교 회중에 섞여 있는 '그리스도인들(당시 유대교에서는 '길을 벗어난 이들')'을 솎아내야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러기 위해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구분해 줄 기준이 필요했고 이 기준으로 히브리어만으로 쓰인 경전을 들고 나온 거죠. 그리고 그것은 효과적이었습니다. 진영이 분명히 구분되면 그때부터 박해는 쉬워집니다.

둘째, 연옥에 대해서: 흔히들 연옥에 대한 것을 이야기할 때에는 마카베오기 하권(2마카 12,42-45)의 말씀을 많이 이용합니다. 그렇지만 그 말씀이 아니더라도 성경에는 연옥을 암시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 12,32 "...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와 같은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연옥교리는 가톨릭에서 좀 더 확실한 형태를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 정교회의 경우에는 가톨릭 교회처럼 확고한 연옥교리는 없습니다만 천국에 들기 전에 잠시 죄를 정화하는 기간을 거친다고 하여 그 개념에 있어서는 연옥과 동일한 것을 가르친다고 알고 있습니다.

세번째 요한의 묵시록에 나오는 '대탕녀' 바빌론은 당시의 제국 수도 '로마'를 의미하는 것이지 가톨릭 교회의 교황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묵시록이 쓰일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교황제가 확립되기도 전의 일이고 오히려 로마의 주교로서 순교를 각오해야 하던 시기였습니다. 설사 백 보 양보해서 수 천 년 뒤의 일에 대한 예언이라고 받아들인다쳐도 만일 교황을 바빌론이라고 하면 묵시록의 나머지 부분들을 어떻게 해석할 생각인지 오히려 심히 궁금해지네요. 성경해석의 일관성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제대로 해석하기 어려울 겁니다.

네번째, 성시간에 사용되는 성광을 얘기하셔는데 맞습니다. 태양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죠. 그렇지만 성광이 상징하고자 하는 바는 태양이라기보다 "빛"입니다. 빛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형상을 나타내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빛을 그려보라고 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비슷하게 원을 중심으로 하고 거기서 바깥쪽으로 선들을 그어놓은 그런 모양으로 그릴 겁니다. 그렇게 그려놓으면 태양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보이기 십상이죠. 아무튼 성광은 예수님이라는, 세상에 오신 "빛"을 상징하는 것이지 태양을 숭배하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냥 가톨릭을 음해하기 위해 반대자들이 가져다 붙인 겁니다. 일종의 음모입니다.

다섯번째. 조상제사에 대한 것인데, 현재 가톨릭교회는 한국의 조상제례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4계명의 확장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고 보고 미신적 요소를 제외하면 제사를 드려도 관계없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제례를 권장하는 것은 아니고 더우기 정통 유교식 제사는 여전히 금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조상들에 대한 공경의 예를 행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숭배로 비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따라서 혼령을 부른다는 의미로 행하는 축문 등은 당연히 금지됩니다.

201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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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m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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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말하는 지옥이란 영원히 흙에 갇힌다,  즉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영원히 지옥에 갇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사람을 불로 튀기는 지옥이 있고 거기에 갔다 왔다는 주장은 하나님이 악을 행하시는 분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영(마음)이 살지 못한 사람은 흙의 상태와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영이 살지 못하고 죽으면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흙으로 만들어 진 인생이 영이 "거듭" 나지 못했는데 육신이 죽으면 본래 모습인 흙으로 돌아가고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악을 행하시는 분으로 거짓 증거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귀신들린 자, 사단의 종이 된 자가 하나님을 악을 행하시는 분이라고 말하며 인생들을 시험에 빠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악을 행한 자는 자신의 악함으로 스스로를 멸하는, 자멸을 하는 것이지 그 이상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을 불로 튀기는 지옥의 개념을 만들어 낸 것은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런 곳을 만들어 낸 인생들이 사는 세상이 곧 지옥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하신 대로 그저 흙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 놓으시고 하나님의 말을 잘 들으면 죽어서 천국에, 안 들으면 지옥에 보내시는 분이라고 배워 알고 계셨습니다.
 
