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SF라지만 책 불사르는 세상은 끔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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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호의 음악세상
아무리 SF라지만 책 불사르는 세상은 끔찍
영화 ‘화씨 451’- 레드 제플린 ‘Stairway to heaven’-김기호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화씨 451은 책이 타는 온도
브래드버리 동명 소설 영화화
상상 속 미래는 펜.종이도 금지
  • 입력 : 2018. 10.18(목) 21:00
  • kjpark@jnilbo.com
2018년 리메이크된 영화 ‘화씨 451’ 포스터.
진(秦)의 31대 왕 영정은 전체주의적 법가(法家)사상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부국강병책을 추진하였다. 기원전 221년, 전국(戰國)시대를 마감하며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세운다. 그는 ‘삼황오제’에서 ‘황’과 ‘제’ 자를 따서 황제(皇帝), 거기다가 중국 최초의 황제라는 의미에서 ‘시황제(始皇帝)’라고 자칭했다.

진시황은 주(周)의 봉건제를 폐지하고 중앙집권적인 군현제를 채택한다. 8년여 후 전국의 유생들이 이에 반대하며 봉건제 부활을 주장했다. 시황제는 이를 조정의 공론에 붙이고, 군현제를 입안한 승상 이사(李斯)는 말한다.

“봉건시대에는 제후들 간에 전쟁이 끊이질 않아 천하가 어지러웠으나 이제는 통일이 되었고, 법령도 일괄적으로 한 곳에서 발령되어 사회의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옛 책을 배운 사람들 중에는 그것만을 옳다고 생각해 새로운 법령이나 정책에 대해서 비방하는 선비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의약, 점복, 종수(농업)에 관한 책과 진(秦)나라 역사서 외에는 모두 수거하여 불태워 없애 버리소서.”

진시황이 이를 받아들여 시행함으로써, 그 유명한 ‘분서(焚書)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1700여년 후 조선에서는 연산군이 아버지 성종의 뒤를 이어 임금으로 즉위한다. 그는 어머니인 폐비 윤씨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다. ‘연산군일기’ 제4권에 보면 이렇게 쓰여 있다.

“왕이 비로소 윤씨가 죄로 폐위되어 죽은 줄을 알고, 수라를 들지 않았다.”

그는 복수의 칼날을 벼리기 시작한다. 조선왕조 첫번째 사화(士禍)인 무오사화의 계기는 사림을 대표하던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이었다. 의제(義帝)는 중국 진나라 말기 다시 세워진 초(楚)의 왕이었다. 항우는 당시 황제였던 의제를 죽인 후 시체를 물에 던졌다. ‘조의제문’은 김종직이 수양대군(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한 글로 항우를 수양대군, 의제를 단종에 비유하고 있었다. 수양대군의 증손자인 연산군은 이를 자신에 대한 비방으로 간주했다. 수많은 사림파 관료들이 목숨을 잃거나 귀양길에 올랐고 김종직은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했다. 중국 진나라의 ‘분서(焚書)’이후 자행된 ‘갱유(坑儒)’, 즉 유생 400여 명이 생매장 된 사건이 떠오르는 역사 속 한 장면이다.



책을 불태우는 미래의 디스토피아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는 20세기 SF문학을 주류 문학의 위상으로 끌어올린 거장이다. 그의 대표작 ‘화씨 451(Fahrenheit 451)’은 책이 금지된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의 생각이 통제되는 사회에 대한 경고를 담은 디스토피아적 미래 소설이다. 출간된 지가 60년이 넘었지만 작가의 상상이 현재 우리의 모습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어서 놀랍다. 언론과 매스미디어의 강력한 영향력, 편향적 교육, 독서와 사유와 사색을 기피하는 인류에 대한 경고가 강력하다.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에 의해서 지난 1966년에 영화화 되었고, 라민 바흐러니 감독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2018년 판이 최근에 공개되었다. 작가 브래드버리가 제목에서 쓴 ‘화씨 451도’는 책이 타는 온도를 말한다.

영화 속 몬태그(마이클 B.조단 분)의 직업은 ‘파이어맨(Fireman)’이다. 확고한 신념과 탁월한 능력을 갖춘 그는 서장(마이클 섀넌 분)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승승장구한다. 출동명령을 받고 대원들과 함께 도착한 현장에 불길은 보이지 않는다. 몬태그와 대원들은 화염방사기로 불을 지르기 시작한다. 그들의 임무는 소방(消防)이 아니라 방화(放火)이다.