매너가 아주 좋은 어떤 남자가 집을 한 층에 두 채를 가지고 있는데 당신을 그 둘 중에 한 채로 들여보냈습니다. 들어가 보니 거기는 하얀 레이스 장식이 된 침대와 온갖 아름다운 색들로 치장된 집이었습니다. 먹을 것도 많고 장난감도 많아 나가고 싶지 않은 집이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거워하며 지냈습니다.
 
그 방에서 지내던 어느 날, 가끔 주인 남자가 앞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앞집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앞집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 집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묶여 있었고 그들을 고문하는 사람들과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그 집 주인은 두 얼굴을 가진, ‘신사복을 입은 뱀’ 으로 불리는 ‘사이코패스’ 였던 것입니다. 사이코패스의 정신병질을 사이코 패시(psychopathy)라고 합니다.
 
당신이 작위적으로 만들어 믿던 하나님이 사이코 패시를 가진 사이코패스는 아니었을까요?
 
사람도 그런 사람을 보면 소름이 돋아 그 집에서 도망을 나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당신의 형제와 친구와 부모와 사랑하는 이들이 당신이 살고 있는 좋은 집 맞은편 집에 갇혀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당신은 죽기 전에, 천국에 가기 전에 당신도, 또 당신의 사랑하는 이들도 천국을 갈지 지옥을 갈지는 모른다고 배웠습니다. 아무런 증명 자료도 없는 자들이 ‘예천 불지’ 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근거 없는 공갈이며 협박입니다. 그 근거 없는 사이코적 공갈을 듣고 두려움을 느껴 모인 자들에게 돈을 요구하여 받아 내는 것은 명백한 ‘사기’ 인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이 사냥꾼의 올무에 잡혀 있던 새같이 도망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당신은 "도망하라" 해야 도망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이 사실을 안 당신은 저절로 도망하고 싶어집니다. 만일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도망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이코패스일 것입니다.

천국도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성경은 죽어서 가는 곳으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살아서 인식되는 것입니다.

천국이란 상대적 사고를 하는 인생이 세상에서 성령의 법으로 치리되는 영적인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천(天: 하늘)이란 하나님의 법을 뜻하는 용어이고 국((國: 나라)은 하나님의 나라를 뜻합니다.


‘나라’ 라고 한다면 그 안에는 다스리는 법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스림을 받는 상태라면 국민들이 아직은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불완전한 상태라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하여 길을 가는 것이고, 우리가 영이 살아 땅에서 살다가 육이 죽으면 아버지의 아들로 아버지께 가는 것인데, 그때에도 만일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인생의 입장과 동일하다면 그것이 어찌 하나님의 아들일 수 있겠는지요.


게다가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는 상태라면 상대적인 사고를 하고 살아가는 인생의 삶과 다른 것이 전혀 없는데, 그것이 어찌 아버지의 앞이 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천국이란 하나님의 의를 따라 가서 의인이 되어 하나님의 법에 다스림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영적인 조직체, 하나님이 모으신 ‘우리’ 가 일꾼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소속이 되는 무리를 뜻합니다.


그리고 그 무리 안에서 하는 일은 자기 일을 온전히 쉬고 하나님의 일만을 하는 상태를 말하며, 그것이 곧 ‘다시 나감이 없는 하나님의 안식’ 에 든 상태가 됩니다.


그 상태는 이미 상대적인 사고를 하는 자기가 부인이 된 상태이므로 세상에서 인생들이 하는 높고 낮음에 대한 생각으로부터도 떠나게 될 뿐만 아니라, 다스림을 받는 상태가 아닌 오히려 하나님의 법을 관장하는 자가 되어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다음의 말씀처럼 되는 것입니다.


[시편 89편]

26 저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27 내가 또 저로 장자를 삼고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며

28 저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 영구히 지키고 저로 더불어 한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며

29 또 그 후손을 영구케 하여 그 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위 시편의 말씀처럼 땅에서부터 하늘의 날을 살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구히 지킨다.” 혹은 “영구케 한다.” 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렇게 영원은 땅에서부터 인지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땅에서 살게 되는 천국의 모습인 것입니다. 천국은 살아있는 상태에서 경험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말은 성경 안의 논리로 보았을 때에도 환각 상태나 꿈 등의 비이성적 상태에서 본다는 것이나 죽어서 볼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성이 없는 것은 죽기 위하여 난 짐승의 상태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인생은 ‘지각 있는 자’ 라고도 하셨습니다. 지각과 이성을 갖춘 상태에서 확인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시편 53편]

2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베드로후서 2장]

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이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지각과 이성이 있어야 볼 수 있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왕은 하나님이 되시고 인생이 그 백성이면, 이제 그 나라를 다스리는 법만 있으면 하나님의 나라는 구성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어야만 합니다. 인생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만들고 의지하는 우상으로서의 교단의 교회법이나 교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이 법으로 사용되는 곳이라면 그곳은 절대 하나님의 나라도 아니며 그곳에 거하는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도 설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법이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고,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 말하고 있는 성령의 법령이 있고, 그 법으로 다스려지는 곳이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전체 구조>

 

 

성경은 총 66권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인생들은 그 성경을 모세의 율법인 행위의 율법과 관련된 부분을 구약이라고 분류하고 있으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완성하신 성령의 법과 관련된 부분을 신약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분류 방법은 성경의 실제 내용과는 관계없는 인생들의 생각의 범위 안에서의 이해일 뿐이며 아울러 비진리적(非眞理的)인 이해인 것입니다.

 

인생이 성경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인생의 삶, 그리고 그 인생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유한’ 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살다 간 무수한 인생들이 혹은 이미 오랜 시간을 살아보고는 말하기를 “인생은 쏜살과 같이 빠르다.” 혹은 “인생의 날은 문틈으로 달리는 말의 갈퀴를 언뜻 본 듯하게 지나가는 것이다.” 하는 말들을 듣고, 헤아려보고 과연 그렇다고 동의를 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미 오늘도 무수한 사람들이 나고 또 흙으로 돌아가는 모양은 계속되고 있고,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이 분명합니다.

 

‘유한’ 한 것은 지금은 ‘실상’ 이며 ‘현실’ 로 인식이 되지만 그것의 ‘본질’ 은 ‘헛된 것’ 혹은 ‘허상’ 입니다. 비눗방울이 잠깐 모양을 갖추고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나 인생이 잠깐 육신을 입고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나 시간적 차이만 있을 뿐 공간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있다’ 가 내일 사라지는 것은 원래 없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나무나 풀은 오늘 있다가 사라져도 내일은 땅으로 인해 다시 솟아나므로, 내일 다시 나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으므로 오늘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을 보고 허무하다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 즉 ‘자기’ 가 느끼는 ‘자기의 존재’ 는 한번 사라지면 끝입니다.

 

그래서 한번 사라지면 끝나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만든 궁색한 이론이 ‘윤회’ 입니다. 물론 이것은 가설에서 출발하여 가설로 남아 있는 이론입니다. 그러나 이 윤회설은 논증할 수도 없고 논증될 수도 없는 무논리적(無論理的) 이론에 불과합니다.

 

이런 이론에 대하여 인생들은 ‘무지’ 를 동원하고는 그것을 ‘신앙’ 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나름 가치 있는 것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죽어서 가는 천국이나 지옥을 말하는 것과 불교인들이 윤회나 극락을 주장하는 것이 모두 이런 것들입니다.

 

인생이 ‘자기’ 를 인지하는 것조차도 세상에 낳아져서 ‘세상이 불러 주는’ 자기를 인식한 후에 자기를 자기로 인지할 수밖에 없는 마당에 오늘의 자기가 전생의 자기를 인지한다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이렇듯 인생들이 억지를 써가면서까지 종교를 찾고 신앙을 갖는 것은 자기 존재가 허무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종교 안에는 ‘영원한’, 즉 사라지지 않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반드시 허무로 끝나는 인생이 아닌 초월적 존재를 찾아 자기의 존재를 그 초월적 존재와 연결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곧 ‘신앙’ 의 시작인 것입니다.

 

인생이 종교를 선택하고, 그 안에서 경전에 대한 신앙을 품고, 그 안에서 발견해야 하는 것은 ‘영원’ 입니다. 그 영원을 가르치는 이치를 일컬어 ‘진리(眞理)’ 라고 합니다. 그래서 진리라는 말의 뜻은 ‘시공을 초월하여 항상 옳은 것’ 입니다.