영화 속 미래세계에는 강력한 내연성 자재의 개발로 더 이상 화재가 존재하지 않는다. ‘파이어맨(방화수)’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제 책을 태우기 위해 불을 지르는 것이다. 철학, 문학 등을 다룬 인문학 서적들은 인간을 고뇌하게 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키우는 사회악으로 간주된다. ‘파이어맨’들은 인간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는 ‘고뇌와 불행의 원천’을 깨부수기 위해 책을 찾아내고 모조리 불태운다.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지문이 삭제된다. 이는 곧 신원의 소멸을 의미한다. 국가는 사회안전과 통합을 명분으로 언론을 통제하고 정보의 교류를 차단하고 있었다. 첩보를 수집하던 중 우연히 알게 된 클라리스(소피아 부텔라 분)는 책을 태우기 전 한번이라도 읽어보라는 말을 남기지만 몬태그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의 멘토인 서장에게 책 전체를 읽어본 적이 있는지 묻지만 더욱 모호한 대답만이 돌아온다. “고개를 돌리는 일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동굴 안에서 불꽃 그림자 외의 것을 볼 수 있을까.”

플라톤은 ‘국가론’ 제7권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이데아의 세계와 현실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동굴에는 많은 수의 죄수들이 벽면을 향해 묶인 채 앉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는 것을 실재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벽에 비친 그림자일 뿐이다. 이 죄수들 중 한 명이 족쇄에서 풀려나 동굴을 벗어난다. 그는 최초로 그림자를 만드는 진짜 사물들과 그러한 그림자를 가능하게 하는 밝은 태양빛을 보게 된다. 그는 자신이 여태까지 실재라고 여겼던 벽에 비친 그림자들이 실재가 아닌 허구였음을 깨닫는다. 그는 다시 동굴로 돌아가 죄수들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말한다. 그러나 죄수들은 그를 미치광이로 여기고 이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영국의 록그룹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은 그들의 대표곡 ‘Stairway to heaven(천국으로 가는 계단)’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There‘s a lady who’s sure all that glitters is gold 반짝이는 건 모두 금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And she‘s buying a stairway to heaven. 그녀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사려고 하지요. When she gets there she knows If the stores are all closed with a word she can get what she came for. 그녀는 천국에 가기만 하면 상점이 모두 문을 닫았을 지라도, 그녀가 구하고 싶은 것은 다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영화 속 미래의 세상에는 펜과 종이를 소유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다. 과거의 지식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 서장은 정부의 감시를 피해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메모하고 있다. 그리고 타인과 공유하지 않는다. 지식과 정보를 독점한 일부 세력은 이를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고 억압하고 지배한다. ‘동굴의 비유’가 무슨 의미인지 알고 싶은 몬태그에게 서장은 답을 주지 않는다.



지하생활자의 수기

조선 제 4대 임금 세종대왕이 위대한 이유는 애민(愛民)정신 때문이다. 그에게는 군주로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 대왕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해 한글을 지은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나라의 말이 중국의 문자체계와 달라 백성들이 읽고 쓰는데 어려움이 있다. 내가 이를 ‘어엿비’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든다.” ‘어엿비’는 안쓰럽고 애처롭게 느낀다는 의미이다. 마음에 사랑이 없는 사람은 타인을 ‘어엿비’ 여기지 못한다.

그러나 당시의 기득권 세력은 이에 극렬히 반대했다. 명분은 지식과 정보의 제한 없는 공유가 사회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신분 여하에 상관없이 모두가 읽고 쓰는 세상을 두려워했다. 백성들은 한글로 연산군의 학정을 비판하는 방(榜)을 써서 내걸었다. 분노한 폭군은 훈민정음 서적을 모두 불태웠다. 그 이후 오랜 동안 한글은 ‘언문’이라는 낮은 칭호로 불리며 부녀자 혹은 낮은 계층에서 사용하는 문자로 취급되었다.

영화 ‘화씨 451’속 ‘방화서(Fire Department)’의 대원들은 책이 숨겨져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한 외딴 집을 급습한다. 한 노년의 여성이 책을 읽고 있다. 대원들은 2층의 창고를 가득 채운 장서를 발견한다. 책과 함께 집 전체를 불태우려는 순간 그녀는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인다. 외마디 비명도 없이 장엄하게 산화하는 여인의 모습에 몬태그는 혼란에 휩싸이고, 장서 중 한 권을 몰래 숨겨 나온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중편소설 ‘지하생활자의 수기’였다.