 

사람이 ‘사실’ 로 인지하고 있는 시간이나, 시간으로 인해서 규정되는 연도 따위는 임의의 인간적 약속일 뿐 임시적인 것입니다. 숫자라는 개념도 그렇게 하기로 사람끼리 약속을 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물질로 구성되어 인간의 눈으로 인식 가능한 것들도 본래 그 나온 곳인 흙으로 돌아가기 이전에 잠시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 뿐이므로 진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오백 년이 지나서 사라지는 것이나, 5초 후에 사라지는 것이나 ‘비진리(非眞理)’ 이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므로 ‘진리’ 안에 계신 분입니다. 그리고 인생과 세상은 ‘유한’ 하므로 비진리이며, 진리적 관점에서 보자면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사라질, ‘이미 없는’ 허상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은 죽음을 보지 않는 진리적 존재, 즉 영원을 향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진리적 존재가 되기 위함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불완전한 언약인 구약이 있고, 완전한 언약인 신약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의 구원의 언약이 들어 있습니다. 성경은 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한권의 책입니다.

 

성경의 핵심은 성경책의 중앙쯤에 배치되어 있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에 들어 있고, 그 중에서도 솔로몬이 쓴 잠언과 전도서가 성경의 중심입니다.

 

구약, 신약이라는 말에서 하나님의 약속이란 구원에 대한 약속을 말하며, 그 구원의 약속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법’ 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의 언약’ 이라는 말에서 ‘구원’ 이란 진리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죽음’ 에서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순차적으로 언급되어 있는 구원의 법, 즉 아벨이 드린 제사법, 모세의 율법은 완전한 구원의 법인 성령의 법의 완성을 위하여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단계적 과정이지 구약과 신약을 나누는 경계로 작용될 수 없습니다. 구약은 이스라엘 사람에게, 신약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주신 법이라는 이해는 ‘오해’ 인 것입니다.

 

법의 변환 단계는 인생의 학문적 이론상으로 보자면 인간의 지적 발달의 상태에 따른 격에 맞는 수준의 변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어린 아이에게 맞는 수준의 법이 옳은 것이고, 어른에게는 어른에게 맞는 수준의 법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자동차가 없는 때에 자동차에 대한 법이 있을 수 없듯이 지적 발달이 안 된 상태의 사람에게는 아벨이 드렸던 제사법만 있으면 되었고, 또 모세가 살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모세 율법이 필요했던 것이며, 지적 능력의 발달에 따라 더 이상 행위의 율법으로는 마음을 속이는 인생의 머리를 제어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인생이 제어 불가능한 마음의 법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그저 인간적 사고 범위에 국한된 논리에 불과합니다.

 

성경 말씀 전체 안에서 아벨의 제사법 사건으로 교훈하시는 것은 처음 말씀을 대했을 때 ‘인생의 생각을 배제한 순종’ 입니다.

 

먼저, 구원의 방법으로써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이성적 사고를 통하여 말씀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그렇게 구원의 필요와 방법이 있음에 대하여 그 시발점을 보여 주시고, 길을 가겠느냐는 선택을 하게 하십니다.

 

그 다음에 나가야 하는 진도는 ‘말씀을 따름’ 인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람은 이미 배워 익숙해진 인간적인 방법이 있고,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법은 인간의 생각과는 반대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당연한 것은 하나님과 세상의 방향이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나면서부터 높음과 채움을 향해 살고, 하나님은 “그것이 너희에게 좋더냐? 아니지 않느냐?” 하시고 그 반대인 낮아짐과 비움의 길을 제시하신 것이 성경의 구원의 길입니다.

 

그렇다 보니 그 다음의 길을 감에 있어서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서로 방향을 달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의 방향에 대하여 가인의 생각, 인간적인 생각을 주장하려 하지 말고, 인간이 모르지만 일단 시발점이 맞으므로 그 다음의 과정에 대하여 무조건 따라 가라는 가르침이 가인과 아벨의 사건이 가르치는 교훈인 것입니다.

 

그렇게 첫 번째 율법을 따르는 과정에서 일단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지는 ‘에끌레시아’ 에 속해지는 일이 발생하며 ‘첫 번째 유월 곧 구원’ 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단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지고 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이전 단계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이 되어 그 나라의 법을 따르게 되는데, 이것이 행위의 율법인 모세의 율법이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모세 율법을 액면 그대로 보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용처럼 보이지만 방언, 즉 ‘발음은 같으나 뜻이 다른, 성경 전체에 공통으로 사용되는 의미의 용어’ 로 해석을 하여 읽으면 그것이 당대의 사람들을 가르치는 율법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율법임을 알 수가 있게 됩니다.

 

레위기 해제를 읽어 보시면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해석은 시공을 초월하여 이 땅에 인생이 살아 있는 한은 언제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리적 내용입니다.

 

그렇게 두 번째 율법을 배우고 깨달아 실천을 하는 과정에서 훈련되며, 하나님이 도구로 쓰실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훈련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분뇨로 여겨 만지기도 싫어하는 상태가 되면 그것이 곧 ‘두 번째 구원’ 을 받은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적용을 받게 되는 것이 마음의 율법인 성령의 법입니다.

 

이때부터는 ‘자기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자기’ 에 대한 씻음의 과정이 시작됩니다.

 

인생이 인지하는 자기는 사실 사단이 점령한 세상이 만든 것입니다. 그 자기 안에 어떤 선하지 못한 것이 있는지 스스로는 알 수 없습니다. 자기 눈의 들보, 자기는 결코 빼낼 수 없는 흠을 끄집어내 지우게 하시는 과정이 성령의 법으로 치리를 받는 과정입니다.

 

성령의 법인 잠언의 ‘잠’ 자는 바늘 잠(箴)입니다. 바늘로 찔러 상세하고 정확하게 교훈을 하시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바늘에 찔리므로 가르침마다 아픈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행위의 율법의 훈련을 지난 사람은 그 찔림에 대하여 흔들림 없이 혹은 설령 넘어진다 하여도 다시 일어나는 과정을 지나며 점진적으로 마음이 온전히 선을 향하고 악으로 향하지 않을 수 있는 상태로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하나님의 안식에 든 자는 자기 일을 쉰다.” 하신 것과 같이 온전히 자기의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만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시 나감이 없는 하나님의 안식’ 에 드는 ‘세 번째, 진정한 구원’ 을 맞이하게 되는 때인 것입니다.

 

이렇게 아벨의 제사법과 모세의 율법과 성령의 법은 구원을 위한 하나의 과정인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 이 과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세대가 전혀 모르게 되었던 것은 본래 없었다가 이제 나타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이후부터 있었으나 시대를 거듭하며 높아지고 채우려는 인간의 욕심에 무너진 자들이 성경의 말씀들을 2천년이라는 세월동안 가리고 덮으면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중략..




네이버 까페 "갈릴라이아"에 있는 글입니다. 누구나 읽고 이해하기 쉽게 성경 말씀을 풀어 설명해 놓은 성경 까페입니다. 님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201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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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지옥이요? 연옥?
지옥은 불타는 게헨나(쓰레기 소각장)를 말하는거고
무엇보다

창세기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전도서 9:10
네​가 해야 할 바​로서 네 손​이 찾아 낸 일​은 무엇​이든
네 힘​을 다하여 하여라. 네​가 들어갈 곳​인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스올은 무덤)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성경이 알려주네요.

의구심이 든다면 더 찾아보세요.
구글링을 해도 되고 교회, 기독교, 개신교 등..
또 각 종교마다 교파가 그렇게 많습니다.

성경 해석에 대해 주장이 분분한거죠.
성경은 어떻게 보면 그런것 같고 또
다르게 보면 그런것도 같습니다.

이렇게 종교마다 교파마다 의견이 많고
분분하다면 본인이 판단하셔야 겠죠?
가장 성경 말씀에 따라 행동하고 성경과
가장 일치하게 주장하는 종교 교파를 찾으세요.

사람이 많이 다니는 종교가 아니라
그 종교가 주장하는 교리에 대해 또한
그 교리가 어디에서부터 유래됐는지
교리는 타당한지 등등 분석해보셨으면 좋겠네요.
성경과 근접하는 교리라던지요.

아 그리고 제사는 성경말씀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제사가 어디서 유래됐는지 찾아보세요.
죽은 사람에게 절을 하는 행위 아닌가요?
성경에서는 땅에 있는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 어떠한 것에도 숭배행위를 하면 안된다고 나오는데
종교를 믿지 마세요. 성경을 믿어야죠.

201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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