젊은 날의 도스토예프스키는 극심한 물질적 결핍으로 고통 받았다. 러시아의 극단적인 빈부격차를 목격하며 가난하고 짓눌린 자들에 대한 동정과 관심을 키웠다. 인간의 본성적 선함을 믿으며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없는 이상사회의 건설을 주장했던 ‘푸리에 주의(Fourierism)’는 그의 심장을 뜨겁게 했다. 하지만 시베리아 감옥에서 보낸 4년의 세월은 그의 신념에 근본적인 균열을 가했다. 인간 본성의 어둡고 야만적인 면을 목도한 그에게 ‘본성적인 선’에 대한 신념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후 첫 번째 유럽여행에서 그는 물질 만능주의의 노예가 된 착취자들의 부패와 타락을 보았고 극빈과 극부의 모순된 공존을 보았다. 소설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통해 그는 ‘2×2=4’로 대변되는, 인간 행위를 규정하는 보편적 원리를 부정하고 그 맹점을 공격한다. 완벽은 진보를 허용하지 않으므로 역설적으로 그것의 최대 약점이 된다. 그것은 ‘2×2=4’와 같은 죽은 공식이라는 것이다. 몬태그는 통제시스템의 감시를 피해 책을 읽기 시작한다.

“나는 ‘2×2=4’가 완벽한 수식이라는데 동의한다. 하지만 ‘2×2=5’, 이 또한 얼마나 매력적인가.” 휴면을 명령한 중앙통제 감시시스템은 곧바로 이를 지적한다. “False.(틀렸습니다)” 사유와 각성을 통해 정부가 삭제한 이전의 기억을 되살리며 갈등하는 몬태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2 곱하기 2의 정답은 4일 뿐일까

지난 2015년 당시 정부는 한국사 교과 과목의 국정화를 추진했다. 대통령은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고 했다. 이 사안을 두고 펼쳐진 한 TV토론 프로그램에서, ‘역사 교육의 목표는 올바른 국민 육성’이라는 한 패널의 발언에 대해 당시 유시민 작가(현 노무현재단 이사장)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국민이기 이전에 한 인간입니다. 국민으로서 생각하기 전에 인간으로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가 아닙니다. 국민 전체를 멸균실에 가두려 하지 마십시오. 물은 증류수만 마시고 모든 음식을 끓여먹는다고 해서 건강해 지는 게 아닙니다. 세균 바이러스가 득실거려도, 면역체계가 살아 있고 그 병균을 이겨낼 수 있어야 건강한 몸인 것입니다.”

현재 인류는 인터넷과 매체의 발달로 넘쳐나는 정보와 지식 컨텐츠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우리의 사유와 판단을 해치는 유해물질도 상당하다. 언론보도를 빙자한 가짜뉴스 역시 횡행하고 있다. 허위조작정보는 반드시 차단되어야 마땅하다. 법무부는 허위조작정보란 객관적 사실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허위 사실을 의미하며 의견 표명이나 실수에 의한 오보, 근거 있는 의혹 제기 등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국민들의 언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특히 수사기관의 동원에는 신중해야 한다. 진위와 옥석에 대한 판단의 권한은 언제나 국민에게 있다. 공론을 통한 자율규제의 강화가 최선일 것이다. 이러한 여과 기능은 인문학적 면역체계와 같다. 가장 효과적인 예방책은 다양한 방식의 독서와 깊이 있는 성찰을 통해 사유의 힘을 제고하는 것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들 했다. 요즘엔 이런 말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 최근 발표된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 평균 독서시간이 하루 6분이며 하루 10분 이상 책을 읽은 사람이 전체인구의 1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OECD국가 중 맨 꼴찌다. ‘화씨 451’처럼 일부러 책을 불태우지 않아도 자연 소멸될지 모른다. 인터넷, SNS 등을 통해 얻는 정보와 지식이 패스트푸드라면 책 한권은 잘 차려진 한정식 한 상과 같다. 여유를 갖고 음미하며 즐기는 정찬의 풍요로움은 잠시 허기를 잊게 하는 인스턴트 음식의 편리함을 압도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문화평론가 김기호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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